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평화기행-양구2004/11/28
양구 – 수단으로서의 평화, 목적으로서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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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에 대하여
얼마전 오페라 연출가 문호근 선생님이 제안한 국제 문예박람회를 위한 첫 번째 심포지엄에 갔다. 추진하는 내용이나 사람 모두 비중있는 자리였지만 사람수가 적어도 너무 적어 의외였다. 토론회의 열기도 그다지 높지 못했다. 결국 국제 문예 박람회 계획은 거의 취소되고 말았다.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보다 더 뇌리를 떠나지 않는 말은 토론자 중의 한 사람이 던진 얘기였다. ‘요즘은 통일이니 평화니 하는 주체는 장사가 안된다, 환경이나 문화는 사람이 바글바글하는데….’ 통일이나 평화라는 주제가 관성화되고 있는 시기에 살고 있는 것이다.
자유의 반대는 보통 구속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자유의 반대는 관성이다. 구속은 자신이 구속된 상태를 자각하지만 관성은 자신이 관성화되어 있다는 것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구속이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고 관성은 내부로부터 생기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관성도 구속처럼 외부로부터 온다. 유행하는 패션을 고르는 손은 자유의지에 의한 판단처럼 보이나 광고나 선전에 의해 조성된 거짓 의지이기에 외부의 것이다. 외부에 의한 것임에도 자기 내부에 의한 판단이라는 오해, 여기에 관성화의 실체가 있다. 관성화된 통일이나 평화 대신 싱그런 봄바람처럼 평화와 통일을 맞이하고자 할 때 권하고 싶은 촬영지가 있으니 바로 양구다.
양구로 가는데는 길이 있었네
양구를 촬영지로 하는데 우선 망설여지는 것은 빈약한 이야기거리였다. 바로 옆 동네인 철원이 역사와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진 육중한 무게의 촬영지라면 양구는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 동네다. 양구 나름의 역사가 없을까마는 한반도 어딜가나 있는 걸쭉하고 장엄한 삼가 고개가 숙여지는 역사의 지층이 양구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에서 경춘가도를 지나 마치 백두산 천지처럼 펼쳐진 소양호를 타고 양구에 이르면 이곳이 땅의 역사로나 사람의 역사로나 장년과 노년이 아닌 초년의 역사 시작점임을 느끼게 된다.
양구는 이제 막 역사가 시작되는, 완성이 아닌 시작의 땅인 것이다. 머리를 거쳐 가슴으로 전해지는 절차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곧장 가슴으로 이어지는 땅인 것이다. 이 원초적 자연성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너무나 쉽게 잊거나 발견치 못하는 것이었다.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것네’라는 말처럼 한반도에서 산천이 유일하게 극복과 도전의 대상인 곳은 여기밖에 없다.
가도가도 끝없는 벌판에는 익숙하지만 가도가도 끝없는 산속이 왠지 익숙하지 않은 것은 사람이란 기준으로 자연과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 때문이다. 벌판이 온전히 인간화된 자연이라면 산속은 미지와 신비의 대상일망정 인간화된 자연은 아닌 때문이다. 도전과 극복의 대상인 산속을 가슴과 머리가 분리되지 않는 원형질로 우리 눈 앞에 드러나게 해 준 것은 다름아닌 산을 깍아 만든 차도이다.
길의 위대한 힘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하는데 나는 주저하지 않겠다. 환경적 관점에서 이를 반대할 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환경보다 더 소중한 관점 하나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것은 노동이다. 낭떠러지 길에 도로를 건설하는 데 바쳐진 이름없는 노동자들의 눈은 자본의 계획이나 환경의 계획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눈인 것이다. 미의 세계를 펼치는데서 일하는 자의 땀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전거로 달릴 수도 즐겁게 걸을 수도 없도록 되어 있는 이 길에 한 가지의 눈을 더 보태고 싶다. 그것은 주인의 눈이다. 사고 위험에 도둑질하듯 훔쳐보는 아슬아슬한 질주의 길이 아니라 중간중간 운전수도 차 부려놓고 이 대자연의 힘을 자기안에 받아들일 수 있는 감상공간이 있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이 감상공간은 외국 산장의 베란다가 아니라 걸터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 몇 개 깔린 도로의 툇마루 같은 공간이다. 도로의 툇마루 공간은 노동의 눈과, 환경의 눈과, 문화의 눈을 하나의 원형질로 통일시키는 눈이다. 나는 이것을 주인의 눈이라 한다. 왜냐하면 노동과 환경과 문화의 목적인 사람의 눈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상을 하며 우리는 양구의 길에 들어 선다.
