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작전은 생화학전인가 아닌가2011/10/09 128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5536
고엽제작전은 생화학전인가 아닌가?
<분석1> 68초목통제계획최종보고서
2011년 08월 01일 (월) 18:00:18 이시우 siwoophoto@hanmail.net
이시우 (사진가)
이시우 사진가가 고엽제문제와 관련된 미육군성의 보관문서인 ‘68년도 초목통제계획 최종보고서’를 지난주 네 차례에 걸쳐 <통일뉴스>에 번역한 바 있다. 당시 밝혔듯이 필자는 이에 근거해서, 초목통제보고서에 대한 분석을 포함해 고엽제 관련 글을 수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 주
고엽제살포가 생화학전의 일환이라는 주장은 베트남전쟁에서 치열한 논쟁거리 중의 하나였다. ‘68년 초목통제계획최종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비무장지대에 고엽제를 살포할 때도 찰스 H. 본스틸(주1) 유엔사령관 겸 미8군사령관은 고엽제 사용이 화학전이나 세균전이라는 비난 선전에 노출될 것을 가장 중요한 우려사항으로 지적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북에서는 고엽제 사용에 대한 아무런 비난 성명이 나오지 않았고 이것이 고엽제를 사용한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로 작용했다.(주2)
북한이 고엽제사용을 인지했다는 징조가 보고된 적이 없고, 북한이 정전협정위반에 대해 유엔사를 비난하거나 또는 예상되었던 바 ‘화학전’이나 ‘생물학전’을 사용했다는 비난을 통해 선전의 정치적 수확물을 만들려는 시도가 없다.(주3)
심지어 북이 고엽제 사용에 대해 침묵하는 이유는 북 스스로 고엽제를 사용할 명분을 축적하기 위한 것이라고 유엔사는 추측하기까지 하였다.
북한이 비무장지대안이나 근처에서 초목통제프로그램을 사용할 것으로 추측되었는데 그것은 유엔사에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부담을 지우려는 데 기반하든지, 아마도 베트남에서의 고엽제사용으로 초래되고 있는 북베트남에 의한 선전, 즉 고엽제 사용을 화학전이나 세균전이라고 덮어씌우는 것과 비슷한 부담지우기에 기반하여 그렇게 하리라는 것이었다.(주4)
한국에서의 고엽제 살포와 세균전의 관계는 베트남에서와 같이 세계적인 논란을 일으키진 않았으나 지금까지도 여전히 논쟁중인 주제이다. 과연 고엽작전은 세균전 또는 생화학전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우선 한국전쟁 당시 세균전을 실시했는지 여부 자체가 논쟁이었다. 그러나 세균실험을 실시하라는 명령문서가 최근 발굴됨으로써 세균전연구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일본의 모리 마사타카(Mori Masataka) 교수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입수한 문서를 2010년 4월 17일(현지시간)의 알자지라방송 심층 보도프로그램 <피플 파워>(People & Power)를 통해 폭로했다.
1951년 9월 21일 작성된 이 극비문서에는 “미 합참이 한반도 작전 상황아래 특정 세균전 병원체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를 실증하기 위해 대규모 현장 실험을 포함한 더 강력한 실험을 실시할 것을 명령했다”고 기록돼 있다.(주5) 이 분야 연구자들이 오랫동안 찾아왔던 세균전실험에 대한 명령서가 드디어 발굴된 것이다. 그렇다면 세균전 혹은 생화학전과 고엽제작전은 어떻게 연관되어 있을까?
1. 세균전계획과 고엽제작전
미국의 화학전부대가 생물학전 가능성을 연구했다는 첫 언급은 1924년 9월24일 화학전부대 에지우드병기고의 기계화사단 보고서 No.442에 나온다.(주6) 그리고 1944년 중반 디트릭기지에서 고엽제 효과에 대한 야전시험이 있었다.(주7) 그리고 바로 제초제(2,4,5-T)의 상업적 생산에 들어간다. 즉 제초제의 상업적 생산연도 역시 1944년이다.(주8) 1950년 2월 윌리엄 M. 크리시 준장은 ‘생물학전의 잠재력과 준비태세에 관한 스티븐슨위원회’에 출석하여 생물학무기의 전략, 전술, 비밀작전을 촉구했는데(주9), 크리시의 보고서는 숨어있는 적을 노출시키는데 있어 고엽제의 살포가 가지는 효용성을 강조했다.(주10) 크리시의 보고서는 생물학전의 일환으로 고엽제작전이 처음 언급된 보고서이다. 이는 고엽제 작전이 어떤 맥락에서 제기된 것인지를 밝혀주는 중요한 문서이다.
