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간쇠가,흥부가 여러판본 2002/08/31 505
판소리 사설 변강쇠가 (성두본 B)
중년(中年)에 비상(非常)한 일이 있던 것이었다. 평안도 월경촌(月景村)에 계집 하나 있으되, 얼굴로 볼작시면 춘이월(春二月) 반개도화(半開桃花) 옥빈(玉빈)에 어리었고, 초승에 지는 달빛 아미간(蛾眉間)에 비치었다. 앵도순(櫻桃脣) 고운 입은 빛난 당채(唐彩) 주홍필(朱紅筆)로 떡 들입다 꾹 찍은 듯, 세류(細柳)같이 가는 허리 봄바람에 흐늘흐늘, 찡그리며 웃는 것과 말하며 걷는 태도 서시(西施)와 포사(포사)라도 따를 수가 없건마는, 사주(四柱)에 청상살(靑孀煞)이 겹겹이 쌓인 고로 상부(喪夫)를 하여도 징글징글하고 지긋지긋하게 단콩 주어 먹듯 하것다.
열다섯에 얻은 서방(書房) 첫날밤 잠자리에 급상한(急傷寒)에 죽고, 열여섯에 얻은 서방 당창병(唐瘡病)에 튀고, 열일곱에 얻은 서방 용천병에 펴고, 열여덟에 얻은 서방 벼락맞아 식고, 열아홉에 얻은 서방 천하에 대적(大賊)으로 포청(捕廳)에 떨어지고, 스무 살에 얻은 서방 비상(砒霜) 먹고 돌아가니, 서방에 퇴가 나고 송장 치기 신물난다.
이삼 년씩 걸러 가며 상부를 할지라도 소문이 흉악(凶惡)해서 한 해에 하나씩 전례(前例)로 처치(處置)하되, 이것은 남이 아는 기둥서방, 그남은 간부(間夫), 애부(愛夫), 거드모리, 새호루기, 입 한번 맞춘 놈, 젖 한번 쥔 놈, 눈 흘레한 놈, 손 만져 본 놈, 심지어(甚至於) 치마귀에 상척자락 얼른 한 놈까지 대고 결단을 내는데, 한 달에 뭇을 넘겨, 일 년에 동반 한 동 일곱 뭇, 윤달든 해면 두 동 뭇수 대고 설그질 때, 어떻게 쓸었던지 삼십 리 안팎에 상투 올린 사나이는 고사(姑捨)하고 열다섯 넘은 총각(總角)도 없어 계집이 밭을 갈고 처녀가 집을 이니 황(黃)‧평(平) 양도(兩道) 공론(公論)하되,
“이 년을 두었다가는 우리 두 도내(道內)에 좆 단 놈 다시 없고, 여인국(女人國)이 될 터이니 쫓을 밖에 수가 없다.”
양도가 합세(合勢)하여 훼가(毁家)하여 쫓아 내니, 이 년이 하릴없어 쫓기어 나올 적에, 파랑 봇짐 옆에 끼고, 동백(冬柏)기름 많이 발라 낭자를 곱게 하고, 산호(珊瑚) 비녀 찔렀으며, 출유(出遊) 장옷 엇매고, 행똥행똥 나오면서 혼자 악을 쓰는구나.
“어허, 인심 흉악하다. 황‧평 양서(兩西) 아니며는 살 데가 없겠느냐. 삼남(三南) 좆은 더 좋다더고.”
노정기(路程記)로 나올 적에 중화(中和) 지나 황주(黃州) 지나 동선령 얼핏 넘어 봉산(鳳山), 서흥(瑞興), 평산(平山) 지나서 금천(金川) 떡전거리, 닭의우물, 청석관(靑石關)에 당도하니,
이 때에 변강쇠라 하는 놈이 천하의 잡놈으로 삼남에서 빌어먹다 양서로 가는 길에 년놈이 오다가다 청석골 좁은 길에서 둘이 서로 만나거든, 간악(姦惡)한 계집년이 힐끗 보고 지나가니 의뭉한 강쇠놈이 다정히 말을 묻기를,
“여보시오, 저 마누라 어디로 가시는 거요.”
숫처녀 같으면 핀잔을 하든지 못 들은 체 가련마는, 이 자지간나희가 훌림목을 곱게 써서,
“삼남으로 가오.”
강쇠가 연거푸 물어,
“혼자 가시오.”
“혼자 가오.”
“고운 얼굴 젊은 나이인데 혼자 가기 무섭겠소.”
“내 팔자 무상(無常)하여 상부하고 자식없어, 나와 함께 갈 사람은 그림자뿐이라오.”
“어허, 불상하오. 당신은 과부요, 나는 홀애비니 둘이 살면 어떻겠소.”
“내가 상부 지질하여 다시 낭군(郞君) 얻자 하면 궁합(宮合)을 먼저 볼 것이오.”
“불취동성(不取同姓)이라 하니, 마누라 성씨가 누구시오.”
“옹(雍)가요.”
“예, 나는 변서방인데 궁합을 잘 보기로 삼남에 유명하니, 마누라 무슨 생이요.”
“갑자생(甲子生)이오.”
“예, 나는 임술생(壬戌生)이오. 천간(天干)으로 보거드면 갑은 양목(陽木)이요, 임은 양수(陽水)이니, 수생목이 좋고, 납음(納音)으로 의논하면 임술계해 대해수(壬戌癸亥 大海水) 갑자을축 해중금(甲子乙丑 海中金) 금생수(金生水)가 더 좋으니 아주 천생배필(天生配匹)이오. 오늘이 마침 기유일(己酉日)이고 음양부장(陰陽不將) 짝 배자(配字)니 당일 행례(行禮)합시다.”
계집이 허락한 후에 청석관을 처가로 알고, 둘이 손길 마주 잡고 바위 위에 올라가서 대사(大事)를 지내는데, 신랑 신부 두 년놈이 이력(履歷)이 찬 것이라 이런 야단(惹端) 없겠구나. 멀끔한 대낮에 년놈이 홀딱 벗고 매사니 뽄 장난할 때, 천생음골(天生陰骨) 강쇠놈이 여인의 양각(陽刻) 번쩍 들고 옥문관(玉門關)을 굽어보며,
“이상히도 생겼구나. 맹랑히도 생겼구나. 늙은 중의 입일는지 털은 돋고 이는 없다. 소나기를 맞았던지 언덕 깊게 패였다. 콩밭 팥밭 지났는지 돔부꽃이 비치였다. 도끼날을 맞았든지 금바르게 터져 있다. 생수처(生水處) 옥답(沃畓)인지 물이 항상 고여 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옴질옴질 하고 있노. 천리행룡(千里行龍) 내려오다 주먹바위 신통(神通)하다. 만경창파(萬頃蒼波) 조개인지 혀를 삐쭘 빼였으며 임실 (任實) 곶감 먹었는지 곶감씨가 장물(臟物)이요, 만첩산중(萬疊山中) 으름인지 제가 절로 벌어졌다. 연계탕(軟鷄湯)을 먹었는지 닭의 벼슬 비치였다. 파명당(破明堂)을 하였는지 더운 김이 그저 난다. 제 무엇이 즐거워서 반쯤 웃어 두었구나. 곶감 있고, 으름 있고, 조개 있고, 연계 있고, 제사상은 걱정 없다.”
저 여인 살짝 웃으며 갚음을 하느라고 강쇠 기물 가리키며,
“이상히도 생겼네. 맹랑이도 생겼네. 전배사령(前陪使令) 서려는지 쌍걸낭을 느직하게 달고, 오군문(五軍門) 군뇌(軍牢)던가 복덕이를 붉게 쓰고 냇물가에 물방안지 떨구덩떨구덩 끄덕인다. 송아지 말뚝인지 털고삐를 둘렀구나. 감기를 얻었던지 맑은 코는 무슨 일인고. 성정(性情)도 혹독(酷毒)하다 화 곧 나면 눈물난다. 어린아이 병일는지 젖은 어찌 게웠으며, 제사에 쓴 숭어인지 꼬챙이 구멍이 그저 있다. 뒷절 큰방 노승인지 민대가리 둥글린다. 소년인사 다 배웠다, 꼬박꼬박 절을 하네. 고추 찧던 절굿대인지 검붉기는 무슨 일인고. 칠팔월 알밤인지 두 쪽이 한데 붙어 있다. 물방아, 절굿대며 쇠고삐, 걸낭 등물 세간살이 걱정 없네.”
강쇠놈이 대소하여,
“둘이 다 비겼으니 이번은 등에 업고 사랑가로 놀아 보세.”
저 여인 대답하기를,
“천선호지(天先乎地)라니 낭군(郞君) 먼저 업으시오.”
강쇠가 여인 업고, 가끔가끔 돌아보며 사랑가로 어른다.
“사랑 사랑 사랑이여, 유왕(幽王) 나니 포사 나고, 걸(桀)이 나니 말희(末喜) 나고, 주(紂)가 나니 달기(달己) 나고, 오왕(吳王) 부차(夫差) 나니 월 서시 나고, 명황(明皇) 나니 귀비(貴妃) 나고, 여포(呂布) 나니 초선(貂蟬) 나고, 호색남자(好色男子) 내가 나니 절대가인(絶對佳人) 네가 났구나. 네 무엇을 가지려느냐. 조거전후 십이승 야광주(早居前後 十二乘 夜光珠)를 가져 볼까. 십오성(十五城) 바꾸려던 화씨벽(和氏璧)을 가져 볼까. 천지신지 아지자지(天知神知 我知子知) 순금덩이 가져 볼까. 부도재산(浮道財産), 득은옹(得銀甕) 은항아리 가져볼까. 배금문 입자달(排禁門 入紫달)의 상평통보 가져볼까. 밀화불수(密花佛手), 산호비녀, 금가락지 가져볼까. 네 무엇을 먹고 싶어. 둥글둥글 수박덩이 웃봉지만 떼버리고 강릉(江陵) 백청(百淸) 따르르 부어 은간저로 휘휘 둘러 씨는 똑 따 발라 버리고, 불근 자위만 덤뻑 떠서 아나 조금 먹으려냐. 시금털털 개살구, 애 서는 데 먹으려나. 쪽 빨고 탁 뱉으면 껍질 꼭지 건너편 바람벽에 축척축 부딪치는 반수시 먹으려나. 어주축수애산춘(漁舟逐水愛山春) 무릉도화(武陵桃花) 복숭아 주랴. 이월 중순 이 진과(眞瓜) 외가지 당참외 먹으려나.”
한참을 어르더니 여인을 썩 내려놓으며 강쇠가 문자하여,
“여필종부(女必從夫)라고 하니 자네도 날좀 업소.”
여인이 강쇠를 업고, 실금실금 까불면서 사랑가를 하는구나.
“사랑 사랑 사랑이야. 태산같이 높은 사랑. 해하(海河)같이 깊은 사랑. 남창(南倉) 북창(北倉) 노적(露積)같이 다물다물 쌓인 사랑. 은하직녀(銀河織女) 직금(織錦)같이 올올이 맺힌 사랑. 모란화 송이같이 펑퍼져버린 사랑. 세곡선(稅穀船) 닷줄같이 타래타래 꼬인 사랑. 내가 만일 없었으면 풍류남자(風流男子) 우리 낭군 황 없는 봉이 되고, 임을 만일 못 봤으면 군자호구(君子好逑) 이내 신세 원 잃은 앙이로다. 기러기가 물을 보고, 꽃이 나비 만났으니 웅비종자요림간(雄飛從雌繞林間) 좋을씨고 좋을씨고. 동방화촉(洞房華燭) 무엇하게, 백일향락(白日享樂) 더욱 좋다. 황금옥(黃金屋) 내사 싫으이. 청석관이 신방(新房)이네.”
년놈 작난 이러할 때, 재미있는 그 노릇이 한두 번만 될 수 있나. 재행(再行)턱 삼행(三行)턱을 당일에 다 한 후에 살림살이 살 걱정 둘이 앉아 의논한다.
“우리 내외 오입(誤入)장이 벽항궁촌(僻巷窮村) 살 수 없어 도방 살림이나 하여 보세.”
“내 소견(所見)도 그러하오.”
년놈이 손목 잡고, 도방 각처 다닐 적에 일 원산(元山), 이 강경(江景)이, 삼 포주(浦州), 사 법성(法聖)이 곳곳이 찾아 다녀, 계집년은 애를 써서 들병장사 막장사며, 낮부림, 넉장질에 돈냥 돈관 모아 놓으면, 강쇠놈이 허망하여 댓 냥내기 방때리기, 두 냥 패에 가보하기, 갑자꼬리 여수(與受)하기, 미골(尾骨)회패 퇴기질, 호홍호백(呼紅呼白) 쌍륙(雙六)치기, 장군 멍군 장기두기, 맞혀먹기 돈치기와 불러먹기 주먹질, 걸개두기 윳놀기와, 한 집 두 집 고누두기, 의복 전당(典當) 술먹기와 남의 싸움 가로막기, 그중에 무슨 비위(脾胃) 강새암, 계집치기, 밤낮으로 싸움이니 암만해도 살 수 없다.
하루는 저 여인이 강쇠를 달래며,
“집)의 성기(性氣) 가지고서 도방 살림 하다가는 돈을 모으기 고사(姑捨)하고 남의 손에 죽을 테니, 심산궁곡(深山窮谷) 찾아 가서 사람 하나 없는 곳에 산전(山田)이나 파서 먹고, 시초(柴草)나 베어 때면 노름도 못 할 테요, 강짜도 안 할 테니 산중으로 들어갑세.”
강쇠가 대답하되,
“그 말이 장히 좋의. 십 년을 곧 굶어도 남의 계집 바라보며, 눈웃음하는 놈만 다시 아니 보거드면 내일 죽어 한이 없네.”
산중을 의논한다.
“동 금강(金剛) 석산(石山)이라, 나무 없어 살 수 없고, 북 향산(香山) 찬 곳이라, 눈 쌓이어 살 수 없고, 서 구월(九月) 좋다 하나 적굴(賊窟)이라 살 수 있나. 남 지리(智里) 토후(土厚)하여 생리(生利)가 좋다하니 그리로 찾아가세.”
여간(餘干) 가산(家産) 짊어지고 지리산중 찾아가니 첩첩(疊疊)한 깊은 골에 빈 집이 한 채 서 있으되, 임진왜란(壬辰倭亂) 팔년간과(八年干戈) 어떤 부자 피란(避亂)하자 이 집을 지었던지 오간팔작(五間八作) 기와집이 다시 사람 산 일 없고, 흉가로 비어 있어서 누백년 도깨비 동청이요, 뭇귀신의 사랑(舍廊)이라. 거친 뜰에 있는 것이 삵과 여우 발자취요, 깊은 뒤꼍 우는 소리 부엉이, 올빼미라. 강쇠놈이 집을 보고 대희(大喜)하여 하는 말이,
“순사또는 간 데마다 선화당(宣化堂)이라 하더니 내 팔자도 방사(倣似)하다. 적막한 이 산중에 나 올 줄을 뉘가 알고, 이리 좋은 기와집을 지어 놓고 기다렸노.”
부엌에 토정(土鼎) 걸고, 방 쓸어 공석(空石) 펴고, 낙엽을 긁어다가 저녁밥 지어 먹고, 터 누르기 삼삼구(三三九)를 밤새도록 한 연후에 강쇠의 평생 행세(行勢) 일하여 본 놈이냐. 낮이면 잠만 자고, 밤이면 배만 타니, 여인이 할 수 없어 애긍히 정설(情說)한다.
“여보 낭군 들으시오. 천생만민필수지직(天生萬民必授之職) 사람마다 직업 있어 앙사부모하육처자(仰事父母下育妻子) 넉넉히 한다는데 낭군 신세 생각하니 어려서 못 배운 글을 지금 공부할 수 없고, 손재주 없으시니 장인(匠人)질 할 수 없고, 밑천 한푼 없으시니 상고(商賈)질 할 수 있나. 그 중에 할 노릇이 상일밖에 없으시니 이 산중 살자 하면 산전을 많이 파서 두태(豆太), 서속(黍粟), 담배 갈고, 갈퀴나무, 비나무며 물거리, 장작(長斫)패기 나무를 많이 하여 집에도 때려니와, 지고 가 팔아 쓰면 부모 없고 자식 없는 단 부처(夫妻) 우리 둘이 생계가 넉넉할새, 건장한 저 신체에 밤낮으로 하는 것이 잠자기와 그 노릇 뿐. 굶어 죽기 고사하고 우선 얼어죽을 테니 오늘부터 지게 지고 나무나 하여 옵소.”
강쇠가 픽게 웃어,
“어허 허망(虛妄)하다. 호달마(胡達馬)가 요절(腰折)하면 왕십리 거름 싣고, 기생(妓生)이 그릇되면 길가의 탁주(濁酒) 장사, 남의 말로 들었더니 나 같은 오입장이 나무 지게 지단 말가. 불가사문어타인(不可使聞於他人)이나 자네 말이 그러하니 갈밖에 수가 있나.”
강쇠가 나무하러 나가는데 복건(복巾)쓰고, 도포(道袍) 입었단 말은 거짓말. 제 집에 근본(根本) 없고 동내(洞內)에 빌 데 있나. 포구(浦口) 근방 시평(市坪)판에 한참 덤벙이던 복색(服色)으로 모자 받은 통영(統營)갓에 망건(網巾)은 솟구었고, 한산반저(韓山半苧) 소창의(小창衣)며, 곤때 묻은 삼승(三升) 버선 남(藍) 한 포단(布緞) 대님 매고, 용감기 새 미투리 맵시있게 들멘 후에, 낫과 도끼 들게 갈아, 점심 구럭 함께 묶어 지게 위에 모두 얹어 한 어깨에 둘러 메고, 긴 담뱃대 붙여 물고 나뭇군 모인 곳을 완보(緩步) 행가(行歌) 찾아 갈 때, 그래도 화방(花房) 퇴물(退物)이라 씀씀이 목구성이 초군(樵軍)보다 조금 달라,
“태고(太古)라 천황씨(天皇氏)가 목덕(木德)으로 즉위(卽位)하니 오행중(五行中)에 먼저 난 게 나무 덕이 으뜸이라. 천‧지‧인(天‧地‧人) 삼황(三皇)시절 각 일만 팔천세를 무위이화(無爲而化) 지내시니, 그 때에 나 낳았으면 오죽이나 편켔는가. 유왈유소(有曰有巢) 성인 인군 덕화(德化)도 장할씨고. 구목위소(構木爲巢) 식목실(食木實)이 그 아니 좋겠는가. 수인씨(燧人氏) 무슨 일로 시찬수교인화식(始鑽燧敎人火食) 일이 점점 생겼구나. 일출이작(日出而作) 요순(堯舜) 백성 어찌 편타 할 수 있나. 하‧은‧주(夏‧殷‧周) 석양 되고, 한‧당‧송(漢‧唐‧宋) 풍우 일어 갈수록 일이 생겨 불쌍한 게 백성이라. 일년 사절(四節) 놀 때 없이 손톱 발톱 잦아지게 밤낫으로 벌어도 불승기한(不勝飢寒) 불쌍하다. 내 평생 먹은 마음 남보다는 다르구나. 좋은 의복, 갖은 패물(佩物), 호사(豪奢)를 질끈 하고 예쁜 계집, 좋은 주효(酒肴), 잡기(雜技)로 벗을 삼아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쟀더니 층암절벽(層岩絶壁) 저 높은 데 다리 아파 어찌 가서, 억새폭, 가시덩굴 손이 아파 어찌 베며, 너무 묶어 온짐 되면 어깨 아파 어찌 지고, 산고곡심무인처(山高谷深無人處)에 심심하여 어찌 올꼬.”
신세 자탄(自歎) 노래하며 정처 없이 가노라니.
이 때에 둥구마천 백모촌에 여러 초군 아이들이 나무하러 몰려 와서 지게 목발 뚜드리며 방아타령, 산타령에 농부가(農夫歌), 목동가(牧童歌)로 장난을 하는구나. 한 놈은 방아타령을 하는데,
“뫼에 올라 산전방아, 들에 내려 물방아, 여주(麗州) 이천(利川) 밀다리방아, 진천(鎭川) 통천(通川) 오려방아, 남창 북창 화약(火藥)방아, 각댁(各宅) 하님 용정(용精)방아. 이 방아, 저 방아 다 버리고 칠야삼경(漆夜三經) 깊은 밤에 우리 님은 가죽방아만 찧는다. 오다 오다 방아 찧는 동무들아, 방아 처음 내던 사람 알고 찧나 모르고 찧나.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경신시(庚申年 庚申月 庚申日 庚申時) 강태공(姜太公)의 조작(造作)방아 사시장춘(四時長春) 걸어 두고 떨구덩 찧어라, 전세대동(田稅大同)이 다 늦어간다.”
한 놈은 산타령을 하는데,
“동 개골(皆骨)‧서 구월‧남 지리‧북 향산(香山), 육로(陸路) 천리 수로(水路) 천리 이 천리 들어가니 탐라국(耽羅國)이 생기려고 한라산(漢拏山)이 둘러 있다. 정읍(井邑) 내장(內藏), 장성(長城) 입암(笠岩), 고창(高敞) 반등(半登), 고부(古阜) 두승(斗升), 서해 수구(水口) 막으려고 부안(扶安), 변산(邊山) 둘러 있다.”
한 놈은 농부가를 하는데,
“선리건곤(仙李乾坤) 태평시절(太平時節) 도덕 높은 우리 성상(聖上) 강구미복(康衢微服) 동요(童謠) 듣던 요(堯)임금의 버금이라. 네 다리 빼여라 내다리 박자. 좌수춘광(左手春光)을 우수이(右手移). 여보소, 동무들아, 앞 남산(南山)에 소나기 졌다. 삿갓 쓰고 도롱이 입자.”
한 놈은 목동가를 부르는데,
“갈퀴 메고 낫 갈아 가지고서 지리산으로 나무하러 가자. 얼럴. 쌓인 낙엽 부러진 장목(長木) 긁고 주워 엄뚱여 지고 석양산로(夕陽山路) 내려올 제, 손님 보고 절을 하니 품안에 있는 산과(山果) 땍때굴 다 떨어진다. 얼럴. 비 맞고 갈(渴)한 손님 술집이 어디 있노. 저 건너 행화촌(杏花村) 손을 들어 가리키자. 얼럴. 뿔 굽은 소를 타고 단적(短笛)을 불고 가니 유황숙(劉皇叔)이 보았으면 나를 오죽 부러워하리. 얼럴.”
강쇠가 다 들은 후, 제 신세를 제 보아도 어린 것들 한가지로 갈키나무 할 수 있나. 도끼 빼어 들어 메고 이 봉 저 봉 다니면서 그 중 큰 나무는 한두 번씩 찍은 후에 나무 내력(來歷) 말을 하며, 제가 저를 꾸짖는다.
“오동나무 베자 하니 순(舜)임금의 오현금(五弦琴). 살구나무 베자 하니 공부자(孔夫子)의 강단(講壇). 소나무 좋다마는 진시황(秦始皇)의 오대부(五大夫). 잣나무 좋다마는 한 고조 덮은 그늘, 어주축수애산춘(漁舟逐水愛山春) 홍도(紅桃)나무 사랑옵고. 위성조우읍경진(渭城朝雨邑輕塵) 버드나무 좋을씨고. 밤나무 신주(神主)감, 전나무 돗대 재목(材木). 가시목 단단하니 각 영문(營門) 곤장(棍杖)감. 참나무 꼿꼿하나 배 짓는 데 못감. 중나무, 오시목(烏柿木)과 산유자(山柚子), 용목(榕木), 검팽은 목물방(木物房)에 긴(緊)한 문목(紋木)이니 화목(火木)되기 아깝도다.”
