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44일까지의 기록

삐딱선 찰칵소리…. [2] n…. 2007/05/31 661
사진가 이시우 석방을 촉구하는 사진쟁이들의 커뮤니티를 개설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만,
이시우의 문제를 이시우의 문제만으로 팽개치지 말고,
사진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사진쟁이 모두의 문제로
끌어안자는 소박한 생각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시우 님의 글과 사진, 뉴스, 그를 위한 항변, 사진가 서명 등을 정리해 두었으니, 누구라도 오셔서 글과 사진을 퍼가셔도 좋고, 좋은 말씀을 나누어 주셔도 좋습니다.

이 커뮤니티는….
이시우와 우리 모두의 ‘생각의 숨통’을 위해 지리멸렬하게 저어가는 작은 조각배입니다. 이름은 삐딱선, 선장은 우리모두, 선원도 우리모두, 빼앗긴 우리 선원을 되찾기 위해…. 작고 나직하게 중얼거려 봅니다.

돌.아.오.라!! 이.시.우!!

커뮤니티 주소는 http://cafe.naver.com/ppittak 입니다.
하루 빨리 이 커뮤니티가 폐쇄되길 기대합니다.

고려산 [2007/05/31] :: 느슨님, 감사합니다!

김은옥 [2007/05/31] :: 노순택작가님^^ ㄳ 수고 많으세요. 이작가 나오면 강화에서 인삼막걸리한잔 대접할께요.

5월31일 면회갔다와서 김애영 2007/05/31 555
뿌연 유리창너머 이시우님의 얼굴은
비온후의 5월의 하늘과 같았습니다.
어쩌자고 그리 해맑은지…
괜찮다는 말이 쉽게 믿어지기도 했습니다.
암튼 단식을 접겠다고 한 후라서
면회를 가는 우리들도 조금은 무거운 짐을 던 듯한 느낌이었구요.
이것저것 책과 자료를 챙겨달라고 하는 걸 보면서
몸도 잘 보존하고 있을거라고 믿고 싶어졌습니다.
부디 긴호흡으로 함께 가주시길 바랄 뿐..

국가보안법 폐지하고, 이시우를 석방하라!!! 반쪽이 2007/06/01 530
오늘로 단식이 44일째가 되시는군요.
마음만으로, 머리만으로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해서 그랬을까요?
언젠가 들었던 단식 소식도 금새 잊어버렸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마음과 머리만으로 고민하지 않고, 몸으로 할 수 있는 실천을 찾아보겠습니다.

국가보안법 폐지하고, 이시우를 석방하라!!!

백기완선생님과 특별면회를 다녀와서……… 김은옥 2007/06/03 643
금일 1인시위릴레이를 하고 있는 법원.검찰청앞에서 오늘 1인시위를 하는 ‘대학생대책위’측 학생분들을 만나 감사표시를 하고 30분정도 mbc촬영을 하고 , 서울구치소에서 특별면회가 있어, 구치소를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제가 먼저 구치소에 도착하였고, 잠시 후 ‘이시우석방대책위’를 맞고 계시는 고정호간사가 도착 이런저런대화를 나누던중 백기완선생님을 수행하는 비서분차가 구치소에 도착하였습니다.

특별면회라 차량을 가지고 구치소 안에까지 들어갈 수 있었으나, 백선생님이 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고 싶다고 하셔서 함께 걸으며 좋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15-6년전 여러집회에서 시위현장에서 그리고 각종 문화행사나 노조행사때 뵙고, 어언 10여년이 지난 지금 선생님을 뵈었는데, 사실 세월에 비해 선생님은 그리 많이 변하지 않으시고 저만 아줌마가 되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당뇨로 많이 수척해 보이시기는 하였으나, 그 곧은 모습과 당당한 어투는 선생님의 숫자상 연세(75를 무색케 하였습니다.

이작가의 소식을 조금 늦게 들었었고, 더구나 단식을 하고 있다는 소식은 최근에 알게되어 너무 늦게 찾아온것을 미안해 하셧습니다.

이작가를 접견하시면서 ‘지금 이작가는 하고싶은 일과 꼭 해야하할 일을 함께 해내고 있다고 하시며 격려를 해 주셨고, ‘지금은 목숨보다는, 의지를 다지며, 옥방안에서 글과 시를 쓰는일을 게을리 하지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에 이작가는 ‘구속되기 며칠전 서울 대학로를 지나다가 ‘통일문제연구소’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때 백선생님이 연구소 입구에 써 놓으신 시(한 발자국만 더, 한 발자국만 더 밀어내 보다가 죽어도 죽자….)를 보고 너무 감동받아 한번 찾아뵙고 싶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스쳐지나쳤다’고 하였습니다.

