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와 군산복합체(모건-록펠러연합) 2011/10/09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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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와 군산복합체(모건-록펠러연합)

<분석2> 68초목통제계획최종보고서 관련

2011년 08월 08일 (월) 00:13:22 이시우 siwoophoto@hanmail.net

이시우 (사진가)

이시우 사진가가 고엽제문제와 관련된 미육군성의 보관문서인 ‘68년도 초목통제계획 최종보고서’를 지난주 네 차례에 걸쳐 <통일뉴스>에 번역한 바 있다. 당시 밝혔듯이 필자는 이에 근거해서, 초목통제보고서에 대한 분석을 포함해 고엽제 관련 글을 수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 주

1967년 9월 19일 국방성은 다우케미컬사와 연구계약을 맺었다. 그 내용은 다양한 제초제의 알갱이혼합물을 준비하고, 특정 식물영역의 통제를 위해 다양한 초목의 상태에서 그것들을 실험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미시시피 그린빌(Greenville) 등지에서 시행된 이 실험에 사용된 화학제는 피클로렘(Picloram)(주1), 브로마실(bromacil)(주2), 오렌지제(Agent Orange) 등이다. 다음 해인 1968년 4월 15일에는 피클로렘과 브로마실 두 종류만을 실험했다.(주3)

흥미로운 것은 1968년 7월 15일 포트 디트릭의 브라운(Brown) 박사, 보이어(Boyer) 박사 그리고 LT윌슨(Wilson)이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실험한 제초제 중에 브로마실이 있다는 점이다. 이 때 사용된 화학제는 맹독성 고엽제이기보다는 브로마실, 탄덱스, 유록스 같은 일반 제초제들이었다.(주4) 어찌 보면 포트 디트릭이 다우케미컬의 실험을 대신해주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제초제는 토양마다 반감기(주5)나 제초효과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지역별 실험을 행한다. 예를 들면 몬산토회사(Monsanto Company)의 제초제 라운드업(Roundup)을 토양에 살포했을 때 이 제초제의 반감기는 텍사스 주에서는 3일, 아이오와주에서 141일(주6), 스웨덴 삼림토양에서는 1-3년으로 다양하다.(주7) 제조회사인 다우케미컬의 입장에서는 포트 디트릭의 실험으로 한국토양에 맞는 실험자료가 확보된 셈이다. 그런데 1992년 현재 브로마실의 제조회사는 의외로 다우케미컬이 아니라 듀폰농산(DuPont Agricultural Products)이다.(주8)

한편, 이들이 실험한 또다른 제초제인 유록스 22는 Allied Chemical and Dye Corporation에서 생산한 일반 제초제인데 뒤에 유록스22의 합성물은 DuPont(주9)에 의해 생산된 제초제 모뉴론이 된다. 모뉴론은 심각한 독성이 있어 침울해지거나 혼수상태가 되는 선행증상과 함께 1일에서 3일 안에 죽음에 이르게 한다.(주10) 유록스 자체는 독성이 약하지만 모뉴론을 만들 수 있는 기본재료란 점에서 주목된다.

이처럼 1968년 포트 디트릭이 한국 비무장지대에서 실험한 브로마실과 모뉴론은 모두 듀폰가의 계열사들에서 생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듀폰은 미국 최대의 화학회사이자 군수업체중 하나이다.

다우케미컬과 몬산토

1967년 당시 다우케미컬에서 연구하던 브로마실이 후에 듀폰으로 넘어간 과정은 어떠한가? 1930년 다우케미컬의 매출액이 1천5백만 달러에 이르는 성공을 거두자 화학업계 1위의 듀폰이 이에 주목한다. 듀폰은 다우케미컬의 주식가격을 급락시키고 주식 매매 중에 철수함으로써 다우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주11) 그러나 화학업계 최고기업이던 듀폰은 1996년 결국 다우와 공동으로 벤처사업을 시작하면서 협력관계를 만들었다.(주12) 그 과정에서 브로마실의 제조사가 듀폰으로 바뀐 것이다. 한편, 듀폰은 모건그룹의 지배하에 있는 기업이다.

