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 2007/03/31 754
춘래불사춘
봄은 왔건만 봄 같지 않다는… 그래서 춘향가의 한대목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산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꽃이 피면 봄이 온 것인데도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겨울의 시련이 사무쳐 쉬 봄이 믿어지지 않고, 겨울 같은 봄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선인들은 ‘분명코’ 봄이 온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 ‘분명코’를 아랫배의 떨림으로부터 부르라던 소리선생의 가르침이 기억납니다. 마음이 넉넉하면 겨울도 봄같고 마음이 결핍되면 봄도 겨울 같은 것이니 원래 세상은 그런 것이려니하며 담담하게 위안해 봐야겠습니다.
오랜만에 또 한편의 원고가 완성되어 컴퓨터 앞에 앉게 되었습니다.
은옥씨와 우성이의 고생스러움이 항상 걱정입니다. 춘궁처럼 집을 맴돌 냉기가 봄기운을 무색케 할 것이 염려됩니다. 연리 작업실에 있는 사진들을 인연 닿는 대로 팔아서라도 돈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나 급한대로 그렇게라도 하시기 바랍니다.
방을 감옥처럼 살다보니 가끔 우성이가 어렸을 때 한말이 생각납니다. 힘들다고 처지면 더 힘이 없어지는데 막 달리면 오히려 힘이 난다는 말. 더 힘든 도전이 오히려 작은 위기를 극복하게 한다는 교훈이 그말엔 있었습니다. 그말이 지워지지 않고 생각나는 것을 보니 우성이에게 내가 크게 배운 것인 듯합니다. 우리의 생활이야 어딜 봐도 내놓을게 없었습니다만 이런 처지가 되고 보니 더 낮은 자리가, 더 아픈 풍경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옵니다.
어느 밤인가에 비오는 논길 걸어가는 이를 보거든 그가 혹시 내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눈보라 몰아치는 바닷가에서 옷깃 여밀 틈도 없이 속수무책 바람맞는 이를 보거든 그가 혹시 내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어느 구석에선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눌린 듯 흐느끼는 사람을 보거든 그가 혹시 내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폭격으로 살육으로 널 부러진 채 고약한 냄새로 엄습해 오는 듯한 시신들이 TV화면으로 지나가거든 혹시 그가 내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흔들리는 어린 갈대의 고단한 뒤채임을 보거든 그건 혹시 내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순간 떨어져 사라지고야 마는 추녀의 물방울을 보거든 그건 혹시 내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완전무장을 한 채 철책앞에 서서 외로이 슬픈노래를 부르는 앳띤 군인을 보거든 그건 혹시 내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지뢰에 다리를 잃고 추운비에 젖어 있는 풀숲의 노루를 보거든 그건 혹시 내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생각해 볼일이다.
세상 모든 고통과 슬픔과 서러움을 만나거든 그건 혹시 내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은주 [2007/04/01] :: 오늘도소식이있나 기다렸단다.어떻게너를도와야하는지.. 몸이라도건강하란말밖에 해줄수없으니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