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29작전계획에 대하여(245매)2007/12/17 1022
5029작전계획에 대하여
들어가는글
결국 5029작전계획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필자의 불철저함과 게으름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쓴 글은 1차정보원에 대한 분석과 종합을 거친 자료이다. 자료의 분량이 아무리 방대해도 1차 자료의 부실함을 극복할 순 없다. 특별히 중요한 사실을 귀뜸해 준 고마운 분들이 있지만 그들도 결국은 보안을 잘 지켰다. 물론 그분들을 여기에 밝힐 수는 없다. 5029작전계획의 맥락을 이해하는데 이글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작전계획(OPLAN)
5029작전계획이 발표되었을 때 개념계획이란 말이 잠시 화제가 되었다. 정부가 5029의 작전계획발전을 중단시키고 개념계획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는 대목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전계획의 하나가 개념계획이다. 기능계획이란 것도 있다. 역시 작전계획의 하나이다. 그러니 개념계획이란 개념적 작전계획이다. 미군의 작전계획에 대해 알아보자.
미군의 작전계획은 미합참의장이 수립하여 요구하는 임무를 단독사령관이나 통합사령관들이 교전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군사작전의 실행을 위해 준비된 계획이다.(구소련에 대한 선제핵공격인 단일통합작전계획(SIOP:Single Integrated Operational Plan)은 일반적인 작전계획의 개념에서 제외된다. 아마도 재래전이 아닌 핵전이기에 그럴것이라는 판단이 있지만 한국전 당시 아이젠하워가 추진하려고 했던 핵전쟁계획8-52[OPLAN8-52]이 존재했던 것으로 봐서 설득력은 없다. 아직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작전계획은 완성된 형태 또는 개념적 형태로 준비된다. 따라서 개념계획과 작전계획을 분리해서 보는 것은 착오이며, 그 반대로 개념계획을 구체화시키기만 하면 작전계획이 되기에 차이가 없다는 견해 또한 착오이다. 그 ‘구체화’가 많은 절차와 단계를 거쳐 질적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자칫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념형태의 작전계획, 즉 개념계획(CONPLAN)은 그것이 작전계획과 작전명령으로 바뀌어지고, 개조되며 신중하게 확장될 필요를 가진 간략한 형태의 계획이다. 개념계획은 그 계획에서 필요로 하는 고유한 군사력의 배치절차와 병력의 고용절차를 포함하여야 완성된 작전계획이 될 수 있다. 개념계획이 완전한 작전계획으로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합동군사교리가 갖추어야 할 타당성, 실행가능성, 일관성등의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러한 기준은 가용한 자원을 완전한 것이 되도록 하고, 대원들과 설비와 재료, 시간과 지위등의 과다한 손실을 예방할 수 있게 한다.
계획의 타당성 검토는 계획된 작전들의 범위와 개념이 임무와 목표의 성취를 만족하는지 아닌지를 결정한다. 처음 세웠던 가정의 타당성도 평가되어야 한다. 2003년 럼스펠트장관이 작전기획자들에게 요구한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전쟁기획자들이 북한과의 전쟁에 대비한 극비 긴급대책인 작전계획 5027호를 브리핑했다. 럼스펠트는 그뒤 가진 인터뷰에서 그때 받은 충격을 한마디로 이렇게 압축했다. 극비계획이라는 것이 몇 년 지난 구식이었고 주로 그 지역으로 대규모 병력을 수송하는 기계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미국에 이미 부시라는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고 장관이 바뀐 사실도 언급돼 있지 않았다. “북한은 핵무기가 있어 없어” “그들이 핵을 가질려면 1년이면 된다는 거야 2년이면 된다는 거야?” 펜타곤 전쟁기획자들이나 브리핑 담당자나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북한의 군사력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이 계획을 입안한 뒤 오늘날까지 능력이 향상됐나 저하 됐나?” 당시 럼스펠트의 수석 군사보좌관을 지낸 핵잠함 함장 에드먼드 쟘바스티아니 해군중장도 “한국전쟁계획이 선택할 수 있는 대책이 없었고 즉각적인 해법도 결여돼 있었다.‘는 점을 인식했다. 그의 표현으로는 계획서의 요지는 이랬다. “미사려구로 구슬리겠습니까? 아니면 모기 한마리를 때려잡으려고 쇠망치 75개를 그 땅으로 운반하겠습니까?” ….
“…모든 주요계획의 가정들, 계획말고 계획을 세우기 위한 가정들에 대해 브리핑하도록 우선 내가 보고 싶은 것은 가정들이야”
(공격시나리오 p58 봅우드워드,따뜻한 손)
그리고 또한 작계는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지시나 지도 합동군사교리에 완전히 복종되는것이어야 한다. 추가하여 작전계획은 국내법과 그리고 전쟁법, 군사적, 정치적지원을 포함하는 국제법과도 모순되거나 충돌해서는 안된다.
중앙일보(2005.5.23)는 지난 10-13일 용산미군기지에서 5029작전계획을 발전시키기 위한 ‘유엔사 특수전분야 콘퍼런스’가 열렸다고 전했다.
이는 5029가 한국정부의 중단지시와 별도로 개념형태의 작전계획(개념계획)에서 완성된 작계로 구체화되고 있는 과정에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회의는 작전계획과 국제법과의 일치를 검토하는 단계였던 것으로 판단되며, 미 대통령의 전략적 지시나 합동교리와의 일관성, 순응성을 따져보는 과정이 이 회의 전후로 전개되었거나 전개될 가능성을 추측케 한다. 개념형태의 작전계획과 완성된 작전계획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완성된 작전계획은 통합사령부를 지휘하는 총사령관의 작전개념이 완전한 발전되었음을 상징한다. 작계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총사령관과 참모들이 승인한 작전개념이 전역戰域을 지원하는 모든 가용자원들의 상세한 흐름으로서 발전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이후에 병력이 선택되고, 시차별지원요구가 결정되고, 그것을 실제로 전환시킬 변환가능성이 수립되고, 마지막으로는 자세히 계획된 정보가 시차별병력전개목록 (TPFDD:time-phased force and deployment data)화일로서 산출되고 저장된다.
배치계획에 관한 많은 자세한 업무들은 기술적지도와 상세한 공식명령문서를 총사령관이 공포한 뒤 군의 해당부서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고용계획은 어떻게 병력을 사용해 왔고, 합참의장 의해 승인되어온 사령관들의 계획이 지원된 후에는 합동기동부대와 구성군사령관에 의해 어떻게 일해왔는가 하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어디로’, ‘언제’ 배치 할 것인가는 마지막으로 산출된 작전개념의 일부인 개념배치에 의한다. 즉 개념계획의 마지막단계는 개념적 배치인 셈이다. 결국 많은 총사령관의 업무는 배치이다. 시차별부대배치목록은 위치와 전시기간, 대원의 수 등에 대한 통계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사령관들의 작전계획은 병참의무와 그에 상당하는 병참요구목록의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시차별부대전개목록과 연관된다. 시차별부대전개목록은 오직 전구에서의 초기기동요구만을 수립한다. 연속기동요구목록은 전역을 통하여 총체적인 변환요구를 결정하는데 있어 중요하다. 그러나 전역의 모든 단계에 걸쳐 시차별부대전개목록과 연속기동요구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작전계획자들도 두개의 전구에서 이러한 부족을 알고 있으며 사건에 대처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http://www.globalsecurity.org/military/ops/oplan.htm)
주한미군의 작전계획 담당자들은 한국에서의 최초의 30일 동안의 연속기동요구목록인 전시기동계획을 발전시켜 왔었다. 이에따라 전쟁예비물자(WASA-K)와 긴급소요부족품목록(CRDL)도 30일분을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유엔사와 한미연합사가 작성한 5027-98은 북을 ‘점령’하는 단계까지를 상정한 시나리오이다. 그리고 5029는 북의 ‘붕괴’를 상정하고 있다. 이미 30일 이후의 계획들이 세워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개념계획은 5029와 5028이 있다. 한 신문기자가 개념계획과 우발계획을 혼동하여 소개한 일이 있다.