1차대전 개전 반년 뒤인 1915년 1월에 영국정부가, 이어서 5월에는 프랑스정부가 병기구매 대리인으로 미국의 모건상사를 정하고 전권을 위임했다. 이때 잭 모건은 윌슨의 중립정책을 격렬하게 비난하고 미국도 참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군수산업체를 총동원해 유럽에 계속 무기를 공급했다. 이때 모건이 선택한 병기 메이커가 듀폰이었다. 듀폰은 모건의 지시에 따라 미국 전역에 공장을 세우고 화약류의 대량생산에 돌입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참전을 호소하였고 1917년 미국은 참전한다. 그러자 듀폰의 공장은 연합군의 거의 모든 탄약을 생산하는 병기고로 탈바꿈하였다. 듀폰의 생산량은 전쟁 전에 비해 무려 26배나 증가했다. 1917년 이 회사는 곧장 미국 제2위의 자동차 회사인 제너널모터스GM을 인수했다.(주13) 다우는 이러한 모건계 듀폰과 경쟁 협력하며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던 기업이다.

한편 또 다른 고엽제제조사인 몬산토(Monsanto Company)는 록펠러가의 지배하에 있는 기업임이 쉽게 확인된다.(주14) 1970년대에 몬산토사가 특허권을 가지고 판매한 라운드업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제초제로 미국 농업에서 연간 3,900만-4,100만kg이 사용된다. 일부 작물은 이 제초제에 저항성을 가진 유전자 기술로 만들어졌다. 콩은 첫 번째 유전자조작 작물이다. 저항성을 가진 종자와 제초제의 접합은 1990년대 후반에 종자와 화학회사의 합병을 유도했고, 몬산토는 제초제농약회사에서 종자회사로 확장되었다.(주15) 록펠러 재단은 1941년 멕시코정부를 안정화시키고 록펠러가의 투자를 막기 위한 공산주의자들의 침투를 막기 위한 소맥증산 프로그램을 시작하였고, 1956년에는 인도에서 공산주의이념을 해독시켜야 하는 절박한 지정학적 요구에 의해 이 프로그램을 다시 적용시키며 세계화 된 녹색혁명(Green Revolution)구호를 만들어 냈다. 록펠러재단의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의 최선두에 있는 기업이 몬산토이다.(주16)

방위생산법

한국전쟁 와중이던 1950년 9월8일 방위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주17)이 제정됨으로써 군수산업의 법적 기반이 완성된다. 소련의 스푸트니크위성 발사가 성공하자 미국은 1958년 2월 국방부 산하에 선진연구사업국(ARPA: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을 창설한다.(주18) 그리고 이 사업국은 여러 프로젝트 중 대반란전프로젝트(Project Agile)에 의해 화학무기개발사업을 추진하였다. 1953년 한국정전과 함께 중단되었던 생화학전프로젝트가 일부 다시 부활한 것은 이때이다. 그리고 다우케미컬과 몬산토를 비롯한 7개 화학회사와 고엽제를 포함한 제초제 공급 계약을 맺는다.(주19)

선진연구사업국(ARPA)의 총 책임자가 이 모든 것을 결정했기에 그가 누구인가를 알아보는 것은 중요하다. ARPA의 초대국장은 로이 W. 존슨(Roy W. Johnson)이다. 그는 제너럴일렉트릭(GE)의 미국지배인이자 부사장이었다.(주20) 미국의 5대 군수메이커로 록히드, 제너럴다이나믹스, 맥도널 더글러스,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스, 그리고 GE를 꼽는다. 앞의 4개회사와 GE의 순이익 총계는 4대 6이다. 4개사가 4인데 비해 1개사가 6인 셈이다. 즉 GE의 이익은 타사의 6배가 된다. 군수산업의 60%를 GE가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주21) 따라서 GE의 부사장이 ARPA의 국장이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편 GE는 모건가가 지배하는 기업이다. 세계최대의 양대 자본가 가문인 록펠러가와 모건가의 그늘에서 고엽제가 잉태된 셈이다. 그러나 경제적 지배력만으로 국가정책을 수월하게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한국전쟁 정전과 함께 철회되기 전까지의 세균전 추진역사를 보면 정·재계연합세력의 완성에 의해서만 정책에 대한 지배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주22)

