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가 여러판본 2002/08/31 505
심청가
심청전이라 상 (完板 乙巳本)
송나라 말년에 황주 도화동(桃花洞)에 한 사람이 있었으니, 성은 심(沈)이오 이름은 학규(鶴奎)라. 누대(屢代) 잠영지족(簪纓之族)으로 문명(文名)이 자자터니, 가운(家運)이 영체(零替)하여 이십 안에 안맹(眼盲)하니, 낙수청운(洛水靑雲)에 벼슬이 끊어지고, 금장자수(錦帳刺繡)에 공명(功名)이 비었으니 향곡(鄕谷)의 가난한 신세 가까운 친척 없고, 겸하여 안맹하니 뉘라서 대접하랴마는 양반의 후예로 행실이 청렴하고 지조가 강개하니 사람마다 군자라 칭하더라.
그 처 곽씨부인 현철(賢哲)하여 임사(姙사)의 덕행(德行)이며 장강(莊姜)의 고움과 모란(木蘭)의 절개(節槪)와 예기(禮記) 주자가례(朱子家禮) 내칙편(內則篇)이며, 주남(周南) 소남(召南) 관저시(關雎詩)를 모를 것이 없으니, 가까운 이웃(隣里)에 화목하고 노복(奴僕)을 은애(恩愛)하며, 가산범절(家産凡節)함이 백집사가감(百執事可堪)이라. 백이와 숙제의 청렴이며 안연(顔연)의 가난이라. 청전구업(靑氈舊業) 바이 없어 한 간 집 단표자(單瓢子)에 조불려석(朝不慮夕)하는구나. 야외에 전토(田土) 없고 낭저(廊邸)에 노복 없어 가련한 어진 곽씨부인 몸을 바쳐 품을 팔아 삯바느질 관대(冠帶) 도포(道袍) 행의(行衣) 창의(창衣) 직령(直領)이며, 협수 쾌자 중치막과 남녀의복 잔누비질 상침(上針)질 외올뜨기 꽤담 곧추누비 솔 올이기 세답(洗踏) 빨래 푸새 마전 하절의복 한삼(汗衫) 고의(袴衣) 망건 꾸미기 갓끈 접기 배자(褙子) 단추 토시 버선 행전 주머니 쌈지 대님 허리띠 약낭(藥낭) 볼끼 휘양(揮項) 복건(복巾) 풍차(風遮) 처네 갖은 금침 베개모에 쌍원앙 수놓기며, 오사모 사각대 흉배(胸背)에 학(鶴) 놓기와 초상난 집 원삼(圓衫) 제복(祭服) 길쌈 선주(선주) 궁초(궁초) 공단(공단) 수주(수주) 남릉(남릉) 갑사(甲사) 운문(운문) 토주(토紬) 분주(盆紬) 명주(明紬) 생초(生초) 퉁견(퉁견)이며, 북포(북포) 황저포(황저포) 춘포(春布) 문포(문布) 계추리며, 삼베 백저(白苧) 극상(極上) 세목(細木) 짜기와 혼장대사 음식 숙정, 갖은 중계(中桂)하기와 박산(薄산) 과줄 신설로며 수퍼련 봉오림과 배상한데 고임질과 청홍황백 침향(沈香) 염색하기를 일년 삼백 육십일을 하루 반때도 놀지 않고 손톱 발톱 잦아지게 품을 팔아 모을 적에 푼(分)을 모아 돈을 짓고,돈을 모아 양(兩)을 만들어 일수체계(日收遞計) 장리변(長利邊)으로 이웃집 착실한 데 빚을 주어 실수없이 받아들여 춘추시향(春秋時享) 제사받들기, 앞 못보는 가장 공경(恭敬), 사절 의복 조석 찬수 입에 맞는 갖은 별미 비위 맞춰 지성 공경 한결같으니 마을 사람들이 곽씨부인 음전타고 칭찬하더라.
하루는 심봉사가,
“여보 마누라!”
“예”
“옛사람이 세상에 생겨날 제, 뉘 부부야 없으리오마는 전생의 무슨 은혜로 이 세상의 부부되어 일시 반때도 놀지 않고 주야로 벌어서 앞 못보는 가장 나를 어린아이 받들듯이 행여 배고플까 행여 추워할까 의복 음식 때 맞추어 극진히 공양하니, 나는 편타 하련마는 마누라 고생하는 일이 도리어 불편하니, 이후부터는 날 공경 그만하고 사는대로 살아가되, 우리 연장(年長) 사십에 슬하에 일점 혈육 없어 조종향화(祖宗香火) 끊게 되니, 죽어 지하에 간들 무슨 면목으로 조상을 대면하며, 우리 양주신세 생각하면 초상(初喪) 장사(葬事) 소대기(小大朞)며, 연달아 오는 기일 (忌日)에 밥 한 그릇 물 한 모금 거 뉘라서 받들이까? 명산대찰에 신공이나 드려보아 다행이 눈먼 자식이라도 남녀간에 낳아 보면 평생 한을 풀 것이니 지성으로 빌어 보오.”
곽씨 대답하되,
“옛글에 이르기를 불효삼천(不孝三千)에 무후위대(無後爲大)라 하였으니, 우리 무자(無子)함은 다 첩의 죄라, 응당 내침직하되 군자의 넓으신 덕택으로 지금까지 보존하니, 자식 두고 싶은 마음이야 주야 간절하와 몸을 팔고 뼈를 간들 못하오리까마는, 형세(形勢)는 간구(懇求)하고, 가군(家君)의 정대하신 성정(性情)을 몰라 발설치못하였더니, 먼저 말씀하옵시니 지성신공하오리다.”
하고 품팔아 모은 재물 온갖 공 다 들인다.
명산대찰 영신당과 고묘총사(古廟叢祠) 성황사(城隍祠)며 제불보살 미륵님과 칠성불공 나한불공 제석불공 신중맞이 노구맞이 탁의시주 인등시주 창호시주 갖가지로 다 지내고, 집에 들어 있는 날은 조왕 성주 지신제를 극진히 공들이니 공든 탑이 무너지며 심 든 나무 꺾어질까.
갑자(甲子) 사월 초파일 밤에 한 꿈을 얻으니, 서기반공(瑞氣蟠空)하고 오채영롱(五彩玲瓏)한데 일개 선녀 학을 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니, 몸에는 채의(彩衣)요 머리에는 화관이라. 월패(鉞佩)를 느직이 차고 옥패(玉佩)소리 쟁쟁한데, 계화(桂花) 한 가지를 손에 들고 부인에게 읍하고 곁에 와 앉는 거동은 뚜렷한 달 정신이 품안에 드는듯, 남해관음(南海觀音)이 해중(海中)에 다시 돋는듯 심신이 황홀하여 진정키 어렵더니, 선녀 하는 말이,
“서왕모 딸이옵더니 반도 진상 가는 길에 옥진비자를 만나 둘이 수작하였더니, 시를 좀 어겼삽기로 상제께 득죄하여 인간에 내치시매 갈 바를 몰랐더니, 태행산 로군(老君)과 후토부인 제불보살 석가여래님이 귀댁으로 지시하옵기에 왔아오니 어여삐 여기옵소서.”
품안에 들매 놀라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즉시 봉사님을 깨워 몽사(夢事)를 의논하니 둘이 꿈이 같은지라. 그날 밤에 어찌하였든지 과연 그달부터 태기(胎氣) 있어, 곽씨 부인 어진 마음 석부정부좌(席不正不座)하고, 할부정불식(割不正不食)하고, 이불청음성(耳不聽淫聲)하고, 목불시악색(目不視惡色)하며, 입불변와불측(立不邊 臥不仄)하며 십 삭(朔)을 찬 연후에, 하루는 해복 (解腹)기미 있구나.
“애고 배야. 애고 허리야.”
심봉사 일변 반갑고 일변 놀라 짚 한 줌 정히 추려내어, 사발에 정화수(井華水)를 소반에 받쳐 놓고, 단정히 꿇어 앉아,
“비나이다 비나이다. 삼신제왕 전에 비나이다. 곽씨부인 노산(老産)이오매 헌치마의 오이씨 빠지듯 순산하여 주옵소서”
빌더니, 뜻밖에 방에 향내 가득차고 오색 안개 두르더니, 혼미 중에 탄생하니 과연 딸이로다.
심봉사 거동 보소. 삼을 갈라 뉘어 놓고 마음에 기쁨 넘치는(滿心歡喜) 차에, 곽씨부인 정신차려 묻는 말이,
“여보시오 봉사님, 남녀간에 무엇이요.”
심봉사 대소(大笑)하고,
“아기 샅을 만져 보니 나룻배 지나듯 문득 지나가니, 아마도 묵은 조개가 햇조개 나았나 보오.”
곽씨부인 서러워하며 하는 말이,
“신공들여 만득(晩得)으로 낳은 자식 딸이라 하오.”
심봉사 이르는 말이,
“마누라, 그말 마오. 첫째는 순산이오, 딸이라도 잘 두면 어느 아들 주어 바꾸것소. 우리 이 딸 고이 길러 예절 먼저 가르치고, 바느질(針線) 베짜기(紡績) 두루 가르쳐 요조숙녀(窈窕淑女) 좋은 배필 군자호구(君子好逑) 가리어서 금실우지(琴瑟友之) 즐거움과 종(宗)사위 진진(秦晉)하면 외손봉사(外孫奉祀) 못하리까.”
첫국밥 얼른 지어 삼신(三神) 상에 받쳐 놓고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하고 두 손 들어 비는 말이,
“비나이다 비나이다. 삼십삼천(三十三千) 도솔천(도率天) 제석전(帝釋殿)에 발원(發願)하니 삼신 제왕님네 하회동심(下懷動心)하야 굽어 보옵소서. 사십 후에 점지한 자식, 한두 달에 이슬 맺어, 석 달에 피 어리어, 넉 달에 사람형상 생기어, 다섯 달에 외포(?) 생겨, 여섯 달에 육정(?)나고, 일곱 달에 생겨 사만 팔천 털이 나고, 여덟 달에 찬침 받아 금강문 해탈문 고이 열어 순산하오니 삼신님네 덕이 아니신가. 다만 무남독녀 딸이오나 동방삭의 명을 주어, 태임의 덕행이며 대순(大舜) 증삼(曾參) 효행이며, 반희(斑姬)의 재질이며 복은 석숭(石崇)의 복을 점지하여 촉부단혈(촉부단혈) 복을 주어 오이 붓듯 달 붓듯 잔병 없이 일취월장(日就月將)하여 주옵소서.”
더운 국밥 퍼다 놓고 산모를 먹인 후에 혼자말로 아기를 어룬다.
“금자동아 옥자동아, 어허 간간 내 딸이야, 표진강 숙향이가 네가 되어 환생하였느냐? 은하수 직녀성이 네가 되어 내려왔냐? 남전(南田) 북답(北沓) 장만한들 이에서 더 반가우며, 산호 진주 얻었은들 이에서 더 반가울까. 어디 갔다 인제 와 생겼느냐?”
이렇듯이 즐기더니 뜻밖에 산후별증(産後別症)이 났구나. 현철하고 음전하신 곽씨부인 해복한 초칠일 못다 가서 외풍을 과히 쐬어 병이 났네.
“애고 배야. 애고 머리야. 애고 가슴이야. 애고 다리야.”
지향없이 온몸을 앓는구나.
심봉사 기가 막혀 아픈 데를 두루 만지며,
“정신 차려 말을 하오. 체하였는가, 삼신님네 집탈인가?”
병세 점점 위중하니 심봉사 겁을 내어 건너 마을 성생원을 모셔다가 진맥한 연후에 약을 쓸 제, 천문동() 맥문동 반하 진피 계피 백복령 소엽 방풍 시호 계지 행인 도인 신농씨(신농씨) 상백초(상백초)로 의약을 쓴들 사병의 무약이라. 병세 점점 침중(沈重)하여 하릴없이 죽게 되니, 곽씨부인 또한 살지 못할 줄 알고, 가군의 손을 잡고,
“봉사님, 후유.”
한숨 길게 쉬고,
“우리 둘이 서로 만나 백년해로(百年偕老)하려 하고, 간구한 살림살이 앞 못보는 가장 범연하면 노여움 낄까봐 아무쪼록 뜻을 받아 가장 공경 하려 하고 풍한서습(풍한서습)가리쟎고 남촌북촌 품을 팔아 밥도 받고 반찬도 얻어, 식은 밥은 내가 먹고 더운 밥은 가군 드려 배고프지 않게 춥지 않게 극진 경대하옵더니, 천명이 그뿐인지 인연이 끊어졌는지 하릴없소. 눈을 어찌 감고 갈까. 뉘라서 헌 옷 지어주며, 맛있는 음식 뉘라서 권하리까. 내가 한번 죽어지면 눈 어두운 우리 가장 사고무친(四顧無親) 혈혈단신(孑孑單身) 위탁할 곳 없어 바가지 손에 들고 지팡막대 부여잡고 때 맞추어 나가다가 구렁에도 빠지고, 돌에도 채여 엎푸러져서 신세 자탄(自歎)으로 우는 양은 눈으로 곧 보는 듯, 가가문전(家家門前) 찾아가서 밥달라는 슬픈 소리 귀에 쟁쟁 들리는듯, 나 죽은 후 혼백인들 차마 어찌 듣고 보며, 명산대찰 신공드려 사십에 낳은 자식 젖 한 번도 못먹이고 얼굴도 채 못보고 죽는단 말인가. 전생에 무슨 죄로 이생에 생겨나서 어미 없는 어린 것이 뉘 젖 먹고 살아가며, 가군의 일신도 주체 못하는데 또 저것을 어찌하며, 그 모양 어찌 갈까. 저 건너 이동지(李同知) 집에 돈 열냥 맡겼으니, 그 돈 열량 찾아다가 초상에 보태어 쓰고, 또 장 안의 양식 해복 쌀로 두었으나 못다 먹고 죽어가니 나의 사정 절박하네. 첫 삭망(朔望)이나 지낸 후에 찾으러 오거든 염려 말고 내어 주고, 건너 마을 귀덕어미 내게 절친하여 다녔으니 어린 아이 안고 가서 젖을 먹여 달라 하면 응당 괄시 아니하리니, 천행으로 이 자식이 죽지 않고 자라나서 제발로 걷거든 앞세우고 길을 물어 내 무덤 앞에 찾아와서 ‘너의 죽은 모친 무덤이로다.’ 가르쳐 모녀 상면하면 혼이라도 원이 없겠오. 천명을 어길 길이 없어 앞못보는 가장에게 어린 자식 맡겨 두고 영결(永訣)하고 돌아가니 가군의 귀하신 몸 애통하여 상치말고 살리라. 애고 애고, 잊었오. 저 아이 이름을 심청이라 지어주고, 나 끼던 옥지환이 함 속에 있으니 심청이 자라거든 날 본듯이 내어주고, 나라에서 상사하신 돈 수복강영(壽福康寧) 태평안락(太平安樂) 양편에 새긴 돈을 고은 홍전(紅氈) 괴불 줌치 주홍 당사 벌매듭의 끈을 달아 두었으니 그것도 내어주오.”
하고 잡았던 손을 후리치고 한숨짓고 돌아누어 어린아이 잡아당겨 낯을 한 데 문지르며, 혀를 낄낄 차며,
“천지도 무심하고 귀신도 야속하다. 네가 진작 생기거나 내가 좀 더 살거나, 너 낳자 나 죽으니 가없는 궁천지통(궁천지통)을 널로하여 품게 하니, 죽은 어미 사는 자식 생가간에 무슨 죄냐. 뉘 젖 먹고 살아나며 뉘 품에서 잠을 자리. 애고 아가, 내 젖 망종 먹고 어서 어서 자라거라.”
두 줄 눈물 낯이 젖는구나. 한숨지어 부는 바람 삽삽비풍(颯颯悲風) 되어 있고, 눈물 맺어 오는 비는 소소처우(蕭蕭凄雨) 내리도다. 하늘은 나직하고 음운(陰雲)은 자욱한데 수풀에서 우는 새는 정어긍(?)하여 적막히 무루르고, 시내의 도는 물은 소리 삽삽잔잔하여 오령하며 흘러가니, 하물며 사람이야 어찌 아니 서러워하리. 딸국질 두 세번에 숨이 덜컥 지니 심봉사 그제야 죽은 줄 알고,
“애고 애고 마누라, 참으로 죽었는가? 이게 웬일인고!”
가슴을 꽝꽝 두드리며 머리 탕탕 부딪치며 내리딩굴 치딩굴며, 엎어지며 자빠지며 발구르며 고통하며,
“여보 마누라, 그대 살고 내가 죽으면 저 자식을 키울 것을, 내가 살고 그대 죽어 저 자식 어찌 키우잔 말인고. 애고 애고, 모진 목숨 살자 하니 무엇 먹고 살며, 함께 죽자 한들 어린 자식 어찌할까. 애고, 동지 섣달 찬 바람에 무엇 입혀 키워내며, 달은 지고 침침한 빈 방 안에서 젖먹자 우는 소리 뉘 젖 먹여 살려낼까. 마오 마오, 제발 덕분 죽지 마오. 평생 정한 뜻이 사즉동혈(死卽同穴)하자더니 염라국이 어디라고 날 버리고 저것 두고 죽단 말인가. 이제 가면 언제 오리. 애고, 청춘작반호환향(靑春作伴好還鄕)의 봄을 따라 오려는가. 청천유월래기시(靑天有月來幾時)에 달을 따고 오려는가. 꽃도 졌다 다시 피고 해도 졌다 다시 돋건마는 우리 마누라 가신 데는 가면 다시 못오는가. 삼천벽도요지연(三千碧桃瑤池宴)에 서왕모를 따라갔나. 월궁항아(月宮姮娥) 짝이 되어 도약하러 올라갔나. 황릉묘(황릉廟) 이비(二妃)와 함께 회포(懷抱) 말하러 갔나. 회사정 호천하던 사씨부인 찾아갔나. 나는 뉘를 찾아갈까. 애고 애고, 설운지고.”
이렇듯이 애통할 제 도화동 사람들이 남녀노소 없이 모여 와 눈물지며 하는 말이,
“현철하던 곽씨부인 불쌍히도 죽었구나. 우리 동네 백여 호라. 십시일반으로 감장(勘葬)이나 하여 주세.”
공론이 한 입에서 나온 듯 하여 의금(衣衾) 관곽(棺槨) 정히 하여 향양지지(향양지지) 가리어서 삼일만에 출상할 제 해로가(해로가) 슬픈 소리,
“원어원어 원어리 넘차, 원어.”
“북망산이 멀다더니 건너 산이 북망산일세.”
“원어원어 원얼리 넘차, 원어.”
“황천길이 멀다더니 방문 밖이 황천이라.”
“원어원어.”
“불쌍하다 곽씨부인. 행실도 음전하고 재질도 기이터니 늙지도 젊지도 아니하여서 영결종천(永訣종天)하였구나.”
“원어원어 원어리 넘차 원어어화너화 원어.”
이리저리 건너갈 제 심봉사 거동 보소. 어린아이 강보에 싼 채 귀덕어미에게 맡겨 두고 지팡막대 흩어집고 논들 밭들 쫓아와서 상여 뒷 채 부여 잡고, 목은 쉬어 크게 울든 못하고,
“여보 마누라, 내가 죽고 마누라가 살아야 어린 자식 살려내지. 천하천지 몹쓸 마누라, 그대 죽고 내가 살아 초칠일 못다간 어린 자식 앞못보는 내가 어찌 키워낼고. 애고 애고.”
설리 울 제 산처에 당도하여 안장하고 봉분을 다한 후에 심봉사 제를 지내되 설운 진정으로 제문 지어 읽는 것이었다.
“차호부인 차호부인(嗟呼夫人 嗟呼夫人) 요차요조숙녀혜여 생불고어고인이라.
기백년지해로(期百年之偕老) 우치자이영서혜(遺稚子而永逝兮)여
이것을 어찌 길러내며,
귀불귀혜천대혜(歸不歸兮臺兮)여 어느 때나 오려는가.
탁송추이위가(琢松秋而爲家)하여 자는듯이 누웠고,
상음용이적막(想音容而寂邈)하여 보고 듣기 어려워라.
누삼삼이첨금(淚參參而添衾)하여 젖는 눈물 피가 되고
심경경이소원(心耿耿以訴寃)하여 살 길이 전혀 없다.
소회인이재피(所懷人以在彼)하여 바라본들 어이하며
여장주이울도(如莊周以鬱陶)하여 뉘를 의지하잔 말까.
백양지외월락(白楊枝外月落)하여 산 적적 밤 깊은데
여추추이주유하여 무슨 물을 하소한들
격유현이노수하여 거 뉘라서 위로하리.
서래생지상봉(敍來生之相逢)하여 차생에 다한 일 없네.
주과포혜박잔혜여 많이 먹고 돌아가오.”
제문을 마악 읽더니 모들뜨기하여,
“애고 애고, 이게 웬일인고, 가오 가오. 날 버리고 가는 부인 한탄하여 무엇하리. 황천으로 가는 길이 객점이 없으니 뉘 집에 가 자고 가오. 가는 데 날 일러 주오.”
무수히 애통하니 장사 회객들이 말려 돌아와서 집이라 들어가니 부엌은 적적하고 방은 텅 비었구나. 어린아이 달래다가 횡덩그런 빈 방안에 태백산 갈가마귀 게발 물어 던진듯이 홀로 누웠으니 마음이 온전하리. 벌떡 일어서더니 이불도 만져 보며 베개도 더듬으며, 예덥던 금침(衾枕)은 의구히 있다마는 독수공방 뉘와 함께 덮고 자며, 농짝도 쾅쾅 치며, 바느질 상자도 덥석 만져 보고, 빗던 빗접도 핑등그르리 던져 보고, 받던 밥상도 더듬더듬 만져 보고, 부엌을 향하여 공연히 불러도 보며, 이웃집 찾아가서 공연히,
“우리 마누라 예 왔소?”
물어도 보고, 어린아이 품에 품고,
“너희 어머니 무상하다. 너를 두고 죽었지. 오늘은 젖을 얻어 먹었으나 내일은 뉘 집에 가 젖을 얻어 먹여 올까? 애고 애고, 야속하고 무상한 귀신 우리 마누라를 잡아갔구나.”
이처럼 애통하다가 풀쳐 생각하되,
‘사자(死者)는 불가부생(不可復生)이라 하릴없거니와 이 자식이나 잘 키워내리라.’
하고, 어린아이 있는 집을 차례로 물러 동냥젖을 얻어 먹일 적에 눈 어두워 보든 못하고 귀는 밝아 눈치로 가늠하고 앉았다가, 마침 날이 들 적에 우물가에서 들리는 소리 얼른 듣고 나서면서,
“여보시오 마누라님, 여보 아씨님네, 이 자식 젖을 좀 먹여 주오. 나를 본들 어찌하며 우리 마누라 살었을 제 인심으로 생각한들 괄시하며, 어미 없는 어린 것인들 아니 불쌍하오? 댁의 귀하신 아기 먹이고 남은 젖 한 통 먹여 주오.”
하니 뉘 아니 먹여 주리. 또 육 칠월 김매는 여인 쉴 참 찾아가서 애근하게 얻어 먹이고, 또 시내가의 빨래하는 데도 찾아가면 어떤 부인은 달래다가 따뜻이 먹여 주며 후일도 찾아오라 하고, 또 어떤 여인은 말하되,
“이제 막 우리 아기 먹었으니 젖이 없노라.”
하여 심청이 젖을 많이 얻어 먹인 후에, 아이 배가 불룩한즉 심봉사 좋아라고 양지바른 언덕 밑에 쪼그려 앉아 아기를 어룰 제,
“아가 아가, 자느냐? 아가 아가 웃느냐? 어서 커서 너의 모친같이 현철하여 효행있어 아비에게 귀함을 보여라.”
어느 조모 있어 보며 어느 외가 있어 맡길손가. 하도 볼 사람 없으니 아이 젖을 먹여 뉘이고 새새이 동냥할 제, 삼베 전대(錢帶) 두동지어 한 머리는 쌀을 받고 한 머리는 벼를 받아 모이고, 한달 육장 다니며 전전이 한푼 두푼 얻어 모아 아이 암죽거리로 갱엿 푼어치 홍합도 사고, 이렇듯이 지내며 매월 삭망 소대기(小大朞)?를 염려없이 지내더니, 또 심청이는 장래 귀히 될 사람이라 천지귀신이 도와주고 여러 부처 보살이 음조(蔭助)하여 잔병 없이 자라나 제 발로 걸어 잔주접을 지내고, 무정세월약류파(무정세월약류파)라. 어느덧 육칠세라. 얼굴이 국색(國色)이요, 인사가 민첩하고, 효행이 출천하고, 소견이 탁월하고, 인자함이 기린이라. 부친의 조석 공양과 모친의 제사를 의법대로 할 줄을 아니, 뉘 아니 칭찬하리요.
하루는 부친께 여쭈되,
“미물 짐승 가마귀도 공림 저문날에 반포할 줄을 아니 하물며 사람이야 미물만 못 하오릿가? 아버지 눈 어두신데 밥 빌러 가시다가 높은 데 깊은 데와 좁은 길로 천방지방 다니다가 엎어져 상하기 쉽고, 만일 날 궂은날 비비람 불고 서리친 날 추워 병이 나실가 밤낮으로 염려되오니, 내 나이 칠팔세라 생아육아(生兒育兒) 부모은덕 이제 봉양 못하면 일후 불행하신 날에 애통한들 갚사오릿가. 오늘부터 아버지는 집이나 지키시면 내가 나서서 밥을 빌어다가 조석근심 덜게 하오리다.”
심봉사 웃고 하는 말이,
“네 말이 기특하다. 인정은 그러하나 어린 너를 내보내고 앉아 받아먹는 마음 내 어찌 편하리요. 그런 말 다시 말라.”
또 여쭈오되,
“자로(子路)는 현인으로 백리(百里)에 부미(負米)하고, 제영(제영)은 어린 여자로되 낙양 옥중에 갇힌아비 제 몸을 팔아 속죄하니 그런 일 생각하면 사람이 고금이 다르리까. 고집하지 말으소서.”
심봉사 옳게 여겨,
“기특하다 내 딸이야 효녀로다 내 딸이야. 네 말대로 그리하여라.”
심청이 이날부터 밥 빌러 나설 제, 먼 산에 해 비치고 앞 마을에 연기나면 헌 베중의(布中衣) 대님치고, 말기만 남은 베치마 앞섶 없는 저고리를 이렁저렁 얽어메고 청목휘양(靑木揮項) 둘러쓰고, 버선 없이 발을 벗고 뒷축 없는 신을 끌고, 헌 바가지 옆에 끼고, 단지 노끈 매어 손에 들고 엄동설한 모진 날에 추운 줄을 모르고 이집 저집 문앞 문앞 들어가서 애근히 비는 말이,
“모친은 세상 버리시고 우리 부친 눈 어두어 앞못보는 줄 뉘 모르시리까. 십시일반이오니 밥 한 술 덜 잡수시고 주시면 눈 어두운 나의 부친 시장을 면하겠소.”
보고 듣는 사람들이 마음이 감격하여 그릇 밥, 김치, 장 아끼지 않고 주며, 혹은 먹고 가라 하면 심청이 하는 말이,
“추운 방의 늙은 부친 응당 기다릴 것이니 나 혼자 먹사오리까. 어서 바삐 돌아가서 아버지와 함께 먹겠나이다.”
이럭저럭 얻은 밥이 두세 집 얻으면 족한지라, 속히 돌아와서 방문 앞에 들어오며,
“아버지 춥지 않소? 아버지 시장하시지요. 아버지 기다렸소? 자연히 더디었소.”
심봉사가 딸을 보내고 마음을 둘 데 없어 탄식하더니 소리 얼른 반겨 듣고, 문을 활짝 열어 두고 두 손 덥석 잡고,
“손시럽지?”
입에 대고 훌훌 불며, 발도 차다 어루만지며, 혀를 끌끌차며, 눈물지며,
“애고 애고, 애닯도다 너의 모친. 무상하다 나의 팔자야. 너로 하여금 밥을 빌어 먹고 살잔말인가. 애고 애고, 모진 목숨 구차히 살아서 자식 고생시키는구나.”
심청의 극진한 효성 부친을 위로하되,
“아버지, 그 말씀 마오. 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의 효도를 받는 게 천리(天理)에 떳떳하고 인사에 당연하니 너무 걱정 마시오. 진지나 잡수시오.”
하며 저의 부친 손을 잡고,
“이것은 김치요. 이는 간장이오. 시장하신데 많이 잡수시오.”
이렇듯이 공양하며 춘하추동 사시절(四時節) 없이 동네 걸인 되었더니, 한 해 두 해 네대 해 지나가니, 재질이 민첩하고 침선이 능란하니 동네 바느질로 공밥 먹지 아니하고 삯을 주면 받아 모아 부친 의복 찬수(찬수)하고, 일 없는 날은 밥을 빌어 근근히 연명하여 가니, 세월이 물처럼 흘러 십 오세에 당하더니, 얼굴이 추월(秋月)같고, 효행이 태기(태기)하고, 동정이 안혼(안혼)하여 인사가 비범하니 천생려질(天生麗質)이라. 가르쳐 행할소냐. 여자중의 군자요 새 중의 봉황이라.