얼개만 세워놓은 계획을 ‘개념계획’이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Concept Plan이라 CONPLAN으로 약칭한다. 한반도에 적용되는 다섯 개의 계획 중 5028이 바로 개념계획이다.
전면전이 아닌 상태에서의 분쟁을 ‘우발(偶發)적 사건’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개념계획은 우발상황에 대비한 우발계획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우발계획은 영어로 Contingency Plan이라 똑같이 CONPLAN으로 약칭된다.1994년 12월1일 한국군은 미국군이 갖고 있던 한국군에 대한 평시작전통제권을 환수했다. 이로써 한국의 육해공군과 해병대는 평시에는 한국군 합참의 작전통제를 받고 전시에는 한미연합사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우발적인 것으로 보이는 북한군의 도발을 평시 상황으로 볼 것인가 전시 상황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는 1996년 9월의 강릉 잠수함 사건과 1999년과 2002년 북방한계선상의 남북해군 교전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군 합참이 담당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러나 연합사를 지원하는 태평양사는 자기네 차원에서 우발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1996년 이후 CONPLAN 5028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념계획은 전면전계획보다 훨씬 더 사용빈도가 높기 때문에 더 높은 단계의 비밀이 요구되고 있다.(2003.9월호신동아)
개념계획과 우발계획의 약자가 같다는데 착안된 것 같은데 이는 좀 엉뚱한 것이다. 개념계획을 우발계획과 동일시하여 전면전 계획과 비교하고 있는 것도 오류이고, 개념계획의 사용빈도가 높다는 것도 착각이다. 사용빈도가 높기 때문에 더 높은 단계의 비밀이 유지된다는 것도 착각이다. 개념계획과 우발계획은 추상차원이 다른 분류 개념이다. 한편 5028을 우발계획이라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현재까지 공개된 자료의 수준에서 볼 때 작계5028은 병참과 수송계획으로 추정되고 있다. 병참은 이라크전과 역대전사에서 보여지듯 가장 중요한 작전이다. 전투의 성패는 이미 병참에 의해 판가름 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5028은 중요한 것이 분명하다. 실제 한 단체의 지도자도 아직까지 비밀인 5028이 가장 무시무시한 것일 거라는 우려를 나타내는 것을 본적이 있다. 아마도 위의 기사에 근거한 판단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때로 잘못된 정보는 오히려 미군의 능력을 전지전능한 것으로 비추게 하는 요인이 된다. 의도하지 않은 심리전인 것이다.
시차별병력과 배치목록을 가진 작전계획과, 아직 갖지 않는 개념계획(CONPLAN)과 기능계획(FUNPLAN)은 합동전략능력계획에 의해 할당된 임무와 미합참의장의 다른 지시를 완수하기 위하여, 각 사령관들에 의해 준비된다. 어쨌든 개념계획도, 기능계획도 모두 작전계획의 한 형태이다. 다음 인용문을 보자.
럼스펠트는 스스로 ‘개념적’이라고 일컫던 시간계획을 하나 갖고 있었는데, 대통령이 아직 전쟁개시 일자를 재가하지 않아 그 안에 적혀 있는 각각의 작전계획에 날짜가 명시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2주간에 걸쳐 일어날 수 있는 상황과 그 결과들이 상세히 들어있었다. (공격시나리오 p428. 봅우드워드)
럼스펠트가 가지고 있던 개념계획은 날자만 명시되어 있지 않을 뿐 2주 분량의 작전내용이 상세히 들어 있었다. 작전이 실행될 시간만 결정되면 그것은 완성된 작전계획이 되는 것이다. 한편, 사령관들은 합동작전계획과 실행체계 목록안에서 형식과 내용을 표준화시켜야 한다. 그것은 군사령부들 사이에 작전계획과 연관된 통신이 두절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완전한 작전계획의 분량은 어느 정도일까? 예를들면 두 개의 작전계획을 운용한 이라크 작전계획의 경우 한 계획의 분량만 8백 쪽에 달했다.
작전계획 1003호로 명명된 기존의 이라크 전쟁계획은 대략 2백쪽 분량인데 병참. 첩보. 육,해,공작전등 20개 항목에 걸쳐 6백쪽의 부록이 붙어 있었다. 이 계획서에는 군사작전을 펼치기 전 대략 7개월에 걸쳐 50만명의 장병을 중동으로 보내는 것으로 돼 있다. (위의 책 p27)
정부가 작계5029를 작전계획의 발전을 중단시키고 개념계획 수준을 유지할 것을 요구한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나 이미 개념계획이란 단계를 벗고 작전계획이란 말을 쓰고 있었던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 완성된 작전계획에서 우리정부가 문제제기한 부분만을 수정보완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결론을 말하자면 한미연합사에서 유엔사계획으로 전환하면 모든 것이 간단히 해결된다.
5029작전계획의 발전정도는 결국 그 역사를 봐야 하는 문제이다.
작계5029의 역사
작계 5029의 본격적인 시작은 96년으로 판단된다. 96년 2월 주한미군사령부는「북한 하부구조 붕괴유형」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만들었다.
주한미군의 한 고위소식통은 『주한미군은 지난달 북한 체제가 붕괴하면서 밟을 7단계 시나리오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었으며 이 시나리오는 게리 럭 주한 미군 사령관 등 주한미군 고위관계자들의 적극적인 지지 아래 미정부 고위관계자들에게 보고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이 보고서는 이양호 국방장관과 김동진 합참의장 등 한국군 수뇌부에도 최근 통보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측은 이 시나리오를 토대로 단계별 북한 붕괴 대응방안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전해졌다.(조선일보1996.3.25)
이 보고서는 전쟁발발 가능성을 제외할 경우 북의 붕괴가 ①식량난 등 자원고갈 단계로부터 시작돼 ②대상을 선별해 자원을 공급하는 차별화 단계 ③생존을 위협받음에 따라 각 지역별로 자구책을 마련하는 지역 독립 단계 ④중앙정부의 억압단계 ⑤(내부)저항 단계 ⑥폭력을 수반한 균열단계 ⑦권력 재편 단계 등 7단계를 밟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이 보고서는 북한이 당시 붕괴 2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분석, 이미 북의 초기붕괴과정이 시작됐음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의 붕괴에 대한 확신은 무르익어 당시 현역 미군장교인 데이비드 맥스웰은「북한의 파국적 붕괴와 미국의 대응」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계간「사상」1997년 가을호)
작전계획5029는 한미양국이 1996-97년경 북의 붕괴가능성을 가정하고 준비되어 1999년 개괄적인 ‘개념계획(CON-PLAN) 5029’으로 선을 보였다.
당시 한 기자의 질문에 틸럴리 사령관은 다음과 같이 답함으로서 5029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붕괴에 대비한 작전계획「컨-플랜(con-plan) 5029」를 최근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비밀계획에 대해 언급하긴 곤란하다. 하지만 우리는 양국 국민이 원하는대로 어떤 양상에도 대비토록 준비하고 있다. (조선일보 1999-08-11)
이때 5029개념계획과 함께 한국군의 고당(古堂) 조만식의 호를 딴 고당계획도 수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9년은 존틸럴리가 유엔사령관겸 한미연합사령관겸 주한미군사령관을 수행 할 때였으므로 틸럴리사령관에 의해 입안된 것으로 보인다. 틸럴리는 야전사령관급이라기보다도 전략기획통으로 당시에는 차기 합참의장감으로 하마평이 오르내리던 인물이었다. 그는 1999년 유고전 당시 클린턴의 유고전 정책에 대해 반대를 표했던 1월 국방성의 탱크룸 회합에 참석했던 인물중의 하나였으며 1차 서해교전 당시 준전시상태를 선포한 인물이기도 했다. 한편, 북의 붕괴상황을 상정한 작전계획과의 깊은 연관속에서 한미연합사의 구조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 1998년 한미연합사내에 한미연합민사사령부가 설치되고 유엔사와 한미연합사 차원에서 5027-98이 완성된다(UNC/CFC OPLAN 5027-98).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작전수립의 주체로 유엔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유엔사는 78년 한미연합사에 작전통제권을 이양했으나 북의 점령을 상정한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작전주체로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작전계획5027-95는 미8군 작전계획(EUSA OPLAN 5027-95)이며, 개념계획5028-96은 태평양사령부작전계획(PACOM CONPLAN 5028-96)이다.