다음으로 생물학무기, 즉 세균의 개발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투발수단이었다. 세균무기의 발사수단은 분사탱크(spray tank)였다. 세균무기의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해군병기 실험실은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연무발생기도 성공적으로 실험을 마쳤다.(주11) 이 무기는 비밀작전 및 무력화 작전에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었지만 전술적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주12) 해군이 개발하려던 세균무기체계의 중심에 해병항공비행전대와 공군이 사용할 다목적 스프레이 탱크가 있었음은 EDO사의 프로젝트와 연관되어 확연해진다. 당시 EDO사는 저공용 스프레이 탱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 탱크는 스탠포드 대학과 아서 D. 리틀(주13), 스티븐슨보고서를 만든 얼 스티븐슨이 사장으로 있던 캠프리지 컨설팅 등이 공동으로 개발했다. 그러나 EDO탱크는 완성이 지연됐고 그 사이 미공군이 자체 연무스프레이 탱크프로그램을 진행시켰다.(주14) 공군은 1952년 10월부터 이 스프레이 탱크를 조달하기 시작했다. 1952년 11월과 12월 사이에 플로리다 이글린(Eglin)공군기지에서 실행된 2,4-D, 2,4,5-T에 대한 살포 실험에서 다음과 같은 노즐이 분사탱크에 사용되었다. Bete Fog Nozzles, Whirl jet Spray Nozzles, Fogjet 1.5F50이 그것이다.(주15) 고엽제가 총탄에 해당한다면 노즐은 총의 강선에 해당할 정도로 노즐 자체가 무기의 일부인 셈이다. 미 공군은 1953년 4월 1일 관련 프로젝트를 완성했다.(주16)
C-123시리즈 비행기(C-123 Provider)들이 고엽제 살포를 위한 특수공중살포비행대로서 1961년 말 베트남에 투입되었다. 고엽제살포를 위한 랜치핸드(Ranch Hand)작전이 시작된 것이다.(주17) 클라크공군기지를 출발한 이들 공급기들은 카고의 격실 안에 1,000갤런(3,785리터)의 분사탱크를 설치하고 날개에 분사파이프(spray bar)를 달아 개조한 비행기였다.(주18) 세균전을 수행했다고 시인한 미공군비행사들의 자술서에 의하면 세균무기 다음으로 중요한 무기는 액체 또는 세균이 섞인 가루를 뿜는 120갤런 용량의 유류탱크처럼 생긴 바로 이 분사탱크였다.(주19) 68초목통제계획최종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에서는 어그리나우틱(AGRINAUTIC)사의 공중살포시스템이 적용되었다.(주20) UH-1시리즈 헬리콥터로부터 발전된 어그리나우틱(AGRINAUTIC) 공중살포시스템의 사용은 더 효과적인 식물반응을 초래하며, 더 적은 살포시간과 지상살포수단에 비해 더 적은 인력지원만을 요구했다. 지상살포 시 7일 걸릴 일을 공중살포시에는 하루에 할 수 있었다.(주21)
분사식 부착장치를 사용한 뒤에는 화학약품을 사용해서 소독해야했다.(주22) 분사탱크의 심각한 오염은 그것이 세균이었건 고엽제였건 심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랜치핸드작전에 참여했던 공군조종사들은 분사탱크 사용 시 비행기내부의 고엽제오염에 치명적으로 노출되어 발병했음을 호소하고 있다. 2011년 올해까지도 소송이 이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1950년대의 계획대로라면 이 분사탱크에서 세균이 살포되었겠지만 60년대는 고엽제로 바뀌었다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고엽제초목관리실험보고서에는 주둔지공병대곤충부(Post Engineer Entomology Service)가 적은 양이긴 하지만 고엽제를 사용하였다는 진술이 등장한다.(주23) 액체스프레이나 젖은 가루 현탁액의 살포능력을 가진 가벼운 휴대용 하이프로타입 펌프분무장치에 대한 요청이 이루어졌다. 실제 보내온 장비는 공병대곤충부서에서 보통 사용하는 표준 가솔린엔진기동 살충제분무기 22개였다. 분무기에 대한 실험작동을 하는 동안 오렌지제와 블루제 분무에 대한 만족함은 충족되었다. 그러나 젖은 가루현탁액분무 능력은 불만족스러웠다. 마지막에 가서 이 문제는 모뉴런텔바보다는 작은 알 모양으로 만든 모뉴론우록스로 대체함으로써 해결되었다.(주24)
곤충부가 고엽제 실험에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곤충에 대한 연구는 세균전계획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였다. 곤충은 세균무기의 공격과 방어 양 측면에서 연구되었으나 살충이나 방충은 이중 세균에 감염된 곤충을 방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살충제와 방충제 도입과 사용에 관한 메커니즘’이라는 제목의 프로젝트 No.465-20-001에 의하면 화학전의 범주에 실상 생물학전이 포함됐었음을 보여준다.(주25)
살충제 작용메커니즘에 관한 정보는 세균에 감염된 곤충의 살포공격과 이에 대한 방어 양쪽에 직접 활용할 수 있다. 465-20-001프로젝트는 방충제와 살충제 개발에 관한 연구이다.(주26)
디트릭 기지의 의무실험실에는 ‘살충제와 쥐약의 생물학적 작용’만 전적으로 연구하는 부서가 있었다.(주27) 의무실험실의 주요활동은 생물학전 발발에 대비하고 보다 현실적으로는 세균감염지역에서 군대를 보호하기 위해 곤충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살충제에 관한 NO.465-20-001프로젝트는 미국정부의 공식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관련 의학과 병원체, 세균무기 개발작업이 밀접하게 조율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주28) 비무장지대의 고엽제 실험에 등장한 공병대곤충부서와 프로젝트No.465-20-001사이의 연관에 주목해 볼일이다.
포트 디트릭
68초목통제계획최종보고서에는 메릴랜드에 있는 디트릭기지가 자주 등장한다. 미육군생화학전 부대로 알려진 디트릭기지는 1943년에 창설되었다. 1943년 창설초기 디트릭기지 내부는 ‘현대화학·물리학·병리학·식물학·통계학·세균학을 다루는 실험실들로 구성되어 있었다.(주29) 또한 세균무기를 터트리거나 사람과 동물을 상대로 연무실험을 할 수 있는 직경 40피트(약12m)의 ‘안개상자’·온실·동물사육장·기계실·소규모 생산공장·검사실 등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복합건물로 이루어졌는데, 이들 건물은 모두 체인과 철조망이 처진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주30) 또 기지 내부에는 미 중앙정보국(CIA)과 연계해 준군사적인 비밀 생물학전 활동을 수행하는 여러 연구부서들로 구성된 특수작전부서도 있었다.