이러한 소문이 원근에 자자하니 하루는 월편 무릉촌 장승댁 시비 들어와 부인 명을 받아 심소저를 청하거늘, 심청이 부친께 여쭈되,
”어른이 부르신즉 시비와 함께 가 다녀오겠습니다. 만일 가서 더디어도 잡수시던남은 진지, 반찬, 수저, 상을 보아 탁자 위에 두었으니 시장하시거든 잡수시오. 부디 가 오기를 기다려 조심하옵소서.“
하고 시비를 따라갈 제, 시비 손 들어 가리키는 데 바라보니, 문 앞에 심은 버들 엄율한 시상촌(柴桑村)을 전하여 있고, 대문 안에 들어서니 좌편의 벽오동은 맑은 이슬이 뚝뚝 떨어져 학의 꿈을 놀라 깨고, 우편에 섰는 반송(盤松) 청풍(靑風)이 건듯 부니 늘은 용이 꿈틀거리는듯, 중문 안에 들어서니 창 앞에 심은 화초 일난초 봉미장은 속잎이 빼어나고, 고루 앞의 부용당(芙蓉堂)은 백구가 흔흔한데 하엽이 출수소의젼(출수소의젼)으로 높이 떠서 둥실 넙적, 징경이는 쌍쌍, 금붕어 둥둥, 안 중문 들어서니 가사(家舍)도 굉장하고 수호문창(수호문창)도 찬란한데, 반백(半白)이 넘은 부인 의상이 단정하고 기부(肌膚)가 풍염하여 복이 많은지라. 심소저를 보고 반겨하여 손을 쥐며,
”네가 과연 심청이냐? 듣던 말과 같도 같다.“
하시며 자리를 주어 앉힌 후에 가긍함을 위로하고, 자세히 살피니 천상의 봉용국색(봉容國色)일시 분명하다. 염용(염容)하고 앉은 거동 백석청강(百石淸江) 새 비 뒤의 목욕하고 앉은 제비 사람 보고 놀래는듯 황홀한 저 얼굴은 천심(天心)에 돋은 달이 수면에 비치었고, 추파(秋波)를 흘리뜨니 새벽 빛 맑은 하늘에 경경(耿耿)한 샛별같고, 양협(兩頰)의 고운 빛은 노양연봉추분홍(老陽連峯秋分紅)?의 부용(芙蓉)이 새로 핀듯, 청산 미간의 눈썹은 초생달 정신이요, 삼삼녹발은 새로 자란 난초같고, 재약쌍쌍빈(재약쌍쌍빈)은 매미 귀밑이라. 입을 벌여 웃는 양은 모란화 한송이가 하릇밤 비 기운에 피고자 벌어지는듯, 호치(皓齒)를 열어 말을 하니 농산(농山)의 앵무로다. 부인이 칭찬 왈,
“네 전세(前世)를 모르느냐? 분명히 선녀로다. 도화동에 적하(謫下)하니 월궁에 놀던 선녀 벗 하나를 잃었구나. 오늘 너를 보니 우연한 일 아니로다. 무릉촌에 내가 있고, 도화동에 네가 나니, 무릉촌에 봄이 들고 도화동에 개화로다. 탈천지지정기(奪天地之精氣)하니 비범한 너로구나. 내 말을 들어라. 승상이 일찍 기세(棄世)하시고 아들이 삼형제라. 황성에 여환(旅宦)하여 다른 자식 손자 없고, 슬하에 재미 없어 눈앞에 말벗 없고, 각방의 며느리는 혼정신성(昏定晨省)? 한 연후에 다 각기 제 일하니 적적한 빈 방안에 대하나니 촛불이요, 보나니 고서(古書)로다. 너의 신세 생각하니 양반의 후예로 저렇듯 궁곤하니 어찌 아니 불쌍하랴. 나의 수양딸 되면 여공(女功)이며 문산(文算)을 학습하여 기출(己出)같이 길러내어 말년 재미 보려하니 네 뜻이 어떠하뇨?”
심소저 일어나 재배하고 여쭈되,
“명도기구하여 낳은 지 초칠일 안에 모친이 불행하여 세상을 버리시매 눈어둔 나의 부친 동냥젖 얻어 먹여 겨우 살았으니 모친의 얼굴도 모르매 궁천지통(궁천지통) 끊일 날이 없삽기로 나의 부모 생각하여 남의 부모도 공경터니, 오늘 승상부인께옵서 권하신 뜻이 미천한 줄 헤지 않고 딸을 삼으려 하시니, 모친을 다시 뵈온듯 황송 감격하와 마음을 둘 곳이 전혀 없어 부인의 말씀을 좆자 하면 몸은 영귀(榮貴)하오나 안혼(眼昏)하신 우리 부친 조석공양과 사절 의복 뉘라서 이으리까. 구휼(救恤)하신 은덕은 사람마다 있거니와 ?지여날하여 난당 이별론이라. 부친 모시옵기를 모친 겸 모시옵고, 우리 부친 날 믿기를 아들 겸 믿사오니, 내가 부친곧 아니시면 이제까지 살았으며, 내가 만일 없어지면 우리 부친 남은 해를 마칠 길이 없사오며, 요조?의 사정 서로 의지하여 내 몸이 맟도록? 길이 모시려 하옵나이다.”
말을 마치매 눈물이 옥면에 젖는 거동은 춘풍세우(春風細雨)가 도화(桃花)에 맺혔다가 점점이 떨어지는 듯하니, 부인도 또한 긍칙(긍칙)하여 등을 어루만지면서,
“효녀로다 효녀로다, 네 말이여. 응당 그러할 듯하다. 노혼(老昏)한 나의 말이 미처 생각치 못하였다.”
그렁저렁 날이 저물어지니 심청이 여쭈오되,
“부인의 착하신 덕을 입어 종일토록 모셨으니 영광이 만하기로 일력(日力)이 다하오니 급히 돌아가 부친이 기다리시던 마음을 위로코자 하나이다.”
부인이 말리지 못하여, 마음에 연연히 여기사 채단과 피륙이며 양식을 후히 주어 시비와 함께 보낼 적에,
“너 부디 나를 잊지 말고 모녀간 의를 두면 노인의 다행이라.”
심청이 대답하되,
“부인의 장하신 뜻이 미쳤으니 가르치심을 받자오리다.”
절하여 하직하고 망연히 오더니라.
이때에 심봉사 홀로 앉아 심청을 기다릴 제 배고파 등이 붙고, 방은 추워 턱이 떨려지고, 잘 새는 날아 들고, 먼 데 절 쇠북소리는 들리니 날 저문 줄 짐작하고 혼자 하는 말이,
“내 딸 심청이는 무슨 일에 몰골하여 날이 저문 줄 모르는고. 주인에게 잡히어 못오는가? 저물게 오는 길에 동무에게 잠착(潛着?)한가?”
풍설(風雪)에 가는 사람 못보고 짓는 개 소리에 심청이 오는가 반겨 듣고, 무단할사 떨어진 옆 창에 와 풍설 섞여 부딪치니 심청이 온 자취 행여 긴가 하여 반겨 나서면서,
“심청이 너 오느냐?”
적막공정(적막공정)에 인적이 없었으니 헛분 마음 아득히 속았구나. 지팡막대 찾아 짚고 사립 밖에 나가다가 길이 넘는 개천에 밀친듯이 떨어지니, 면상에 흙빛이요 의복에 얼음이라. 뛴들 도로 더 빠지며 나오잔즉 미끄러져 하릴없이 죽게 되어, 아무리 소리친들 일모도궁(日暮途窮)하니 뉘라서 건져 주리.
진소위(眞所謂) 활인지불(活人之佛)은 곳곳마다 있는지라. 마침 이 때 몽운사 화주승이 절을 중창(重창)하려 하고 권선문(勸善文) 둘러메고 내려왔다. 청산은 암암(암암)하고 설월(雪月)은 돋아올 제 석경(石逕) 비낀 길로 절을 찾아가는 차에 풍편(風便) 슬픈 소리 사람을 구하라 하거늘, 화주승 자비한 마음에 소리 나는 곳을 찾아가더니, 어떤 사람이 개천에 빠져 거의 죽게 되었거늘, 저 중의 급한 마음 구절죽장(九節竹杖) 백골암상(백골암상)에 척척 던져 두고, 굴갓 수먹장삼(수먹장삼) 실띠 달린 채 벗어 놓고, 육날 미투리 행전 대님 버선 훨훨 벗어 놓고, 구두누비 바지 저고리 거듬거듬 휠씬 추고 월의을의 달려들어, 심봉사 곧추 상투 덥석 잡어 엇뜰우미야 건져 놓으니 전에 보던 심봉사라.
봉사 정신차려 묻는 말이,
“게 뉘시오.”
하니, 중이 대답하되,
“몽운사 화주승이요.”
“그렇지, 활인지불이로고. 죽은 사람 살려 놓으니 은혜 백골난망이라.”
화주승이 심봉사를 업고 방안에다가 앉히고 빠진 연고를 물으니, 심봉사 신세를 자탄하다가 전후 말을 하니, 그 중이 봉사더러 하는 말이,
“불쌍하오. 우리 절 부처님은 영검(靈驗)이 많으옵셔 빌어 아니 되는 일이 없고, 구하면 응하나니 공양미 삼백석을 부처님께 올리옵고 지성으로 공경하면 정녕 눈을 떠서 완전한 사람이 되어 천지만물을 보오리다.”
심봉사 가세(家勢)는 생각지 않고 눈뜬단 말에 혹하여,
“그러면 삼백석을 적어 가시오.”
화주승이 허허 웃고,
“여보시오, 댁의 가세를 살펴 보니 삼백 석을 무슨 수로 하것소?”
심봉사 홧김에 하는 말이,
“여보시오, 어느 쇠아들놈이 부처님께 적어 놓고 빈말 하것소. 눈 뜨려다가 앉은뱅이 되게요? 사람만 없수이 여기는고. 염려 말고 적으시오.”
화주승이 바랑을 펼쳐 놓고, 제일층 붉은 종이에 ‘심학규 백미 삼백 석이라’ 적어 가지고 하직하고 간 연후에, 심봉사 중을 보내고 다시금 생각하니 시주쌀 삼백 석을 만들어낼 길이 없어, 복을 빌려다가 도리어 죄를 얻을 것이니, 이 일을 어이하리. 이 설움 저 설움 묵은 설움 햇 설움이 동무지어 일어나니 견디지 못하여 울음 운다.
“애고 애고 내 팔자야. 망녕할사, 내 일이야. 천심이 지공(至公)하사 후박(厚朴)이 없건마는 무슨 일로 맹인이 되어 형세조차 간구하고, 일월같이 밝은 것을 분별할 길 전혀 없고, 처자같은 지정간(지정간)을 대하여도 못 보겠네. 우리 망처(亡妻) 살었더면 조석 근심 없을 것을, 다 커가는 딸 자식을 동네에 내놓아서 품을 팔고 밥을 빌어다가 근근히 호구하는 중에 공양미 삼백 석을 호기 있게 적어 놓고 백 가지로 생각한들 방책이 없구나. 빈 단지를 기우린들 한 되 곡식 바이 없고, 장롱을 수탐(搜探)한들 한 푼 전이 왜 있으리. 일간두옥(一間斗屋) 팔자 한들 풍우를 못 피커든 살 사람이 뉘 있으리. 내 몸을 팔자 하나 푼전 싸지 아니하니 나라도 사지 아니하랴거든, 어떠한 사람은 팔자 좋아 이목구비 완전하고 수족이 구비하여 부부해로하고 자손이 만당(만당)하고 곡식이 진진(진진)하고 재물이 영영(盈盈)하여 용지불간(用之不竭) 취지무궁(取之無窮) 그리운 것 없건마는, 애고 애고 내 팔자야, 나같은 이 또 있는가? 앉은뱅이 곱사등이 서럽다 한들 부모 처자 바로 보고, 말못하는 벙어리도 서럽다한들 천지만물 보아 있네.”
한창 이처럼 탄식할 제 심청이 바삐 와서 저의 부친 모양 보고 깜짝 놀래어 발 구르면서 전신을 두루 만지며,
“아버지, 이게 웬 일이요? 나를 찾아 나오시다가 이런 욕을 보셨소? 이웃집에 가셨다가 이런 봉변을 당하셨소? 춥긴들 오죽 하며 분함인들 오죽 하리까. 승상댁 노부인이 굳이 압고 만류하여 어언간에 더디었소.”
승상댁 시비 불러,
“부엌에 있는 나무로 불 한 부엌 넣어 주소.”
부탁하고, 치마폭을 거듬거듬 걷워 잡고 눈물 흔적 씻으면서,
“진지를 잡수시오. 더운 진지 가져 왔소. 국물 먼저 잡수시오.”
손을 끌어다가 가르치며,
“이것은 김치요, 이것은 자반이요.”
심봉사 만면수색(滿面愁色), 밥 먹을 뜻 전혀 없었으니,
“아버지, 웬일이오? 어디 아파 그러신가, 더디 왔다고 이렇듯이 진노하신가?”
“아니로다. 너 알아 쓸데없다.”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요? 부자간 천륜이야 무슨 허물 있으리까? 아버지는 나만 믿고, 나는 아버지만 믿어 대소사를 의론터니, 오늘날 말씀이 ‘너 알아 쓸데없다’고 하시오니 부모 근심은 곧 자식의 근심이라. 제 아무리 불효한들 말씀을 아니 하시니 제 마음에 섧사이다.”
심봉사 그제야,
“내가 무슨 일을 너를 속이랴마는, 만일 네가 알게 되면 지극한 너의 마음에 걱정만 되겠기로 말하지 못하였다. 아까 너를 기다리다가 저물도록 아니 오기에, 하 갑갑하여 너를 마중나갔다가 길이 넘는 개천에 빠져서 거의 죽게 되었더니, 뜻밖의 몽운사 화주승이 나를 건져 살려 놓고 하는 말이 ‘공양미 삼백석을 진심으로 시주하면 생전에 눈을 떠서 천지만물을 보리다.’ 하더구나. 홧김에 적었더니 중을 보내고 생각하니, 푼전 일 리 없는 중에 삼백 석이 어디서 난단 말이냐? 도리어 후회로다.”
하니 심청이 반겨 듣고 부친을 위로하되,
“아버지, 걱정 말으시고 진지나 잡수시오. 후회하면 진심이 못되오이다. 아버지 어두운 눈을 떠서 천지만물을 볼 양이면 공양미 삼백 석을 아무쪼록 준비하여 몽운사로 올리리다.”
“네 아무리한들 백척간두(百尺竿頭)에 할 수가 있을소냐.”
심청이 여쭈오되,
“왕상(王祥)은 고빙(求氷)하고 얼음 구멍에서 잉어 얻고, 곽거(郭거)라 하는 사람은 부모 반찬 하여 놓으면 제 자식이 상머리에서 먹는다고 산 채 묻으려 할 제 금항을 얻어다가 부모 봉양 하였으니, 사친지효(事親之孝)가 옛사람만 못하나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오니 공양미는 자연히 얻사오리다. 깊이 근심 마옵소서.”
만단 위로하고, 그날부터 목욕재계 전조단발(전조단발)하며 집을 소쇄(掃쇄)하며 후원에 단을 모아 북두칠성행야반(北斗七星행야반)에 만뢰구적(만뢰구적)한테 등불을 밝게 켜고, 정화수 한 그릇에 북향하여 비는 말이,
“간지 모월 모일에 심청은 근고우 재배하노니 천지일월성신이며 하지후토, 산령, 성황, 오방강신, 하백하며 제일의 석가여래, 감금강 칠보살, 팔부신장, 십왕성군, 강림이령 수차 흠향하옵소서. 하느님이 일월 두심이 사람의 안목이라. 일월이 없사오면 무슨 분별 하오리까? 아비 무자생신 삼십 안에 안맹하여 시물을 못 하오니, 아비 허물을 내 몸으로 대신 하옵고 아비 눈을 밝혀 주옵소서.”
이렇게 빌기를 마지아니하니, 하루는 들으니 ‘남경 상고 선인들이 십 오 세 처자를 사려 한다’ 하거늘 심청이 그 말 반겨 듣고, 귀덕어미 사이에 넣어 사람 사려 하는 곡절을 물은 즉,
“우리는 남경 선인으로 인당수 지나갈 제, 제수(祭需)로 제(祭)하면 무변대해(無邊大海)를 무사히 월섭(越涉)하고 십십만금 퇴를 내기로 몸 팔려 하는 처녀 있으면 값을 아끼지 않고 주겠노라.”
하거늘, 심청이 반겨 듣고 말을 하되,
“나는 본촌 사람이러니 우리 부친 안맹하사 공양미 삼백 석을 지성으로 불공하면 눈을 떠 보리라 하되, 가세 지빈(至貧)하여 판출(販出)할 길이 전혀 없어 내 몸을 팔려 하니 나를 사감이 어떠하뇨?”
선인들이 이 말 듣고,
“효성이 지극하나 가긍(可肯)하다.”
하며 허락하고 즉시 쌀 삼백 석을 몽운사로 올리고,
“금년 삼월 십오일에 발선(發船)한다.”
하고 가거늘 심청이 부친께 여쭈오되.
“공양미 삼백 석을 이미 올렸으니 이제는 근심치 마옵소서.”
심봉사 깜짝 놀라,
“너 그 말이 웬말이냐?”
심청같은 천출지효녀가 어찌 부친을 속이랴마는 사세부득(事勢不得)이라 잠깐 궤술(詭述)로 속여 대답하되,
“장승상댁 노부인이 일전에 나더러 수양딸 삼으려 하시는데 차마 허락지 아니하였삽더니 공양미 삼백 석을 주선할 길이 전혀 없어 이 사연을 노부인께 여쭈온 즉 백미 삼백 석을 내어 주시기로 수양딸로 팔렸나이다.”
하니, 심봉사 물색(物色) 모르고 이 말 반겨듣고,
“그러하면, 거룩하다. 그 부인은 일국 재상의 부인이라 아마도 다름이라. 후록(厚祿)이 많겠다. 저러하기에 그 자제 삼형제가 환로(宦路)에 등양(登揚)하느니라. 그러하나 자식으로 몸을 팔았단 말이 청문(聽聞)에 괴이하다마는 장승상댁 수양딸로 팔린 거야 관계하랴. 언제나 가느냐?”
“내월 망일(望日)로 데려간다 하더이다.”
“어, 그 일 매우 잘 되었다.”
심청 이 그날부터 곰곰 생각하니 눈 어두운 백발 부친 영결하고 죽을 일과 사람이 세상에 나서 십 오 세에 죽을 일이 정신이 아득하고, 일에도 뜻이 없어 식음을 전혀 하지않고 수심으로 지내더니, 다시금 생각하되 엎지러진 물이요 쏘아버린 화살이로다. 날이 점점 가까우니, ‘이러하여 못하겠다. 내가 살았을 제 부친의 의복 빨래나 하리라.’ 하고 춘추 의복 상침 접것, 하절 의복 한삼 고의 박아 지어 다려 놓고, 동절 의복 솜 두어 보에 싸서 농에 걸어 두고, 행선날을 헤아리니 하룻밤이 지격(至隔)한지라.
밤은 적적 삼경인데 은하수 기울어졌다. 촛불만 대하여 두 무릎 마주 꿇고, 아미(蛾眉)를 숙이려고 한숨을 길게 쉬니, 아무리 효녀라도 마음이 온전할소냐. ‘부친의 버선이나 망종 지으리라’ 하고 바늘에 실을 꿰어 드니 가슴이 답답하고, 두 눈이 침침, 정신이 아득하여 하염없이 울음이 간장으로부터 솟아나니, 부친이 깰가 하여 크게 울든 못하고 경경오열(경경嗚咽)하여 얼굴도 대어 보며, 수족도 만져보며,
“날 볼 날 몇 밤이뇨. 내가 한번 죽어지면 뉘를 믿고 살으실까? 애닯도다 우리 부친, 내가 철을 안 연후에 밥 빌기를 놓으시더니 내일부텀이라도 동네 걸인 되겠으니, 눈친들 오죽하며 멸시인들 오죽할까. 무슨 험한 팔자로써 초칠일 안에 모친 죽고, 부친조차 이별하니 이런 일도 있을까? 하량낙일수운기(河梁落日數雲起)는 소통국(蔬通國)의 모자이별, 편삽수유소일인(遍揷茱萸少一人)은 용산(龍山)의 형제이별, 서출양관무고인(西出陽關無故人)은 위성(渭城)의 붕우이별, 정객관산노기중(征客關山路幾重)은 오희월녀(吳姬越女) 부부이별, 이런 이별 많건마는 살아 당한 이별이야 어느 날에 소식 알며 어느 때에 상면할가? 돌아가신 우리 모친 황천으로 가 계시고, 나는 이제 죽게 되면 수궁으로 갈 것이니 수궁에서 황천 가기 몇 만리 몇 천 리나 되는고. 모녀 상면하려 한들 모친이 나를 어찌 알며 내가 어찌 모친을 알리. 만일 묻고 물어 찾아가서 모녀 상면 하는 날에 응당 부친 소식 물으실 것이니 무슨 말씀으로 대답하리. 오늘 밤 오경시를 함지(咸池)에다 머무르고 내일 아침 돋는 해를 부상지(扶桑枝)에다 맬 양이면 어여뿔사 우리 부친 좀 더 모셔 보련마는 일거월래(日去月來)를 뉘라서 막을소냐. 애고 애고, 설운지고.”
천지가 사정없어 이윽고 닭이 우니 심청이 하릴없이,
“닭아 닭아 우지 마라. 제발 덕분에 우지 마라. 반야진관(半夜秦關)의 맹상군(孟嘗君)이 아니로다.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내가 죽는다. 죽기는 섧지 아니하여도 의지없는 우리 부친 어찌 잊고 가잔 말인고.”
어느덧 동쪽이 밝아오니 심청이 저의 부친 진지나 마지막으로 지어 드리리라 하고 문을 열고 나서더니, 벌써 선인들이 사립 밖에서 하는 말이,
“오늘이 행선(行船)날이오니 쉬이 가게 하옵소서.”
하거늘, 심청이 이 말을 듣고 얼굴이 빛이 없어지고 사지의 맥이 없어 목이 메고 정신이 어질하여 선인들을 겨우 불러,
“여보시오 선인님네, 나도 오늘이 행선날인 줄 이미 알거니와 내 몸 팔린 줄을 우리 부친이 아직 모르시오니, 만일 아시게 되면 지레 야단이 날 것이니 잠깐 지체하옵소서. 부친 진지나 마지막으로 지어 잡수신 연후에 말씀 여쭙고 떠나게 하오리다.”
하니 선인들이,
“그리 하옵소서.”
하거늘 , 심청이 들어와 눈물로 밥을 지어 부친께 올리고 상머리에 마주 앉아 아무쪼록 진지 많이 잡수시게 하느라고 자반도 떼어 입에 넣고, 김쌈도 싸서 수저에 놓으며,
“진지를 많이 잡수시오.”
심봉사는 철도 모르고,
“야, 오늘은 반찬이 매우 좋구나. 뉘 집 제사 지냈느냐?”
그 날 꿈을 꾸니 이는 부자간 천륜이라 몽조가 있는 것이었다.
“아가 아가, 이상한 일도 있다. 간밤에 꿈을 꾸니 네가 큰 수레를 타고 한없이 가 보이니, 수레라 하는 것이 귀한 사람이 타느니라. 우리 집에 무슨 좋은 일이 있을가보다. 그렇지 아니하면 장승상댁에서 가마 태워 가려는가보다.”
심청이는 저 죽을 꿈인 줄 짐작하고 거짓,
“그 꿈 좋사이다.”
하고 진지상을 물러내고, 담배 태워 드린 후에 그 진지상을 대하여 먹으려 하니 간장이 썩는 눈물은 눈으로 솟아나고, 부친 신세 생각하며 저 죽을 일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하고 몸이 떨려 밥을 못먹고 물린 후에 심청이 사당에 하직 차로 들어갈 제, 다시 세수하고 사당문 가만히 열고 하직하는 말이,
“불초 여손(女孫) 심청이는 아비 눈뜨기를 위하여 인당수 제수로 몸을 팔아 가오매 조종향화(祖宗香火)를 이로 좆아 끊게 되오니 불승영모(不勝永慕)하옵니다.”
울며 하직하고 사당문 닫친 후에 부친 앞에 나아와 두 손을 부여잡고 기색(氣塞)하니 심봉사 깜짝 놀라,
“아가 아가, 이게 웬 일이냐? 정신 차려 말하여라.”
심청이 여쭈오되,
“내가 불초 녀식으로 아버지를 속였오. 공양미 삼백 석을 뉘라서 나를 주겠오. 남경 선인들에게 인당수 제수로 내 몸을 팔아 오늘이 떠나는 날이오니 나를 마지막으로 보옵소서.”
심봉사 이 말을 듣고,
“참말이냐, 참말이냐? 애고 애고, 이게 웬 말인고. 못가리라 못가리라. 너 날더러 묻지도 않고 네 임의대로 한단 말가? 네가 살고 내가 눈 뜨면 그는 응당하려니와 자식 죽여 눈을 뜬들 그게 차마 할 일이냐? 너의 모친 너를 늦게야 낳고 초칠일 안에 죽은 후에 눈 어두운 늙은 것이 품 안에 너를 안고 이집 저집 다니면서 구차한 말 하여가면서 동냥젖 얻어 먹여 키워 이만치 자랐거든, 내 아무리 눈 어두우나 너를 눈으로 알고 너의 모친 죽은 후에 차차 전과 같더니, 이 말이 무슨 말인고? 마라 마라, 못하리라. 아내 죽고 자식 잃고 내 살아서 무엇 하리. 너하고 나하고 함께 죽자. 눈을 팔아 너를 살 데 너를 팔아 눈을 뜬들 무엇을 보고 눈을 뜨리. 어떤 놈의 팔자관대 사궁지수(四窮之首) 되단 말가. 네 이놈 상놈들아, 장사도 좋거니와 사람 사다 죽여 제하는데 어디서 보았느냐? 하느님의 어지심과 귀신의 밝은 마음 앙화(殃禍)가 없겠느냐? 눈 먼 놈의 무남독녀 철모르는 어린 아이 나 모르게 유인하여 값을 주고 산단 말고. 돈도 싫고 쌀도 싫다. 네 이 상놈들아, 옛 글을 모르느냐? 칠년 대한(大旱) 가물 적에 사람으로 빌라 하니 탕임금 어지신 말씀 ‘내가 지금 비는 바는 사람을 위함이라. 사람 죽여 빌 양이면 내 몸으로 대신하리라.’ 몸으로 희생 되어 신영백모(身영白茅) 전조단발(剪爪斷髮)하고 상림(桑林) 뜰에서 빌었더니 대우방수천리(大雨方數千里) 비라. 이런 일도 있거니와 내 몸으로 대신 감이 어떠하냐?”
“여보시오 동네 사람들, 저런 놈들을 그저 두고 보오?”
심청이 부친을 붙들고 울며 위로하되,
“아버지, 하릴없소. 나는 이미 죽거니와 아버지는 눈을 떠서 대명천지(大明天地) 보고, 착한 사람을 구하여서 아들 낳고 딸을 낳아 아버지 후사(後嗣)나 전코 불초소녀를 생각지 마옵시고 만세만세무량(萬歲萬歲無量)하옵소서. 이도 또한 천명이오니 후회한들 어찌 하오리까.”
선인들이 그 정상을 보고, 영좌(領座)가 공론하되,
“심소저의 효성과 심봉사의 일생 신세를 생각하여 봉사 굶지 않고 벗지 않게 한 모개를 꾸며 주면 어떠하오?”
“그 말이 옳다.”
쌀 이백 석과 돈 삼백 냥이며 백목(白木), 마포(麻布) 각 한 동씩 동중에 들여 놓고 쌀과 삼백 냥 돈을 근실한 사람 주어 도지 없이 성하게 길러 심봉사를 공궤(供饋)하되, 삼백 석 중에 이십 석은 당년 양식하고 나머지는 여기저기 흩어 주어 장리(長利)로 취식(取息)하면 양식이 넉넉하고 백목 마포는 사절 의복 장만하고, 이 뜻으로 본관(本官)에 공문(公文) 내어 동중에 전하라.”
구별을 다한 연후에 심소저를 가자 할 제 무릉촌 장승상댁 부인이 그제야 이 말을 듣고 급히 시비를 보내어 심소저를 청하거늘, 소저 시비를 따라가니 승상부인이 문 밖에 내달아 소저의 손을 잡고 울며 왈,
“네 이 무상한 사람아, 나는 너를 자식으로 알았더니 너는 나를 어미같이 아니 아는도다. 백미 삼백 석에 몸이 팔려 죽으러 간다 하니 효성이 지극하다마는 네가 살아 세상에 있어 하는 것만 같을소냐. 날더러 의논했으면 진작 주선하였지야. 백미 삼백 석을 이제로 내어 줄 것이니 선인들 도로 주고 망령된 말 다시 말라.”
하시니 심소저 여쭈오되,
“당초에 말씀 못한것을 이제야 후회한들 어찌 하오리까. 또한 부친을 위하여 공을 빌 양이면 어찌 남의 명색없는 재물을 빌어오며, 백미 삼백 석을 도로 내어 주면 선인들 임시 낭패오니 그도 또한 어렵삽고, 사람에게 몸을 허락하여 약속을 정한 후에 다시금 약속을 어기오면 소인의 간장이라. 그는 좆지 못하려니와 하물며 값을 받고 수 삭이 지난 후에 차마 어찌 낯을 들어 무슨 말을 하오리까. 부인의 하늘같은 은혜와 착하신 말씀은 지부(地府)로 돌아가와 결초보은(結草報恩)하오리다.”