북의 점령을 상정한 작계 5027-98과 북의 붕괴를 상정한 작계5029가 같은 시기에 발전한 것이나 계획의 주체가 유엔사와 한미연합사인 점은 우연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내용을 보자
북 붕괴나 점령시 한미양측은 두 가지중 하나의 시나리오를 적용할 것이다.
하나는 북을 한국군이 접수했을 때 대한민국헌법이 규정한 ‘수복지구’로 규정하여 한국군 함참의장을 계엄사령관으로 하여 북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이 경우 곧바로 한국경찰과 검찰이 북측지역에 들어가 민사업무를 총괄한다. 그 뒤 약간 간격을 두고 행정기관 및 공공시설이 북에 들어가 ‘충무계획’에 따라 북의 통치를 가능케 하는 행정 및 기간망 구축에 착수한다. 북 붕괴나 점령시 가능한 그리고 유력한 또 하나의 시나리오는 접수된 북측 지역을 ‘점령지구’로 규정하여 한미연합사를 중심으로 군정을 실시하는 방안이다. 군정실시를 위해 98년 연합민사사령부가 설치되었다. 민사작전은 전후처리과정에서 정치·군사적 목적을 위해 지역 주민의 다양한 요구와 정부행정 기능이 고려된 치안유지, 행정지원, 구호활동, 자원관리, 선무심리전 등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1998년 설치된 한미연합민사사령부의 상당수가 한국군이긴 하나 이러한 군정하에서는 한미연합군의 헌병과 군검찰이 북측지역의 치안을 담당한다. 북의 병원조직도 한미연합군의 의료기관이 담당한다. 연합사의 사령관이 유엔사령관과 주한미군사령관을 겸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미군주도의 통일이 되는 것이다.(주한미군p300~301김일영,조성렬,한울아카데미)
통일부의 고위급관계자는 북의 붕괴시 북에 진입하여 통일부장관이 통치주체가 된다는 충무계획이 유엔사와 합의 된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당연히 실효성을 위해 합의된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유엔사와 한미연합사의 5029작전계획이 발표되었고 이는 충무계획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정부가 급기야 중단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완전한 작전계획으로의 발전과정에 있었을 5029와의 연관속에서 작계5027-98이 탄생된 것이라면 미군은 이미 북의 통치에 관한 구상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1999년 초에는 연합심리전사령부가 창설됨으로서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구체화 되었다.
두나라 심리전 부대로 공동 편성되는 연합심리전사령부는 전쟁 직전단계인‘데프콘-3’이 발령되면 즉각 가동돼 북 주민들을 대상으로 선무공작 등 각종 연합심리전을 수행, 북주민의 저항을 누그러뜨리고 자유민주체제에 동조토록 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한·미 두나라는 북과 언어·문화적 배경이 같은 한국군과 첨단 심리전장비를 갖춘 미군이 연합작전을 수행하는게 효과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이번 연합심리전사령부 창설에 합의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미군이 보유한 ‘코만도 솔로’로 불리는 ‘EC130’ 항공기는 심리전효과를 극대화할 것으로 우리 군당국은 기대하고 있다. 이 항공기는 AM·FM라디오 방송과 TV방송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적의 방송을 중단시킬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있어 ‘하늘을 나는 방송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인공위성 송수신체계를 탑재, 적의 전파를 교란시키고 적이 아군 전파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첨단전자전 기능까지도 수행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 관계자는『북한이 침투도발을 자행해 전쟁이 발발했을 때 한-미 양국군이 북한지역을 수복해 심리전사령부가 투입되면 북한주민을 상대로 자유민주체제의 우월성을 전파하고 이들을 동화시키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세계일보 1999.01.15)
연합민사사령부 창설에 이은 심리전사령부의 창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략심리전이란 냉전체제와 같이 무력 사용이 억제될 때 전쟁수행 목적보다는 국가의 외교정책 일환으로 사용되는 심리전이고, 전술심리전이란 무력투쟁 시기에 무력투쟁의 보조수단으로서 사용하는 심리전을 말한다. 선무심리전이란 아군의 점령지역이나 해방지역에서 군사작전을 용이하게 하고, 지역주민의 안정과 협조심을 증진시키며, 대정부 신뢰감 획득 및 조성을 목적으로 실시하는 심리작전을 말한다. 이러한 선무심리전은 민사작전 기능 중 하나로 피지배 주민들에게 전개하는 사회심리활동의 필수적인 임무다. 한국전 당시의 심리전사례를 보자.
한국전 당시 <심리전>귀순의 권유 역시 진주 후 남한의 주요통합정책의 하나였다. 유엔군은 이를 위해 북한병사들에게 귀순을 권유하는 ‘안전보장증명서’를 대량으로 살포하였다.
‘당신들이 생명과 건강을 귀중하게 생각한다면 이 좋은 기회를 노치지 말고 빨리 넘어 오라. 좋은 음식과 따뜻한 의복과 맛좋은 담배가 많이 준비되어 있다.’ 김일성과 북한주민들을 갈라놓은 것도 한 방법이었다. 김일성을 가짜라고 공격하는 흥미있는 전단을 살펴보자.
‘김일성이라고 자칭하는 자는 여러 가지로 한국 사람을 속여왔고 그중에도 제일 고약한 것은 이자가 한국의 위대한 영웅인 김일성으로 거짓 행사한 것이다. 이자는 절대로 김일성이 아니다. 진정한 김일성은 1885년에 나서 15년 전에 만주에서 돌아간 분이다. 이 가짜 김일성은 1910년까지는 나지도 않았다. 이자의 정말 이름은 김성주이다. 공산주의자로 1945년에 쏘련서 한국으로 보낸 자다. 이자는 김일성이라고 행세하면서 사람들의 신망을 얻으려고 했다. 얼마동안은 성공했으나 지금은 누구나 이자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정한 김일성은 한국의 적과 싸운 위대한 군사적 지도자였다. 이 김성주는 한국사람으로 하여금 동포끼리 죽이게 만들었다. 이 자는 권세욕과 무능으로 말미암아 한국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이자는 모든 진정한 한국사람의 적이다.’
(KBS 6.25 40주년 특별제작반,<다큐멘타리 한국전쟁> 상 p299
북한을 점령하면서 남한정부의 공보처는 “때는 왔다”면서 북한동포들에게 지난 5년간의 공산통치를 위로하고는, 국군과 연합군이 북한의 침입을 저지하고 거꾸로 38선을 넘어 북진하고 있음을 알렸다. 전단은 “ 한국군과 연합군이 입성하는 곳곳마다 감격의 태극기의 바다로 화하고 있는 열렬한 환영”은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광경”이라며 국군에 대한 적극적 결사적인 협력을 촉구하였다. 전단은, “불의를 행하는 자가 패망하지 않은 역사가 없고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며 공산악귀의 거짓말 선전에 속지말고 순응하지 말며 무슨 방법으로든 살아 광명한 천지에서 자유를 누리자고 호소한다.
(KBS 6.25 40주년 특별제작반,<다큐멘타리 한국전쟁> 상p324-325/ 한국1950 전쟁과 평화 p597 재인용
민사사령부와 심리전사령부는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심리전사령부는 심리전이론을 연구, 발전시키고 선전자료와 라디오방송을 할 뿐 아니라 민사활동도 담당했다. 자료제공군단 및 사단에서는 정치전 참모부가 일반 참모부보다 상위에서 심리전과 민사업무를 주관하며 군 방첩업무와 헌병업무도 겸했다. 또한 각군단의 민사중대가 심리전 대대의 예하부대로 되어 있었다. 1989년 파나마침공때에도 미군은 민사심리전부대를 운용했다.