정·재계연합

생물학전쟁계획과 관련하여 내부세력으로부터 나온 가치 있는 정보는 생물학전부대 특별고문인 조지 W. 머크(George W. Merck)가 전쟁부장관 스팀슨(Henry Stimson)에게 보낸 ‘생물학전 분야에서의 미군의 활동(Activities of the United States in the Field of Biological Warfare)’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이다.(주23) 제약업계의 제국으로 군림했던 머크가의 대표 조지 머크는 록펠러에게 매어있는 사람이었다.(주24) 한편 1941년 록펠러재단의 외교관계위원회 회원이기도 했던 전쟁장관 스팀슨은 국립과학아카데미(NSA: National Academy of Sciences)를 지배하는 록펠러에게 생물학무기의 가능성을 조사하는 민간전쟁연구위원회(WRS: War Research Service)를 만들도록 요청했다.(주25) 머크는 1942년 3월 창설된 WRS의 위원장으로 임명되었고, 생물학전 작업을 총괄·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1943년 4월 미육군생물학전연구소가 메릴랜드 포트 디트릭의 설립과 함께 세워진다.(주26)

머크는 전쟁성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세균무기는 개발이나 사용에 있어 특별히 도덕적 문제를 불러일으킬 이유가 없는 단순한 또 다른 무기의 일종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세균무기로 전쟁범위를 확대하는 것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떠보았다. 이와 함께 생물학전 연구가 인류에게 보건, 농업, 산업 및 기초과학 분야에서 부수적인 혜택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주27)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이 ‘부수적인 혜택’이 더 중요한 것이었을 것이다. 실제 이들 기업이 전쟁특수를 통해 천문학적 자본의 축적을 이루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50년대 10년간 원·수폭무기 개발을 위해 237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었는데 이 돈은 고스란히 모건가와 록펠러가의 기업으로 흘러들어갔다.(주28) 그리고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퍼스트내셔널시티은행 부행장으로 출세한 순수 모건인 스나이더 재무장관이었다. 1951년 당시 원·수폭 플랜트는 이미 모건가의 US스틸과 GM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자산으로 성장한 상태였다.

한편 1952년 한 해만 미국은 생물학전 프로그램에 5억 달러를 집행했다.(주29) 비교하자면 1차대전 중 모건상사가 거둔 연간 순익이 5억 달러였다. 이 금액에 전쟁 기간 5년을 곱하면 US스틸을 또 하나 설립하고 나아가 GM을 두 개나 지배할 수 있는 금괴량과 맞먹는다.(주30) 생물학전프로그램은 전시기준으로는 그다지 많지 않은 25만 달러의 예산으로 처음 시작했으나 곧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전시과학 프로젝트 중 하나로 성장했다. 생물학전프로그램의 규모는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해튼프로젝트에 이어 두 번째였다. 이 프로그램에는 2차대전이 끝나갈 즈음에는 약 4천명의 인력이 투입돼 있었다.(주31)

딘 러스크

록펠러나 모건가문의 지배하에 있는 기업이라 할지라도 정부를 움직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정부안에 이들의 이권을 챙겨주는 끈이 존재하지 않으면 말이다. ‘68초목통제계획 최종보고서’에 의하면 고엽작전 승인주체는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딘 러스크이다. 실험이 끝난 뒤 작성된 평가보고서는 국무장관승인을 다음과 같이 권고하고 있다.

‘국제적인 반발을 초래할 비무장지대에서의 고엽제사용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이것이 지속적인 프로그램이 되기 위해서는 국무성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 더구나 비무장지대 내에서의 사용을 생각한다면 국무성승인이 요구되는 것은 분명하다.’(주32)

고엽제에 대한 작전통제권의 행사인 실행명령(Excutive Order)을 발표하는 주체는 찰스 본스틸 유엔사령관 겸 미8군사령관이지만 이러한 명령과 지시는 반드시 외교적 검토와 승인을 얻은 뒤에나 가능한 것이었다. 이는 고엽제작전이 단순히 전술적(tactical) 사안이 아니라 작전차원(operational)을 넘어 전략차원(strategic)의 문제임을 암시한다. 예를 들면 고엽제살포승인은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사령관이 대통령이나 국무장관의 승인을 필요로 했던 3.8선 이북으로의 북진문제나 북한점령시 통치문제 같은 전략적 사안이었다. 여기서 비무장지대고엽제작전을 최종 승인한 국무장관 딘 러스크의 이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주33)