하고 눈물이 옷깃을 적시거늘. 부인이 다시 본즉 엄숙한지라. 하릴없이 다시 말리지 못하고 놓지도 못하시거늘, 심소저 울며 여쭈오되,
“부인은 전생의 나의 부모라. 어느 날에 다시 모시리까. 글 한 수를 지어 정을 표하오니 보시면 징험(徵驗)하오리다.”
부인이 반기어 지필묵을 내어 주시니 붓을 글을 쓸 제 눈물이 비가 되어 점점이 떨어지니 송이송이 꽃이 되어 그림 족자로다. 중당(中堂)에 걸고 보니 그 글에 하였으되,
생기사귀일몽간(生寄死歸一夢間)에
권정하필루잠잠(眷情何必淚잠잠)이랴마는
세간에 최유단장처(世間最有斷腸處)하니
초록강남인미환(草綠江南未人還)을.
이 글 뜻은,
‘사람의 죽고 사는 게 한 꿈 속이니
정을 이끌어 어찌 반드시 눈물을 흘리랴만은
세간의 가장 단장하는 곳이 있으니
풀 푸른 강남에 사람이 돌아오지 못하는도다.’
부인이 재삼 만집(挽執)하시다가 글 지음을 보시고,
“너는 과연 세상 사람 아니로다. 글은 진실로 선녀로다. 분명 인간의 인연이 다하여 상제 부르시매 네 어이 피할소냐? 내 또한 차운(次韻)하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주시니 하였으되,
무단풍우가 야래혼(無端風雨夜來昏)하니
취송명화각하문(吹送名花각何門)고
적거인간천필연(謫居人間天必戀)하사
강고부녀단정은(强固父女斷情恩)을.
이 글 뜻은,
‘무단풍우 밤이 어두워 오니
명화를 불어 보내어 뉘 문에 떨어지는고.
인간의 괴로움을 하늘이 생각하사
강인한 아비와 여식으로 하여금 은을 끊게 함이라.’
심소저 그 글을 품에 품고 눈물로 이별하니 차마 보지 못할러라.
심청이 돌아와서 저의 부친에게 하직할 새 심봉사 붙들고 뛰놀며 고통하여,
“네 날 죽이고 가지 그저는 못 가리라. 날 데리고 가거라. 너 혼자는 못 가리라.”
심청이 부친을 위로하되,
“부자간 천륜을 끊고 싶어 끊사오며 죽고 싶어 죽사오리까마는 액운(厄運)이 막히었삽고, 생사가 때가 있어 하느님이 하신 바오니 한탄한들 어찌 하오리까. 인정으로 할 양이면 떠날 날이 없사오리다.”
하고 저의 부친을 동네 사람에게 붙들이고 선인들을 따라갈 제 방성통곡(放聲痛哭)하며 치마끈을 졸라 매고 치마폭 거듬거듬 안고 흩으러진 머리털은 두 귀 밑에 느리우고 비같이 흐르는 눈물은 왼 옷에 사뭇 진다. 엎어지며 자빠지며 붙들여 나갈 제 건너 집 바라보며,
“아무개네 집 큰 아가, 상침질 수놓기를 뉘와 함께 하려느냐? 작년 오월 단오일에 추천하고서 놀던 일을 네가 행여 생각하느냐? 아무개네 집 작은 아가, 금년 칠월 칠석야에 함께 걸교(乞巧)하자더니 이제는 허사로다. 언제나 다시 보랴. 너희는 팔자 좋아 양친 모시고 잘있거라.”
동네 남녀노소 없이 눈이 붓도록 서로 붙들고 울다가 성 위에서 서로 분수(分手)한 연후에, 하느님이 아시던지 백일은 어디 가고 음운이 자욱하며 청산이 찡그리는듯 강 소리 오열하고, 휘늘어져 곱드란하던 꽃은 이우러져 제 빛을 잃은 듯하고, 요록한 버들가지도 조을듯이 휘늘어졌고, 춘조(春鳥)는 다정하여 백반제(百般啼)하는 중에,
“묻노라. 저 꾀꼬리는 뉘를 이별하였건데 환우성(患憂聲)케 울어 오고 뜻밖에 피를 내어 우나? 야월공산(夜月空山) 어디 두고 진정제송단장성(盡情啼送斷腸聲)을 네 아무리 가지 위에 불여귀(不如歸)라 울건마는 값을 받고 팔린 몸이 다시 어찌 돌아올까.”
바람에 날린 꽃이 옥면(玉面)에 와 부딪치니 꽃을 들고 바라보며,
“약도춘풍불해의(若道春風不解意)면 하인취송락화래(何因吹送落花來)오. 한무제 수양공주 매화잠(梅花簪)은 있건마는 죽으러 가는 몸이 뉘를 위하여 단장하리. 춘산의 지는 꽃이 지고 싶어 지랴마는 사세부득(事勢不得)이라 수원수구(誰怨誰咎)하리오.”
한 걸음에 돌아보며 두 걸음에 눈물지며 강두에 다달으니 뱃머리에 좌판 놓고 심청이를 인도하여 뱃장 안에 실은 연후에 닻을 감고 돛을 달아 여러 선인들이 소리하는구나.
“어기야 어기야 어기양 어기양.”
소리를 하며 북을 둥둥 울리면서 노를 저어 배질할 제 범피중유 떠나간다.
(상권 종)
심청전이라 하 (完板 乙巳本)
각설(却說)이라 망망(茫茫)한 창해(滄海)며 탕탕(蕩蕩)한 물결이라. 백빈주(白빈洲) 갈매기는 홍료안(紅蓼岸)에 날아들고 삼상(三湘)의 기러기는 한수(漢水)로 돌아들 제 요량한 물소리 어적(漁笛)인가 여기건만은 곡종인불견(曲終人不見)에 수봉(水峯)만 후르렀다.
‘애내성중만고수(애乃聲中萬古愁)는 날 두고 이름이라.’
장사(長沙)를 지나갈 제 태부(賈太傅) 간 곳 없고, 멱라수(멱羅水)를 바라보니 굴삼려(屈三閭)의 어복충혼(魚腹忠魂) 무양(無恙)하시던가. 황학루(黃鶴樓)를 당도하니 ‘일모향관하처시오 연파강상사인수(日暮鄕關何處是 烟波江上使人愁)’는 최호(崔顥)의 유적이오, 봉황대(鳳凰臺)를 다다르니 ‘삼산은 반락청천외요 이수는 중분백주’(三山半落靑天外 二水中分白露洲)라. 이적선(李謫仙)의 노던 데요, 심양강(尋陽江) 당도하니 백낙천(白樂天)은 어디 가고 비파성만 끊어졌다. 적벽강(赤壁江) 그저 가랴. 소동파(蘇東坡) 놀던 풍월은 의구히 있다마는 조맹덕(曹孟德)의 ‘일세지웅이 이금의안재재오’(一世之雄而今安在哉). 월락오제(月落烏啼) 깊은 밤에 고소성(姑蘇城)에 배를 매니 한산사(寒山寺) 쇠북 소리 객선(客船)에 이르렀다. 진(秦)나라 회수(淮水)를 건너갈 제 상녀(商女)는 부지망국한(不知亡國恨)하고 연롱한수월롱사(煙籠寒水月籠沙)할 제 후(後)정화만 부르는데, 소상강 들어가니 악양루(岳陽樓) 높은 집 호수 위에 떠 있거늘 동남으로 바라보니 오산(吳山)은 천첩(千疊)이요 초수(楚樹)는 망극(罔極)이라.
소상팔경이 눈 앞에 벌여 있거늘 역력히 둘러보니 강천(江川)이 망막하여 우루룩쭈루룩 오는 비는 아황(阿皇) 여영(女英)의 눈물이요, 반죽(斑竹)의 썩은 가지 점점이 맺혔으니 소상야우(소湘夜雨) 이 아니냐. 칠백 평 호(湖) 맑은 물은 추월(秋月)이 돋아오니 상하천광(上下天光) 푸르렀다. 어옹(漁翁)은 잠을 자고 자규만 날아들 제 동정추월(洞庭秋月)이 아니냐. 오초동남(吳楚東南) 너른 물에 오고 가는 상선은 순풍에 돛을 달아 북을 둥둥 울리면서 ‘어기야어기야이야’ 소리하니 원포귀범(遠浦歸帆) 이 아니냐. 격안강촌양삼가(隔岸江村兩三家)에 밥 짓는 연기 나고, 반조입강석벽상(返照入江石壁上)에 거울 낯을 열었으니 무산낙조(巫山落照) 이 아니냐. 일간귀천심벽이요 반태용심이라. 웅장하게 일어나서 한 떼로 둘렀으니 창오모운(蒼梧暮雲) 이 아니며, 수벽사명양안태(水碧沙明 兩岸苔)의 청원을 못이기어서 일어 오는 저 기러기는 갈대 하나를 입에 물고 점점이 날아들며 낄룩낄룩 소리하니 평사낙안(平沙落雁) 이 아니냐. 상수(湘水)로 울고 가니 옛 사당이 완연하다. 남순형제(南巡兄弟) 혼이라도 응당 있으려니 하였더니 제 소리에 눈물지니 황릉이원(黃陵二園) 이 아니냐. 새벽 쇠북 큰 소리에 맑은 쇠소리 ‘뎅뎅’ 섞여 나니, 오는 배 천리 원객(遠客)의 깊이 든 잠을 놀래어 깨우고, 탁자 앞의 늙은 중은 아미타불 염불하니 한산사 저녁 종소리 이 아닌가.
팔경을 다 본 연후에 행선(行船)을 하려 할 제 향풍(香風)이 일어나며 옥패 소리 들리더니 죽림(竹林) 사이에서 어떠한 두 부인이 선관(仙冠)을 높이 쓰고 자하상(紫霞裳) 석유군의 신을 끌어 나오더니,
“저기 가는 심소저야, 네 나를 모르리라. 창오산붕상수절이라 죽상지루내가멸(蒼梧山崩湘水絶 竹上之淚乃可滅)을 천추에 깊어 하소할 곳 없었더니, 지극한 너의 효성을 하례(賀禮)코자 나왔노라. 요순 후 수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 때인데, 오현금남풍시(五絃琴南風詩)를 이제까지 전하더냐? 수로 먼먼 길에 조심하여 다녀오라.”
하며 홀연 간데 없거늘, 심청이 생각하되,
‘이는 이비로다.’
서산에 당도하니 풍랑이 크게 일어 찬 기운이 소삽(簫颯)하여 검은 구름이 두르더니 사람이 나오는데, 면여거륜(面如巨輪)하고 미간(眉間)이 광할한데 가죽으로 몸을 싸고 두 눈을 딱 감고 심청을 불러 소리하되,
“슬프다, 우리 오(吳) 왕 백비의 참소 듣고 촉루검을 나를 주어 목 찔러 죽은 후에 칠피(漆皮)로 몸을 싸서 이 물에 던졌으니, 애닯다, 장부의 원통함이 월나라 병정이 오를 멸말시키는 것을 역력히 보려고 내 눈을 빼어 동문 위에다 걸고 왔더니 과연 내 보았노라. 그러나 내 몸을 감은 가죽은 뉘라서 벗겨 주며, 눈 없는 게 한이로다.”
이는 누군가 하니 오나라 충신 오자서일러라.
풍운이 걷히고 해와 달이 명랑하여 물결이 잔잔터니 어떠한 두 사람이 택반(澤畔)으로 나오는데, 앞의 한 사람은 왕자의 기상이요, 얼굴의 검은 때는 일국수색(一國愁色) 띄어 있고, 의복이 남루하니 초수(楚囚)일시 분명하다. 눈물지며 하는 말이,
“애닯고 분한 게 진나라의 속임 되어 삼년 무관에서 고국을 바라보고 미귀혼(未歸魂)이 되었구나. 천추의 깊은 한이 초혼조 되었더니 박랑퇴성(博浪槌聲) 반겨 듣고 속절없이 동정 달에 헛 춤만 추었노라.”
뒤에 또 한 사람은 안색이 초췌하고 형용이 고고(枯槁)한데,
“나는 초나라 굴원이라. 회왕을 섬기다가 자란(子蘭)의 참소를 만나 더러운 몸 씻으려고 이 물에 와 빠졌더니, 어여뿔사 우리 임금 사후에나 섬기리라 하고 이 땅에 와 모셨노라. 내 지은 이소경 제고양지묘예혜여 짐황고왈백용(帝高陽之苗裔兮 朕皇考曰伯庸)이라. 유초목지영락혜여 공미인지지혜(唯草木之零落兮 恐美人之遲兮)로다. 세상의 문장 재사 몇몇이나 되던고. 그대는 위친하여 효성으로 죽고, 나는 충성을 다하더니, 충효는 일반이라 위로코자 내 왔노라. 창해만리 먼먼 길에 평안히 가옵소서.”
심청이 생각하되,
‘죽은 지 수 천년의 정백(精魄)이 남아 있어 사람의 눈에 보이니 이도 또한 귀신이라. 나 죽을 징조로다.’
슬피 탄식하되,
“물에 잠이 몇 밤이며, 배의 밤이 몇 날이냐? 어언 사 오 삭이 이 물같이 지나가니 금풍삽이석기하고 옥우확이쟁영(金風颯以夕起 玉宇廓以쟁嶸.)이라. ‘낙하는 여고목바하고 추수는 공장천일색(落霞與孤鶩薺飛 秋水共長天一色.)’이라, 왕발이 지은 시구요.‘무변낙목소소하요 부진장강곤곤래(無邊落木蕭蕭下 不盡長江滾滾來.)는 두자미(杜甫) 읊은 시구요. 강안이 귤롱하니 황금이 편편이라 노화풍비하니 백설이 만점(江岸귤濃黃金片片 蘆花風飛白雪萬點.)이요. 신포세류 지는 잎은 옥로청풍 불고 있는데 외로운 어선들은 등불을 돋워 달고 어부가로 화답하니 그도 또한 수심(愁心)이 아니며, 해반청산(海畔靑山)은 봉우리마다 칼날되어 벌이나니 수장이라. 일락장사추색원의 부지하처조상군(日落長沙秋色遠 不知何處弔湘君)고. 송옥의 비추부가 이보다 더할소냐? 동남선녀를 실었으니 진시황의 채약배(採藥船)인가. 방사(方士) 서불(西市) 없으니 한무제의 구선배(求仙船)인가 지레 죽자 한들 선인들이 지키고, 살아 가자 니 고국(故國)이 창망(滄茫)이라.”
한 곳을 당도하니 돛을 지우며 닻을 주니 이는 곧 인당수라. 광풍이 대작하여 바다가 뒤누우며 어룡이 싸우는듯, 벽력이 일어나는듯 넓은 바다 한 가운데 일천 석 실은 배, 노도 잃고 닻도 끊어지며 용총도 부러져 키도 빠지고, 바람 불어 물결쳐 안개 비 뒤섞여 자자진데, 갈 길은 천 리 만 리 남아 있고, 사면은 어둑 저물어 천지 적막하여 간신히 떠 오는데, 뱃전에 탕탕, 돛대도 와지끈, 경각에 위태하니 도사공 영좌 이하로 황황히 겁내어 혼불부신(魂不附身)하며 고사 기계를 차릴 적에, 섬 쌀로 밥을 짓고, 동이 술에 큰 소 잡아 온 소다리 온 소머리 사지를 갈라 올려 놓고, 큰 돝 잡아 통 채 삶아 큰 칼 꽂아 기는 듯이 받쳐 놓고, 삼색실과(三色實果)며 오색탕수(五色糖水)와 어동육서(魚東肉西)며 좌포우혜(左脯右醯)와 홍동백서(紅東白西)를 방위 차려 고여 놓고, 심청을 목욕시켜 흰 옷 깨끗하게 입히어 상 머리에 앉힌 연후에, 도사공의 거동 보소. 북을 둥둥 치면서 고사할 제,
“두리둥두리둥, 칩떠 잡아 삼십삼천(三十三天), 내립떠 잡아 이십팔수(二十八수), 허궁천지 비비천(虛窮天地 非非天)과 삼황오제(三皇五帝) 도리천 시왕(十王) 일이등 마련하옵실 제, 천상의 옥황상제며 지하의 십이제국 차지하신 황제 헌원씨(軒轅氏)와 공맹안증(孔子.孟子.顔廻.曾子) 법문(法文)내고, 석가여래 불도(佛道) 마련이며, 복희씨(伏犧氏) 시획팔괘(始獲八卦) 하였고, 신농씨(神農氏) 시상백초 시유의약(始嘗百草 始有醫藥)하여 있고, 헌원씨 배를 내어 이제불통(以濟不通)하옵실 제, 후생(後生)이 본받아 사농공상 위업(爲業)으로 다 각기 생애 직업하니 막대하신 공이 아니시며, 하우씨(夏禹氏) 구년지수(九年之水)를 배를 타고 다스렸고, 오국을 정한 공 세우고 구주(九州)로 돌아들며, 오자서 분오할 제 노가로 건네 주고, 해성(垓城)에서 패한 항우장사 오강(烏江)으로 돌아들 제 배가 기다려 있고, 제갈공명의 조화로 동남풍을 빌어내어 조조의 십만 대병 수륙으로 화공(火攻)하니 배 아니면 어이하며, 도연명(陶淵明)은 전원으로 돌아오고 장한(張翰)은 강동으로 돌아갈제 이도 또한 배를 타고, 임술지추(任戌之秋) 칠월에 종일위지소여(從一葦之所如)하니 소동파도 놀아 있고, 지국총어사화하니 교여승유무정거는 어부의 즐거움이요, 계도난요노하장포(桂棹蘭橈櫓下長浦)하니 오희월녀(吳姬越女)의 채련주(採蓮舟)요, 지오부서거하니 경세우경년(經歲又經年)은 상고선(商賈船)이 아니냐.
우리 동무 스물 네 명이 상고로 위업하여 십 여 세에 조수 타고 표박서호 다니더니, 인당수 용왕님은 인제수(人祭需)를 받잡기로 유리국 도화동에 사는 십 오 세 된 효녀 심청을 제수로 드리오니 사해 용왕님은 고이고이 받자옵소서. 동해신 아명(阿明) 서해신 거승(巨勝)이며 남해신 축융(祝融) 북해신 우강(偶疆)이며, 칠금산 용왕님 자금산 용왕님 개개섬 용왕님, 영각대감 성황님, 허리간의 화장 성황님, 이물 고물 성황님네, 다 굽어 보옵소서. 수로(水路) 천리 먼먼 길에 바람 구멍을 열어내고 낮이면 고루 넣어 용난골수 깊었는데, 평반(平盤)에 물 담은듯이 배도 무쇠가 되고, 닻도 무쇠가 되고, 용총 마루 닻줄 모두 다 무쇠로 점지하옵고 영락지환(零落之患)이 없삽고 실물실화(失物失貨) 제살(制煞)하여 억십만금 퇴를 내어 대 끝에 봉기 질러 웃음으로 연화하고 춤으로 대길하게 점지하여 주옵소서.”
하며 북을 둥둥 치면서,
“심청은 시(時)가 급하니 어서 바삐 물에 들라.”
심청의 거동보소. 두 손을 합장하고 일어나서 하느님 전에 비는 말이,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느님 전에 비나이다. 심청이는 죽은 일은 추호라도 섧지 아니하여도, 병신 부친의 깊은 한을 생전에 풀려 하옵고 이 죽음을 당하오니 명천(明天)은 감동하옵셔서 침침한 아비 눈을 명명하게 띄여 주옵소서.”
팔을 들어 소리치고,
“여러 선인 상고님네 편안히 가옵시고, 억십만금 퇴를 내어 이 물가를 지나거든 나의 혼백 불러 무랍이나 주오.”
두 활개를 쩍 벌리고 뱃전에 나서 보니 수쇄한 푸른 물은 월리렁 출렁 뒤둥굴어 물농울쳐 거품은 북적 쪄 드는데, 심청이 기가 막혀 뒤로 벌떡 주저앉아 뱃전을 다시금 잡고 기절하여 엎드린 양은 차마 보지 못할러라.
심청이 다시 정신 차려 할 수 없이 일어나 온몸을 잔뜩 쓰고 치마폭을 무릅쓰고 총총걸음으로 물러섰다 창해(滄海) 중에 몸을 주어,
“애고 애고 아버지, 나는 죽소.”
뱃전에 한 발을 짐칫하며 꺼꾸로 풍덩 빠져 놓으니, 행화(杏花)는 풍랑(風浪)을 쫒고 명월은 해문(海汶)에 잠기니 차소위묘창해지일속(此所謂渺滄海之一粟)이라. 새는 날 정신(靜晨)같이 물결은 잔잔하고 광풍은 삭아지며 안개 자옥하니 가는 구름 머물렀고 청천(靑天)의 푸른 안개 새는 날 동방처럼 일기 명랑하더라.
도사공 하는 말이,
“고사를 지낸 후에 일기 순통하니 심낭자의 덕이 아니신가.”
좌중(座中)이 일심이라. 고사를 파하고 술 한 잔씩 먹고, 담배 한 대씩 먹고,
“행선합세.”
“어 그리 합세.”
“어기야, 어기야.”
뱃노래 한 곡조에 삼승(三升) 돛 짝을 채워 양쪽에 갈라 달고 남경으로 들어갈 제, 와룡수(渦龍水) 여울물의 이전 살대같이, 안족(雁足)에 전한 편지 북해상의 기별같이 순식간에 남경으로 득달하니라.
이때에 심낭자는 창해 중에 몸이 들어 죽는 줄로 알았더니, 오운이 영롱하고 이향(異香)이 코에 닿더니 옥적성(玉笛聲) 맑은 소리 은은히 들리거늘 몸을 머물러 주저할 제, 옥황상제 하교하사 인당수 용왕과 사해 용왕 지부왕에게 낱낱이 하교하시되,
“명일에 출천효녀 심청이가 그곳을 갈 것이니 몸에 물 한 점 묻지 않게 하되, 만일 모시기를 실수하면 사해 용왕은 천벌을 주고 지부왕은 손도(損徒)를 줄 것이니 수정궁으로 모셔들여 삼년 공궤 단장하여 세상으로 환송하라.”
하교하시니, 사해용왕이며 지부왕이 모두 다 황겁하여 무수한 강한제장(江漢諸將)과 천택지군(川澤之君)이 모여들 제, 원참군 별주부, 승지 도미, 비변랑 낙지, 감찰의 잉어며 수찬의 송어와 한림의 붕어, 수문장의 메기, 청명사령 자가사리, 승대 북어 삼치 갈치, 앙금 방게, 수군 백관이며, 백만 인갑이며, 무수한 선녀들은 백옥교자(白玉轎子)를 등대하여 그 시를 기다리더니, 과연 옥같은 심낭자 물로 뛰어드니 선녀들이 받들어 교자에 올리거늘, 심낭자 정신을 차려 이르는 말이,
“진세간(塵世間)의 거칠고 낮은 인생으로 어찌 용궁의 교자를 타오리까?”
하니, 여러 선녀들이 여쭈오되,
“옥황상제의 분부가 지엄하시니, 만일 타시지 아니하시면 우리 용왕이 죄를 면치 못하겠사오니 사양치 마시고 타옵소서.”
심낭자 그제야 마지못하여 교자 위에 높이 않으니 팔선녀는 교자를 메고, 육룡이 시위하여 강한지장과 천택지군이 좌우로 늘어서, 청학 탄 두 동자는 앞길을 인도하여 해수로(海水路) 길 만들고, 풍악으로 들어갈 제, 천상 선관 선녀들이 심소저를 보려하고 벌여 섰으니, 태을선녀(太乙仙女)는 학을 타고, 적송자(赤松子)는 구름 타고, 사자 탄 갈선옹(葛仙翁)과 청의동자 백의동자, 쌍쌍 시비 취적성과 월궁 항아 서왕모며, 마고선녀(麻姑仙女), 낙포선녀(洛浦仙女)와 남악부인(南岳夫人) 팔선녀(八仙女) 다 모였는데, 고운 복색 좋은 패물 향기도 이상하며 풍악도 진동한다. 왕자진(王子晋)의 봉피리며, 곽처사(郭處士)의 죽장고며, 성연자의 거문고와 장자방(張子房)의 옥통소며, 혜강(혜康)의 해금이며 완적(阮籍)의 휘파람에 적타고 취옹적하며 능파사(凌波詞) 보허사며, 우의곡 채련곡을 섞갈려 노래하니, 그 풍류 소리 수궁에 진동한다. 수정궁으로 들어가니 별유천지비인세(別有天地非人世)로다. 남해 광리왕이 통천관을 쓰고, 백옥홀을 손에 들고 호기 찬란하게 들어가니 내(川) 삼천(三千)과 팔백 수궁 지부 대신들은 왕을 위하여 영덕전 큰 문 밖에 차례로 늘어서서 상호(相互) 만세하더라. 심낭자의 뒤로는 백로 탄 여동빈(呂洞賓), 고래 탄 이적선과 청학 탄 장여는 비상천(飛上天)하는구나. 집 치레 볼작시면 능란(能爛)하고 웅장할시고. 괘용골이위양(卦龍骨而爲양)하니 영광이 요일(靈光曜日)이요 집어린이작와하니서기반공(緝魚鱗而作瓦瑞氣蟠空)이라. 주궁패궐(珠宮貝闕)은 응천상지삼광(應天上之三光)이오 곤의수상(坤儀殊常)은 비인간지오복(備人間之五福)이라. 산호렴(珊瑚簾) 대모병(玳瑁屛)은 광채도 찬란하고, 교인단모장(鮫人緞毛帳)은 구름같이 높이 치고, 동으로 바라보니 대붕(大鵬)이 비진(飛振)하는데 청어람(靑於藍) 푸른 물은 보(洑) 가에 둘러 있고, 서쪽으로 바라보니 약수유사(弱水柳絲) 아득한데, 일쌍 청조 날아들고, 북으로 바라보니 일발청산(一髮
靑山)은 비취색을 띠어 있고, 위를 바라보니 상운서일(祥雲瑞日) 붉었는데 상통삼천하달구리(上通三千下達九里)하고, 음식을 둘러보니 세상 음식 아니로다. 파리반(坡璃盤) 마류안(瑪琉案)과 유리잔 호박대(琥珀臺)에 자하주(紫霞酒) 천일주(千日酒) 인포(麟脯)로 안주 하고, 호리병 (葫蘆甁) 제호탕(醍호湯)에 감로주도 넣어 있고, 윽액경장호마반도도 와 있고, 한 가운데 삼천벽도(三千碧桃)도 덩그렇게 고였는데, 무비선미(無比仙味)어늘, 수궁에 머무를 새 옥황상제의 명이어든 거행이 오죽하랴.
사해 용왕이 다 각기 시녀를 보내어 조석으로 문안하고, 체번(替番)하여 문안하며 시위하니 금수능라(錦繡綾羅) 오색채의(五色彩衣) 화용월태 (花容月態) 고운 얼굴, 다 각기 고이려고 교태하여 웃는 시녀, 얌전코자 죽는 시녀, 천정으로 고운 시녀, 수려한 시녀들이 주야로 모일 적에 삼일에 소연하고 오일에 대연하며, 상당의 채단 백 필이며 하당의 진주 서 되라. 이처럼 공궤하되 유공불급(猶恐不及)하여 조심이 각별터라.
각설 이 때, 무릉촌 장승상댁 부인이 심소저의 글을 벽에 걸어 두고 날마다 징험하되 빛이 변치 아니하더니, 하루는 글 족자에 물이 흐르고 빛이 변하여 검어지니 이는 심소저 물에 빠져 죽은가 하여 무수히 탄식하더니, 이윽고 물이 걷고 빛이 황홀하여지니, 부인이 괴이히 여겨 누가 구하여 살아났는가 하며 십분 의혹하나 어찌 그러하기 쉬우리요.
그 날 밤에 장승상부인이 제전(祭典)을 갖추어 강상에 나아가 심소저를 위하여 혼을 불러 위로코자 하여 제하려 하고 시비를 데리고 강두에 다달으니, 밤은 깊어 삼경인데 첩첩이 싸인 안개 산악에 잠겨 있고, 첩첩이 이는 내는 강수로 어리었다. 편주(片舟)를 흘리저어 중류에 띄워 두고, 배 안에서 설위하고 부인이 친히 잔을 부어 오열한 정으로 소저를 불러 위로하는 말이,
“오호 애재 심소저야, 죽기를 싫어하고 살기를 즐거워 함은 인정에 고연커늘 일편단심의 양육하신 부친의 은덕을 죽기로써 갚으려 하고, 이로 잔명을 스스로 자단하니, 고운 꽃이 흐터지고 나는 나비 불에 드니 어찌 아니 슬플소냐. 한 잔 술로 위로하니 응당 소저의 혼이 아니면 아니하리니 고이 와서 흠향함을 바라노라.”
눈물 뿌리어 통곡하니 천지 미물인들 어찌 아니 감동하리. 두렷이 밝은 달도 체운 속에 숨어 있고, 해맑게 불던 바람도 고요하고, 어룡도 있었던지 강심도 적막하고, 사장에 노던 백구도 목을 길게 빼어 끌룩끌룩 소리 하며, 심상한 어선들은 가던 돛대 머무른다. 뜻밖에 강가운데로부터 한 줄 맑은 기운이 뱃머리에 어리었다가 이윽하여 사라지며 일기 명랑커늘, 부인이 반겨 일어서서 보니 가득히 부었던 잔이 반이나 없는지라, 소저의 영혼을 못내 느꺼워 하시더라.
