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정철한시전집 2002/08/31 585

송강정철한시전집 金注秀 譯(주소: 부산시 동구 범일6동 1510-55번지)

- 서문 -
나는 송강의 한글 작품에 매료되어 송강의 한시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송강의 시조와 가사는 천년의 獨步라 할 수 있으리만큼 뛰어나다. 그런 그의 시적 재주와 흥취를 우리는 한글작품 뿐 아니라 한시 작품에서도 함께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비단 송강의 문학 뿐만 아니라 한국의 고전문학은 한문과 한글- 이 두가지 언어 체계로 이루어진 문학이다. 싫던 좋던 우리는 반드시 이 두 가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어느 한쪽만을 중시한다면 그것은 한쪽을 잃어버린 절름발이에 불과하다. 종래의 국문학에서는 한문학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부족한 듯 하다. 그것은 잘못된 역사인식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그 결과는 엄청난 양의 민족의 고귀한 문화유산을 먼지가 되게 하는 길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린다 하였거늘 우리가 어찌 스스로, 우리의 미래에 있어 더 없이 소중한 아름다운 토양을 버릴 것인가.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이룩해 놓은 그 토양에서 다시 찬란한 열매와 꽃을 피워 내야한다. 뿌리를 잘라 내고 커다란 번영을 꿈꾸는 것은 자신의 몸을 자르고서 스스로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 글은 되도록 원문 이해에 중점을 두고 번역하였다. 그것은 번역문을 어디까지나 원문으로 다가가기 위한 징검다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시의 운치는 애초에 한글 번역이 불가능한 글이다. 독자들은 더 더욱 원문 중심으로 글을 읽어주시기 바란다. 또한 처음 마음처럼 잘 되지는 않았지만 번역함에 있어 다양한 어조를 살리기 위해 송강의 한글작품과 용비어천가에서부터 김영랑, 윤동주에 이르기 까지 두루 참고하였음을 밝힌다.
이 글은 애초에 국역송강집이 없었다면 시작도 할 수 없었던 글이다. 초역자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한 많은 시간 지극한 애정으로 가름침을 베풀어 주신 정경주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이 글은 결코 마무리를 짓지 못하였을 것이다. ─부끄러움으로 말문마저 막힌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이 글을 감히 세상에 보이는 것은 나의 욕심이거나 우둔함일지도 모른다. 나는 江湖諸賢의 꾸지람을 기다리며 나의 이 글이 세상에 죄가 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2000. 9. 9 김주수 씀.

1.秋日作 가을날 짓다

山雨夜鳴竹 산에 밤비가 댓잎에 울고
草虫秋近床 풀벌레는 가을이라 침상 가까이에 있네.
流年那可駐 흐르는 세월을 어찌 머물게 하리
白髮不禁長 백발이 자람을 금할 수 없나니.

2. 平湖堂 二首 평호당 2수

宇宙殘生在 우주에 남은 쇠잔한 인생이여
江湖白髮多 강호에 백발만 많아라.
明時休痛哭 밝은 때라 통곡도 못하고서
醉後一長歌 취한 후에 길게 노래나 하노라.

3.
遠岫頻晴雨 먼 산자락 자주 개었다 흐렸다 하니
漁村乍有無 어촌이 잠깐 있었다 없었다 하네.
孤舟一片月 외론 배에 한 조각 달만이
萬里照平湖 만리의 평호를 비추나니.

4. 別退陶先生 퇴계선생과 이별하며

追到廣陵上 뒷쫓아 광릉에 이르렀거늘
仙舟已杳冥 仙舟는 이미 떠나 아득하고나.
秋風滿江思 가을바람 이는 강가에 그리움만 가득하나니
斜時獨登亭 지는 해에 홀로 정자에 올라라.

5. 祝堯樓 축요루

去國一千里 나라 떠난 천리 밖,
天涯又見秋 하늘 끝에서 또 가을을 대하네.
孤臣已白髮 외로운 신하는 이미 백발이 되나니
獨上祝堯樓 홀-로 축요루에 올라라.