딘 러스크는 찰스 본스틸 유엔사령관과 함께 우리 역사책에 이미 등장했던 인물이다. 바로 해방과 함께 38선을 그은 두 명의 군인이 바로 이들이다. 1945년 38선을 획정한 러스크는 한국전쟁 발발을 타전한 주한미대사 무초의 전문내용을 제일 먼저 보고받았으며 미국의 대응책을 마련하고 지상군 파견을 결정한 중요한 심야회의에 모두 참석한 유일한 인물이었다.(주34) 무초의 전문에서는 전면전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을 신중하게 유보하고 있었지만(주35) 러스크를 통해 애치슨 국무장관에게 보고되었을 때 미국 정부는 전면전임을 의심치 않고 바로 대응해 들어감으로써 한국전쟁은 국제전쟁으로 비화되었다.(주36)

한편 러스크는 국무성의 부차관보 신분이었음에도 록펠러재단의 이사가 된다. 1950년부터 1961년까지, 즉 그가 국무장관이 되기 직전까지 록펠러 이사직은 유지되었으며 1952년에는 록펠러재단의 대표로 승진한다.(주37) 또한 59년에는 록펠러재단의 대표직에 있으면서 이탈리아 벨라지오센타의 자산을 인수했다.(주38) 록펠러가의 기업인 몬산토와 고엽제계약을 맺고, 여러 이유로 거부되었던 한국 비무장지대에서의 고엽제살포의 최종승인을 한 록펠러 이사 출신의 국무장관의 존재를 염두에 두면, 딘 러스크가 미국정부의 외교정책수장으로서 누구를 위해 봉사했을 지를 추측케 한다.

군대화된 경제

트루만은 1943년 3월에 행한 의외로 세인의 주목을 끌지 못했던 한 연설 중에서 자유는 평화보다 중요하다는 점과 자유는 ‘자유기업’의 세계적인 보급에 의해서만 보장 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그리고 트루만에 의하면 자유기업의 적은 ‘군대화된 경제’였다.(주39)

한편, 존슨 대통령의 베트남참전을 의회에서 주도했다가 후에 반전주의로 돌아선 풀브라이트 상원의원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괴롭지 않은 생활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수백만명의 미국인들이 ‘전쟁과 결부된 경제’ 속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 이러한 이익은 일단 손에 넣기만 하면 쉽게 손을 뗄 수가 없다.”(주40)

트루만이 염려했던 군대화된 경제에 위협받는 자유주의는 불과 10년도 되지 않아 미국을 위협하는 현실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1966년 현재, 국방성만 하더라도 66,000명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고용하고 있었다.(주41) 풀브라이트 상원의원의 말에 의하면 군사비 지출은 “미국노동력의 10%이상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생계를 지탱하고 있다. 2만 2천여명의 1차 계약업자와 10만명의 하청계약업자가 그들 일의 상당량을 펜타곤에 의존하고 있다.”(주42)

제초제 브로마실을 둘러싼 사례에서 보여지듯이 군부와 정·재계가 연합한 군산복합체의 밀착·공생은 전쟁무기의 일종으로 개발된 맹독성고엽제 생산과정과 상업제초제 개발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상업제초제시장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자본의 축적을 가능케하고, 다시 제초제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전자변형식품시장을 만들어 냈으며, 종자를 지배함으로써 미국인과 전 세계인의 식생활을 지배하기에 이른 과정을 잘 보여준다. 트루만이 우려하며 예견했던 ‘군대화된 경제’의 표본은 다름 아닌 미국이었던 것이다.

법조계와 학계의 연합

제초제 제조회사들은 그들 상품의 안전성에 대하여 대담한 거짓말을 하거나 또는 현혹적인 주장을 하였다. 1996년 뉴욕 법무장관인 바코(Dennis Vacco)는 몬산토의 제초제 라운드업(Roundup)이 식탁용 소금보다 더 안전하고 포유동물, 새, 그리고 어류에 “실제적으로 무독성”을 가졌다고 오도하는 주장에 대하여 항의하였다.(주43) 라운드업은 독성을 가지며, 결과적으로 85-200ml만 체내에 흡수되어도 1시간 안에 사망에 이르게 된다.(주44) 몬산토는 바코(Vacco)의 압력을 받고서야 몬산토회사 광고를 바꾸었고, 결국 자신들의 죄를 인정했다.(주45) 2009년의 일이다. 몬산토의 제초제 라운드업이 문제화 된 해가 96년이므로 문제 있음을 인정받는데 16년 이상이나 걸린 셈이다. 시간이 걸렸지만 라운드업의 사례는 그래도 진실이 해명되었다는 점에서 승리였다. 그러나 고엽제는 아직도 학계에서 논쟁중이고 그 사이 법조계는 고엽제피해자에게 패소를 판결하고 있다.