한편 이라크에서 보듯 심리전의 가장 큰 과제는 북에 진입할 경우 한미연합군이 점령군이 아닌 해방군임을 인식케 하는 것이다. 점령군으로 인식될 경우 상대영토에서의 민사업무는 난관에 봉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시 연합군과 독일군 간에 수행된 심리전에서 연합군은 대내외 선무심리전에 중점을 뒀다. 당시 연합군의 심리전 목적은 첫째, 적의 점령지역에 있는 주민들에게 해방의 희망을 갖게 하고, 점령군에 대한 저항을 약화시킬 것. 둘째, 중립 국민으로부터 정신적 지지를 획득할 것. 셋째, 연합군의 분열을 노리는 독일의 선전공작에 대처해 연합군의 사기를 고취하고 상호간의 이해를 깊게 할 것 등에 두고, 심리전 기구와 전문요원, 그리고 예산을 확보해 체계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막강한 국가 조직에 의해 선전심리전으로 일관했던 히틀러의 독일군을 패퇴시켰다. 점령정책에서 심리전은 보이지 않는 탄환인 것이다.
한미연합사령부내의 심리전 사령부는 주로 한국군으로 이루어졌지만 미군의 지휘를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향후 점령정책에서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 것인지는 이미 한국전쟁에서 답을 구할 수 있다.
국방차관 장경근은 1950년 11월 1일의 전시국회에서 북한지역에서의 정훈공작문제에 대해 언급하며 남한정부의 고뇌의 일단을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정치공작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참 우리군으로서도 고생이 많습니다. 지금 일체 정훈공작대원은 북한에 보내기가 곤란합니다. 북한에 대한 군정실시 방향이 아직 명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이점에 대해서는 많은 고생을 느끼고 있습니다.”
통치주권에 대한 합의가 끝난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군정방침이 정해진 다음에서야 체계적인 대북공작과 점령정책을 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답변이었다. 상층의 합의가 점령현지의 문제까지 해소시켜 준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아가 장경근은 비록 계엄상태이지만 군대의 완전동원은 어려워 도지사 회의를 통해 각도의 공보기관, 정보기관을 동원하는 것은 물론 국민반까지 세포조직화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변하였다. 그의 답변을 통해 볼 때 남한정부는, 그것이 가능하다면 일반국민을 조직화하여 북한지역에 투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장경근은 아래와 같이 답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에 대해서는 국제관계가 명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곤란을 느끼고 있습니다.
(국회속기록8회 40호 p36-37;1950한국 전쟁과 평화 p 601~602 재인용 박명림,나남출판)
장경근이 말한 국제관계란 유엔, 즉 유엔사와의 관계이다. 북에 대한 점령주체는 당시 한국이 아닌 유엔사였고 정전이후 5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한미연합사의 심리전사령부는 1950년 10월 1일 유엔총회 결의에 따라 부여된 유엔사의 권한에 의해 유엔사령관 겸 연합사령관이 행사하게 될 것이다. 5029작전계획이 발전되어온 역사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유엔사의 강화이다. 뒤에서 상세히 검토해 보겠지만 5029작전계획의 국제법적 조건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주체가 유엔사이기 때문이다. 형식만 남은 군사기구, 언젠가는 해체될 군사기구라는 인식이 유엔사에 대한 이미지였다. 그러나 2002년 경의선지뢰상호검증단 제안이후 2000년 11월 17일 유엔사와 인민군간에 체결된 남북관리구역에 대한 합의서를 부정하고 유엔사는 다시 유엔사령관의 비무장지대 관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1년간의 대치 속에 한국정부가 편법을 마련하고야 남북철도공사는 간신히 재개되었다. 당시 유엔사는 이것을 유엔사의 권위와 존재를 확인한 쾌거로 생각했다. 2003년에는 라포트가 유엔사령관 자격으로 합참의장과 연합사부사령관 신일순을 일본에 있는 7개의 유엔사 후방기지로 초청하는 형식을 빌어 일본 후방기지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급기야 라포트는 미의회 청문회에 참석 유엔사령관자격으로서 증언하길, 앞으로 유엔사 직원수를 늘리고 유엔군 참전국을 불러들일 계획임을 밝혔다. 유엔사의 구조가 강화된 결정적 증거는 5월 10일부터 있었던 유엔사특수전 회의였다. 남측정부에 의해 5029작전계획이 중단되었다는 보도이후 5029작전계획을 발전시키기 위한 회의가 있었음을 10일이나 지난 뒤에 언론에 흘렸다. 이는 한미연합사에 평시작전권으로서 위임된 연합위임사항(CODA)중 ‘작전계획의 수립’을 한국정부가 문제제기 했을 때 너무나 쉽게 유엔사의 이름만으로도 진행할 수 있음을 증명해준 사건이었다. 5029작전계획에 대해 유엔사가 작전계획수립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작전계획 뿐아니라 교리도, 이에 따른 교전수칙과 군사연습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5029를 개념계획으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하지만 북의 점령이나 붕괴시에 따른 대책기구가 이미 만들어져 있고, 남측정부와 무관하게 붕괴를 상정한 작전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융통성 있는 군사기구로서 유엔사도 한미연합사 창설이전 수준으로 부활되고 있다. 북의 붕괴를 상정한 작전계획이 가동되는 순간 유엔사에 전쟁권과 북의 점령통치권이 인정되었던 50년전 한국전쟁 상황으로 모든 것이 환원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5029의 내용과 분석
전제-북의 불완전 붕괴
작계 5029는 ‘글로벌 시큐리티’에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경우 북측 난민의 유입과 다른 비상 상황을 다루기 위한 준비”라고 설명이 돼 있다. 북의 유사시 대비를 그동안 작전계획이 아닌 개념계획으로 두고 있었던 이유는, 작전계획으로 하기에는 국제법상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계획에는 북 내부의 정변이나 대규모 소요사태, 정권의 붕괴, 대량 난민사태 등을 열거하고 각 단계마다 취할 군사적 조처를 상세히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반적으로 체제의 붕괴(collapse of regime) 또는 정권의 붕괴(collapse of political power)란 정치학적 사회학적 개념으로, 그것은 정부의 종료(Extinction of government) 또는 정부의 부존재(non existence of government)를 의미한다.(W.E.hall. A tretise on international law(London.Stevens.1909 p21 Ti-Chinng Chen The International Law of Recognition(London Stevens 1951) p.66 재인용)
정부의 붕괴는 불완전붕괴(temporaty collapse)와 완전붕괴(entire collapse)로 나누어진다.
불완전 붕괴는 불완전하나마 몇개의 경쟁적 정부가 존재하는 붕괴로 이는 국가의 종료나 국가의 부존재상태가 아니다. 불완전 붕괴란 종래의 정부는 중앙적 통제력을 상실하고 이에 대항하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반란단체(insurgency)가 종래의 정부와 투쟁하는 내란 상태에 있거나 종래의 정부가 붕괴되었으나 이를 대체하기 위한 둘 이상의 반란단체가 각자 자기의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상호 투쟁 하는 상태에 있는 붕괴를 말한다.
이는 완전 무정부 상태(entire anarchy)가 아니라 불완전무정부(temporary anarchy)상태, 즉 내란상태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불완전 붕괴의 경우는 타국은 그 불완전상태에 있는 국가의 영역고권을 존중해야 한다. 완전붕괴는 내란상태에 있는 불완전무정부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정부도 존재치 않는 완전무정부상태를 의미한다. 완전붕괴의 경우 이는 국가가 아니므로 타국은 그 붕괴된 국가의 영역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Thomas and A.J.Thomas Non intervention(Dallas: Southern Methodist University Press 1959) p221
Eyal Benvenist. The International Law of Occupation (Princeton University Press1993)p4.
George Schwarzenberger International Law of Armed Conflict Vol 2 (London: Stevens.1968) p317
Myres A.Medougal and Florentins P. FELICIANO. THE INTERNATIONAL LOW OF WAR (NEW HAVENPRESS 1994 )P 732-733
그러나 완전붕괴의 경우는 지극히 희소하며, 불완전붕괴의 경우가 대다수이므로 타국은 그나라의 영역고권을 존중해야 한다. 5029작전계획이 국제법적 문제에 민감한 것은 바로 불완전붕괴를 상정하기 때문이다. 남측 정부 차원에서도 북의 내부 급변(急變)사태에 대한 대비책을 운영해 왔다. 그러나 5029는 한·미 양국군의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포함하고 있다. 큰 시나리오 줄기는 대략 5가지 정도로 알려져 있다.