디트릭기지와는 별도로 유타주 ‘더그웨이 무기성능시험장’에 있는 무기실험장은 2백50평방마일의 넓이에 길이 22마일의 도로와 비행기 활주로·주거용 막사·하수구·부패물을 담는 저장탱크·발전소와 전기·증기·물공급 시스템을 갖춘 복합 단지였다.(주31) 이 화학부대는 또 생물학전 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무기공장을 메릴랜드 주 에지우드에서 운영했으며 1952년 이후에는 아칸소 주 파인 블러프에서 운영했다.(주32)
디트릭에서는 1946년부터 51년까지 야전 A, B, C, D, F구역에서 뿌리에 엉켜 있는 흙덩어리가 있는 토양에 직접 혹은 분무방식으로 살포된 식물억제제를 조사하는 실험이 지시되었다.(주33) 식물억제제는 곧 고엽제를 의미한다. 한국전쟁 정전과 함께 생화학전프로그램 예산이 삭감된 가운데 1956년과 57년에는 고엽화와 건조화(식물을 마르게 하는)에 대해 577종류의 합성물질을 동원하여 연구소 내 검사가 이루어졌다. 이것은 포트 디트릭의 생화학전쟁연구소에서 주관했다. 그리고 1961년 8월에서 63년 6월까지 1410가지의 합성물에 대해 고엽제, 건조제, 제초제로서의 효과를 평가하기 위해 그린하우스에서 분무실험이 있었다.(주34)
포트 디트릭이 한국 고엽제 작전에 연루된 기록을 살펴보면 디트릭의 역할이 결정적임을 알 수 있다.
우선 1960년부터 미군사고문단 자체적으로 고엽제실험을 해오던 중 1963년 미1군단(GP)사령관은 감시와 야전상황을 개선하고 초목에 의한 적군의 은폐를 막기 위하여 비무장지대에 제초제를 사용할 것을 유엔군사령부에 제안했다. 연구가능성 여부를 메릴랜드, 포트 디트릭의 미 육군 생물학전연구소(US Army Biological Laboratories)에 요청하였고(주35), 메릴랜드에 위치한 포트 리치(Ritchie)와 포트 미드(Meade)에서 서로 다른 제초제들의 효과를 탐색하기 위한 야전실험이 이루어졌다.(주36)
최종적으로 미육군생물학전연구소에 한국에 사용할 제초제연구 임무가 맡겨졌다. 연구결과 C-123기를 사용한 제초제공중살포가 권고됐다.(주37) 그러나 이것은 현장실사를 거치지 않은 무책임한 권고였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비무장지대에 고정익비행기를 이용한 공중살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후에 현장실사와 실험을 거치면서 비무장지대 남쪽과 민통선사이에 헬리콥터를 이용한 살포로 재조정되었다.
1967년 3월 메릴랜드 포트 디트릭의 미육군생물학전연구소 식물과학연구소 대표가 한국에 방문했다. 그리고 비무장지대 근처, 선택된 지역의 초목에 대해 조사했다. 이 평가에 기초하여 식물과학연구소는 오렌지제와 블루제를 사용할 것과, 한국의 일반 초목과 특정초목을 통제하기 위해 토양에 제초제를 살포할 것을 권고했다. 그리고 1967년 10월에 행한 두 야전실험평가에 더하여 오렌지제와 블루제, 모뉴런의 사용이 대침투작전 물자공급계획(CIGCOREP Plan)에 포함되었다.(주38)
1968년 실험목적으로 메릴랜드 포트 디트릭 식물과학연구소에서 화학제들이 한국으로 보내졌다. 뒤이어 68.7.15 브라운(Brown) 박사와 보이어(Boyer) 박사 그리고 LT윌슨(Wilson)이 포트 디트릭을 출발 한국에 도착했다. 7월 한 달 동안 미2사단 3여단의 실험계획 #1,2,3이 만들어졌고, 현장 방문을 통해 프로그램을 검토했다. 포트 디트릭 미육군 생화학연구단지 내 식물과학연구소의 제임스 브라운 박사(Dr. James W. Brown)의 견해에 의하면 디젤유가 첫 번째로 고엽화를 초래하며 오렌지제보다는 성장을 지체시켰다.(주39)
육상살포작전에서 최적의 미립자 크기를 달성하기 위한 시도에 더해, 부대들에는 고운 안개 속으로 오렌지제를 분무할 것과 잎 위에 붙은 안개를 함유한 공기 중으로 높이 살포하도록 감독할 것이 조언되었다.(주40) 디젤유의 효과에 대한 판단이나 안개에 높이 살포하는 방법의 권유 등은 매우 치밀한 군사과학적 조언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은 7월말 디트릭으로 복귀 후 9월말 다시 한국으로 왔으며 10월초 모든 실험계획이 검토 적용되었다. 포트 디트릭의 고엽작전에 대한 지도적 역할은 이 보고서에서도 재차 강조되었다.