과거 고엽제 생산공장에서의 사고는 베트남전 살포이전에 고엽제의 유독성이 증명된 사건이었다. 앨빈 영의 보고서에서 확인된 사고 중 미국에서 일어난 사고만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49년 웨스트버지니아의 몬산토(Monsanto)공장에서 고엽제 생산 중 폭발사고로 228명이 피해를 입었다. 이들의 증상은 4년 동안 관찰되었다. 1956년에는 뉴저지주 다이아몬드 알칼라이(Diamond Alkalai)공장과 후커(Hooker)공장에서, 60년에는 다이아몬드 셈록(Diamond Shamrock)공장에서, 1964년에는 미시간주 다우케미컬(Dow Chemical)공장에서 사고가 발생했고, 고엽제사용을 중단한 이후인 75년 켄사스주 톰슨-헤이워드(Thompson-Hayward)공장에서 또다시 사고가 발생했다.(주46) 이미 고엽제 사고를 통하여 그 심각한 유독성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전쟁 당시 고엽제 살포명령을 받은 미군들은 어떤 주의조치도 듣지 못하였고 결국 고엽제의 유독성에 노출되고 말았다.(주47)

7월 26일 파주의 캠프 이선알렌과 캠프 피터슨 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필 스튜어트 씨는 “중대장인 내게도 미 육군은 제초제가 안전하고 마실 수 있고, 양치질 할 수 있고, 목욕할 수 있다”고까지 거짓말을 했다고 밝혔다.(주48) 1967년 4월 7일 미공군 스탠리 루쯔 대령(Colonel Stanley Lutz, Jr, USAF)의 공식질의에 대해 미국 정부기관인 독물학자문센타(Advisory Center on Toxicology)는 “모뉴론이 1일에서 3일 안에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주49)고 공식확인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비무장지대에 고엽제를 살포하는 군인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어떤 변명을 하더라도 이해받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록펠러-모건연합의 지배를 받는 화학회사들이 고의적으로 미군과 한국 베트남국민들을 고엽제의 위험 속으로 떠밀어 넣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그 동안 고엽제와 관련하여 많은 소송이 제기되어 왔다. 수백만 명의 미 참전군인과 그 가족들이 뉴욕주 동부지구 브루클린지방법원에 제기한 집단 소송에서 다우케미컬과 몬산토를 비롯한 7개의 고엽제 제조사들은 1984년 5월 7일에 재판 대신 원고 측과 합의에 의한 해결을 택했다. 이들 세계 굴지의 회사들은 기업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을 줄 것을 우려하여 당시로는 사상 최대액수인 1억 8천만 불을 제시했다. 브루클린지방법원의 잭 와인스타인 (Jack B. Weinstein) 판사에 의하여 제시된 합의안의 내용에 따라 조성된 기금은 모두 지급이 되었다. 이들 제조사들은 고엽제 관련 피해 사례가 당시 전쟁에 관여했던 정부에 의해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주50)

회사들이 경제적 책임을 부담하는 것으로 미국정부는 미국과 베트남 한국 등의 고엽제 피해자들에 대한 면죄부를 쥔 셈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2009년 3월 미국 대법원은, 고엽제 제조사들은 정부의 지시를 수행하는 정부계약자였다는 점을 근거로 고엽제 문제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불허하는 만장일치의 하급심법원의 판결을 지지하였다. 제조사들과 미국정부는 이로서 고엽제에 관한 중요한 법률적 쟁점은 해결되었다는 태도를 사실상 취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미 약품연구소는 2002년 보고서에서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의 자녀들이 당시 미군에 의해 살포된 고엽제 때문에 암과 백혈병 등 불치병에 걸린다는 주장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왜 의료사고에서처럼 피해자가 피해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이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도록 책임을 지울 수는 없는 것일까? 모건-록펠러 거대독점자본연합체의 이사나 중역들이 행정부와 사법부, 정계와 군대의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전쟁범죄자로 만들 방법을 스스로 택하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수백만 명의 피해자가 고통에 신음하는데도 그토록 뛰어난 현대과학은 고엽제의 피해를 입증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하여 피해자는 있는데 피해는 없는 것이다. 과학계의 주장은 그대로 법적 판단의 기준이 되고 정부는 법조계의 판결로 면죄부를 쥔다. 진실은폐와 책임회피를 위한 놀라운 카르텔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한국정부가 보인 태도는 더욱 비겁하고 참담하다. 분명 한미 간 합의에 의해 DMZ에 고엽제를 살포하고서도 한국 정부는 1999년 미국의 비밀문건이 해제될 때까지 침묵, 은폐하고 있었다. 마치 그때서야 처음 알게 된 사실인 것처럼 다음 해인 2000년에 정부는 피해자들의 후유장애에 대한 보상 규정을 만들었다.