일일은 광한전 옥진부인이 오신다 하니 수궁이 뒤눕는듯 용왕이 겁을 내어 사방이 분주하니, 원래 이 부인은 심봉사의 처 곽씨부인이 죽어 광한전 옥진부인이 되었더니, 그 딸 심소저가 수궁에 왔단 말을 듣고, 상제께 수유하고 모녀상봉하려 하고 오는 길이라.
심소저는 뉘신 줄을 모르고 멀리서 바라볼 따름일러니, 오운이 어리었고 오색채교를 옥기린에 높이 싣고 벽도화 단계화는 좌우에 벌여 꼽고, 각 궁 시녀들은 시위하고, 청학 백학들은 전배하고, 봉황은 춤을 추고, 앵무는 전어하는데 보던 바 처음일러라.
이윽고 교자에서 내려 섬돌에 올라서며,
“내 딸 심청아!”
부르는 소리에 모친인 줄 알고 왈칵 뛰어 나서며,
“어머니 어머니, 나를 낳고 초칠일 안에 죽었으니 우금 십 오년을 얼굴도 모르어니 천지간 가없이 깊은 한이 갤 날이 없삽더니, 오늘날 이곳에 와서야 모친과 상면할 줄을 알았더면 오던 날 부친 앞에서 이 말씀을 여쭈었다면 날 보내고 설운 마음 적이 위로하실 것을, 우리 모녀는 서로 만나 보니 좋거니와 외로우신 아버님은 뉘를 보고 반기시리까. 부친 생각이 새로와라.”
부인이 울며 왈,
“나는 죽어 귀히 되어 인간 생각 망연하다. 너의 부친 너를 키워 서로 의지하였다가 너조차 이별하니, 너 오던 날 그 정상이 오죽하랴. 내가 너를 보니 반가운 마음이야 너의 부친 너를 잃은 서름에다가 비길소냐. 묻노라. 너의 부친 궁곤에 싸이어서 그 형용이 어떠하며 응당 많이 늙었으리라. 그간 수 십년에 면환이나 하였으며, 뒷마을 귀덕어미 네게 아니 극진터냐?”
얼굴도 대어 보며, 수족도 만져 보며,
“귀와 목이 희었으니 너의 부친 같도다. 손과 발이 고운 것은 어찌 아니 내 딸이랴. 내 끼던 옥지환도 네가 지금 가졌으며, 수복강령 태평안락 양편에 새긴 돈 흥전 괴불 줌치 청홍당사 벌매듭도 애고, 네가 찼구나. 아비 이별하고 어미 다시 보니 쌍전키 어려울손 인간고락이라. 그러나 오늘날 나를 다시 이별하고 너의 부친을 다시 만날 줄을 네가 어찌 알겠느냐? 광한전 맡은 일이 직분이 허다하여 오래 비우기 어렵기로 도리어 이별하니 애닯고 애연하나 임의로 못하나니 한탄한들 어이할소냐. 일후에 다시 만나 즐길 날이 있으리라.”
하고 떨치고 일어서니, 소저 만류치 못하고 따를 길이 없는지라, 울며 하직하고 수정궁에 머물더라.
이 때 심봉사 딸을 잃고 모진 목숨 죽지 못하여 근근 부지 살아갈제, 도화동 사람들이 심소저의 지극한 효성으로 물에 빠져 죽음을 불쌍히 여겨 타루비를 세우고 글을 지었으되,
지위기친쌍안폐하여
살신성효행용궁을
연파만리상심부하니
방초년년한불궁이라
강두에 내왕하는 행인이 비문을 보고 뉘 아니 울 이 없고, 심봉사는 딸 곧 생각나면 그 비를 안고 울더라.
동중 사람들이 심맹인의 전곡을 착실히 취리하여 형세가 해마다 늘어가니, 본촌의 서방질 일쑤 잘하여 밤낮없이 흘레하는 개같이 눈이 벌겋게 다니는 뺑덕어미가 심봉사의 전곡이 많이 있는 줄을 알고 지원 첩이 되어 살더니, 이년의 입버르장머리가 또한 아래 버릇과 같아 한시 반 때도 놀지 아니하려고 하는 년이라. 양식 주고 떡 사먹기, 베를 주어 돈을 사서 술 사먹기, 정자 밑에 낮잠자기, 이웃집에 밥 붙이기, 동인더러 욕설하기, 초군들과 쌈 싸우기, 술 취하여 한 밤중에 앙탈부려 울음 울기, 빈 담뱃대 손에 들고 보는 대로 담배 청하기, 총각 유인하기, 제반 악증을 다 겸하여 그러하되, 심봉사는 여러 해 주린 판이라 그중에 실락은 있어 아무런 줄을 모르고, 가산이 점점 퇴패하니 심봉사 생각다 못하여서,
“여보 뺑덕이네, 우리 형세 착실하다고 남이 다 수군수군하더니 근래에 어찌한지 형세가 치패하여 도리어 빌어먹게 되어가니, 이 늙은 것이 다시 빌어먹자 한들 동인도 부끄럽고, 나의 신세도 악착하니 어디 낯을 들어 다니겠나.”
뺑덕어미 대답하되,
“봉사님, 여태 자신 게 무엇이요? 식전마다 해장하신다고 죽 값이 여든 두 양이오. 저렇게 갑갑하다니까. 낳아서 키우지도 못한 것 밴다고 살구는 어찌 그리 먹고 싶던지 살구 값이 일흔 석 양이오. 저렇게 갑갑하다니까.”
봉사 속은 타고, 헛 웃음 웃으며,
“야, 살구는 너무 많이 먹었다. 그렇지마는 계집 먹은 것 쥐 먹은 것이라니 아니 쓸 데였다. 우리 세간 기물을 다 팔아 가지고 타관으로 나가세.”
“그도 그러하오.”
여간 기물을 다 팔아 지고 남부여대하고 유리출타하니라.
일일은 옥황상제께옵서 사해 용왕에게 전교하시사,
“심소저의 월로방연의 기한이 가까우니 인당수로 환송하여 어진 때를 잃지 말게하라.”
분부가 지엄하시거늘, 사해 용왕이 심소저를 치송할 제 큰 꽃송이에 모시고 두 시녀로 시위하여 조석 공양 찬물과 금수보패를 많이 넣고 옥분에 고이 담아 인당수로 나올새, 사해 용왕이 친히 나와 전송하고, 각 궁 시녀와 여쭈오되,
“소저는 인간에 나아가옵셔서 부귀와 영총으로 만만세를 즐기옵소서.”
소저 대답하되,
“여러 왕의 덕을 입어 죽을 몸이 다시 살아 세상에 나가오니 은혜난망이오, 모든 시녀들도 정이 깊도다. 떠나기 섭섭하오나 유현이 노수한 고로 이별하고 가거니와 수궁의 귀하옵신 몸이 내내 평안하옵소서.”
하직하고 돌아서니 순식간에 꿈같이 인당수에 번듯 떠서 두렷이 수면을 영롱케 하니 천신의 조화요 용왕의 신령이라. 바람이 분들 까딱하며 비가 온들 흐를소냐. 오색채운이 꽃봉오리 속에 어리어 둥덩실 떴을 제, 남경 갔던 선인들이 억십만금퇴를 내어 고국으로 돌아온다. 인당수에 다달아서 배를 매고 제수를 정히 하여 용왕에게 제를 지낼새 고축하는 말이,
“우리 일행 수 십 명의 신변제살제액하고 소망을 여의케 일우워 주옵시니, 용왕님의 넓으신 덕택을 한 잔 술로 정성을 드리오니 일제히 화의동심하여 흠향하옵소서.”
하고, 제물을 다시 차려 심소저의 혼을 불러 슬픈 말로 위로하되,
“출천효녀 심소저는 당상 백발 부친의 눈뜨기를 위하여 이팔홍안이 시사여귀하여 수국고혼이 되었으니 어찌 아니 가련코 불쌍하랴. 우리 선인들은 소저를 인연하여 장사의 퇴를 내어 고국으로 돌아가거니와 소저의 방혼이야 어느 날에 다시 돌아올까? 가다가 도화동에 들러서 소저의 부친 살았는가 존망여부는 알고 가오리다. 그러나 한 잔 술로 위로하니, 만일 아심이 있거든 복망 영혼은 흠향하옵소서.”
하며 제물을 풀고, 눈물을 씻고 한 곳을 바라보니 한 송이 꽃봉오리가 해중에 둥실 떠 있거늘, 선인들이 고히 여겨 저희들끼리 의논하되,
“아마도 심소저의 영혼이 꽃이 되어 떴나보다.”
가까이 가서 보니, 과연 심소저가 빠지던 곳이라. 마음이 감동하여 꽃을 건저내어 놓고 보니, 크기가 수레바퀴 같아서 이 삼인이 가히 앉을러라.
“사 오 삭에 경영한 길이 수 삼일만에 득달하니 이도 또한 이상타.”
하더라.
억십만큼 남은 재물을 다 각기 수분할 제, 도선주는 무슨 마음으로 재물은 마다하고 꽃봉오리만 차지하여 저의 집 정한 곳 대에 단을 묻고 두었더니 향취가 만실하고 채운이 둘렀더라.
이 때에 송천자 황후가 붕하신 후 간택을 아니하시고 화초를 구하여 상림원에다 채우고, 황극전 뜰앞으로 여기저기 심어 두고 기화요초로 벗을 주어 구하실 제, 화초도 많기도 하다. 팔월부용군자요, 만당추수 홍련화며, 암향부동월향혼에 소식 전하던 매화며, 진시유랑거휴재는 붉어 있는 복숭아요, 계자편월중단은황무시요 계화며, 요염섬심옥지갑은 금분야도 봉선화며, 구월구일용산음소축신의 국화며, 공자왕손방수화의 부귀할손 모란화며, 이화만지불개문은 장신궁 중 배꽃이며, 칠십제자 강론하던 행단 춘풍 살구꽃이며, 천태산 들어가니 양변개 작약이요, 촉국한을 못이기어 제혈하던 두견화며 촉국 백국 시월국이며, 교화 난화 산당화며 장미화에 행일화며 주자화의 금선화와 능수화에 견우화며, 영산홍 자산홍에 왜철쭉 진달래 백일홍이며, 난초 반초에 강진행이요, 그 가운데에 전나무와 호도목이며 석류목에 송백목이며, 치자 목송 백목이며, 율목 시목에 행자목이며, 자두 능금 도리목이며, 오미자 탱자 유자목이며, 포도 다래 으름 넝쿨 너울너울 각색으로 층층이 심어 두고 때를 따라 구경하실 제, 향풍이 건듯 불면 우질우질 넘놀며, 울긋불긋 떨어지며, 벌 나비 새 짐승이 춤추며 노래하니, 천자 홍을 붙이어 날마다 구경하시더라.
이 때에 남경 선인이 궐내의 소식을 듣고 홀연 생각하되,
‘옛 사람이 벼슬 등지고 천자를 생각하니, 나도 이 꽃을 가져다가 천자께 드린 후에 정성을 나누니라.’
하고 인당수에서 얻은 꽃 옥분에 채운하여 궐문 밖에 당도하여 이 뜻으로 주달하니, 천자 반기사 그 꽃을 들여다가 황극전에다 놓고 보니 빛이 찬란하여 일월지생광이요, 크기가 짝이 없어 향기 특출하니 세상 꽃이 아니로다.
‘월중단계 그림자가 완연하니 계화도 아니오, 요지벽도 동방삭이 따 온 후에 삼천년이 못되니 벽도화도 아니오, 서역국에 연화씨 떨어져 그 꽃 되어 해중에 떠 왔는가?’
하시며, 그 꽃 이름을 ‘강선화’라 하시고 자세히 살펴 보니, 붉은 안개 어리어 있고, 서기(瑞氣)가 반공(蟠空)하니 황제 대희(大喜)하사 화계(花階)로 옮겨 놓으니, 모란화 부용화가 다 하품(下品)으로 돌아가니, 매화 국화 봉선화는 모두 다 신(臣)이라 칭하더라. 천자 아시는 바, 다른 꽃 다 버리고 이 꽃뿐이로다.
일일은 천자 당나라 옛일을 본받아 궁녀에게 전교(傳敎)하사 화청지에 목욕하실새 천자 친히 달을 따러 화계에 배회하시더니, 명월(明月)은 만정(滿庭)하고 미풍은 부동(不動)한데 강선화 봉오리가 문득 요동하며 가만히 벌어지며 무슨 소리가 나는 듯하거늘, 몸을 숨겨 가만히 살펴 보니 선연(嬋娟)한 용녀 얼굴을 반만 들어 꽃봉오리 밖으로 반만 내다보시니 인적 있음을 보고, 인하여 도로 후리처 들어가거늘, 황제 보시고 홀연 심신이 황홀하사 의혹이 만단하여 아무리 서 있은들 다시는 동정이 없거늘, 가까이 가서 꽃봉오리를 가만히 벌리고 보시닌 일개(一介) 소저요 양개(兩介) 미인이라, 천자 반기사 물으시되,
“너희가 귀신이냐, 사람이냐?”
미인이 즉시 내려와 복지(伏地)하여 여쭈오되,
“소녀는 남해 용궁 시녀옵더니 소저를 모시고 해양으로 나왔삽다가 황제의 천안(天顔)을 범하였아오니 극히 황공하오이다.”
하거늘, 천자 내념(內念)에 생각하시되,
‘상제께옵서 좋은 인연을 보내시도다. 천여불취하면 시호시호여부재래(天與不取 時乎時乎不再來)라.’
하시고,
‘배필을 정하리라.’
하시사 혼인을 완정하시고, 태사관(太史官)으로 하여금 택일(擇日)하니 오월 오일 갑자일이라.
소저로 황후를 봉하여 승상의 집으로 모신 후에 길일이 당하매 전교하시사,
“이러한 일은 전만고(前萬古)에 없는 일이니 가례범절(嘉禮凡節)을 별반(別般) 설화하라.”
하시니, 위의(威儀) 거동이 또한 금세에 처음이오, 전고(典故)에 더욱 없더라.
황제 연석에 나와 서시니 꽃봉오리 속에서 양개 시녀 소저를 부액(扶腋)하여 모셔 나오니, 북두칠성의 좌우보필이 갈라 섰는 듯, 궁중이 휘황하여 바로 보기 어렵더라.
국가의 경사라 대사천하(大赦天下)하고, 남경 갔던 도선주를 특별히 제수(際授)하여 무장태수를 하게 하시고, 만조제신(萬朝諸臣)은 상호 만세하고, 솔토지인민(率土之人民)은 화봉삼축(華封三祝) 하더라.
심황후의 덕택이 지중(至重)하사 연년이 풍년들어 요순천지(堯舜天地)를 다시 보니 성강지치(盛彊之治) 되었더라. 심황후 부귀 극진하나 항시 중심에 숨은 근심이다만 부친 생각뿐이로다.
일일은 수심(愁心)을 이기지 못하여 시종을 데리고 옥난간에 비겨 섰더니 추월(秋月)은 밝아 산호발에 비쳐들고 실솔은 슬피 울어 나래 안에 흘러들어 무한한 심사를 점점이 불러낼 제, 하물며 상천(上天)에 외로운 기러기 울고 날아오니 황후 반가운 마음에 바라보며 하는 말이,
“오느냐 너 기러기, 거기 잠깐 머물러서 나의 하는 말 들어라. 소중랑(蘇仲郞)이 북해상에서 편지 전하던 기러기냐? 수벽사명양안태의 청원을 못이기어서 날아오는 기러기냐? 도화동의 우리 부친 편지를 매고 네가 오느냐? 이별 삼년에 소식을 못들으니 내가 이제 편지를 써서 네게 전할 터이니 부디 부디 신전(迅傳)하여라.”
하고 방 안에 들어가 상자를 얼른 열고 주지(周紙)를 끊어내어 붓을 들고 편지를 쓰려 할 제, 눈물이 먼저 떨어지니 글자는 수먹(水墨)이 되고 언어는 도착(倒錯)한다.
“슬하는 떠나온 지 세삭(歲朔)이 세번 하오니 척호(陟岵)하여 쌓인 한이 하해같이 깊사옵니다. 복미심(伏未審) 그간에 아버지 기체후일향만안(氣體候一向萬安)하옵신지 원복모구구불임하정지지(願伏慕區區不任下情之至)로소이다. 불효녀 심청은 선인을 따라갈 제 하후 열 두 시에 열 두 번씩이나 죽고 싶으되 틈을 얻지 못하여서 오륙 삭을 물에서 자고, 필경에는 인당수에 가서 제수로 빠졌더니 황천이 도우시고 용왕이 구하옵셔 세상에 다시 나와 당금(當今) 천자의 황후가 되었으니, 부귀영화 극진하오나 간장에 맺힌 한이 부귀도 뜻이 없고 살기도 원치 아니하되, 다만 원이 부친 슬하에 다시 뵈온후에 그날 죽사와도 한이 없겠나이다.
아버지 나를 보내고 겨우 지낸 마음 문에 비겨서 생각하는 줄은 분명히 알거니와, 죽었을 제는 혼이 막혀 있고, 살았을 제는 액운이 막히어서 천륜이 끊쳤나이다. 그간 삼년에 눈을 떴사오며, 동중에 맡긴 전곡(錢穀)은 그저 있어 보존하시며, 아버지 귀하신 몸을 십분 보중하옵소서. 쉬이 보옵기를 천만 바라옵고 천만 바라옵나이다.”
연월연시 얼른 써 가지고 나와보니 기러기는 간 데 없고, 창망(滄茫)한 구름 밖에 은하수만 기우러졌다. 다만 별과 달은 밝아 있고, 추풍은 삽삽(颯颯)하다. 하릴없이 편지 집어 상자에 넣고 소리없이 울더니, 이때에 황제 내전에 들어오시사 황후를 바라보시니 미간에 수심을 띠었으니, 청산은 석양에 잠긴 듯하고 얼굴에 눈물 흔적이 있으니 황화(黃花)가 태양에 이우는 듯하거늘, 황제 물으시되,
“무슨 근심이 계시관대 눈물 흔적이 있나이까? 귀하기는 황후가 되어 있으니 천하의 제일 귀요, 부하기는 사해(四海)를 차지하였으니 인간의 제일 부(富)라. 무슨 일이 있어 저렇듯 슬퍼하시나이까?”
황후 대왈,
“신첩이 과연 소대욕(所大欲)이 있사오나 감히 여쭙지 못하였읍니다.”
황제 대왈,
“소대욕은 무슨 일이온지 자세히 말씀하소서.”
하신대 황후 다시금 꿇어앉아 여쭈오되,
“신첩이 과연 용궁 사람이 아니오라 황주 도화동에 사는 맹인 심학규의 딸이옵더니 아비의 눈 뜨기를 위하여……”
몸이 선인에게 팔려 인당수 물에 제수로 빠진 사연을 자세히 여쭈니,
황제 들으시고 가라사대,
“그러하시면 어찌 진작 말씀을 못하시나이까? 어렵지 아니한 일이오니 너무 근심치 마소서.”
하시고 그 익일(翌日)에 조회(朝會)하신 후 만조제신(滿朝諸臣)과 의론하시고,
“황주로 행관(行關)하여 심학규를 부원군(府院君) 위로 치송(治送)하라.”
하였더니, 황주자사 장계(狀啓)를 올렸거늘 떼어 보니 하였으되,
“과연 본주 도화동에 맹인 심학규 있삽더니, 연전에 유리하여 부지거처라.”
하였거늘, 황후 들으시고 망극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체읍장탄(涕泣長歎)하시니, 천자 간절히 위로하사 왈,
“죽었으면 하릴없거니와 살았으면 만날 날이 있지 설마 찾지 못하리까.”
황후 크게 깨달으시사 황제께 여쭈오되,
“한 계책이 있사오니 그리하옵소서. 솔토지신민이 막비왕신(率土之臣民
莫非王臣)이오니 백성 중에 불쌍한 바는 환과고독(환寡孤獨) 사궁(四窮)이요. 그 중에 불쌍한게 병신이오나 병신 중에 더욱 맹인이오니, 천하 맹인을 모두 모아 잔치를 하옵소서. 저희들이 천지일월성신(天地日月星辰)이며 흑백장단(黑白長短)과 부모처자를 보아도 보지 못하여 원한 둠을 풀어 주옵소서. 그러하오면 그 가운데에 혹 신첩(臣妾)의 부친을 만나겠사오니 신첩의 원일 뿐 아니오라 또한 국가의 화평한 일도 되올 듯하오니 처분이 어떠하옵시니이까?”
하신대 천자 크게 칭찬하사 왈,
“과연 여자 중의 요순이로소이다. 그러하사이다.”
하시고, 천하에 반포하시되,
“무론대부사서인(勿論大夫士庶人) 하고 맹인이어든 성명 거주를 현록(懸錄)하여 각 읍으로 차차 기송(寄送)하라. 잔치에 참여(參與)하게 하되, 만일 맹인 하나라도 영을 몰라 참예치 못한 자 있으면 해도(該道) 신하와 수령은 단단(斷斷) 죄 중하리라.”
교령(敎令)이 신명(神明)하시니 천하 각 도 각 읍이 황겁하여 성화같이 거행터라.
이 때 심봉사는 뺑덕어미를 데리고 전전(轉轉) 다니더니, 하루는 들으니 황성에서 맹인잔치를 배설한다 하거늘, 심봉사 뺑덕어미더러 말하되,
“사람이 세상에 났다가 황성 구경하여 보세. 낙양 천리 멀고 먼 길을 나 혼자 갈 수 없네. 나와 함께 황성에 감이 어떠하뇨?”
“길에 다니다가 밤에야 우리 할 일 못 하오리까. 에, 갑세.”
“그리하오.”
즉일로 길을 떠나 뺑덕어미 앞세우고 수일을 행하여 한 역촌(驛村)에 당도하여 자더니, 그 근처에 황봉사라 하는 소경이 있는데, 이는 반소경이던 것이었다. 형세도 요부(饒富)한데, 뺑덕어미가 음탕하여 서방질 일쑤 잘한단 말을 듣고, 또 소문이 인근 읍에 자자하여 한번 보기를 평생의 원일러니, 심봉사와 함께 온단 말을 듣고 주인과 의논하고 뺑덕어미를 빼어내려고 주인이 만단(萬端)으로 개유(開諭)하니, 뺑덕어미도 생각한즉,
‘막상 내가 따라가드라도 잔치에 참예할 길 전혀 없고, 돌아온들 형세도 전만 못 하고 살 길이 전혀 없으니 차라리 황봉사를 따라가면 말년 신세는 가장 편안하리라.’
하고 약속을 단단히 정하고,
‘심봉사 잠들기를 기다려 내빼리라’
하고 고동목을 놓고 누었더니, 심봉사 잠을 깊이 들었거늘 두말 없이 도망하여 달아난지라.
이 때에 심봉사 잠을 깨어 음흉한 생각이 있어 옆을 만져보니 뺑덕어미 없거늘, 손길을 내밀어 보며,
“여보, 뺑덕이네, 어디 갔는가?”
종시(終是) 동정(動靜)이 없고, 웃목 구석에 고추섬이 놓여 쥐란 놈이 바시락바시락하니 뺑덕어미가 장난하는 줄만 알고, 심봉사 두 손을 떨 벌리고 일어서며,
“날더러 기어오라는가?”
하며 더듬더듬 더듬으니, 쥐란 놈이 놀라 달아나니 심봉사 허허 웃으면서,
“이것 요리 간다.”
하고 이구석 저구석 두루 쫓아다니다가 쥐가 영영 달아나고 없거늘, 심봉사 가만히 앉아 생각하니 헛분 마음 가없이 속았도다. 벌써 털속 좋은 황봉사에게 가서 궁둥이 셈을 하는데 있을 수가 어찌 있는가.
“여보 주인네, 우리 집 마누라 안에 들어갔오?”
“그런 일 없소.”
심봉사 그제야 달아난 줄을 알고 자탄하여 하는 말이,
“여봐라 뺑덕어미, 날 버리고 어디 갔는가? 이 무상(無狀)하고 고약한 계집아, 황성 천리 먼먼 길에 뉘와 함께 벗을 삼아 가리오.”
울다가 어찌 생각하고 손수 꾸짖어 손을 훨훨 뿌리어 버리며,
“아서라 아서라. 이년 내가 너를 생각하는 것이, 인상불성(人事不省)의 코찡찡이 아들놈 없다.”
하고,
“공연히 그런 잡년을 정들였다가 가산만 탕진하고 중로에 낭패하니 도시 나의 신수 소관이라. 수원수구(誰怨誰咎)하랴. 우리 현철하고 음전턴 곽씨부인 죽는 양도 보고 살아 있고, 출천효녀 심청이도 이별하여 물에 빠져 죽는 양도 살았거든 하물며 저 만 년을 생각하면 개아들놈이라.”
사람 데리고 수작하듯 혼자 군말 하더니 날이 밝으니 다시 떠나갈 제, 이 때는 오뉴월이라 더위는 심하고 땀은 흘러 한출첨배(汗出沾背)하니 시냇가에 의관(衣冠)과 봇짐을 벗어 놓고 목욕하고 나와 보니 의관 행장(行裝)이 간 곳 없거늘, 강변으로 두루 사면을 더듬더듬 더듬는 거동은 사냥개 메추라기 내음 미친 성부르게 이리저리 더듬은들 어디 있을소냐.
심봉사 오도 가도 못하여 방성통곡할 제,
“애고 애고, 낙양 천리 멀고 먼 길을 어찌 가리. 네 이놈 좀도적놈의 새끼야, 내 것을 가져가고 날 못할 일 시키느냐. 허다한 부자집의 먹고 쓰고 남는 재물이나 가져 가 쓸 것이지 눈먼 놈의 것을 갖다 먹고 온전할까? 표모(漂母) 없으니 뉘게 가서 밥을 빌며 위복이 없으니 뉘라서 옷을 주리. 귀머거리 절름발이 다 각기 병신 섧다 하되 천지일월성신 흑백장단이며 천하만물을 분별커늘, 어느 놈의 팔자로서 소경이 되었는고.”
한참 이리 울며 탄식할 제, 이 때 무릉태수 황성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이라.
“에라 이놈 들러섰다 나이거라. 오험허허.”
후배(後陪)사자,
“예이 냅더바라 흐트러진 박석수문돌중중하다. 어돌바라도리야.”
한창 이리 왁자지껄 떨떨거려 내려오니 심봉사 벽제(벽除) 소리를 반겨 듣고,
“옳다. 어느 관장이 오나보다. 억지나 좀 써 보리라.”
하고 마침 독을 내고 앉았더니 가까이 오거늘, 두 손으로 부자지를 검어쥐고 엉금엉금 기어들어갈 제 좌우나졸 달려들어 밀쳐내니, 심봉사 무슨 유세(有勢)나 한 줄로,
“네 이놈들아, 그리하였느니라. 내가 지금 황성에 가는 소경이다. 너의 성명은 무엇이며 이 행차는 어느 고을 행차인지 썩 일러라.”
한창 이렇게 상지(相持)하니 무릉태수 하는 말이,
“너 내 말을 들어라. 어디 있는 소경이며, 어찌 옷을 벗었으며,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가?”
심봉사 여쭈오되,
“생은 황주 도화동에 사는 심학규옵더니 황성으로 가는 길에 날이 심하게 더우매 갈 길 전혀 없삽기로 목욕하고 가려고 잠깐 목욕하고 나와서 보오니 어느 무상한 좀도적놈이 의관과 봇짐을 모두 다가져 갔사오니, 소위 주출지망량(晝出之망양)이요 진퇴유곡(進退維谷)이라. 의관과 봇짐을 찾아 주시옵거나 별반(別般) 처분하여 주옵소서. 그리 아니하옵시면 못갈 밖에 할 일 없사오니 사또께옵서 별반 통촉이 있음을 바라나이다.”
태수 이 말을 듣고 가긍히 여기사,
“네 아뢰는 말을 들으니 유식한가보다. 원정(原情)을 지어 올리라. 그런 후에야 의관과 노수(路需)를 주리라.”
심봉사 아뢰되,
“좀체 글은 하오나 눈이 어두우니 형리를 주시면 불러 쓰이오리다.”
태수 형방에게 분부하여 쓰라 하시니 심봉사 원정을 부르되 서슴치 아니하고 좍좍 지어 올리니, 태수 받아 본즉 하였으되,
복이획죄우천하여 부명야박(僕獲罪于天 賦命也薄)이라.
명막명어일월커늘 혼쌍안이불분(明莫於日月 昏雙眼而不分)하고
낙막락어부처어늘 통구원지난작(樂莫樂於夫妻 痛九原之難作)이라.
조조청운지지터니 만정백수지궁(早操靑雲之志 晩停百首之窮)이로다.
누불건어첨금하고 한무궁이쇄미(淚不乾而沾襟 恨無窮而鎖眉)로다.
조이쇠모이쇠하니 쇠가험어피부(朝而衰暮而衰 衰可驗於皮膚)로다
식유호구하니 표모상존이요 의불엄신하니 수가안재(食有糊口 漂母尙
存 衣不掩身 誰家安在)요.
당금의 천자성신문무하사 포조령이연맹하니 병양춘이불유곡(當今天子
聖神文武 布朝令而宴盲人 竝陽春而不幽谷)이로다.
동벌행관하고 서행경략(東伐行關 西行經略)이라.
노운원혜여소지자일장(路云遠兮 余所持者一杖)이요
가소빈헤여소패자단표(家素貧兮 余所佩者簞瓢)로다.
외혹이지유금헤여 학징현지욕기(學曾賢之浴沂)터니
의복야관망야를 견실어백사지장(衣服也冠網也 見失於白沙之場)하니
반전야낭탁야를 난추어노인총중(盤纏也囊탁也 難推於路人叢中)리라.