백선생님은 ‘이작가가 6/6쯤 단식을 마무리 하겠다는 뜻에는 무어라 할말이 없으나, 옆에 앉아 있던 구치소 관계자에게 ‘당장 이 젊은이를 좀 내 줄 수는 없겠소’라고 하셔 안타까운 심정을 비추셨습니다. 백기완선생님은 자신의 과거 고문당했던 시절을 잠깐 이야기하시며, 접견을 길게하는것 조차 이작가에게 폐가 될 것 같다며, 이 작가의 사건을 예사로 넘겨서는 안될 것 이라고 하셨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저는 선생님께 탄원서를 부탁드렸고, 조만간 통일문제연구소로 다시 찾아 뵐 것을 약속하고 접견을 마쳤습니다.

[펌] 이시우 석방을 위한 프레시안 기고릴레이 ④ 조재현 고려산 2007/06/01 636

“누가 너를 살리려느냐”
[국가보안법, 나 잡아봐라! ④] 어느 유치장 이야기

서울에 있는 ㅅ경찰서 유치장. 주말이라 유치장으로 경찰서 주변에 있는 교회 사람들이 와서 찬송가를 부르고 빵과 우유같은 것을 나누어 주고 있다. 유치 장 한 곳에서 가만히 책을 들여다 보고 있는 나에게로 A가 다가와 묻는다.

A: 무슨 죄목으로 들어왔어요?
나: 국가보안법요.
A: (놀라는 듯) 요즘도 국가보안법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어요?
나: (시큰둥하게) 그러게요….
A: 아니 문민정부에는 민주주의의 장애 요소라고 국가보안법 없앤다고 하더니…? 뭐 하시던 분이세요?
나: 저요. 공연연출가요. 공연이 올라가지도 않은 작품을,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작품을 가지고 이적표현물이라는군요. 참.
A: (어이가 없다는 투로) 아니 그럼 선생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 이적표현물이 된 건가요? …(화가 나는 것 같다) 뭐 이런 일이…. (위로조로 바뀌면서) 공안검사들 자기 밥줄 끊길까봐 실적 올리려고 그러는 걸 겁니다. 곧 나 가시겠네요. (힘을 주는 듯한 어조로) 이나라는 종교와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입니다. 건강하세요.
나: …

A는 같이 온 사람들과 함께 또 찬송가를 더 크게 부르더니 나에게 손을 흔들고 나간다.

13년전 내가 겪었던 실화다. 그런데 그때 ‘곧 나갈 거라는’ 공안검사의 실적올리기는 계속됐다. 그해만도 수백 명이 국가보안법으로 곤욕을 치렀고 이놈의 나라는 전쟁을 하니마니 하면서 온통 공포분위기가 조성됐다. 물론 나는 1년여의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를 감옥에 몰아넣었던, 민주주의의 화신을 자처했던 문민정부는 결국 IMF를 국민들에게 선사했다.

도대체 누가? 그들의 목적은 뭘까?

▲ 국가보안법 혐의가 적용된 이시우 작가의 비무장지대 사진 중 하나. ⓒ 이시우 홈페이지(www.siwoo.pe.kr)

이시우 씨 구속을 보면서 13년 전의 악몽 같은 현실 이 되풀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이 미친 국가보안법이 되살아난다면, 그래서 다시 이 나라의 자주와 통일을 그리고 진보를 외치는 자들이 빨갱이 가 되고 또다시 전쟁의 공포에 휘말리는 것 아닌가? 또 IMF 몇 십 개가 터지는 것과 진배없다는 FTA까지 겹쳐서 온 국민이 고통 속에 살아가는 악몽이 되풀이 되지 말라 는 법이 없지 않은가?

도대체 누가 죽어가는 이 미친 국가보안법을 기를 쓰고 살리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들이 얻으려고 하는 것 은 무엇인가? 공안검사들이 자기 밥벌이를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인가? 그럼 그동안은 왜 조용히 있었나? 그동안은 설쳐봐야 별 이득 될 것이 없어 조용하다 이 제 살길이 보여서인가? 아주 서글픈 상상이기는 하지만, 이런 상상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서울에 있는 ㅅ경찰서 유치장. 주말이라 유치장에 경찰서 주변에 있는 교회 사람들이 와서 찬송가를 부르고 빵과 우유같은 것을 나누어 주고 있다. 유치장 한 곳에 가만히 명상을 하고 있는 나에게로 A가 다가 와 묻는다.

