단식48일종료전후의 기록
단식46일째^^ (토)가족면회와 (일)mbc에서 …. 김은옥 2007/06/04 748
토요일(6/2)에는 이작가의 여동생과 남동생, 그리고 고모님의 면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면회때도 약간의 소란이 있었습니다. 토요면회는 직계가족만 된다고 하며 친동생여부 친고모여부를 알 수 없으니 ‘호적등본’을 가져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날은 토요일인데다 동사무소도 하지 않는 날이어서 너무도 황당하였습니다. 가족들은 토요일에 면회를 조정하였고, 멀리 일산, 인천, 서울에서 모여 남편의 접견을 기다리고 있다가 접견창구 여공무원과 또 소란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토요일이어서 책임자들은 출근하지 않고 토요접견책임자와 실랑이 끝에 어렵사리 접견은 할 수 있었지만
저희 만의 문제가 아닌일로 다른 가족들을도 이런 불편하고
어의 없는 상황을 겪을 것 같아 구치소측에 또 애기를 안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담당직원말도 틀린말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수감자가 ‘이00′라고 할때 접견온 분의 성씨가 ‘이00′라고 해서 자기들로써는 모두 직계가족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것들을 사전에 알고 접견을 신청하는 민원인들보다는 구치소에 접견신청을 하고 나서야 알 게 되는 일이 많으므로, 좀더 유연하게 민원인들을 대하고 서로 큰소리 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공무원들의 융통성없음을 또 한번 절감하는 날이었으며 저희 가족들만의 특혜가 아니라 일반 수감자 가족들의 대한 공무원들의 태도를 달라지게 하기 위해서라도 구치소책임자를 다시 만나야 할 듯 합니다.
————————————————-
어제 일용일(6/3)는 오랜만에 일벗교회예배를 나갔습니다.
남편의 일관계로 두주나 예배를 빠진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교회에 가기전에 10쯤에는 MBC ‘시사매거진2580′에서 저의
집안일 하는 모습을 촬영하고자 강화에 도착하였습니다.
집안청소하고 설겆이하고 우성이 깨우면서 교회갈 준비하는
모습을 촬영하더군요. 교회가기전에 선원면 연리에 있는 남
편 작업실에도 들러 압수수색당한 이후 흐트러져 있는 이시
우작가 작업실 정리하는 모습도 함께 찍었습니다.
남편의 억울한 누명이 그나마 이렇게라도 알려지게 될 것같
아 그간 언론들의 대한 서운함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날 촬영한 내용은 6/10 밤 11시 , MBC ‘시사매거진2590′에
’6/10항쟁 20주년 기념 ….’으로 방영된다고 합니다.
6/4(월) 면회했습니다. 김종욱 2007/06/05 564
6월 4일 월요일에는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과
CBS의 김종욱, 박철PD의 면회가 있었습니다.
월요일이어서 그랬는지 면회객이 상당히 많아서
10시에 신청한 지 거의 1시간이 지나서야 면회가 가능한 실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창익 국장이 이전부터 안면이 있던 보안과장을 만나서
다른 방식으로 접견이 안되겠냐는 요청을 했지만 ‘불가’하다는 답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시우씨의 근황을 묻고 특히 단식 이후 보식단계에 신경을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보안과장은 ‘걱정말라’며 이시우씨가 “정말 대단한 분이고, 인품도 훌륭하고….” 등등의 말을 이어가더군요.
이시우씨와의 면회에는, 마침 강순정 고문을 면회 왔던 민가협 어머니들께서 함께 했는데,
어머님들은 이시우씨에게 건강을 잘 챙길 것을 부탁했습니다.
이날 면회에서 이시우씨는 밖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유엔사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고 있는데 대해 아쉬움을 표시했습니다.
‘달을 가리켰는데 손가락만 쳐다보는 격이다’라고요.
47일의 단식이 초유의 일이지만, 그래도 그 정도 유지하고 계신 것은
평소 수도자 같은 생활을 해오셨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단식47일째^^ 이시우석방대책위 4차회의가….대책위 2007/06/05 675
서울 ‘통일맞이’사무실에서 ‘평화사진작가이시우석방대책위’소속 단체들의 4차회의가 있었습니다.
이날 회의에는 담당변호를 맞고 있는 이정희변호사를 비롯하여, 참여연대(박정은),문화연대(,비폭력평화물결(김석봉),대인지뢰대책회의(문은영),민가협(한지연),한국교회인권센타(최재봉외1인)통일맞이(고정호)통일뉴스(김치관)부인(김은옥)이작가남동생(이준구)등 10여분이 참석하였으며, 기소후 재판준비를 위한 구체적 논의들이 되었습니다.
또한, 최병모,이정희변호사 2명의 변호사분들과 함께 11분의 변호사가 추가 구성되어 총 13분의 변호사님들이 수고하여 주시게 되었습니다.
5차회의는 6/19일(화) 12시 통일교육협의회(통일맞이사무실이 의자가 부족하여 바로옆골목에 있는 )에서 모일예정이며 고정호(010-8367-4460/통일맞이 사무처장)간사님께서 이멜로 연락할 예정입니다.
추후에도 이시우석방대칙위와 함께 해주실 개인이나 단체는 고정호씨께 연락주시고, 긴 싸움이 될듯하니 끝까지 관심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불교인권위와 한상열목사님 특별접견예정^^ 김은옥 2007/06/05 589
이시우작가의 단식이 6/6일부로 종료되어 향후 보호식을 하는 문제로 한상열목사님과 불교인권위에서 부인 김은옥씨와 특별접견을 할 예정입니다.
단식보다 단식이후의 회복문제가 중요하다는 어르신들과 관계자분들의 걱정으로 담당주치의가 있는 안양병원에만 이일을 맡길 수 없어 금일 구치소 관계자들을 만나 향후 단식기간의 두배이상을 회복기간으로 보고 논의할 예정입니다.
또한, 불교인권위에서는 올해 제5회 인권위상을 ‘이시우작가’로 선정하게 되었다며, 6/8 조계사에서 시상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펌] 오마이뉴스: 미국에서 이시우를 생각한다 하승창 2007/06/06 699
미국에서 이시우를 생각한다
[하승창의 뉴욕리포트] 상상력과 통찰력, 법으로 재단 말라
▲ 사진작가 이시우씨.
ⓒ 사진작가 이시우 석방대책위
사진작가 이시우의 ‘구속’은 놀랍기 그지없다. 이시우의 단식이 열흘 이상을 넘겨서야 나는 그 사실을 알았다.
인터넷으로만 국내 소식을 접하고 있던 내가 꼼꼼히 챙겨보지 못한 탓도 있을 터이다. 이제 30일을 넘긴 그의 단식 앞에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국가보안법이 역량 있는 작가의 명줄을 당기고 있구나 싶어서 더욱 그렇다.
그와 나의 인연은 방송에서 시작됐다. <기독교방송>의 ‘시사자키’를 진행하고 있을 때 그는 고정출연자였다. 사진을 찍는다고 숱하게 돌아다니며 얻은 ‘사실’을 말로 전하는 것이 그의 시간이었다.
사진 속에 담긴 장면 하나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그저 지나치는 모습일지 몰라도 작가인 그에게는 지나칠 수 없는 사연과 이야기를 가진 현실이었던 셈이다.
