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진술 – 7 영토 2008/01/10 823

영토
우리가 조금만 민감하다면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안보이데올로기체계의 최상위에 헌법3조 영토조항이 있음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땅은 꿈을 꿉니다. 그 꿈을 통해 겨울이 오기도 전 미리 봄을 챙겨 준비합니다. 가을의 땅은 낙엽에게 이제 그 고단한 생을 내려놓으라고 유혹합니다. 땅은 바람에게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뭇잎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라고 명령합니다. 땅은 그렇게 수만년, 수천만년을 쌓고 또 쌓아 스스로 모든 생명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땅은 봄이 오기도 전 언 몸을 풀고, 제몸을 질게하여 생명이 뿌리내릴 바탕이 됩니다. 생명의 무덤이 생명의 원천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땅에 토지란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영토란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토지는 개인의 소유관계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며, 영토는 국가의 지배관계에 의해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러나 토지란 땅이 아니라 계약문서입니다. 영토란 피에 대한 기억이요, 전쟁에 대한 기억이며, 그 기억들에 대한 비석으로서의 법전입니다.
1948년 남에서는 대한민국 영토에 대한 일방적인 선포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북에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토에 대한 일방적인 선포가 있었습니다. 헌법초안자인 유진오박사는 영토주권이 땅에 대한 지배가 아니라 땅위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지배권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관계가 땅에 투영되면서 마치 땅이 신성을 갖는 것처럼 물신화된 것입니다. 그는 또한 헌법에 영토조항을 두고 있는 나라는 주로 독일과 같은 연방국가로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는 일본헌법과 같이 굳이 영토조항을 둘 필요가 없으나 북한으로 인해 영토조항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영토는 단순한 사적소유권이 아닌 통치를 위한 지배권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로써 단순히 영토가 한국의 주권의 영역을 명시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북에 대한 지배권을 확인하기 위한 것임을 명확히 했습니다.(유진오, 헌법해의 p60-62)
남과 북은 서로의 영역에 대한 지배권을 유보하고 공생하는 대신, 서로의 땅까지 영토로 배타적선언을 함으로서 땅을 신성의 영역에서 분쟁의 영역으로 끌어 내렸습니다. 분단체제가 상호간의 분단을 명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원한체제로 나아간 것은 분단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전국적 지배권을 확인하려는 남과 북 헌법의 영토조항에서 비롯됩니다. 땅은 사람에 의해 신성해지기도 하고 추악해질 수도 있습니다. 남북의 영토는 배타와 지배욕과 일방성과 폭력적 선언을 통해, 엄숙을 강요함으로서 신성을 만들어냅니다. 지주가 울타리를 치고 샤먼의 제의를 통해 신성을 연출하는 방식입니다.
사람은 땅의 본성에 맞지 않는 제도를 발전시켜오기도 했지만, 땅의 본성에 맞는 제도도 또한 부단히 발전시켜왔습니다. 그리하여 땅에 대한 정복의 기억을 담고 있는 유적이 있는가 하면, 땅에 대한 지원과 협력, 상생과 조화의 기억을 담고 있는 유적이 있습니다.
우리 영토관념의 마지막 바닥은 지배욕임을 유진오박사는 인정합니다. 지배하려는 자와 지배받지 않으려는 자 사이의 충돌은 명약관화한 것입니다. 우리는 영토문제의 법적 본질을 배타성이라고 공공연히 규정합니다. 합리성, 합의성도 배타성 앞에선 속수무책입니다. 소통이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남북의 영토선언에 소통의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땅위에 사는 사람관계에 의해 땅은 규정되는 법. 사람관계가 폭력적이자 땅도 폭력적이 되었습니다. 차지한 땅과 빼앗긴 땅, 차지할 땅과 빼앗을 땅만이 있었습니다. 점령지도 아닌 수복지란 말이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점령지가 미래의 지배관계를 나타낸다면 수복지는 과거로부터 지속되어온 지배관계를, 지배의 역사성을 부여한 이름이었습니다. 지배의 역사성을 인정하는 것에 반대했던 미국에 의해 수복지는 점령지로 바뀌었습니다. 북에 대해서는 한치도 밀리지 않던 수복지 개념은 미국에 대해서는 쉽게 점령지로 양보되었습니다. 수복지의 주민은 수복과 동시에 나의 국민이 되어야 했습니다. 나의 신민이 되어야 했습니다. 해석이 있었습니다. 힘만이 정답으로 통한다는 말발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것은 전쟁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지배가 있었습니다. 땅위에 사는 사람들은 땅을 차지한 자에게 지배당할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안보가 있었습니다. 왜인지는 잘 몰라도 땅을 지키기 위한 안보개념이 탄생했습니다. 안보는 영토를 더욱 신성한 것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모든 가치가 형식적으로라도, 혹은 위선적으로라도 호혜평등과 소통과 교류를 표방하지만 영토는 대놓고 그 본질이 배타성이라고 규정합니다. 신성한 땅은 가장 전투적인 영토로 가치전환되고 만 것입니다. 땅은 어쩌다 그렇게 배타적이 된 것일까요?
땅이 꿈꿀 자유를 막지 말아야 합니다. 생명의 땅을 죽음의 제도로 규정해선 안되겠습니다.
땅의 꿈을 막는 것은 법과 함께 우리안의 관성입니다.
남의 자유주의 이념도 북의 혁명이념도 국가에 의해 영토를 선포하면 된다는 성급한 결론과 급박한 정세를 이유로 땅에 대한 이해를 갖기도 전에 땅을 소유도 아닌 지배문제에만 몰입하도록 만들고 말았습니다. 영토관념이 가리키는 화살표의 꼭지점에 국가보안법이 있습니다. 영토를 지키려는 처음의 목적이 국민의 생활일텐데 그 생활이 과연 국보법에 의해 지켜진 것일까요? 국보법은 상상의 자유는 물론 상상력을 검증하며 발전시키는 사고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억압합니다. 국민성의 본질이 국민들이 가진 사상이라면 국가보안법은 국민의 본성을 탄압하고 있는 것입니다.