메릴랜드 포트 디트릭 미육군생물학연구소에서 20년 넘게 수행한 연구는 베트남에서의 6년 넘는 기간 동안 성공적인 사용에 의해 확실한 고엽제를 거대규모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확인했다.(주41)
생화학전 조직이 주도한 고엽작전
보고서에 의하면 초목통제에 대한 계획수립책임은 화학장교 참모가 할당되어 있는 미8군사령부안의 참모국보다는 미8군공병대에 위임되었다.(주42) 그러나 기술적 조언과 지원은 미군사고문단의 상급화학고문에 의해 제공되었고 미8군공병대와 핵-화학생물학전 사단작전참모부(Nuclear-CB Division G-3) 화학전고문단(Chemical Advisory Section), 사령부, 미군사고문단 사이에 긴밀하게 노력이 조정되었다.(주43) 작전계획수립 책임만 공병대에게 위임됐을 뿐 실질적인 실무는 핵-생화학전 관련 부서들에 의해 주도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는 핵전이나 화학전, 생물학전 개념이 중요전쟁 개념으로 운용되던 시절이었다.
당시 본스틸 유엔사령관 겸 미8군사령관은 고엽제살포를 인가했고 한국육군부대들과 고엽제 살포에 대해 약정했다. 그 결정은 프로그램 감독과 함께 미군사고문단에 임무부여 되었다. 여기엔 이유가 있었다. BG James H. Batte는 화학군단장교로서 미군사고문단 선임병참고문이었는데 그들은 화학전의 많은 기술분야에서 넓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주44) 미군사고문단 화학고문에겐 프로그램 감독이란 고문기능에 더하여 실행명령에 따른 고엽제 살포 결정권이 부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결정권이 작전통제권인지 전술통제권인지는 분명치 않다. 실행명령발령 시 정보적 성격의 문제들은 미군사고문단 사령부의 선임화학고문을 통해 발표된다.(주45)
그러나 실행명령과 실행지시(명령과 같은 성격을 가짐)는 유엔사령관이 결심하고 P&P사단(P&P Div)과 미8군 작전참모부(G-3)에 의해 발표된다.(주46)
1968년 3월 중순 제초제에 대한 기술적인 정보와 살포수단, 예상되는 결과를 포함하여 초목통제에 대한 포괄적인 브리핑이 있었고, 미1군단사령부와 미2사단화학부대 선임고문, 사령부, 미군사고문단의 핵심대원들이 참석했다. 이 브리핑에서는 미합참(JCS)과 유엔사령관(CINC/UNC)이 지시한 금지와 통제사항을 명확하게 표현했다. 1968년 3월 31일 미8군사령관은 1968년 4월 15일이나 그즈음해서 초목통제프로그램CY68의 실행을 명령했다.(주47) 실행명령주체는 미8군사령관 겸 유엔사령관인 본스틸임이 확인된다.
고엽제와 생화학무기금지협약
1968년 3월 13일 포트 디트릭 산하 유타주 더그웨이 생화학무기실험장에서 생화학실험 후 주변지역 6천 마리의 양이 떼죽음을 당한 사건(주48)과 1969년 오키나와에서 독가스(VX신경가스) 유출로 23명의 미국대원과 1명의 미국 민간인이 피해를 입은 사건(주49)을 계기로 미의회에서는 화학세균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고 상원군사위원회는 치사적 공격용 화학생물학전 무기의 조사개발예산 1,600만 달러를 70회계연도 예산에서 삭감하기에 이르렀다.
1969년 11월 25일 닉슨 미대통령은 미국은 어떤 종류의 세균전쟁도 포기할 것이며 현재 저장된 모든 생물학무기도 파기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인간을 살상하는 화학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제초제, 취루가스, 톡신(Toxin) 등은 이 선언에서 제외되었다.(주50)
이날 미 정부관계자는 보충설명을 통해 “현재 미국이 초원을 태워 적을 수색하는 일과 농작물을 말라비틀어지게 하여 적의 식량공급을 막는데 대량으로 사용하는 제초용 약품은 제네바 의정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말해 고엽제 살포중단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닉슨선언 후 한 달만인 12월 27일 미 과학촉진협회(AAAS)의 화생전위원회 소속 3명의 과학자는 다시 “산모에게 유해한 고엽제사용을 즉각 중지할 것”을 미국방부에 호소했다. 반전파 가수인 여배우 제인 폰다는 고엽제를 몸에 바른 뒤 결국 기형아를 출산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화학무기가 인류의 미래를 망친다고 경고했다.
1970년 2월 닉슨은 거듭 “현재 보유중인 화생무기를 포함한 모든 독소무기를 파괴하고 앞으로 생산도 일절 중지하겠다”고 천명했다. 국제적으론 제네바군축회의에 국내적으론 더욱 격화되는 베트남반전데모에 쫓겨 내놓은 방책이었다. 그리고 그해 12월 닉슨은 고엽제사용도 일절 중지할 것을 베트남 미군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72년 8월에는 미군공병 전문가들이 “한국이나 쿠바에서 게릴라전이나 재래식전쟁이 발발할 경우 고엽제와 제초제를 사용할 것을 미국방부에 건의했다”는 사실이 보도돼 파란을 일으켰다.(주51) 고엽제가 화생전 무기인가 아닌가를 둘러싼 집요한 논쟁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침내 1974년 12월 9일 미대통령은 국가안보결정각서(NSDM: National Security Decision Memorandum)281에서 무기통제감축국 의장이 NSDM279(주52)에 의거하여 제출한 보고서를 승인하였는데 이 보고서는 취루가스와 제초제에 대한 통합보고서의 방향으로 미국정책을 형성한다는 것이 대통령의 입장임을 밝히고 있다.(주53) 1975년 4월 8일 포드 대통령은 전시에 화학적 제초제 외 시위진압제의 사용을 확실히 폐기하라는 실행명령11850에 서명함으로써 비로소 고엽제사용은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주54)
결론
고엽제는 세균전의 일환으로 출발하였고 한국정전과 함께 세균전 프로젝트가 폐기되지 않았다면 더 오랜 기간 적용되고 지속되었을 것이다. 고엽제는 베트남과 한국에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가장 치열한 생화학전 논쟁의 중심에 위치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고엽제작전계획을 세운 책임부대는 공병대였지만 실질적인 실무는 포트 디트릭으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으며 미군사고문단안에 화학전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장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공병대가 훈련, 교육, 배치, 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화학전의 범주에 실상 생물학전이 포함될 수 있음을 고엽제의 역사는 잘 보여준다.