그의 이야기는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가 적지 않아서 생방송 중에도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어디서 알게 된 것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답은 언제나 이미 사실로 발표되거나 확인된 사항이라는 것이었다. 그 사연과 이야기의 진실이 어디에서 발표되고 확인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줬다.
우리는 무심히 그 같은 발표와 확인을 지나쳤는지 모르지만 그는 자신이 포착한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 장면을 구성하고 있는 역사와 사실을 일일이 확인한 것이다. 자신이 생산한 작품에 대한 해설이기도 한 셈이다.
근 1년여 동안 그와 방송을 진행하면서 그가 갖고 있는 상상력이 나는 궁금해졌다. 눈앞에 보이는 장면의 배경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배우고 싶었다. 그에게 ‘함께하는시민행동’의 상근자들에게 ‘상상력’을 주제로 이야기해 줄 기회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나는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현상만으로 사회 내부에 형성되어 있는 구조적 문제와 구체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기 것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한 작가가 보여준 상상력은 한 사람의 운동가가 건조하게 보는 현상 뒤의 절절한 사람들 모습을 연상케해줬다. 또 그 현상을 규율하는 사회적 구조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단서를 주었다. 상상력이란 운동가에게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일깨워준 것이다.
한 번의 이야기로 한 사람의 작가가 자기 삶을 걸고 해 온 여정 전체를 쉽게 알 수 없겠지만 우리는 그가 가지고 있는 평화에 대한 진정성을 절절이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를 기억하는 내게 그의 구속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이 주는 교훈
미국에서 지내는 탓에 미국 이야기를 하나 해보련다. ‘웨스트 윙’이라는 미국 드라마에 보면 백악관에 초대받은 마술사들이 성조기를 가지고 마술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성조기를 불에 태워 없애는 마술을 시연해 보인 것이다. 그것도 백악관에서 말이다.
당연히 문제를 삼은 정치적 반대파들이 백악관을 공격하기 시작하고 백악관의 참모들은 그 마술사에게 사과를 요청할 뿐 아니라 성조기가 실제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것이 성조기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말이다.
그런데 백악관의 참모가 마술사에게 오히려 면박을 당한다. 그 마술사는 마술의 비밀을 알려줄 수 없을 뿐 아니라 성조기를 없애는 것조차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고 그것은 미국의 수정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점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사과할 생각도 없고 마술의 비밀을 알려 줄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그 마술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민통선을 찍은 것이 어찌 죄가 되는가? 그가 그 장면을 찍은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왜 죄가 되는가? 이 사진이 군사기밀 유출죄에 해당한단다.
이런 게 죄라면 그 이야기를 1년 동안 방송에서 전국에 알리고 진지하게 들은 진행자인 나도 ‘불고지죄’로 기소되어야 할 것이다. 대명천지에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단 말인가?
이시우는 석방돼야 한다. 작가가 가진 상상력과 통찰력을 법으로 재단하려는 사고가 우리를 옥죈다면 우리 사회에서 창의적 사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기검열 하도록 만드는 국가보안법 때문에 우리 사회가 창의적 사고를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그가 자신의 생명을 단축하는 단식을 멈출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시우를 다시 보고 싶다.
오마이뉴스 / 하승창
국보법혐의 체포된 이시우를 아시나요 [1] PD저널 2007/06/05 788
국보법혐의 체포된 이시우를 아시나요
[기고]김종욱 CBS PD
2007-06-05 02:57:05
내가 이시우를 처음 만난 것은 2001년이다. 당시 내가 담당하고 있던 프로그램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 후배인 이광조 PD가 섭외를 한 것이다. 조용하고 단아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선하다’는 말이 어떤 모습을 가리키는 지 알 것 같았다. 말도 조용조용했다. 무엇을 묻거나 요구해도 살포시 웃으면서 ‘네, 좋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라고 대답할 뿐, 큰소리를 내거나 무엇을 힘주어 주장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사람, 사회, 역사와 민족에 대한 연구와 사색의 결과로 영글어진 큰 성찰
이시우는 국토의 서쪽 끝 강화도에서 동쪽 끝까지 오로지 두 발로 수 십 차례를 왕래하며 분단의 중심부인 민통선 일대를 카메라에 담아낸 사진작가다. 그의 카메라는 녹슨 철마에 뚫려있는 총탄자국, 지뢰에 기대 핀 야생화 한 송이, 휑하니 빈 하늘을 뒤로하고 서 있는 부서진 건물, 부서진 건물에 내리쬐는 가을 햇살, 지뢰에 다리를 잃고 망연히 앉아있는 민통선의 주민들을 담아냈다. 그는 그 사진들을 가지고 휴전선 일대에 배어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이야기했고, 민통선이 상징하는 분단의 현재적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했다. 그의 얘기는 남다른 연구를 거쳐 정리된 것이었고, 깊은 성찰을 담고 있었다. 이전에 쉽게 듣지 못했던 얘기였다.
“사진은 90%의 학문과 9%의 실천, 1%의 영감으로 창작됩니다”
이시우의 말이다. 그는 아내에게 생계를 맡긴 채 강화도에 있는 허름한 작업실에서 홀로 작업에 집중했다. 그의 작업실에는 사진작가에게는 별 소용이 될 것 같지 않는 갖가지 사회과학 책들이 꽂혀 있다. 그러니까 사진작가로서 그의 ‘작업’은 사진 찍기와 사진 현상하기가 아니라 ‘책읽기’인 것이다. 그는 마치 구도자와 같은 생활을 통해 부단히 자신을 단련하며 홀로 분단 현실을 붙들고 있었다. 그리하여 기밀이 해제된 미군문서를 통해 수백 발의 열화우라늄탄이 이 땅에 여전히 보관되어 있음을 알아냈으며, 한강하구에는 군사분계선도 비무장지대도 없다는 사실을 밝혀내 그곳에 평화의 배를 띄우게 했다. 그가 방송을 통해 전달했던 내용은 <민통선 평화기행>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여 나왔고, 지난해 독일에서 열린 국제도서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책 100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잠수함 속의 토끼처럼 시대의 징후를 경고하는 것이 예술가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했던 이시우가 최근에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던 주제는 유엔사였다. 작전통제권 환수와 정전체제 이후의 평화체제가 거론되는 가운데서 유엔사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는 징후를 느낀 것이다. 그는 연구에 몰두했고, 그 징후를 경고하기 시작했다. 관심을 갖는 사람은 적었지만 그가 말한 경고음은 우리 현실에서 민감한 부분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 달 19일 그는 잠복 중이던 경찰에 연행됐다. 혐의는 ‘군사기밀유출’과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그 혐의에는 그가 강화도 고려산의 일몰을 찍은 사진도 포함돼 있다.
“사회의 아픔이 집중되는 곳에 서 있겠다”
자신을 체포하러 나타난 경찰을 만났을 때, 그리고 옥인동 분실에 끌려가 조사를 받던 중 저녁밥이 왔을 때, 이시우는 분노나 저항심이 아니라 ‘뭔지 모를 깊은 슬픔’을 느꼈다고 한다. 한 없이 밀려오는 그 슬픔이 그의 입을 닫게 했고, 음식을 거부하게 했다. 그 단식이 40일을 넘겼다. 나는 그의 ‘슬픔’을 이해한다. 대다수가 시대와 타협해 자잘한 일상사에 묻혀 지낼 때, 그는 다만 사회와 민족의 아픔이 집중되는 곳에 자신의 몸과 삶을 세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그의 카메라는 사회와 민족을 향했고, 역사를 탐구했고,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꿈꾸었다. 그 대가가 어처구니없는 법률 위반으로 돌아오는 시대에 대해 어찌 슬픔을 느끼지 않았을 수 있겠는가.