1. 내전
5029작전계획에는 쿠데타 등으로 인한 북한 내전(內戰) 상황에 대한 대응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에서 내전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은 쿠데타 외에 주민 또는 군부대의 무장 폭동,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변고를 들 수 있다. 이때 한·미 양국군은 내정 불개입 원칙에 따라 북측 지역으로는 진입하지 않되, 이로 인한 피해가 한국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봉쇄’에 주력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계획에서 두가지 단어에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 ‘내전’과 ‘봉쇄’이다.
첫째 ‘내전’에 대해 알아보자. 불완전붕괴에 대한 타국의 의무는 전시와 평시로 구분된다. 내란의 주체가 교전단체(BELLGERENCY)로 승인되기 이전 반란단체에 대한 타국의 의무를 보면 일국의 내란에 대해 타국은 새로운 의무를 부담치 않는다. 오히려 타국의 반도를 교전단체로 승인하면 이는 정통 정부에 대한 내정간섭으로 국제법위반 행위가 된다. 내란은 일국의 문제이며 국내문제에 대해 타국은 간섭하지 않을 ‘불간섭의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내란의 가장 전형적인 사례인 쿠데타에 대해 미국은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를 보자.
에티오피아의 경우를 보자.1967년 에티오피아는 연방의 일원이자 독립국인 에리트리아를 자국영토로 편입시키고자 했고 에리트리아는 에티오피아정부에 맞서 저항운동을 벌였다. 당시 천혜의 청음통로로 미국국가보안국(NSA)의 북아프리카 첩보기지가 건설되어 있던 이곳이 위험에 처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미국은 주둔국과의 합의를 깨고 에티오피아정부를 도청한다.
NSA는 에티오피아 정부와 반군양측 모두를 도청하려 했다. 하지만 주둔국에 대해서는 도청하지 않는 것이 NSA의 방침이었다. 또한 다수의 에티오피아인들이 카그뉴기지에서 일부작전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으므로, 그같은 도청시도는 신속히 새어나갈 것임이 분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도청업무는 에리트리아 밖에서 수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NSA는 영국첩보기관인 정보통신본부(GCHQ:Government Communication Headquarters)에 도움을 청했다…에티오피아정부에 대한 도청은 아덴주재 영국최고 사령부사무실에서 하기로 결정하였다…블레츨리 파크에서 속성과정을 이수한 3명의 정보통신본부요원들이 작전을 위해 아덴에 배치되었다. 도청기지는 최고사령부건물내부의 안전한 방에 설치되었고, 요원들은 통신전문가로 위장했으며, 안테나는 깃발게양대로 위장했다. 당시 도청요원이었던 조크케인은 이렇게 말했다. “NSA가 도청을 요청한 최우선 대상은 두말할 나위없이 에티오피아군부였다. 군부쿠데타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NSA1p234-235,제임스뱀포드,서울문화사)
도청기지의 안전을 위해서, 쿠데타세력의 동향을 다양한 방법으로 추적하고 필요하다면 주둔국과의 합의를 깨는 것 정도는 어려운일이 아니다. 에티오피아의 경우가 정부기관중 한부서차원의 판단에 의한 작전이라면 국가통수권자인 미대통령이 결정을 내려 개입하는 더 극적인 경우도 있다. 미국이 쿠데타에 개입한 근래의 사례로 1989년 파나마의 노리에가 정권 전복을 위한 작전계획 ‘블루스푼’을 들 수 있다.
노리에가를 제거하는 것은 미국의 계획상 상당히 중요한 일이므로, 설익은 지도자에 의한 설익은 쿠데타는 곤란합니다.”하고 파월은 말했다. 그는 최소한의 행동만을 원했고 미국측에서 어떤 어리석은 조처를 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쿠데타모의자들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들어주기엔 몇가지 문제가 있었다. 수백명의 병사를 동원해서 쿠데타모의자들이 미국측이 봉쇄해주기를 원하는 도로에서 통상적인 군사훈련을 시행할 수도 있었다. 이같은 의견이 제시되었고, 이는 체니의 승인을 받았다. (The Commaners사령관들 p123 보브우드워드 중앙출판사)
미국은 내란주체인 반노리에가 쿠데타세력을 인정하고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며, 함께 모의하여 작전계획을 가동한다. 몇몇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파나마에서도 쿠데타가 발생한 뒤 들어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쿠데타모의자들과 공모하여 작전을 훈련으로 위장하면서까지 치밀하게 개입하였다. 국제법적으로 타국은 반도가 교전단체의 승인요건을 구비하기 전에는 교전단체로 승인하지 말아야할 의무를 부담한다. (JAMES W GARNER. “QUESTIONS OF INTERNATIONAL LAW IN THE SPANISH CIVIL WAR” AJIL. VOL 31 1937 P.70 HULL AND NOVOGROD P.77)
바로 이런 경우 때문에 유엔헌장 2조7항은 내란등에 대해 타국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2조7항. 이 헌장의 어떠한 규정도 본질상 어떤 국가의 국내 관할권안에 있는 사항에 간섭할 권한을 유엔에 부여하지 아니하며, 또는 그러한 사항을 이 헌장에 의한 해결에 맡기도록 회원국에 요구하지 아니한다.
파나마의 경우 미국은 반노리에가 쿠데타세력에 대한 교전단체 승인의 의무가 없다. 요컨대 평시붕괴의 경우 타국은 그 내란의 주체가 교전 단체로 승인되기 이전에는 이를 지원해주지 말아야 할 국내문제 불간섭의 의무를 부담한다.
내란단체가 교전주체로 승인된 이후에는 국내적 무력충돌은 내란이 아닌 전쟁인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타국은 교전단체의 승인으로 정통정부를 지원하지 말아야 할 중립의 의무를 부담한다. 전쟁에 대한 제3국의 중립의 의무는 전쟁 당사자 모두에 대해 공평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개입이 가능한 경우는 이미 파나마가 전시상태에서 붕괴되는 경우이다. 전시의 붕괴는 평시의 붕괴와 달리 타국은 중립의 의무 또는 반란단체를 지원해 주지 말아야할 국내문제 불간섭의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은 전시가 아닌 평시상태에서 그 어떤 붕괴상태도 아닌 상황에서 반란단체를 지원하여 그들이 교전단체로서의 요건을 구비하기도 전에 개입했던 것이다. 이는 명백히 유엔헌장상 내정불개입 원칙의 광폭한 위반이다.
이제 5029작전계획이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북에서의 쿠데타의 발생이나 주민폭동, 김정일위원장의 변고등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미국은 쿠데타세력을 교전단체로 승인할 수 없으며, 개입할 수는 더더욱 없다.
그리너트 사령관은 17일자 성조지 인터뷰에서 “만약 (북한)정권이 붕괴한다면 우리(미국)에게는 큰 문제가 될 것”이라며 “정권이 붕괴하거나 안정에 문제가 생긴다면 우리는 투입되어(go in) 북한의 질서를 회복하는데 조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너트 사령관의 발언은 북에 급변사태가 나 대량 난민이 발생한다면 군사적 대응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었다. 특히 작전계획 초안에는 북한에서 정변이 발생할 경우 ‘데프콘(방어준비태세)3’을 발령하도록 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에 쿠데타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때 미국은 어떻게 대응할까? 이라크에서 비슷한 경우에 대처했던 미국의 방식을 보자.
대통령은 상황실로 내려가 이라크에 쿠데타가 일어날 경우 대처방안에 대한 브리핑을 들었다. 거의 불가능해 보이지만 어쨌든 대비책은 있어야 했다. 만약 이라크 군부 누군가가 후세인으로부터 권력을 탈취한다면 그냥 손놓고 볼 수 만은 없었기 때문이다….대통령과 국가안보회의 멤버들은 정식으로 ‘쿠데타시나리오’에 대해 의견을 나눈 뒤 실제로 그런일이 발생한다면 미국은 새 지도자가 미국이 임명한, 헌법에 부합되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부에 권력을 이양할 것을 즉각적으로 촉구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안보위원들은 금세 주둔요청이 있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데 합의했다. 미군은 즉시 개입해야 한다. 이는 민감하고도 도발적인 조치임에 틀림없었으나, 쿠데타가 일어나더라도 군사개입을 피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이라크 반체제 세력은 2주내에 북부 이라크의 쿠르드족 거주지에서 회의를 개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회의는 의도적 도발이었다. 이는 분명히 후세인을 화나게 할일이었고 따라서 그가 공격해 올 가능성도 있었다…안보장관들은 쿠르드족에 대한 직접 공격은 후세인측으로서는 실수일 뿐더러, 국제사회의 반 후세인 정서를 확산시킬 것 이라는데 의견을 함께 했다. 대통령은 회의적인 반응이었으나 일단 시도해보라고 허락했다.(공격시나리오 p409-410 봅우드워드)
내란상황에서 미국이 국제법을 무시하고 불법으로 개입할 가능성은 이토록 많은 것이다. 미국은 위기에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두 번째는 ‘봉쇄’란 단어에 대해 알아보자.