미국은 세계적인 고엽제 논란에 휩싸여 1969년 제네바생화학금지조약에 참여하면서도 끝까지 고엽제는 생화학전쟁의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집요하게 견지해 왔다. 그러나 결국 1975년 포드 대통령의 실행명령으로 고엽제 사용이 공식적으로 금지되면서 미국은 고엽제가 생화학전 금지 대상의 하나임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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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주1) 애꾸눈의 찰스 본스틸 12대 유엔사령관 재임기간은 66.9~69.9까지 3년간이었으며 이 보고서에 등장하는 유엔사령관이란 곧 본스틸을 의미한다. 또한 그는 같은 기간 미8군사령관을 겸직하고 있었다. 『주한미군 30년』 (서울: 서울신문사, 1970), p.399참조
(주2) ‘68초목통제계획최종보고서’에 의하면 “고엽제살포팀은 북한의 전초기지로부터 감시 하에 있는 이들 지역에서 작업팀이 곡물을 기르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위해 모뉴론에는 ‘옥수수’ 블루제에는 ‘쌀’ 오렌지제에는 ‘콩’같은 암호를 사용함과 동시에 장비나 보급품에 라벨을 붙이는 식의 기만수단을 사용하였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러한 기만작전이 성공한 결과 북한의 반응이 없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Letter Donald C. Hakenson(Director, Environmental Support Group AR) to Wilson, June 9, 1995, Enclosure. Department of the Army Headquarters, U.S. Army Advisory Group. Korea to Commanding Officer Combat Developments Command Chemical-Biological-Radiological Agency, Final Report, Vegetation Control Plan CY 68(U), 2 Jan 1969, p.22 참조)
(주3) Letter Donald C. Hakenson(Director, Environmental Support Group AR) to Wilson, June 9, 1995, Enclosure. Department of the Army Headquarters, U.S. Army Advisory Group. Korea to Commanding Officer Combat Developments Command Chemical-Biological-Radiological Agency, Final Report, Vegetation Control Plan CY 68(U), 2 Jan 1969, p.26
(주4) Letter Donald C. Hakenson(Director, Environmental Support Group AR) to Wilson, June 9, 1995, Enclosure. Department of the Army Headquarters, U.S. Army Advisory Group. Korea to Commanding Officer Combat Developments Command Chemical-Biological-Radiological Agency, Final Report, Vegetation Control Plan CY 68(U), 2 Jan 1969, p.21
(주5) Memorandum by the Joint Advanced Study Committee Conclusion, JCS 1837/26 21 September 1951.
원문내용은 다음과 같다. “5. A more vigorous test program including large-scale field tests should be determine the effectiveness of specific BW agents under operational condition”. 이와 관련된 알자지라의 보도를 보기 위해서는 다음 주소를 볼 것. http://english.alzajeera.net/programmes/peopleandpower/2011/07/201172795838377646.html
(주6) H. I. Stubblefield, “A Resumé of the Biological Warfare Effort,” 21 Mar. 1958, Record 54763, Box 2, Chemical and Biologic Warfare Collection, (Washington D.C.: National Security Archive),p.1 ; 스터블필드 박사는 화학전과학연구분야 부책임자의 생물학전 보좌관이었다. 폭스의 글은 “Bacterial Warfare: The Use of Biologic Agents in Warfare” Military Surgeon 72(March 1933) ; Stephen Endicott and Edward Hagerman, The United States and Biological Warfare,(Indiana University Press, 1998)/안치용·박성휴 역, 『한국전쟁과 미국의 세균전』,(서울: 중심, 2003, 1쇄),p.317
(주7) Goldstein, N.P., P.H. Jones and J.R. Brown. 1959. Peripheral neuropathy after exposure to an ester of dichlorophenoxyacetic acid. J. Am. Med. A44oc. 171:1306-1309 ; Alvin L. Young, etc ‘The Toxicology, Environmental Fate, and Human Risk of Herbicide Orange and Its Associated Dioxin’, USAF OEHL Technical Report, (Texas: USA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Health Laboratory, 1978), p.Ⅰ-1
(주8) United States Tariff Commission. 1946. Synthetic organic chemicals: U.S. production and sales, 1944. Report No. 155, Second Series. (Washington, D.C.: U.S. Government Printing Office) ; Alvin L. Young, etc ‘The Toxicology, Environmental Fate, and Human Risk of Herbicide Orange and Its Associated Dioxin’, USAF OEHL Technical Report, (Texas: USA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Health Laboratory, 1978), p.V-2
(주9) Stephen Endicott and Edward Hagerman, The United States and Biological Warfare,(Indiana University Press, 1998)/안치용·박성휴 역, 『한국전쟁과 미국의 세균전』,(서울: 중심, 2003, 1쇄), p.107
(주10) William M. Creasy, “Presentation to the Secretary of Defence’s AD Hoc Committee on CEBAR,”24 Feb.1950, CCS 385.2(12-17-43), Sec.10(B.P.Pt. 1), Box 207,RG218,NA; Record No.54874, Chemical and Biological Warfare Collection, National Security Archive, Washington, D.C., pp.16-19,31