자고신세하면 촉번저양(自顧身勢 觸藩저羊)이라.
적신나체는 주출지망량(赤身裸體 晝出之망량)이오
백면애소는 절영지외유라
복유상공은 이이지재요 두소지치(伏惟相公 李?之才 杜召之治)라.
걸구상궁지조하며 망구처확지어(乞救傷弓之鳥 忙救處확之魚)하사
참고금내미유지력하면 송차생재조지은(參古今來靡有之力 頌此生
再造之恩)할 테오니
통촉처분(洞燭處分)이라.
하였거늘, 태수 칭찬하시고 통인 불러 의롱(衣籠) 열고 의복 일습(一襲) 내어 주고, 급창 불러 가마 뒤에 달린 갓 떼어 주고, 수배(隨陪) 불러노비 주시니, 심봉사 또 말하되,
“신 없어 못가겠소.”
“신이야 할 길 있느냐? 하인의 신을 주자 하니 저희랴 발을 벗고 가랴?”
할 제, 마침 그 중에 마부질 심히 하여 마상객(馬上客)의 돈을 일쑤 잘 발러내었는데, 말죽 값도 한 돈이면 열 두 닢 돋쳐내고, 신이 성하여도 떨어졌다 하고 신값을 총총 돋쳐내고, 신을 사서 말궁둥이에다 달아 있거늘, 원님이 그놈의 소행이 괘씸하여라고 그 신을 떼어 주라 하시니 급창(及唱)이 달려들어 떼어 주니, 심봉사 신을 얻어 신은 후에,
“그 흉한 도적놈이 오동수복(烏銅壽福) 김해 간죽(簡竹) 마침맞게 맞추어 대 속도 아니 메었는데 가져갔으니 오늘 가면서 먹을 담배대 없소.”
태수 왈,
“그러하면 어찌하잔 말가?”
“글쎄 그렇단 말씀이오.”
태수 웃으시고 연죽(煙竹)을 내주시니 심봉사 받아가지고,
“황송하오나 서초(西草) 한 대 맛보았으면 좋을 듯하오.”
방자 불러 담배 내주시니, 심봉사 하직하고 황성으로 올라갈 제 대성통곡 우는 말이,
“노중에서 어진 수령 만나 의복은 얻어 입었으나 길을 인도할 이 없으니 어찌하여 찾아갈까!”
이렇듯이 탄식하며 가더니 한 곳을 당도하니 녹음은 우거지고 방초는 숙어졌는데, 앞내 버들은 유록장(柳綠帳) 두르고 뒷내 버들은 초록장(草綠帳) 둘러 한가지로 늘어지고 한가지로 펑퍼져서 휘늘어진 곳에, 심봉사 녹음을 의지하여 쉬더니, 각색 새 짐승 날아든다.
홀연비조(忽然飛鳥) 뭇새들이 농조화답(弄調和答)에 짝을 지어서 쌍거쌍래(雙去雙來) 날아들 제, 말 잘하는 앵무새며 춤 잘추는 학두루미와 수오기 따오기며 청망산 기러기 갈매기 제비 모두 다 날아들 제, 장끼는 낄낄, 까투리 표푸두둥, 방울새 덜렁, 호반새 수루룩, 온갖 잡새 다 날아든다. 만수문전 풍년새며, 저 쑥국새 울음 운다. 이 산으로 가면서 쑥국쑥국 저 산으로 가면서 쑥국쑥국, 저 꾀꼬리 울음 운다. 머리 곱게 빗고 물건너로 시집가자. 저 가마귀 울고 간다. 이리로 가며 갈곡, 저리로 가며 꽉꽉. 저집 비둘기 울음 운다. 콩 하나를 입에 물고 암놈 수놈이 어루느라고 둘이 혀를 빼어 물고 구루우구루우 어루는 소리 할 제, 심봉사 점점 들어가니 뜻밖에 목동 아이들이 낫자루 손에 쥐고 지게목발 두드리면서 목동가로 노래하며 심맹인을 보고 희롱한다.
만첩산중 일발총총(萬疊山中 一髮叢叢) 높아 있고
청산녹수는 일일양양(靑山綠水 溢溢洋洋) 깊어 있다.
호중천지 여호양(壺中天地 如浩洋)이 여기로다.
지팡막대 자로 들고 천리강산 들어가니
천고지후(天高地厚) 이 산중에 가유지지(可遊之地) 무궁(無窮)하다.
등동고이서소하고 임청류이부시(登東皐而舒嘯 臨淸流而賦詩)로다.
산천기세 좋거니와 남해풍경 그지없다.
유유일경(油油一頃) 못이기어 칼을 빼어 높이 들고 녹수청산 그늘
속에 오락가락 내다보니,
동서남북 산천인들 배회일망(徘徊一望) 구경하니
원근산촌 두세집이 낙화모연(落花暮煙) 잠겼어라.
심산처사(深山處士) 어디매오 물을 곳이 어렵도다.
무심할손 저 구름은 추수봉봉(秋水峯峯) 띄어 있다.
유유한 가마귀는 청산 속에 왕래한다.
황산곡(黃山谷)이 어디매뇨 오류촌(五柳村)이 여기로다.
영척(寧戚)은 소를 타고 맹호연(孟浩然) 나귀 탔네.
두목지(杜牧之) 보려고 백낙천변(白樂川邊) 내려가니,
장건(張騫)은 승사하고 여동빈(呂東賓) 백로 타고
맹동야(孟東野) 넓은 들의 와룡강변(臥龍岡邊) 내려가니,
팔진도(八陳圖) 축지법(縮地法)은 제갈공명뿐이로다.
이 산중에 들어오신 심맹인이 분명하다.
이리저리 노닐면서 종일토록 즐기니,
요산요수(樂山樂水) 하온 곳에 인의예지(仁義禮智) 하오리다.
송풍이작금(松風以作琴)하고 폭포로 북을 삼아 소소분별(小小分別)
다 버리고,
흥을 겨워 노닐 적에
아침날 깬 술을 점심 지어 다 먹으며,
황총적 손에 들고 자진곡을 노래하니,
상산사호(商山四皓) 몇몇인고 나를 합하면 다섯이요.
죽림칠현(竹林七賢) 몇몇인고 나를 합하면 여덟이라.
고소성외 한산사의 야반종성(古蘇城外寒山寺 夜半鍾聲)이 여기로다.
시왕(十王))전에 경(磬)쇠치는 저 노승아,
삼천세계(三千世界) 극락전에 인도환생하는구나.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정성으로 외우는데
극력 안심하여 옛 사람을 생각하니
주시절 강태공(姜太公)은 위수에서 고기 낚고
유현주(劉賢主) 제갈량(諸葛亮)은 남양운중 밭을 갈고
이승기절 장익덕은 우리촌에서 걸식하고
이 산중에 들어오신 심맹인도 또한 때를 기다리라.
목동들이 이렇듯이 비양하는 것이었다. 심봉사 목동 아이들을 이별하고 촌촌 전진하여 여러날 만에 황성이 차차 가까우니, 낙수교(洛水橋)를 얼른 지나 녹수진경(綠水秦京)을 들어가니, 한 곳에 방아집이 있어 여러 계집사람들이 방아 찧거늘, 심봉사 피서하려고 방아집 그늘에 앉아 쉬더니, 여러 사람들이 심봉사를 보고,
“애고, 저 봉사도 잔치에 오는 봉사요? 요사이 봉사들 한 시게하던고.”
“저리 앉았지 말고 방아 더러 찧지.”
심봉사 그제야 안 마음에 헤아리되,
“옳지, 양반의 댁 종이 아니면 상놈의 좃집이로다.”
하고 ‘기롱(譏弄)이나 하여 보리라.’
대답하되,
“천리타향에 발섭(跋涉)하여 오는 사람더러 방아 찧으라 하기를 내 집안어른더러 하듯 하니 무엇이나 좀 줄려면 찧어주지.”
“애고, 그 봉사 음흉하여라. 주기는 무엇을 주어. 점심이나 얻어먹지.”
“점심 얻어 먹으려고 찧어 줄 테관대.”
“그러하면 무엇을 주어. 고기나 줄까?”
심봉사 하하 웃으며
“그것도 고기야 고기지만은 주기가 쉬우리라고.”
“줄지 안줄지 어찌 아나. 방아나 찧고 보지.”
“옳지, 그말이 반허락이렸다.”
방아에 올라서서 떨구덩떨구덩 찧으면서 심봉사 지어내어 하는 말이,
“방아소리는 잘 하지마는 뉘라서 알아주리.”
여러 하님들이 그말 듣고 졸라대니 심봉사 견디지 못하여 방아소리를 하는구나.
어유아어유아 방아요.
태고라 천황씨(天皇氏)는 목덕(木德)으로 왕 하시니 이 나무로 왕하셨는가.
어유아 방아요.
유소씨 구목위소(有巢氏 求木爲巢.)하니 이 나무로 집을 얽었는가.
어유아 방아요.
신농씨 유목위뢰(神農氏 有木爲?)하니 이 나무로 따비를 했나.
어유아 방아요.
이 방아가 뉘 방안가. 각덕하님 가죽방안가. 어유아 방아요.
떨구덩떨구덩 허첨허첨 찧은 방아 강태공의 조작방아. 어유아 방아요.
적적공산(寂寂空山) 나무를 베어 이 방아를 만들었네.
방아 만든 제도 보니 이상함도 이상하다.
사람을 비양턴가 두 다리 벌려내어
옥빈홍안(玉빈紅顔)에 비녀를 보니 한 허리에 잠(簪) 질렀네.
어유아 방아요.
길고 가는 허리를 보니 초왕 우미인(虞美人) 넋일런가.
추천 가 노던 발로 이 방아를 찧겠구나. 어유아 방아요.
머리 들고 있던 양은 창해노룡(滄海老龍)이 성을 낸듯
머리를 숙이어 조아리는 양은 주란왕의 돈수(頓首)런가.
어유아 방아요.
용목팔여되야분을 찧어내니 옥입이다.
오고대부(五고大夫) 죽은 후에 방아소리 끊쳤더니
우리 성상 착하옵셔 국태민안 하옵신데
하물며 맹인잔치 고금에 없었으니
우리도 태평성대에 방아소리나 하여보세. 어유아 방아요.
한 다리 높이 밟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양과 실룩실룩 삐죽삐죽 조개로다.
어유아 방아요.
얼시고 좋을시고 지아자자 좋을시고.
흥을 겨워 이렇게 노니 여러 하님들이 듣고 깔깔 웃으며 하는 말이,
“에요 봉사, 그게 무슨 소린고. 자세히도 아네. 아마도 그리로 나왔나보오.”
“그리로 나온 게 아니라, 하여 보았지.”
좌우 박장대소 하더라.
그리저리 방아 찧고, 점심 얻어 먹고, 봇짐에다 술 넣어 지고 지팡막대를 척 쥐고 나면서,
“자 마누라들, 그리들 하오. 잘 얻어 먹고 갑네.”
“어 그 봉사, 심심치 아니하여 사람 좋은데. 잘 가고 내려올 제 또 오시오.”
심봉사 거기서 하직하고 차차 성중에 들어가니 억만 장안이 모두 다 소경 빛이라. 서로 딱딱 부딪쳐 다니기 어렵더라.
한 곳을 지내더니 한 여인이 문 밖에 섰다가,
“저기 가는 게 심봉사시오?”
“게 누군고? 날 알 이 없건마는 게 누가 나를 찾나?”
“여보시오, 댁이 심봉사 아니오?”
“과연 기로다. 어찌 아는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으니 게 잠깐 지체하오.”
이윽고 나와 인도하여 외당(外堂)으로 앉히고 석반(夕飯)을 드리거늘, 심봉사 생각하되,
‘괴이하다. 이 어쩐 일인고?’
또한 찬수(饌需) 비상하거늘, 밥을 달게 먹은 후에 날이 저물어 황혼이 되니 그 여인이 다시 나와,
“여보시오 봉사님, 날 따라서 내당(內堂)으로 들어갑시다.”
심봉사 대답하되,
“이 집 외주인(外主人) 유무는 모르거니와 어찌 남의 내당으로 들어 가리오.”
“예, 그는 허물치 마시고 나만 따라 오시오.”
“여보시오, 무슨 우환 있어 이러하시오? 나는 동티경(經)도 읽을 줄 모르오.”
“여보, 헛말씀 그만하고 들어가 보시오.”
지팡막대를 끌어당기니 끌려가며 의심이 나,
‘아뿔사, 내가 아마도 보쌈에 들어가지. 위태하다.
이처럼 군말하고 대청에 올라가서 좌상에 앉은 후에 동편의 한 여인이 묻되,
“심봉사시오?”
답왈,
“어찌 아오?”
“아는 도리 있소. 먼길에 평안히 오시오? 나의 성은 안가요. 황성에서 세거(世居)하옵더니 불행하여 부모 구몰(俱沒)하옵고 홀로 이 집을 지키고 있사오며, 당년은 이십오 세요. 아직 성혼치 못하였거늘, 일찌기 복술(卜術)을 배워 배필될 사람을 가리옵더니, 일전에 꿈을 꾸니 한 우물에 해와 달이 떨어져 물에 잠기거늘 첩이 건져 품에 안아 보이니, 하늘의 일월은 사람의 안목이라, 일월이 떨어지니 나와 같이 맹인인 줄알고 물에 잠겼으니 심씨인 줄 알고, 일찌기 종을 시키어 문에 지나는 맹인을 차례로 물어온 지 여러날이오. 천우신조(天佑神助)하사 이제야 만나오니 연분인가 하옵니다.”
심봉사 픽 웃어 왈,
“말이야 좋소마는 그러하기 쉽사오리까.”
안씨맹인 종을 불러 차를 들여 권한 후에,
“거주는 어디오며 어떠하신 댁이오니까?”
심봉사가 자기 신세 전후수발을 낱낱이 말하며 눈물을 흘리니 안씨맹인이 위로하고 그날 밤에 동침(同寢)할 제, 한창 조흘 고비에 둘이 다 없는 눈이 벌떡벌떡할 듯하되, 서로 알 수 있나. 사람은 둘이나 눈은 합하면 넷이로되 담배씨만큼 보이지 아니하니 하릴없어 잠을 자고 일어나니, 주린 판이오 첫날밤이니 오죽 좋으랴마는 심봉사 수심으로 앉았거늘, 안씨맹인이 묻되,
“무슨 일로 즐거운 빛이 없사오니 첩이 도리어 무안하오이다.”
심봉사 대답하되,
“본디 팔자가 기박(奇薄)하여 평생을 두고 징험한즉 막 좋은 일이 있으면 언짢은 일이 생기고 생기더니, 또 간밤에 한 꿈을 얻으니 평생 불길할 징조라. 내 몸이 불에 들어가 보이고, 가죽을 벗겨 북을 메우고, 또 나뭇잎이 떨어져 덮이어 보이니 아마도 나 죽을 꿈 아니오?”
안씨맹인 듣고 왈,
“그 꿈 좋소. 흉즉길(凶則吉)이라 내 잠깐 해몽하오리다.”
다시 세수하고 분향(焚香)하고 단정히 꿇어앉아 산통을 높이 들고 축사를 읽은 후에 괘를 풀어 글을 지었으되,
“신입화중(身入火中)하니 희락 가기(喜樂可期)요. 거피작고(去皮作鼓)하니 고(鼓)는 궁성(宮城 또는 宮聲)이라, 궁에 들어갈 징조요. 낙엽이 귀근(落葉歸根)하니 자손을 가봉(子孫可逢)이라. 대몽이오니 대단 반갑사오이다.”
심봉사 웃어 가로되,
“속담에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이오, 피육불관(皮肉不關)이오, 조작지설(造作之說)이오. 내 본디 자손이 없으니 누구를 만나며, 잔치에 참여하면 궁에 들어가고, 녹밥도 먹는 짝이지.”
안씨맹인이 또 말하되,
“지금은 내 말을 믿지 아니하나 필경 두고 보시오.”
아침밥을 먹은 후에 궐문 밖에 당도하니 벌써 맹인잔치에 들라 하거늘, 궐내에 들어가니 궐내가 오죽 좋으랴마는 빛 쬐어 거무충충하고 소경 내가 진동한다.
이 적에 심황후 여러 날을 맹인잔치할 제, 성명성책(姓名姓冊)을 아무리 들여놓고 보시되 심씨맹인이 없으니, 자탄하사,
“이 잔치 배설한 바는 부친을 뵙자고 하였더니 부친을 보지 못하였으니, 내가 인당수에 죽은 줄로만 아시고 애통하여 죽으셨나? 몽운사 부처님이 영검(靈驗)하사 그간에 눈을 떠서 천지만물을 소비시 맹인축에 빠지셨는가? 잔치는 오늘이 망종이니 친히 나가 보리라.”
하시고 후원에 전좌(殿座)하시고 맹인잔치 시키실새 풍악도 낭자하며 음식도 풍비(豊備)하여 잔치를 다한 후에 맹인 성책을 올리라 하여 의복 한 벌씩 내어 주실새 맹인이 다 하례하고, 성책 밖으로 맹인 하나가 우뚝 섰으니 황후 물으시되,
“어떠한 맹인이오?”
여상서(女尙書)를 불러 물으시니 심봉사 겁을 내어,
“과연 소신이 미실미가(靡室靡家)하여 천지로 집을 삼고 사해로 밥을 부치어 유리(流離)하여 다니오매 어느 고을 거주 완연히 없사오니 성명성책에도 들지 못하옵고 제 발로 들어 왔삽나이다.”
황후 반기시사,
“가까이 입시(入侍)하라.”
하시니, 여상서 영을 받자와 심봉사의 손을 끌어 별전(別殿)으로 들어갈새, 심봉사 아무런 줄 모르고 겁을 내어 걸음을 못이기어 별전에 들어가 계하에 섰으니, 심맹인의 얼굴은 몰라뵐러라.
백발은 소소하고 황후는 삼 년 용궁에서 지냈으니 부친의 얼굴이 의의하여 물으시되,
“처자 있느냐?”
심봉사 복지(伏地)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여쭈오되,
“아무 연분(年分)에 상처하옵고 초칠일이 못다 가서 어미 잃은 딸 하나 있삽더니, 눈 어두운 중에 어린 자식을 품에 품고 동냥 젖을 얻어 먹여 근근 길러내어 점점 자라나니 효행이 출천하여 옛 사람에 지나더니, 요망한 중이 와서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오면 눈을 떠서 보리라 하니, 신의 여식이 듣고, ‘어찌 아비 눈 뜨리란 말을 듣고 그저 있으랴.’하고 달리는 판출(辦出)할 길이 전혀 없어 신도 모르게 남경 선인들에게 삼백 석에 몸을 팔리어서 인당수의 제수로 빠져 죽사오니 그 때에 십오 세라. 눈도 뜨지 못하고 자식만 잃었사오니, 자식 팔아먹은 놈이 이 세상에 살아 쓸데없사오니 죽여 주옵소서.”
황후 들으시고 체읍하시며, 그 말씀을 자세히 들으시매 정녕 부친인줄은 알으시되, 부자간 천륜에 어찌 그 말씀이 그치기를 기다리랴마는 자연 말을 만들자 하니 그런 것이었다.
그 말씀을 맟듯 못맟듯 황후 버선발로 뛰어내려와서 부친을 안고,
“아버지, 내가 과연 인당수로 빠져 죽었던 심청이오.”
심봉사 깜짝 놀라,
“이게 웬말이냐?”
하더니 어찌 하 반갑던지 뜻밖에 두 눈이 갈라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두 눈이 활짝 밝았으니 만좌(萬座) 맹인들이 심봉사 눈 뜨는 소리에 일시에 눈들이 헤번덕 짝짝, 갈치새끼 밥 먹이는 소리같더니 뭇 소경이 천지명랑하고, 집안에 있는 소경 계집 소경도 눈이 다 밝고, 배안의 맹인 배밖의 맹인 반소경 청맹(靑盲과니까지 몰수(沒數)이 다 눈이 밝았으니 맹인에게는 천지개벽(天地開闢) 하였더라.
심봉사 반갑기는 반가우나 눈을 뜨고 보니 도리어 생면목(生面目)이라. 딸이라 하니 딸인 줄은 알것마는 근본 보지 못한 얼굴이라 알 수 있나. 하도 좋아서 죽을 둥 말 둥 춤추며 노래하되,
“얼시구 절시구 지아자 좋을시구. 홍문연(鴻門宴) 높은 잔치의 항장(項莊)이 아무리 춤 잘춘다 할지라도, 어허 내 춤을 어찌 당하며, 하고조 마상득천하(馬上得天下) 할 제 칼춤 잘 춘다 할지라도, 어허 내 춤 당할소냐. 어화 창생(蒼生)들아, 부중생남중생녀(不重生男重生女)하소. 죽은 딸 심청이를 다시 보니 양귀비가 죽어 환생하였는가? 우미인이 도로 환생하여 왔는가? 아무리 보아도 내 딸 심청이지. 딸의 덕으로 어두운 눈을 뜨니 일월이 광화(光華)하여 다시 좋도다. 경성이출 경운이 흥하니 백공상화이가(景星出 卿雲興 百工相和而歌)라. 요순천지 다시 보니 일월이 중화(重華)로다. 부중생남중생녀는 나를 두고 이름이라.”
무수한 소경들도 철도 모르고 춤을 출 제,
“지아자 지아자 좋을시고 어화 좋구나. 세월아 세월아 가지 마라. 돌아간 봄 또다시 돌아오건마는 우리 인생 한 번 늙어지면 다시 젊기 어려워라. 옛글에 이렀으되 시자난득(時者難得)이라 하는 것은 만고명현(萬古名賢) 공맹(孔孟)의 말씀이요. 우리 인생 무슨 일 있으랴.”
다시 노래하되 상호 상호 만세를 부르더라.
즉일에 심봉사를 조복(朝服)을 입히어 군신지례(君臣之禮)로 조회하고, 다시 내전에 입시하사 적년(積年) 그리던 회포를 말씀하며 안씨맹인의 말씀 낱낱이 하니, 황후 들으시고 채교(彩轎)를 내어 보내어 안씨를 모셔들여 부친과 함께 계시게 하시고, 천자 심 학규를 부원군(府院君)으로 봉하시고 안씨는 정렬부인(貞烈夫人)을 봉하시고, 또 장승상부인을 특별히 금은을 많이 상사하시고, 도화동 촌인을 연호잡역(煙戶雜役)을 물시(勿施)하시고 금은을 많이 상사(賞賜)하여 동중의 구폐(救弊)하라 하시니 도화동 사람들이 은혜 여천여해(如天如海)하여 천하 진동하더라.
무창태수를 불러 예주자사로 이천(移遷)하시고, 자사에게 분부하여 황봉사와 뺑덕어미를 즉각 착대하라 분부 지엄하시니 예주자사 삼백 육 관에 행관(行關)하여 황봉사와 뺑덕어미를 잡아올리거늘, 부원군 청루(廳樓)에 좌기하시고 황봉사와 뺑덕어미를 잡아들여 분부하사,
“네 이 무상한 년아, 산첩야심(山疊疊夜深)한데 천지 분별치 못하는 맹인 두고 황봉사를 얻어 가는 게 무슨 뜻이냐?”
즉시 문초하니,
“역촌(驛村)에서 여막(旅幕)질하는 정연이라 하는 사람의 계집에게 초인(招人)함이로소이다.”
부원군이 더욱 대로하여 뺑덕어미를 능지처참(陵遲處斬)하신 후에 황봉사를 불러 이르는 말씀이,
“네 무상한 놈아, 너도 맹인이지? 남의 아내 유인하여 가니 너는 좋거니와 잃은 사람은 아니 불쌍하냐? 속설에 탐화광첩(探花狂蝶)이라 하기로 그러할까. 소당(所當)은 죽일 일이로되 죽일 일이로되 특별히 정배(定配.)하니 원망치 말라. 추일 증시(證示)하여 훗세상 사람이 불의지사(不義之事)를 본받게 하지 못하는 일이라.”
하시고 하교하시니라.
만조백관이며 천하백성들이 덕화(德化)를 송덕(頌德)하더라.
“자손이 창대(昌大)하고 천하에 일이 없고, 심황후의 덕화 사해에 덮였으며, 만세만세 억만세를 계계승승(繼繼承承) 바라오며 무궁 무궁하옵기를 천만 복망(伏望)하옵니다.”
하더라.
황후 천자에게 여쭈되,
“이러한 즐거움이 없사오니 태평연(太平宴)을 배설하오이다.”
황제 옳게 여기사 천하에 반포하여 일등 명기 명창(名妓名唱)을 다 불러 황극전에 전좌하시고 만조백관 모아 즐기실새, 천하 제후(諸侯) 솔복(率服)하고 사해진보(四海珍寶) 조공(朝貢)하며, 일등명창 일등명기 천하에 반포하여 거의 다 모았으며, 태평성대 만난 백성 처처에 춤추며 노래하되,
“출천대효 우리 황후 높으신 덕이 사해에 덮였으니 요지일월 순지건곤(堯之日月 舜之乾坤)에 강구동요(康衢童謠) 즐거움이, 창해로 태평주(太平酒) 빚어 여군동취(與君同醉)하며 만만세를 즐겨 보세. 이러한 태평연에 누가 아니 즐길소냐.”
이렇듯이 노래할 제, 천자며 부원군이 황극전에 전좌하시고, 명무 명창을 패초(牌招)하시와 가무금슬 희롱(歌舞琴瑟 戱弄)하며 삼일을 대연하사 상하동락(上下同樂) 즐긴 후에 천자와 황후와 부원군이며 다 각기 환궁하시더라.
각설 이때에 황후며 정렬부인 안씨 동년 동월에 잉태하여 동월에 탄생하며, 둘이 다 득남하신지라. 황후의 어진 마음 자기 앞은 고사하고 부친이 생남(生男)하심을 들으시고 천자께 주달(奏達)하신대 황제 또한 반기사 피륙과 금은 채단(綵緞)을 많이 상사하시고 예관을 보내어 위문하신대, 부원군이 망팔쇠년(望八衰年)에 아들을 낳아 놓고 기쁜 마음 측량 없어 주야를 모르던 차에, 또한 황제께옵서 금은채단이며 피륙과 명관(命官)을 보내어 위문하시니 황공감사하와 국궁배례(鞠躬拜禮)하고 예관을 인도하여 황은을 못내 축사하신대 부원군이 더욱 기꺼하며, 일변 조복을 갖추고 예관을 따라 별궁에 들어가 황후께 뵈온대 황후 또한 생남하였거늘, 즐거운 마음을 어찌 다 측량하리오.
황후 부친의 손을 잡고 옛일을 생각하며 일희일비(一喜一悲)로 즐거워 하매 부원군도 또한 슬퍼하시더라.
이 때 부원군이 집에 돌아와 명관을 따라 옥계(玉階)하에 다다르니 상(上)이 극히 칭찬하시되,
“들으매 경이 노래(老來)에 귀자(貴子)를 얻은 바, 또한 짐의 태자와 동년 동월의 동근생(同根生)이니 그 아니 반가우리오. 언야선명(言也鮮明)하면 타일에 국사를 의론하리라.”
하시더라.
군이 여쭈되,
“석일(昔日)에 공자께서도 하시기를 ‘생자가 비난양자난이오 양자가 비난교자난이라(生子非難養子難 養子非難敎子難)’ 하였으니 후사를 보사이다.”
하고 물러나와 아이 상을 보니, 활달한 기상(氣像)이며 청수(淸秀)한 골격이 족히 옛사람을 본받을러라.
이름을 태동이라 하여 점점 자라 십 세에 당하매 총명 지혜가 무쌍(無雙)이오 시서음률(詩書音律)을 능통하매 부모의 사랑함이 장중보옥(掌中寶玉)에다 비할소냐.
무정세월약류파(無情歲月若流波)라 십삼 세를 당한지라. 이 때 황후 태자를 여의고자 하사 동월 동일에 구생(舅甥)간 혼사를 주달하신대 황제 기꺼하사 광문(廣問)하라 하신데, 이 때에 마침 좌각로(左閣老) 권 성운이 일녀를 두었으되, 태임의 덕행이며 반희의 재질을 가졌으며 인물은 위미인(衛美人)을 압두(壓頭)할지라. 이 때 연왕(燕王)이 공주 있으되 안양공주라. 덕행이 탁이(卓異)하고 백사 민첩함을 듣고 상이 전교하사 연왕과 권각로를 입시하야 어전(御殿)에서 구혼하신대, 공주와 소저 또한 동갑인데 십육 세라. 기꺼이 허락하거늘, 상이 하교하시되,
“권소저로 태자의 배필을 정하시고 연왕의 공주로 태동의 배필을 삼 음이 어떠하뇨?”
하신대 좌우(左右) 다,
“옳사이다.”
주달하거늘, 황후와 부원군이며 조정이 즐기더라.
즉시 태사관을 명하여 택일하라 하신대, 춘삼월 망일(望日)이라. 국중의 대경사라. 길일이 당하매 대연을 배설하고, 각장 제후와 만조백관이 차례로 시위하고, 두 부인은 삼천궁녀가 시위하여 전후좌우로 옹위 하여 교배석(交拜席)에 친영(親迎)할새, 일월같은 두 신랑은 백관이 모셨으니 북두 칠성의 좌우보필이 모신 듯하고, 울태화용 고운 태도 녹의홍상(祿衣紅裳)에 칠보단장(七寶丹粧)이며 각색 패물 요상(腰上)으로 느리우고 머리에는 화관(花冠)이라. 삼천 궁녀 모인 중에 일등 미색을 초출(抄出)하여 두 낭자를 좌우로 모셨으니 반드시 월궁항아라도 이에서 더 휘황치 못할러라. 금수단광무장(錦繡緞廣모帳)을 반공(半空)에 솟아 치고 교배석에 친영하니 궁중이 휘황함을 일구난설(一口難說)이라.