봉쇄는 적국 해안의 일정 부분을 가로막음으로써 어떤 선박도 그 해안에 접근하거나 그곳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전투행위이다. 7함대 사령관의 언명에 비추어 북의 불완전붕괴시 핵잠수함과 항공모함등을 이용한 해상봉쇄를 어렵지 않게 상상해 볼 수 있다.
핵추진잠수함에 의한 실효적봉쇄의 전형적 실례는 1982년 포클랜드전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국은 포클랜드섬의 반경 200해리 해역에 대한 해상봉쇄를 선언하였는데 영국 핵잠수함HMS Superb호와 Spartan호에 의해서 이 봉쇄는 완벽하게 실시되었다. 무선통신, 레이더를 비롯한 고도의 탐색장비는 잠수함으로 하여금 광대한 봉쇄수역을 통제할 수 있게 한다. 잠수함 이외의 항공기에 의한 봉쇄도 가능하다. 광대한 지역의 봉쇄를 실시키 위해 항공모함에서 발진하는 항공기세력으로 실효적 봉쇄가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봉쇄지역으로 접근하는 수상함정의 통제는 무선으로 가능하다. 봉쇄파괴의 혐의가 있는 함정의 검색을 위해 항공기는 혐의선박을 봉쇄실시자의 수상함쪽으로 유도할 수 있다. 봉쇄파괴를 기도하는 수상함정이나 잠수함의 능력도 당연히 발전되어갈 것이므로 검색이나 나포의 시간적 여지가 없게 되는 경우는 이러한 절차 없이 봉쇄파괴자로 간주하여 격추시키게 될 것이다. 포클랜드전쟁에서 영국이 그 전체출입금지구역(Total Exclusion Zone)을 파괴하는 모든 수상세력을 무경고 격침하기로 한 것이 그 예이다. 따라서 봉쇄에 관한 교전수칙이 문제가 될 것이다. 아직 이에 대한 정보가 충분치 않으므로 언급할 기회를 다음으로 미룬다.
봉쇄는 전시봉쇄와 평시봉쇄가 있다. 평시봉쇄의 경우에는 봉쇄선을 넘은 선박 중에서 봉쇄된 나라의 선박·적하물만을 나포,억류하는 일은 인정되지만 몰수는 할 수 없다. 제삼국의 선박·적하물은 나포,억류할 수도 없다. 한때 평시봉쇄를 복수수단으로 이용하였으나 현재는 복수로 행하는 무력행사는 금지되어 평시봉쇄는 허용되지 않는다. 때문에 봉쇄는 전시봉쇄만이 가능하며 해상봉쇄를 당하는 입장에서 이를 전쟁행위로 인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미국의 1962년 쿠바봉쇄 사례를 살펴보면 미국은 전시봉쇄도 아니고 평시봉쇄도 아닌 새로운 법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5029작전계획에서도 봉쇄의 법적근거가 역시 문제의 쟁점일 것으로 판단된다.
1962년10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봉쇄를 선언하기 직전, 국무성 법률고문 체이스(Abram Chayes)에 의해서 그 법적근거를 UN헌장 51조에 의하기보다, 미주의 안전보장을 위한 지역 기구(OAS)의 집단적 조치로서 1947년 미주 여러나라는 상호원조조약(리우데자이네로 조약) 제6조 및 8조에 의한 것으로 하기로 결정을 보았다. 10월 16일부터, 10월 22일까지 소련의 도전에 대한 미국의 대처 방안을 논의해온 케네디대통령의 집행위원회에 의한 숙의 과정에서는 이를 당연히 유엔헌장 51조에 의한 자위권발동으로 보았으며, 그때까지는 헌장 51조에 의한 것으로 전제되고 있었다.
우루과이의 해변 휴양지인 푼타델에테에서는 미주기구(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 국가의 장관들이 관련 사안들을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미국무부는 이 회의를 쿠바에 대한 집단행동을 유도할 기회로 보았다. 다시말해 아직도 쿠바와 외교 및 통상관계를 유지하는 국가들로 하여금 이를 파기하게 만들겠다는 의도였다.(NSA1,p252,제임스뱀포드,서울문화사)
그러나 봉쇄선언의 전제에 “봉쇄”라는 명칭을 피하고 “방어적 Quarantine”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이 명칭의 제안자인 국무성 차석법률고문 미커(Leonard Meeker)의 주장을 보면 이 조치는, 전쟁상태를 전제로 해야 하는 “전시봉쇄”(Belligerent blockade)가 아니며, 전통 국제법에서 있어온, “평시봉쇄”(pacific blockade)도 아니라고 했다. 이것은 2차대전 이후에 전혀 새롭게 형성된 법적 장치에 근거한 것이라고 했다. 그가 주장한 “새로운 법적지위”란 리우조약(Rio Treaty)을 말하는 것이었다.
쿠바봉쇄의 법적지위 문제는 크게 세가지의 의견으로 나누어지며 논쟁되었다.
첫 번째 견해는 ‘미주상호원조조약(Rio Treaty)의 제6조 및 8조에 의거한 것이다.’ (평화유지를 위한 지역기구의 행위). 이는 U.N헌장 제51조의 적용을 부인하며 평시봉쇄도 아님을 주장한다. 앞의 체이스(Abram Chayes;미국무성법률고문)와 미이커(Leonard Meeker;미국무성차석법률고문)의 견해이다.
두 번째 견해는 ‘유엔헌장 제51조에 의거, 자위권의 발동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맬러슨(Mallison),휀윅(C.G. Fenwick),맥두걸(McDougal),셀릭맨(Seligman)의 견해이다.
세 번째 견해는 유엔헌장 2조 4항의 위반이라는 것이다. 유엔헌장 51조나, Rio Treaty 6조 및 8조 등으로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리우조약의 가맹국이 아닌 소련을 주 대상으로 하는 이 조치가 리우조약에 의한 결의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라이트(Quincy Wright)의 견해이다.
반론에도 불구하고 미국정부의 입장은 첫 번째의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5029작계의 대상인 북에서는 똑같은 사건에 대해 정반대의 법적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사회과학출판사(2002년)에서 편찬한 국제법사전에 의하면 쿠바봉쇄는 명백한 침략으로 해석되어 있다.
침략의 정의에 관한 1933년 런던조약 제2조4항과 1974년 유엔결의<침략에 관한 정의> 제3조3항에서,<무력에 의한 다른 국가의 항구 또는 연안의 봉쇄>는 침략으로 된다고 선언함으로서 전시 교전국가들 사이의 해상봉쇄는 인정되나 다른 이러저러한 리유를 근거로 하여 한 국가가 무력으로 다른국가의 항구나 해안을 봉쇄하는 것은 비법으로 된다고 하였다. 대표적으로 미국이 1962년 까리브해 위기시 무력을 동원하여 꾸바의 해안을 봉쇄한 것은 철저히 침략으로 된다.(국제법사전 사회과학출판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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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북은 정전협정 15조를 들어 해상봉쇄가 협정 위반임을 주장하고 있다.
15. 본 정전협정은 적대 중의 일체 해군에 적용되며 이들 해군은 비무장지대와 상대방의 군사통제하에 있는 한반도육지에 인접한 해면을 존중하며 한국에 대하여 어떠한 종류의 봉쇄도 하지 못한다.