“달을 가리켰는데 손가락을 보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47일 동안의 단식으로 초췌해진 이시우는 면회를 간 지인들에게, 유엔사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는데 대한 안타까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여전히 살포시 웃음 지었으나 이 말을 할 때는 언뜻 슬픔이 스쳐갔다. 나는 ‘사람이 40일이 넘도록 단식을 하는데, 취재 오는 방송사 하나 없다’는 부인의 전언에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낀다.
http://pdjournal.com/news/all.php?no=2435
김은옥 [2007/06/05] :: 김종욱PD님 감사합니다^^ 다행이 MBC`시사매거진2580`에서 촬영을 와 주셔서 조금은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PD저널 관계자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사진전및 면회일정 [1] 대책위 2007/06/08 638
*6월 7일(목) 나눔문화관계자 면회
*6월 8일(금) 박종철인권상시상식장(조계사 대웅전앞)당일
사진전시회(오후3시 – 6시)
*6월13일(수) 이시우석방기도회(대전 빈들교회)
– 사진일부요청
*6월16일(6.15공동선언실천인천본부) 사진전개최
– 장소;인천종합문예회관 지하철역사
– 시간; 12;00 -17;00
– 저자사인 책,사진시집,엽서등 판매예정
*6월25일-7월10일 인사동(평화박물관) 사진전개최
– 저자사인 책,사진시집,엽서등 판매예정
*사진전 및 면회관련해서는 고정호(통일맞이 사무처장)씨를 통해서 조정하시길 바랍니다..연락처(010)8367-4460
피디저널에서 릴레이 기고를 받습니다. 이선민 2007/06/05 714
미디어전문지 ‘피디저널’ 이선민 기자입니다.
피디저널(www.pdjournal.com)에서 이시우씨 관련해 릴레이 기고를 받을 계획입니다.
첫번째로 CBS 김종욱 PD께서 원고를 쓰셨습니다.
여기에 관심 있으신 많은 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원고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저의 이메일 주소는 smlee0104@yahoo.co.kr입니다.
6/6일 단식종료후 보호식관련 면회를 다녀와서….,김은옥 2007/06/05 812
6/7일부터 시작될 보호식문제로 6/15남측본부 한상렬목사님과 특별접견을 다녀왔습니다. 6/15 행사준비로 바쁘신 한목사님이 잡혀있던 회의도 뒤로 미룬채 저보다 더 먼저 와서 총무과장과 이작가의 보호식문제로 상의하시는 모습을 뵙고 너무 송구스러웠습니다.
한상열목사님께서 이작가의 양손을 꼭 잡으시고, 세가지 정도의 당부말씀을 하셨으며, 저와 셋이 손을 잡고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또한, 기도중에는 이작가의 건강을 지켜 주실것과 이작가가 앞으로 사진으로 이땅의 진정한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의 길을 열어줄것과 아내와 아들에게도 진정한 사랑으로 이들 가족이 평생 평화로운 가정으로 지켜주실것과, 구치소에서 함께 애써주고 있는 모든 관계자들과 여타의 죄명으로 고난받고 있는 수감자들에게도 밝은 빛과 자유의 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해 주셨습니다.
또한, 이작가의 보호식을 위해서 유기농된장과 쌀이 필요하시다며 구치소에서 협조가 안되면 우리쪽에서 음식물 반입이 되도록 허락해 달라는 당부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이작가는 금주와 다음주까지는 지금까지 먹던 효소와 감잎차에 쌀죽물과 된장국물을 하루세번 소량을 먹는것으로 하고 다시 보호식을 위해 접견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면회가 끝나고 다음 회의 장소로 이동을 위하여 바쁘게 전철역으로 향하시는 한상열목사님을 배웅하며, 이작가 만큼이나 환한 미소와 맑은영혼을 가지신분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 하루였습니다.
단식48일째^^제5회 박종철인권상 -이시우작가 선정 [2] 불교인권위 2007/06/06 684
‘제5회 박종철인권상 시상식’이 6/8(금) 오후4시
서울 조계사(인터넷홈피에서 약도를 참고하세요) 대웅전에
서 거행될 예정입니다. 이날 이시우작가 사진전시회도 함
께 할 예정입니다.
- 시상자 ; 이시우(평화사진작가)
- 연락처; 02 – 734 – 6401
- 주최; 불교인권위 박종철 인권상위원회
대책위 [2007/06/10] :: 시상식에 많이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은옥 [2007/06/06] :: 시상식에 참석하실 수 있는 분들은 저에게 미리 전화주시면 조계사에서 저녁준비를 하신답니다.
[펌] 연합뉴스: 박종철인권상에 사진작가 이시우씨 선정 [1] 고려산 2007/06/06 796
박종철인권상에 사진작가 이시우씨 선정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인권위원회 산하 박종철인권상심사위원회(위원장 혜총스님)는 지난 4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수감된 사진 작가 이시우씨를 제5회 박종철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5일 밝혔다.
심사위원회는 “국보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작가의 사진 중 하나는 인터넷 개인블로그에서도 흔히 검색되는 사진에 불과하다”면서 “작가를 구속한 것은 표현과 언론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탄압”이라며 선정 사유를 밝혔다.
이씨는 주한미군 기지를 비롯한 군사 시설 등을 촬영한 사진과 북한의 대남선전 내용을 인터넷에 올린 혐의(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구속수감된 뒤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종철 열사의 민주주의 정신을 기리자는 뜻에서 마련된 이 상은 민주화 공헌 여부와 인권상황 개선 노력 등을 심사해 수상자를 정한다.
연합뉴스
[펌] 통일뉴스: 검찰청 앞에서 마지막 이시우 촛불 고려산 2007/06/06 746
검찰청 앞에서 마지막 ‘이시우 촛불’
6일 단식 중단. 7-8일경 검찰 기소 계획 따라 ‘법정투쟁’ 준비
▲5일 서울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마지막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박현범 기자]
국가보안법을 끌어안고 죽기를 각오한 평화사진작가 이시우 씨가 6월 6일부로 단식을 끝낸다. 단식 47일(검거이후 48일째)만이다.
이시우 작가의 40일을 넘기는 극한의 단식투쟁은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각층에 칼날을 겨누고 있는 보안법의 존재를 일깨웠다. 특히 2004년 하반기 대규모 단식 농성 이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를 재가동시키기도 했다. 국민연대는 지난해 ‘일심회 사건’ 이후 마구잡이식 보안법 사건이 이어짐에 따라 12월 말 대선까지 ‘범국민적 보안법 폐지 운동’을 해 나갈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민족미술인협의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강화이시우대책위, 민변통일위원회, 녹색연합, 한국인터넷기자협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등 각계각층의 36개 시민단체가 망라된 ‘평화사진작가이시우석방대책위(대책위)’는 각종 사진전과, 법적대응 등 향후 공소가 제기될 것에 대비한 대응 작업을 시작했다.