A: 참 이런 데 계실 분이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죄목으로 들어왔어요?
나: 저. 국가보안법입니다.
A: (놀라는 듯) 요즘도 국가보안법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어요?
나: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그러게요…
A: 아니 참여정부에는 민주주의의 장애라고 국가보안법을 없앤다고 하더니…? 뭐하시던 분이세요?
나: 저요. 공연연출가입니다. 제가 창작해서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노래를 가지고 이적표현물이라는 군요. 참. (노래를 들려준다)
A: (어이가 없다는 투로) 아니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나: 이북의 당간부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랍니다.
A: (화가 난 것 같 다) 뭐 이런 일이…. 억울하시겠습니다
나: (오히려 위로하듯) 공안검사들 자기 밥줄 끊길까봐 실적 올리려고 그러는 걸 겁 니다.
A: (호기심에 찬 듯) 공안검사가요? 요즘 공안검사가 인기가 있나요? 공안검사가 출세하는 건 옛날이야기 죠.
나: 그럼 곧 출세길이 열리나 보죠.
A: (뭔가 생각하는 듯) 아. 곧 대선에 서 정권이 바뀔 것 같으니까… 미리 알아서 긴다….

나: 그래도 6·15공동선언이라는 것이 있는데 쉽게 바 뀌겠습니까. 얼마전 경의선도 개통되고 그랬는데….
A: (말을 끊으며 답답하다는 듯) 아. 그거 뒤집기는 예사 아니겠어요. 역대 정권이 언제 통일 안 하겠다고 한 적 있었습니까? 그러면서도 계속 국가보안법을 자기들 정권유지를 위해 써 왔지 않습니까? (이제는 나에게 딱 붙어 앉았다. 재미 있나보다)

나: 상당히 진보적인 사고를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게 6·15공동선언은 조금 다르다는 건 데…. 예를 들면 우리나라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이 이북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북은 이미 40년 전에 영토를 이북으로 한정하고 있는데 반해 남쪽은 수복해야 할 영토로 보고 있으니 이북이 계속 ‘반국가단체’가 되는 겁니다. 이건 유엔(UN)에서도 인정되지 않는 사안입니다. 그런데 6·15공동선언이 적의 개념을 우리 민족으로 조 정할 수 있게 했죠. 사실 6·15선언 이후로 연북하고 연남하는 일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그동안 국가보안법이 안 먹힌 겁니다.
A: 연출가라고 하시더니 아시는 것이 많군요. 그럼 국가보안법이 왜 아직 살아 있는 겁니까?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나: 이유가 있겠지요. 그건 분단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겠죠. 민족의 분열을 원하는 세력이란 반공법을 만든 무리들, 얼마전까 지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고 말했던 무리들 말입니다. 민족과 나라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이 우선인 이들이죠. 그리고 그런 무리들이 있어야 이 나라에서 전쟁무기를 팔아먹으면서 계속 이 나라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미국이 있을 수 있지요.
A: (좀 물러나며) 흠,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한 데…. 미국으로 비약하는 것은 조금….
나: 반미 이야기가 걸리시나요. 하긴 이런 반미 이야기가 예전에는 국가보안법의 아주 가장 좋은 먹이감이었지요 . 하지만 말입니다. 세계 어디에도 미군이 있는 곳에는 평화가 아니라 분쟁과 전쟁이 있고 미군이 있는 곳에는 국가보안법 같은 법들이 그들을 지켜주면서 사람들의 평 화를 짓부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것이 분단된 이 나라의 진실이기도 합니다. 그 진실을 예술가 열정을 담아 대중에게 드러내게 하는 것이 저희들의 몫이고요. 지금 구속되어 있는 이시우 사진작가도 평화를 위하여 남쪽 미군의 진실을 카메라에 담았을 뿐입니다. 저 또한…
A: (깊게 쳐다 보며) 힘내세요. 건강하세요.
나: (미소 지으며 목례한다)

A는 같이 온 사람들과 함께 나 가면서 나에게 힘차게 손을 흔든다.

*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지난 19일 구속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수 감돼 잇는 사진가 이시우 씨는 1일 현재 43일째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며 옥중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는 이날 서울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살아남은 국가보안법, 아직 서초동에 있다’는 제목으로 이시우 작가의 석방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를 연다.

프레시안 / 조재현 노래극단 희망새 대표

이시우님의 석방을 기원합니다. 황가혜 2007/06/02 514

저는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예전에 민통선 평화기행을 통해
이시우 님을 두 차례 뵌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면서 민통선을 돌아봤고, 많은 것을 배웠었습니다. 선생님의 이야기와 사진을 통해 평화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에서야 이시우 선생님의 근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끄럽고 화도 납니다.
너무 오랜 시간동안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과,
매일 접하는 뉴스, 인터넷을 통해서 이 소식을 전혀 알지 못한 것이 화가 납니다.
저 뿐만 아니라 아직 이 사건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답답합니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시우 선생님이 건강하게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다행히 5일에 단식투쟁을 끝낸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냥 작은 힘을 드리고 싶어 글을 남깁니다.

다시 평화를 이야기하는 사진을 만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