수단으로서의 평화 ― 평화의 댐
주인의 눈을 상실할 때 노동도, 환경도, 세계화도 관성화 된다. 우리 모두 잘살아 보자는 제2의 새마을운동으로 밖에는 생각안되는 세계화는 일시적인 고통분담이 아닌 고통전담을 통해서만 가능한 세계화가 되었다. 세계화의 목적인 잘살아 보자는 목표 자체가 실종되어 버린 것이다. 수단이 되어버린 세계화는 자기 반성기능을 상실하고 오히려 반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탄압하기에 이른다. 목표였던 주인은 소외된다. 이것이 관성이 된 세계화이다. 따라서 주인성의 반대는 관성이다.
현대사에서 구속을 통한 지배가 아닌 관성을 통한 지배의 대표적인 경우가 평화의 댐 사건이다. 1986년 북한의 금강산 댐이 서울을 수몰시키기 위한 작전으로 세워지고 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가상 실험으로 금강산 댐을 폭파시킬 경우 여의도의 63빌딩까지 물에 잠기는 쇼를 연출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당장 모금운동이 시작되어 수백억원을 모아 평화를 지키기 위한 안보의 댐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1993년 국정감사에서 허위 과장이었음이 드러났다. 정말 가도가도 산속인 이곳에 이르는 길에는 산안개가 피어오르고 바위에 벌통이 매달려 있는 청정구역이다. 평화의 댐은 민통선과 맞닿아 있다. 평화의 댐 이미지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검문소를 지나 의자가 나뒹구는 안보전시관에 발을 내리게 된다. 잠깐 왜 평화 전시관이 아닌 안보전시관인 것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은 좀 어리석어 보이는 일이다. 저 아래 물이 가득 차 있어야 할 댐에는 갈라진 땅과 버려진 중기가 나뒹군다. 한마디로 폐허 그 자체이다. 여기에 들어간 건설 노동자들의 노동의 가치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노동이 자기 실현을 위한 목적이 되지 않았을 때, 예를 들면 히로뽕이나 원자탄을 만든 노동력은 효율성과 능률 말고는 아무런 가치도 남지 않는다. 평화의 댐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수공을 막기 위한 댐이므로 여느 댐과 다른 구조를 갖는다. 수문대신 배수구를 두어 물이 빠져나가게 하는 구조이다. 그러나 가뭄에서도 강밑으로 흐르는 강의 맥은 배수구의 높이도 넘지 못하고 단절되어 있다. 평화의 댐은 신성한 노동의 가치를 막았고, 자연의 순환을 막았으며, 통일을 위한 평화 전신의 비약을 막았다.
주인의 눈을 상실한 노동과 환경과 평화의 끝을 이곳 평화의 댐에서 본다. 냉전의 끝과 평화공존의 도래를 얘기하는 시대에서 평화의 댐은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화두이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평화논리에는 한결같이 안보비용을 줄이고 경제비용을 늘리려는 의도가 있다. 그것은 제3세계에 안보와 평화의 관성화를 이용한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평화공존시대의 전선은 전쟁과 평화가 아니라 힘의 유지를 위한 평화와, 평화로부터 나오는 힘과의 전선이다. 힘의 유지를 위한 평화는 현대의 것이 아니라 근대의 것이다. 안보전시관인지 양구 군청에서 인지 언뜻 본 거울에 써진 문구가 문득 머리를 스쳐갔다. ‘축 발전’ 어느 거울에나 예외없이 써 있는 ‘발전’의 이념은 봉건을 극복한 근대주의자들이 핵심적인 기획 내용이었다. 그리고 발전 이념은 전세계적으로 공통의 것이 되었다. 근대화의 척도는 그래서 자본주의이건 사회주의이건 발전이 되었다. 발전은 경쟁을 수반해서 극단적일 때는 전쟁이 되었고 발전의이념하에서 평화는 힘의 공백과 균형의 어느 지점에 우연으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근대적 선진국이 평화로부터 나오는 힘이 아니라 힘의 유지를 위한 평화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은 근대국가들의 숙명인 것이다.
다시 평화의 댐 밑에 서서 저 공룡같은 덩치의 댐을 본다. 이 댐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예 폭파할 수도 있고 지금처럼 황폐화 시켜가는 것도 방법이리라. 그러나 그것은 수단으로서의 평화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속에 스며진 노동과 순수한 평화의지와 통일정신까지 부정하는 것이다. 안보의 댐은 평화의 댐이 되어야 하고 안보전시관은 평화전시관이 되어야 한다.
세계사가 평화의 댐 앞에선 우리 민족에게 요구하는 과제이다. 그러나 어떻게….