대책위는 한신대학교(6월 5일-6일), 서울 사진 전시회(6월 25일-7월 10일, 인사동 평화박물관), 6.15공동선언실천인천본부 주최 6.15행사(6월 16일) 등을 통해 사진전을 개최하고, 탄원서와 서명운동을 진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연대는 ‘제12회 문화콘텐츠 포럼’의 주제를 ‘이시우 작가의 찰라-포토저널리즘’으로 잡고 오는 13일 포럼을 갖는다.
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회장 백승헌)’은 공동변호인단을 구성하고, 문화인, 언론인, 사회단체들은 이시우 작가에게 적용된 국보법 위반과 군사기밀 누설 혐의 등에 대한 반박자료를 각각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상임의장 이영)’은 국제앰네스티 런던본부에 이시우 작가 사건 자료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앰네스티가 이시우 작가를 ‘양심수’로 지정할 경우, 국제사회를 통한 석방 압력도 배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민가협 한지영 간사는 “7,8일 정도에 공소가 제기될 것으로 보고, 6월 중순께에 보석신청과 함께 탄원서와 서명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시우 작가가 단식을 중단함에 따라, 지난달 21일부터 서울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진행돼 온 촛불문화제도 5일 저녁 7시 마지막 촛불을 밝혔다.
법정 투쟁을 향한 마지막 촛불 타올라
“현충일의 순국열사와 또 다른 곳에서 피흘려 쓰러져간 선열들의 역사위에 저의 사건은 일엽편주만도 못한 미미한 것임을 잘 압니다. 그래도 저는 무작정 현충일의 강가에 저의 배를 정박시키고자 합니다. 물가의 풀 한포기 만이라도 위로 할 수 있다면 앞으로 넘어야 할 고비도 더 큰 배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이시우 작가 두번째 옥중서신 中>
▲참가자들은 검찰의 기소와 함께 시작될 법정투쟁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참가자들 넘어로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보인다. [사진-통일뉴스 박현범 기자]
16일 동안 이시우 작가의 단식과 함께 타올랐던 검찰청 앞 촛불은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을 향해 방향을 바꾸었다. 7-8일경, 검찰의 기소와 함께 시작될 법정투쟁에 대한 참가자들의 의지의 표현이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권오창 상임공동대표, 홍근수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공동대표 등 이날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30여명은 앞으로 ‘지리하게’ 벌어질 ‘법정투쟁’에서의 각오를 다졌다.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회장 [사진-통일뉴스 박현범 기자]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회장은 “국가보안법이 적용이 되는 것은 이북을 반 국가단체로 규정하고 대남적화노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정부를 전복하고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한다는 것이 공안당국의 논리이다”며 “그러나 유엔에 동시가입하고, 남북 정상이 만나서 6.15공동선언을 만들었다. 이북은 조국 통일 3대 헌장을 주장하고 있다. 그 어디에도 이북이 대남적화노선을 인정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대남적화노선을 갖는다는 억지주장해서 죄를 씌우고 있다. 앞으로 법정에서 이 중대한 두가지를 밝혀내서 공안당국을 굴복시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안신정 홍보위원장은 “6월 항쟁 20주년, 6.15남북공동선언 7주년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국보법 철폐일 것이다”며 “오늘 초는 접지만, 진정한 민주와 통일을 열어갈 것을 약속한다”고 결의를 밝혔다.
사회를 맡은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황순원 상황실장이 지난달 29일 <통일뉴스>에 게재된 이시우 작가의 두번째 옥중서한의 한 구절을 낭독하자 참가자들은 이내 숙연해졌다.
▲ 황순원 상황실장이 이시우 작가의 두번째 옥중서한을 낭독하자 장내는 이내 숙연해 졌다.[사진-통일뉴스 박현범 기자]
“어찌보면 현충일과 국가보안법은 정 반대편에 서 있는 두 실체를 상징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강화에 살면서 전쟁으로 갈갈이 찢겨진 역사의 초상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좌익에게 참살당한 아버님의 시신을 손수 묻어야 했던 한 노인과, 우익에게 주살당한 어머님의 시신을 바다에 수장하고 같은 동네에서 50년을 피해자로만 살아남아야 했던 모진 할머니의 인생을 압니다. 어떤 이성으로도 설득될 수 없는 원한과 분노의 원체험을 가진 분들께 이젠 털고 화해하잔 말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보았습니다. 그 한과 슬픔을 온전히 끌어안지 않고, 눈물과 감동으로 부등켜안지 않고서는 역사와의 화해는 불가능한 것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비수로 다가온 국가보안법, 유엔사, 그 모두를 끌어안겠다고 저는 가슴을 열었습니다.” <이시우 작가의 두번째 옥중서한 中>
저녁 8시 30분경, 앞으로의 더 큰 싸움을 준비하는 촛불이 꺼지자, 참가자들은 그 동안의 수고에 서로 격려했다. 특히 16일 동안 촛불문화제의 모든 살림을 도맡아 온 황순원 상황실장에 대한 고마움이 이어졌다.
황순원 상황실장은 그간의 소회를 묻자 “아쉽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는 “말도 안되는 시대의 악법에 대해서 목숨을 걸고 단식을 했는데, 그에 비해서 국보법 문제를 쟁점화 하지 못했다. 촛불문화제, 1인시위, 토론회 등을 해왔지만 사회에 알려내서 여론화 시켜야 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이어 “그러나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원로 어르신들과 많은 사람들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여기에서의 작은 촛불이 앞으로 더 많은 촛불을 만들 수 있게 할 것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 통일뉴스 / 박현범 기자
[펌]인권연대:상상력이 막혀버린 사회에 살다 인권연대 2007/06/07 723
상상력이 막혀버린 사회에 살다
-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이시우 작가의 석방을 기원하며…
이유정/ 변호사, 법무법인 자하연
국가보안법은 1948. 12. 1. 제정된 법률이다. 헌법이 제정된 때가 1948. 7. 17. 이고, 구형법이 제정된 때가 1953. 9. 18, 민법이 제정된 때가 1958. 2. 22. 이니 국가보안법은 형법이나 민법과 같은 기본 법률보다 훨씬 오랫동안 대한민국과 함께 했고 조만간 환갑을 맞게 되는 장수법률이다.
참여정부의 출범 초기에 나는 이 법률이 곧 폐지될 것이라고 기대했고, 우여곡절 끝에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이후에는 국가보안법 폐지는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대통령까지 나서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는 말을 한 이후에는 드디어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해 연말 국가보안법 폐지가 실패로 돌아간 이후에도 그저 허울만 남아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남과 북을 잇는 철도가 개통되는 세상에서 50년 전에 만들어진 낡은 법으로 인해 더 이상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근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 47일째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이시우 작가의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드는 생각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어이상실” 그 자체였다.
문제된 사진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비무장지대와 미군기지, 한미연합훈련을 담은 사진들인데 아무리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더라도 그것이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미군기지와 비무장지대를 찍은 사진이 왜 선전. 선동에 해당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설령 그러한 사진이 북측의 선전. 선동에 사용되었다면, 이용당한 우리의 현실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나라의 영토에 다른 나라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비정상적이고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영토에 일본이나 중국의 군대가 주둔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듯이.
지난 달 평양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김책 공업종합대학 도서실이다. 서가의 앞쪽에는 두툼한 표지로 된 김일성, 김정일 저작선집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서가의 뒤쪽으로 들어가보니 2-30쪽의 팜플렛만도 못한 조잡한 책들만 꽂혀 있었다.