미국은 실질적인 봉쇄를 하면서 이를 전쟁행위가 아닌 것으로 해석한 토대위에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 할 가능성이 많은 반면 북의 입장은 그것이 침략행위임을 명백히 하고 있어서 그로 인한 충돌은 불을 보듯 뻔하다. 언론이 전한 유엔사특수전 컨퍼런스에서 나온 전문가들의 견해에 의한다면 미국은 유엔의 틀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 유엔의 틀을 이용한다는 것은 유엔안보리의 결의를 얻는 것과 현재 존재하는 유엔사를 내세우는 것이다.
유엔안보리 결의를 얻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유엔헌장상 무력침략에 대한 안보리의 강제조치로서 봉쇄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헌장 41조와 42조 이다.
제41조 안전보장이사회는 그의 결정을 집행하기 위하여 병력의 사용을 수반하지 아니하는 어떠한 조치를 취하여야 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으며, 또한 유엔회원국에 대하여 그러한 조치를 적용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이 조치는 경제관계 및 철도, 항해, 항공, 우편, 전신, 무선통신 및 다른 교통통신수단의 전부 또는 일부의 중단과 외교관계의 단절을 포함할 수 있다.
제42조 안전보장이사회는 제41조에 규정된 조치가 불충분할 것으로 인정하거나 또는 불충분한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 또는 회복에 필요한 공군, 해군 또는 육군에 의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한 조치는 유엔회원국의 공군, 해군 또는 육군에 의한 시위, 봉쇄 및 다른 작전을 포함할 수 있다.
그러나 42조는 다시 43조가 정하는 특별협정을 필요로 한다.
제43조 모든 유엔회원국은 안보리의 요청에 의하여 그리고, 하나 혹은 그 이상의 특별 협정에 따라 …… 필요한 병력, 원조, 통과권을 포함한 편의를 안보리에 이용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
그러나 특별협정은 헌장 제정이후 어디서도 체결된 적이 없다. 그리고 제42조의 적용을 위해서는 제43조가 전제됨이 제106조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더구나 이들 조항의 전제는 북이 무력침략을 해오는 경우이다. 때문에 북의 붕괴 상황에서 유엔안보리의 결의를 새로 얻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미국이 고려해볼 만한 유엔헌장상의 다른 법적근거로는 51조 자위권조치 조항이 있다. 이는 미국이 쿠바사태 때도 고려한바 있고, 걸프전에서도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쿠바 사태에 대한 미국의 조치가 전통적으로 인정되어온 자위권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 위해서는 그 봉쇄조치는 유엔헌장 제51조의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 검토되어야 한다. 가장 문제되는 것이 “무력공격”이 현존하는가 하는 점이다. 제51조는 “UN 가맹국에 대한 무력공격의 현존”과 “안전보장이사회가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 전”이라는 것을 자위권 발동의 조건으로 전제하고 있다. 침략이 아닌 붕괴상태에서의 주민이탈이 과연 무력공격의 현존으로 인정될 수 있겠는가? 유엔안보리의 조치를 기다릴 수 없을 만큼 급박한 상황이겠는가? 답은 아니다 일 것이다. 집단적 자위조치라는 근거는 성립되지도 않고 그것에 의존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미 미국은 유엔안보리의 결의를 받을 필요가 없는 군사기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 합참이 지휘하는 유엔군사령부이다. 유엔사특수전컨퍼런스에서 전문가들이 ‘특전부대 구성을 미군 위주로 하는 것보다는 유엔사 이름으로 하되 한국군을 주로 투입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했다. 결국 유엔사를 내세우는 것이 가장 현실성 있는 대안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유엔사는 이미 유엔안보리의 결의를 받아놓은 상태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은 4성 장군으로서 한미연합사령관, 유엔군사령관, 주한미군선임장교, 유엔군사령부지상군구성군사령관직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3개의 지휘채널을 가지고 있다. 현재 한미양국의 국가통수 및 군사지휘기구의 협의절차를 따르는 것은 한미연합사령관직 뿐이다. 이 말은 만일 한미양국간에 대북상황에 대한 인식차이가 존재할 때, 그래서 한미연합사령관 자격으로서 권한을 행사하기가 부적절한 상황이 되었을 때, 너무나 용이하게도 다른 자격으로 권한을 행사하면 된다는 의미이다. 유엔사령관직으로서 한국의 통수체계와 협의할 사항은 없다. 이러한 당황스런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장치는 한미간의 막연한 신뢰뿐이다.
즉 5029작전계획중 내전발생시의 봉쇄작전은 결국 유엔사를 내세우지 않으면 국제법적 정당성을 충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없으며 이는 거의 소멸됐다고 인식되어온 유엔사의 작전기능이 강화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2. 대량살상무기 무력화 작전
5029작전계획에는 핵·생화학무기·미사일 등 북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에 대응한 작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의 반군(叛軍) 등이 대량 살상무기를 탈취해 유사시 사용하겠다고 위협하거나 해외 밀반출을 시도할 경우 한·미 양국군 특수부대가 투입돼 무력화하는 방안인 것이다. 2005년5월10일부터 용산기지에서 열린 유엔사특수전분야컨퍼런스에서 북한 정권이 붕괴 또는 교체되는 과정에서 북이 보유한 핵.화학.생물학 무기와 탄도 미사일 등이 다른 세력들에게 장악될 경우 정전협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유엔사가 한.미 특전부대를 북측 지역에 투입하는 방안을 상정,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고 전했다. SEAL6팀은 푸에르토리코 소재 저항단체들을 기습, 이들에게 탈취당한 미공군의 핵폭탄을 회수해 온 전례가 있다. 1981년 이래 미주지역에서 가장 위협적인 저항세력중 하나인 푸에르토리코 분리주의 운동단체인 AFNL(Armed Forces of National Liberation)과 AFNR(Armed Forces of National Resistance)가 그들이다. 핵무기의 경우 미국의 원자력법에 의한 라이센스를 가진자 만이 핵무기를 취급할 수 있으므로 국방부의 핵무기 취급특수부대를 필요로 한다. 생화학무기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 자세한 정보가 없으므로 언급을 피한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의 자치주이다. FBI를 비롯 정부기관들이 상주하고 있다. 이들 저항단체는 미국정부를 상대로 한 교전단체가 아니며 전쟁법이 아닌 형법이나, 계엄법이 적용되는 단체이다. 때문에 북과는 상황이 다르다. 푸에르토리코가 국내문제라면 북은 국제문제인 것이다. 북의 대량살상무기가 반란단체에 탈취되는 상황을 가정할 때 이는 유엔헌장이 국제법을 적용해야하는 경우로서의 ‘평화의 파괴’와 ‘평화의 위협’중 ‘평화의 위협’에 해당함을 근거로 미국은 집단적 자위권발동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유엔헌장 제51조는 “UN 가맹국에 대한 무력공격의 현존”과 “안전보장이사회가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 전”이라는 것을 자위권 발동의 조건으로 전제하고 있다. 물론 5029작계에서 상정하고 있는 대량살상무기 탈환작전은 51조의 전제를 충족치 못한다. 오히려 유엔무기사찰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유엔사특수전회의에서도 이같은 대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남북간 정치적 민감성과 중국의 개입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이유를 들어, 특전부대 구성을 미군 위주로 하는 것보다는 유엔사 이름으로 하되 한국군을 주로 투입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유엔의 동의를 받거나 국제원자력기구 사찰요원들과 함께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처리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중앙일보2005.5.23) 미국정부가 사찰을 어떻게 생각하고 이용하는지는 이라크의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파월은 유엔무기사찰단들을 이끌 책임자들을 부시와 체니에게 안내했다. 부시가 당부했다.
‘블릭스씨, 당신 뒤에는 미군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결의안을 집행하는데 필요하다면 군을 사용 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전쟁을 시작하는 것은 내가 결정할 일입니다. 당신말에 따라 결정이 내려진다는 느낌은 갖지 마세요 (공격시나리오 p285 봅우드워드)
이라크전을 준비하던 국가안보회의에서는 사찰을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구실로 만들기 위한 논의들이 있었다.