이리저리 생각하니 벨 나무 전혀 없다.
산중의 동천맥(動泉脈) 우물가 좋은 곳에 점심 구럭 풀어 놓고 단단히 먹은 후에 부쇠를 얼른 쳐서 담배 피어 입에 물고, 솔 그늘 잔디밭에 돌을 베고 누우면서 당음(唐音) 한 귀 읊어 보아,
“우래송수하(偶來松樹下)에 고침석두면(高枕石頭眠)이 나로 두고 한 말이라, 잠자리 장히 좋다.”
말하며, 고는 코가 산중이 들썩들썩, 한소금 질근 자다 낯바닥이 선뜻선뜻 비슥이 눈 떠 보니 하늘에 별이 총총, 이슬이 젖는구나. 게을리 일어나서 기지개 불끈 켜고 뒤꼭지 뚜드리며 혼잣말로 두런거려,
“요새 해가 그리 짧아 빈 지게 지고 가면 계집년이 방정 떨새.”
사면을 둘러보니 둥구마천 가는 길에 어떠한 장승 하나 산중에 서 있거늘 강쇠가 반겨하여,
“벌목정정(伐木丁丁) 애 안 쓰고 좋은 나무 저기 있다. 일모도궁(日暮途窮) 이내 신세 불로이득(不勞而得) 좋을씨고.”
지게를 찾아 지고 장승 선 데 급히 가니 장승이 화를 내어 낯에 핏기 올리고서 눈을 딱 부릅뜨니 강쇠가 호령(號令)하여,
”너 이놈, 누구 앞에다 색기(色氣)하여 눈망울 부릅뜨니. 삼남(三南) 설축 변강쇠를 이름도 못 들었느냐. 과거(科擧), 마전(馬廛), 파시평(波市坪)과 사당(寺黨) 노름, 씨름판에 이내 솜씨 사람 칠 제 선취(先取) 복장(腹腸) 후취(後取) 덜미, 가래딴죽, 열 두 권법(拳法). 범강(范彊), 장달(張達), 허저(許저)라도 모두 다 둑 안에 떨어지니 수족(手足) 없는 너만 놈이 생심(生心)이나 방울쏘냐.”
달려들어 불끈 안고 엇둘음 쑥 빼내어 지게 위에 짊어지고 유대군(留待軍) 소리 하며 제 집으로 돌아와서 문 안에 들어서며, 호기(豪氣)를 장히 핀다.
“집안 사람 거기 있나. 장작 나무 하여 왔네.”
뜰 가운데 턱 부리고, 방문 열고 들어가니 강쇠 계집 반겨라고 급히 나서 손목 잡고 어깨를 주무르며,
“어찌 그리 저물었나. 평생 처음 나무 가서 오죽 애를 썼겠는가. 시장한 데 밥 자십쇼.”
방 안에 불 켜 놓고, 밥상 차려 드린 후에 장작 나무 구경 차로 불 켜 들고 나와 보니, 어떠한 큰 사람이 뜰 가운데 누웠으되 조관(朝官)을 지냈는지 사모(紗帽) 품대(品帶) 갖추고 방울눈 주먹코에 채수염이 점잖으다. 여인이 깜짝 놀라 뒤로 팍 주잕으며,
“애겨, 이것 웬 일인가. 나무하러 간다더니 장승 빼어 왔네그려. 나무가 암만 귀하다 하되 장승 패여 땐단 말은 언문책(諺文冊) 잔주(注)에도 듣도 보도 못한 말. 만일 패여 땐다면 목신 동증(動症) 조왕(조王) 동증, 목숨 보전 못 할 테니 어서 급히 지고 가서 선 자리에 도로 세우고 왼발 굴러 진언(眞言) 치고 다른 길로 돌아옵소.”
강쇠가 호령하여,
“가사(家事)는 임장(任長)이라 가장(家長)이 하는 일을 보기만 할 것이지, 계집이 요망(妖妄)하여 그것이 웬 소린고. 진(晉) 충신 개자추(介子推)는 면산(면山)에 타서 죽고, 한 장군 기신(紀信)이는 형양(滎陽)에 타서 죽어, 참사람이 타 죽어도 아무 탈(탈)이 없었는데, 나무로 깎은 장승 인형을 가졌은들 패여 때여 관계한가. 인불언귀부지(人不言鬼不知)니 요망한 말 다시 말라.”
밥상을 물린 후에 도끼 들고 달려들어 장승을 쾅쾅 패어 군불을 많이 넣고, 유정(有情) 부부 훨썩 벗고 사랑가로 농탕(弄蕩)치며, 개폐문 전례판(開閉門 傳例板)을 맛있게 하였구나.
이 때에 장승 목신 무죄(無罪)히 강쇠 만나 도끼 아래 조각 나고 부엌 속에 잔 재 되니 오죽이 원통(寃通)켔나. 의지(依持)할 곳이 없어 중천(中天)에 떠서 울며, 나 혼자 다녀서는 이놈 원수 못 값겠다. 대방(大方) 전에 찾아가서 억울함 원정(原情) 하오리라.
경기(京畿) 노강(鷺江) 선창(船艙) 목에 대방 장승 찾아가서 문안(問安)을 한 연후에 원정을 아뢰기를,
“소장(小將)은 경상도 함양군에 산로 지킨 장승으로 신지(神祗) 처리(處理) 한 일 없고, 평민 침학(侵虐)한 일 없어, 불피풍우(不避風雨)하고, 각수본직(各守本職) 하옵더니 변강쇠라 하는 놈이 일국의 난봉으로 산중에 주접(柱接)하여, 무죄한 소장에게 공연히 달려들어 무수(無數) 후욕(후辱)한 연후에 빼어 지고 제 집 가니, 제 계집이 깜짝 놀라 도로 갖다 세워라 하되, 이 놈이 아니 듣고 도끼로 쾅쾅 패여 제 부엌에 화장(火葬)하니, 이 놈 그저 두어서는 삼동(三冬)에 장작감 근처의 동관(同官) 다 패 때고, 순망치한(脣亡齒寒) 남은 화가 안 미칠 데 없을 테니 십분(十分) 통촉(洞燭)하옵소서. 소장의 설원(雪寃)하고 후환 막게 하옵소서.”
대방이 대경(大驚)하여,
“이 변이 큰 변이라. 경홀(輕忽) 작처(酌處) 못 할 테니 사근내(沙斤乃) 공원(公員)님과 지지대(遲遲臺) 유사(有司)님께 내 전갈(傳喝) 엿쭙기를 ‘요새 적조(積阻)하였으니 문안일향(問安一向)하옵신지. 경상도 함양 동관 발괄(白活) 원정을 듣사온 즉 천만고 없던 변이 오늘날 생겼으니, 수고타 마옵시고 잠깐 왕림(枉臨)하옵셔서 동의작처(同意酌處)하옵시다.’ 전갈하고 모셔 오라.”
장승 혼령(魂靈) 급히 가서 두 군데 전갈하니, 공원 유사 급히 와서 의례 인사한 연후에 함양(咸陽) 장승 발괄 내력 대방이 발론(發論)하니 공원 유사 엿쭙되,
“우리 장승 생긴 후로 처음 난 변괴(變怪)이오니 삼소임(三所任)만 모여 앉아 종용작처(從容酌處) 못 할지라, 팔도 동관 다 청하여 공론(公論) 처치하옵시다.”
대방이 좋다 하고 입으로 붓을 물고, 통문(通文) 넉 장 썩 써 내니 통문에 하였으되,
“우통유사(右通喩事)는 토끼가 죽으면 여우가 슬퍼하고, 지초(芝草)에 불이 타면 난초가 탄식(歎息)키는 유유상종(類類相從) 환란상구(患難相救) 떳떳한 이치로다. 지리산중 변강쇠가 함양 동관 빼어다가 작파(斫破) 화장하였으니 만과유경(萬과猶輕) 이 놈 죄상 경홀 작처할 수 없어 각도 동관전에 일체(一切)로 발통(發通)하니 금월 초 삼경야에 노강 선창으로 일제취회(一齊聚會)하여 함양 동관 조상(弔喪)하고, 변강쇠놈 죽일 꾀를 각출의견(各出意見)하옵소서. 년 월 일.”
밑에 대방 공원 유사 벌여 쓰고, 착명(箸名)하고, 차여(次餘)에 영문(營門) 각읍(各邑) 진장(鎭將) 목장(牧將) 각면(各面) 각촌(各村) 점막(店幕) 사찰차(寺刹次) 차비전(差備前) 차의(差議)라.
“통문 한 장은 진관천 공원이 맡아 경기 삼십사관(三十四官), 충청도 오십사관, 차차 전케 하고, 한 장은 고양(高陽) 홍제원(弘濟阮) 동관이 맡아 황해도 이십삼관, 평안도 삼십이관 차차 전케 하고, 한 장은 양주(楊州) 다락원 동관이 맡아 강원도 이십육관, 함경도 이십사관 차차 전케 하고, 한 장은 지지대 공원이 맡아 전라도 오십육관, 경상도 칠십일관 차차로 전케 하라.”
귀신의 조화(造化)인데 오죽이 빠르겠나. 바람 같고 구름같이 경각(頃刻)에 다 전하니, 조선 지방 있는 장승 하나도 낙루(落漏)없이 기약(期約)한 밤 다 모여서 쇄남터에 배게 서서 시흥(始興) 읍내까지 빽빽하구나. 장승의 절하는 법이 고개만 숙일 수도 없고, 허리 굽힐 수도 없고, 사람으로 의논하면 발 앞부리를 디디고 뒤측만 달싹 하는 뽄이었다. 일제히 절을 하고, 문안을 한 연후에 대방이 발론하여,
“통문사의(通文事意) 보았으면 모은 뜻을 알 테니 변강쇠 지은 죄를 어떻게 다스릴꼬.”
단천(端川) 마천령(摩天嶺) 상봉(上峰)에 섰는 장승 출반(出班)하여 엿쭙기를,
“그 놈의 식구대로 쇄남터로 잡아다가 효수(梟首)를 하옵시다.”
대방이 대답하되,
“귀신의 성기(性氣)라도 토풍(土風)을 따라가니 마천 동관 하는 말씀 상쾌(爽快)는 하거니와, 사단(事端) 하나 있는 것이 놈의 식구란 게 계집 하나뿐이로되, 계집은 말렸으니 죄를 아니 줄 테요, 강쇠라 하는 놈도 부지불각(不知不覺) 효수하면 세상이 알 수 없어 징일여백(懲一勵百) 못 될 테니 여러 동관님네 다시 생각하옵소서.”
압록강가 섰는 장승 나서며 엿쭙되,
“출호이자 반호이(出乎爾者 反乎爾)가 성인의 말씀이니 우리의 식구대로 그 놈 집을 에워싸고 불을 버썩 지른 후에 못 나오게 하였으면 그 놈도 동관같이 화장이 되오리다.”
대방이 대답하되,
“흉녕(凶녕)한 그런 놈을 부지불각 불지르면 제 죄를 제 모르고 도깨비 장난인가 명화적(明火賊)의 난리런가 의심을 할 테니 다시 생각하여 보오.”
해남(海南) 관머리 장승이 엿쭙되,
“대방님 하는 분부(分付) 절절이 마땅하오. 그러한 흉한 놈을 쉽사리 죽여서는 설치(雪恥)가 못 될 테니 고생을 실컷 시켜, 죽자해도 썩 못 죽고, 살자해도 살 수 없어 칠칠이 사십구 한달 열 아흐레 밤낮으로 볶이다가 험사(險死) 악사(惡死)하게 하면 장승 화장한 죄인 줄 저도 알고 남도 알아 쾌히 징계(懲戒)될 테니, 우리의 식구대로 병 하나씩 가지고서 강쇠를 찾아가서 신문(신門)에서 발톱까지 오장육부(五臟六腑) 내외없이 새 집에 앙토(仰土)하듯, 지소방(祗所房)에 부벽(付壁)하듯, 각장(角壯) 장판(壯版) 기름 결듯, 왜관(倭館) 목물(木物) 칠살같이 겹겹이 발랐으면 그 수가 좋을 듯 하오.”
대방이 대희하여,
“해남 동관 하는 말씀 불번불요(不煩不擾) 장히 좋소. 그대로 시행(施行)하되 조그마한 강쇠놈에 저리 많은 식구들이 정처 없이 달려들면 많은 데는 축이 들고 빠진 데는 틈 날 테니 머리에서 두 팔까지 전라, 경상 차지하고, 겨드랑이서 볼기까지 황해, 평안 차지하고, 항문(肛門)에서 두발(頭髮)까지 강원, 함경 차지하고, 오장육부 내복(內腹)일랑 경기, 충청 차지하여 팔만 사천 털 구멍 한 구멍도 빈틈없이 단단히 잘 바르라.”
팔도 장승 청령(廳令)하고, 사냥 나온 벌떼같이 병 하나씩 등에 지고, 함양 장승 앞장 서서 강쇠에게 달려들어 각기 자기네 맡은 대로 병도배(病塗褙)를 한 연후에 아까같이 흩어진다.
이적에 강쇠놈은 장승 패여 덥게 때고 그 날 밤을 자고 깨니 아무 탈이 없었구나. 제 계집 두 다리를 양편으로 딱 벌리고 오목한 그 구멍을 기웃이 굽어보며,
“밖은 검고 안은 붉고 정녕(丁寧) 한 부엌일새, 빡금빡금하는 것은 조왕동증 정녕 났제.”
제 기물(己物) 보이면서,
“불끈불끈하는 수가 목신동증 정녕 났제. 가난한 살림살이 굿하고 경 읽겠나, 목신하고 조왕하고 사화(私和)를 붙여 보세.”
아적밥 끼니 에워 한 판을 질끈하고 장담(壯談)을 실컷하여,
“하루 이틀 쉰 후에 이 근방 있는 장승 차차 빼어 왔으며는 올봄을 지내기는 나무 걱정할 수 없지.”
그날 저녁 일과(日課)하고 한참 곤케 자노라니 천만의외 온 집안이 장승이 장을 서서 몸 한 번씩 건드리고 말이 없이 나가거늘 강쇠가 깜짝 놀라 말하자니 안 나오고 눈 뜨자니 꽉 붙어서 만신(萬身)을 결박(結縛)하고 각색(各色)으로 쑤시는데, 제 소견도 살 수 없어 날이 점점 밝아 가매, 강쇠 계집 잠을 깨니 강쇠의 된 형용(形容)이 정녕한 송장인데, 신음(呻吟)하여 앓는 소리 숨은 아니 끊겼구나. 깜짝 놀라 옷을 입고 미음을 급히 고아 소금 타서 떠 넣으며 온몸을 만져 보니, 이를 꽉 아드득 물고 미음 들어갈 수 없고, 낭자(狼藉)한 부스럼이 어느새 농창(濃瘡)하여 피고름 독한 내가 코를 들을 수가 없다.
병 이름을 짓자 하니 만가지가 넘겠구나. 풍두통(風頭痛), 편두통(偏頭痛), 담결통(痰結痛) 겸하고 쌍다래끼 석서기, 청맹(靑盲)을 겸하고, 이롱증(耳聾症) 이병(耳鳴)에 귀젓을 겸하고, 비창(鼻瘡), 비색(鼻塞)에 주독(酒毒)을 겸하고, 면종(面腫), 협종(頰腫)순종(脣腫)겸하고, 풍치(風齒), 충치(蟲齒)에 구와증 (口와症)을 겸하고, 흑태(黑苔), 백태(白苔)에 설축증(舌縮症)을 겸하고, 후비창(喉痺瘡), 천비창(穿鼻瘡)에 쌍단아(雙單蛾)를 겸하고, 낙함증(落함症), 항강(項强)에 발제(髮際)를 겸하고, 연주(連珠) 나력(나력)에 상감(傷感)을 겸하고, 견비통(肩臂痛), 옹절(癰癤)에 수전증(手戰症)을 겸하고, 협통(脇痛), 요통(腰痛)에 등창을 겸하고, 흉결(胸結) 복창(腹脹)에 부종(浮腫)을 겸하고, 임질(淋疾), 산증(疝症)에 퇴산(퇴疝)불을 겸하고, 둔종(臀腫), 치질(痔疾)에 탈항증(脫肛症)을 겸하고, 가래톳 학질(학疾)에 수종(水腫)을 겸하고, 발바닥 독종(毒腫)에 티눈을 겸하고, 주로(酒로) 색로(色로)에 담로(痰로)를 겸하고, 육체(肉滯), 주체(酒滯)에 식체(食滯)를 겸하고, 황달(黃疸), 흑달(黑疸)에 고창(鼓脹)을 겸하고, 적리(赤痢), 백리(白痢)에 후증(後症)을 겸하고, 각궁반장(角弓反張)에 괴질(怪疾)을 겸하고, 자치염, 해수(咳嗽)에 헐떡증을 겸하고, 섬어(섬語), 빈 입에 헛손질을 겸하고, 전근곽란(轉筋藿亂)에 토사(吐瀉)를 겸하고, 일학(日학), 양학(兩학)에 며느리심을 겸하고, 드리치락 내치락 사증(邪症)을 겸하고, 단독(丹毒), 양독(陽毒)에 온역(瘟疫)을 겸하고, 감창(疳瘡), 당창(唐瘡)에 용천을 겸하고, 경축(驚축), 복음(伏飮)에 분돈증(奔豚症)을 겸하고, 내종(內腫), 간옹(肝癰)에 주마담(走馬痰)을 겸하고, 염병(染病), 시병(時病)에 열광증(熱狂症)을 겸하고, 울화(鬱火), 허화(虛火)에 물조갈(燥渴)을 겸하여 사지가 참을 수 없고 온몸이 쑤셔서 굽도 잦도 꼼짝달싹 다시는 두 수 없이 마계틀 모양으로 뻣뻣이 누웠으니, 여인이 겁을 내여 병이 하도 무서우니 문복(問卜)이나 해여 보자.
경채(經債) 한 냥 품에 넣고 건너 마을 송봉사(宋奉事) 집 급히 찾아가서,
“봉사님 계시오.”
봉사의 대답이란 게 근본 원수(怨讐)진 듯이 하는 법이었다.
“게 누구라께.”
“강쇠 지어미오.”
“어찌.”
“그 건장(健壯)하던 지아비가 밤새 얻은 병으로 곧 죽게 되었으니 점(占) 한 장 하여 주오.”
“어허, 말 안 되었네. 방으로 들어오소.”
세수를 급히 하고,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한 후에 단정히 꿇어 앉아, 대모산통(玳瑁算筒) 흔들면서 축사(祝辭)를 외는구나.
“천하언재(天下言哉)시며 지하언재(地何言哉)시리오마는 고지즉응(叩之卽應)하나니 부대인자(夫大人者)는 여천지합기덕(與天地合其德)하며 여일월합기명(與日月合其明)하며 여사시합기서(與四時合其序)하며 여귀신합기길흉(與鬼神合其吉凶)하시니, 신기영의(神其靈矣)라, 감이수통언(感而遂通焉)하소서. 금우태세(今又太歲) 을유이월(乙酉二月) 갑자삭(甲子朔) 초육일(初六日) 기사(己巳) 경상우도(慶尙右道) 함양군 지리산중거여인(智里山中居女人) 옹씨 근복문(謹伏問). 가부(家夫) 임술생신(壬戌生身) 변강쇠가 우연 득병(得病)하여 사생(死生)을 판단(判斷)하니 복걸(伏乞) 점신(占神)은 물비(勿秘) 괘효(卦爻) 신명(神明) 소시(昭示), 신명 소시. 하나 둘 셋 넷.”
산통을 누가 뺏아 가는지 주머니에 부리나케 넣고 글 한 귀 지었으되,
“사목비목(似木非木) 사인비인(似人非人)이라, 나무라 할까 사람이라 할까, 어허, 그것 괴이(怪異)하다.”
강쇠 아내 이른 말이,
“엇그제 남정네가 장승을 패 때더니 장승 동증인가 보이다.”
“그러면 그렇지, 목신이 난동(亂動)하고 주작(朱雀)이 발동(發動)하여 살기는 불가망(不可望)이나 원이나 없이 독경(讀經)이나 하여 보소.”
강쇠 아내 이 말 듣고,
“봉사님이 오소서.”
“가지.”
저 계집 거동 보소. 한 걸음에 급히 와서 사면에 황토(黃土) 놓고, 목욕하며 재계(齋戒)하고, 빤 의복 내어 입고, 살망떡과 실과(實果) 채소(菜蔬) 차려 놓고 앉았으니 송봉사 건너온다. 문 앞에 와 우뚝 서며,
“어디다 차렸는가.”
“예다 차려 놓았소.”
“그러면 경 읽지.”
나는 북 들여 놓고 가시목 북방망이 들고, 요령(요鈴)은 한 손에 들고, 쨍쨍 퉁퉁 울리면서 조왕경(조王經), 성조경(成造經)을 의례(依例)대로 읽은 후에 동증경(動症經)을 읽는구나.
“나무동방(南無東方) 목귀살신(木鬼殺神), 남무남방(南無南方) 목귀살신, 남무서방(南無西方) 목귀살신, 남무북방(南無北方) 목귀살신.”
삼칠편(三七篇)을 얼른 읽고 왼편 발 턱 구르며,
“엄엄급급(奄奄急急) 여율령(如律令) 사파하(娑婆하) 쒜.”
경을 다 읽은 후에,
“자네, 경채를 어찌 하려나.”
저 계집 이르는 말이,
“경채나 서울빚이나 여기 있소.”
돈 한 냥 내어 주니,
“내가 돈 달랬는가, 거 새콤한 것 있는가.”
“어, 앗으시오. 점잖은 터에 그게 무슨 말씀이오.”
송봉사 무료(無聊)하여 안개 속에 소 나가듯 하니 강쇠 아내 생각하되 의원(醫員)이나 불러다가 침약(鍼藥)이나 하여 보자.
함양(咸陽) 자바지 명의(名醫)란 말을 듣고 찾아 가서 사정(事情)하니 이진사(李進士) 허락하고 몸소 와서 진맥(診脈)할 때,
좌수맥(左手脈)을 짚어본다. 신방광맥(腎肪胱脈) 침지(沈遲)하니 장냉정박(臟冷精薄)할 것이요, 간담맥(肝膽脈)이 침실(沈失)하니 절늑통압(節肋痛壓)할 것이요, 심수맥(心水脈)이 부삭(浮數)하니 풍열두통(風熱頭痛)할 것이요, 명문삼초맥(命門三焦脈)이 이렇게 침미(沈微)하니 산통탁진(酸通濁津)할 것이요, 비위맥(脾胃脈)이 참심(참심)하니 기촉복통(氣促腹痛)할 것이요, 폐대장맥(肺大腸脈)이 부현(浮弦)하니 해수 냉결(冷結)할 것이요, 기구인영맥(氣口人迎脈)이 내관외격(內關外格)하여 일호륙지(一呼六至)하고 십괴(十怪)가 범하였으니 암만해도 죽을 터이나 약이나 써보게 건재(乾材)로 사오너라. 인삼(人蔘), 녹용(鹿茸), 우황(牛黃), 주사(朱砂), 관계(官桂), 부자(附子), 곽향(藿香), 축사(縮砂), 적복령(赤茯笭), 백복령(白茯伶), 적작약(赤芍藥), 백작약(白芍藥), 강활(羌活), 독활(獨活), 시호(柴胡), 전호(前胡), 천궁(川芎), 당귀(唐歸), 황기(黃기), 백지(白芷), 창출(倉朮), 백출(白朮), 삼릉(三稜), 봉출(蓬朮), 형개(荊芥), 防風(방풍), 소엽(蘇葉), 박하(薄荷), 진피(陳皮), 청피(靑皮), 반하(半夏), 후박(厚朴), 용뇌(龍腦), 사향(麝香), 별갑(鱉甲), 구판(龜板), 대황(大黃), 망초(芒硝), 산약(山藥), 택사(澤瀉), 건강(乾薑), 감초(甘草). 탕약(湯藥)으로 써서 보자.