모두 주체사상이나 맑스레닌주의와 관련된 책들. 혹시 다른 종류의 책이 있는가 살펴보니 과학 기술과 관련된 책 이외에 인문학이나 예술과 관련한 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호머, 일리아드, 오딧세이 등 몇 권의 서양고전이 전부였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날 나는 일기장에 “이곳은 상상력이 막혀있는 곳이다”라고 적었다.
아무리 많은 장점을 가진 사회라 하더라도, 하나의 생각 이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조차 없도록 정보와 지식을 통제한다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곳은 결코 올바른 사회라고 할 수 없다. 북한에서 주체사상 이외의 다른 책을 읽지 못하도록 정보와 지식을 통제하는 것만큼이나. 남한에서 미군기지의 문제를 다룬 사진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것도 한심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그 사진작가를 구속한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자유민주주의란 타인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다름을 극복하는 수단으로서 대화와 토론을 지향하는 이념인데, 타인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대뜸 구속부터 해버리다니 북한과 무엇이 다른가.
이시우 작가의 구속은 국가권력이 자의적인 잣대로 개인의 사상과 창작의 자유를 어디까지 침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남북을 잇는 철도길이 열리고 대통령 후보들의 방북이 이어지는 세상에,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법률의 잣대를 들이대 사진작가를 구속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참여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훌륭한 성과가 있었다”는 코미디 같은 자화자찬은 집어치우고, 남은 임기동안만이라도 국가보안법이 악용되는 사례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며, 사법부는 더 늦기 전에 이시우 작가를 석방하여야 할 것이다.
이유정 변호사
* 現 법무법인 자하연 변호사
이화여자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부설 법학연구소 조세법과정 수료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법여성학 전공)
* 경력
사법연수원 제33기 수료,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검사, 법무법인 자하연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한국성폭력상담소 자문위원, 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 여성단체연합 노동위원회위원, 지방세심의위원회위원, 공무원연금급여재심위원회위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 등
이시우작가 중단식명상으로 8.15까지 계속….. [1] 김은옥 2007/06/08 783
금일 오전에는 이시우작가 있는 서울구치소측 생활지도계
관게자분께 강화에서 직접 콩농사를 지어 된장을 만드신분
의 된장을 구해 전달하였습니다.
6/6 현충일 기점으로 48일간의 단식은 접었으나, 8/15까지는
중단식 형태로 쌀죽물 3잔과 된장물 3잔 정도를 기존의
효소와 함께 먹는것으로 이어가기로 하였습니다.
회복식은 기존 단식기간의 3배~6배까지 해야 한다는 단식
경험어르신들의 조언에 따라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할 듯
합니다. 단식경험이 있으시거나 단식후 보호식에 대한
좋은 의견들 그리고, 제가 참고해야 할 사항들이 있으면
글 올려주세요. 단식 보다 이후 회복식이 더 어렵다는 말은
들었으나, 저도 이런일은 처음이라 너무 난감하고 걱정입
니다. 많은 분들의 조언 기다립니다.
회복식2일째 (펌)개 풀 뜯어 먹는 소리^^ – 삐딱선 찰칵소리 [1] 김은옥 2007/06/08 804
사진가 이시우씨의 단식, 반드시 이겨야하는 싸움 | 이시우를 위한 항변 2007.05.28 20:33
해목아빠(badagipi) http://cafe.naver.com/ppittak/39
2007년 5월 10일… 사진가 이시우씨의 단식, 반드시 이겨야하는 싸움
(블로그에 올렸던 제 짧은 생각을 옮겨봅니다.)
분단과 평화를 화두로 잡고 사진작업을 해왔던 사진가 이시우씨가 국가보안법 제5조(반국가단체 자진 지원 등) 위반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것은 지난 4월 19일. 그날부터 지금까지 이시우씨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21일째 단식중이다.
이시우씨는 2003년 창비에서 출간된 그의 저서 <민통선 평화기행>(이 책은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책 100권으로 소개되었었다)에서 “분단이란 생활 속으로 들어온 전쟁”이라 했다.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한 한반도에선 누구나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분단’에 포카스를 맞췄고, ‘전쟁’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사색하며 지금까지 사진을 찍어왔다.
<민통선 평화기행>
오늘(9일) 열린 석방촉구 기자회견에서 구속수감되어 있는 이시우씨는 편지글을 통해 “예술가에게 아픈 곳은 숙명의 자리”라고 심정을 밝혔다.
“‘역사의 ‘결’, 평화와 통일의 ‘결’을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의 요구에 더 이상 국가보안법이 장애가 되어서는 안된다. 몸의 중심이 아픈 곳이듯 사회의 중심도 아픈 곳이며, 세계의 중심 또한 전쟁과 기아와 빈곤으로 인해 아픈 곳이며 사회의 모순과 세계의 모순이 집중되어 있는 시대의 중심에 서고자하는 예술가에게 아픈 곳은 숙명의 자리인지 모른다.”
정권 말기에 공안당국이 한 건 올리기식 수사를 했던 것은 흔히 있는 일이고, 그중에서 ‘힘 없는’ 예술인들을 구속 수사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운 일일 것이다.
아니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는 어려운 일이었을수 있겠다. 그의 죄목(?)을 소상히 밝힌 구속영장청구서가 무려 659쪽이나 된다니 말이다. 하여간 그가 민통선의 군사시설을 찍어 ‘반국가 단체 자진 지원’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한 마디로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다.
마이클 야마시타도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DMZ’를 소개한 적 있고, 항공촬영 사진으로 유명한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도 유엔사 캐빈 매튼 대령의 안내까지 받으며 비무장 지대와 민통선 지역을 사진에 담았다. 그들에게 국가보안법을 씌울 수 없다면 이시우씨에게도 죄가 없다. 오히려 그는 대중들이 분단의 현실을 잊지 않고 바로 볼 수 있도록 노력한 공이 크다.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분단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이 땅의 모순을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창작 의지는 공안당국의 칼날에 끊임없이 칼부림 당해야 할 것이다. 이시우씨는 지금이라도 석방되어야 하며, 그의 단식은 당장 국가보안법을 무너뜨릴 수 없더라도 평화와 통일의 ‘결’을 만들어 가기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이다.
“사람은 누구나 정당한 법률에 복종해야할 합법적인 책임 뿐만 아니라 도의적인 책임도 있다. 반대로 사람은 누구나 부당한 법률에 불복한 도의적인 책임도 있다. 인간의 인격을 향상시키는 법은 어느 것이나 정당한 법이다. 이와 반대로 인격을 타락시키는 법은 모두 부당한 법이다.” – 마틴 루터킹
해목아빠(badagipi)
즐겁고, 착하게 살자.
김은옥 [2007/06/08] :: `개 풀 뜯어먹는 소리`에 한표(ㅋㅋ)
철창을 앞에 둔 이시우 작가와의 7분의 만남 [4] 나눔지영 2007/06/08 745
국가보안법은 다 죽은 법인 줄 알고만 있었는데, 아직도 산 사람을 잡고 있습니다.
이시우 평화사진작가는 지난 4월 19일 “주한미군의 화학무기 배치현황 등 미군 무기와 군사기지 정보를 유출했다”며 국가보안법 및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유출한 정보’들은 허가를 받아 촬영한 사진이거나 군사관련 인터넷 사이트 및 해외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수준의 것들로 알려졌습니다.