검찰 측 안준석 증인은 자신의 감정서가 합참의 차장, 과장, 부장(투스타 소장)까지 결재를
받은 것이라고 힘주어 확인했습니다. 그는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아직 공개된 적 없는 기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의 방어망은 이미 크게 구멍이 뚫려 있고 북이 벌써 침투해 왔을 것입니다. 결국 그의 증언은 한국방위력이 현실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결함과 한계가 있음을 자인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국보법집행자들은 자기 세계에 갇혀 있다는 데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담을 쌓고, 주술에 의존하여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군내부에서는 일관성이 있어야 할텐데 한 부서에서는 부대에 시민들을 초청하는 행사와 축제 열어 내부에서 거의 제한 없이 사진을 촬영하게 하고 다른 부서에서는 2급비밀이라며 담장을 쳐놓고 밖에서 사진을 찍으면 기밀탐지, 누설이라고 구속합니다.
안준석 대령은 땅을 지키는 사람으로서 투철한 사명감과 헌신성을 가진이였습니다. 그가 만
일 군인생활을 못하게 되면 큰 병이 생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군을 대표해서 나온 그의 필사즉생류의 신념은 다른 사람이나 사회와 소통하기엔 단절된 신념으로 보였습니다. 땅에 대해 평화를 위협하고 파괴하고 침략한다는 것은 땅이 이미 사회체제, 국가체제, 세계체제의 중요요소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떨어진 은행잎 하나에 신발문양이 강하게 눌려 찍혀있었습니다. 누군가 신발로 나뭇잎을 밟고 지나간 모양이었습니다. 도청감청만 은밀한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행하는 일들이 이처럼 은밀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어도 인간 행동의 산물은 땅에 기록을 남기고 그것은 문명의 징표로, 사회적 관계의 징표로 남습니다.