형방패독산(荊防敗毒散),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 방풍통성산(防風通聖散湯), 자음강화탕(滋陰降火湯), 구룡군자탕(구龍君子湯), 상사평위산(常砂平胃散), 황기건중탕(黃기建中湯), 일청음(一淸飮), 이진탕(二陳湯), 삼백탕(三白湯), 사물탕(四物湯), 오령산(五靈散), 륙미탕(六味湯), 칠기탕(七氣湯), 팔물탕(八物湯), 구미강활탕(九味羌活湯), 십전대보탕(十全大補蕩). 암만써도 효험(效驗)없어 환약(丸藥)을 써서 보자.
소합환(蘇合丸), 청심환(淸心丸), 천을환(天乙丸), 포룡환(抱龍丸), 사청환(瀉淸丸), 비급환(脾及丸), 광제환(廣濟丸), 백발환(百發丸), 고암심신환(古庵心腎丸), 가미지황환(加味地黃丸), 경옥고(瓊玉膏), 신선고(神仙膏)가 아무것도 효험없다. 단방약(單方藥)을 하여 볼까.‧
지렁이집, 굼벵이집, 우렁탕, 섬사주(蟾蛇酒)며 무가산(無價散), 황금탕(黃金湯)과 오줌찌기, 월경수(月經水)며 땅강아지, 거머리, 황우리, 메뚜기, 가물치, 올빼미를 다 써 보았지만 효험없다. 침이나 주어보자.
순금장식(純金粧飾) 대모침통 절렁절렁 흔들어서 삼릉(三稜)을 빼여들고 차차 혈맥(穴脈) 집퍼 줄 때, 백회(百會) 짚어 통천(通天) 주고, 뇌공(腦空) 짚어 풍지(風池) 주고, 전중(전中) 짚어 신궐(神闕) 주고, 기해(氣海) 짚어 대맥(帶脈) 주고, 대저(大저) 짚어 명문(命門) 주고, 장강(長强) 짚어 간유(肝兪) 주고, 담유(膽兪) 짚어 소장유(小腸兪) 주고, 방광(膀胱) 짚어 곡지(曲池) 주고, 수삼이(手三里) 짚어 양곡(陽谷) 주고, 완골(腕骨) 짚어 내관(內關) 주고, 대릉(大陵) 짚어 소상(小商) 주고, 환도(環跳) 짚어 양능천(陽陵泉) 주고, 현종(懸鍾) 짚어 위중(委中) 주고, 승산(承山) 짚어 곤륜(崑崙) 주고, 신맥(申脈) 짚어 삼음교(三陰交) 주고, 공손(公孫) 짚어 축빈(築賓) 주고, 조해(照海) 짚어 용천(涌泉) 주어, 만신(萬身)을 다 쑤시니, 병에 곯고 약에 곯고 침에 곯아 죽을 밖에 수가 없다.
이진사 하는 말이,
“약은 백 가지요, 병은 만 가지니 말질(末疾)이라 불치외다.”
하직(下直)하고 가는구나.
의원이 간 연후에 침약의 힘일런지 목신의 조화인지 강쇠가 말을 하여 여인 옥수 (玉手) 덤벅 잡고 눈물 흘리며 하는 말이,
“자네는 양서 사람, 내 몸은 삼남 사람. 하늘이 지시하고 귀신이 중매하여 오다가다 맺은 연분(緣分) 죽자사자 깊은 맹세 단산(丹山)에 봉황(鳳凰)이오 녹수(綠水)에 원앙(元鴦)이라. 잠시(暫時)도 이별 말고 백년해로(百年偕老) 하쟀더니 일야간에 얻은 병이 백 가지 약 효험 없어, 청춘소년 이 내 몸이 황천(黃天) 원로(遠路) 갈 터이니 생기사귀(生寄死歸) 성인 말씀 나는 서럽지 않거니와 생이사별(生離死別) 자네 정경(情景) 차마 어찌 보겠는가. 비같이 퍼붓던 정이 구름같이 흩어지면 눈같이 녹는 간장 안개같이 이는 수심(愁心). 도리화(桃李花) 피는 봄과 오동잎 지는 가을 두견(杜鵑)이 서럽게 울고 기러기 높이 날 때, 독수공방(獨守空房) 저 신세가 잔상이 불쌍하다. 자네 정경 가긍하니 아무리 살자 하나 내 병세 지독(至毒)하여 기여이 죽을 터이니 이 몸이 죽거들랑 염습(斂襲)하기, 입관(入棺)하기 자네가 손수 하고, 출상(出喪)할 때 상여(喪輿) 배행(陪行), 시묘(侍墓) 살아 조석 상식(上食), 삼년상을 지낸 후에 비단 수건 목을 잘라 저승으로 찾아오면 이생에서 미진(未盡) 연분 단현부속(斷絃復續) 되려니와 내가 지금 죽은 후에 사나이라 명색(名色)하고 십세전 아이라도 자네 몸에 손대거나 집 근처에 얼씬하면 즉각 급살(急殺)할 것이니 부디부디 그리하소.”
속곳 아구대에 손김을 풀쑥 넣어 여인의 보지 쥐고 으드득 힘 주더니 불끈 일어 우뚝 서며 건장한 두다리는 유엽전(柳葉箭)을 쏘려는지 비정비팔(非正非八) 빗디디고, 바위 같은 두 주먹은 시왕전(十王前)에 문지기인지 눈위에 높이 들고, 경쇳덩이 같은 눈은 홍문연(鴻門宴) 번쾌(樊쾌)인지 찢어지게 부릅뜨고, 상투 풀어 산발(散髮)하고, 혀 빼어 길게 물고, 짚동같이 부은 몸에 피고름이 낭자하고 주장군(朱將軍)은 그저 뻣뻣, 목구멍에 숨소리 딸깍, 코구멍에 찬바람 왜, 생문방(生門方) 안을 하고 장승 죽음 하였구나.
여인이 겁이 나서 울 생각도 없지마는 저놈 성기(性氣) 짐작하고 임종(臨終) 유언(遺言) 있었으니 전례곡(傳例哭)은 해야 겠거든 비녀 빼어 낭자 풀고 주먹 쥐어 방을 치며,
“애고애고(哀苦哀苦) 설운지고, 애고애고 어찌 살꼬. 여보소, 변서방아 날 버리고 어디가나. 나도 가세 나도 가세. 임을 따라 나도 가세. 청석관 만날 적에 백년해로 하자더니 황천객 혼자 가니 일장춘몽(一場春夢) 허망하다. 적막산중(寂寞山中) 텅빈 집에 강근지친(强近之親) 고사하고 동네 사람 없으니 낭군 치상(致喪) 어찌 하고 이내 신세 어찌 살꼬. 웬년의 팔자로서 상부복을 그리 타서 송장 많이 보았지만 보던 중에 처음이네. 애고애고 설운지고. 나를 만일 못 잊어서 눈을 감지 못한다면 날 잡아가, 날 잡아가. 애고애고 설운지고.”
한참 통곡한 연후에 사자(死者)밥 지어 놓고, 옷깃 잡아 초혼(招魂)하고 혼잣말로 자탄(自嘆)하여,
“무인지경(無人之境) 이 산중에 나 혼자 울어서는 낭군 치상할 수 없어시충출호(屍蟲出戶)될 터이니, 대로변에 앉아 울어 오입남자 만난다면 치상을 할 듯하니 그 수가 옳다.”
하고 상부에 이력 있어 소복(素服)은 많겠다, 생서양포(生西洋布) 깃저고리, 종성내의(鍾城內衣), 생베 치마, 외씨 같은 고운 발씨 삼승보선 엄신 신고 구름같이 푸른 머리 흐트러지게 집어 얹고 도화색(桃花色) 두 뺨 가에 눈물 흔적 더 예쁘다.아장아장 고이 걸어 대로변을 건너가서 유록도홍(柳綠桃紅) 시냇가에 뵐듯 말듯 펄석 앉아 본래 관서 여인이라 목소리는 좋아서 쓰러져가는 듯이 앵도를 따는데 이것이 묵은 서방 생각이 아니라 새서방 후리는 목이니 오죽 맛이 있겠느냐. 사설(詞說)은 망부사(望夫詞) 비슷하게 염장(斂章)은 연해 애고 애고로 막겠다.
“애고애고 설운지고. 이 내 신세 가긍하다. 일신이 고단(孤單)키로 이십이 발옷 넘어 삼남을 찾아오니 사고무친(四顧無親) 객지(客地)로다. 오행궁합 좋다기에 육례 (六禮)없이 얻은 낭군 칠차(七次) 상부 또 당하니 팔자 그리 험굿던가. 구곡간장(九曲肝腸) 이 원통을 시왕전에 아뢰고저. 애고애고 설운지고. 여심상비(余心傷悲) 남물흥사(男勿興事) 보는 것이 설움이라. 류상(柳上)에 우는 황조(黃鳥) 벗을 오라 한다마는 황천 가신 우리 낭군 네 어이 불러오며 화간(花間)에 우는 두견 불여귀(不如歸)라 한다마는 가장 치상 못한 내가 어디로 가자느냐. 동원도리편시춘(東園桃李片時春)에 내 신세를 어찌하며 춘초년년(春草年年) 푸르른데 낭군 어이 귀불귀(歸不歸)오. 애고애고 설운지고. 염라국(閻羅國)이 어디 있어 우리 낭군가 계신고. 북해상(北海上)에 있으며는 안족서(雁足書)나 부칠 테오. 농산(롱山)이 가까우면 앵무소식(鸚鵡消息) 오련마는 주야(晝夜) 동포(同抱)하던 정리(情理) 영이별(永離別) 되단 말인가. 애고애고 설운지고.”
애원한 목소리가 화주성(華周城)이 무너질 듯 시냇물이 목메인다.
이 때에 화림(花林) 속으로 산나비 하나 날아 오는데 매우 덤벙거려 붉은 칠 실양갓에 주황사(朱黃絲) 나비 수염, 은구영자(銀鉤纓子) 공단(貢緞) 끈을 두 귀에 덮어매고 총감투 소년당상(少年堂上) 외꽃 같은 은관자(銀貫子)를 양편에 떡 붙이고, 서양포(西洋布) 대쪽누비 상하 통같이 입고, 한산세저(韓山細苧) 잇물 장삼(長衫), 진홍(眞紅) 분합(分合) 눌러 띠고, 흰 총박이 사날 초혜(草鞋), 고운 새김 버선목을 행전(行纏) 위에 덮어 신고, 좋은 은으로 꾸민 화류승도(花柳僧刀) 것고름에 늦게 차고, 오십시 진상칠선(進上漆扇) 기름 결어 손에 쥐고, 동구(洞口) 색주가(色酒家)에 곡차(曲茶)를 반취(半醉)하여 용두(龍頭) 새긴 육환장(六環杖)을 이리로 철철 저리로 철철, 청산 석경(石逕) 구비길로 흐늘거려 내려오다 울음 소리 잠깐 듣고 사면을 둘러보며 무한이 주저터니 여인을 얼른 보고 가만가만 들어가니 재치있는 저 여인이 중 오는 줄 먼저 알고 온갖 태를 다 부린다. 옥안(玉顔)을 번듯 들어 먼산도 바라보고 치마자락 돌려다가 눈물도 씻어 보고 옥수를 잠깐 들어 턱도 받쳐 보고, 설움을 못 이겨 머리도 뜯어보고 가도록 섧게 운다.
“신세를 생각하면 해당화(海棠花) 저 가지에 결항치사(結項致死)할 테로되 설부화용(雪膚花容) 이내 태도 아직 청춘 멀었으니 적막공산(寂寞空山) 무주고혼(無主孤魂) 그 아니 원통한가. 광대한 천지간에 풍류호사(風流豪士) 의기남자 응당 많이 있건마는 내 속에 먹은 마음 그 뉘라 알 수 있나. 애고애고 섧운지고.”
중놈이 그 얼굴 태도를 보고, 정신을 반이나 놓았더니 이 우는 말을 들으니 죽을 밖에 수 없구나. 참다 참다 못 견디여 제가 독을 쓰며 죽자하고 쑥 나서며,
“소승(小僧) 문안(問安)드리오.”
여인이 힐끗 보고 못 들은 체 연해 울어,
“오동에 봉 없으니 오작이 지저귀고 녹수에 원 없으니 오리가 날아든다. 에고애고 설운지고.”
중놈이 이 말을 들으니 저를 업신여기는 말이거든 죽고살기로 바짝바짝 달여들며,
“소승 문안이오, 소승 문안이오.”
여인이 울음을 그치고 점잖히 꾸짖으며,
“중이라 하는 것이 부처님의 제자이니 계행(戒行)이 다를 텐데 적막산중(寂寞山中) 숲 속에서 전후불견(前後不見) 여인에게 體貌 없이 달려드니 버릇이 괘씸하다. 문안은 그만하고 갈 길이나 어서 가제.”
저 중이 대답하되,
“부처님의 제자기로 자비심이 많삽더니 시주(施主)님 저 청춘에 애원이 우는 소리 뼈 저려 못 갈 테니 우는 내력 아사이다.”
여인이 대답하되,
“단부처 산중 살아 강근지친 없삽더니 신수가 불행하여 가군 초상 만났는데 송장조차 험악하여 치상할 수 없삽기로 여기 와서 우는 뜻은 담기(膽氣) 있는 남자 만나 가군 치상한 연후에, 청춘 수절(守節)할 수 없어 그 사람과 부부되어 백년해로 하자 하니 대사의 말씀대로 자비심이 있다면 근처로 다니시며 혈기남자(血氣男子) 만나거든 지시하여 보내시오.”
저 중이 또 물어,
“우리절 중 중에도 자원(自願)할 이 있으며는 가르쳐 보내리까.”
“치상만 한다면 그 사람과 살 터이니 승속(僧俗)을 가리겠소.”
저 중이 크게 기뻐하여,
“그리하면 쉬운 일 있소. 그 송장 내가 치고 나와 살면 어떻겠소.”
“아까 다 한 말이니 다시 물어 쓸 데 있소.”
저 중이 좋아라고 양갓 감투 벗어 찢고 공단갓끈 금관자(金貫子)는 주머니에 떼어 넣고 장삼 벗어 띠로 묶어 어깨에 들어 메고 여인은 앞을 서고 대사는 뒤에 서서 강쇠집을 찾아 올 때 중놈이 좋아라고 장난이 비상하다. 여인의 등덜미에 손도 씩 넣어보고 젖도 불끈 쥐여 보고 허리 질끈 안아보고 손목 꽉 잡아보며,
“암만해도 못 참겠네, 우선 한번 하고 가세.”
여인이 책망(責望)하여,
“바삐 먹으면 목이 메고, 급히 더우면 쉬 식나니 여러 해 주린 색심(色心) 아무리 그러하나, 죽은 가장 방에 두고 새 낭군 그 노릇이 내 인사 되겠는가. 다 되어 가는 일을 마음 조금 진정하소.”
중놈이 대답하되,
“일인즉 그러하네.”
수박 같은 대가리를 짜웃짜웃 흔들면서,
“십년 공부 아마타불 참 부처는 될 수 없어 삼생가약(三生佳約) 우리 미인 가부처(假夫妻)나 되어 보세.”
강쇠 문 앞에 당도하여,
“시체 방이 어디 있노.”
여인이 가리키며,
“저 방에 있소마는 시체가 불끈 서서 형용이 험악하니 단단히 마음 먹어 놀래지 말게 하오.”
이놈이 여인에게 협기(俠氣)를 보이느라고 장담(壯談)을 벗석하여,
“우리는 겁이 없어 칠야 삼경 깊어 가며 궂은 비 흣뿌릴 때, 적적(寂寂)한 천왕각(天王閣) 혼자 자는 사람이라 그처럼 섰는 송장 조금도 염려(念慮)없제.”
속으로 진언치며 방문 열고 들어서서 송장을 얼른 보고 고개를 푹 숙이며 중의 버릇하느라고 두 손을 합장(合掌)하고, 문안 죽음으로 요만하고 열반했제.
강쇠 여편네가 매장포(埋葬布), 백지(白紙) 등물(等物) 수습(收拾)하여 가지고서 뒤쫓아 들어가니 허망하구나. 중놈이 벌써 이 꼴 되었구나. 깜짝 놀라 발구르며,
”애고 이것 웬일인가. 송장 하나 치려다가 송장 하나 또 생겼네.“
방문을 닫고서 뜰 가운데 홀로 앉아 송장에게 정설하며 자탄 신세 우는구나.
“여보소, 변서방아, 어찌 그리 무정한가. 청석관에 만난 후에 각 포구로 다니면서 간신(艱辛)히 모은 전량(錢兩) 잡기로 다 없애고 산중살이 하쟀더니, 장승 어이 패여 때여 목신 동증 소년 죽음 모두 자네 자취(自取)로세. 사십구일 구병(救病)할 때 내 간장이 다 녹았네. 험악한 저 신세를 할 수 없어 대로변 가는 중을 간신히 홀렸더니 허신(許身)도 한 일 없이 강짜를 하느라고 송장치러 간 사람을 저 죽음 시켰으니 이 소문(所聞) 나거드면 송장 칠 놈 있겠는가. 송장만 쳐낸 후에 자네의 유언대로 수절(守節)을 할 터이니 다시는 강짜마소. 애고애고 내 신세야. 치상을 뉘가 할꼬.”
애긍히 우노라니 천만의외 솔대밋 친구 하나 달여들어,
“예. 돌아왔소. 구름 같은 집에 신선 같은 나그네 왔소. 퉤, 옥 같은 입에 구슬 같은 말이 쑥쑥 나오. 퉤, 이 개야, 짓지 마라. 낯은 왜 안 씻어 눈꼽이 다닥다닥, 나를 보고 짖느니 네 할애비를 보고 짖어라, 퉤.”
이런 야단 없구나. 여인이 살펴보니 구슬상모(象毛), 담벙거지, 바특이 맨 통장구에 적 없는 누비저고리, 때 묻은 붉은 전대(纏帶) 제멋으로 어깨 띠고, 조개장단 주머니에 주황사 벌매듭, 초록 낭릉(浪綾) 쌈지 차고, 청 삼승 허리띠에 버선코를 길게 빼어 오메장 짚신에 푸른 헝겊 들메고 오십살 늘어진 부채, 송화색(松花色) 수건 달아 덜미에 엇게 꽂고, 앞뒤꼭지 뚝 내민 놈 앞살 없는 헌 망건에 자개관자 굵게 달아 당줄에 짓눌러 쓰고, 굵은 무명 벌통 한삼(汗衫) 무릎 아래 축 처지고, 몸집은 짚동 같고, 배통은 물항 같고, 도리도리 두 눈구멍, 흰 고리테 두르고 납작한 콧마루에 주석(朱錫) 대갈 총총 박고, 꼿꼿한 센 수염이 양편으로 펄렁펄렁, 반백(半白)이 넘은 놈이 목소리는 새된 것이 비지땀을 베씻으며, 헛기침 버썩 뱉으면서,
“예, 오노라 가노라 하노라니 우리집 마누라가 아씨마님 전에 문안 아홉 꼬장이, 평안 아홉 꼬장이, 이구십팔 열여덟 꼬장이 낱낱이 전하라 하옵디다. 당 동 당. 페.”
여인이 기가 막혀 초라니를 나무라며,
“아무리 초라닌들 어찌 그리 경망한고. 가군의 상사 만나 치상도 못한 집에 장고소리 부당(不當)하네.”
“예, 초상이 낫사오면 중복(重服)막이, 오귀(惡鬼)물림 잡귀(雜鬼) 잡신(雜神)을 내 솜씨로 소멸(消滅)하자. 페. 당 동 당. 정월 이월 드는 액(厄)은 삼월 삼일 막아내고, 사월 오월 드는 액은 유월 유두(流頭) 막아내고, 칠월 팔월 드는 액은 구월 구일 막아내고, 시월 동지(冬至) 드는 액은 납월(臘月) 납일(臘日) 막아내고, 매월 매일 드는 액은 초라니 장고(長鼓)로 막아내세. 페.당 동 당. 통영칠(統營漆) 도리판에 쌀이나 되어 놓고 명실과 명전(命錢)이며, 귀가진 저고리를 아끼지 마옵시고 어서어서 내어 놓오.”
“여보시오. 이 초라니, 가가(家家) 문전(門前) 들어가면 오라는 데 어디 있소.”
“뒤꼭지 지르면서 핀잔 악담 하는 것을 꿀로 알고 다니오니 난장(亂杖) 쳐도 못 가겠소. 박살(撲殺)해도 못 가겠소.”
억지를 마구 쓰니 여인이 대답하되,
“중복(重複)막이 오귀물림 호강의 말이로세. 서서 죽은 송장이라 쳐 낼 사람 없어 시각(時刻)이 민망(憫망)하네.”
초라니가 좋아라고 장고를 두드리며 방정을 떠는구나.
“사망이다, 사망이다. 발뿌리가 사망이다. 불리었다 불리었다 좋은 바람 불리었다. 페. 둥 동 당. 재수 있네 재수 있네, 흰 고리눈 재수 있네. 복이 있네 복이 있네, 주석코가 복이 있네. 페. 둥 동 당. 어제 저녁꿈 좋기에 이상히 알았더니 이 댁 문전 찾아와서 소장 사망 터졌구나. 페. 당 동 당. 신사년(辛巳年) 괴질(怪疾)통에 험악하게 죽은 송장 내 손으로 다 쳤으니, 그 같은 선 송장은 외손의 아들이니 삯을 먼저 결단하오. 페. 당 동 당.”
여인이 게으른 강쇠에게 간장이 다 녹다가 이 손의 거동(擧動)보니 부지런하기가 위에 없어 짐대 끝에 앉아서도 정녕 아니 굶겠구나. 애긍히 대답하되,
“가난한 내 형세에 돈 없고 곡식 없어, 치상을 한 연후에 부부되어 살 터이오.”
초라니가 또 덩벙여,
“얼씨구나 멋있구나, 절씨구나 좋을씨고. 페. 당 동 당. 맛속 있는 오입장이 일색미인(一色美人) 만났구나. 시체 방문 어서 여오, 내 솜씨로 쳐서 낼께. 페, 동 당.”
여인이 방문 여니 초라니 거동보소. 시방(屍房) 문전 당도터니 몸 단속(團束) 매우 하며 장고 끈 졸라 매고, 채손에 힘을 주어 험악한 저 송장을 제 고사(告祀)로 눕히려로 부지런히 서두는데,
“여보소 저 송장아, 이내 고사 들어 보소. 페, 당 동 당. 오행 정기 생긴 사람 노소간에 죽어지면 혼령은 귀신되고 신체는 송장이되, 무슨 원통 속에 있어 혼령은 안 헤치고, 송장은 뻣뻣 섰노. 페, 당 동 당. 이내 고사 들어 보면 자네 원통 다 풀리리. 살았을 때 이승이요, 죽어지면 저승이라. 만사 부운(浮雲) 되었으니 처자 어찌 따라갈까. 훼파은수(毁破恩讐) 자세(仔細) 보니 옛 사람의 탄식일세. 페, 당 동 당.”