(주11) Department of Defense Directive on Chemical and Biological Warfare Readiness, attached table of organization of the Navy’s bacteriological warfare program with Department of Defense document and page reference 941196-171; “Vote by the Service Secretaries to the JCS on Research Program in Biological Warfare,” 28 Aug. 1952, RG 218, Appendix 362, JCS 1837/40, RG 218, NA, pp.14-15
(주12) Stephen Endicott and Edward Hagerman, The United States and Biological Warfare, (Indiana University Press, 1998)/안치용·박성휴 역, 『한국전쟁과 미국의 세균전』, (서울: 중심, 2003, 1쇄), p.118
(주13) 아서 D. 리틀사는 원래 화학회사이다. 리틀은 센트럴퍼시픽철도를 위해 캐나다의 광산에서 자원채굴에 협력하기도 했던 인물인데, 이를 계기로 그 철도공사업자 벡텔사와 아서 D. 리틀사는 같은 계열로 편성되었다. 그리고 이들 회사는 모건개런티트러스트, 즉 JP 모건가의 지배를 받았다. (廣瀨 隆 Hirose Takashi, 億萬長者はハリウッドな殺す (東京: 講談社, 1986)/이규원 역, 제1권력, (서울: 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10, 1쇄), p.471)
(주14) Dorothy L. Miller, “History of Air Force Participation in the Biological Warfare Program, 1944-1954,” Vol. 2(1957), U.S. Air Force, Air Materiel Command, Historical Division, Wright-Patterson Air Force Base, Ohio, pp.78-81, 87-90 ; Dorothy L. Miller, “History of Air Force Participation in the Biological Warfare Program, 1944-1954,” Vol. 2(1957), U.S. Air Force, Air Materiel Command, Historical Division, Wright-Patterson Air Force Base, Ohio, pp.117-121
(주15) ‘Herbicide Tests and Storage Outside of Vietnam,’ http://www.publichealth.va.gov/exposures/agentorange/outside_vietnam_usa.asp (2011.5.30일 검색)
(주16) Dorothy L. Miller, “History of Air Force Participation in the Biological Warfare Program, 1944-1954,” Vol. 2(1957), U.S. Air Force, Air Materiel Command, Historical Division, Wright-Patterson Air Force Base, Ohio, p.119
(주17) Gunston 1980, p.171 참조
(주18) http://www.viet-myths.net/Session09T.htm 참조
(주19) Walker M. Mahurin 대령 진술서, 10 Aug. 1953, in Depositions of Nineteen Captured U.S. Airmen on Their Participation in Germ Warfare in Korea, Supplement to People’s China(Peking), 1 Dec. 1953, pp.6,43,49 p.252
(주20) 어그리나우틱사는 1951년 농무성을 위해 일한 인연이 있는 조지 샌더스(George Sanders)가 1958년 힐러(Hiller)헬리콥터를 위해 디자인된 헬리콥터 분사시스템을 시작으로 출발한 회사이다. 베트남전쟁 기간 국방성을 위하여 일했다. http://www.agrinautics.com/about-us.html 참조
(주21) 지상에 살포된 액체고엽제의 평균살포비율은 지역의 거친 상태 때문에 일주일당 약 200에이커(809,391㎡)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어그리나우틱(AGRINAUTIC) 분무기가 설치된 UH-1헬리콥터 1대는 시간당 90노트로 12피트에서 50피트까지 다양한 고도를 날며 한 번의 임무수행 시 약 2분30초에 총 65에이커(263,052㎡)를 망라하는 지역에 대해 에이커당 3갤런의 살포비율로 블루제를 100피트넓이의 줄을 만들며 살포할 수 있다. 작업일 당 최소 4번의 임무수행으로 이렇게 250에이커(1,011,739㎡)의 지역을 망라한다. 지상살포수단을 이용할 시 7일 넘게 요구되는 양이다. 살포줄의 넓이는 다양한 비행고도로 조정될 수 있으며 더 적극적인 분무살포 통제는 저고도비행(그러나 저고도가 되면 줄 넓이는 축소된다)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 노즐은 최적의 미립자크기를 분무할 수 있도록 구경을 조정할 수 있다. 어그리나우틱 살포기는 UH-1헬기에 신속히 설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리고 헬기가 다른 유형의 임무를 요구받았을 때 최소시간 내에 야전으로 이동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Letter Donald C. Hakenson(Director, Environmental Support Group AR) to Wilson, June 9, 1995, Enclosure. Department of the Army Headquarters, U.S. Army Advisory Group. Korea to Commanding Officer Combat Developments Command Chemical-Biological-Radiological Agency, Final Report, Vegetation Control Plan CY 68(U), 2 Jan 1969, p.16-17
(주22) Walker M. Mahurin 대령 진술서, 10 Aug. 1953, in Depositions of Nineteen Captured U.S. Airmen on Their Participation in Germ Warfare in Korea, Supplement to People’s China(Peking), 1 Dec. 1953, pp.6,44 ; Stephen Endicott and Edward Hagerman, The United States and Biological Warfare, (Indiana University Press, 1998)/안치용·박성휴 역, 『한국전쟁과 미국의 세균전』,(서울: 중심, 2003, 1쇄), p.252
(주23) Extracted from EUSA Special Study, Reeval!uation of DMZ Operations (U). VOLs Ⅰ& Ⅱ 15 Dec 68. p.123
(주24) Letter Donald C. Hakenson(Director, Environmental Support Group AR) to Wilson, June 9, 1995, Enclosure. Department of the Army Headquarters, U.S. Army Advisory Group. Korea to Commanding Officer Combat Developments Command Chemical-Biological-Radiological Agency, Final Report, Vegetation Control Plan CY 68(U), 2 Jan 1969, p.7