목적으로서의 평화 ― 해안면분지
이전에 민족건강회에서 부황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소주잔 모양의 둥근 부황기를 아픈 부위에 대고 공기를 빼 진공상태를 만들면 살거죽이 튀어 오라오면서 살갗 아래의 좋지 않은 몸의 찌꺼기가 피멍과 함께 뽑아져 올라 온다. 부황요법이 수술과 다른 점은 수술이 살을 도려내 당장의 치료에 즉효한 반면 부작용을 감당키 만만치 않은 점이고 부황은 당장의 치료에선 효과를 보기 어려우나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환부가 전체적으로 기능을 회복케 하여 제힘으로 극복케 하는데 있다. 수술이 대립과 투쟁의 원리라면 부황은 화쟁과 원융의 원리이다.
해안면의 분지는 둥근접시처럼 움푹 들어간 모습으로하여 6.25에 참전했던 미군들에 의해 펀치볼이라는 이름을 얻어 그 이름이 더 유명해진 곳이다. 펀치라는 칵테일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이 작명은 피어린 전투격전지를 상징하기엔 지나치게 감각적이어서 탈현대적인 가벼움이 느껴진다. 만일 우리가 뭔가 모양을 연상해서 이름을 붙여보라고 한다면 부황분지라는 이름을 권하고 싶다.
어쨌든 평화의 댐을 지나 반대편으로 계속 달리면 군부대검문소를 통과해 을지 전망대 가는 길에 이곳 해안면 분지를 거치게 된다. 분지는 산이나 구릉 등에 의해 둘러싸인 지형을 말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형이 분지이다. 그러나 이곳 분지는 그릇처럼 움푹패인 모습으로하여 묘한 느낌을 전해 준다. 이런 모양의 분지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원래 우리 국토의 대부분을 덮고 있는 변성암(수많은 지각운동에 의해 여러 가지 성질로 변화된 암석으로 우리 국토의 땅의 역사가 유장하고 복잡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을 마그마가 뚫고 올라와 화강암으로 굳어진다. 그런데 화강암질은 침식에 약하므로 바깥쪽으로 밀린 변성암에 비해 빠른 속도로 침식되어 가운데 있는 화강암지대가 움푹 패이게 된 것이다. 도솔산 고개나 반대편 을지전망대의 흙과 분지 안의 동네흙을 만져보면 서로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된다.
들판 위의 산이 아니라 산위의 들판인 해안 분지가 담고 있는 하늘과 바람은 남과 북의 하늘과 바람이다. 우리는 평화의 댐에서 단절된 화두를 풀 실마리를 잡게 된다. 수단으로서의 평화가 아닌 목적으로서의 평화란 무엇을 말함인가? 수많은 대립과 투쟁의 목적은 자기 본성을 확인하고 유지하는데 있으며 본성이 온전히 본성으로 발현되는 상태 그것이 평화의 상태이다. 해안면 분지는 자연의 법칙으로 보면 오랜기간 형성된 단단한 변성암과 폭발적이지만 침식에 약한 화강암의 서로 다른 본성이 자기의 본성을 온전히 드러내면서도 널리 화합하고 융통하여 하나의 원만한 이치에 도달한 상태, 그것이 또한 평화의 상태다.
평화의 댐에서 던져진 세계사적 화두를 두고 역사가 시작되는 땅. 이 분지에 서서 두 사람이 인물로부터 법고창신을 생각한다.
한 사람은 원효이고 또한 사람은 조선조 호남유학의 대가 기정진이다. 원효는 화쟁사상을 기정진은 원융사상을 우리 우리에게 남겼다. 원효의 시대는 중국의 불교이론이 물밀 듯이 수입되던 시기였고 그에 못지 않게 여러 당파가 만들어져 대립 논쟁하던 때였다. 원효는 이를 통일하기 이해 당시 모든 불교이론을 전체적 입장에서 이해하여 언뜻 보기에 대립적이고 모순되는 여러 이론들의 각각의 가치를 밝혔다. 서로 달라 보이는 모든 것도 일심으로부터 비롯되므로 결국 하나의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말뜻을 올바로 이해하고 대화 태도에서 자기의 집착을 버리는 태도를 가지면 대립적인 다툼을 지양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화쟁사상이다. 그에 비해 기정진은 현상과 본질이 둘이 아닌 하나의 원리 즉 일리에 근거하고 있다고 보고 수많은 다양성과 복잡성이 융통성있게 조화되어 하나로 일치된다는 원융사상을 편다. 화쟁과 원융은 평화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화쟁과 원융의 뿌리가 일심과 일리라는데 있다. 평화의 궁극적이고 유일한 동력은 하나로부터 비롯된다.
수단으로서의 평화와 목적으로서의 평화의 기준점도 하나이다.
바로 주인의 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