부드럽던 장고채가 뒤마치만 소리하여
“꽁꽁꽁.”
풀입 같은 새된 목이 고비 넘길 수가 없고, 날쌔게 놀던 몸집 삼동에 뒤틀이고, 한출첨배(汗出沾背) 가뿐 숨이 어깨춤에 턱을 채여, 한 다리는 오금 죽여 턱 밑에 장고 얹고, 망종(亡終) 쓰는 한 마디 목 하염없이 구성이라. 뒤마치 꽁치며 고사 죽음 돌아가니, 여인이 깜짝 놀라 손바닥을 딱딱 치며,
“또 죽었네, 또 죽었네. 방정맞은 저 초라니 자발없이 덤벙이다 허망히도 돌아간다. 고단한 내 한 몸이 세 송장을 어찌 할꼬.”
담배를 피워 물고 먼산 보고 앉았더니 대목 미처 파장(罷場)인가, 어‧농(漁農) 풍년 시평인가. 오색(五色)발가리 친구들이 지껄이며 들어온다. 풍각(風角)장이 한 패가 오는데, 그 중에 앞선 가객(歌客) 다 떨어진 통량갓에 벌이줄 매어 쓰고, 소매 없는 배중치막 권생원(權生員)께 얻어 입고, 세목(細木)동옷 때 묻은 놈 모동지(毛同知)께 얻어 입고, 안만 남은 누비저고리 신선달(申先達)께 얻어 입고, 다 떨어진 전등거리 송선달(宋先達)께 얻어 입고, 부채를 부치되 뒤에 놈만 시원하게 부치면서 들어와서 말버슴새 씨는 경조(京調) 원터도 못다 가고 금강(錦江) 이쪽 어투였다.
“여보시오, 이 마누라, 댁 송장이 접사(接死)하여 쳐낼 사람 없다 하니, 내 수단에 쳐내면 나하고 둘이 살겠소.”
여인이 대답하되,
“무슨 재조(才操) 지니셨소.”
“예, 나는 소리 명창(名唱) 가객(歌客)이오.”
여인이 또 물어,
“송선달 아시오.”
“예, 그게 내 제자요.”
“신선달 아시오.”
“예, 둘째 제자지요.”
“세상 사람 하는 말이 목단(牧丹)은 화중왕(花中王), 송선달은 가중왕(歌中王), 다시 윗수 없다는데 그 사람들 선생 되면 당신의 목 재조는 가중의 천자(天子)인가 보오.”
“남들이 그렇다고 수군수군한답디다.”
그 뒤에 퉁소쟁이 빡빡 얽은 전벽소경 통솟대 손에 쥐고, 강경장(江景場) 넉마 큰 옷 뻣뻣하게 풀을 먹여 초록 실띠 눌러 띠고, 지팡 막대 잡은 아이 열댓 살 거의 된 놈 굵은 무명 홑고의(袴衣) 길목 신고, 모시행전(行纏), 홍일광단(紅日光緞) 도리줌치, 갈매 창옷, 송화색(松花色) 동정, 쇠털 같은 노랑머리 밀기름칠 이마 재여 공단(貢緞) 댕기 벗게 땋고, 검무(劒舞) 출 칼 가졌으며, 가얏고 타는 사람 빳빳 마른 중늙은이 피골(皮骨)이 상련(相連)한데, 토질(土疾) 먹은 기침 소리 광쇠 치는 소리 같고, 긴 손톱 검은 때와 빈대코 코거웃이 입술을 모두 덮고, 떡메모자 대갓끈에 가얏고를 메었으되, 경상도 경주(慶州) 도읍(都邑) 그 시절에 난 것이라 복판이 좀이 먹고 도막난 열 두 줄을 망건(網巾)당줄 이어 매고, 쥐똥나무 괘(괘)를 고여 주석 고리 끈을 달아 왼어깨에 둘러메고 북 치는 놈 맵시 보소. 엄지러기 총각놈이 여드름과 개기름이 용천뱅이 초 잡은듯 짧은 머리 길게 땋고, 외손질로 늙은 놈이 체바퀴 열 두 도막 도막도막 주워 이어, 노구녹피(老狗鹿皮) 북을 매어 쐐기 제겨 끈을 달아, 양어깨에 둘러메고, 거들거려 들어오며 장담들을 서로 한다.
“송장이 어디 있소. 그 같은 것 쳐 내기는 똥누기는 발허리나 시제.”
여인이 이른 말이,
“그렇게 장담하다 실없이 죽은 사람 몇이 된 줄 모르겠소.”
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염려는 마시오. 내 노래 한 곡조는 읍귀신(泣鬼神)하는 터요, 가얏고 의논하면 진국미인(秦國美人) 허청금(許聽琴)에 형장사(荊壯士)도 잡았으며, 왕소군(王昭君) 출새곡(出塞曲)은 호인(胡人)도 낙루(落淚)하고, 옹문금(雍門琴) 슬픈 소리 맹상군(孟嘗君)도 울었으니, 내 또한 상심곡(傷心曲)을 처량(凄凉)히 타고 나면 멋있는 저 송장이 날 괄세(恝視)할 수 없제.”
통소장이 하는 말이,
“내 통소(洞蕭) 부는 법은 여읍여소(如泣如訴) 슬픈 소리, 계명산(鷄鳴山) 추야월(秋夜月)에 장자방(張子房)의 곡조로다. 팔천 제자 흩어질 때 우미인(虞美人)은 목 찌르고 항장사(項壯士)도 울었거든, 제까짓 송장이야 동지 섣달 불강아지.”
북치는 놈 내달으며,
“이 내 솜씨 북을 치면 전단(田單)이 되놈 칠 때, 시석지소(矢石之所) 우뚝 서서 원포고지(援포鼓之)하던 소리, 장익덕(張益德) 고성현(古城縣)에 관공(關公)님의 용맹 보자 삼통고(三通鼓) 치던 소리, 제아무리 험한 송장 아니 쓰러질 수 있나.”
검무 추는 아이 놈이 양손에 칼을 들고 연풍대(燕風臺) 좌우 사위 번듯번듯 둘러메고,
“여보시오, 기탄(忌憚) 마오. 소년 십오(十五) 이십시(二十時)에 일검증당백만사(一劍曾當百萬死)라 홍문연(鴻門宴) 큰 모임에 항장(項莊)의 날랜 칼이 날 당할 수가 없고, 양소유(陽少游) 대진중(大陣中)에 심오연(沈오烟)의 추던 춤이 내게 비하지 못할 테니 송장 치기 두말 있나. 송장 방이 어디 있소.”
각기 재조 자랑하니, 여인이 생각한즉 식구가 여럿이요, 재주가 저만하니 송장 서넛 쳐내기는 염려가 없겠거든,
“여보시오, 저 손님네, 송장 먼저 보아서는 아마 기가 막힐 테니 시체 방문 닫은 채로 툇마루에 늘어앉아 각색 풍류 하였으면, 맛있는 송장이니 감동하여 눕거든 묶어내기 쉬울 테니 그리하면 어떠하오.”
“그 말이 장히 좋소.”
굿하는 집에 공인뽄으로 마루에 늘어앉고 검무장이 일어서서 여민락(與民樂) 심방곡(心方曲)을 재미있게 한참 노니, 방에서 찬바람이 스르르 일어나며 쌍창문이 절로 열려 온몸이 으슥하며 독한 내가 코 찌르니, 눈뜬 식구들은 송장을 먼저 보고 제 맛으로 다 죽는다. 가객의 거동 보소. 초한가(楚漢歌)를 한참할 때,
“일후(日後) 영웅 장사들아, 초한 승부 들어보소. 절인지력(絶人之力) 부질없고, 순민심(順民心)이 으뜸일레. 한 패공(沛公) 십만대병(十萬大兵) 구리산하(九里山下) 십사면에 대진을 둘러 치고, 초 패왕(覇王)을 잡으려 할 때 거리거리 마병이요, 마루마루 복병(伏兵)이라.”
부채를 쫙 펼치며 숨이 딸각.
가얏고 놀던 사람 짝타령을 타노라고,
“황성(荒城)에 허조벽산월(荒城 虛照碧山月)이요, 고목(古木)은 진입창오운(盡入倉梧雲)이라 하던 이태백(李太白)으로 한 짝. 삼년적리관산월(三年笛裡關山月)이요, 만국병전초목풍(萬國兵前草木風)이라 하던 두자미(杜子美)로 한 짝. 둥덩덩 지둥덩둥.”
그만 식고.
북치던 늙은 총각 다시 치는 소리 없고, 칼춤 추던 어린아이 오도가도 아니하고 선자리에 꽉 서 있고, 통소 불던 얽은 봉사 송장 낯을 못 본 고로 죽음 차례 모르고서 먼눈을 번득이며 봉장추를 한창 불 때, 무서운 기운이 왈칵 들고, 독한 내가 콱 지르니 내미는 힘이 점점 줄어 그만 자진(自盡)하였구나.
여인이 기가 막혀서 울음도 울 수 없고, 사지(四脂)가 나른하여, 애겨 이를 어찌 할꼬. 이것들 앉은 대로 여기다 두어서는 아무 사람 와 보아도 우선 놀라 갈 테니, 방안에다 감추자고 하나씩 고이 안아 동서편 두 벽 밑에 차례로 앉혀 놓으니, 앉은 것은 명부전(冥府殿)에 시왕뽄, 집 이름은 초상(初喪) 상자(喪字), 팔상전(八喪殿) 시방문(尸房門) 닫고서 대문간에비껴 서서 대로변을 바라보니 어떠한 사람 하나 맛있는 연비정(燕飛程)을 권생원 비슷하게 냅다 떠는데,
“이봐, 벗님네야. 이때는 어느 땐고, 하사월(夏四月) 초파일(初八日)에 연자(燕子)는 남으로 펄펄 날아들고, 석양산로에 어디로 가자느냐. 천지로 장막(帳幕) 삼고, 일월로 등촉(燈燭) 삼고, 남의 집 내 집 삼고, 가는 길 노자(路資)되고, 멍석자리 등돗삼아 두고 꿰질러 다니다가 달은 밝고 바람 찬 밤에 광충다리 홀로 우뚝 서서 이내 신세를 솜솜 생각하니, 팔만장안(八萬長安) 억만가구(億萬家口) 방방곡곡(方方曲曲) 가가호호(家家戶戶) 귀돌적간을 꿰질러 다니며 보아도 이런 벌건 목두기의 아들 놈 팔자 또 어디 있을꼬. 애고애고 설운지고.”
으스러지게 부르면서 문전으로 들어오는데, 산쇠털 벙거지 넓은 끈 졸라매고 마가목채 등덜미에 꽂고 때묻은 고의 적삼 육승포(六升布) 온골전대 허리를 잡아매고 발감기 곱게 하여 짚신을 들멨는데, 키는 장승 같고, 낯은 징짝 같고, 눈은 화등잔(火燈盞)만, 코는 메주덩이, 입은 싸전 장되, 발은 동작(銅雀)이 거루선만, 초라니 탈 아니 써도 천생 말뚝이 뽄이거든, 여인을 썩 보더니 경조로 세치를 내갈기는데,
“이런 제어미를, 그리하여서 마누라가 낭군의 송장 쳐 주면 둘이 살자고 하는 마누라요.”
여인이 애긍히 대답하여,
“그러하오.”
“그 제어미를 할 송장이 어떻게 죽었단 말이오.”
불끈 일어서서 두 주먹 불끈 쥐고 이 놈이 연해 희색하여,
“누구를 콱 치려고 두 다리 벋디디고, 누구를 탁 차려고 두눈을 딱 부릅떴소. 에게, 그것이 용병이어든 그도 그렇겠지. 그도 가수제. 집에 갈퀴 있소.”
“예, 있소.”
“그 놈의 눈구멍을 내가 아니 보려 하니 고개를 숙이고서 그 놈 눈 웃시울을 긁어서 덮을 테니 마누라는 밖에 서서 갈퀴가 웃시울에 닿거든 닿았다 하오.”
이 놈이 갈퀴 들고 시체방에 들어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으로 갈퀴 들어 송장눈에 대면서,
“웃시울에 닿았소.”
여인이 뒤에 서서,
“조금 올리시오.”
“닿았소.”
“조금 내리시오.”
“닿았소.”
딱 잡아 긁은 것이 손이 조금 미끄러져 아랫시울 긁어 놓으니 눈이 툭 불거져서 앙하고 호랑이 재조를 하는구나. 가만히 쳐다보더니 이 놈이 깜짝 놀라 갈퀴를 내버리고 바로 뛰여 도망할 때 그물의 내 맡은 숭어 뛰듯, 선불 맞은 호랑이 닫듯, 곧 들고 째는구나.
여인이 대경하여 급히 급히 쫓아가며,
“여보시오, 저 손님네, 말씀이나 하고 가오.”
저 놈이 손 헤치며,
“그런 소리 하지 마오. 나 돌아가오, 나 돌아가오. 위방(危邦)은 불입(不入)이라, 나 돌아가오 .”
여인이 연해 불러,
“송장 치라 아니 하니 말만 잠깐 듣고 가오.”
꽃 같은 저 미인이 옥 같은 말소리로 따라오며 간청하니, 오입한 사람이라 어찌 할 수가 있나. 돌아서며 대답하되,
“무슨 말씀 하시려오.”
여인이 하는 말이,
“노변(路邊)에서 괴이하니 내 집으로 둘이 가서 딴방에서 잠을 자고 내가 이리 고적(孤寂)하니 말벗이나 하옵시다.”
저 놈이 흠득(欽得)하여,
“그리 합시다.”
허락하고 여인의 손목 잡고 정담하며 도로 올 때, 여인이 자세(仔細) 물어,
“어디서 사옵시며 존호(尊號)는 누구신데 어디로 가시다가 내 집을 어찌 알고 수고로이 오시니까.”
저 놈이 대답하되,
“예, 나는 서울 사는 뎁득이 김서방 재상댁(宰相宅) 마종(馬從)으로 경상도 황산역(黃山驛)에 좋은 말이 있다기에 그리로 가다가 마누라 일색으로 가군이 험사하여 치상하여 주는 사람 작배(作配)하여 살자는 말이 삼남 천지에 떠들썩하여 사람마다 전하기에 불원천리(不遠千里) 찾아왔소.”
여인이 또 물어,
“서울 사시고 신수 저리 건장한데 그만 송장 염려하여 버리고 가시기에는 내 얼굴이 누추(陋醜)하여 당신 눈에 아니 드오.”
뎁득이 이 말 듣고 여인의 등을 치며,
“미인 보면 정 있다가 송장 보면 정 떨어지오.”
언사(言辭) 좋은 저 여인이 속을 연해 질러 보아,
“사제갈(死諸葛)이 주생중달(走生仲達) 옛글로만 들었더니 저러한 호풍신(好風身)에 송장에게 쫓긴단 말 어디 행세할 수 있소. 불쌍한 이내 신세 버리고 가신다면 고통 자진할 터이니 그 아니 불쌍한가. 날 살리쇼, 날 살리쇼. 한양 낭군 날 살리쇼. 자네 만일 가려 하면 나를 먼저 죽여 주소.”
허리를 질끈 안고 온가지 어린 냥에 백만 교태(嬌態) 다 부리니, 서울 사나이라 뒤가 탁 풀이는데 허리에 띤 전대로 눈물을 씻기면서,
“울지 마오, 울지 마오. 아니 감세, 아니 감세. 죽으면 내가 죽지 자네 죽게 하겠는가.”
집으로 들어오며 의사를 새로 내어,
“자네 집에 떡메 있나.”
“떡메는 무엇하게.”
“영투지(寧鬪智) 불투력(不鬪力)을 먼저 생각 못 하였네.”
떡메를 내어 주니, 뎁득이 둘러메고 집 뒤로 돌아가서 주해(朱亥)의 진비(晉鄙) 치듯, 경포(경布)의 함관(函關) 치듯, 뒷벽을 쾅쾅 치니 송장이 벽에 치어 덜퍽 뒤쳐지는구나.
뎁득이가 좋아라고 땀씻으며 장담하여,
“제깟놈이 어디라고.”
여인은 더위한다 부채질하며 송장 묶어 내려 할 때 아무리 장사기로 송장 여덟 질 수 있나. 근처 마을 찾아 가서 삯군을 얻쟀더니, 마침 각설이패 셋이 달려드는데 온 머리를 다 둥치고 옆에 약간(若干) 남은 털을 감이상투 엇게 하여 이마에 붙이고서 영남의 돌림이라 영남장(嶺南場)만 헤 가겠다.
“떠르르 돌아왔소, 각설이라 멱설이라 동설이를 짊어지고 뚤뚤 몰아 장타령(場打令) 안경(眼鏡) 주관(柱管) 경주장(慶州場) 최복(최服) 입은 상주장(尙州場), 이 술 잡수 진주장(晋州場), 관민분의(官民分義) 성주장(星州場), 이랴 채쳐 마산장(馬山場), 펄쩍 뛰여 노리골장, 명태(明太) 옆에 대구장(大邱場), 순시(巡視) 앞에 청도장(淸道場).”
한 놈은 옆에 서서 입장고 낑낑 치고, 한 놈은 옆에 서서 살만 남은 헌 부채로 뒤꼭지를 탁탁 치며 두 다리를 빗디디고 허리짓 고개짓.
“잘한다, 잘한다. 초당 짓고 한 공부(工夫)냐, 실수가 없이 잘한다. 동삼 먹고 한 공부냐, 기운차게 잘한다. 목구멍에 불을 켰나, 훤하게도 잘한다. 뱃가죽도 두껍다, 일망무제(一望無除) 나온다. 네가 저리 잘할 때에 네 선생은 할 말 있나. 네 선생이 나로구나. 잘한다, 잘한다. 대목장에 목 쉴라. 잘한다, 잘한다. 너 못하면 내가 하마.”
여인이 묻는 말이,
“목소리는 명창이나 우리집에 송장 많아 지금 묶어 내려 하니 함께 묶어 지고 가면 삯을 후이 줄 테니 소견이 어떠한가.”
저 놈들 하는 말이,
“송장을 쳐 내이면 여인하고 산다기에 짚신짝 떼 붙이고 애써 애써 예 왔더니 남의 손에 떼였으니 송장이나 지고 갈께 송장 하나 닷 냥 삯에, 술, 밥, 고기 잘 먹이오.”
여인이 허락하니 네 놈이 송장 칠 때 한 등짐에 두 마리씩 공석으로 곱게 싸서 세 죽마다 태줄로 단단히 얽은 후에 짚으로 밖을 싸서 새끼로 자주 묶어 새벽달 못 떨어져 네 놈이 짊어지고, 여인은 뒤를 따라 북망산(北邙山)을 찾아갈 때 어화성 목 어울러 행색이 처량하다.
“어이 가리, 너허 너허. 연반군(延반軍)은 어디 가고 담뱃불만 밝았으며, 행자곡비(行者哭婢) 어디 가고 두견이는 슬피 우노. 어허 너허. 명정(銘旌), 공포(功布) 어디 가고 작대기만 짚었으며, 앙장(仰帳) 휘장(揮帳) 어디 가고 헌 공석을 덮었는고. 어허 너허. 장강(長강)틀은 어디 가고 지게송장 되었으며, 상제(喪制) 복인(服人) 어디 가고 일미인만 따라오는고. 어허 너허. 북망산이 어떻기에 만고영웅 다 가시노. 진 시황의 여산 무덤, 한 무제(武帝)의 무릉(茂陵)이며, 초 패왕의 곡성(穀城) 무덤, 위 태조의 장수총(將帥塚)이 다 모두 북망이니 생각하면 가소롭다. 어허 너허. 너 죽어도 이 길이요, 나 죽어도 이 길이라. 북망산천 돌아들 때 어욱새 더욱새, 떡갈나무 가랑잎, 잔 빗방울, 큰 빗방울, 소소리바람 뒤섞이어 으르렁 시르렁 슬피 불 때 어느 벗님 찾아오리. 어허 너허. 주부도(酒不到) 유령(劉伶) 분상토(墳上土)요, 금인(今人)이 경종(耕種) 신릉(信陵) 분상전(墳上田)에 번화 부귀 죽어지면 어디 있나. 어허 너허. 지고 가는 여덟 분이 다 모두 호걸이라 기주탐색(嗜酒耽色) 풍류가금(風流歌琴) 청누화방(靑樓花房) 어찌 잊고 황천북망 돌아가노. 어허 너허.”
한참을 지고 가니 무겁기도 하거니와 길가에 있는 언덕 쉴 자리 매우 좋아, 네 놈이 함께 쉬어 짐머리 서로 대어 일자(一字)로 부리고 어깨를 빼려 하니 그만 땅하고 송장하고 짐꾼하고 삼물조합(三物調合) 꽉 되어서 다시 변통(變通) 없었구나. 네 놈이 할 수 없어 서로 보며 통곡한다.
“애고애고 어찌 할꼬. 천개지벽(天地開闢)한 연후에 이런 변괴 또 있을까. 한 번을 앉은 후에 다시 일 수 없었으니 그림의 사람인가, 법당에 부처인가. 애고애고 설운지고. 청하는 데 별로 없이 갈 데 많은 사람이라, 뎁득이 자네 신세 고향을 언제 가고, 각설이 우리 사정 대목장을 어찌 할꼬. 애고애고 설운지고. 여보시오 저 여인네, 이게 다 뉘 탓이오. 죄는 내가 지었으니 벼락은 네 맞아라 굿만 보고 앉았으니 그런 인심 있겠는가. 주인 송장, 손님 송장 여인 말은 들을 테니 빌기나 하여 보소.”
여인이 비는구나.
“여보소 변낭군아, 이것이 웬일인가. 험악하게 죽은 송장 방안에서 썩을 것을 이 네 사람 공덕으로 염습(殮襲) 담부(擔負) 나왔으니, 가만히 누웠으면 명당을 깊이 파고 신체를 묻을 것을, 아이 밸 때 덧궂으면 날 때도 덪궂다고, 갈수록 이 변괸가. 사람 어디 살겠는가. 집에서 하던 변은 우리끼리 보았더니 이러한 대로변에 이 우세를 어찌할꼬. 날이 점점 밝아 오니 어서 급히 떨어지소. 안장(安葬)을 한 연후에 수절시묘(守節侍墓)하여 줌세.”
뎁득이가 중맹(重盟)을 연해 지어,
“여인의 치마귀나 만졌으면 벗긴 쇠아들이오. 상인이 없었으니 발상(發喪)이라도 하오리다.”
여인이 연해 빌어,
“대사(大師), 촐보, 풍각(風角)님네 다 각기 맛에 겨워 이 지경이 되었으니, 수원수구(誰怨誰咎)하자 하고 이 우세를 시키는가. 청산에 안장할 때 하관시(下棺時)가 늦어가니 어서 급히 떨어지소.”
아무리 애걸(哀乞)하되 꼼짝 아니 하는구나. 날이 훤히 새어 놓으니 뎁득이가 하는 말이,
“배고파 살 수 없네. 여인은 바가지 들고 동내로 다니면서 밥을 많이 얻어다가 우리들이 먹게 하되 짚 두어 묶음 얻어 오쇼.”
“짚은 무엇하게.”
“몇 해가 지나든지 목숨 끊기 전까지는 이 자리에 있을 테니, 비 오면 상투 덮게 주저리나 틀어 두게.”