두 신랑이 각기 처소로 좌정하니 동방화촉(洞房華燭) 첫날밤에 원앙이 녹수를 만나듯 쇄락(灑落)한 정으로 은은히 밤을 지내고 나와 태자는 각로를 먼저 보니 각로 양주(兩主) 즐거워함을 이루 측량치 못할러라.
즉시 태자를 연통(緣通)하여 조회에 국궁(鞠躬)하니 상이 즐거워 하사 부원군을 입시하여 동좌(同座)에 신행 인사를 받으시고, 만조백관을 조회 받으신 후에 하교하시되,
“짐이 진작 태동을 조정에 들이고자 하되 미장지전(未丈之前)이라 지어금 무명직(至於今無命職)하였으니 경(卿)등의 소견에는 어떠하뇨?“
하신대, 문무백관이 주왈,
“인야출등(人也出等)하오니 즉교(卽敎)하옵소서.”
하거늘,상이 즉시 태동을 입시하사 품직을 내리실새 한림학사 겸 간의대부 도훈관에 이부시랑을 하게 하시고 그 부인은 왕렬부인을 봉하시고, 금은 채단을 많이 상사하시고 왈,
“경이 전일은 서생이라 국정을 돕지 아니하였거니와 금일부텀은 국록지신이라 진충갈력하여 국정을 도우라.”
하신대, 시랑이 국궁하고 물러나와 모친께 뵈온대 즐기고 반기는 마음이야 어찌 다 형언하리오.
또 별궁에 들어가 황후전에 배사(拜謝)한대, 황후 즐거움을 이기지 못하나 말씀하시되,
“신부가 어떠하더뇨?”
하신대 피석(避席) 대왈,
“숙행(淑行)하더이다.”
황후 또 문왈,
“금조 입시에 무슨 벼슬 하였느냐?”
대왈,
“이러이러 하였나이다.”
황후 더욱 즐거워 태자와 시랑을 데리고 종일 즐긴 후에 석양에 파연(罷宴)하시고 왈,
“쉬이 신행(新行)하라.”
하시거늘, 신랑이 대왈,
“슁이 데려다가 부모 전에 영화를 보시게 하오리다.”
한대, 황후 대열(大悅)하사,
“내 말도 또한 그 뜻이로다.”
하시더라.
이날 태자와 한림이 물러나와, 수일 후 부원군이 택일하여 왕렬부인을 신행하시니 부인이 구고(舅姑) 양위 전에 예로써 뵈온대 부원군이며 정렬부인이 금옥같이 사랑하시더라. 별궁을 새로 지어 왕부인을 거처하시게 하니라.
각설 이 때 한림이 낮이면 국사를 도모하고 밤이면 도학(道學)을 힘쓰니 무론대소사서인(毋論大小士庶人) 하고 칭찬 아니 할 이 없더라.
이럭저럭 한림의 나이 이십 세라. 이 때에 상이 한림의 명망과 도덕을 조신에게 문의하시고, 일일은 심학사를 입시케 하사 가라사대,
“짐이 들으매 경의 명망과 도덕이 국내에 진동한지라. 어찌 벼슬을 아끼리오.”
하시고 승품(昇品)하사 이부상서 겸 태학관을 시키시고,
“태자와 동유(同遊)하라.”
하시며 그 부친을 또 승품하여 남평왕을 봉하시고, 정렬부인 안씨로 인성황후를 봉하시고, 또 상서 부인은 왕렬부인 겸 공렬부인을 봉하시니, 남평왕이며 상서와 인성왕후며 다 황은(皇恩)을 축사하고,
“우리 무슨 공이 있어 이다지 품직(品職)을 하느뇨?”
하며 주야 황은을 송덕하시더라.
이 때에 남평왕이 연당팔순(年當八旬)이라. 우연히 득병하여 백약이 무효라. 당금(當今)의 황후의 어지신 효성과 부인의 착한 마음 오죽이 구병(救病)하랴마는 사자는 불가부생(死者不可復生)이라 칠일만에 별세하시니 일가가 망극(罔極)하고, 또한 황후 애통하사 황제께 주달하니 상이 왈,
“인간팔십고래희(人間八十古來稀)니 과도히 애통치 마소서.”
하시고,
“명릉후원에 왕례(王禮)로 안장하라.”
하시고,
“왕후는 삼년 거상(三年居喪)이라.”
하시니라.
부원군의 조년(早年) 고생하던 일을 생각하면 무슨 여한이 있으리오.
에화 세인들아 고금이 다를소냐. 부귀영화 한다 하고 부디 사람 경(輕)히 마소. 흥진비래 고진감래(興盡悲來 苦盡甘來)는 사람마다 있느니라. 심황후의 어진 이름 천추의 유전(遺傳)이라.
신재효 판소리 사설 심청가
<前略>
심봉사 집이라고 더듬더듬 찾아 오니 부엌은 적막(寂寞)하고 방안은 텅 비었는데, 어린 아이 혼자 누워 젖 달라고,
“응애 응애”
심봉사 일변은 서럽고, 일변은 반가와 아기를 달래어,
“아가 아가, 울지 마라. 네 어머니 먼 데 갔다. 네 아무리 섧게 운들 젖 한모금 누가 주리. 울지 마라 울지 마라. 불쌍한 내 딸 정색(情色) 학철(학轍)의 마른 고기 일두수(一斗水)를 누가 줄꼬”
두 낯을 한데 대고 아무리 달래어도 울기만 하는구나. 심봉사 할 수 없어, 또 운다.
“아이고, 마누라 어디 갔소. 유승인간거불회(猶勝人間去不廻) 은하직녀(銀河織女) 따라갔나, 벽해청천야야심(碧海靑天夜夜心) 월궁(月宮) 항아(姮娥) 따라갔나, 황죽가성동지애(黃竹歌聲動地哀) 요지왕모(瑤池王母) 따라갔나, 동정지남(洞庭之南) 소상지포(瀟湘之浦) 아황(娥皇) 여영(女英) 따라갔나, 가더니 아니 오니 어느 때에 오려는가, 청춘작반호환향(靑春作伴好還鄕) 봄을 따라 오려는가, 청천유월래기시(靑天有月來幾時) 달과 함께 오려는가, 원상(苑上)에 돋는 풀은 연년록(年年綠) 하건마는 우리 집 마누라는 귀불귀(歸不歸) 웬일인고. 염라국이 어디 있노. 바라나 보자 한들 두 눈이 캄캄하니, 지척(咫尺)인들 알 수 있나. 애고 애고 설운지고.”
젖 달라 우는 자식, 아내 생각 우는 가장 울음으로 밤을 새고, 처처에 문제조(聞啼鳥) 날샌 줄 짐작하고, 갓난 자식 품에 품고 한 손에 막대 짚고, 가가문전 다니면서 애긍히 비는 말이 ,
“엊그제 낳은 자식 어미 죽고 젖이 없어 죽기가 가련하니 젖 조금 먹여 주오.”
자식 있는 여인들이 어찌 괄시(恝視)하겠느냐. 젖을 먹여 내어 주며,
“눈 없는 노인 신세, 젖 없는 아이 정경, 불인견(不忍見) 가긍하니 어렵다 마시고 가끔가끔 찾아 오오.”
심봉사 아기 안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기 배를 만지면서,
“애개, 내 딸 배 불렀다. 이번은 살겠구나. 어서어서 자라나서 이 은혜를 갚게 하라.”
낮이면 동냥젖과 밤이면 암죽(粥)으로 간신히 기르는데, 두서 달 지나가니 심봉사가 젖 동냥에 이력이 났구나. 오뉴월 더운 날에 상하평(上下坪) 밭 매는데, 관솔불 피워 놓고 품앗이 삼 삼는데, 청천(淸泉) 백석탄(白石灘)에 의복 빨래하는 데며, 팔월추석 구월 구일 사양머리 파랑치마 중로(中路)보기 하는 데를 곳곳이 찾아 가서 추렴젖으로 먹인 것이 잔병 없이 수이 자라 사,오세가 되었구나.
지팡이 한 끝 잡고 아비 앞을 인도하여 원근촌(遠近村) 다니면서 조석이면 밥을 빌고, 낮이면 전곡(錢穀) 동냥, 그렁저렁 지내어서 일곱 살이 되어지니, 심청이 부친 전에 여짜오되,
“아버님 늙으시고, 안총(眼聰)이 부족하니 집에 앉아 계옵시면 나 혼자 밥을 빌러 봉양을 하오리다.”
심봉사 깜짝 놀라,
“너 이것이 웬 말이냐. 내 아무리 가난하나 양반의 후예로서 예절조차 모를소냐. 네 나이 칠세 되니 너는 들여 앉히고서 나 혼자 빌자는데, 나는 들어앉고 너 혼자 밥 빌어야. 이런 말은 하지 마라.”
심청이 여짜오되,
“건너 마을 장승상댁 나를 사랑하시기로 그 댁 소저(小姐) 읽는 글을 대강 들어 아옵나니, 부자유친(父子有親)은 오륜(五倫)의 으뜸이요. 칠세에 부동석(男女不同席)은 사소한 예절이라, 칠세 여자 내외하자 집안에 들어앉고, 병신 부친 내어 놓아 밥을 빌어 먹사오면 사람이라 하오리까. 제영은 아비 대신 나라에 상서(上書)하고, 양향(楊香)은 아비 구완 호랑이를 안았으니 그러한 여자들은 남자보다 낫사오니 조석에 밥 빌기가 무엇이 대단하오. 까마귀 짐승이나 공림(空林) 저문 날에 반포(反哺)를 하옵는데, 하물며 사람으로 짐승만 못하리까. 자식의 도리오니 말리지 마옵소서.”
심봉사 하는 말이,
“네 말이 그러하니 부득이 허락하나, 남이 오죽 시비(是非)하랴.”
심청이 이날부터 혼자 빌러 나갈 적에 불쌍하여 못볼레라. 배설한풍(白雪寒風) 추운 날에 천산조비(千山鳥飛) 끊였는데 현순백결(懸순百結) 헌 의복에 살점이 울긋불긋, 천한각불각(天寒脚不襪) 벗은 발 헌 짚신에 쪽박을 옆에 끼고 맑은 내(煙) 나는 집을 찾아가서 비는 말이,
“病身 아비 집에 두고 밥을 빌러 왔사오니 댁이 한 술 덜 잡숫고 일반지덕(一飯之德) 베푸시오.”
밥 푸는 여인들이 뉘 아니 탄식하리.
“네가 벌써 저리 커서 혼자 밥을 비는구나. 너의 모친 살았으면 네 정경이 저리 되랴.”
끌끌 탄식 혀를 차며, 담았던 밥이라도 아끼 쟎고 덜어 주며, 김치 젓갈 건건이 등물(等物) 고루고루 많이 주니 두서너 집 얻은 것이 어이 딸이 한끼 생애 넉넉히 되는구나. 급히급히 돌아와서 사립 안에 들어서며, 아비 불러 하는 말이,
“날은 춥고 房은 찬데 고픈 배 틀어 쥐고 오죽 고대하셨겠소.”
심봉사 반겨하고,
“애개, 내딸 너 오느냐. 오죽이 반갑겠느냐. 어서 급히 들어오너라.”
심청이 손을 불며 부엌으로 들어가서 물을 솥에 얼른 데워 빌어온 밥 데운 물을 아비 앞에 드리고서 반찬을 가리키며,
“많이 잡수시오.”
심봉사 탄식하며,
“목구멍이 원수로다. 선녀 같은 이내 딸을 내어놓아 밥을 빌어 이 목숨이 살자스냐. 너의 모친 죽은 혼이 만일 이 일 알았으면 오죽이 섧겠느냐.”
심청이 여짜오되,
“빌어온 밥이나마 子息의 精誠이니 설워 말고 잡수시오.”
좋은 말로 慰勞하여 기어이 먹게 하니, 날마다 얻어온 밥 한 쪽박에 오색(五色)이라 흰밥 콩밥 팥밥이며, 보리 기장 수수밥이 갖가지로 다 있으니, 심봉사 집은 끼니때마다 정월 보름 쇠는구나.
하루는 장승상댁 수연(수宴)을 하느라고 沈晴을 만류(挽留)하여 음식을 함께 하라시니, 심청이 승명(承命)하고 음식 장만하느라고 조금 지체하였더니, 심봉사 기다리다 마음이 갈급(渴急)하여 의문의려(倚問倚閭) 나오다가 우연히 실족하여 길 넘은 개천 속에 온 몸이 풍덩 빠져 거의 죽게 되었더니, 몽은사 화주승이 그리 마침 지나가다 광경 보고 깜짝 놀라 훨훨 벗고 달려들어 심봉사 건져내어 등에 업고 집을 물어 급히 급히 돌아와서 옷을 벗겨 뉘어 놓고 옷의 물을 짜느라니.
이 때에 심청이는 음식을 얻어 들고 망망히 돌아와서 내력을 물은 후에 아비를 위로하고 대사에게 치하하며 얻은 음식 내어놓고 착실히 대접하니 저 중이 먹으면서 연해 탄식하여,
“이생(生)에 맹인 되기 전생의 죄악이라, 우리 절 부처님전 정성을 들였으면 이생에 눈을 떠서 천지만물 보련마는 가세가 철빈(鐵貧)하니 애막조지(愛莫助之) 불쌍하다.”
심청이 이 말 듣고 대사에게 자세히 물어,
“부처님이 사람이오.”
“정반왕(淨飯王)의 태자시지.”
“지금 살아 계십니까.”
“불생불멸(不生不滅) 그 공부가 살도 죽도 안 하시지.”
“하는 일이 무엇이오.”
“자비심이 본심이라 보리중생(菩提衆生)이 일이시지.”
“재물을 안 드리면 보리를 아니하오.”
“그러함이 아니시라, 무물(無物)이면 불성(不成)이라 정성을 드리자면 재물 없이 할 수 있소.”
“재물 얼마 드렸으면 精誠이 될 테이오.”
“우리 절 큰 법당이 풍우(風雨)에 퇴락(頹落)하여 중수(重修)를 하려 하고 권선문(勸善文)을 둘러메고 시주각댁(施主各宅) 다니오니 백미 삼백 석만 시주를 하옵시면 법당 중수한 연후에 부처님전 발원하여 눈을 뜨게 하오리다.”
심청이 대답하되,
“백미 삼백 석에 부친 눈을 뜨일 테면 몸을 판들 못 하리까. 권선치부(勸善置溥)하옵소서.”
대사가 좋아라고 권선을 펴놓고 붉은 찌에 쓰옵기를,
“황주땅 도화동 여자 심청이 백미 삼백 석, 그 아비 학구(鶴九) 감은 눈을 뜨게 하여 주옵소서.”
쓰기를 다한 후에 심청이 하는 말이,
“가지고 가옵시면 백미 삼백 석을 수이 얻어 보내리다.”
저 중이 허락하고 권선문 메고 가는구나.
심봉사 혼미(昏迷) 중에 이 말을 얻어 듣고,
“애개, 내 딸 허망하다. 조석밥을 얻어서 너를 시켜 비는 터에 백미 삼백 석이 어디서 나겠느냐. 불가(佛家) 오계(五戒) 중에 거짓말이 큰 죄로다. 못 할것을 적어 놓고 못 얻어 보내며는 거짓말이 될 터이니 전생 죄로 맹인되어, 이생 죄를 또 지으면 후생에 받는 앙화(殃禍), 소가 될지 개가 될지 금강야차(金剛夜叉) 날랜 사자 벌떼같이 달려들어 연약한 이내 몸을 쇠사슬로 결박하고, 쇠채로 두르려서 유혈랑자(流血狼藉) 몰아다가 여순옥(如淳獄)에 가두고 허다 고생 다 할 테니, 차라리 봉사대로 방안에 누웠다가 너 빌어다가 주는 밥을 배부르게 먹었으면 그것이 편할 테니 눈 뜨기 내사 싫다. 대사를 어서 불러 너 쓴 찌를 떼어버려라.”
심청이 여짜오되,
“왕상(王祥)은 얼음 구멍에서 이어(鯉魚)를 얻었삽고, 맹종(孟宗)은 눈 가운데 죽순이 솟았으니 백미 삼백 석이 그리 대단하오리까. 수이 얻어 보낼 테니 염려하지 마옵소서.”
심봉사가 연해 탄식하여,
“아마 못 될 일이로다. 나는 정녕 후세상에 눈 먼 구렁이 되느니라.”
심청이 이날 밤에 후원을 정(淨)히 쓸고 황토(黃土) 펴고 배석(拜席)깔고 정화수(井華水) 한 동이를 소반에 받쳐 놓고 하느님께 비는 말이,
“심청 팔자 무상(無常)하와 강보에 어미 잃고 맹인 아비 뿐이온데, 아비의 평생 한이 눈 뜨기가 원이온데 백미 삼백 석을 몽은사에 시주하면 아비 눈을 띌 터로되, 가세가 청한(淸閒)하여 몸밖에 없사오니 황천후토(皇天后土) 감응하사 이 몸을 사갈 사람 지시하여 주옵소서.”
삼경에 시작하여 계명성(鷄鳴聲)이 들리도록 이렛밤을 빌었더니, 일출운중계견훤(日出雲中鷄犬喧) 산촌에 난리나니 시비에 개 짖으며, 무엇이라 외는 소리 원원(源源)이 들리거늘 심청이 생각하되 보(洑)막이를 하자는가, 울력 기음 매자는가, 소금장수 젓장순가, 자세히 들어 보니 목 어울러 외는 소리,
“나이 십오세요, 얼굴이 일색이요, 만신(萬身)에 흠파(欠罷)없고, 효열행실 가진 여자 중가(重價) 주고 사려하니, 몸팔 이 누가 있소.”
크게 외고 지나거늘 심청이 반겨 듣고 문전에 썩 나서며,
“외고 가는 저 어른들, 이런 몸도 사시겠소.
저 사람들 이 말 듣고 가까이 들어와서 성명 연세 물은 후에 저 사람들 하는 말이,
“꽃 같은 그 얼굴과 달 가득 그 나쎄가 우리가 사 가기는 십분 마땅하거니와, 낭자는 무슨 일로 몸을 팔려 하나이까.”
심청이 대답하되,
“맹인 부친 해원(解寃)키로 이 몸을 팔거니와, 이 몸을 사 가시면 어디 쓰려 하십니까.”
“우리는 선인이라 남경 장사 가는 길에 인당수 용왕님은 인제수(人祭需)를 받는 고로 낭자의 몸을 사서 제수로 쓸 터이니 값을 결단하옵소서.”
“더 주면 쓸데 없고, 덜 주면 부족하니, 백미 삼백 석을 주옵소서.”
선인들이 허락하니 심청이 하는 말이,
“내 집으로 가져오면 분요(紛擾)만 할 터이니 몽은사로 보내옵고, 대사의 표를 맡아 나를 갖다 주옵소서.”
선인이 허락하고,
“이달 보름 사리 행선(行船)을 할 테기로 그날 데려갈 것이니 그리 알고 기다리라.”
선인을 보낸 후에 심청이 들어와서 부친전에 여쭈오되,
“몽은사 시주미를 주선하여 보냈으니 걱정을 마옵시고 눈 뜨기를 기다리오.”
심봉사 깜짝 놀라,
“어디서 나서, 어디서 나서.”
“장승상댁 부인께서 아들이 아홉이요 딸이 하나 있삽다가 성혼하여 보낸 후에 매양 나를 사랑하여 양녀되라 하시오되 남의 무남독녀기로 못 하겠다 하였더니 이제는 하릴없어 수양녀로 몸을 팔아 시주미를 보내었소.”
“얘, 그러하면 그 댁에 가 있겠느냐.”
“오락가락 하옵지오.”
“얘, 그리하다 눈 못 뜨고 딸을 잃으면 양실(兩失)이 되는구나.”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니 기다려 보사이다.”
이 때에 심봉사는 심청을 잃은 후에 모진 목숨 죽지 않고 근근부지(僅僅扶持) 지낼 적에, 도화동 사람들이 심청 효성 감동하여 조아(曺娥)의 옛 일같이 강두(江頭)에 비를 세우고 출천(出天)한 그 효행을 낱낱이 새겼으니, 비문(碑文)을 구경하면 사람마다 낙루(落淚)한다. 채중랑(蔡中郞)이 없었으니 절묘효사(絶妙孝詞) 누가 쓸꼬. 진조(晉朝) 공양(羊公) 간 연후에 타루비(墮淚碑)가 또 생겼다. 동중(洞中) 사람들이 맡긴 전곡(錢穀) 식리(殖利)하여 의식을 이어주니 심봉사 세간살이 요족(饒足)히 되었구나. 자고로 색계상(色界上)에 영웅 열사 없었거든 심봉사가 견디겠나. 동내 과부 있는 집을 공연히 찾아 다녀 선웃음 풋장담(壯談)을 무한히 하는구나.
“허, 퍼. 돈이라 하는 것을 땅에 묻지 못할 거고. 맹인 혼자 사는 집에 돈 두기가 미안(未安)키에 후원의 땅을 파고 돈 천이나 묻었더니 이번에 구멍 뚫고 가만히 만져 보니 꿰미는 썩어지고 삼노에 돈이 붙어 한 덩이를 만져 보면 천연한 말좇이지. 쌀 묵으니 우습더구. 벌레가 집을 지어 한 되씩이 엉기었지. 올 어장(漁場)이 어찌 된고. 갯가 사람 빚 준 돈이 그렁저렁 천여 양, 고기를 잘 잡아야 수세(收稅)가 탈 없을새, 원원(元元)이 좋은 약을 동삼(童蔘) 위에 없을래라, 공교(工巧)히 젊었을 제 두 뿌리 먹었더니 지금도 초저녁에 그것이 일어나면 물동잇군 당기도록 그저 뻣뻣하였거든.”
풍담(風談)을 버썩 하니, 그 동내 뺑덕어미라 하는 홀어미가 있는데 생긴 형용 하는 행실 만고사기(萬古史記) 다 보아도 짝이 없는 사람이라. 인물을 볼짝시면 백등칠일(白登七日) 보냈으면 묵돌정병(冒頓精兵) 풀터이요, 육궁(六宮) 분대(粉黛)가 보았으면 무안색(無顔色)을 하겠구나. 말총 같은 머리털이 하늘을 가리키고, 뒷박 이마, 횃 눈썹에 움푹 눈, 주먹 코요, 메주 볼, 송곳 턱에 써랫니 드문드문, 입은 큰 궤 문 열어 논 듯하고, 혀는 짚신짝 같고, 어깨는 키를 거꾸로 세워 논 듯, 손길은 소댕을 엎어 논 듯, 허리는 짚동 같고, 배는 폐문(閉門) 북통 만, 엉덩이는 부자집 대문짝, 속옷을 입었기로 거기는 못 보아도 입을 보면 짐작하고, 수종(水腫)다리, 흑각(黑角)발톱, 신은 침척(針尺) 자 가웃이라야 신는구나. 인물은 그러하고 행실로 볼짝시면 밤이면 마을 돌기, 낮이면 잠자기와 양식 주고 떡 사먹기, 의복 전당 술 먹기와, 젯메를 올리려도 담뱃대는 빼지 않고, 몸 볼 적에 차던 서답 조왕 앞에 끌러 놓기, 밥 푸다가 이 잡기와 머슴 잡고 어린양 하기, 젊은 중놈 보면 웃기, 코 큰 총각 술 사주기, 인물 행실 이러하니 눈 있는 사람이야 누가 돌아 보겠느냐. 봉사 서넛 판을 내고 아직 서방 못 얻다가 심봉사 요부(饒富)타고 자청하여 부부되니 심봉사 눈 못보니 얼굴이야 알 수 있나. 동포(同胞)할 제 잔재주와 혀 짧은 말 소리에 아주 깜짝 대혹하여 이런 야단이 없구나.
심봉사가 소 뺨쳐 먹기에 장단 속도 대강 알고, 목구성이 엔간하여,
“여보소 뺑덕이네. 내가 비록 외촌(外村)사나 오인(誤入) 속을 대강 아네. 일색 계집 솔축(率蓄)하기, 맛있게 장난질을 하기보다 더 좋은데, 우리 둘이 만난 후에 아무 장난 아니 하고 밤낮으로 대고 파니 맛이 없어 못하겠네. 짝 타령이나 하여 보세.”
“애개, 짝 타령을 어떻게 한다는가.”
“내 할께 들어 보소.”
심봉사가 짝 타령을 하되 거문고 소리 뿐으로 맞추어 가것다.
“삼년적리관산월(三年笛裏關山月)이요, 만국병(萬國兵) 전초목풍(前草木風)이라 하던 두자미(杜子美)로 한 짝․운횡진령가하재요 설옹람관마부전((雲橫秦領家何在 雪擁藍關馬不前)이라 하던 한퇴지(韓退之)로 한 짝․황성(荒城)에 허조벽산월(虛照碧山月)이요, 고목은 진입창오운(盡入蒼梧雲)이라 하던 이태백으로 웃짐 치고, 춘성무처불비화 한식동풍어류사(春城無處不飛花 寒食東風御柳斜)라 하던 한굉(韓굉)으로 말 몰아라, 둥덩둥덩. 백만중(百萬衆) 거느리고 전필승공필취(戰必勝功必取)하던 한신(韓信)으로 한 짝․소주(燒酒)를 품에 품고 당양장판(當陽長坂)에 좌충우돌(左衝右突)하던 조운(趙雲)으로 한짝․적토마(赤兎馬) 칩떠 나고 청룡도(靑龍刀) 비껴 들고 백만진(百萬陣) 달려들어 안량(顔良) 문추(文醜)를 한 칼에 덩그렁 베던 관공(關公)님으로 웃짐 치고, 홍문연(鴻門宴) 큰 모임에 옹순직입(擁盾直入)하여 두발이 상지(上指)하고 목자진열(目자盡裂)하니 우왈장사(羽曰壯士)라 하던 번쾌(樊쾌)로 말 몰아라, 둥덩둥덩. 육궁분대(六宮粉黛) 무안색(無顔色)하던 양귀비(楊貴妃)로 한 짝․자긍교염색(自肯嬌艶色)하던 왕소군(王昭君)으로 한 짝․천하 백(白) 월(越) 서시(西施)로 웃짐 치고, 말 소리 혀 짧고 동포할 제 잔재주만 하는 뺑덕이네로 말 몰아라, 둥덩둥덩.”
뺑덕이네가 남의 피를 많이 빨아 먹은 것이라, 들으면 척척 응구첩대(應口輒對)하는 것이 신통하여,
“애개, 짝 타령을 그렇게 한다오”
“그렇지.”
“나도 하나 해 볼까.”
심봉사 좋아라고,
“하기 곧 하면 내 간간이지.”
뺑덕이네가 화답하는데 제법 주고받는 사설하여,
“취 과양주귤만거(醉 過楊州橘滿車)하던 두목지(杜牧之)로 한 짝․쇼슈옥방젼에 시시오불현(時時誤拂絃)하던 주도독(周都督)으로 한 짝․동산휴기(東山携妓)하던 사안석(謝安石)으로 웃짐 치고, 인물이 일색이요, 젊어서 동삼(童蔘) 먹고 그것이 장탱불사(長撑不死)하는 봉사님으로 말 몰아라, 둥덩둥덩.”
심봉사 깜짝 놀라 달려들어 질끈 안고,
“애고, 내 간간이야. 말소리만 들어도 이렇게 어여쁠 제 제 입 모습 눈맵시 태도를 보았으면 안 미칠 놈 있겠느냐.”
아주 깜빡 대혹하여 하는 대로 버려 두니, 여간 있는 살림살이 떡 술 값에 다 녹는다.
하루는 본관에서 심봉사를 불렀기로 관인 따라 들어가니 관가에서 분부하되,
“황제의 넓으신 덕화(德化) 요순(堯舜)과 같으시사 억조창생(億兆蒼生)을 적자(赤字)같이 보시오며 허다한 병신 중에 앞 못보는 맹과니가 불쌍하다 하사, 궐내에서 잔치하고 주효(酒肴)를 먹이고서 낱낱 친람(親鑑)하신 후에 제 인기(人器) 닿는 대로 직업을 주시기로 천하에 있는 맹인 하나도 낙루(落漏) 말고 경성(京城)으로 기송(寄送)하라 윤음(윤音)이 내렸으니 지체말고 급히 가서 팔자 곧 좋았으면 벼슬도 할 것이니 속속히 발행하라.”
심봉사 여쭈오되,
“팔자 좋아시면 맹인이 되오리까. 벼슬은 비소가망(非所可望)이오나 천은(天恩)이 망극하사 맹인을 찾사오니 박시(博施)하던 그 덕화가 금수라도 감동할새, 하물며 사람으로 왕명거역(王命拒逆) 하오리까. 불일(不日) 발행하오리다.”
하직하고 나올 적에 치행(治行) 절차 생각하니 뺑덕어미 두고 가면 서방질도 하려니와 지척불변(咫尺不辨) 내 신세를 지로(指路)할 이 없었으니 함께 가면 좋건마는 마다하면 어찌 할꼬. 도르는 수가 옳다. 문 안에 들어서며 뺑덕어멈을 불러,
“여보소, 뺑덕이네.”