6. 滌襟軒雜詠 三首 척금헌잡영 3수

冠岳晴雲 관악의 개인 구름
何物得長生 어떤 物이 오래도록 한가할까
浮雲亦多事 뜬구름 역시 일이 많나니
飛揚遠水邊 먼 물가에서 날아올랐다가
起滅長空裏 긴 하늘 속으로 일었다 사라지노라.

7.
平郊牧笛 평교 목동의 피리소리
人間足是非 인간에는 시비가 많아서
世上多憂喜 세상에는 기쁨과 근심도 많아라.
牛背笛聲人 소등에 피리 부는 이여
天遊吾與爾 天遊는 그대와 나 뿐이네.
1. 天遊: 자연을 벗하여 사물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움.

8.
前江漁唱 앞 강 어부의 노래
歌起蓼花灣 여뀌꽃 물굽이에 노래소리 일고
江童理漁罩 강촌의 아이는 가리를 손질하네.
幽人初罷眠 묻혀 사는 이 막 잠에서 깨니
落月隨歸棹 돌아오는 배 따라 달도 지어라.

9. 棲霞堂雜詠 四首 서하당잡영 4수

松窓 송창
倦客初驚睡 게으른 객이 갓 놀라 깨어
中宵獨倚窓 한밤에 홀로 창가에 기대니
無端萬壑雨 무단히 만 골짝에 비가 내려
十里度前江 십리 앞 강을 지나네.

10.
書架 서가
仙家靑玉案 仙家에 청옥 책상
案上白雲篇 그 위에 ‘백운편’
盥水焚香讀 손 씻어 향 사르고 읽으니
松陰竹影前 솔 그늘에 대 그림자 앞에 어울려!

11.
琴軒 금헌
君有一張琴 그대에게 한 장 거문고 있어
聲希是大音 소리가 세상에 드문 대음일세.
大音知者少 대음을 알아주는 이 적어서
彈向白雲深 흰구름 깊은 곳에서나 타시는가.

12.
藥圃 약포
造化生生意 조화옹의 낳고 낳는 뜻을
春天一雨餘 봄 하늘 한 줄기 비 뿌린 후에 알겠네.
從來有道骨 지금껏 도골은 있어 왔나니
不必養生書 양생서가 꼭 필요한 건 아니라네.

13. 息影亭雜詠 十首 식영정잡영 십수

蒼溪白石 푸른 시냇가 하얀 돌
細熨長長練 곱게 다린 긴긴 물결(베)
平鋪瀁瀁銀 반드럽게 깔린 찰랑이는 은결
遇風時吼峽 바람을 만날 때면 골짝일 울리고
得雨夜驚人 비를 얻은 밤이면 사람을 놀래키네.
注) 식영정은 김성원이 스승 임억령을 위해 1560년에 지은 정자이다. 전라남도 담양군에 있으며, 식영정잡영 십수는 정철이 스승 임억령의 시에 차운한 시이다. 練은 물결의 비유다.

14.
水檻觀魚 물우리에 고기를 보다
欲識魚之樂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고 싶어서
終朝俯石灘 아침이 다하도록 돌여울을 들여다 보았네.
吾閒人盡羨 나의 한가로움을 모두들 부러워하지만
猶不及魚閒 오히려 물고기의 한가로움엔 못 미친다네.

15.
陽坡種瓜 陽坡에 오이를 심다
身藏子眞谷 자신곡에 몸을 숨기고
手理邵平瓜 소평의 오이를 심어라.
雨裏時巡圃 비 속에서도 채마밭 돌고서
閒來着短簑 짧은 도롱이 쓰고 한가하게 돌아온다네.
注) 1. 자진곡: 漢나라시대의 도인 鄭子眞이 谷口에 살던 것을 이름. 이후로 정씨의 범칭. 2. 소평: 秦나라 東陵候였던 소평은 나라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장안성 동쪽에 오이를 심고 살았다 한다.

