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오는 일요일 새벽, 동쪽으로 떠난 이시우2004/12/02 1336
이시우씨가 먼길을 떠나기 전, 덕담을 건넬 생각에 그와 자리에 앉았다.
태풍 오는 일요일 새벽, 동쪽으로 떠난 이시우…
반쪽이 > 대형 태풍이 올라오고 있는 길 위로 그는 홀로 떠나고 있었다.
<3000km 릴레이 리포트1 - 이시우가 동쪽으로 떠나는 이유>
6월 19일. 한동안 연락이 뜸하던 이시우씨로부터 메일이 한 통 들어와 있었다.
“유엔사해체에 대한 걷기 명상을 6월20일부터 시작합니다. 유엔사가 관할하고 있는 비무장지대와 유엔사후방기지가 있는 일본까지 걷게 됩니다. 6월 20일 강화도 집을 출발하여 휴전선을 따라 강원도 고성까지 걷고, 다시 동해안을 따라 부산까지 걷습니다.
부산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서 사세보기지 까지 갑니다. 도쿄에 있는 3개의 유엔사기지와 사세보기지를 방문합니다. 사세보에서 오끼나와로 건너가 나머지 3개의 유엔사기지를 따라 걷습니다. 그리고 별일이 없다면 9월경엔 다시 강화도로 돌아올 것 입니다.”
동행자 없이 3000km를 혼자 걷는다? 그는 독하디 독한 ‘獨行’을 결행하고 있었다.
그가 떠나는 새벽으로 달려가야만 했다.
그는 오랜동안 DMZ를 품에서 놓아본 적이 없다. 아픔의 땅을 걷고 또 걸으며 기록하고 또 기록해왔다. 지난해 그 기록을 모아 <민통선, 평화기행(창작과비평사)>을 내놓았다.
그는 길을 나섰다가 돌아올때마다 이 땅에 상존하는 음습한 전쟁의 그림자와 알알한 상채기들을 꺼내놓고 사람들에게 낮은 소리로 전한다. “평화는 아름답다. 평화는 힘이 세다”고, “전쟁 억지력의 으뜸은 평화”라고. 그의 귀가길마다의 발뒤꿈치에 매달린 여럿의 사진전이 그것이다.
지난해 그와 그의 동료들이 국회에 발의했던 ‘대인지뢰제거와 피해보상특별법’ 제정 노력 또한 그것이다.
이시우, 그가 또 들메끈을 단단히 죄고 한낱 바람이 되어 집을 나섰다. 이번에는 유엔사 재조정(해체)을 촉구하는 명상걷기다. 그는 최근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과 주한미군의 재배치’란 이 땅에 휘몰아치는 폭풍우에 고민하고 있었다. 그 폭풍우의 끝자락을 물고 들어올 변화와 위험을 그의 직관이 감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쨌든 고민이 많아졌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되묻던 그다. 그리고 3000km가 넘는 머나먼길을 바람처럼 걷기로 했다.
그리고 함께 걸을 사람들을 길 위에서 만나기로 작정한다.
“…바람처럼 걷기로 했다. 강화를 떠나 유엔사가 관할하고 있는 휴전선을 따라 고성까지걷고, 거기서 다시 동해안을 따라 부산까지 가서 일본의 사세보기지로 건너가 거기서부터 동경까지 걸어 요코스카, 자마, 요코다 3개의 유엔사 기지를 돌고, 오끼나와로 내려가 카데나 후템마 화이트비치 기지를 걸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유엔사본부가 있는 용산기지까지… 3000킬로가 넘는 거리이다. 서울과 부산을 7번 넘게 오갈 정도의 거리이다.
간단치 않았다. 몇일동안 ‘유엔사 해체’를 위한 걷기에 대해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그 반응은 대체로 시큰둥 했다. 마음이 흔들렸다. 역시 반대보다 더한 것은 무관심이다. 나는 절대 무엇을 충동적으로 결정하거나 준비없이 추진하는 편이 아닌데 이번 일은 왠지 급하다. 오랫동안 미군을 관찰해오면서 얻어진 직감이 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몇일 고민하는 사이 나는 또 밤길 바람앞에 서 있었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우고 간다. 자신을 알아달라고 매달리지 않고 홀연히 와서는 무심히 스쳐 지나간다. 그렇다 그것이 바람결이다. 바람과 함께 나는 다시 결심할 수 있었다.
6월 20일경 나는 강화 집을 출발한다. 별일이 없다면 가을이 되어서야 다시 이집에 돌아올 것이다…“
그가 떠난 6월 20일 새벽 5시 25분, 강화도 양도면 도장리에서 우리 일행은 이시우씨를 배웅했다. 그의 배낭 위로 화선지와 같은 하늘에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까만 먹물이 뭉클 번지고 있었다. 대형 태풍인 ‘디앤무’가 올라오고 있는 길 위로 이시우는 홀로 떠나고 있었다.
6월 20일 반쪽이(이 글은 같은 날 올린 ‘이시우가 동쪽으로 떠난 이유-1′의 일부 입니다.)
http://www.peacedmz.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