사법부의 문턱은 행정부보다 더 높았다. 서울지법 민사합의13부는 2002년 베트남전 고엽제 피해자 1만7,000여명이 다우케미컬 등 미국의 고엽제 제조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패소를 판결했다. 고엽제에 함유된 다이옥신이 원고들의 질병을 일으켰다는 일반적 인과관계와 원고 개개인이 실제로 질병을 일으킬 만큼 충분히 고엽제에 노출됐다는 개별적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미국법원과 같은 취지였다. 어쩌면 이 판결은 재심이 필요하게 될 지도 모른다.

생화학전계획시기로부터 미국의 재계와 정계 법조계 과학계와 군대까지 혼연일치가 되어 추진된 고엽제의 팀워크는 고엽제 피해자들의 저항을 무력화시키는데도 놀라운 일체감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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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주1) 피크로람은 일반적인 수목·식물의 방제를 위해 사용되는 침투성 제초제로 Tordon과 Grazon이라는 상품명으로 판매된다. 또한 넓은 범위의 광엽 잡초를 방제하지만 대부분의 벼과 잡초는 저항성을 가진다. 피크로람은 잎에 살포되거나 식물체에 주입되거나, 자른 표면에 도포하거나, 뿌리 쪽으로 흘러 들어가도록 식물체의 기부에 부어서 사용된다. 잎, 줄기나 뿌리로 흡수되면 이 제초제는 식물체 전체로 이동한다. 베트남 전쟁 동안, Agent Orange(2,4,5-T와 2,4-D)로 처리해서 살아남은 식물체에 Agent White로 알려진 피크로람과 2,4-D의 혼합물이 살포되었다. 다우케미컬 소유의 회사인 다우 어그리사이언스사(Dow AgroSciences)에서는 피크로람 혼합물인 Tordon 101은 동물과 곤충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지만 쥐에 대한 연구에서 피크로람의 강한 발암 활성이 증명되었다.

(주2) 브로마실(bromacil)은 Hyvar X라는 상품명으로 판매되는 농약으로 광합성을 저해하여 식물을 고사시킨다. 지하수오염가능성도 높다. 한국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2001년 품목의 재등록에서 제외되어 생산이 중지된 농약이다.

(주3) ‘Agent Orange: Herbicide Tests and Storage in the U.S’ http://www.publichealth.va.gov/exposures/agentorange/outside_vietnam_usa.asp(2011.5.30 검색)

(주4) Edward A. J. Lewis LT, Col C Deputy Cml Advisor, Summary 1968 Vegetation Control Tests, Department of the Army U.S. Army Advisory Group, Korea Office of the Senior Chemical Advisor APO San Francisco 96302, Declassify on 30 Dec 1975, p.119 브로마실, 탄넥스, 유록스22 등이 실험에 사용되었는데 이중 탄덱스(Tandex)는 한국에서는 카부틸(karbutyl)이란 상품명으로 고시되었다. 비농경지 잡초 방제용으로 1년생 및 다년생 잡초뿐만 아니라 관목류까지도 고사시키는 비선택성 제초제이다.