나눔문화는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지난 6일로 48일간의 단식을 끝낸 이시우 평화작가를 만났습니다. “국가보안법을 안고 함께 죽기로 각오했다”며 시작한 오랜 단식으로 인해 이시우 작가는 목소리가 작고 기력이 약해보였으나, 얼굴만은 평온하고 표정은 깊었습니다. 주어진 시간은 단 7분, 하고싶은 얘기는 많았지만 눈빛만으로 그 속을 모두 나눌 수밖에 없었습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다들 많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시라고 전해주세요.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많은 분들에게 너무 심려를 끼쳐 드리는 것 같아 어렵게 결정하여 단식도 중단했습니다. 단식을 할 때는 앉기도 힘들어 휠체어 신세를 지고 도중에 몇 번의 위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미음을 먹으며 회복하고 있습니다.
단식을 중단한 날, 현충일이라서 오전 10시에 사이렌이 울리더군요. 불교에서 자신이 쌓은 선근공덕(善根功德)을 세속에 돌려 널리 퍼지기를 기도하는 것을 ‘회향(廻向)’이라 표현하는데,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며 가진 오랜 단식기간을 마무리 하며 그 심정으로 108배를 올렸습니다. 남은 힘을 다 써서 절을 했고, 곧 쓰러져 이틀 동안 누워 있었습니다. 기진맥진한 채로 첫 미음을 먹었는데, 그제서야 기운이 들었습니다. 요즘 제가 어쩔 수 없이 ‘소박한 밥상’을 받고 있는 것이네요. (웃음) 건강해지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회복해야죠.
-나눔문화는 최근 내전위기에 빠진 레바논을 위한 평화활동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박시인은 몇 달간 칩거하여 집필을 마치고, 다음 주 팜플렛 레바논 편이 출간됩니다. 책 마무리 때문에 직접 오지는 못했지만, 건강염려와 안부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박선생님이 전해주는 소식 하나 하나가 정말 소중합니다. 우리 사회의 평화감성지수를 높이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항상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는데, 박선생님 책이나 한권 보내주세요. (웃음)
저보다 밖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더 힘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걱정해주시는 만큼 고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제 석방을 위해 많은 분들이 매일 촛불집회를 하셨다고 하지요. 뒤늦게서야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고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언론뿐만 아니라 일반 젊은이들은 이번 사태와 국가보안법에 무관심합니다. 이제 국가보안법을 논할 때는 선생님을 거론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한 마디 남겨주시면 잘 전달하겠습니다.
국가보안법은 한국의 역사가 낳을 수밖에 없는 결과였습니다. 이제는 모르는 것을 알게 하고 역사를 바로잡아야 하는데, 이렇게 잡혀있어 많은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이제 면회시간이 3분밖에 남지 않았군요. (웃음) 많은 말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해야될 일이 많은데, 그 젊은이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2007년 6월의 구치소는 삼엄하지 않았고, 흡사 동사무소같은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조그만 구멍도 없이 스피커를 연결해 마이크로만 대화를 나누는 면회장면과 대화를 모두 받아 적고 있는 서기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습니다. 평소엔 죽은 줄만 알고 있던 국가보안법이 갑자기 살아나 산 사람을 잡아갔듯, 구치소에서도 언제 ‘결정적’인 장면이 연출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살금살금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는 잘못된 역사의 유산에 대한 긴장감을 잃지 말고, 반드시 바꿔내자고 하는 것이 이시우 선생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요.
“자유의 반대가 구속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유의 반대는 관성이었다. 저항하고 꿈꿀 자유까지 막는 것은, 놀랍게도 구속이 아니라 관성이었다. 관성은 자유와 구속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버리고, 살아 있음의 확인조차 막아버린다.” -이시우, <민통선 평화기행>
서정순(알 [2007/06/11] :: 감사한 마음으로 제 블로그에 담아갑니다. 이시우 작가님 관련 집회에 참석하고 싶은데 꼭 좀 연락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4you21@hanmail.net)
카파 [2007/06/10] :: 이시우님과 금강산 기행을 같이 갔었던 사람입니다. http://kasyapa.egloos.com/1253075 에 글 올렸습니다. 힘 많이 못 되어드려 죄송합니다…
대책위 [2007/06/08] :: 네 그렇게 하시지요^^
신우 [2007/06/08] :: 이 기사가 올라가 있는 www.nanum.com의 웹마스터 입니다. 이 기사에 이시우 선생님의 작품사진을 같이 올리고 싶습니다. 괜찮을까요?
사죄와 우호, 평화를 위하여 – 스톤워크코리아 탄원서 대책위 2007/06/09 788
이시우님 석방탄원서
이 탄원서는 우리 스톤워크코리아 2007의 참가자가 이시우님의 부당한 체포, 구속에 대해서 깊이 우려함과 동시에 즉각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 작성한 것입니다.
우리 스톤워크코리아 2007은 모든 전쟁희생자의 명복을 기원하고, 과거에 일본이 저지른 침략전쟁, 한반 식민지 지배에 의해 말로 다할 수 없는 비참한 희생, 고통을 강요당한 사람들에게 사죄하기 위해 평화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1톤의 무거운 비석에는 ‘Unknown Cvilians Killed in War’, 그리고 ‘사죄.우호.평화를 위하여’라고 한일 양국의 말로 쓰여 있습니다. 우리는 일본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과거 침략전쟁을 반성하고 양국 시민의 이해, 교류를 통해 한일의 평화, 아시아의 평화, 세계의 평화 한걸음이 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이시우님은 비인도적인 대인지뢰의 조사, 폐기 그리고 화학무기의 조사 등을 발표해 세계평화를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는 분입닏. 핵무기.지뢰.화학무기는 군인.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많은 사람을 살상합니다. 우리는 전쟁으로 비인간적인 무기에 의한 인간의 살상을 멈추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시우님의 활동은 우리를 위해서도, 이 나라 사람들을 위해서도, 또한 전세계 사람들을 위해서도 중요한 활동이라 생각합니다. 모두 평화의 중요함 존엄함을 이해하고 하루라도 빨리 이시우님을 석방하시기를 탄원드립니다.
