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히로시마 원폭반대집회 참가기 2008/08/10 303
2008 히로시마원폭대회 참가기: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9778
국가보안법 폐지집회가 된 열화우라늄탄 반대 집회
<기고> 일본 히로시마 원폭반대집회 참가기 – 이시우
2008년 08월 10일 (일) 08:08:12 이시우 전문기자 tongil@tongilnews.com
▲ 일본 히로시마 원폭돔. [사진-통일뉴스 이시우 전문기자]
8월 초 통일맞이 휴전선 대행진에 참가했던 나는 최고의 난코스로 불리는 해산령을 넘어 철원 마현리에 이른 후 급히 상경하여 8월 5일 새벽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히로시마로 향했다. 해마다 열리는 히로시마 원폭반대집회에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히로시마 원폭집회는 일본정부가 가해자로서의 일본제국주의의 모습 대신 피해자로서의 히바쿠샤(원폭피해자)의 모습을 주로 부각시키는데 비해, 평화단체가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사과하고 참회하며, 반대해 주도해온 집회이다.
2006년 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열화우라늄탄 반대집회였던 국제 히로시마 컨퍼런스에 참가하여 한국의 오산, 청주, 수원기지와 오끼나와의 카데나기지에 약 300만발의 열화우라늄탄이 보관되어 있음을 폭로하였다.
나중에 내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 검찰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당시 나의 발표문과 질의 응답한 회의록은 물론 숙소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이름과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당했음을, 검찰 스스로 제출한 수사자료를 통해 알게 되었다.
작년 ICBUW(우라늄병기금지를 촉구하는 국제연합)는 8월 집회직후 나의 구속에 항의하여 성명을 채택하여 당시 유명환 주일대사에게 전달하는 등 지속적인 구명운동을 전개하였다. 우연히 재판부에 서류하나를 제출하러 갔다가 사무관이 앰네스티와 ICBUW, ICBL(국제대인지뢰금지캠페인)에서 제출한 탄원서가 수만장으로 밀차에 실어서야 운반이 가능한 상태라고 푸념하는 것을 보았다. 그만큼 그들의 국제적인 구명운동은 내게 큰 인상을 남겼다.
▲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 참배하는 사람들. [사진-통일뉴스 이시우 전문기자]
또한 다행스럽게도 ICBUW는 2007년 12월 5일 유엔 제62차 총회에서 열화우라늄을 포함한 무기 포탄사용의 영향에 대한 결의를 통과시켰다. 결의는 열화우라늄 무기 사용이 인체나 환경에 끼칠 잠재적 위해성을 고려한다고 전문에 명기한 뒤 사무총장 이름으로 가맹국과 관련 국제기구에 대해 열화우라늄 문제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고 차기 총회에서 열화우라늄 문제를 의제로 다루도록 했다. 이것은 열화우라늄 문제해결을 위한 거대한 일보가 아닐 수 없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ICBUW는 히로시마 원폭대회기간에 맞추어 회의를 개최하며 나에게 참석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내왔다. 나는 답장을 통해 그동안 ICBUW의 성심어린 구명운동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러나 올해에는 열화우라늄탄과 관련하여 새롭게 보고할 내용이 없다고 답변하였다.
그러자 작년 내가 국가보안법으로 단식과 삼보일배를 진행한 불굴의 투쟁이 바로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보고내용이라는 답신이 왔다. 올해 8월 6일은 합천에서 열리는 원폭피해자추모제에 참석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던 터라 그것도 고민이 되어 주최측에 의견을 물어봤더니 히로시마에 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주셨다.
내가 참가하는 회의는 원폭집회의 마지막날인 8월 6일 히로시마시민교류플라자에서 1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두 개의 회의에 초대되었다. 하나는 열화우라늄탄 문제만을 다루는 ICBUW 산하단체들의 전국교류회였고, 다른 하나는 ‘핵병기폐절을 위한 길’이란 제목의 국제토론회였다.
첫 번째 ‘열화우라늄탄 반대단체 전국교류회’에 대해, 나로서는 전체회의를 보조하는 위치에서 간단히 보고하는 정도로 생각했으나 회의장에 도착하여 자료집을 받아보니 내가 주 강사였고 무려 한 시간이나 보고회의 일정이 잡혀 있었다. 회의장 입구에서는 나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고, 회의 시작과 함께 나의 사진슬라이드쇼가 진행되었다.
나의 보고내용 중 특히 일본의 활동가들을 흥분시켰던 것은 2006년 회의 내용을 한국공안기관이-그들은 KCIA(중앙정보부)라고 알고 있었다-모두 감시했다는 사실과 그같은 불법활동을 재판과정에서 공개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처구니 없어했다. 그리고 분개했다.
일본에서는 공안기관이 설령 감시는 할지언정 그렇게 공개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조섞인 조크로 오늘 들어온 기관원들에겐 참가비를 한 100배로 받자는 이야기부터 오늘 자료 중 모든 자료를 소지하고 가지는 말라는 조심스런 경계까지 그들 역시 국가권력의 손길에 자신들이 닿아 있었다는 사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나의 1심 무죄판결의 성과 중 평화운동과 연관하여 주목할 만한 것은 평화생존권과 함께 평화감시권을 법원에서 인정받은 것이다라는 보고에 대해, 의과대 학생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한 청중은 “일본정부나 법원에서는 아직까지 평화감시권이란 단어가 등장해본 적이 없다. 평화감시권의 내용이 무엇이고 이런 논의가 어떻게 전개되어 갈지 답변해 달라”고 했다.