(주25) 화학전부대가 생물학전 가능성을 연구했다는 첫 언급은 1924년 9월24일 화학전부대 에지우드병기고의 기계화사단 보고서 No.442에 나온다. H. I. Stubblefield, “A Resumé of the Biological Warfare Effort,” 21 Mar. 1958, Record 54763, Box 2, Chemical and Biologic Warfare Collection, (Washington D.C.: National Security Archive), p.1 ; 스터블필드 박사는 화학전과학연구분야 부책임자의 생물학전 보좌관이었다. 폭스의 글은 “Bacterial Warfare: The Use of Biologic Agents in Warfare” Military Surgeon 72(March 1933) ; Stephen Endicott and Edward Hagerman, The United States and Biological Warfare,(Indiana University Press, 1998)/안치용·박성휴 역, 『한국전쟁과 미국의 세균전』,(서울: 중심, 2003, 1쇄), p.317참조
(주26) Chemical Corps Medical Laboratories, “Mechanism of Entry and Action of Insecticidal Compounds and Insect Repellents,” 465-20-001, 26 Oct. 1952, attached to Renewal of FY 1953 Budget, from Chief Chemical Officer to Acting Chief of staff, G4, Entry 1B, Box 237, RG 175, NA. The Biological Laboratories project on arthropod dissemination in biological warfare ; Stephen Endicott and Edward Hagerman, The United States and Biological Warfare, (Indiana University Press, 1998)/안치용·박성휴 역, 『한국전쟁과 미국의 세균전』,(서울: 중심, 2003, 1쇄), p.123
(주27) Memorandum for Chief Chemical Officer, Deputy Chief Chemical Officer, Subject: Research Accomplishments of the Medical Laboratories, Army Chemical Corps, Part Ⅱ, “A Historical Review of the Project Program Based on Medical Laboratories Reports, 1944-1952″ (MISR No.34), 26 Jan 1954, Control No.2432S, Entry 1B, Box 263, RG175, NA.
(주28) Stephen Endicott and Edward Hagerman, The United States and Biological Warfare, (Indiana University Press, 1998)/안치용·박성휴 역, 『한국전쟁과 미국의 세균전』,(서울: 중심, 2003, 1쇄), p.124
(주29) William M. Creasy,”Presentation to the Secretary of Defence’s AD Hoc Committee on CEBAR,”24 Feb.1950, CCS 385.2(12-17-43), Sec.10(B.P.Pt.1), Box 207, RG218, NA; Record No.54874, Chemical and Biological Warfare Collection, National Security Archive, Washington, D.C., p.29
(주30) H. I. Stubblefield, “A Resumé of the Biological Warfare Effort,” 21 Mar. 1958, Record 54763, Box 2, Chemical and Biological Warfare Collection, (Washington D.C.: National Security Archive), p.27
(주31) Sheldon H. Harris “Factories of Death: Japanese Biological Warfare 1932-1945 and the American Cover-up” (New York and London, 1994), pp.155ff ; Jeanne McDermott, The Killing Winds: The Menace of Biological Warfare (New York, 1987), pp.139-141, 203-205
(주32) Stephen Endicott and Edward Hagerman, The United States and Biological Warfare,(Indiana University Press, 1998)/안치용·박성휴 역, 『한국전쟁과 미국의 세균전』,(서울: 중심, 2003, 1쇄), pp.105, 328 참조
(주33) 이 실험에는 에이커(Acker), 디로즈(DeRose), 맥레인(McLane), 뉴먼(Newman), 윌리암슨(Williamson), 베이커(Baker), 딘(Dean), 존슨(Johnson), 테일러(Taylor) 워커(Walker), 짐멀리(Zimmerly) 등이 참여했다.
(주34) ‘Agent Orange: Herbicide Tests and Storage in the U.S’ http://www.publichealth.va.gov/exposures/agentorange/outside_vietnam_usa.asp(2011.5.30 검색) 참조
(주35) Letter Donald C. Hakenson(Director, Environmental Support Group AR) to Wilson, June 9, 1995, Enclosure. Department of the Army Headquarters, U.S. Army Advisory Group. Korea to Commanding Officer Combat Developments Command Chemical-Biological-Radiological Agency, Final Report, Vegetation Control Plan CY 68(U), 2 Jan 1969, p.1
(주36) ‘Agent Orange: Herbicide Tests and Storage in the U.S’ http://www.publichealth.va.gov/exposures/agentorange/outside_vietnam_usa.asp(2011.5.30 검색)
(주37) Letter Donald C. Hakenson(Director, Environmental Support Group AR) to Wilson, June 9, 1995, Enclosure. Department of the Army Headquarters, U.S. Army Advisory Group. Korea to Commanding Officer Combat Developments Command Chemical-Biological-Radiological Agency, Final Report, Vegetation Control Plan CY 68(U), 2 Jan 1969, p.2
(주38) 대간첩작전물자공급계획으로도 불린다. Letter Donald C. Hakenson(Director, Environmental Support Group AR) to Wilson, June 9, 1995, Enclosure. Department of the Army Headquarters, U.S. Army Advisory Group. Korea to Commanding Officer Combat Developments Command Chemical-Biological-Radiological Agency, Final Report, Vegetation Control Plan CY 68(U), 2 Jan 1969, p.6, 같은 문서의 Annex E-2 참조.