이 년이 그 새에 뒷집 머슴 후려다가 낮거리를 시작하였구나. 거렁저렁 수쇄(收灑)할 제 어느 새에 심봉사가 방문 앞에 와 섰구나. 간사한 뺑덕어미 낌새 챌까 혀 짧은 소리로 심봉사를 돌라,
“낯이 저리 붉은 것이 읍내 색주가(色酒家)의 호강 많이 했구만.”
심봉사가 좋아라고 허풍을 또 떨어,
“남자는 동물이라 자네를 못 잊어서 안 나가서 그렇지 나가기만 하였으면 그런 호강 다시 없지. 본관이 날 청함이 웬일인고 하였더니, 왔다고 통지한즉 큰 문 잡고 모시라되 성화지분(城化之分)에 큰 문이 부당키로 동협(洞夾)으로 들어가니, 사령이 길을 끌어 중계(中階) 밑 당도하매 급창(及唱)이 옆을 껴서 대상(臺上)에 올라 서니 통인(通引)이 옆을 껴서 상방(上房)으로 들어간즉, 본관이 일어서서 내 손 잡아 앉히면서, 안총(眼聰)이 부족하니 그저 보자 청하기로, 염슬단좌(염膝端坐)하여 본관 말씀 들어보니, 세의(世誼)가 자별하고 사돈지의(査頓之誼) 또 있거든 관청에 분부하여 주물상(晝物床)을 올리더니, 기생이 권주가로 술을 연해 권하는데 그 술맛 장히 좋아 달고 맵고 향내 나고, 안주도 매우 좋아 아마도 여남은 잔 먹었지. 동원에서 석반(夕飯) 먹고 기생하고 자라 하되 자네 알면 강짜할까 간신히 하직하고 관문 밖에 막 나서니, 삼반관속(三班官屬)들이 와 하고 달려들어 심봉사님을 찾는데 그런 야단이 없지. ‘우리 청으로 가십시다.’ ‘내 집으로 가십시다.’ ‘색주가(色酒家)로 가십시다’ ‘삼백 양 드릴께 좌수(座首) 시켜주오.’ 손 잡거니 옆 끼거니 서로 아니 놓건마는 자네가 기다릴까 읍내에서 아니 자고 더듬더듬 찾아오니 후문치자(候門穉子) 없더라도 노처불취(老妻不娶)할 터인데, 부르고 또 불러도 대답도 아니하니 눌 믿고 살자는가. 이럴줄 알았더면 동원이나 색주가서 잘 먹고 잘 잘것을 무엇하러 아픈 다리 십전구도(十顚九倒) 찾아왔노. 곽씨부인 살았으면 이 문에 와 기다렸지. 애고애고 내 일이야.”
뺑덕어미 경각간(頃刻間)에 흉측(凶測)을 썩 피는데, 머슴놈 먹이려고 씨암탉 잡아 뜯어 토정(土鼎)에 불 모으고 일 시작하였다가 심봉사 오는 설레 못 먹여 보내고서 솥에 그저 있었구나. 단참(單站)에 색(色)을 먹어,
“天地에 못할 것이 남의 집 둘째 계집, 죽도록 정성들여 하느라 하였더니 그 공은 간 데 없고, 전 계집만 생각하니 아무리 생부천들 그 꼴을 보겠는가. 외촌(外村)에 있는 사람 관가를 무서워하기 염라대왕보다 더한지라 무죄한 봉사님을 불시에 불렀으니 무슨 일이 있삽는지, 봉사님 보낸 후에 마음을 못 놓아서 방에 들어간 일 없고 점심도 아니 먹고 사립문에 비껴서서 오기만 기다리다 오후가 지나도록 소식이 없삽기로 속 마음에 생각하니, 늙고 병든 가장 처음으로 출입하여 행보에 수고하면 생병이 가려(可慮)하니, 잡술 것 하였다가 오시면 곧 드리고자 닭 압아 솥에 안쳐 장작불 모였기로 불 보러 갔삽더니, 그 새에 들어와서 노처불취(老妻不娶) 아니 한다 전처(前妻)만 자랑하니, 나는 그 꼴 보기 싫어 전처없는 총각 서방 기어이 얻을 터세.”
문 밖으로 나가려 하니 심봉사 깜짝 놀라 뺑덕어미 손을 잡고,
“잘못했네 잘못했네. 노여 마소 노여 마소. 저런 잔속 다 모르고 망발을 하였으니 노여 마소, 노여 마소.”
닭국을 퍼다 놓고 둘이 앉아 먹으면서 의뭉한 심봉사가 뺑덕어미 지기(志氣) 받아,
“여보소, 뺑덕이네. 우리 둘이 이 정지(情地)에 나는 늙고 자넨 젊어, 만일 내가 죽으며는 자네 어찌하려는가.”
“사즉동혈(死卽同穴)이라니 그날 그시 나도 죽지.”
“내가 만일 일이 있어 먼 데를 가거드면 자네 어찌하겠는가.”
“여필종부라니 만리라도 따라가지.”
“자네 참말인가.”
“어느 개 딸년이 거짓말을 해.”
“어허, 좋의. 자네 속이 그러한 줄 나도 벌써 알지마는 자네 대답 어찌하나 보자고 한 말일세. 읍내 가서 들어본 즉 황제 윤음(윤音) 내리기를 천하 맹인 다 모아서 궐내에서 잔치하고 그 중에 유식한 맹인 벼슬을 준다 하니 이런 좋은 때가 있나. 좋은 서울 구경하고 좋은 음식 얻어 먹고, 만일 벼슬하였으면 나는 별연(別輦) 타고 자네는 쌍교(雙轎) 타고 저런 호강 없을 테니 소견이 어떠한가.”
뺑덕어미 생각한즉 여필종부한단 말을 제 입으로 아까 하고 마단 말도 할 수 없고, 하물며 내 행실을 근방 사람 다 알아서 도를 놈도 없었으니 가다가 중로(中路)에나 큼직한 서울이나 사람 많이 있는 곳에 돈 잘 쓰고 코 큰 놈을 가리는 수가 옳다.
이날치판 심청가
<前略>
중머리
곽씨부인을 장사하고 집이라고 들어가니 부엌은 적막하고 방안은 횡 비었난디, 향내 쑥내만 피어 있다. 방 가운데 우뚝 서서 한참 동안을 생각더니, 심봉사 발광중에 나서 앉았다 선뜻 일어나며 문갑(文匣) 책상을 두루쳐 메어다가 와지끈 와그르르르 탕탕 부딪치며 쓰던 수건 빗던 빗을 모두 주어 내던지더니만
“아서라, 이것이 슬데가 없다. 이것이 무엇하겠느냐?”
정신없이 문을 북차더니 부엌으로 총총 내려가서,
“마누라 거기 있오? 거 어디를 갔소? 허허, 내가 미쳤구나.”
방으로 들어와 방가운데 주저앉아 우두커니 앉았을때 이씨의 귀덕이네 아기안고 돌아와서,
“봉사님 이 아이를 보더래도 너무 애통 마시오.”
“거 귀덕이넨가? 이리주소. 어디보세, 종종와서 젖 좀주시오.”
귀덕이네는 건너가고 아기 안고 자탄헐 때, 원촌에 닭이 울고 찬바람은 스르르르르 어린아기 놀래깨어 젖달라고 슬피운다.
“응아 응아”
심봉사가 기가 막혀 우는 아기 받아안고,
“우지마라 너의 모친 먼 데 갔다. 낙양동촌(洛陽東村) 이화정(李花亭)에 숙낭자(淑娘子)를 보러 갔다. 황능묘 이비(二妃)헌테 하소연을 하러 갔다. 가는 날은 안다만은 오는 날이 막연쿠나. 네 팔자가 얼마나 좋으면 너 낳은 칠일만에 너의 모친을 잃었겠느냐? 우지마라, 우지마라. 배 가 고파 운다만은 강목수생(剛木水生)이라, 마른 나무에 풀이 나오겠느냐? 우지마라, 우지마라. 날 새면 젖 많이 얻어 먹여주마. 내새끼 울지마라.”
이렇듯이 탄식하여 날이 점점 밝아온다.
중중머리
우물가 두레 소리 심봉사 방긋웃고 젖을 먹이러 나간다. 한편에 아기 안고, 또 한편 막대를 짚고, 더듬더듬 더듬더듬 더듬더듬 나간다. 우물가 찾아가서 애절이 비는 말이,
“여보시오, 부인님네들 이애 젖좀 먹여주오. 칠일안에 모친 잃고 젖 못 먹여 죽게 되니 이애 젖 좀 먹여 주오.”
보고 듣는 부인들이,
“아이고, 그거 불쌍하다. 입모습 콧주저리 너의 모친만 닮았구나.”
젖을 많이 먹여 내어 심봉사를 내어 주니, 심봉사 좋아라고 양지앞 언덕밑에 패버리고 쉬어 앉아 애기를 안고 어룬다.
“둥둥둥 내딸이야, 어어둥둥 내딸이야. 아이고, 내새끼 배불렀다. 이게 뉘덕이냐? 부인님네 덕이다. 수복강녕(壽福康寧) 하옵소서. 너도 어서 수이자라 현철하고 효행이 있어 아비 귀염을 쉬 보여라. 어려서 고생하면 부귀다담(富貴多男)을 한다더라. 아들같은 내 딸이야. 언덕밑에 귀남(貴男)이 아니냐. 설설이 기어라, 어허둥둥 내딸이야.”
따둑 따두어 잠들이고 삼베 전대(纏帶) 요동(搖動) 메어 왼편 어깨다 들어매고, 한달 죽장 전(錢) 거두기 어린아이 암죽으로 근근히 지내갈 제, 매월 삭망소대기(朔望小大朞) 를 허망이 모두 넘어가니 그때에 심청이는 장차 귀히 될 사람이라 천지귀신 도와주고 제불보살 엄명하여 외붙듯 달붙듯 잔병없이 잘 자라나 육칠세가 되어 간다.
아니리
하루난 심청이 저의 부친 앞에 단정히 꿇어앉아,
“아버지 오늘부터 제가 나가 밥을 빌어 조석 봉양 하오리다.”
심봉사,
“엊그제 강보에 싸였던 네가 이제 내 앞에 와 그런말을 하니 기특하고 고마운 자식이다만은 그런 말은 당초에 말아라.”
진양조
심청이가 여짜오되,
“말못하는 가마귀도 공림(空林) 저문날에 반포지은(反哺之恩)을 하옵산디, 하물며 사람이야 일러 무엇 하오리까? 아버지 어두신 눈으로 깊은 데, 얕은 데 천방지축(天方地軸) 다니시다 병이날까 염려오니, 아버지는 오늘부터 집에 가만히 계옵시면 재가 나가 밥을 빌어 조석공양 하오리다.”
중머리
그리 하라 허락하니, 밥을 빌러 나가는 데, 먼 산 해가 질 때 앞마을에 연기 난다. 헌베 중으 단임매고 앞섶 없는 헌 저고리 청목(靑木) 휘양 둘러쓰고, 서리 아침 추운날에 팔장끼고 옆걸음치고 벌벌 떨고 가는 양이 수풀에 잠든 새가 외로이 날아간다. 바람 불고 비오는 날 추위를 못 이기어 떠나가는 가마귀라. 가가문전(家家門前) 당도하여 애절이 비는 말이,
“모친 세상 버리시고 앞 어두신 우리 부친 병 드신 줄을 모르시어, 한술씩만 주시오면 추운방 늙은부친 시장을 면컸네다.”
부인이 가공하여 그릇밥 김치장을 애끼잖코 덜어주니 두서너 집이 족한지라, 솔솔히 들어와서 사립안을 들어서니,
“아이고, 아버지 춥지 않소? 시장하시리다. 어언간에 더디었소.”
그때에 심봉사는 어린 딸을 내보내고 혼자 앉아 자탄하다, 심청소리를 듣더니만,
“오, 심청이냐? 아이고, 내새끼야. 발도 차고나 어루만지면서 애닯구나. 너의 모친 살았으면 널로 하여 밥을 빌어 이밥 먹고 산단 말이냐? 모진 목숨 죽지도 않고, 자식 고생까지 시키네 그려. 아이고, 어쩔끄나.”
부녀 서로 붙들고서 한참 앉아서 울음을 운다.
춘하추동 사시절(四時節) 동내 걸인이 되는데 일년이년 삼 년 사 년 나이 십이 세가 되어지니 동내 집 바느질삼 공밥 먹지 아니하고 일 없는 날 밥을 빌어 근근히 지내갈 제, 세월이 여류(如流)하여 나이 십오세 되어진다.
아니리
이러한 소문이 원근에 자자하니, 하루는 건너 마을 장승상댁 부인께서 시비를 보내어 심청을 청하였구나. 심청이 저의 부친께 여짜옵고 승상댁을 건너가는디,
진양조
시비 따라 건너갈 제, 승상 댁 계신 곳은 원원(遠遠)이 바라보니 대문앞에 심은 버들 청청한 시상촌(柴桑村)의 황금같은 저 꾀꼬리는 자아내니, 수다로구나. 대문 안에 들어서니 가사(家舍)도 웅장하고 문창(門窓)도 화려하다. 당상(堂上)으 반백이나 된 부인이 심청을 보고 반기시며,
“네가 심청이냐? 듣던 말과 같도 같다.”
당상으로 인도하여 좌(座)를 주어 앉으려고 한다.
중중머리
심청이 거동 봐라. 가장(假粧) 단장(丹粧) 헌 일 없이 천자(天姿) 만고(萬古) 국색(國色)이라. 염용(殮容)하고 앉은 거동 백석청탄(白石淸灘) 맑은 물에 목욕하고 앉은 제비 사람보고서 날아갈 듯, 황홀한 저 얼굴은 천심(天心)에 들은 달이 수변(水邊)에 가서 미치난 듯, 천상미간(天庭眉間)에 두 눈썹은 초생달이 뜬 듯하고 도화(桃花) 양협(兩頰)에 고운 빛은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비치는 듯, 팔자점점 삼사녹발 새로 난초 핀 듯하고, 말하고 웃는 양은 부용화(芙蓉花)가 새로 보이는 듯, 월궁의 노던 선녀 벗 하나를 잃었도다. 부인이 칭찬하니,
“전신(前身) 내 몰라도 응당 선녀로다. 도화동에 적거(謫居)하야 무릉촌은 네가 살고 도화동에 내가 사니, 무릉촌 봄이 들어 도화동 계화(桂花)로다. 내 말을 들어봐라. 승상은 일찍 기세(棄世)하고, 아들이 삼형제나 황성가서 등사(登仕)하고 다른 자식은 손자가 없으니, 슬하에 말벗 없어 대하느니 촛불이요, 보는 것이 고서(古書)로다. 네 신세 생각하니 양반의 후예로서 저다지 곤궁하니 나의 수양딸이 되었으면, 예절도 숭상하고 문자도 학습하며 기출(己出)같이 성취(成就)시켜 만년영화(晩年榮華)를 볼 것이니 네 뜻이 어떠하냐.”
중머리
심청이가 여짜오되,
“명도(命途)가 기구하여 나온지 칠일만에 모친을 잃사옵고, 앞 어두신 부친께서 동냥젖을 얻어 먹여 근근히 길러내어 내가 부친 모시기를 모친겸 모시옵고 우리 부친 날 믿기를 아들같이 믿사오니 사정이 서로 의지하여 맟도록 모시자 하옵니다.”
말을 마치면서 두눈에 눈물이 듣거니 맺거니 떨어지는 양은 춘풍세우가 도화에 잠겼다가 점점이 떨어지니, 부인이 가긍하여 등을 어루만지면서,
“출천지대효(出天之大孝)로다 노(老)한 마음으로 실언을 하였으니 부디 섭섭이 생각마라.”
아니리
부인이 연연(憐憐)하여 양식과 채단(綵緞)을 후히 주며,
“나는 너를 딸로아니 너는 나를 잊지말고 종종 다시보면 다행일까 하노라.”
그때에 심봉사는 건너 마을 장승상댁에 심청을 보내 놓고 생각 두루하여 날이 저물어도 오지를 아니하니 혼자 앉아 울음을 우는디,
진양조
배는 고파 등에 붙고 방은 추워 한기들 제, 먼 데 절 쇠북을 치는데 날 저문줄 짐작하고 혼자 앉아 딸 부른다.
“나의 딸 심청이는 어이하여 못 오느냐? 부인께 붙들렸나? 동지들께 잠적을 하였나? 내 딸 소문 이 사방에 당자하여 승상부인이 오란다 하고 몹쓸놈들이 중노(中路)에 가 들어 앉아 내딸마저 데려갔느냐?”
웬갖 생각 다하면서 오고 가는 사람소리 듣고 개만 컹컹짖고 나도,
“심청이 오느냐?”
아무리 불러봐도 적막공산 인적이 끊어지니,
잦은몰이
심봉사 답답하여 닫은 방문 번쩍열고 지팡막대 찾아 짚고 더듬더듬 더듬더듬 더듬어 나가다가 개천물에 미끌어져 물에 가 풍, 나올라고 옮겨 디디면 도로 들어가 허리가 획, 또 옮겨 디디면 도로 들어가 턱에가 꽉차오니, 심봉사 몸도 뒤뚱 못하고,
“아이고 사람 죽네.”
아무리 불러봐도 적막공산 인적이 끊어진다.
아니리
일모도궁(日모途窮)하였으니, 뉘랴 사람 살리리오마는 사람 살 일은 곳곳마다 있었겠다.
엇머리
중 올라간다 중하나 올라간다. 저중이 어떤 중인고. 행색을 알 수 없네. 연연(年年)이 묵은 중, 허허디 헌 중, 몽은사 화주승(化主僧)인데, 절 중창(重창) 하려고 권선문(勸善文) 메고 시주집 찾아갔다, 절 찾아 가는 길이라. 원산은 암암(暗暗)하고 설월(雪月)은 돋아올 제, 석경(石徑)에 비낀 길로 인도한 곳 올라 간다. 저중의 호사보소 굴갓쓰고 장삼(長衫)입고 염주는 목에 걸고 단주 팔에 걸어 백저포(白苧布) 장삼(長衫)을 진홍띠를 둘러 메고 소년 당상(堂上)헌 별랑금 귀 위에 떡 붙이고, 용두(龍頭)새긴 육환장(六環杖) 채고리 길게 달아 처절 철철철 흔들흔들 흐늘거리고 가는 양은 삭발한 도진사요, 졸입은 표장부하는 사명당의 거동이라. 육관대사 성진이 용궁에 문안갔다 과약주(果藥酒) 취케먹고 팔선녀 희롱하던 성진대사 거동이라. 중이라 하는 것은 절에 들어도 염불, 속가(俗家)에 가도 염불.
“아어허허흐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리 한참 올라갈 제, 동편에 들리는 소리. 사람을 구하라하거늘,
“이 울음이 웬울음? 이 울음이 웬울음? 마외역(馬嵬驛) 저문날에 하소대로 울고가든 양태진(楊太眞)의 울음이냐? 이 울음이 웬울음?”
저중이 우뚝 서서 소리나는 곳 살피다가 그곳을 찾아가니, 어떤 사람인지 개천물에가 빠져서 ‘어푸 어푸’ 거의 죽게 되었구나. 저중이 급한 마음으로 굴갓 장삼을 훨훨 벗고 행전 단님 벗어 새(細)뉘빈 바지 가랑이를 딸딸되게 말아 자개밋에 딱붙이고 백노횡장(白鷺橫江) 격으로 징검징검 들어가 심봉사 고추 상투 앳뚜루미쳐 채여 나오다 살펴보니 전에 보던 심봉사라.
아니리
업고 집으로 돌아와,
“활인지불(活人之佛)인지, 죽은 사람 살려내니 은혜 백골난망이요.”
“예, 소승 몽은사 화주승이온데, 우리 절 부처님이 빌면 아니 듣는 일이 없소. 공양미 삼백석만 본전에 시주하고 진심으로 불공하면 어둔 눈을 다시 떠서 대명(大明) 천지(天地) 볼지리라.”
심봉사 눈뜬단 말은 어찌 반겨 들었는지,
“그러면 적어 주지.”
권선문 제일장에 공양미 삼백석을 몽은사로 납상(納上)이라, 심학규 성명삼자 뚜렷이 적어 두고 떠났겠다. 심봉사 곰곰 앉아 생각하니,
‘판출(販出)할 길 바이 없어, 복을 빌어 눈 뜨려다 오히려 죄를 지었구나.’
중머리
묵은 근심 햇근심이 동무지어 일어난다.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어떤 사람 팔자 좋고, 재물이 영영(盈盈)하고, 곡식도 진진(津津)하여 용지불갈 취지무궁(用之不갈 取之無窮) 바랄 것이 없지마는 이내 신세 어찌하여 형제 없고 앞 못보며 이런 팔자가 어디가 있느냐. 일간두옥(一間斗屋) 팔자한들 서툰 진지 바이 없네. 아이고 이를 어쩔끄나. 아이고, 아이고, 어찌를 할끄나.”
복통단장으로 울음을 운다.
자진머리
심청이 들어온다. 시비를 뒷 세우고 천방지축 들어와, 닫은 방문 펄쩍열고,
“아이고 아버지 날 찾아 오시다가 이 지경을 당하였소. 이웃집 가시다가 이 모양을 당하였소. 춥긴들 오직하며 시장인들 오직하리까? 승상댁 노부인이 굳이 잡고 만류하기로 어언간에 늦었소.”
아니리
농 안에 옷을 갈아 입고, 정제로 들어가 밥을 속히 얹어,
“아버지, 진지 잡수시오.”
“아니, 나 밥 안 먹을란다.”
“아버지, 소녀가 더디 왔다 그러시오?”
“너 알일도 아니고 나 혼자만 알다 혹 죽어버릴 일이다.”
“아버지 아버지는 저를 믿고 소녀는 아버지 영을 받자와 대소사를 의논한디, 아무리 불효여식이라고 ‘너 알아 쓸데없다’ 하시니 소녀가 도리어 섧소이다.”
“아가, 너를 속일리가 있겠느냐? 내 말하마 너 오는디 찾아가다 개천물에 빠져 거의 죽게 되었더니, 몽은사 화주승인지 나를 건져놓고 부처님께 시주하고 진심으로 불공하면 어둔 눈을 뜬다기에 뒷 일은 생각않고 쌀 삼백석을 적었으니 백 가지로 생각해도 후회 막심하다.”
심청이 듣더니,
“걱정말고 진지나 잡수시오. 도리어 후회하면 진심도 못되오니, 어두신 눈을 밝아 만물을 보신다면 되도록 빠른 시일 소녀가 준비하여 몽은사로 들리리다 걱정마옵소서.”
심청은 그날부터,
진양조
후원에 단(壇)을 무어 황토깔고 금줄을 매고 머리목욕을 정히 하더니만 하느님전에다 축수를 한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느님전에 비나이다. 일월은 사람의 인물이오. 일월이 없사오면 무슨 분별 하오리까? 아비의 허물은 심청 몸으로 대신하고 아비의 어두신 눈을 밝혀 점지 하옵소서.”
아니리
이렇듯이 빌고 경황없이 앉았을 때, 하루는 뜻밖에 골목거리 외치는 소리 들려온다.
중중머리
남경장사 상인들이 골목골목 들어서서 각기 모두 외치는 말이,
“우리는 남경장사 선인으로 인당수라 하는 데는 인제수를 받삽기로, 십오세나 십육세 먹은 처자가 있으며는 중(重)값을 주고 살 것이니 처녀팔이 혹 있소? 있으면 있다고 대답을 하시요. 허허허.”
아니리
심청이 반기 듣고 그중에 수선인(首船人)을 불러 앉치우고, 부친 사정 말한 후에 인당수 제수로 제몸을 팔게하고 공양미 삼백석을 몽은사에 바치어서 부처님께 공을 닦아 안맹하신 부친 눈을 뜨게 하고 행선날은 내월 십오일로 정하고 선인들은 하직하고 떠났것다. 심청이 부친 앞에 단정히 꿇어 앉어,
“공양미 삼백석을 몽은사로 올렸나이다.”
심봉사 반겨하여,
“삼백석은 어데서 나서 바쳤느냐? 장정승 부인께서 수양녀로 의를 맺아 글노 받은 백미오니 호호 염녀 마옵소서.”
“거 그일 잘되았다. 그리면 언제 다려가시마 하시드냐?”
“내월 십오일 날 다려가시마 하옵니다.”
“거 날도 잘 났다.”
심청은 부친을 만단으로 위로하고 곰곰앉아 생각허니,
<중략>
아니리
강두에다 집을 짓고 망사대(望思臺)를 씌웠는데 비명을 타루비(墮淚碑)라 하였것다.
진양조
강촌에 밤이 드니 수운(水雲)이 적막한 데 외로운 강두에 망사대만 우뚝솟아 물새소리만 기웃기웃 갈대소리는 서리렁서리렁 무심한 잔나비 짝을 지어 슬피우니, 그때에 심봉사는 망사대를 찾아가서 비문을 안고 운다.
“아이고 내 딸 심청아, 인간 부모를 잘 못만나 생죽음을 당하였구나. 네 아비를 생각거든 나를 어서 다려가거라. 살기도 나는 귀찮고 눈뜨기도 내사 싫다.”
가슴을 두드려 머리를 찧고 두발을 끌러 남지서지(南之西之)를 가르치는구나.
아니리
밤낮으로 울고 다니거늘 그 동네 사람들이 심봉사 생각을 가엽이 생각하고, 그 근처에 뺑덕을 중매하여 후처가 되어 사는디, 이 계집의 행실이 이렇겠다.
잦은몰이
양식주고 떡 사먹고, 술 잘먹고 욕 잘하고, 억지 많고 욕심 많고, 흉 잘보고 해담하고, 술처먹고 훌떡벗고, 담배달라 싱간하기 잡스럽고, 행하기는 고금천지 둘도없다. 삐쭉하면 빼쭉하고, 빼쭉하면 삐쭉하고, 힐긋하다 핼긋하고, 핼긋하다 힐긋하고, 하루도 열번이나 시시각각 변덕한다. 이런 제기붙고 발길할년 행실이 이렇거든 가오지사를 알겠느냐.
아니리
하루는 심봉사 뺑덕이네를 불러,
“여보게 뺑덕이네 우리가 본촌(本村)서 살자하니, 이웃도 부끄럽고 우리 저 먼데로 떠나는 것이 어떠하오.”
약간 세간 등물을 모두 팔아가지고 정처없이 떠나간다.
중머리
“도화동아, 잘있거라. 무릉촌아 부디 잘 살아라 나는 간다. 이제 내가 떠나가면 어느 시절에 돌아오나.”
도화동 사람들은 모두 나와 인사를 하고 울며 불며 떠나간다.
<중략>
중머리
도화동 찾아가니 딸의 생각이 절로 난다. 봄이 가고 여름이 되면 녹음방초 한이로다. 산천은 적적한디 물소리만 처량쿠나. 도화동 사람들도 모두 나와 인사를 하고, 딸과 같이 놀던 처자들은 종종 와서 인사를 하면 심봉사 기가막혀, 아이고 내딸 심청아 인간부모를 잘못만나 생죽음을 하였구나. 날잡아 가거라. 나를 물어가거라, 삼심국 소귀들아 날 잡아 가거라, 아이고 악신들아 날 잡아 가거라. 살기도 나는 귀찮다. 아이고, 이를 어찌를 할까나.”
복통단장으로 울음을 운다.
아니리
하루는 본관(本官)에서 심봉사를 불러,
“황성서 맹인잔치가 있다는데, 그대는 참석치 않나. 노자 이십냥을 줄테니 내일 떠나도록 하오.”
중중머리
심봉사 좋아라고 돈을 받아 손에 들고 저의 집으로 돌아오니,
“여보게, 뺑파. 눈먼 가군이 어디갔다 집안이라고 돌아오거든 우르르르르 쫓아나와 영립하는게 도리지, 좌이부동(坐而不動)이 웬일인가? 에라! 요년아, 요망하다.”
뺑덕이네가 나온다.
“아이고 여보 영감. 영감 오신 줄 내몰랐소. 내 잘못 되었소. 이리 오시오, 이리 오라면 이리 와요.”
아니리
“뺑덕이네 거기 앉게. 자내더러 할 말이 있네. 황성서 맹인잔치가 있다는디, 잔치는 맹인잔치지만 백리길도 아니고 천리길이나 되는디, 나 혼자 가겠는가 뺑덕이네도 같이 가자, 응.”
중머리
“못 가겠소, 안 갈라요. 나는 안갈라요. 황성천리 먼먼 길을 누구를 보려고 내가 가요?”
심봉사 기가 막혀,
“오지 마라, 요 년아. 우리 곽씨부인이 오늘날 살았으면, 이런 패단이 있겠느냐? 나 혼자 갈란다. 오지를 마라.”
뺑덕이네 나 앉으며,
“아이고 여보 영감 길이 백리길도 아니고 천리길이 되는데, 영감 혼자 보내리까? 어찌 그리 속이 옹졸하시오.”
“오냐 네 속은 땅꾸두 같다.”
그날밤 그렁저렁 지내고, 황성길을 떠나는데, 아침밥을 지어먹고 뺑덕이네도 눈을 감아 황성길을 떠나갈 제, 신세자탄으로 울음을 운다.