2007년 6월 4일
스톤워크 코리아 2007 한일실행위원회 참가자 일동
홈페이지 ; cafe.daum.net/stonewalk
안영진리포터님 보세요 [2] 오철근 2007/06/10 689
안영진 리포터님,
먼저 배려와 깊은 관심을 보여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시우님에 대한 저의 생각을 비교적 좁은 지면에 상세히 게재 해 주셨습니다만 제가 아무런 준비 없이 路上에서 갑작스런 질문에 응하다보니 제대로 표현을 못하였고 안영진님 또한 불편한 자세에서 옮기시다보니 더러 빠지거나 와전된 부분이 있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함석헌의 시 제목은 ‘그 사람을 가졌는가’ 이며 그중의 제가 말한 한 구절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죽여도 너희 세상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입니다. 이 시구를 말씀드리고자 한 뜻은 이시우님이야 말로 이시대의 세상 빛이므로 그만은 우주인생의 아픔을 마음껏 울 수 있도록, 마음껏 자유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자유의혼으로 우리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시우님이 강화도에서 서울로 출퇴근 하며 불과 4~5명에게, 그것도 삼복더위에 유엔사문제 공부를 지도하면서 회비라야 불과 3만원이었으니 차비도 안 될뿐더러 참고자료가 500여 페이지나 되는 것을 자비를 들여 복사하여 나누어 주었고 종종 막차를 놓쳐 강화대교에서 그의 거처인 작업실까지 약20km의 거리를 밤이슬을 맞으며 4~5시간이나 걸어서 새벽녘에야 작업실에 도착하는 일이 다반사였던바 제가 때로는 무덥고 피곤하여 공부에 빠지고 싶었으나 이와 같은 그의 지극정성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셋째 화씨의 옥구슬(和氏之璧화씨지벽)이야기에서 문왕이 등극하자 초산 밑에 가서 박옥(다듬지 않은 거친 옥돌)을 안고 울었다는 그 옥은 새로 얻은 것이 아니며 처음에 얻은 바로 그 옥이였습니다. 즉 화씨는 그것이 돌이 아니고 옥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3일3야를 울다 못해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도록 운 것은 “두 다리가 잘린 것이 서러워서가 아니라 옥을 돌이라 하고 곧은 사내를 거짓말 장이라 하는 것이 서러워서 운다”는 것이었으며 그 이야기를 좀더 해보면 문왕이 옥 다루는 사람에게 감정해본 결과 옥중에도 천하제일의 옥중의 옥이였다는 것이며 후일 중원을 통일한 진시황이 그 화씨의 옥구슬을 취하여 옥새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글귀를 새겨 넣기를 ‘受命於天 基數永昌수명어천 기수영창’ 즉 “하늘로부터 명을 받아 나라를 세웠으니 진나라가 영원히 번창 하리 로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시는 바와 같이 진시황이 방탕하여 주지육림에 빠졌으며 게다가 잔인하고 포악한 정치로 인하여 극도로 민심을 잃었으니 백성들의 원망과 분노는 극에 달하였던바 대적이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시황 자신의 폭정에 있었으니 만리장성을 쌓는 다고 나라가 온전할 수는 없는 터라 채 2대도 못 채우고 진나라는 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소위 대다수가 진보세력이라는 참여정부가 백주대낮의 낮도깨비와도 같은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가보안이라는 미명아래 군사정권에서나 있었던 구태의연한 작태를 답습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며 참으로 이 나라의 국민인 것이 부끄럽습니다. 제가 세상에 나와 가장 부끄럽고 슬펐던 일은 5.18광주사태 때 군인들이 시민들에게 잔인무도하게 총칼을 휘둘렀던 때이며 국가보안법의 망령이 되살아나 이시우님이 구속된 작금의 현실입니다.
넷째 이시우님이 단식을 시작한 뜻을 그의 옥중서신에서 깊게 밝혔던바 그의 옥중서신을 참조하시기를 부탁드렸는데 그 깊은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무척 아쉽습니다. 부족하나마 이상으로 저의 생각을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실은 이시우님의 구속사실과 유엔사문제와 그의 역작 ‘민통선 평화기행’의 중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제가 아는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내가 본 이시우’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만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아 필력의 둔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위대한시와 글이란 다름 아닌 우주 인생의 아픔에 대한 깊은 sympathy요 울음일진대 이시우님이 그의 작품을 통해 백두산 천지가 떠내려가도록, 한라산 백록담이 물에 잠기도록 그렇게 잘 울고 또 지금도 옥중에서 화씨의 옥구슬 보다 더한, 분단의 시대적 아픔의 끌로 다듬고 오직 나라사랑의 숫돌에 갈아낸 그 옥중의옥을 가슴에 끌어안고 무언의 울음을 울고 있건만, 육구연(중국 남송시대)은 그의 詩, 「大人」에서
連山以爲琴 長下爲之絃(연산이위금 장하위지현/산들을 연결하여 거문고를 만들고 양자강, 황하강으로 는 거문고 줄을 만들어서)
萬古不傳音 吾當爲君宣(만고부전음 오당위군선/만고에 전해진바 없는 진리를 내 마땅히 참을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펼치리라)
라고 읊었는데 저도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산들을 연결하여 거문고를 만들고 압록강, 대동강, 한강, 금강, 낙동강을 연결하여 거문고 줄을 만들어 분단50여년의 이 우주적인 아픔을, 그리고 자유와 민주를 위해 영원히 실현될 길 없는 이상의 맑은 불꽃을 안고 새파란 날개 째 부나비 되어 그 안에 뛰어들어 타죽고야 만, 즐거움, 아름다음, 행복, 영광을 다 모르고 그저 타, 타, 타, 영원한 불길로 타 오르고야만 그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며 울어보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배려해 주심을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건강과 평안하심을 빕니다.
퀘이커 서울모임 오 철 근 드림.
안영진 [2007/06/12] :: 네 감사합니다 오철근님의 따스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근데 내일신문에 실리는건 불가능할것 같습니다 저두 관두었구요바라는 것이 간절하면 잘되겠지요 건강하십시요
오철근 [2007/06/10] :: 내일신문 안영진리포터님 보세요
펌)<이시우의 한강하구 연재 10> – 통일뉴스 대책위 2007/06/10 995
한강하구 숲의 역사(9)
<이시우의 한강하구 연재 10>
2007년 06월 08일 (금) 17:17:34 이시우 www.siwoo.pe.kr
이시우 (사진가, www.siwoo.pe.kr)
평화활동가이자 사진작가인 이시우 씨가 지난해인 2006년 6월1일부터 ‘한강하구’에 대해 천착하기 시작해 그간 비정기적으로 다음과 같은 순서로 연재를 해 왔다.
1. 한강하구의 근본문제-관할권
2. 정전협정의 한강하구 규정에 대한 해석
3. 한강하구에서의 민용선박 항행에 관한 규칙 및 관계사항에 대한 해석
(1953. 10. 3. 군정위 제22차 회의 비준)
4. 한강하구의 비행과 ‘100톤급 바지선’
5. 한강하구 항행의 역사-시선배와 수인선
6. 한강하구 군사사① – 대몽전쟁시기
7. 한강하구 군사사② – 병인,신미양요
8. 한강하구 군사사③-한국전쟁기
9. 한강하구의 갯벌과 간척
그리고 이번에 마지막으로 <10. 한강하구 숲의 역사>를 연재한다. 원래 연재 계획에는 <11. 한강하구와 전쟁의 생활사-양민학살>, <12. 한강하구의 유라시아 지정학> 등 두 꼭지가 남아 있지만 작가는 이를 ‘차후의 과제’로 남겨두기로 했다. 장기간에 걸쳐 많은 분량의 원고를 쓴 저자께 격려와 함께 감사를 드리면서,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기대한다.
이번 <10. 한강하구 숲의 역사>도 다음과 같은 순서로 10차례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주
(1)들어가며/고대 한강하구의 숲/신석기시대 한강하구의 숲
(2)고조선(청동기)시대 한강하구의 숲/점토대토기문화/고조선의 의식주와 숲
(3)고조선(철기시대) 한강하구의 숲
(4)백제시대 한강하구의 숲/고구려시대의 숲/신라
(5)고려시대 한강하구의 숲
(6)조선시대 한강하구의 숲 /석회/화약/광업
(7)병선/땔나무/식목/금벌
(8)일제기 한강하구의 숲
(9)한국전쟁 이후 한강하구의 숲
(10)한강하구 숲의 미래/녹색댐/숲의 공적소유화/한강하구 통일의 숲 가꾸기/유엔사와 한강하구 숲
이시우 사진작가는 지난 4월19일 국가보안법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거되어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입니다. 이 원고 ‘한강하구 숲의 역사(9)’는 연재물 <10. 한강하구 숲의 역사>중 9회차로서 이미 이 작가가 작성해 놓은 것입니다. 앞으로 한 회가 더 남아 있음을 알립니다. / 편집자 주
반공교육을 넘어 평화통일교육으로 가는 길목에서 [1] 배성호 2007/06/11 678
안녕하세요.