땅에 세워진 경계선 표식은 땅에 대한 법적관계의 표현입니다. 1946년 영토란 말이 성립될 수 없는 시기였음에도 38선 표식 세우기 작업은 38선을 영토경계선으로 이해되도록 만들었습니다. 경계선은 법 그 자체의 표현일 때도 있고 법에는 없지만 체제간의 충돌과 갈등의 표현일 때도 있습니다. 1946년 미소간의 38선표식 세우기 작업 하나가 그토록 예민하게 대립됐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철책선과 초소와 땅위에 세워진 경계물은 일관된 경계선체계입니다. 시설과 관리주체, 관리범위, 관리방법이 모두 경계선체계를 이룹니다. 따라서 경계선과 표식과 철책선에 덧씌워진 신화와, 완고한 편견과, 관성을 성찰하는 일은 땅에 대한 이성을 회복하고 소통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필수적인 작업입니다. 그러나 그조차 군사기밀로 통제하고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기밀이라면 기밀로 보호되어야 할 합법성과 정당성에 대해 검토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설치하니 북이 따라 설치했고 북이 먼저 위반하니 우리도 따라 위반했다는 것이 논리의 전부라면 그것은 왜 설치하고 위반했는지를 성찰할 일이지 설치되고 위반한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드리라고 강요할 것은 아닙니다. 설령 현실의 군사적 현실을 외면 할 수 없다 해도 그에 맞는 타당한 논리가 분명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주술입니다. 제성호증인은 군사분계선이남에 대해 유엔사의 군사통제하에 있다는 정전협정의 내용에 대해 유엔사가 스스로 ‘점령’이란 단어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왜곡된 해석이라고만 답했습니다. 정전협정의 서명자인 유엔사가 그렇게 정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서로도 확인되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고 제성호증인의 말은 그의 해석입니다. 우리가 애써 그렇지 않다고만 해석하면 우리 뜻대로 해결되는 것일까요? 학자는, 또한 학자가 아니라도 시대가 던지는 질문에 성실히 답할 의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곧 도래하게 될 평화체제 논의에서 매우 중요한 의제가 될 것임이 분명하며 중요하게 고민해야만 할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북에 이롭다, 아니다란 기준만을 찾아 논의를 통제하려는 것은 오히려 북을 이롭게 하는 행위가 아닐까요?
제성호씨는 2004년 국방정책연구 겨울호에 ‘북방한계선의 법적 고찰’이란 논문에서 NLL을 둘러싼 논쟁을 각각 고찰하고 결론에서 말하길 “NLL유지를 촉구하되 장기적으로 NLL을 새로운 해상경계선으로 대체하는 방안도 강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저의 ‘유엔사해체에 대한 걷기 명상’에 대한 감정서에서 “(이시우는) 북방한계선은 유엔사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것 운운하며, NLL의 적법성을 부정하고 있다. NLL은 남북한이 지난 50여년 동안 준수, 묵시적으로 합의한 경계선으로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그 유효성과 존중의무를 명시하고 있음에도 이를 부정하는 것은 NLL을 시비하며 북방한계선 철폐를 요구(새로운 서해해상군사분계선 설정을 주장)하는 북한의 주장을 수용, 지지, 동조하는 것이다”라고 감정했습니다.
꽤 장문인 나의 ‘한강하구에 대한 연재글’의 핵심은 한강하구에 대한 유엔사의 관할권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으로 모아집니다. 또한 유엔사가 비무장지대 내 경의선과 동해선의 ‘남북관리구역’에 대해서 주장하는 관할권도 남북관리구역에 대한 유엔사와 인민군 간의 합의문에 비추어 일방적이고 무리한 것이므로 이를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주장이었습니다.

이와 관련 제성호씨는 2000년 11월 17일 조선일보 기사에서 유엔사의 관할권이 아닌 관리권 이양 주장을 접하고 그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습니다.

“관할권과 관리권은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인가? 생각건대 유엔사가 말하는 관할권은 DMZ내에서의 입법, 행정, 사법의 권한, 즉 ‘대성동 민사협정’과 같은 법령제정의 권한, 법령을 행정적으로 집행하는 권한, 그리고 민형사 재판관할권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에 비해 관리권이라 함은 경의선 철도의 보수, 신호체계수립, 운용, 필요한 시설물의 설치, 유지, 사후관리 및 감독 등 행정적 관할권(administrative or executive jurisdiction) 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제성호, 경의선철도 연결에 따른 법적 문제와 대책-법정책론적 분석을 중심으로-, p22-23)

“DMZ의 평화적 이용 확대라는 관점에서 볼 경우, 특히 DMZ내에 평화구역(Peace Zone)에서부터 시작하여 통일평화시(Unified Peace City) 건설을 내다본다면 단지 유엔사로부터 관리권만 이양받는 구조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우리로서는 유엔사가 DMZ의 평화적 이용지원 차원에서 향후 북한군과의 합의하에 추가적으로 DMZ 일부 구역을 개방할 경우에는 단지 관리권이 아닌 관할권을 한국에 반환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한국에 대한 관할권 반환구역을 DMZ 내에서 점차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은 곧 DMZ 관할권의 한국화 실현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같은 현상의 확대는 자주적인 남북교류의 지평과 공간을 넓히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가급적 빠른 시기에 우리 정부는 ‘경의선 및 동해선 철도, 도로 연결구간’에 대해서 관리권이 아닌 관할권 전반을 한국에 이양하도록 군사적 외교적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제성호, DMZ의 평화적 이용에 따른 법적문제, 법조, 2006.11, Vol 602, p155)