여인을 보낸 후에 각기 설움 의논할 때, 이것들 앉은 데가 원두(園頭)밭 머리로서 참외 한참 산영하니, 막은 아직 아니 짓고 밭 임자 움생원(生員)이 집에서 잠을 자고 밭 보려 일찍 올 때, 먼지 낀 묵은 관을 돛 단 듯이 높이 쓰고, 진동 좁고 된짓 달아 소매 좁은 소창의와 굽 다 닳은 나막신에 진 담뱃대 중동 쥐고, 살보 짚고 오다가서 밭머리 사람 보고 된 목으로 악써 물어,
“네, 저것들 웬 놈이냐.”
뎁득이 대답하되,
“담배 장사요.”
“그 담배 맛 좋으냐.”
“십상 좋은 상관초(上關草)요.”
“한 대 떼어 맛 좀 보자.”
“와서 떼어 잡수시오.”
마음 곧은 움생원이 담배 욕심 잔뜩 나서 달려들어 손을 쑥 넣으니 독한 내가 코 쑤시고, 손이 딱 붙는구나. 움생원이 호령하여,
“이놈, 이게 웬일인고.”
뎁득이 경판으로 물어,
“왜, 어찌 하셨소.”
“괘씸한 놈 버릇이라 점잖은 양반 손을 어찌 쥐고 아니 놓노.”
뎁득이와 각설이가 손뼉치며 대소하여,
“누가 손을 붙들었소.”
“이것이 무엇이냐.”
“바로 하제. 송장 짐이오.”
“네 이놈, 송장짐을 외밭머리 놓았느냐.”
“새벽길 가는 사람 외밭인지 콩밭인지 아는 제어미할 놈 있소.”
움생원이 달래여,
“그렇든지 저렇든지 손이나 떼다고.”
네 놈이 각문자(各文字)로 대답하되,
“아궁불열(我窮不閱)이오,”
“오비(吾鼻)도 삼척(三尺)이오.”
“동병상련(同病相憐)이오.”
“아가사창(我歌査唱)이오.”
움생원이 문자속은 익어,
“너희도 붙었느냐.”
“아는 말이오.”
“할 장사가 푹 쌓였는데 송장장사 어찌 하며, 송장이 어디 있어 저리 많이 받아 지고 어느 장을 가려 하며, 송장 중에 붙는 송장 생전 처음 보았으니, 내력이나 조금 알게 자상(仔詳)히 말하여라.”
뎁득이 하는 말이,
“지리산중 예쁜 여인 가장이 악사하여 치상을 해주면 함께 살자 한다기에 그 집을 찾아간즉 송장이 여덟이라 간신히 치상하여 각설이 세 사람과 둘씩 지고 예 왔더니, 나도 붙고 게도 붙어 오도가도 못할 터니 그 내력을 알 수 있소.”
움생원이 의사(意思) 내어,
“그리하면 좋은 수 있다. 오고가는 사람들을 보는 대로 후려들여 무수히 붙였으면 소일(消日)도 될 것이요, 뗄 의사도 날 것이니 그 밖에 수가 없다.”
“기소불욕(己所不欲)을 물시어인(勿施於人)이라니 일은 아니 되었으되, 궁무소불위(窮無所不爲)라니 재조대로 하여 보오.“
이 때에 하동(河東) 목골, 창평(昌平) 고살메, 함열(咸悅) 성불암(成佛庵), 담양(潭陽), 옥천(沃川), 함평(咸平) 월앙산(月仰山) 가리내패가 창원(昌原), 마산포(馬山浦), 밀양(密陽), 삼랑(三浪), 그 근방들 가느라고 그 앞으로 지나다가 움생원의 관을 보고, 걸사(乞士)들이 절을 하여,
“소사(小士) 문안이오, 소사 문안이오.”
그 뒤에 아기네들이 낭자도 곱게 하고 고방머리 엇게 하고, 다리 아파 잘쑥잘쑥 지팡막대 짚었으며, 두 줄에 다리 넣고 걸사 등에 업혔으며, 수건으로 머리 동여 긴담뱃대 물었으며, 하하 대소 웃으면서, 낭낭옥어(琅琅玉語) 말도 하고 무수히 오는구나. 움생원이 불러,
“이애 사당(寺黨)들아, 너의 장기대로 한 마디씩 잘만 하면 맛 좋은 상관 담배 두 구부씩 줄 것이니 쉬어 가면 어떠하냐.”
이것들이 담배라면 밥보다 더 좋거든,
“그리 하옵시다.”
판놀음 차린 듯이 가는 길 건너편에 일자로 늘어앉아, 걸사들은 소고(小鼓) 치며, 사당은 제차(第次)대로 연계사당 먼저 나서 발림을 곱게 하고,
“산천초목이 다 성림(盛林)한데 구경가기 즐겁도다. 이야어. 장송(長松)은 낙낙(落落), 기럭이 펄펄, 낙낙장송이 다 떨어졌다. 이야어. 성황당(城隍堂) 궁벅궁새야 이리 가며 궁벅궁 저 산으로 가며 궁벅궁 아무래도 네로구나.”
움생원이 추어,
“잘한다, 내 옆에 와 앉거라. 네 이름이 무엇이냐.”
“초월(初月)이오.”
또 하나 나서며,
“녹양방초(綠楊芳草) 저문 날에 해는 어이 더디 가고, 오동야우(梧桐夜雨) 성긴 비에 밤은 어이 길었는고. 얼싸절싸 말 들어 보아라, 해당화 그늘 속에 비 맞은 제비같이 이리 흐늘 저리 흐늘, 흐늘흐늘 넘논다. 이리 보아도 일색이요, 저리 보아도 일색이요, 아무래도 네로구나.”
“잘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구강선(具江仙)이오.”
한 년은 또 나서며,
“오돌또기 춘향(春香) 춘향 유월의 달은 밝으며 명랑한데, 여기 저기 연저 버리고 말이 못된 경이로다. 만첩청산(萬疊靑山)을 쑥쑥 들어가서 늘어진 버드나무 들입다 덤뻑 휘여잡고 손으로 줄르르 훑어다가 물에다 둥둥 띄워 두고 둥덩둥실 둥덩둥실 여기 저기 연저 버리고 말이 못된 경이로다.”
“어, 잘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일점홍(一點紅)이오.”
또 한년 나서며,
“갈까보다 갈까보다, 임을 따라 갈까보다. 잦힌 밥을 못 다 먹고 임을 따라 갈까보다. 경방산성(傾方山城) 빗두리길로 알배기 처자(處子) 앙금살살 게게 돌아간다.”
“잘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설중매(雪中梅)요.”
한 년이 나서며 방아타령을 하여,
“사신(使臣) 행차(行次) 바쁜 길에 마중참(站)이 중화(中和), 산도 첩첩 물도 중중(重重) 기자왕성(箕子王城)이 평양, 모닥불에 묻은 콩이 튀어나니 태천(太川), 청천(靑天)에 뜬 까마귀 울고 가니 곽산(郭山), 차던 칼을 빼어 내니 하릴없는 용천 (龍川), 청총마(靑聰馬)를 둘러 타고 돌아보니 의주(義州).”
“잘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월하선(月下仙)이오.”
한 년은 자진방아 타령을 하여,
“누각(樓閣)골 처녀는 쌈지장사 처녀, 어라뒤야 방아로다. 왕십리 처자는 미나리장사 처자, 순담양 처자는 바구니장사 처자, 영암(靈岩) 처자는 참빗 장사 처자.”
“어, 잘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금옥(金玉)이오.”
한참 이리 농탕(弄蕩)칠 때, 이 때에 시임(時任) 향소(鄕所) 옹좌수(雍座首)가 수유(受由)하고 집이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도포 입고 안장말에 향청(鄕廳) 하인(下人) 후배(後陪)하여 달래달래 돌아가니 움생원이 불러,
“여보소, 옹좌수. 자네가 아관(亞官)으로 기구가 좋다하여 출패(出牌)나 무서워 하지, 나 같은 빈천지교(貧賤之交) 시약불견(視若不見) 지나가니 부귀자교인(富貴者驕人) 말이 자네 두고 한 말일쎄.”
좌수가 할 수 있나, 말에서 내려 걸어오니 움생원이 제 옆에 앉혔구나. 좌수가 물어,
“노형의 평생행세 내가 대강 짐작하니 이러한 큰 길가에서 협창행락(挾娼行樂) 의외로세.”
움생원이 연해 웃어,
“꿈 같은 우리 인생 육십이 가까우니 남은 날이 며칠인가 파탈(擺脫)하고 놀아 주세. 얘, 옥천집, 좌수님 들으시게 시조(時調)나 하나 하여라.”
그렁저렁 장난 후에 좌수가 하직(下直)하여,
“향청(鄕廳)에 일 많아서 총총히 돌아가니 노형(老兄)은 사당하고 행락을 하게 하소.”
움생원이 웃어,
“자네 소견대로.”
좌수 불끈 일어서니 밑구멍이 안 떨어져,
“애겨, 이게 웬일인고.”
움생원은 좋아라고 곧장 웃어 두었구나.
“허허, 내 말 들어 보소. 노형은 내게 비하면 식자(識字)도 들었고, 경락(京洛)도 출입하고, 읍내 가 오래 있어 관장(官長)도 모셔 보고, 지사(知事)하는 아전(衙前) 친구 응당히 많을 테니, 송장이 붙는 말을 자네 혹 들었는가.”
좌수 귀가 매우 밝아 깜짝 놀라 급히 물어,
“이것이 송장인가.”
남은 급히 서두는데 움생원은 훨씬 늘여,
“그것은 무엇이든지 장차 수작(酬酌)하려니와, 송장이 붙는다는 말 사기(史記)에나 경서(經書)에나 혹 어디서 보았는가.”
옆에 있던 사당들이 깜짝 놀라 일어서니 모두 다 붙었구나. 요망(妖妄)한 이것들이 각색으로 재변(才辯) 떨 때 애고애고 우는 년, 먼산보고 기막힌 년, 움생원 바라보며 더럭더럭 욕하는 년, 제 화에 제 머리를 으등으등 찧는 년, 살풍경(殺風景) 일어나니 좌수는 어이없어 암말도 못 하고서 굿 보는 사람나서 우두커니 앉았다가,
“여보소, 저 짐이 다 모두 송장인가.”
움생원 변구(辯口)하여,
“하나씩이면 좋게.”
“둘씩이란 말인가.”
“방사(倣似)한 말이로세.”
“어느 고을 올 시절이 송장 풍년 그리 들어 몰똑하게 지고 왔소.”
뎁득이 하던 말을 움생원이 송전(誦傳)하니, 좌수와 사당들이 서로 보고 걱정한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굿 보느라고 아니 가고, 먼 데 마을, 근처 마을 구경하자 모여드니, 그리 저리 모인 사람 전주장(全州場)이 푼푼하다.
구경꾼 모인 데는 호도(胡桃)엿장수가 먼저 아는 법이었다. 갈삿갓 쓰고 엿판 메고 가위 치며 외고 온다.
“호도엿 사오, 호도엿 사오. 계피(桂皮) 건강(乾薑)에 호도엿 사오. 가락이 굵고 제 몸이 유하고 양념 맛으로 댓 푼. 콩엿을 사려우, 깨엿을 사려우. 늙은이 해소에 수수엿 사오.”
여러 사람들이 호도엿 사먹으며 하는 말이,
“이것이 원혼이라, 삼현(三弦)을 걸게 치고 넋두리를 하였으면 귀신이 감동하여 응당 떨어질 듯하다.”
목 좋은 계대(繼隊)네를 급급히 청해다가 좌수가 자당(自當)하여 굿상을 차려 놓고 멋있는 고인들이 굿거리를 걸게 치고, 목 좋은 제대네가 넋두리춤을 추며,
“어라 만수(萬壽) 저라 만수. 넋수야 넋이로다. 백양청산(白楊靑山) 넋이로다. 옛 사람 누구 누구 만고원혼(萬古寃魂) 되었는고. 공산야월(空山夜月) 불여귀(不如歸)는 촉 망제(望帝)의 넋일런가. 무관춘풍(武關春風) 우는 새는 초 회왕(懷王)의 넋이로다. 어라 만수. 청청향초나군색(靑靑向楚羅裙色)은 우미인의 넋일런가. 환패공귀월야혼(環패空歸月夜魂)은 왕소군(王昭軍)의 넋이로다. 어라 만수 저라 대신. 넋일랑은 넋반에 담고, 신첼랑은 화단(花壇)에 뫼셔 밥전(廛), 넋전(廛), 인물전(廛)과 온필 무명, 오색 번(번)에 넋을 불러 청좌(請座)하자. 어라 만수 저라 대신. 열 대왕님 부리는, 사자(使者) 일직사자(日直使者) 월직사자(月直使者) 금강야차(金剛夜叉) 강림도령(降臨道令), 이 생 망제 잡아갈 때 뉘가 감히 거역할까. 어라 만수 저라 대신. 만승천자(萬乘天子), 삼공 육경(六卿) 기구로도 할 수 없고, 천석(千石) 노적(露積) 만금부자 값을 주고 면켔는가. 멀고 먼 황천길을 가자 하면 따라가네. 어라 만수 저라 대신. 지장보살(地藏菩薩) 장한 공덕, 보도중생(普度衆生)하려 하고 지옥문(地獄門) 닫아 놓고, 서양길을 가르칠새 불쌍한 여덟 목숨 비명에 죽었으니, 어느 대왕께 매였으며, 어느 사자 따라갈까. 어라 만수 저라 만수. 지하에 맨 데 없고, 인간에 주인 없어 원통히 죽은 혼이 신체 지켜 있는 것을 무지한 인생들이 경대(敬待)할 줄 모르고서 손으로 만져 보고 걸터앉기 괘씸쿠나. 어라 만수 저라 만수. 옹좌수 자넬랑은 일읍(一邑)의 아관(亞官)이요, 움생원 자넬랑은 양반의 도리로서 경이원지(敬而遠之) 귀신대접 어이 그리 모르던가. 어라 만수 저라 대신. 사당, 걸사, 명창, 가객, 오입장이 너의 행세 취실(取實)할 수 왜 있으리. 비옵니다, 여덟 혼령 무지한 저 인생들 허물도 과도 말고, 갖은 배반(杯盤) 진사면(陳謝免)에 제대춤에 놀고 가세. 어라 만수 저라 만수.”
우두커니 짐꾼 넷만 남겨 놓고 위에 붙은 사람들은 모두 다 떨어져서, 제대에게 치하(致賀)하고 뎁득이 각설이에게 각각 하직하는구나.
이것들이 식구 많이 있을 때는 소일하기 좋았더니 비 오는 날 파장같이 경각간(頃刻間)에 흩어지니 심심하여 살 수 있나. 뎁득이가 그래도 서울 손이라 애긍히 사정으로 송장에게 비는 목이 의지하여 듣겠거든,
“천고에 의기남자 원통히 죽은 혼이 지기지우(知己之友) 못 만나면 위로할 이 뉘 있으리. 역수상(易水上) 찬 바람에 연태자(燕太子)를 하직하고 함양에서 죽었으니 협객 형경(荊卿) 불쌍하고, 계명산(鷄鳴山) 밝은 달에 우미인을 이별하고, 오강(烏江)에 자문(自刎)하니 패왕 항적(項籍) 가련하다. 이 세상에 변서방은 협기 있는 남자로서 술먹기에 접장(接長)이요 화방에 패두(牌頭)시니, 간 데마다 이름 있고 사람마다 무서워한다. 꽃 같은 저 미인과 백년을 살쟀더니 이슬 같은 이 목숨이 일조(一朝)에 돌아가니 원통하고 분한 마음 눈을 감을 수가 없어, 뻣뻣 선 장승 송장. 주 동지 자네 신세 부처님의 제자로서 선공부(禪工夫) 경문(經文) 외어 계행을 닦았으면 흰 구름 푸른 뫼에 간 데마다 도방이요, 비단 가사(袈裟) 연화탑(蓮花塔)에 열반(涅槃)하면 부처될새 잠시 음욕 못 금하여 비명횡사(非命橫死) 거적 송장. 촐첨지(僉知) 자네 정경 동냥 고사 천업(賤業)이라, 낯에는 탈을 쓰고, 목에는 장고 메고, 돈푼 쌀줌 얻자 하고 이집 저집 다닐 적에 따른 것이 아이들과 짖는 것이 개 소리라, 탄 분복(分福)이 이러한데 가량(可量) 없는 미인 생각 제 명대로 못 다 살고 남의 집에 붙음송장. 풍객(風客) 한량(閑良) 다섯 분은 오입 맛이 한통속. 왕별목장 춘향가 가객이 앞을 서고, 가얏고 심방곡(心方曲) 통소 소리 봉장취 연풍대(燕風臺) 칼춤이며, 서서 치는 북 장단에 주막(酒幕)거리 장판이며, 큰 동내 파시평에 동무 지어 다니면서 풍류로 먹고 사니 눈치도 환할 테요, 경계(經界)도 알 터인데 송장을 쳐 낸대도 계집은 하나 뿐, 누구 혼자 좋은 꼴 보이려 한꺼번에 달려들어 한날 한시 뭇태 송장 여덟 송장 각기 설움 다 원통한 송장이라. 살았을 때 집이 없고 죽은 후에 자식 없어 높은 뫼 깊은 구렁 이리 저리 구는 뼈를 묻어줄 이 뉘 있으며, 슬픈 바람 지는 달에 애고애고 우는 혼을 조상할 이 뉘 있으리. 생각하면 허사로다, 심사 부려 쓸 데 있나. 이 생 원통 다 버리고 지부명왕(地府明王) 찾아가서 절절이 원정하여 후생의 복을 타서, 부귀가에 다시 생겨 평생행락하게 하면 당신네 신체들은 청산에 터를 잡아 각각 후장(厚葬)한 연후에 년년기일 돌아오면 내가 봉사(奉祀)할 것이니 제발 덕분 떨어지오.”
애긍히 빈 연후에 네 놈 불끈 일어서니 모두 다 떨어졌다.
북망산 급히 가서 송장짐을 부리니 석 짐은 다 부리고 뎁득이 진 송장은 강쇠와 초라니라 등에 붙어 뗄 수 없다. 각설이 세 동무는 여섯 송장 묻어 주고 하직하고 간 연후에 뎁득이 분을 내어 사면을 둘러보니 곳곳 큰 소나무 나란히 두주 서서 한 가운데 빈틈으로 사람 하나 가겠거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고울고울 달음박질 소나무 틈으로 쑥 나가니 짊어진 송장짐이 우두둑 삼동 나서 위 아래 두 도막은 땅에 절퍽 떨어지고 가운데 한 도막은 북통같이 등에 붙어 암만해도 뗄 수 없다. 요간폭포괘장천(遙看瀑布掛長天) 좋은 절벽 찾아가서 등을 갈기로 드는데 갈이질 사설이 들을 만하여,
“어기여라 갈이질. 광산(匡山)에 쇠방앗고 문장공부 갈이질. 십년을 마일검(磨一劍) 협객의 갈이질. 어기여라 갈이질. 춘풍에 저 나비가 향내만 찾아가다 거미줄을 몰랐으며, 산양에 저 장끼가 소리만 찾아가다 포수 우레 몰랐구나. 어기여라 가리질. 먼저 죽은 여덟 송장 전감(前鑑)이 밝았는데, 철모르는 이 인생이 복철(覆轍)을 밟았구나. 어기여라 갈이질. 네번째 죽은 목숨 간신히 살았으니 좋을씨고 공세상(空世上)에 오입 참고 사람되세. 어기여라 갈이질.”
훨씬 갈아 버린 후에 여인에게 하직하여,
“풍류남자 가려서 백년해로하게 하오. 나는 고향 돌아가서 동아부자(同我婦子) 지낼 테오.”
떨뜨리고 돌아가니 개과천선(改過遷善) 이 아닌가. 월나라 망한 후에 서시가 소식 없고, 동탁(董卓)이 죽은 후에 초선이 간 데 없다. 이 세상 오입객이 미혼진(迷魂津)을 모르고서 야용회음(冶容誨淫) 분대굴(粉黛窟)에 기인도차오평생(幾人到此誤平生)고. 이 사설 들었으면 징계가 될 듯하니 좌상에 모인 손님 노인은 백년향수, 소년은 청춘불로 수부귀다남자(壽富貴多男子)에 성세태평하옵소서. 덩지 덩지.
변강쇠가 창본 (박동진본)
아니리
중년에 맹랑한 일이 있던 것이었다. 평안도 월경촌에 한 여인이 살고 있으니, 얼골은 춘이월에 반개도화가 옥빈(玉빈)에 어리었고, 초승에 지는 달빛이 아미간에 비치었다. 초승에 지는 달빛이 아미간에 비치었다. 세류같이 가는 허리는 봄바람에 하늘하늘, 찡그리며 웃는 것과 말하며 걷는 태도는 서시, 양귀비라도 따라갈 재간이 없던 것이었다. 그런디 사주 팔자를 어떻게 더럽게 타고 났던지, 서방을 잡아 먹는듸 지긋지긋하고 징글징글하게 잡아먹는듸, 꼭 이렇게 잡아먹던 것이었다.
중몰이 (옹녀 상부(喪夫) 이력)
열 다섯살에 얻은 서방은 첫날밤 잠자리에 급상병(傷寒病)으로 잡아먹고, 열 여섯 살에 얻은 서방 당창병(唐瘡病)으로 잡아먹고, 열 여덟 살에 얻은 서방 벼락맞아 죽어버리고, 열 아홉 살에 얻은 서방 천하에 도적놈으로 포도청에 끌려가서 난장맞아 죽어버리고, 스무 살에 얻은 서방은 비상먹고 죽어버리고, 스물 한 살에 얻은 서방은 지랄병으로 죽어버리니, 서방에 퇴가 나고 송장이 신물난다. 이삼 년씩 걸러 가며 상부(喪夫)를 할지라도 소문들이 흉악(凶惡)할 텐듸, 일년간에 하나씩을 전례(前例)로 다 잡아먹고, 그 중에는 기둥서방, 간부, 애부, 입 한번 쩍 맞춘 놈, 허리 한번 안어본 놈, 손목 한번 잡아 본 놈, 눈 한번 꿈쩍한 놈, 치마꼬리 한번 쥔 놈, 젖 한번 만져본 놈,맣 헌번 건네본 놈, 심지어는 눈 한번을 맞춘 놈까지 그저 대고 죽어 놓으니, 한 달이면 뭇이 넘고, 일 년이면 통반이요, 윤삭(閏朔)이 든 해는 두통 뭇씩 그저 대고 설거지를하여 놓으니, 남자 볼 수가 전혀 없네.
아니리
어찌 대고 서방을 잡아먹었든지간에, 삼십리 안팎에는 상투 올린 사내놈은 한놈도 볼 수 없고, 열댓 살 먹은 총각놈도 볼 수가 없으니, 여자들이 밭을 갈고 처녀가 집을 지니, 평안도와 황해도 양도가 공론하되, 이 여자를 두었다가는 남자라고는 한놈도 볼 수 없고, 여인천하가 될 것이라. 이 여자를 다른 도로 쫓아버릴 밖에는 없다 하고 양도가 합세허여 이 여인을 쫓아 내니, 이 여인이 하릴없이 쫓기어 나오는데, 파랑보찜 옆에 끼고, 동백기름 많이 발라 낭자를 곱게 하고, 산호비녀 찔렀구나. 햇동햇동, 나오면서 혼자 악을 쓰는구나.