(주5) 반감기(half-lives), 어떤 것의 값이 시간에 따라 줄어드는 양의 반감기는 초기 값의 절반으로 그 양이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주6) www.Mindfully.org, “Glyphosate Factsheet (part 1 of 2) Caroline Cox/Journal of Pesticide Reform v.108,n.3 Fall98 rev. Oct00″ (2010.08.22 검색)

(주7) “Influence of climatic and edaphic factors on persistence of glyphosate and 2,4-D in forest soils.(1989), Labmeeting (2010.08.22 검색)

(주8) DuPont Agricultural Products, 1990(Oct. 4). Material Safety Data Sheet for Bromacil Technical. DuPont, Registration and Regulatory Affaire, Wilmington, DE

(주9) 정확히 말하면 모뉴론 제조사는 듀폰가문의 핵심회사인 E.I. DuPont de Nemours and Company이다. Eleuthère Irénée duPont de Nemours는 듀폰가의 핵심인물 중 하나로 그의 회사는 처음 흑색화약생산업체로 출발하여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http://www2.dupont.com/Heritage/en_US/1948_dupont/1948_indepth.html

(주10) Assembly of Life Sciences(U.S), Advisory Center on Toxicology, National Research Council(U.S), Division of Chemistry and Chemical Technology, Toxicological reports 1967, (National Academies, 1967), p.34. 이 기록은 1967년 4월 7일 미공군 스탠리 루쯔대령(Colonel Stanley Lutz, Jr, USAF, MC Chief, Military Public Health and Occupational Medicine Section)의 유록스22의 유독성에 대한 답변요청에 따라 독물학자문센타(Advisory Center on Toxicology) 의장 랄프 웬즈(Ralph C. Wands)가 답변한 기록이다. 랄프는 유록스22 제초제가 일종의 소금이므로 체내에서 분리될 정도로 적당한 독성만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ibid, pp.32-34

(주11) 다우케미컬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http://www.fundinguniverse.com/company-histories/The-Dow-Chemical-Company-Company-History.html

(주12) 다우는 1999년에 유니온 카바이드를 인수해 듀폰을 대신하여 세계최대 화학회사가 되었고 2008년 세계최고 화학무기 제조업체 Rohm and Haas를 인수했다.

(주13) 廣瀨 隆 Hirose Takashi, 億萬長者はハリウッドな殺す (東京: 講談社, 1986)/이규원 역, 제1권력, (서울: 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10, 1쇄), pp.115-117. 한편 다우는 1999년 유니온 카바이드를 인수하는데 유니온카바이드는 록펠러지배하의 기업이다. http://www.fundinguniverse.com/company-histories/The-Dow-Chemical-Company-Company-History.html

(주14) Gary Allen, The Rockefeller File. ’76 Press. Seal Beach, CA. 1977

(주15) Molecular basis for the herbicide resistance of Roundup Ready crops, T. Funke et al., PNAS2006 103:13010-13015 참조

(주16) ‘The story of the Foundation and the Green Revolution’, Mark Dowie, American Foundations: An Investigative History, (Cambridge, Massachusetts: MIT Press, 2001), pp.105-140 참조

(주17) Public Law 81-774

(주18) ARPA는 미국공법 85-325(Public Law 85-325)와 국방성 명령 5105.41에 근거하여 창설되었다. http://www.bibliotecapleyades.net/sociopolitica/sociopol_DARPA01.htm

(주19) 당시의 7개 고엽제 제조회사는 다이아몬드 샴록 (Diamond Shamrock Corporation), 다우 케미컬 컴퍼니 (Dow Chemical Company), 헤르클레스 (Hercules, Inc.), T-H 농업 및 영양 회사 (T-H Agricultural & Nutrition Company), 톰슨 케미컬 (Thopson Chemicals Corporation), 유니로열 (Uniroyal Inc.), 몬산토 (Monsanto Companty)등이다. http://www.monsantokorea.com/record/agent_orange.aspDefense Production Act

(주20) http://www.astronautix.com/astros/johonroy.htm

(주21) 廣瀨 隆 Hirose Takashi, 億萬長者はハリウッドな殺す (東京: 講談社, 1986)/이규원 역, 제1권력, (서울: 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10, 1쇄), p.480

(주22) 세균전을 전후 전략에 있어 중요한 위치에 올려놓기 위해 가장 강력하게 밀어붙인 제휴세력에는 화학부대와 기업, 과학계, 학계 그리고 1942년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처음부터 관여한 정부의 이해관계자등이 포함됐다. 1949년 이후 이 제휴세력은 국방부연구개발위원회에 자신들을 대표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Stephen Endicott and Edward Hagerman, The United States and Biological Warfare,(Indiana University Press, 1998)/안치용·박성휴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