저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더불어 성장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선생님 소식을 듣고 마음이 참 아파서 어찌 할까 하다가 겨우 여러 모임에 선생님 소식을 나누며 마음만 졸이고 있습니다.
첨부한 글은 고대 대학원 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2007년 5월 30일 제141호)
이시우 선생님의 구속을 통해 ‘국가보안법’이 아득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눈 앞의 문제로 다가오는 순간, 초등학교에서의 반공교육과 통일교육에 대한 글을 청탁받아 용기를 내서 국가보안법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풀어보았습니다.
이시우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한강 하구를 평화롭게 거닐며 희망을 키워가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길 바라며 글 남깁니다.
아이들과 7월 27일에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할 수 있길 바라며!
김은옥 [2007/06/11] :: 언젠가 한번 통화했던 기억이 나는 선생님이시군요. 선생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반공교육을 넘어 평화통일교육으로 가는 길목에서
배 성 호 (서울당산초등학교)
작년 가을, 반 아이들 몇 명과 북한 개성공단에 가서 평화 나무를 심고 돌아왔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으로 남북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가 조성되었기에 가능했었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이런 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구속 되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하물며 평화통일교육이라는 용어는 학교에서 사용할 수조차 없었다. 반공이 오랫동안 국시로 자리매김했던 우리 사회에서 그 같은 일은 곧 엄청난 처벌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학교는 오랫동안 자라나는 세대에게 반공교육을 주입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실제 6.25전쟁이 끝나고 학교에서는 도덕 교과를 활용해서 반공교육을 실시했다. 반공교육은 수업뿐만 아니라 운동회에서도 행해졌다. 전쟁을 상기시키는 ‘휘날리는 태극기’나 ‘돌격’ 같은 게임을 실시한 것이다. 특히, 6월은 ‘반공의 달’이었으므로 학교에서는 반공 글짓기, 반공 포스터그리기 대회 등을 실시했다. 이는 오랜 기간 동안 펼쳐진 연례행사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6월이면 으레 그런 행사를 했었다는 것을 알 정도로 각인되어 있다.
반공교육은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하면서부터 한층 더 강화가 되었다. 실제 1968년 12월 국민교육헌장 선포 직후, 1969년 9월에는 문교부(현 교육부)령에 따라 반공교육을 주당 2시간으로 확대하였다. 반공교육은 1954년(제1차 교육과정)에서 1987년(제4차 교육과정)까지 도덕과 교육과정에 주요 영역으로 포함되어 실시되었다. 반공교육은 겨우 제5차 교육과정(1987~1992년)에서야 통일․안보 교육으로 전환을 맞는다. 그리고 현행 제7차 교육과정(1997년~)에서는 ‘평화통일’의 내용이 도덕과 교육의 내용으로 선정되어 학교에서 펼쳐지고 있다.
학교에서 반공교육을 펼쳤던 것은 학교 본연의 역할과 거리가 멀었다. 반공교육은 적과 나를 구별하는 증오의 교육을 통해 선과 악을 극단적으로 대치시키는 이분법적 사유를 아이들에게 강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공과 결합된 애국심은 아이들에게 힘을 길러 전쟁까지도 불사하며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전할 수 있었다. 오히려 학교에서는 전쟁과 분단 그리고 대립 속에서 우리에게 깊이 남겨진 대결의식, 적대의식을 올바르게 치유하는 교육활동을 했어야 했다.
현재 아이들은 다행히 어른들과는 다른 눈높이로 남북통일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 극단적인 반공교육을 받지 않고 달라진 사회 문화적 환경에서 남북문제를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생각은 훨씬 자유로운 반면, 교사들은 여전히 냉전적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과거 반공교육의 유산 때문만이 아니다. 교육 현장에서 평화통일교육을 열어가기 위해서는 아직도 교사들이 넘어야 할 벽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이라는 괴물이다. 실제로 최우수 통일부 장관상까지 수상한 현직 교사가 최근에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구실로 구속된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다. 남북교류가 활성화된 지금 여전히 냉전적 시각에서 교사의 활동을 옥죄이고 있는 것이 오늘날 상황이다.
단일한 하나의 견해만 옳고 그 외의 다른 주장을 배척하고 수용할 수없는 사고로는 평화를 제대로 꽃피우기 어렵다. 과거 극단적인 반공교육을 통해 반목을 키워온 잘못을 반성하면서 새 시대를 열어갈 아이들에게는 평화를 더불어 열어갈 수 있는 길을 너르게 마련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맡은 역할이 아닐까. 그 길이 바로 평화통일을 열어가는 첫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시우 작가 개인사진전 개최 – 평화박물관 space*peace 평화박물관 2007/06/13 761
<이시우 작가 사진전시회>를 개최합니다. >
장소 : 평화박물관 평화공간 space*peace (인사동 전북한지 옆 작은골목)
주최 : 이시우 작가 석방대책위 /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
일시 : 2007년 6월 27일(수) – 7월 10일(화) 총 14일간
- 전시 오픈닝 행사 및 경과보고 – 6월 27일 오후 4시
행사 기간중 이시우작가 서명이 들어있는 책(민통선 평화기행-수필집, 비무장지대의 사색-사진시집, 끝나지 않은 전쟁 ‘대인지뢰’-지뢰피해자 증언록)과 사진엽서등을 판매할 예정이며 판매수익금은 전액 석방대책위 기금으로 쓰여질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문의 :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 사무장 이수효
(02-735-5811~2 )
이시우 작가의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 슬라이드쇼 보기
13일 저녁7시 국보법 폐기와 이시우 석방을 위한 대전충남 기도회 [4] 대전충남목 2007/06/11 813
대전충남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는 대전NCC와 감리교목회자회, 침례신학대학 민주동문회 등이 참여하는 <국가보안법 폐기와 이시우 석방을 위한 기도회>를 대전빈들감리교회(042-256-5276)에서 13일 오후7시30분에 개최합니다.
6월항쟁20주년을 맞아 순도높은 민주주의와 이시우 님의 석방을 위해서 멀리 대전충남에서 기도합니다.
김은옥 [2007/06/14] :: 김영숙선생님 감사합니다. 혹시 그날 사진담당하셨던 관계자님께 관련사진좀 홈피에 올려주십사 부탁드립니다. 감동의 기도들 속에서 생면부지의 이시우작가를 위해 기도회를 열어주셔서 다시한번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대전을 내려갈때만 해도 전 ㅇ시우작가를 아시는분들인줄 알았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영숙 [2007/06/14] :: 바쁘신데도 참석하셔서 참 반가왔습니다. 늘 기도하겠습니다. 힘 내세요!
김은옥 [2007/06/13] ::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은옥 [2007/06/11] :: 감사합니다. 14일 오전에 도라산역에서 행사가 있어 기도회에 참석하지 못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