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진술 – 8 원한체제 2008/01/10 799
원한체계
저는 정전체제, 분단체제와 동시에 원한체제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고 가정해봅니다. 정전체제와 분단체제가 사회의 구조적 측면을 위주로 구분하는 개념이라면 원한체제는 구조와 사회구성원의 심리가 결합된 개념으로, 사회가 사람의 육체, 심리적 활동을 통해 맺는 관계란 점에서 구조와 심리의 결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원한은 개인적 감정이나, 원한체제는 그 감정이 사회구조로부터 수렴되어 고착되고 다시 사회구조를 향해 발산되어 만들어진 체제입니다. 북에서 원쑤라고 하거나 남에서 웬수라고 하며 원수란 발음이 된소리, 겹소리로 강조됩니다.
오랜 식민지동안 친일과 반일이 착취자와 피착취자로 갈라지고 해방이 됐는데도 친일파가 척결되지 않음으로서 사회체제로서의 원한체제는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식민지시대에 형성된 사회적 원한관계는 해방전 후 미국과 소련등 외부의 체제를 유도, 흡수하고 결국 외세의 개입을 초래하는 과정에서 유라시아냉전체제와 함께 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외세를 자기와 동일시하고 체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확고한 관성이 되었습니다. 원한관계로 압축되는 온갖 가치체계가 그것의 법적 표현으로 나타났고, 1948년 남한의 국가보안법은 원한체계형성기의 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한국전쟁은 원한체제를 되돌릴 수 없는 체제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원한체제는 국가에 의해 강요되었지만 민간인은 스스로 체화한 원한에 기초하여 체제생산의 행동자이면서 생산자가 되어 이웃을 학살하고, 학살을 전염시켰습니다. 원한이 정부의 이데올로기로서 뿐아니라 하부단위에 까지 이르는 국가전체의 이데올로기로서 체화된 것입니다. 국제차원와 국가차원에 의한 피해 뿐아니라 동네사람과 가족내에서까지 원한관계가 전사회구조화 된것입니다. 원한체제의 기본관계는 가해자와 피해자이며, 주목할 점은 이들이 서로 가해와 피해를 교환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원한의 교환이 공평한 원한의 해소나 소멸로 귀결되지 않고 오히려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에 유의하게 됩니다. 정전 후 정전체제는 원한체제를 해소하거나 완화하기는 커녕 더욱 공고한 체제로 발전시켰습니다.
이런 체제는 전쟁 6개월간에 집중된 학살로 인한 것이며 국가보안법은 이같은 체제를 초래하는데 예비, 준비기능을 했습니다. 48년 제정 후 국보법에 의한 학살 처형과 그에 따른 좌익의 반격으로 전쟁에서의 피의 숙청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이 피를 먹고 자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46년 반공체제형성기 이후, 48년 단정수립에서의 국가보안법의 제정, 50년 한국전쟁초기 6개월간에 집중된 살육의 원한체제에 대한 해소 없이 정전체제의 해체만으로는 우리사회의 불행을 치유하기에 역부족이란 생각입니다. 정전체제의 심저에 있는 원한체제의 해체를 위해서는 친일파 청산에 이어 국보법의 폐지를 심각히 고려하여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전쟁에서 우리는 적을 전쟁법상 교전자와 다른 개념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교전자중 하나인
중국에 대해 갖는 감정과 북에 대해 갖는 감정이 너무 다른 것은 정전체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요소입니다. 또 북의 인민군보다 간첩에 대해 갖는 감정은 더욱 극단적입니다. 전쟁법
상 간첩은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며 전쟁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존재이지만 간첩은 군인보
다 더 치명적인 감정을 원한체제에 부여했고 정전체제하에서 실제 간첩사건보다 조작간첩사
건이 훨씬 많이 발생한 것은 원한체제의 확대재생산과정과 연관을 갖습니다. 적이란 말에는
법적 교전자라는 개념이외에 원한의 개념이 숨어 있습니다. 북의 원수라는 용어에선 이같은
개념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북이 내세우는 원한의 대상은 남한이 아니라 미국입니다. 서로 원한의 대상이 일치하지 않으면서도 원한체제를 발전시켜 왔다는 것은 역설입니다. 남북한의 원한의식의 눈높이로 본다면 북에 비해 남은 원한체제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원한에는 대상이 있습니다. 원한은 자신보다 대상이 중요한 체제입니다. 대상에의 의존도가
심한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리스비극에 모순과 부조리를 대표하는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는 신전의 여사제였지
만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왕인 자신의 아버지와 오빠를 죽이고 그의 나라로 건너가 아이들을 낳고 헌신합니다. 그러나 남편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하자 남편에게 원한을 품고, 복수를 다짐합니다. 원수가 된 남편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기가 낳은 아이들을 죽입니다. 남편을 죽이는 대신 자신의 분신이기조차 한 아이들을 죽이는 메데이아의 심리에서 원한은 자기주체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파괴하는데 방점이 있음을 보게됩니다. 주체 스스로에 대한 사랑과 배려의 결핍으로 하여 원한은 자신마저 파괴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북한에 대한 적대적인 증오심은 북을 타도하는 대신 남한의 무고한 국민이나 인재들을 죽이
거나 소외, 배제시키는 방법으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도록 해왔습니다. 그리고 이승만제거계획 같은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그리하여 국가보안법은 북이란 국가를 적대시 하는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안의 원한체계가 해체되거나 느슨해지는 것에 대한 공포와 위기의식에 초점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조차 하는 것입니다. 1972년 북은 사회주의헌법 개정에서 전국영토론, 서울수도론을 포기하고 통일조항으로의 통합을 했습니다. 북한체제의 남한에 대한 우월의식이 이를 가능하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날 남한이 경제, 군사, 외교등 거의 모든 면에서 북한에 대해 우월의식을 갖기 시작한지 오래되었음에도 우리가 영토조항의 개폐나 국가보안법 개폐에 소극적인 것은 우리 스스로 보다 상대에 의존하는 원한체제에 그 이유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현재 우리가 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심과 공포는 가치의 문제라는 점을 인정해도 객관적으로는 북에 비해 과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