진양 (옹녀 쫓겨남)
허허, 이런 인심 보소. 황평안도가 아니면는 사람 살 곳 없다더냐. 삼남 사나이는 더 좋다더라. 노정기로 내려오는듸, 중화를 지나 황주를 지내고, 봉산 서흥 평산을 지나 동설령을 얼른 넘어, 금천 떡전거리를 얼른 지나 청석골 좁은 길로 허유허유 올라를 올 제,
아니리
그때 마침 변강쇠라고 하는 놈이 있으니 이놈이 천하에 잡놈이라. 삼남에서 빌어먹다가 양서(兩西)가 좋다는 말을 듣고 양서로 올라가는듸, 하필이면 청석골 좁은 골짜기에서 둘이 서로 딱 만났지. 간흉스런 여자가 힐끗 보고서 지나가니, 음흉스런 강쇠놈이 말을 한번 건네는데,
중몰이 (강쇠와 옹녀 청석골 만남)
여보, 저 마누라님 어디로 가오. 여보 저 마누라님 어디로 가오. 숫처녀 같었으면 핀잔을 하고 지나가든지, 그렇지 못허면 못 들은 척하고 가련마는, 이 간나위 같은 여자가, 훌림목을 곱게 써서, 삼남으로 갑니다. 강쇠가 듣고 묻는 말이, 혼자서 가십니까. 예, 나 혼자 갑니다. 강쇠 듣고 좋아라고, 젊은 나이 고운 얼굴에 무섭겠구만. 내 팔자가 무상허여 상부를 많이 허고 자식 하나 전혀 없어, 나와 같이 갈 사람은 그림자뿐이라오. 강쇠가 듣고 좋아라고, 당신은 과부요, 나는 홀애비라, 우리 둘이 살면은 어떻겠소.내 팔자가 기박하여 상부를 많이 허고, 다시는 낭군을 안 얻자 고 단단 맹서허였으니, 임자가 하도 그래싸니 궁합이나 한번 봅시다.
중중몰이 (청석골 행례)
강쇠가 듣고서 좋아라고, 강쇠가 듣고 좋아라고, 불취동성이라고 하였으니 그대 성은 무엇이오. 나는 옹가요. 예, 나는 변서방이요.그대 생은 무슨 생이요. 갑자생이오. 예, 나는 임술생이오. 나는 궁합을 잘 보기로 삼남에서 유명한듸, 천간으로 보자 하면, 갑(甲)은 양목(陽木)이고 임은 양수(陽水)라, 수생목(水生木)이 더욱 좋고 납음(納音)으로 말을 하면 임술(壬戌) 계해(癸亥) 대해수(大海水)라. 갑자을축(甲子乙丑) 해중금(海中金)허니 금생수(金生水)가 더우기 좋다. 아주 천생배필(天生配匹)이오. 오늘이 기유일(己酉日)이라. 부부짝패 좋을씨고. 당일 행례를 지냅시다. 여자 역시 좋아라고 흥겨워서 허락하니, 청석골로 처가 삼고 둘이 서로 손목 잡고 바위 위에 올라가서 대사를 치루는데, 신랑 신부 두 년놈이 이력이 찬 것이라. 이런 야단이 없더니라. 멀끔한 대낮에 남녀가 홀딱 벗고 매사에 좋은 장난, 천생 양골 강쇠놈이, 여자 양각 반짝 들고 옥문관을 들여다 보고 이상하게도 생겼다, 맹랑하게도 생겼다. 늙은 중의 입이던가 이는 없고 물만 돈다. 쏘내기를 맞었는가 언던지게 패였구나. 콩밭 팥밭을 지냈는가 돔부꽃이 피었구나. 도끼날을 맞었는지 금바르게 터졌구나. 생수터에 온답인가 물이 항상 괴어 있네. 무슨 말을 하려는가 옴질옴질 하는구나. 천리 행정 내려오다 주먹 바우가 신통하다. 만경창파 조개든가 혀를 물게 빼어 있고. 임실 곶감을 먹었는지 곶감씨가 꼭 물렸고, 만첩청산 으름인가 지가 홀로 벌어졌네. 영계백숙을 먹었던지 닭의 벼슬이 비쳤구나. 파명당을 지냈던가 더운 김이 모락모락. 지가 무엇이 즐거운지 반만 웃어 두었구나. 곶감 있고 으름 있고, 조개 있고 영계 있으니, 제사상은 걱정없네. 저 여자도 좋아라고, 강쇠 물건을 가르치며, 이상히도 생겼다. 맹랑하게도 생겼구나, 전배사령을 지냈는가 쌍걸랑을 늦게 차고, 오군문 군로던가 복떡이를 붉게 쓰고, 송아지에 말뚝인가 철고삐를 둘렀구나. 감기 몸살이 들었는가 맑은 코가 우일이며, 성정도 혹독하다, 홰 곧 나면 눈물 난다. 어린아이 병이든가 젖은 어찌 게웠으며, 제삿상에 숭어든가 꼬챙이 구녁이 완연하고, 뒷 절에 중이던가 민대가리가 되었구나. 소년 인사를 배웠던지 꼬박꼬박 절을 한다. 고초 찧던 절굿댄가 검붉기는 웬일인가. 칠팔월에 알밤인가 두 쪽 한테 붙었구나. 냇불가에 물방아던가 떨구덩 떨구덩 하는구나. 절굿대와 소고삐며 물방아가 있었으니 세간살이 걱정없네. 강쇠놈도 좋아라고 둘이 서로 꼭 붙들고 여차 여차 하였구나.
아니리
두 사람이 흥에 겨워 놀다가 박장대소하고, 둘이 서로 비겼으니 이제 등에다 업고서 놀아보자. 여인이 좋아라고, 천선호지라 하였으니 낭군이 나를 먼저 업으시오. 강쇠란 놈이 여자를 업고 가끔가끔 돌아보며 사랑가로 놀던 것이었다.
진양 (사랑가)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어화둥둥 내 사랑이야. 유왕 나자 포사 나고, 걸주 나자 말희 달기 나고, 오왕부차나자, 월서시 나고, 여포 나자 초선 나고, 당명황나자 양귀비가 나 있고, 호색남아 내가 나자 절대가인 너 났구나. 니가 무엇을 가지랴느냐. 조거전후 심이승에 야광주를 가지랴느냐. 십오성을 바꾸려던 화씨벽을 가지려느냐. 천지신지 아지자지 생금덩이를 가져볼까. 부도재산 득은옹에 은항아리를 가져볼까. 밀화불수 산호비녀 금패지환을 가져볼까. 어허둥둥 내 사랑이야.
중몰이 (사랑가)
니가 무엇을 먹으려느냐. 둥굴둥굴 수박 웃꼭지를 뗏뜨리고, 씰랑은 발라서 내버리고, 강능생청을 따르르 부어 붉은 점 한 점 먹으려느냐. 시금털털 개살구를 아기 스는데 먹으려느냐. 쪽 빨고 탁 뱈으면 껍질 꼭지만 남은 놈을, 건너 바람벽에 딱 부치는 반시수시(半柿水柿)를 네 먹으려느냐. 어주축수애산춘(漁舟逐水愛山春)에 무릉도원 복숭아 주랴. 유월 중순 익은 과일 외가지 당참외를 너를 주랴. 어허둥둥 내 사랑아.
아니리
강쇠란 놈이 여인을 내려놓고, 여필종부라고 하였으니, 자네도 나를 업고 놀게. 여인이 강쇠를 업고 노는듸, 핼끔핼끔 돌아도 보며 까불겠다.
중중몰이 (사랑가)
둥둥둥 내 사랑, 어허둥둥 내 사랑. 태산같이 높은 사랑, 하해같이 깉은 사랑. 남창북창 노적같이 다물다물 쌓인 사랑. 은하수에 직녀같이 올올이 맺힌 사랑. 모란화 송이같이 펑퍼져 버린 사랑. 세곡선 닻줄같이 올올이 꿰인 사랑. 내가 만인 없었으면 풍류남아 우리 낭군 황이 없는 봉이 되고, 님을 만일 못 보았으면 군자호구 이 내 몸이 원 잃은 앙이로다. 기러기가 물을 보고 나비가 꽃을 만났도다. 옹기종기 좋을씨고. 동방화촉 무엇하랴. 백일향락 좋을씨고. 황금집도 내사 싫네, 청석골이 제격이라. 둥둥둥둥, 어허둥둥 내 사랑.
아니리
남녀가 재미있는 장난이 어찌 한두번이야. 일차 이차 삼사 오차를 치루더니, 살림살이 할 걱정을 하는듸, 우리들은 안팎이 모두 오입쟁이라, 깊은 산중은 살 수 없고, 도방으로 살아보세. 둘이 서로 손을 잡고 도방으로 찾아갈 제.
중몰이 (도방살이)
둘이 서로 손목 잡고 도방 각처로 다니는데, 일원사느 이강경, 삼포주 사법성, 오개주, 육도듬 곳곳으로 다니면서, 여자는 애를 써서 돈양돈관 모아놓으면 강쇠놈은 허망하여, 닷냥내기 뺨 때리기, 두냥내기, 갑오띄기, 갑자꼬리 여수하기, 장군멍군 장기두기, 맞춰먹기 돈치기며, 불러먹기 주먹치기, 골패떼기 윷놀이와, 한집 두집 곤의두기, 의복잡혀 술먹기와, 남의 싸움 가로막기, 그 중에는 무슨 비위로 강자 싸움에 계집을 대리는데, 복날 개 잡듯 날마다 두드려 패니, 사람 살 수가 전혀 없네.
아니리
하루는 여인이 강쇠를 보고서 하는 말이, 당신 성질 가지고 도방살이 하다가는 맞아 죽기 알맞겠으니,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서, 팥밭이나 파서 먹고 산중으로 들어갑시다. 강쇠 듣고 하는 말이, 그 말이 좋다. 십년을 굶더라도 남의 계집 보고 눈웃음 안치는 놈만 보면은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 자네 말대로 하세.
잦은몰이 (지리산 찾아감)
산중으로 가자 하면 동금강은 석산이라, 나무가 없어서 살 수 없고, 북향산은 찬 곳이라 눈이 많어 살 수 없고, 황해도 구월산은 도둑 많어 살 수 없고, 지리산이 좋다 하니 지리산으로 가잤구나.
아니리
약간 남은 살림살이를 짊어지고서 지리산중을 찬아가니, 첩첩한 골짜기에 기와집 한채가 덜름 서 있구나. 이 집은 어떤 부자가 임진왜란 때에 난리를 피해서 산중으로 들어왔다가, 이 집을 짓고 살다가, 난리가 평정되니 뜯어갈 수 없어 그저 두고 갔는지라. 호랑이, 여호, 멧도야지, 다람쥐가 집을 짓고 살고 있는지라.
중중몰이 (지리산 정착)
강쇠놈이 좋아라고, 상쇠놈이 보고서 좋아라고, 얼씨구 절씨구, 새사또는 간 곳마다 선화당이 있다는데, 내 팔자도 방사하다. 적막한 이 산중에 내가 올 줄 어찌 알고, 이렇게 좋은 기와집을 지어 놓고 기다렸나. 부엌에다 솥을 걸고, 방을 쓸고 멍석 깔고, 낙엽을 긁어다가 저녁밥을 지어 먹고, 터 누르기 삼삼구를 밤새도록 한 연후에,
아니리
강쇠놈이 평생행세 일을 해보지 못한 놈이라. 낮이면은 낮잠만 자고 밤이 되면 배만 타는데, 사람 환장하게 배를 타니, 여인이 견디다 견디다 못해, 하루는 강쇠를 보고서 하는 말이,
진양 (옹녀 정설)
여보 낭군 듣조시오. 천생만민 필수지직(天生萬民必授之職) 사람마다 직업 있어, 앙사부모(仰事父母) 하육처자(下育妻子) 넉넉하게 산다는데, 낭군 팔자 생각하면, 어려서 못 배운 글 지듬 공부할 수 없고, 손재주가 없었으니 목수 노릇 할 수 없고, 밑천 한푼 없었으니 장사질을 할 수 없고, 다만 낭군이 할 일은 삯일밖에 할 수 있오. 이 산중에서 살자 하면, 산전을 많이 파서 두태 심고 담배 갈고, 칼퀴나무 비나무며 물거래며 장작패기 나무를 많이 해서, 집에도 때려니와 남원장 운봉장에다가 내다 팔면, 부모 없고 자식 없어 단 두내외 우리 부부 생계가 넉넉할 것인듸, 건장한 저 신체에 밤낮으로 하는 일이, 낮이면은 낮잠만 자고 밤에는 지게를 짊어지고 나무나 좀 해다 주시오.
아니리
강쇠 듣고, 허허 웃더니만, 참말로 허망하다. 호달마가 늙으면은 왕십리에서 거름 싣고 다니고, 기생이 늙어 놓으면 길거리 앉아서 먹걸리 장사를 한다더니만, 나 같은 오입쟁이가 나무지게 진단 말이 웬말인고. 불가사문(不可使聞)이면 어타인(於他人)이라. 자네 말이 그러하니 내가 나무하여 옴세, 강쇠가 나무하러 가는데, 도복 입고, 관 쓰고 갔단 말은 거짓말이라. 본시 제 집이 근본없는 놈이라. 장판에서 빌어먹던 놈이 차린 복색 그대로 가겠다. — 후략 –
변강쇠가 이본 (가람본)
– 전략 –
이때에 시임 옹좌수가 수유하고 집에 갓다 돌아오는 길이엇다. 도포 입고 안장마에 향청(鄕廳)하인 후배하야 달래달래 몰아가니 움생원이 불러 여보소 좌수 자네가 아관으로 긔구가 좋다하야 출패나 무서하제, 날같은 빈천지교(貧賤之交) 시약불견(視若不見) 지내가니 부귀자교인(富貴者驕人)말 자네 두고 한 말이쇠 좌수가 할 수 있나 말게 나려 오니 움생원이 제옆에다 앉혀구나 좌수가 물어 노형의 평생행세 내가 대강 짐작하니 이러한 큰 길가에 협창행락(挾娼行樂) 의외로쇠 움생원이 연에 웃어 꿈 같은 우리 인생 육십 가까오니 나문 날이 며칠인가 파탈하고 놀아 주세 이아 옥천집 좌수임 들으시게 시조나 하나 하여라
그렁저렁 장난 후에 좌수가 하직하여 향청일 망하여 총총히 돌아가니 노형은 사당하고 행락을 하게 하소 움생원이 웃어 자네 소견대로 하소 좌수 불끈 이러서니 미구녁이 안 떨어져 애거 이게 웬일인고 움생원은 좋와라 고장 웃어 두엇구나 허허 내 말 들어 보소 노형은 내게 대면 식자도 더 들엇고 경락출일하고 읍내 가 오래 있어 관장도 모셔 보고 지사하난 아전 친구 응당이 많알 터니 송장이 붙는 말 자네 혹 들엇는가 좌수 귀가 매오 밝아 깜짝 놀래 급히 물어 이것이 송장인가 남은 급히 서두는듸 움생원은 훨석 널러 그것은 머시던지 종차 수작 하려니와 송장이 붙는 말 사긔에 경서에나 혹 얻어 보와난가 옆에 있던 사당들이 깜짝 놀라 이러서니 모도 다 붙어구나. 요망한 이것들이 각색으로 재변 떨 때 애고애고 우난 년 먼산 보며 기막힌 년 움생원 바라보며 더럭더럭 욕하난 년 제 화에 제 머리를 으등으등 뜯는 년 살풍경이 이러나니 좌수는 어이없어 암말도 못 하고 굿 보난 사람나서 우둑하니 앉엇다가 여보소 이넉 짐이 모도 다 송장인가 움생원 변구하여 하나씩이면 좋게 둘씩이란 말인가 방사한 마리쇠 어느 고을 올시절이 송장 풍년 그리 들어 몰똑하게 지고 왓노 뎁뜩이 하던 말을 움생원이 송전하니 좌수와 사당들이 서로 보고 걱정한다 오난 사람 가난 사람 굿 보노라 아니 가고 먼 데 마을 근처 마을 귀경하자 모와드니 그리 저리 모운 사람 전주장이 푼푼하다.
귀경군 모운 듸는 호도엿장사 몬저 아난 법이라 갈삿갓 쓰고 엿판 메고 가새 치며 웨고 온다. 호도엿 사오 호도엿 사오 계피 건강의 호도엿 사오 가락이 굵고 제 몸이 유하고 양념 맛으로 대 푼 콩엿을 사랴우, 깨엿을 사랴우 늙은이 해소에 수수엿 사오 여러 사람들이 호도엿 사먹으며 하는 말이 이것이 원혼이라 삼현(三弦)을 걸게 치고 넋들이를 하여시면 귀신이 감동하여 응당 떠어질 듯하다. 목 좋은 계대네를 급급히 청해다가 좌수가 자당하여 굿상을 차려 놓고 멋있는 고인들이 굿거리를 걸게 치고 목 좋은 제대네가 넋드리춤을 추며 어라 만수 저라 만수 넋수야 넋이로다 백양청산 넋이로다 옛 사람 누귀누귀 만고원혼 도여는고 공산야원 불여귀는 촉망제(蜀望帝)의 넋일런가 무관춘풍(武關春風) 우는 새는 초회왕(楚懷王)의 넋이로다 어라 만수 저라 만수 청청향초 나군색은 우미인의 넋일는가 환패공귀월야혼은 왕소군(王昭軍)의 넋이로다 어라 만수 저라 대신. 넋일낭은 넉반에 담고 신첼랑은 화단에 모셔 밥전 넉전 인물전과 왼필 무명 오색 번에 넋을 불러 청좌하자 어라 만수 어라 대신 열대왕님 부리는 사자 일직사자 월직사자 금강야차 강림도령 이생 망제 잡아갈 제 뉘가 감히 거역할가 어라 만수 저라 대신 만승천자 삼공육경 기구로도 할 수 없고 천석노적 만금부자 값을 주고 면컷는가 멀고 먼 황천길을 가자 하면 따라가네 에라 만수 에라 대신 지장보살 장한 공덕 보도중생 하라 하고 지옥문 닫아 놓고 서양길을 가르칠듸 불상한 야달 목숨 비명(非命)에 죽어시니 어늬 대왕 매여시며 어늬 사자 따라갈가 어라 만수 저라 만수 지하에 맨듸 없고 인간에 주인없어 원통이 죽은 혼이 신체 직혀 있는 것을 무지한 인생들이 경대할 줄 모르고서 손으로 만져 보고 걸터앉기 괘심하다 어라 만수 저라 만수 옹좌수 자넬랑은 일읍(一邑)의 아관(亞官)이요 움생원 자넬랑은 양반의 도리로서 경이원지(敬而遠之) 귀신대접 어이 그리 모르던가 어라 만수 저라 대신 사당거사 명창가객 외입장이 네의 행세 취실할 수 웨 있으리 비옵내다 여덜 혼령 무지한 저 인들 허물도 과도 말고 가진 배반 진사면의 제대춤의 놀고 가세 어라 만수 저라 만수 위도라니 짐군 넛만 남겨 놓고 우에 붙은 사람들은 모도 다 떠러져서 제대의게 치하하고 뎁뜩이 각설이게 각각 하직하난구나.
이것들이 식구 많이 있을 때는 소일하기 조왓더니 비 오난 날 파장같이 경각간에 흩어지니 심심하여 살 수 있나 뎁뜩이가 그리하여도 서울 손이라 애근이 사정으로 송장에게 비난 목이 의지하여 듣것거든 천고의 의기남자 원통 죽은 혼이 지기지우 (知己之友) 못 만나면 위로할 이 뉘 있으리 역수상(易水上) 찬 바람에 연태자(燕太子)를 하직하고 함양(咸陽)에 죽어시니 협객형경(俠客荊卿) 불상하고 계명산(鷄鳴山) 밝은 달에 우미인(虞美人)을 이별하고, 오강자문(烏江自刎)하니 패왕항적(覇王項籍) 가련하다 이 세상의 변서방은 협기 있난 남자로서 술먹기에 접장(接長)이요 화방패두(花房牌頭)시니 간 듸마다 이름 있고 사람마다 무서한다. 꽃 같은 저 미인과 백년을 사잿더니 이슬 같은 이 목숨이 일조에 돌아가니 원통하고 분한 마음 눈을 감을 수가 없어 뻣뻣 선 장승 송장 중동지 자네 신세 부처님의 제자로서 선공부 경문 오여 계행(戒行)을 닦앗더면 흔 구름 푸른 뫼에 간 듸마다 도방이요 비단 가사 연화탑에 열반하며 부처될새 잠시 음욕(陰欲) 못 금하여 비명횡사(非命橫死) 꺼적 송장 촐첨지 자네 정경 동영 고사 집업이라 낫에는 탈을 쓰고 목에는 장고 메고 돈푼 쌀줌 얻자 하고 이집 저집 당길 적에 딸난 것이 아히들과 짖난 것이 개 소리라 탄 분복이 이러한듸 가량없는 미인 생각 제 명대로 못 다 살고 남우 집의 붙음송장 풍객하랸 다섯 분은 오입 맛이 한통속 왕별목 장춘양가 가객이 앞을 서고 개얏고 신방곡 통소 소래 봉장취 연풍대 칼춤이며 서서 치는 북 장단에 주막거리 장판이며 큰 동내 파시평에 동무 지어 다니면서 풍류로 먹고 사니 눈치도 환할 터요 경계도 알 터인듸 송장을 쳐 낸대도 제집은 하나뿐 누귀 혼자 존골 뵈자 한껍의 달려들어 한날 한시 무태 송장 여덟 송장 각기 설움 다 원통한 송장이라 살았을 제 집이 없고 죽은 후에 자식 없어 높은 뫼 깊은 구렁 이리 저리 구는 뼈를 묻어줄 이 뉘 있으며 슬푼 바람 지는 달에 애고애고 우난 혼은 종상할 이 뉘 있으리 생각하면 허사로다. 심사 부려 쓸 때 있나 이 생 원통 다 버리고 지부명왕 찾아가서 설설이 원정하여 후생의 복을 타서 부귀가에 다시 생겨 평생행락 하게 하면 당신네 신체들은 청산에 터를 잡아 각각 후장한 연후에 년년기일(年年期日) 돌아오면 내가 봉사할 것이니 제발 덕분 떠러지오.
애근이 빈 연후에 네 놈이 뿔근 이러서니 모도 다 떠러젓다. 북망산 급히 가서 송장짐을 부리니 석 짐은 다 부리고 뎁뜩이 진 송장은 강쇠와 초라니라 등에 붙어 뗄 수 없다. 각서리 세 동무는 여섯 송장 묻어 주고 하직하고 간 연후에 뎁득이 분을 내어 사면을 둘러보니 곳곳한 큰 솔나무 나란히 두주 서서 한 가운데 부인 틈이 사람 하나 지나것다.
흥부가
흥부전
형제는 오륜의 하나요, 한 몸을 쪼갠 것이다. 그러므로 부귀와 화복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형제도 형제 나름이다.충청. 전라. 경상의 삼도가 만나는 어름에 사는 연생원이라는 양반이 아들 형제를 두었는데 형의 이름 놀부요, 동생의 이름은 흥부였다.
틀림없는 한 어머니 소생이건만 흥부는 마음씨 착하고 효행이 지극하며 동기간의 우애가 극진한데, 놀부는 부모에게는 불효이고 동기간에 우애가 조금도 없으니, 그 마음 쓰는 것이 괴상하였다. 모든사람, 오장에 육부를 가졌지만 놀부는 당초부터 오장에 칠부였다. 말하자면 심술보가 하나 더 있어 심술보가 한번만 뒤집히면 심사를 야단스럽게도 피웠다.