(주39) Letter Donald C. Hakenson(Director, Environmental Support Group AR) to Wilson, June 9, 1995, Enclosure. Department of the Army Headquarters, U.S. Army Advisory Group. Korea to Commanding Officer Combat Developments Command Chemical-Biological-Radiological Agency, Final Report, Vegetation Control Plan CY 68(U), 2 Jan 1969, p.12
(주40) Letter Donald C. Hakenson(Director, Environmental Support Group AR) to Wilson, June 9, 1995, Enclosure. Department of the Army Headquarters, U.S. Army Advisory Group. Korea to Commanding Officer Combat Developments Command Chemical-Biological-Radiological Agency, Final Report, Vegetation Control Plan CY 68(U), 2 Jan 1969, p.13
(주41) Letter Donald C. Hakenson(Director, Environmental Support Group AR) to Wilson, June 9, 1995, Enclosure. Department of the Army Headquarters, U.S. Army Advisory Group. Korea to Commanding Officer Combat Developments Command Chemical-Biological-Radiological Agency, Final Report, Vegetation Control Plan CY 68(U), 2 Jan 1969, Annex E-1
(주42) 고엽제작전계획수립책임이 미8군 공병단에 위임된 것은 공병단에 연구능력을 만들기 위하여 원래 임무가 부여되었었기 때문이다. Letter Donald C. Hakenson(Director, Environmental Support Group AR) to Wilson, June 9, 1995, Enclosure. Department of the Army Headquarters, U.S. Army Advisory Group. Korea to Commanding Officer Combat Developments Command Chemical-Biological-Radiological Agency, Final Report, Vegetation Control Plan CY 68(U), 2 Jan 1969, p.5
(주43) Letter Donald C. Hakenson(Director, Environmental Support Group AR) to Wilson, June 9, 1995, Enclosure. Department of the Army Headquarters, U.S. Army Advisory Group. Korea to Commanding Officer Combat Developments Command Chemical-Biological-Radiological Agency, Final Report, Vegetation Control Plan CY 68(U), 2 Jan 1969, p.5
(주44) Letter Donald C. Hakenson(Director, Environmental Support Group AR) to Wilson, June 9, 1995, Enclosure. Department of the Army Headquarters, U.S. Army Advisory Group. Korea to Commanding Officer Combat Developments Command Chemical-Biological-Radiological Agency, Final Report, Vegetation Control Plan CY 68(U), 2 Jan 1969, p.19
(주45) Letter Donald C. Hakenson(Director, Environmental Support Group AR) to Wilson, June 9, 1995, Enclosure. Department of the Army Headquarters, U.S. Army Advisory Group. Korea to Commanding Officer Combat Developments Command Chemical-Biological-Radiological Agency, Final Report, Vegetation Control Plan CY 68(U), 2 Jan 1969, p.19
(주46) Letter Donald C. Hakenson(Director, Environmental Support Group AR) to Wilson, June 9, 1995, Enclosure. Department of the Army Headquarters, U.S. Army Advisory Group. Korea to Commanding Officer Combat Developments Command Chemical-Biological-Radiological Agency, Final Report, Vegetation Control Plan CY 68(U), 2 Jan 1969, p.19
(주47) Letter Donald C. Hakenson (Director, Environmental Support Group AR) to Wilson, June 9, 1995, Enclosure. Department of the Army Headquarters, U.S. Army Advisory Group. Korea to Commanding Officer Combat Developments Command Chemical-Biological-Radiological Agency, Final Report, Vegetation Control Plan CY 68(U), 2 Jan 1969, p.4
(주48) http://en.wikipedia.org/wiki/Dugway_sheep_incident (2011.7.31 검색)
(주49) http://en.wikipedia.org/wiki/Chemical_warfare(2011.7.31 검색)
(주50) Mangold, Tom. Plague Wars: The Terrifying Reality of Biological Warfare, (Macmillan, 1999), pp.54-57 참조; 소련은 25일 유엔총회 정치위에 결의안을 제출 화학 및 생물학무기의 생산을 금지하는 국제협약을 조속히 체결하자고 요구하는 한편 이미 생산된 화학무기를 파괴해 버리거나 평화적 목적을 위해 전용하지고 제의했다. 닉슨의 선언과 때를 같이 해서 이날 소련과 다른 7개 공산국은 또한 제네바군축회의에서 화생무기의 생산금지협상을 본격화 하자고 요구했다. (동아일보 1969.11.26 1면)
(주51) 민병욱, 베트남전쟁과 고엽제, http://navercast.naver.com, 2011.6.22 검색
(주52) National Security Decision Memorandum November 2, 1974, ‘Geneva Protocol of 1925 and Riot control Agents and Chemical Herbicides
(주53) National Security Decision Memorandum 281, December 9, 1974, ‘Ratification of the Geneva Protocol of 1925 on Gas Warfare’
(주54) “Executive Order 11850-Renunciation of certain uses in war of chemical herbicides and riot control agents”, The provisions of Executive Order 11850 0f Apr.8, 1975, FR16187, 3CFR, 1971-1975 Comp., p.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