그가 유엔사의 관할권 주장 논리에 대한 유엔사의 1차 자료를 확인해 볼 위치에 있지 않았던 것은 저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조선일보 기사라는 2차 자료에 근거하여 관할권에 대한 주관적 해석을 가하였습니다. 제가 보기에 제성호씨가 해석하는 유엔사의 관할권에 대한 이해는 유엔사가 비무장지대를 점령한 점령군으로서 군정을 수립하고, 군사법원을 설치했을 때 행사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그 같은 권한은 정전협정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보이며 만일 그 같은 관할권이 인정된다면 주권과의 충돌문제를 당연히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유엔사의 관할권 주장 자체를 문제삼는 데 비해 제씨는 유엔사의 주장을 일단 인정하고 외교적 노력으로 관할권을 이양받아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약간의 입장 차이가 있지만 저 역시 제성호씨가 주장하듯 남북관리구역에 대해 관리권이든 관할권이든 실질적으로 남한이 온전한 권한을 이양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선 동일합니다.
그러나 유엔사의 주장이라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주체적인 비판과 검토가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유엔사의 주장이면 무조건 수긍하고 기정사실화 하거나, 의문을 품는 것조차 금기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주체적으로 재조명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야지 제씨가 말하는 외교적 노력도 구걸이 아닌 협상이 될 것이란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논문과는 달리 저에 대한 감정서에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한강하구에 대해 유엔사는 항행규칙 제정 및 선박등록의 권한만을 가질 뿐이라면서, 민간이 평화운동 차원에서 열기구비행, 100톤 이상의 바지선 운항, 남북한을 연결하는 다리의 건설 등을 제안하는 한편 민통선 설정이 불법이라고 강변하면서 민통선해체운동을 전개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입장은 군사시설보호법의 목적과 정신을 무시 외면한 것으로, 안보적 관점, 특히 북한 핵무기개발 및 보유와 같은 현 단계의 남북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지나치게 감상적인 주장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유엔사의 관할권을 부정함으로써 주한미군주둔의 근거를 약화시키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저는 그와 법정에서 그의 감정서에 대해 정말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결국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1972년 북은 사회주의 헌법 개정을 통해 북한지역만을 영토로 수정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영토문제에 소통의 여지를 먼저 열어준 것입니다. 이에 국제법학자들과 헌법학자들은 헌법3조의 개폐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 왔습니다. 현재는 4가지의 의견이 존재합니다. 첫째는 사수론입니다. 둘째와 셋째는 모두 남한지역으로 영토를 수정하자는 안입니다. 대신 국호를 명시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의견이 달라집니다. 네 번째 안은 보수적법학계의 원로인 김명기교수의 안으로 3조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안입니다. 보수학계에서도 헌법3조는 국민여론이 비등할 것을 감안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성호씨는 2004년 발간된 서울국제법연구 11권 2호의 ‘헌법상 통일관련 조항의 주요 쟁점과 개정문제’란 논문에서 헌법3조의 영토조항과 통일조항이 충돌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논하고 결론에서 말하길 “앞으로 무게중심이 영토조항에서 더욱 통일조항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영토조항 개정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저의 ‘유엔사문제에 대하여’에 대한 감정서에서 ‘영토조항의 효력(특히 대한민국정부의 정통성과 북한지역에 대한 헌법의 장소적 효력을 주장하는 헌법적 타당성)을 부인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헌법규정과 정신을 부정 모독하는 반헌법적, 반국가적 태도의 시현이라고 할 것이다’라고 감정했습니다.

헌법3조 영토조항은 학자들의 논의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는 헌법3조 사수만이 공식기준처럼 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예 관심의 영역 밖에 있습니다. 이는 북미간의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평화체제가 급물살을 탈 것이 예상되는 격변의 시대에 정작 당사자임을 강조하는 한국이 이에 대응할 준비가 매우 부족한 상태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헌법3조는 가장 짧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조항이지만, 가장 바꾸기 힘든 문장이기도 한 것은 영토 때문입니다. 영토조항은 국가보안법과 더불어 원한체제를 유지해온 결정판입니다. 이것은 누구에겐 신성한 골짜기이지만, 누구에겐 이성도 숨을 멈추어버리는 공포의 골짜기입니다. 땅에 묻힌 이들이 있어 영토는 원한의 개념을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기억이 미래의 기준이 됩니다. 땅에 있었던 일의 기억은 그래서 소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