술 잘먹고, 욕 잘하고 거드름 빼고, 싸움 잘하고, 초상난 데 춤추기, 불난 데 부채질하기, 해산한 데 개잡기, 장에 가면 억지 흥정, 우는 아기 똥 먹이기, 죄없는 놈 뺨치기, 빚값으로 계집 뺏기, 늙은 영감 덜미잡기, 아이 밴 아낙네 배차기, 우물 곁에 똥누어 놓기, 올벼논에 물 터놓기, 잦힌 밥에 흙 퍼붓기, 패는 곡식 이삭빼기, 논두렁에 구멍뚫기, 애호박에 말뚝 박기, 곱사등이 엎어놓고 밟아 주기, 똥누는 놈 주저앉히기, 앉은뱅이 턱살 치기, 옹기장수 작대기 치기, 면례(무덤을 옮겨 장사를 다시 지내는 것) 하는데 뼈 감추기, 남의 양주(바깥주인과 안주인이라는 뜻. 부부)잠자는데 소리 지르기,수절과부 겁탈하기, 통혼한 데 간혼놀기, 만경창파에 배 뚫기, 닫는말에 앞발 치기, 목욕하는데 흙 뿌리기, 담 붙은 놈 코침 주기, 얼굴에 종기 난 놈 쥐어박기, 눈 앓는 놈 눈에 고춧가루 넣기, 이 앓는 놈 뺨치기, 어린아이 꼬집기, 다 된 흥정 파의하기,중을 보면 대테메기, 남의제사에 닭 울리기, 큰 한길에 허망 파기, 비 오는 날에 장독 열기 등이었다.
이놈의 심사가 이렇듯 모과나무같이 뒤틀리고 동풍 안개 속에 수숫잎 같이 꼬여 그 흉악함을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러나 흥부는 충실, 온후, 인자하였으니, 형의 하는 짓을 탄식하고 때로는 간할 마음을 가져보았으나 말해 보아야 쓸데없으므로 말없이 주면 먹고 시키는 일이나 공손히 하였다.
놀부의 악한 마음은 부모가 물려준 많은 재산을 독차지하고 아우 흥부를 구박하나 흥부의 어진 마음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놀부는 부모 제삿날이 와도 제물은 장만하지 않고 돈으로 대신 놓고 지내면서, “이번 제사에도 황초 값 닷 푼은 온데간데 없구나.” 하는 식이었다.
그런 천하에 몹쓸 놈이라 아우를 내쫓을 궁리를 하게 된 것이다. “형제란 것은 어려서는 같이 살아도 처자를 갖춘 다음엔 각각 따로 사는 것이 떳떳한 법이다. 너는 처자를 데리고 나가 살아라.” 처음엔 사정도 해보았으나 놀부는 듣지 않았다. 흥부는 하는 수 없이 아내와 어린것들을 이끌고 대문을 나섰다.
건너산 언덕 밑에 가서 움을 파고 온 식솔이 모여앉아 밤을 새웠다. 이튿날 그 자리에 수숫대를 모아다가 한나절에 얼기설기 집을 지어놓으니, 방에 누어 다리를 뻗어 보면 발목이 벽 밖으로 나가고 팔을 뻗어보면 또한 손목이 벽 밖으로 나갔다. 기막힌 노릇이었다.
게다가 가지고 나간 양식이 한 톨도 없이 사흘에 한 끼니도 메울수가 없게 되니 살아갈 계책이 없었다. 이 판국에 굴비 두름 같은 연년생 자식들이 밥 달라고 젖 달라고 보챈다. 하는 수 없이 흥부는 놀부를 찾아갔다.
“형님전에 뵙니다. 세 끼를 굶어 누운 자식 살려 낼 길 없어 염치코치 불구하고 찾아왔으니 동기간 정을 생각하여 무엇이든지 좀 주시면 품을 판들 못 갚으며 일을 한들 공으로 가져가겠습니까? 모쪼록 죽는 목숨 살려주십시오”. 이렇듯 애걸하였으나 놀부는 차디차기만 하였다.
오히려 맹호같이 날뛰며 모진 눈을 부릅뜨고 핏대를 올리는 것이었다. “너도 염치없는 놈이다. 내 말을 들어 보아라. 하늘이 내지 않은 자는 벼슬에 못 오르고 땅이 내지 않은 자는 이름없는 인간이다. 너는 어찌하여 복이 없어 날 보고 이렇게 보채느냐? 잔말은 듣기 싫다.”
흥부는 울며 사정하였다. “양식이 못 되거든 돈 서 돈 주시면 하루라도 살겠습니다.” “이놈아 들어 보아라. 쌀이 많다 한들 너 주자고 섬을 헐며, 벼가 많다 한들 너 주자고 노적 헐며, 돈이 많다 한들 너 주자고 궤돈 헐며, 가루 되나 주자 한들 너 주자고 큰 독에 가득한 것을 떠내며, 의복 가지나주자 한들 너 주자고 행랑것들 벗기며, 찬 밥술이나 주자 한들 너 주자고 마루 아래 청삽사리 굶기며, 지게미나 주자 한들 너주자고 새끼 낳은 돼지를 굶기며, 콩 섬이나 주자 한들 큰 농우가 네 필이니 너를 주고 소 굶기랴? 정말 염치없고 속이 없는 놈이로구나.”
“아무리 그러시더라도 죽는 동생 살려주오.” 놀부는 화를 더럭 내어 벼락같은 소리로 하인 마당쇠를 부르는 것이었다. “이놈아, 뒷광문 열고 들어가면 저편에 보리 쌓은 담불이 있지?” 거기 있는 도끼 자루 묶음을 내오게 하고는 손에 닿는 대로 골라잡더니 그만 달려들어 흥부의 뒤꼭지를 잔뜩 움켜쥐고 사정없이 친다. 마치 손 잰 중이 비질하듯, 상좌중이 법고 치듯이다.
“이놈 내 눈앞에 뵈지마라.” 흥부는 어찌나 맞았던지 온 몸이 나른하여 그만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형수나 보고 가려고 엉금엉금 부엌으로 기어갔다. 놀부 아내가 마침 밥을 푸고 있었다. 흥부는 굶은 창자에 밥 냄새를 맡으니 오장이 뒤집혔다. “애고 형수님, 밥 한 술만 떠주오. 이동생을 살려주오.” 그러나 이년 또한 몹쓸 년이었다. “남녀가 유별한데 어디를 들어오노?”
밥 푸던 주걱으로 흥부의 마른 뺨을 우지끈 때리니 흥부는 두눈에 불이 화끈 일고 정신이 아찔한 중에도 얼떨결에 손을 슬쩍 뺨 위로 밀어보니 밥이 볼때기에 붙어 있는 것이었다. 얼른 입으로 쓸어 넣는다. “아주머님은 뺨을 쳐도 먹여가며 치시니 감사한 말을 어찌 다 하겠습니까? 수고스럽지만 이쪽 뺨마저 쳐주십시오. 밥좀 많이 붙은 주걱으로요. 그 밥 갖다가 아이들 구경이나 시키겠소.”
이 몹쓸 년이 주걱은 내려놓고 부지깽이로 흥부를 실컷 때리니, 흥부는 아프단 말도 못하고 할 수 없이 통곡하며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때 우는 애 젖 물리고 큰 아이 달래면서 칠년 가뭄에 큰비 기다리듯, 구년 홍수에 볕발을 기다리듯, 어린아이가 굿에 간 어미 기다리듯, 굶은 자식들과 흥부 오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흥부가 매에 취하여 비틀비틀 걸어오니 흥부 아내는 남의 속도 모르고 반겨 마중을 나갔다.
“큰댁에 가더니 술에 잔뜩 취해 오시는 구료. 어서 들어갑시다. 쌀이 거든 밥짓고 돈이거든 저 건너 김동지 집에 가서 한 끼라도 늘려먹을 것을 팔아 옵시다.” 그러나 흥부는 형의 행패를 바로 말하지 못하고서 꾸며 말하는 것이었다.
“형님 집에 갔더니 주안상이 나오고 더운 점심밥이 나오데. 상을 물리고 나니 형님과 형수께서 돈과 쌀을 주시더군. 큰 고개를 넘어오다가 도둑놈을 만나 다 빼앗기고 빈 손으로 왔네.”
말은 그런데 얼른 보니 유혈이 낭자하며 얼굴이 부었고 온 몸을 만져보니 성한 곳이 없다. 흥부 아내가 기가 막혀 땅에 주저앉아 버린다. “여보 마누라, 슬퍼 마오. 가난 구제는 나라에서도 못한다 하니 형님인들 어찌하시겠소? 우리 양주가 품이나 팔아 살아갑시다.” 흥부 아내는 이 말에 순종하여 서로 나가서 품을 팔았다.
흥부 아내는 방아 찧기, 술집의 술 거르기, 시궁발치의 오줌 치기, 얼음이 풀릴 때면 나물캐기, 봄보리를 갈아 보리 놓기. 흥부는 이월 동풍에 가래질하기, 삼사월에 부침질 하기, 일등 전답의 무논 갈기, 이집 저집 돌아가며 이엉 엮기, 궂은 날에는 멍석 맺기 등 이렇게 내외가 온갖 품을 다 팔았다.
그러나 역시 살기는 막연하였다. 하루는 생각다 못해 나랏곡식이나 한 섬 얻어 먹으리라 마음먹고서 흥부는 어슷비슷 갈짓자로 걸어 읍내로 들어가 관청을 찾았다. “이방, 나랏곡식이나 좀 얻어 먹고자 하는데 처분이 어떨는지?” “가난한 사람이 막중한 나랏곡식을 어찌달라 할까?
그러나 연생원은 매를 더러 맞아 보았소?” “매는 왜? 나랏곡식이나 얻어주면 배고파 죽겠다는 어린 자식들을 살리겠구먼.” “나랏곡식 얻을 생각 말고 매를 맞으시오. 고을 김부자를 어느 놈이 영문에 없는 일을 꾸며 고소했소.
김부자를 압송하라는 공문이 왔는데 김부자는 마침 병이 나고 친척도 병이 있어 누구를 대신보내고자 찾고 있소. 연생원이 김부자 대신 영문에 가서 매를 맞으면 그 값으로 돈 삼십 냥을 줄겁니다. 그 돈 삼십 냥은 예서 증서를 줄테니 영문에 가서 대신 매를 맞고 오는 것이 어떻소?” 이방은 돈 닷 냥을 먼저 주고, 영문으로 보내는 보고장을 흥부에게 주었다.
어서 다녀오시오. 내 편지 한 장 갖다 영문 사령에게 주면 혹시 매를 쳐도 가볍게 칠지 모르며, 또한 김부자가 뒤로 감영 관리에게 돈 백이나 보낼 테니 염려 말고 어서가오.” 흥부는 어찌나 좋던지 여태까지 반말하던 사이 갑자기 변하여 존대말을 쓰는 것이엇다.”여보 이방님, 다녀오리다.”
집으로 돌아온 흥부로부터 이 말을 들은 흥부 아내의 놀라움은 컸다. “여보 아이 아버지, 매 품팔이가 웬말이오! 남의 죄를 어찌알고 대신이라니 웬말이오? 살인죄를 범했는지 강도죄를 범했는지 사기죄를 범했는지 남의 죄를 어찌 알고 그런 말을 하시오?
만일 영문에 올라갔다가 여러 날을 굶은 몸에 영문 곤장 맞게 되면 몇 대를 맞지 않아 쓰러져 죽을 것이니, 어서 가서 그일일랑 거절하오. 마오마오 가지 마오. 만일에 갈 생각이면 나를 죽여 묻고 가오. 나 죽여 세상 모르면 가려니와 나를 살려두고는 못 가리다.
가지 마오, 가지 마오, 제발 내 말 듣고 가지 마오. 만일 매맞다가 아이 아버지 죽게 되면 뭇초상이 날 테니 부디 내 말 괄시 마오.”
아내가 두 손으로 구들장을 쾅쾅 치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듯 강권하자, 흥부는 슬며시 마누라를 얼러 보는 것이었다.
“여보 마누라, 한 번 높은 곳에 앉아 보지도 못할 쓸데없는 이 볼기짝, 감영으로 올라가서 삼십 대만 매를 맞고나면 돈 삼십 냥이 생길 테니 열 냥으로 고기 사서 매맞은 상처 고치고, 열 냥으로는 쌀을 팔아 온 식구가 포식하고 열 냥으로는 소를 사서 스물넉 달 배내기 주었다가 그 소를 팔아 맏아들 장가들이고, 그놈이 아들 낳으면 우리에게 손자되니 그 아니 경사인가?”
말을 듣고 생각하니 사리는 맞는 것 같았으나 그러나 역시 사람 갈길이 아니므로 흥부 아내는 한사코 말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흥부는 영문에 갈 마음은 속으로만 혼자 먹고 겉으로는 얼렁뚱땅 얼버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오. 아니 가리다. 짚신이나 삼아 신게 저 건너 김동지네 가서 짚 한 단 얻어 가지고 오리다.”
그러고 나와서 영문으로 올라가는데 삯말이나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돈 삼십 냥을 한 몫으로 받아 쓸 작정으로 하루에 일백칠십 리씩을 걸어서 갔다.며칠 만에 영문에 다다르니 도사령이 흥부를 보더니 아래 사령들에게 이르는 것이었다.
“저 양반이 김부자 대신으로 왔으니 아랫방에 들여앉히고 만일 문초를 당하여 매를 치게 되더라도 아무쪼록 가볍게 칠 것을 잊지 마소. 우리 청에 편지와 돈 백 냥이 왔다네.
여러사람이 흥부를 위로하고 있을때, 마침 청령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영이 내렸다. “죄인 중에 살인죄를 범한 자 외에는 모두 석방하라.” 흥부는 낙심천만이었다. “여보시오 도사령, 나는 매를 맞아야만 수가 생기오. 그저 가면 나는 낭패요.”
“여보 연생원, 이번에 김부자 일로 여기 왔는데 매 안 맞았다고 만약 돈을 안 주거든 두말 말고 곧장 영문으로만 오면 우리가 무슨 수를 쓰든지 돈 백은 받아줄 테니 염려 말고 어서 가시오.” 도사령의 말을 듣고 흥부는 할 수 없이 노자에서 남은 돈 한 냥으로 떡을 사서 짊어지고 집으로 왔다.
이무렵 흥부 아내는 남편이 감영에 갔음을 알고는 뒤뜰에다 단을 모으고 정화수를 길어다가 단 위에 올려놓고 두 손 모아 빌며 눈물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참에 흥부가 거적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섰다. 뛸듯이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 아버지 다녀오시오? 죄가 없어 놓여오나? 태장 맞고 돌아오나? 형장 맞고 돌아오나? 상처는 어떠하오?” 흥부는 매도 못 맞고 돌아오는 참에 이말을 들으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더러 상처를 묻지 말고 네 친정 할아비한테 물어 보아라. 매 한대 맞지 못하고 건성으로 돌아오는 사람더러 이년아, 장처는 뭐고 상처는 다 뭐냐?”
“좋다 좋다. 얼씨구 좋다! 지화자 좋을씨고! 매 맞으러 갔던 낭군 안 맞고 돌아오니 이런 경사가 또 어디 있는가!” 흥부는 마누라의 좋아하는 거동을 기가 막혀 어이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어린 자식들 살릴 생각을 하니, 슬픈 감회가 치밀어서 눈물이 비오듯 하며 통곡이 터져나와 두 손으로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이때 마침 김부자의 조카가 지나다가 흥부가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찾아 들어와서 묻는 것이었다. “연서방, 주린 사람이 영문에 가서 그 매를 맞고 어떻게 돌아왔나?” 흥부는 마음이 곧은 사람이라 바른 대로 털어놓았다. “맞았으면 해롭지 않을 것을 그것도 복이라고 못 맞았다네.”
“자네가 마음씨만은 착한 사람일세. 나도 어디서 들었네만, 무사히 오고서야 돈 달랄 수 있나? 내가 마침 지닌 돈이 칠팔 냥 있으니 쌀말이나 팔아먹소.” 흥부는 그 돈으로 쌀 팔고 반찬 사서 며칠은 살았으나 굶기는 역시 마찬가지라 어찌하면 좋을 것인가? 그래 짚신 장사나 해보리라 하고 김동지 집으로 짚을 얻으러 갔다.
“자네 불쌍도 하이! 형은 부자건만 자네는 그렇듯 가난하니 어찌 아니 측은한가?” 이러면서 김동지가 내주는 짚단을 얻어다가 짚신을 삼아 장에 내다팔고 그것으로 끼니를 이었으나 그도 한두 번이지 짚인들 매양 얻을 염치가 있으랴?
흥부는 탄식하며 또한 어린 자식들을 어루만지며 통곡하니 흥부 아내도 기가 막혀 땅을 치고 우는 모양이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정경이었다.
이렇게 세월을 보내고 춘삼월 좋은 계절을 맞이하니, 흥부는 이왕에 배운 바 있어 약간의 식자는 있는 터라 수숫대로 지은 집에 입춘을 써 붙였다.
삼월 삼일이 되니 소상강의 떼기러기는 가노라 하직하고 강남의 제비 왔노라 하고 나타날 때였다. 고대광실 다 버리고 오락가락 넘돌다가 흥부를 보고 반기면서 좋다고 지저귀니, 흥부가 제비보고 경계하는 말이었다.
“고당화각 많건만 수숫대로 지은 집에 와서 네 집을 지었다가 오뉴월 장마철에 집이 만일 무너진다면 그 아니 낭패이랴? 아무리 짐승일망정 내 말을 듣고 좋은 집 찾아가서 실팍하게 집을 짓고 새끼를 치려므나.”
이같이 충고해도 제비가 듣지 않고 흙을 물어다 집을 짓고 첫배 새끼를 길러 내어 날기 공부에 힘을 쏟을 때 날아 올랐다 날아 내렸다 하면서 이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큰 구렁이 한 놈이 별안간 달려들어 제비 새끼를 모조리 잡아 먹으니 흥부는 보고 깜짝 놀랐다.
“흉악한 저 짐승아, 고량진미가 많겠건만 하필이면 죄없는 제비 새끼를 모조리 잡아 먹으니 악착 같구나. 제비가 불쌍하구나. 저 제비 새끼를 모조리 잡아 먹으니 악착 같구나. 제비가 불쌍하구나. 저 제비 곡식을 먹지 않고 자라나서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옛 주인을 찾아오니 그 뜻이 정다운데 제 새끼를 보전치 못하고 일시에 다 죽이니 어찌 가련치 않은가?”
그리고는 칼을 들어 그 짐승을 잡으려 할 때 제비 새끼 한 마리가 허공으로 뚝 떨어져서 피를 흘리며 발발 떠는 것이었다. 흥부는 이를 보자 펄쩍 뛰어 달려들어 제비 새끼를 두 손으로 고이 잡고 애처롭게 여겨 부러진 다리를 조기 껍질로 찬찬 감고 아내를 불렀다.
“당사실 한 바람만 주소, 제비 다리 동여매게.” 흥부 아내가 시집 올 때 가지고 온 당사실을 급히 찾아내어 주니 흥부는 얼른 받아 제비 새끼의 상한 다리를 곱게 감아매어 찬 이슬에 얹어 두었다.
그랬더니 하루 지나고 이틀지나고 이리하여 십여 일이 지나자 상한 다리가 제대로 소생되어 날아다니게 되니, 줄에 앉아 재잘거리며 울고 둥덩실 떠서 날아갈 때 소상강 기러기는 왔노라 하고 강남가는 제비는 가노라 하직하는 것이었다.이리하여 제비가 강남 수천 리를 훨훨 날아가서 제비왕께 입시하니 제비왕이 물었다.
“경은 어찌하여 다리를 절며 들어오느냐?” “신의 부모가 조선국에 나가 흥부의 집에 깃들었는데 뜻밖에 큰 구렁이의 화를 입어 다리가 부러져 죽을 것을 흥부의 구조를 받아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흥부의 가난을 면케 해주신다면 그로써 소신은 그 은공의 만분의 일이라도 갚을까 합니다.”
“흥부는 과연 어진 사람이다. 공 있는 자에게 보은함은 군자의 도리이니, 그 은혜를 어찌 아니 갚으랴? 내가 박씨 하나를 줄 테니 경은 가지고 나가 은혜를 갚도록 하라.” 제비가 왕께 감사드리고 물러나와서 그럭저럭 그 해를 넘기고 이듬해 춘삼월을 맞으니 모든 제비가 타국으로 건너갈 때였다.
그 제비 허공 중천에 높이 떠서 박씨를 입에 물고 너울너울 자주자주 바삐 날아 흥부네 집동네를 찾아들어 너울너울 넘노는 거동은 마치 북해 흑룡이 여의주를 물고 오동나무에서 노니는 듯, 황금같은 꾀꼬리가 봄빛을 띠고 수양버들 사이를 오가는 듯하였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넘노는 거동을 흥부 아내가 먼저 보고 반긴다. “여보 아이 아버지, 작년에 왔던 제비가 입에 무엇을 물고 와서 저토록 넘놀고 있으니 어서 나와 구경하오.” 흥부가 나와 보고 이상히 여기고 있으려니 그제비가 머리 위를 날아 들며 입에 물었던 것을 앞에다 떨어뜨린다. 집어 보니 한가운데 ‘보은박’이란 글 석 자가 쓰인 박씨였다.
그것을 동편 울타리 밑에 터를 닦고 심었더니 이삼 일에 싹이 나고, 사오 일에 순이 뻗어 마디마디 잎이 나고, 줄기마다 꽃이 피어 박 네 통이 열린 것이다. 추석날 아침이었다. 배가 고파 죽겠으니 영근 박 한 통을 따서 박속이나 지져 먹자 하고 박을 따서 먹줄을 반듯하게 긋고서 흥부 내외는 톱을 마주잡고 켰다.
이렇게 밀거니 당기거니 켜서 툭 타 놓으니 오색채운이 서리며 청의 동자 한 쌍이 나오는 것이었다. 왼손에 병을 들고 오른손에 쟁반을 눈 위로 높이 받쳐들고 나온 그 동자들은, “이것을 값으로 따지면 억만 냥이 넘으니 팔아서 쓰십시오.” 하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박 한 통을 또 따놓고 슬근슬근 톱질이다. 쓱삭 쿡칵 툭 타놓으니 속에서 온갖 세간붙이가 나왔다. 또 한 통을 따서 먹줄 쳐서 톱을 걸고 툭 타놓으니 순금 궤가 하나 나왔다. 금거북 자물쇠를 채웠는데 열어 보니 황금.백금밀화.호박.산호.진주.주사.사향 등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쏟으면 또 가득 차고 또 가득 차고 해서 밤낮 엿새를 쏟고 나니 큰 부자가 된 것이다.
다시 한 통을 툭 타놓으니 일등 목수들과 각종 곡식이 나왔다. 그 목수들은 우선 명당을 가려 터를 잡고 집을 지었다. 그 다음 또 사내종, 계집종, 아이종이 나며 들며 온갖 것을 여기저기 쌓고 법석이니 흥부내외는 좋아하고 춤을 추며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덤불 밑에 있는 마지막 박 한통을 따서 슬근슬근 툭 타놓으니 박 속에서 꽃같은 한 미인이 나와 흥부에게 나붓이 큰 절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월궁의 선녀입니다. 강남국 제비왕이 나더러 그대 부실이 되라 하시기에 왔습니다.”