정재근판 심청가
<중머리>
집이라고 돌아오니 부엌은 적막허고 방안은 텡텡 비었는디 심봉사 실성발광(失性發狂) 미치는대 얼싸 덜싸 춤도 추고 허허 웃어도 보며 지팡이막대 흩어짚고 이웃집을 찾어가서, 여보시오 부인님네 혹 우리 마누라 여기 안 왔오. 허허 내가 미쳤구나. 방으로 들어 통곡 자탄(自歎)헐제 그때에 귀덕어미 아해 안고 돌아와서 여보시오 봉사님 이 아해로 보더라도그만 진정허시오. 거 귀덕어민가 이리 주소 어디 보세. 종종 와서 젖 좀주소. 귀덕어미는 건너 가고 아이안고 자탄헐제 원촌(遠村)레 닭이 울고찬바람은 스르르 어린 아해 놀래 젖 달라고 슬피 운다. 심봉사 기가 막혀우지마라 내 자식아 너이 모친 먼데 갔다. 낙양동촌이화정(洛陽東村梨花亭)에 숙낭자(淑娘子)를 보러갔다. 죽상지루(竹上之淚) 오신 혼백(魂魄) 이비(二妃) 부인을 보러 갔다. 가는 날은 있다마는 오마는 날은 모르겄다. 너도 너의 모친이 죽은 줄을 알고 우느냐 배가 고파 우느냐 강목수생(羌木水生)이지야 내가 젖을 두고 안 주느냐. 아무리 달래어도 어린 아해는 그저 우짖듯이 응아 응아 응아 심봉사 화가 일어나 안었던 아해를 방바닥에다 미다치며 죽어라 썩 죽어라 니 팔자가 얼마나 좋으면 초칠(初七) 안에 어미를 잡아 먹어라. 너 죽어도 나 못살고 나 죽어도 네 못 살리라 아해를 도로 안고 우지마라 이 자식아 어서 날이 새면 젖을 얻어 먹여주마 우지마라 내 새끼야.
<아니리>
그날 밤을 새노라니 어두운 눈은 더욱 침침허고 눈물로 날을 새었거다.
<잦은몰이>
우물가 두리박 소리 얼른 듣고 나설제 한 품에 아해를 안고 한 품에 지팽이를 흩어 짚고 더듬더듬 우물가에 찾어가서,
“여보시오 부인님네 초칠 안에 어미 잃고 기허(氣虛)하여 죽게되니 이애 젖 좀 먹여주오. 우물가에 오신 부인 철석(鐵石)인들 아니 주며 도척(盜拓)인들 아니 주랴 젖을 많이 먹여 주며, 한 부인이 하는 말이, 여보시오 봉사님. 예. 이 댁에도 아해가 있고 저 집에도 아해가 있으니 자조자조 다니시면 내자식 못 먹인들 차마 그 애를 굶기리까. 심봉사 좋아라고, 허허 감사하고 수복강녕(壽福康寧)허옵소서. 이집 저집 다닐적에 삼베 길삼허노라고 히히하하 웃음소리 얼른 듣고 들어가, 여보시오 부인님네 인사는 아니오나 이애 젖 좀 먹여주오. 오뉴월 뙤약 볕에 김매고 쉬는 부인 더듬더듬 찾어가서, 여보시오 부인님네 이 애 젖 좀 먹여 주오. 젖 있는 부인들을 젖을 많이 먹여 주고 젖 없난 부인들은 돈 돈씩 채워 주고 돈 없난 부인들은 쌀 되씩 떠주며, 암쌀이나 하여주오. 심봉사 좋아라고, 허허 감사허오 만수무강(萬壽無疆)하옵소서. 젖을 많이 얻어 먹여 집으로 돌아올제 어덕 밑에 숙으려 앉어 아히를 어른다. 허허 이 자식이 배가 뺑뺑허구나.”
<중중머리>
“둥둥 내 딸이야 허허 둥둥 내 딸이야 이 덕이 뉘 덕이냐 동네 부인의 덕이라 너도 어서 자라나서 너의 모친의 본을 받어 현철(賢哲)하고 얌전하야 아비 귀염을 보여라. 둥둥 내 딸이야 백미 닷 섬에 뉘 하나, 열소경 한 막대로구나 둥둥 내 딸 금을 준들 너를 사며 옥을 준들 너를 사랴 어덕 밑에 귀남(貴男)이 아니냐 슬슬 기어라 둥둥 내 딸이야.
둥둥 내 딸이야 어허 둥둥 내 딸, 어허 둥둥 내 딸, 어허 둥둥 내 딸,댕기 끝에는 준주실 옷고름에는 밀화불수(密花佛手)달 가운데는 옥토끼 쥐얌 쥐얌 잘강 잘강 엄마 아빠 도리 도리 허허 둥둥 내 딸, 서울가 서울가 밤 하나 얻어다 두리박 속에 넣었더니 머리 깜한 새양쥐가 들랑날랑 다 까먹고 다만 한 쪼각 남은 것을 내가 먹고 한 쪽은 너를 주마, 어르르르.”
<아니리>
아해 안고 돌아와 포단 덮어 뉘어 놓고 동냥차로 나가는디 중고조로 나가것다.
<중머리>
삼배 전대 외동지어 왼 어깨 들어 매고 동냥차로 나간다. 여름에는 보리동냥 가을이면 나락동냥 어린 아해 암죽차로 쌀 얻고 감을 사서 허유허유 돌아 올 제 그때에 심청이난 하날이 도움이라 일취월장(日就月將) 자라날 제 육칠세 되어가니 모친의 기제사(忌祭祀)를 아니 잊고 헐 줄 알고 부친의 공경사(恭敬事)를 의법(依法)이 허여가니 무정 세월이 이 아니냐.
<아니리>
하로난 심청이 부친전 단정히 앉어,
“아버지.”
“오냐.”
“오날부터는 아무데도 가시지 마옵시고 집에 앉어 계시오면 지가 나가밥을 빌어 조석공양(朝夕供養)하겠네다.”
심봉사 좋아라고
“원 이 자식아 내 아무리 곤궁헌들 무남독녀 너를 내보내어 밥을 빌단말이 될 말이냐 오라오라 그런 말은 말어라.”
<중머리>
“아버지 듣조시오. 자로(子路)난 현인으로 백리를 부미(負米)허고 순우의(淳于意) 딸 제영이난 낙양옥(洛陽獄)에 갇힌 아부 몸을 팔아 속죄허고 말 못허는 가마귀도 공림(空林) 저문 날으 반포은(反哺恩)을 헐 줄 아니 하물며 사람이야 비금만 못 허리까. 다 큰 자식 집에 두고 아버지가 밥을 빌면, 남이 욕도 헐 것이요. 바람 불고 날 치운날 천방지축(天方地軸) 다니시다 치워 병이 날까 염여오니 그런 말씀은 마옵소서.”
<아니리>
“원 자식, 그런 말은 어데서 들었느냐 너의 어머니 뱃속에서 죄다 배워 가지고 나왔구나, 네 효성이 그렇거든 한 두어 집만 다녀 오너라.”
<중머리>
심청이 거동 보아라 밥을 빌러 나갈적에 헌 베 중의(重衣) 다님 매고 청목(靑木) 휘양 눌러 쓰고 말만 남은 헌 초마에 깃 없난 헌 저고리 목만남은 길 보선에 짚신 간발 정히 하고 바가지 옆에 끼고 바람 맞은 병신처럼 옆걸음 쳐 건너갈 제 원산(遠山)의 해 비치고 건너 마을 연기 날 제 추적추적 건너가 부엌 문전 당도하여 애근히 비는 말이,
“우리 모친 나를 낳고 초칠안에 죽은 후에 앞 못보신 우리 부친 저를 안고 다니시며 동냥젖 얻어 먹여 이만큼이나 자랐으나 구환(求患)할 길 전혀 없어 밥을 빌러 왔아오니 한 술씩 덜 잡수시고 십시일반(十匙一飯) 주옵시면 치운 방 우리 부친 구환을 하겠네다.”
듣고 보는 부인들이 뉘 아니 칭찬하랴. 그릇 밥 김치 장을 아끼잖고 후이 주며 혹은 먹고 가라 허니 심청이 여짜오되
“치운 방 저의 부친 나 오기만 기다리니 저 먼저 먹사리끼 부친전에 가 먹겄네다.”
한 두 집이 족한지라 밥 빌어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오며 심청이 허는 말이 아까 내가 나올 때는 먼 산에 해가 아니 비쳤더니 발써 해가 둥실 떠 그새 반일(半日)이 되었구나.
<잦은몰이>
심청이 들어 온다. 문전에 들어 서며
“아버지 칩긴들 오직 허며 시장킨들 아니리까. 다순 국밥 잡수시오. 이것은 흰밥이요 저것은 팥밥이요, 미역튀각 갈치자반. 어머니 친구라고 아버지 갖다 드리라 허기로 가지고 왔사오니 시장찮게 잡수시오.”
심봉사가 기가 막혀 딸의 손을 끌어다 입에 넣고 훅훅 불며
“아이고 내 딸 칩다. 불 쬐어라 모진 목숨이 죽지도 않고 니가 이 지경이 웬 일이냐. 너의 모친이 살았으면 이런 일이 있겄느냐.”
<아니리>
심청 나이 그렁 저렁 십오세 되어 가니 얼굴은 국색(國色)이요. 효행이 출천(出天)이라. 이런 소문이 원근에 낭자허니 그때에 무릉촌 장승상 부인이 시비를 보내어 심청을 청하였것다. 심청이 부친전 여짜오되,
“아버지.”
“오냐.”
“무릉촌 승상부인이 저를 다녀 가라 허옵시니 어찌 하오리까.”
“아차 잊었구나. 그 부인은 일국의 재상의 부인이시다. 너의 어머니 생전 별친(別親)허게 지냈는디 네가 진즉 가서 뵈올 것을 여태 찾도록 있었구나. 네가 오날 건너가 뵈옵되 아미(蛾眉)를 단정히 숙이고 묻는 말이나 대답허고 수이 다녀 오너라.”
<진양조>
시비 따라 건너 간다. 무릉촌을 당도허여 승상댁을 들어 갈 제 좌편은청송이요 우편은 녹죽(綠竹)이라 정하(亭下)에 솟은 반송(盤松) 청풍이 건듯 불며 노룡(老龍)이 굼니난듯 뜰 지키는 백두루미 사람 자최 일어나서 나래를 땅에다 지르르 끌며 뚜루루 길룩 징검 징검 왕룡성이 기이허구나.
<중머리>
계상에 올라서니 부인이 반기허여 심청 손을 부여 잡고 방으로 드러와좌를 주어 앉은 후에 네가 분명 심청이냐 듣던 바와 같은지라.
“무릉에 내가 있고 도화동(桃花洞) 네가 나니 무릉에 봄이 들어 도화동 계화(桂花)로다. 이 내 말을 들어 봐라 승상 일즉 기세(棄世)허시고 아달이 삼형제나 황성(皇城)가 미혼허고 어린 자식 손자 없어 적적한 빈방안에 대하나니 촛불이요 보난 것이 고서(古書)로다. 너의 신세 생각하면 양반의 후예로서 저렇듯 곤궁하니 나의 수양딸이 되면 여공(女工)도 숭상허고 문필(文筆)도 학습시켜 말년자미를 볼가허니 너의 뜻이 어떠허뇨.”
<아니리>
심청이 대답허되,
“모친 별세헌 연후에 아버지는 저를 아달 겸 믿사옶고 소녀는 아버지를 모친겸 믿사와 대소사를 의론허고 지내오니 분명 대답 못 하겠네다.”
부인이 칭찬허고,
“기특타 내 딸이야 나도 너를 딸로 여길테니 너도 나를 어미로 알려므나.”
부인이 놓지 아니 허시고 이야기로 벗 삼으실새 심청이 일어서며,
“치운 방 저의 부친 저 오기만 기다리니 어서 건너 가겠네다.”
부인이 허락허고 비단과 양식을 후이 주어 시비 함께 보낸지라 그때에 심봉사는 적적한 빈방안에 딸오기만 기다릴제,
<진양>
배는 고파 등에 붙고 방은 치워 한기 들제 원산사(遠山寺) 쇠북소리 날 저문줄 짐작허고,
“내 딸 청이는 응당 수이 오련마는 어찌 이리 못 오는고부인이 잡고 안 오느냐 길에 오다 욕을 보느냐 새만 피르르 날아 들어도내 딸 청이 네 오느냐 나무잎만 버썩 떨어져도 심청인가 반기는구나 아무리 불러도 적막공산(寂寞空山)에 인적이 끊졌으니 내가 분명 속았구나. 이일을 장차 어찌를 헐그나”
자진 복통으로 울음을 운다.
<잦은몰이>
“이래서는 안되겠다.”
닫은 방문 펄쩍 열고 지팽이 흩어 짚고 더듬더듬 나가면서
“청아 어이 이리 못 오느냐.”
그때에 심봉사는 딸의 덕에 몇 해를가만히 앉어 먹어 놓니 도량 출입이 서툴구나. 지팽이 흩어짚고 이리 더듬 저리 더듬 더듬더듬 나가다가 길건너 개천에 미친듯이 풍.
“어푸 사람 살리오.” 나오랴면 미끌어져 풍 빠져 들어가고 나오랴면 미끌어져 풍 빠져 들어가고,
“아이고 도화동 심학규 죽네. 정신은 말끔헌디 숨도 못쉬고 아픈데 없이 작 죽는구나.”
<아니리>
한참 이리 헐제 때 마침,
<엇머리>
중 올라 온다. 중 하나 올라 간다. 저 중이 어디 중인고. 몽은사(夢恩寺) 화주승(化主僧)이라. 절을 중창(重창)허려허고 시주집 나려 왔다 날이 우연히 저물어서 서산에 비낀 길로 급급히 올라 갈제 저 중의 차림 보소. 저 중의 거동 보소. 굴갓 쓰고 장삼 입고 백팔 염주 목에 걸고 단주 팔에 걸고 용두(龍頭) 새긴 육환장(六環杖) 쇠고리 많이 달아 처절절 뚝뚝 짚고 흔들 흔들 흔들거리고 올라 갈제 원산은 암암(暗暗)허고 설월(雪月)리 돋아 오는디 백포장삼(白布長衫)은 바람결에 펄렁펄렁 염불하며 올라간다. 아아 아아 상래소수공덕해(上來所修功德海) 회향삼처실원만(廻向三處悉圓滿) 원왕생(願往生) 원왕생 제궁종실각안녕(諸宮宗室各安寧)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염불허고 올라갈제 한곳을 당도허니 어떠한 울음소리 귀에 얼른 들린다. 저 중이 깜짝 놀래,
“이 울음이 웬 울음. 이 울음이 웬 울음, 마외역(馬嵬驛) 저문날에 하소대로 울고 가는 양태진(楊太眞)의 울음이냐. 이 울음이 웬 울음, 여우가 변하여 날후리려는 울음이냐. 이 울음이 웬 울음.”
죽장을 들어 메고 이리 끼웃 저리 끼웃 한곳을 살펴보니 어떠한 사람인지 개천에 풍당 빠져 거의 죽게 되었거늘, 저중의 급한 마음 저 중의 급한 마음 굴갓 장삼 훨훨 벗어 되는대로 내던지고, 행전 다님 끌르고, 보선을 얼른 벗어 고두누비 바지가래 똘이똘똘 말아 자개밑 딱 붙이고 무논의 백로(白鷺) 격으로 징검징검 걸어서 들어가 심봉사 꼬두래상투 에잇후리쳐 건져 놓고 보니 전에 봤던 심봉사라.
<아니리>
심봉사 정신 차려,
“거 뉘가 날 살렸소.”
“예 소승은 몽은사 화주승(化主僧)이온데 시주집 나려왔다 절을 찾어 가는 길에 다행이 봉사님을 구하였나이다.”
“허허 활인지불(活人之佛)이로고 죽을 사람 살려 주니 은혜 백골난망(白骨難忘)이요.”
저중이 허는 말이,
“심봉사님 좋은 수가 있읍니다마는.”
“수는 무슨 수꼬.”
“다름이 아니오라 우리 절 부처님이 영검(靈驗)이 많사와 빌면 아니 되는 일이 없고 구하면 다 응하오니 공양미 삼백석만 불전에 시주허면 정녕 눈을 뜨오리다마는.”
“아니 이렇게 먼 눈을 떠.”
“예 눈을 뜨옵지요.”
“예잇 남녀간에 거짓말하는 사람 비위에 마땅찮드라.”
“아니올시다. 대자대비한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소승으로 어찌 허언을 하오리까.”
“그래 꼭 눈을 뜬다.”
“예, 꼭 눈을 뜨옵지요.”
심봉사는 눈 뜬단 말을 듣고 반가워 후사는 생각잖고 대번 일을 저지는디,
“여보시오 대사 그러면 공양미 삼백석을 권선(權善)에 기재허오.”
저 중이 어이 없어,
“심봉사님 가세를 헤아리면 삼백석을 커녕 단 삼백 주먹이 없는 이가 어쩔라고 그러시오.”
심봉사가 화를 내어,
“무엇이 어쪄, 칼부림 나기 전에 썩 적어. 내 수단을 어찌 알어서 하는 말이여.”
“여보시오. 봉사님 부처님전 허언을 허게 되면 도리어 앚은뱅이가 될터이니 부대 명심허오.”
내월 십오일까지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시키기로 권선에 기재허여 중을 보내 놓고 집으로 돌아와 곰곰 생각허니 백계무책(百計無策)이로구나.
<중머리>
“허허 내가 미쳤구나. 정녕 내가 사(邪)들렸네 공양미 삼백석을 내가 어이 구할거나. 살림을 팔자헌들 단 돈 열량 뉘라 주며 내 몸을 팔자헌들 앞 못보는 봉사놈을 단돈 서푼을 누가 주리. 부처님을 속이며는 앉은뱅이가 된다는디, 앞 못 보는 봉사놈이 앉은뱅이 마저 되거드면 꼼짝없이 내가 죽겠구나. 수중고혼(水中孤魂)이 될지라도 내가 차라리 죽을 것을. 공연한 중을 만나 도리혀 내가 후회로구나. 저기 가는 대사. 대사 대사 쌀 삼백석 에우고 가소. 대사 대사 대사 대사 저 놈 봐,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가련마는 못 들은 체허고 뒤바탕에 손 넣고 거덜거리고 가제. 대사, 아이고, 내 신세야. 내 딸이 이 말을 듣고 보면 복통자진(腹痛自盡)을 헐것이고 이 일을 장차 어쩔거나?”
실성발광 기가 막혀 홀로 앉어 탄식을 헌다.
<잦은몰이>
심청이 들어온다. 문전 들어 서며 저의 부친 모양 보고 깜짝 놀래 발 구르며,
“아버지 이게 웬 일이요. 살 없는 두 귀 밑에 눈물 흔적 웬일이요. 나를 찾어 나오시다 개천에 넘어져서 이런 일을 당하셨오? 이웃집 가시다가 무슨 변을 당하셨오. 승상댁 노부인이 굳이 잡고 만류허여 어언간 더디었오. 말씀이나 허여 주오 답답허여 못 살겄오.”
<아니리>
심봉사 공연한 일을 저지르고 먼저 화를 내것다.
“나 아버지 아니다. 너 알아서 쓸데 없는 일이다.”
“아버지 이게 웬 말씀이요. 모친 별세한 연후에 아버지는 소녀를 아달 겸 믿사옵고 소녀는 아버지를 모친 겸 믿사와 대소사를 의론터니, 오날 말씀이 ‘너 알어 쓸데 없다’ 허시니 아무리 불효여식인들 마음이 설사이다.”
훌적 훌적 울음을 우니,
“이 자식아 내가 너를 무슨 일을 속이랴마는 네가 승상댁에 간 후에 천상 와야지. 그래 내가 너를 찾어 나가다가 개천에 빠져 거의 죽게 되었을 적에 몽은사 화주승이 나를 건져 살려 놓고.”
“아이고 아버지 몽은사 화주승이 살려 주다니 그런 고마운 일이 어데가 있오.”
“내 말 들어 봐라. 아 그 놈이 살려만 주고 갔으면 고마웁지. 그런데 나를 건져 살려 놓고 나를 살살 꼬인단 말이여. 공양미 삼백석만 불전 시주허면, 이 눈을 뜬다 하기에 눈 뜬단 말이 어찌 반갑든지 후사는 생각잖고 공양미 삼백석을 내월 십오일까지 바치기로 권선에 기재허여 중을 보내 놓고 생각허니, 백계무책이로구나.”
심청이 이 말 듣고 부친을 위로하되,
<중머리>
“아버지 듣조시오 왕상(王祥)은 고빙(叩氷)허여 어름 궁기 잉어 얻고 맹종(孟宗)은 읍죽(泣竹)허여 눈속에 죽순 얻어 사친성효(事親誠孝)를 허였삽고 곽거(郭巨)라는 옛 사람은 부모 반찬허여 놓면 제 자식이 먹는다고 산 자식을 묻으랴 땅을 파다 금을 얻어 부모 봉양을 허였으니 사친지 효도가 옛 사람만 못 허여도 지성이면 감천이라 깊이 근심은 마옵소서.”
<아니리>
“대처 그런 말은 어데서 들었느냐.”
심청이 이렇듯 부친을 위로하고 그날부터 목욕 정히 재계하고 지극신공(至極神供)을 드리난디,
<진양>
후원의 단을 뭇고 북두칠성 자야반(子夜半)의 촛불을 돋오키고 새 사발으로 정화수를 떠 소반우에다 받쳐 놓고 두손 합장 무릎 꿇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나님전 비나이다. 천지지신 일월성신 화우동심(和佑同心) 허옵소서. 무자생(戊子生) 소경 아부 이십 이후 안맹(眼盲)허여 시물(視物)을 모르오니 아부의 허물은 심청 몸으로 대신허고 부친 눈을 밝히소서 공양미 삼백석만 불전에 시주허면 정녕 눈을 뜬다허니 명천이 감동허사 공양미 삼백석을 지급하여 주시소서.”
<아니리>
이렇듯 빌어 갈제 지성이면 감천으로,
<중머리>
하로난 문 밖으로 외는 소리 우리는 남경선인(南京船人)일러니,
“임당수(臨塘水) 인제수(人祭需)를 드리고저 십오세나 십륙세나 먹은 처녀를 살랴허니 몸 팔 일이 뉘 있읍나.”
이렇닷이 외는 소리 원근산천이 떵그렇게 들린다.
<아니리>
심청이 이 말 듣고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짐작허고 동리사람도 모르게 은신허여 도사공(都沙工) 청해들여,
“나는 이 마을 사람으로 부친이 안맹하여 공양미 삼백석만 불전으 시주허면 정녕 눈을 뜬다 허오나 가세 극빈허여 내 몸을 팔자허오니 저를 사감이 어떠하오.”
선인들이 이 말을 듣고,
“출천대효(出天大孝)로다. 공양미 삼백석은 염려마오 그러나 내월 십오일이 행선일(行船日)이니 그날 떠나 가겄오.”
“중(重)값을 받고 팔린 몸이 내 뜻대로 하오리까 그난 염려 마옵소서.”
선인들과 단단 약조하고 보낸 후 방으로 들어와,
“아버지.”
“왜야.”
“공양미 삼백석을 몽은사로 올렸으니 아무 염려 마옵소서.“
심봉사 깜짝 놀래,
“아니 니기 어떻게 해서 공양미 삼백석을 올렸단 말이냐.”
“다름이 아니오라 전일 승상댁에 갔을 때 부인이 저를 수양딸로 정하신다 하온 것을 분명 대답 못허고 왔었지요. 지가 오날 건너가 아버님 사정을 여쭈었더니 부인이 들으시고 공양미 삼백석을 몽은사로 올리면서 저를 수양딸로 다려간다 허옵니다.”
“야 그 일 잘 되었다. 양반으 자식으로 몸 팔린단 말은 외인소시난처(外人所視難處)허나 그 부인으게 수양딸로 가는게야 뉘가 날 딸 팔아 먹었다고 정개허겄느냐. 그 일 잘 되었다. 그러면 어느날 다려간다 허시드냐.”
“내월 십오일 다려간다 허옵디다.”
“날짜도 잘 받었다 달도 밝고, 여봐라 청아 나는 어쩐다 하시더냐.”
“아버지도 모셔간다 하옵디다.”
“그럴 것이다. 그 부인이 어떠한 분이라고 눈 먼 나 혼자 두겄느냐 잘 되었다. 너는 가마 태워 갈 것이다마는 나는 무엇을 타고 갈거나. 오오. 나는 김장순댁 껌은 암소나 좀 얻어 타고 가게.”
심청 같은 효성으로 부친을 어이 속일리가 있으리요마는 속이는 것 또 효성이라. 이렇듯 부친을 속여 놓고 눈물로 날을 보내는디 하로는 문듯 생각허니 행선 날이 하로 밤이 격한지라.
<진양>
그때의 심봉사는 모진 목숨이 죽지도 않고 근근부지(僅僅扶持) 지낼 적에 도화동 사람들이 심소저 효행에 감동되어 강두(江頭)에다 타루비(墮淚碑)를 세워놓고 비문에 허였으되,
지위노친평생한(知爲老親平生恨)허여
살신성효행선거(殺身成孝行船去)라.
연파만리상심벽(烟波萬里常深碧)허니
방초년년환불귀(芳草年年還不歸)라.
승상부인도 망사대(望思臺)를 지어 놓고 춘추로 제지낸다. 이렇듯 비문을 하여 세워놓니 오고가는 행인들도 뉘 아니 슬퍼허랴. 심봉사도 딸 생각이 나거드면 지팽막대 흩어짚고 타루비 찾어가서 비문 안고 우드니라. 일일도 심봉사 마음이 산란허여 지팽이 흩어짚고 망사대를 찾어 가서,
“후유 아가 청아 내가 또 왔다. 너는 내 눈을 띄우랴고 수중 고혼이 되고 나는 모진 목숨이 죽지도 않고 내가 이지경이 웬일이란 말이냐. 날 다려 가거라. 나를 다려 가거라. 살기도 나는 귀찮허고 눈 뜨기도 내사 싫다.”
비문안고 엎더져 나리둥글 치둥굴며 머리도 질끈 가삼을 ‘쾅쾅’, 두 발을 굴며 남지서지(南之西之)를 가르치는구나.
<아니리>
밤이면 집에 돌아와 울고 낮이면 강두에 가서 울고 눈물로 세월을 보낼제 그 마을 사는 묘한 여자가 하나 있으되 호가 뺑파것다. 심봉사 딸 덕분에 전곡(錢穀)간에 있단 말을 듣고 동리 사람들 모르게 자원출가(自願出嫁)하여 심봉사 그 불상헌 가산을 꼭 먹성질로 망하는디,
<잦은몰이>
밥 잘 먹고, 술 잘 먹고, 고기 잘 먹고, 떡 잘 먹고, 쌀 퍼주고 고기 사 먹고, 벼 퍼주고 술 사 먹고, 이웃집 밥부치기, 동인 잡고 욕 잘 허고, 초군(樵軍)들과 싸움허기, 잠자며 이갈기와 배 끓고 발 털고 한 밤중 울음 울고, 오고 가는 행인 다려 담배 달라 실랑허기, 술 잔뜩 먹고 정자 밑에 낮잠 자기, 힐끗허면 핼끗허고, 핼끗허면 힐끗허고, 삐쭉허면 빼쭉허고, 빼쭉허면 삐쭉허고, 남의 혼인허랴허고 단단히 믿었난디 해담(害談)을 잘 허기와 신부 신랑 잠 자는디 가만가만 문 앞에 들어서며 불이야. 이 놈의 행실이 이러허여도 심봉사는 아무런줄 모르고 뺑파한테 빠져서 나무칼로 귀를 외어가도 모르게 되었것다.
<아니리>
심봉사 하루난 돈궤를 만져보니 엽전 한 푼이 없것다.
“여 뺑파 돈 궤를 만져보니 엽전 한 푼이 없것다.”
“아이고 그러니 외정(外丁)은 살림 속을 저렇게 몰라. 영감 드린다고 술 사오고, 고기 사오고, 떡 사오고 하는 돈이 모두 그 돈 아니요.”
“나 술 고기 떡 많이 잘 사주더라. 여편네 먹은 것 쥐먹는 거이라고 할 수 있나.”
“영감아, 지난 달부터 밥 구미는 뚝 떨어지고 신 것만 구미가 당기니 어째서 그런가 모르겄오.”
“파아하하, 거 그러면 태기가 있을란가부네. 어찌튼 하나만 낳라. 그런디 신 것이 구미가 당기면 무엇을 먹는가.”
“아, 살구 먹었지요.”
“살구는 얼마나 먹었는고.”
“아, 씨 되어 보니 닷말 서 되입디다.”
“거 신 것을 그리 많이 먹어. 그 놈은 낳드라도 안 시건방질가 몰라. 이것 농담이요.”
하로난 관가에서 부름이 있어 들어 가니 황성서 맹인 잔치를 배설허였는디 만일 잔치 불참허면 이 골 수령이 봉고파직(封庫罷職)을 당할 것이니 어서 급히 올라가라 노비(路費)까지 내어 주것다. 그 노비 받어가지고 돌아 와,
“여보 뺑덕이네 황성서 맹인잔치를 배설하였는디 잔치에 불참허면 이 골 수령이 봉고파직을 당한대여. 그러니 어서 급히 올라 가세.”
“아이고 여필종부(女必從夫)라고 영감 따라가지 누구 따러 갈 사람있오.”
“아닌게 아니라 우리 뺑파가 열녀(烈女)도 더 되고 백녀(百女)다 백녀. 자 그럼 어서 올라가세. 의복 챙겨 있는 것 자네는 맡아서 이고 가고 나는 괘나리 띳빵해서 질머지고 가세.”
막상 떠날라고 허니 도화동이 섭섭하든가 보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