나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평화운동에는 평화생존권을 수호하기 위한 평화감시권과 평화행동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번 판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국가이고 국민은 국가운영에 참여할 권리가 있으며 정부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에 스스로 그 정보를 알권리가 있다는 법리를 적용하여 평화감시권을 적극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알권리차원에서 평화감시권은 보장되어야 하며 나의 재판은 그런 점에서 의미있는 논쟁을 제공했다고 판단한다. 이와 더불어 평화적 직접행동권은 최근 한국의 촛불시위에서 놀라운 진화를 이룩하였으며 이러한 역사의 진전을 법적으로까지 공식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마침 이 회의에 참여하고 계셨던 한통련 히로시마지부장님은 특별히 발언 기회를 얻어 한통련을 소개하고 일본사회에서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의 무게를 실감케 하는 것 중의 하나인 국가보안법에 대해 성토하였다. 결국 이 회의의 대표인 카자시 교수가 다음과 같은 결의를 밝혔다.
이시우 사진가의 재판이 항소심에서도 완전한 승리로 끝날 수 있도록 ICBUW는 국가보안법폐지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할 것과 지난해 성명서를 채택하긴 했지만 다시 재 채택하여 각 지부에서 이를 지지하는 서명을 받는 등의 활동을 지속해 나갈 것을 박수로서 결의하자는 것이었다.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졌고 열화우라늄반대집회는 갑자기 국가보안법폐지집회가 되었다.
이어서 후쿠오카와 토쿄 등 열화우라늄 반대프로젝트의 각 지부들은 그간의 활동을 보고했다. 그리고 작년 12월 유엔총회 결의를 이행하기 위해 일본정부를 추동할 것과 외무성과의 구체적 교섭을 시작하기 위한 계획을 발표하였다.
곧이어 같은 장소에서 핵무기철폐를 위한 국제토론회가 개최되었다. 토론자로는 영국트레지던트핵잠수함기지 철수를 위해 싸우고 있는 애크로님군축연구소장 레베카 존슨(Rebecca E. Johnson)과 미국친우봉사회(AFSC)의 조셉 거슨(J. Gerson), 미국인으로서 거의 일본활동가가 되다시피 한 히로시마평화문화센타이사장인 스티븐 리퍼(Steve Leeper), 한국의 포토저널리스트로 소개된 본인, 평화문제에서 독보적인 존재인 유아사 이치로(湯淺一郞)가 순서대로 발제했다.
레베카는 트레지던트핵기지가 있는 스코틀랜드 화스레인(FASLANE)에서 2006년 10월부터 2007년 10월까지 365일동안 시민들이 펼친 영국정부의 핵포기촉구시위를 소개하며 이제 핵 없는 세계를 향한 우리의 운동은 산 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간쯤에 도달해 있다는 현장운동가 특유의 희망과 낙관을 피력했다. 조셉거슨 역시 비슷한 전망을 했다.
이에 리퍼는 상반된 전망을 보였다.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으며 2010년 NPT검토회의에서 모든 나라가 서명하길 바라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 대인지뢰나 클러스터(집속탄)조약과 같은 단계를 밟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핵없는 세계를 부정하는 나라들에 심각한 압력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나의 발표는 정세전망이 아니라 구체적인 한국일본의 핵위협에 대한 지적이었다. 나는 기밀해제된 정보자료를 인용하여 오끼나와 화이트비치와 경남진해에 정기적으로 입항하는 미국의 핵공격형잠수함 4척중 1척에 핵토마호크 미사일이 장착되어 있음을 꼼꼼하게 증명했다. 이 내용은 지난 5월 오끼나와 평화집회에서도 발표되어 류큐신보에 보도된 바 있었다.
이에 더하여 노틸러스연구소가 입수한 춘천캠프페이지의 과거 핵무기 운영절차교범 중 긴급파괴에 대한 교범을 소개하며 미군은 핵무기를 사수할 수 없는 긴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핵이 적의 손에 들어가게 하기보다는 파괴하는 게 낫다는 논리에 따라 긴급파괴를 실행하도록 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이는 전시가 아닌 위기시에도 적용되며 또한 핵이 아닌 다른 무기에도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야전교범이었다.
따라서 열화우라늄탄 역시 전시에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열화우라늄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자체는 위기시에 보관지역에서 폭파시킬 것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보관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 다음날 슈코쿠신붕(中國新聞)은 나의 발표에 대해 한국과 오끼나와의 열화우라늄탄의 보관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고 표현했다.
▲ 슈코쿠신붕 기사 내용. [사진-통일뉴스 이시우 전문기자]
마지막으로 패널 전체의 발표에 대한 논평을 겸해서 유아사 이치로 선생이 입을 열었다. 유아사 선생은 2006년 열화우라늄탄보관실태에 이어 올해에도 핵잠수함문제에 대한 질높은 발표를 해준데 대해 감사한다는 인사와 함께 핵문제의 출발은 아시아 각국의 원폭피해자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나 역시 발제문에 언급했던 바를 그는 정확하게 지적했다.
보관량으로만 단순비교해 본다면 열화우라늄탄의 위험성이 오끼나와에 비해 10배인 한국이 이들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무관심한 것은 역시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정부로부터 민간에 이르는 철저한 무관심과 연관되어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매년 8월6일 합천에서 열리는 원폭피해자 추모제에 올해 처음으로 참여 하려던 약속을 바꾸어 히로시마로 향했던 나의 행로에 대해서도 반성을 하게 된다. 나는 다시 한번 큰 과제를 안은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