이리하여 흥부는 좋은 집에서 처첩을 거느리고 향락으로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이런 소문이 놀부 귀에 들어가니, “이놈이 도둑질을 했나? 내가 가서 욱대기면 반 재산을 뺏어낼 것이다.” 하고 벼락같이 건너가 닥치는 대로 살림살이를 쳐부수는 것이었다. 한참 이렇게 소란을 피우고 있을때 마침 출타 중이던 흥부가 들어왔다.
“네 이놈, 도둑질을 얼마나 했느냐?” “형님 그 말씀이 웬 말씀이오?” 흥부가 앞뒷일을 자세히 말하자, 그럼 네 집 구경을 자세히 하자고 놀부는 나섰다. 흥부가 형을 데리고 돌아다니며 집 구경을 시키는데 월궁 선녀가 다시 나타나니 놀부는 그 계집을 자기에게 달라고 하였다.흥부가 거절하자 이번은 화초장이나 달라고 한다.
그러고는 흥부가 화초장을 하인을 시켜 보내주겠다는 것도 마다하고 스스로 짊어지고 가서 집에 이르니 놀부 아내는 눈이 휘둥그래진다. 그리고 그 출처와 흥부가 부자가 된 연유를 알게 되자,” 우리도 다리 부러진 제비 하나 만났으면 그 아니 좋겠소? 하고는 그해 동지 섣달부터 제비를 기다렸다.
그렁저렁 섣달 정월 다 넘기고 봄철이 돌아오니 제비 한 쌍이 놀부집에 와 흙과 검불을 물어다 집을 지었다. 어미 제비가 알을 낳아 품을 무렵에는 놀부놈은 주야로 제비집 앞에 대령하여 가끔가끔 집어내어 만지작거리니 알이 모두 곯았다. 그러나 천행으로 한 개가 남아서 새끼를 까게 되었다.
차차 자라나 바야흐로 날기를 배울 때 주야로 기다리는 구렁이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자 놀부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여 하루는 뱀을 찾아 나갔다. 아무리 찾아도 뱀 한 마리 못 보고 돌아오는 길에 홍두깨만한 까치 독사를 만났다.
“얼씨구 이 짐승아, 내 집으로 가서 제비집으로 올라가면 제비 새끼 떨어지고 나는 부자가 될 것이니, 네 은혜는 병아리 한 뭇에 계란 한줄 더 얹어 갚을 것이다. 그러니 사양 말고 어서 가자.” 이러고 막대기로 툭툭 건드리다 놀부는 발가락을 물리고 나자빠졌다.
그러나 빨리 집으로 돌아와 침을 맞고 약을 바른 끝에 살아나자, 제가 이무기인 양 제비 새끼 잡아 두 발목을 지끈등 분지르고는 흥부가 했던 것같이 조기 껍질로 발목을 싸고 청올치로 찬찬 동여매어 제비집에 얹어 두었다.
그 제비가 겨우 살아남아 남으로 돌아갈 때 하는 말이, “원수같은 놀부놈아, 명년 춘삼월에 다시 와서 원수를 갚을 것이니 잘 있거라. 지지위 지지.” 이듬해 춘삼월에 그 제비는 ‘보수박’이라 쓰인 박씨를 물고 돌아왔다.
놀부가 보고 풀밭에 떨어지면 잃어버릴까 겁이 나서 삿갓을 뒤집어들고 따라다녔다. 제비는 그 삿갓 속에 떨어뜨렸다. 한 치나 되는 박씨에 보수박이라 쓰였으나 무식한 놀부는 그것을 모르고 처마밑에 심었다.
며칠이 안 가서 순이 나고 덩굴이 뻗고 이윽고 박이 주렁주렁 열리게 되었다. 놀부는 큰 박 하나를 우선 따다 놓고 제 계집과 켜려 하다가 그 박이 쇠같이 딱딱하므로 저희끼리는 할 수 없게되자 목수와 힘깨나 쓰는 장정들을 불러 잘 먹인 후에, 이십 냥씩 선금후히 주고 박을 켜게 하였다.
그리하여 슬근슬근 툭 타놓으니 박 속에서 글 읽는 소리가 나면서 이윽고 관을 쓴 늙은 양반, 갓을 쓴 젊은 양반, 초립 쓴 새 서방님, 도포입은 도련님이 달아 매고 참나무 절굿공이로 짓찧었다. “이놈 놀부야! 네 아비 개불이와 네 어미 똥녀가 댁종으로 드난살이 하다가 오밤중에 도망한 지 수십 년이 되는데 이제야 찾았구나.
네 어미와 아비 몸값이 삼천 냥이다. 당장에 바쳐라.” 놀부놈이 돈 삼천 냥을 들여 바치며 사죄하니 그 생원님 못 이기는체하고 놀부에게, “이 돈 삼천 냥 용전으로 쓰겠거니와 떨어질만 하면 내 다시 오리라.” 하고 사라졌다.
다시 두번째 박을 타보았다. 이번에 가야금 든 놈, 소고든 놈, 징, 꽹과리 든 놈들이 우루루 몰려 나오더니, “우리가 놀부 인심 좋다는 말 듣고 일부러 찾아왔으니 한바탕 놀고 가세.” 하고 쌀 섬 내놔라, 돈 백 내놔라며 정신없이 날뛰니, 놀부는 돈 백 냥에 쌀 한 섬을 주어 보낸 후 또 한 통을 탔다.
이번엔 노승이 나오고 뒤따라 상좌승이 나왔다. “놀부야, 우리 스승님이 네 집을 위하여 사십구 일 정성을 드렸으니 돈 오천 냥만 바쳐라.” 이 이상 패가 망신하지 말고 그만 켜자는 놀부 계집의 말을 어기고 또켜니 이 번엔 상여 한 채가 나오고 뒤따라 각양각색의 병신 상제들이 나왔다.
“야 이놈 놀부야, 소 잡고 잘 차려라. 돈 만 냥만 내놓아라.” 놀부가 전답을 선 자리에서 헐값으로 팔아 돈 삼천 냥을 주고 빌며사정하니 상두꾼들이 상여를 메고 갔다. 놀부는 따라가며 물어 보았다. ” 여보, 다른 통에 보물 아니 들었소?” 상두꾼이 대답하였다.
“어느 통에 들었는지 모르나 생금 한 통이 들기는 들었소.” 놀부놈이 옳다 하고 슬근슬근 박 한 통을 다시 툭 타놓으니 박 속에서 팔도 무당들이 뭉게 뭉게 나오는데, 징과 북을 두드리며 각색 소리다하더니 장고통을 들어 놀부놈의 가슴팍과 배때기를 벼락치듯 후려쳤다. 놀부놈은 눈에서 번갯불이 나는지라 분한 가운데서도 슬피 울며 비는 것이었다.
“이 어찌된 곡절이오? 매 맞아 죽을지라도 죄명이나 알고 죽으면 한이 없겠으니 제발 덕분에 말해주오.” “이놈 놀부야, 다름 아니라 우리가 네 집을 위하여 굿을 많이 했으니 오천 냥을 바쳐라. 만일 거역하는 날엔 네 머리가 온전치 못하리라.” 놀부놈은 기겁을 하여 돈 오천 냥을 내주고 겨우 그들을 보내고 나니 열이 치받쳤다.
“될테면 되고 망할 테면 망해라. 남은 박을 또 계속 타보리라.” 슬근슬근 툭 타놓으니 이게 웬일인가? 박속에서 수천 명 등짐 장수들이 누런 농을 지고 꾸역꾸역 나오더니 정신없이 떠들어댔다. 놀부놈이 기가 막혀 다른 박이나 타보려고 돈 삼천 냥을 내놓으니 그들은, “뒷 박통에는 금과 은이 많이 들었을 것이니 정성 들여 켜보아라.” 하고 일시에 물러나 사라졌다.
그 다음 또 한 통을 따다놓고 슬근슬근 툭 타놓으니 이번엔 박 속에서 수천 명 초라니 탈이 나오면서 오도방정을 다 떨었다. 그러고는 일시에 달려들어 놀부놈의 덜미를 잡고 메다꽂으니, 놀부는 거꾸로 서서, ” 애고 애고 초라니 형님, 이게 웬일이오? 뭐든지 말씀만 하시면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애걸하였다. 그러자 초라니가 호령하였다.
“이놈 놀부야, 돈이 중하냐 목숨이 중하냐?” “사람 생기고 돈이 났으니 돈이 어찌 중하겠습니까?” 초라니가 다시 꾸짖었다. “이놈, 그러면 돈 오천 냥만 시각 내로 바쳐라.” 놀부는 할 수 없이 돈 오천 냥을 내주었다. 그리고 물어 보았다. “다음 박통 속 일이나 자세히 일러 주소.”
“어느 통인지 분명히 생금이 들었으니 다 타보아라.” 슬근슬근 툭 다음 박을 타놓으니 박 속에서 수백 명 사당걸사들이 나오면서 작은 북을 두드리며 저희끼리 야단스럽게 놀아나며 소리를 하더니 놀부를 보고 달려들었다.
“옳지! 이놈 이제야 만났구나!” 여러 놈이 놀부의 사지를 갈라 잡고 헹가래를 치니 놀부놈 눈이 뒤집히고 오장이 나오는 듯하였다.
“네 놈이 목숨을 조전하려면 전답 문서 다 바쳐라.”
문서 뭉치를 다 내주고 또 다음 박이다. 슬근슬근 툭 타놓으니 박 속에서 수백 명의 왈패들이 밀거니 뛰거니 뛰쳐나왔다.
누구 누구냐? 이죽이.떠죽이.난죽이.바금이.딱정이.군평이.태평이.여숙이.무숙이.하거니.보거니.난쟁이.몽둥이.아귀소.악착이.조각쇠.섭섭이.든든이 등이다. 그들은 차례로 앉더니 놀부를 잡아 빨랫줄로 찬찬 동여 나무에 동그마니 달아매고 매질 잘하는 왈패 한 놈을 가려 뽑아 분부하는 것이었다.
“저놈을 사정 두지 말고 세게 쳐라!”
여러 놈이 한쪽으로 놀부를 잡아 내어 이 뺨 치며 발로 차고, 뒹굴리며 주무르고 잡아뜯고, 한편으로 주리를 틀며, 매질을 하며, 두 발목을 도지개에 넣고 트니 복숭아뼈가 우직우직하는 것을 용심지에 불을 당겨 발샅에 끼어 당근질을 하며, 온갖 형벌을 쉴 새 없이 갈아들며 하니 쇠공이의 아들인들 어찌 견뎌내리오?
“살려 주오! 살려 주오! 제발 덕분에 살려 주오. 돈 바치라면 돈 바치고 쌀 바치라면 쌀 바치고 계집 바치라면 바칠 것이니 남은 목숨 살려 주오!”
여러 왈패들이 돌아가며 한 번씩 생주리를 틀더리, 그제서야 한 놈이 분부하였다.
“이놈 놀부야, 들어라! 우리가 금강산 구경을 가는데 노자돈이 떨어졌으니, 돈 오천 냥을 바치되 만약에 지체하면 된급살을 내리리라!”
놀부놈은 어찌나 혼이 났던지 감히 한 말도 대꾸하지 못한 채 돈 오천 냥을 주어 보낸 후에 사지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중에도 끝내 허욕을 버리지 못해 당장에 수가 터질 줄로 알고, 엉금엉금 동산으로 기어 올라가서 다시 박 한 통을 따가지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춤거리는 인부를 달래어,
“슬근슬근 톱질이야. 당기어라 톱질이야.”
슬근쓱싹 박을 쪼개어 놓고 보니 팔도 소경이란 소경은 다 뭉치어 막대기를 닥닥거리며 눈을 희번덕거리고 내달아 꾸짖었다.
“이놈 놀부야! 날려느냐? 기려느냐? 네놈이 어디로 갈 거냐? 너를 잡으려고 안남산, 밖남산, 구계동, 쌍계동, 면면촌촌을 얼레빗으로 샅샅이, 이 참빗으로 틈틈이, 굴뚝 차례로 두루 널리 찾아 다녔는데 오늘에야 이곳에서 만났구나! 네 우리들의 수단을 한 번 보렷다!”
그러고는 지팡막대를 들어 휘두르니 놀부놈 어찌할 바를 몰라 이리 저리 피하나 여러 수경들은 점을 치며 눈 뜬 사람보다 더 잘 찾아 붙잡는다. 그러니 놀부놈은 달아나지도 못하고 애걸하는 것이었다.
“여보 장님네들, 이게 웬일이오? 사람을 살려 주오. 무슨 일이든 분부대로 하리다.”
소경들이 그제서야 놀부를 놓아 주고 북을 두드리며 경을 읽더니, 놀부놈을 지팡이 두드리듯 함부로 치니 놀부놈을 견디다 못해 돈 오천 냥을 내어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집안에 돈이라곤 한 푼도 남은 게 없이 가산을 탕진했으니 이젠 살아갈 길이 막연하구나! 이왕 시작한 일이니 끝까지 해보면 설마하니 끝에 가서야 길한 일이 없으랴?”
그러고는 다시 동산으로 올라가서 박 한 통 따다놓고,
“이번 박은 겉을 보건대 빛이 희고 좋으니 이 속엔 응당 보화가 들었을 것이니 정성 들여 타보자!”
하고 한동안 켜보다가 궁금증이 나서 귀를 기울여 가만히 들어보니 박속에서 우뢰같은 소리가 진동하며,
“비로라! 비로라!”
하므로 무더기로 큰 탈이 또 나는 줄 알고서 톱을 내던지고 달아나려하자 다시 박 속에서 우뢰같은 호령이 터져 나왔다.
“너희가 왜 박을 아니 타느냐. 내가 답답하여 한때를 못 견디겠으니 어서 켜라!
놀부가 겁을 먹고 물었다.
“‘비’라 하시니 무슨 비인지 자세히 말씀하시오.”
“이놈, 비로라.!”
놀부가 다시 물었다.
“비라 하시니 양귀비입니까? 누구신 줄이나 먼저 알고 박을 마저 켜겠습니다.”
“나는 그런 ‘비’가 아니라 연나라 사람 장비거니와 네가 만일 박을 아니켜면 무사하지 못하리라.”
놀부가 장비라는 말을 듣더니 매우 놀란 듯 목안의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이를 장차 어찌하면 좋은가? 이번엔 바칠 돈도 없으니 죽는 도리밖에 없나 보다.”
박을 타던 인부가 비웃으며 말을 받는다.
“너는 네 죄로 죽거니와 내야 무슨 죄로 죽는단 말이냐? 그런 말 다시 하다가는 내 손에 먼저 죽을 줄 알아라!”
“허튼 소리 말고 어서 타던 박이나 마저 타서 하회나 보세.”
놀부가 할 수 없이 마저 타고 보니 별안간 대장군 한 사람이 와락 뛰어 나오는데 얼굴은 숯먹을 갈아 끼얹은 듯이 꺼먼 것이 제비 턱에 고리 눈을 부릅뜨고서 장팔 사모 큰 창을 눈 위로 번쩍 들고 인경같은 소리를 우뢰같이 질렀다.
“이놈 놀부야, 네가 세상에 태어나 부모께 불효요, 형제에게 불목하고 친척과 불화하니 죄악이 네 털을 빼어 세어도 당치 못할 것이다. 천도가 어찌 무심할까 보냐. 옥황상제께서 나를 시켜 너를 ‘모든 방법으로 한없는 죄를 씻게 하라’하시기에 내가 특별히 왔으니 견뎌보아라.”
그러고는 움파같은 손으로 놀부의 덜미를 달려들어 잡고서 공기 놀리 듯하니, 놀부놈은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나 울며 애걸 복걸 하였다. 장군은 그 정상을 불쌍히 여겨 꾸짖고 떠나갔다.
“응당 너를 여러 토막 낼 것이지만 십분 생각하고 용서하는 것이니 이후는 어진 동생을 구박 말고 형제 화목하게 살도록 하라.”
놀부는 생짜로 경을 치르고 겨우 정신을 수습하자, 다시 동산으로 올라가 보니 박 두 통이 남아 있으므로 한 통을 또 따가지고 내려왔다.
“슬근슬근 톱질이야, 당겨 주소 톱질이야. 이 박 켜거들랑 금은보화 사태같이 나오너라. 흥부같이 살아 보리라.”
놀부 계집이 곁에 서 있다가 한 마디 던지는 것이었다.
“다른 보화는 많이 나오되 흥부 아주버니같이 첩만은 나오지 마소서.”
놀부는 당장에 꾸짖었다.
“가산을 탕진하고 살림이 결단나서 상거지가 된 것이 샘이 어디서 나오는고. 소란스럽게 굴지 말고 한편 구석에 가 있거라!”
밀거니 당기거니 슬근슬근 타며 귀를 기울여도 이번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므로 놀부놈 매우 기꺼워하며 인부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번엔 다 켜도 아무 소리가 없으니 아마 수가 터질 박이렷다!”
그러고는 급히 타며 안을 들여다보니 아무것도 없고 다만 평평할 뿐이므로 놀부가 기꺼워할 즈음이다. 인부는 속으로, ‘여러 박통마다 탈이 났으니 이 박이라고 어찌 무사하랴?’ 하고는 소피하러 가는 체하며 도망쳤다.
놀부는 인부를 기다리다 못해 박통을 도끼로 쪼개고 보니 아무것도 없고 다만 허연 박속이 먹음직하므로 제 계집 시켜 끓이게 하였다. 그리하여 온 집안 식구가 한 사발씩 달게 먹고 나니 놀부는 배가 붕긋하여 게트림을 하며 계집에게 말하였다.
“그 국맛이 매우 좋아, 당동!”
“글쎄요, 그 국맛이 매무 유명하오. 당동!”
놀부의 자식들이 제 어미를 부르면서 말하였다.
“이 국맛이 좋소, 당동!”
놀부가 다시 말하였다.
“글쎄요? 나도 그 국을 먹고 나니 당동 소리가 절로 나오. 당동!”
놀부의 자식이 말하였다.
“어머니 우리들도 그 국을 먹고 나니 당동 소리가 절로 나오. 당동!”
“오냐 글쎄 그렇구나. 당동!”
놀부놈은 은근히 화가 치받쳐서 꾸짖었다.
“너무 요망스럽게 굴지 마라! 당동. 무슨 국을 먹었다고 당동하노? 당동.”
놀부 계집이 맞장구를 쳤다.
“그 말이 옳소! 당동.”
놀부의 딸도 당동, 아들도 당동, 머슴놈도 당도, 놀부 마누라도 당동, 온집안 식구가 저마다 당동거리니 무슨 가야금이라도 뜯으며 풍류하는 것 같았다.
‘부자가 되려고 박을 심었다가 허다한 재산을 다 없애고 전후에 없는 고생을 하고 매를 맞고, 끝판에 와서는 온 집안 사람이 당동 소리로 병신이 되었으니 이런 분하고 원통한 일이 어디 있으리오? 당동.’
놀부는 홀로 신세를 생각하니 분한 김에 낫을 들고 단숨에 동산으로 치달아 올라갔다. 그리고 박덩굴을 노려보며 헤치니 덩굴 밑에 박 한통이 남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크기는 인경(조선시대 통행 금지를 알리기 위해 치던 종)만하고 무게가 천 근이나 될 것 같았다. 그것을 본 놀부놈은 치받치던 분한 생각은 깨끗이 잊어버리고 허욕이 번쩍 나서 혼자 지껄이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이제야 보물이 든 박을 얻었구나! 무게로 쳐도 금이 많이 든 모양이요, 재물도 많이 들어 있으므로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덩굴 속에 숨어 있는 것을 모르고 공연히 한탄만 했구나!
먼저 박통에서 나온 초라니 말이 ‘금이 들기는 어느 박통에 들었다’하더니, 그 양반 말이 과연 옳다. 황금이 든 박이 예 있을 줄 알았더라면 다른 박은 타지 말고 이 박 먼저 켰을 것을….”
그러고는 기꺼움을 스스로 이기지 못해 그 박을 따 가지고 내려오며 흥얼거렸다.
“좋을 좋을 좋을씨고? 지화자 좋을씨고!”
슬근슬근 타다가 반쯤 켜고 우선 궁금증이 나서 박 속을 기웃이 들여다보니 그 속이 아주 싯누런 것이 온통 황금 같으므로 놀부놈 좋아라 한다.
“수 났구나! 그럼 그렇지! 마누라, 자네도 이 박 속을 들여다 보게. 저 누런 것이 온통 황금일세.”
놀부 아내가 한동안 코를 훌쩍거리더니 되물었다.
“누런 것을 보니 금인가 싶소만 그 속에서 구린내가 물큰물큰 나니 그게 웬일이오?”
놀부가 말하였다.
“자네도 어리석은 소리 작작하게. 박이 더 익고 덜 익은 것이 있을 거아닌가. 이 박은 아주 무르익었으므로 구린내가 나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어서타고 보세.”
슬근슬근 거의 타다가 놀부 양주 궁금증이 또 나므로 톱을 멈추고 양편에 마주앉아 들여다보는데 별안간 박 속으로부터 모진 바람이 쏟아져 나오며 벼락같은 소리가 나더니 똥줄기가 무자위에서 나오는 물줄기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놀부 양주는 피할 사이도 없이 똥벼락을 맞으며 나동그라졌다. 똥줄기는 천군만마가 달려오듯 태산을 밀치고 바다를 메울 듯 터져나와 삽시간에 놀부집 안팎채가 똥으로 그득하게 되자 놀부 양주는 온 몸이 황금덩이가 되어 달아났다. 멀찍이 물러나서 뒤돌아보니 온 집안이 똥에 묻혀있는 것이었다.
놀부가 기가 막혀 발을 동동 구르며 탄식하였다.
“여보 마누라,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재물을 얻으려다 재물을 탕진하고 끝장은 똥더미로 의복 한 가지 없게 되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이오? 애고 답답 서러워라.”
이때 앞뒷집에 사는 양반네들 제 집까지 똥이 밀려와서 그득하게 쌓이게 되자 그 양반들이 고두쇠를 벼락같이 부르더니 분부하는 것이었다.
“빨리 가서 놀부놈을 잡아오너라!”
고두쇠가 새총알같이 달려가서 놀부놈의 덜미를 퍽퍽 눌러 짚고 풍우같이 몰아다가 생원님들 앞에 꿇어 앉혔다.
“이놈 놀부야, 들어라! 양반댁에 쌓인 똥을 해지기 전에 다 쳐내지 못하면 죽을 줄을 알아라!”
놀부놈은 기왓장 위에 꿇어앉은 채 계집을 시켜 돈 오백냥을 갖다놓고 거름 장사들을 닥치는 대로 불러다가 삯전을 후히 주고 똥을 쳐낸 다음에야 겨우 풀려났다.
놀부 내외 서로 붙들고 갈 곳이 없어 통곡하는데, 이때 건너 마을 흥부가 형이 패가망신했다는 말을 듣고 급히 노복을 거느리고 와서 놀부 양주와 조카들을 데리고 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흥부는 안방을 치우고 형님 내외를 거처케 한 다음 의식을 후히 내어 대접하며 위로하고, 한편으로 좋은 터를 잡아 수만금을 아낌없이 들여 집을 짓되 제 집과 같게 하고 세간이며 의복 음식을 똑같게 하여 그 형을 살게 하여 주었다.
그러자 비록 놀부같은 몹쓸 놈일망정 흥부의 어진 덕에 감동하여 전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형제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게 되었다. 흥부 내외는 부귀다남하여 나이 팔순에 이르도록 장수하며 자손이 번성했는데 모두가 사람됨이 빼어나서 대대로 풍족하니, 그 후로 사람들이 흥부의 덕을 칭소하여 그 이름이 백 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