16.
環碧龍湫 푸름 두른(環碧堂) 용추
危亭俯凝湛 높은 정자에서 물 굽어보나니
一上似登船 한 번 올라보면 배에 오른 듯
未必有神物 꼭 신물(용)이야 있으랴만
肅然無夜眠 숙연하여 잠 못 이루네.
注) 凝湛: 물이 괴어 깊고 맑음. 혹은 마음이 맑고 잔잔함을 비유

17.
松潭泛舟 송담에 뜬 배
舟繫古松下 오래된 소나무 밑에 배 매어 놓고
客登寒雨磯 객이 치운 비 내리는 물가를 오르네.
水風醒酒入 물가 바람은 술을 깨우고
沙鳥近人飛 모랫가 새는 사람 곁으로 날으네.

18.
石亭納凉 석정에서 서늘함을 즐기다
萬古蒼苔石 만고에 푸른 이끼 앉은 돌
山翁作臥床 산 늙은이의 臥床이 되었나니
長松不受暑 큰 소나무라 더위도 받지 않고
虛壑自生凉 빈 골짝에 서늘한 기운 절로 솟네.

19.
平郊牧笛 평교의 목적소리
飯牛烟草中 이내 낀 풀밭에서 소 먹이고서
弄笛斜陽裏 석양 속에 피리를 부나니
野調不成腔 시골 노래라 가락이야 맞진 않지만
淸音自應指 맑은 소리 절로 손가락에 응하네.
注) 腔곡조(가락)강

20.
斷橋歸僧 단교에서 돌아오는 승
翳翳林鴉集 어둑어둑 숲에 까마귀 모이고
亭亭峽日曛 亭亭한 골짜기도 어스레한데
歸僧九節杖 구절장 지고서 돌아오는 저 스님
遙帶萬山雲 멀리서 만산의 구름을 둘렀네.
注) 翳翳: 환하지 아니한 모양. 해가 질 무렵의 어스레한 모양. 亭亭: 아름다운 모양. 예쁜 모양. 혹은 우뚝 솟은 모양.

21.
白沙水鴨 흰 모래 위에 조는 오리
風搖羽不整 바람이 흔드니 깃이 너울너울
日照色增姸 햇살 비추어 색 더욱 곱구나.
纔罷水中浴 물 속에 목욕 금방 끝내곤
偶成沙上眠 어느새(우연히) 모래 위에서 조나니
注) 纔罷: 마치자 마자

22.
仙遊洞 선유동
何年海上仙 어느 해에 바다 위 신선께서
棲此雲山裏 이 구름 산 속에 깃드셨나.
怊悵撫遺蹤 유적(遺跡)을 어루만지며 슬퍼하고야
白頭門下士 흰 머리 문하의 선비가.
注) 海上仙은 스승 임억령을 말한다.

23. 飜曲題霞堂碧梧 번곡을 서하당 벽오동나무에 쓰다

樓外碧梧樹 다락 밖에 벽오동 나무 있건만
鳳兮何不來 봉황새는 어찌 아니 오는가.
無心一片月 무심한 한 조각 달만이
中夜獨徘徊 한밤에 홀로 서성이누나.

24. 遙寄霞堂主人 金公成遠 멀리 서하당 주인에게 부치다 김성원공

骨肉爲行路 골육간에도 길을 달리하고,
親朋惑越秦 친한 벗도 혹은 앙숙이 되나니
交情保白首 사귀여 늙도록 지키기는
海內獨斯人 천지에 그대 하나 뿐이네.
1. 爲行路: 서로 길을 떠난다는 뜻. 2. 越秦: 월나라와 진나라 서로 원수지간을 뜻함.

25.贈金君瑛 二首 김군 영에게 주다 2수

積雪留歸客 쌓인 눈이 돌아가는 객을 붙드니
松黃煖夜杯 관솔불 피워 밤에 술 데우네.
十年如逝水 십년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고야
逝水不重來 흘러간 물은 다시 오지 않나니.

26.
步武辭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