해외에서 이라크 과학자들을 인터뷰하여 후세인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이자는 안도 나왔다. 그렇게 하여 블릭스가 대량살상무기를 발견하게 만들거나 후세인이 사찰단을 요란하게 가로막게 함으로써 전쟁을 일으킬 구실을 제공하도록 유도하자는 의도였다. (공격시나리오 p409 봅우드워드)
사찰은 북 전역의 공업지대, 탄약고, 연구센타, 대학, 지도부관련시설, 이동실험실, 사택, 미사일 생산시설, 군캠프, 농업지역등을 조사대상으로 해야 유효 할 것이다. 북은 이런 사찰은 허용한 적도 없고, 허용할 가능성도 많지 않다. 또한 영변, 금창리등에 대한 사찰을 통해 미국은 얻은 것 보다 잃은 것이 많다. 아프간전쟁, 이라크 전쟁을 통해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에 대해 가장 집요한 반대를 해온 체니부통령은 다른 한편 유엔의 효용성에 대해 가장 신뢰하지 않는 입장을 뚜렷이 드러냈다. 대량살상무기라는 의제를 주도할 당사자의 이러한 유엔관 때문에 유엔사찰과 같은 선택을 할 가능성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전문가들이 내놓은 ‘유엔사 이름으로 하되 한국군을 주로 투입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 가장 설득력 있는 대안으로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같은 추측에 더욱 무게를 싣는 것은 유엔사특수전 회의 당시 나온 말 중 대량살상무기 탈취등이 정전협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한 부분이다. 사건의 범주가 정전협정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그 담당주체가 유엔사냐 아니면 다른 사령부냐를 결정하는 기준이다. 푸에블로호 사건당시 유엔사 미국측 대표의 실언으로 푸에블로호는 유엔사소속 선박이 아닌 태평양사 선박이란 발언을 하면서 다시 사건은 군정위가 아닌 미,북 직접협상으로 진행되었다. 5029작전 계획의 전제가 정전협정 위반상황이라면 이 작전의 주체는 곧 유엔사가 됨을 의미한다.
3. 난민보호 작전
5029작전계획에는 대량탈북 난민 사태 발생과 관련해선 북 붕괴시 최대 200만명 가량이 동·서해상과 비무장지대(DMZ) 등을 통해 북한을 빠져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군부대에 임시수용한 후 정부기관에 인계하는 계획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임시 수용소는 서부전선에서 동부전선에 이르기까지 전방 6개 군단별로 200명 수용 규모의 시설을 1개씩 지정, 운용하고 있다. 위치는 군사기밀에 부쳐져 있으나 대략 경기도 벽제, 포천(2개소), 강원도 춘천, 인제군 현리, 양양 등지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도 강원도 동해시 1함대사령부와 경기도 평택시 2함대사령부 영내에 수용시설을 2개씩 갖춰놓고 있다. 이들 시설은 초등학교 건물과 체육관 등으로 평시에는 본래 용도로 사용되다 유사시에 북한 주민 임시 수용소로 전환된다. (조선일보 2005-04-16)
한편 5월10일부터 열린 유엔사 특수전분야 컨퍼런스에서는 북한의 혼란을 피해 휴전선이나 해상을 통해 남하하는 북한 주민을 북한군이 무력으로 통제할 경우에 유엔사가 특전부대를 투입해 보호하는 방법도 논의됐다. 중앙일보(2005.5.23)
미국에서 오랫동안 감춰졌던 극비문서들에 의하면 케네디 대통령 초기 렘니처가 이끈 합참은 역대 미국정부가 고안해낸 것들 가운데 가장 부패한 계획을 구상, 승인했는데 이중에 난민에 대한 그들의 사고를 단적으로 볼 수 있는 사례가 있다. ‘노스우즈작전’이라는 암호명으로 통하는 이 계획은 합참본부 의장과 참모총장들이 서명한 것으로 쿠바를 탈출한 난민들이 탄 배들을 공해상에서 가라앉히는 계획을 포함한 극악한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이들의 광적인 행동은 끝이 보이지 않는 듯 했다. 그들은 “우리는 마이애미 지역과 플로리다의 여러도시들 그리고 워싱턴에서 공산쿠바가 벌이는 테러전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테러전은 미국에서 도피처를 찾는 쿠바난민들을 대상으로 가해질 것이다….우리는 플로리다로 향하는 (진짜 또는 가상의) 쿠바선박을 가라앉힐 것이며…널리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부상을 입히는 수준까지 미국내 쿠바난민들의 생명을 위해할 수 있다. 이밖에도 폭탄 테러가 제안되었으며 위장체포와 비행기납치도 포함되었다.(NSA1,p127-128,제임스뱀포드,서울문화사)
또한 난민들에 대한 정보수집 행위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난민이 유엔사측에 미리 연락하고 넘어오지 않는 이상 유엔사는 이들의 동향을 정탐, 도청하는 일종의 정보수집 행위를 필요로 할 것이다. 정보수집 행위는 비단 이 경우 뿐아니라 대량살상무기의 탈취범을 찾을 때나 쿠데타세력의 동향을 파악할 때나 인질구출작전을 실행할 때 모두에 해당된다. 특수전부대내에 당연히 전술정보팀이 포함되어 편제될 것은 당연하나 작전에 들어가기 전, 작전적 차원의 정보수집 행위 즉 간첩행위를 필요로 할 것이다. 1907년 헤그에서 체결된 ‘육전의 법규와 관례에 의한 협약’의 부록에는 교전지대에서 하는 제복군인의 공공연한 정보수집행위를 간첩과 구별할 목적으로 간첩을 ‘전시와 평시를 막론하고 신분을 가장하고 다른나라 내부에 침투하여 정탐활동을 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북의 국제법사전(사회과학출판사)에는 ‘함선, 비행기 및 그밖의 기술기재를 가지고 정탐임무를 수행하는 자들도 간첩으로 인정되며 그러한 비행기, 배들은 간첩비행기, 간첩선으로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푸에블로호를 연상시키는 천명으로 판단된다. 중요한 것은 간첩이 체포될 경우 그들은 전쟁포로로 간주되지 않고 체포한 나라의 국내법에 의해 처리되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유엔사의 특수전부대가 작전계획에 따른 행동에 들어가는 어느 단계의 즈음에서 미국은 제2의 푸에블로사건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간첩의 문제는 다음에 이어지는 인질문제와 함께 구출작전을 수행할 대책을 필요로 하며 특수전 부대가 곤경에 처할 경우 이에 대한 대처방안으로서 제한전 내지 전면전을 구상할 수 있다. 난민 보호를 목적으로 투입된 작전자체가 일국에 대한 내정간섭이고 유엔헌장 위반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응전쟁 역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언제든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마술같은 권능을 부여받은 유엔사를 내세울 것은 자명하다.
4. 인질구출 작전
5029작전계획에는 북이 여러가지 이유로 북측지역 내 한국인 또는 미국인들을 인질로 잡을 경우 구출작전을 펼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 이란 미대사관직원들의 인질사건, 1984년 납치되어 살해당한 CIA베이루트지부장 윌리암버클리사건등은 미국의 무능력의 상징으로 각인되었다. 군사작전이라는 점에서는 특수부대를 투입하여 미국인 인질이나 죄수를 구출하는 것은 겹겹이 둘러싸여 보호받고 있는 상대국의 지도자를 납치하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인질구출작전이 가능하다면 지도자 납치나 암살도 가능한 것이다. 유엔군사령관으로 한국에 오기 전 게리 럭이 관여했던 파나마의 CIA요원 뮤즈인질구출작전의 경험을 보자. 노리에가를 축출하기 위한 비밀활동의 하나로 비밀 라디오 통신망을 구축했다는 혐의로 커트뮤즈라는 CIA요원이 체포되고 이를 구출하기 위한 특별작전이 승인된다.
최초의 불시대비특별작전계획의 암호명은 ‘지붕위의 뱀’으로 정해졌다. 럭은 그가 미국인들 또는 다른 어떤 인질들을 구출하는 데에 사용할 300명의 병력을 이끌고 파나마로, 아니 그같은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 곳이면 지구상의 그 어느 곳으로도 쳐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고 그 방안을 간략하게 설명했다….이 부대는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주간 혹은 야간에 은밀한 혹은 노골적인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델타기동대대 1개부대, 그 전원이 동시에 사용될 수도 있고 그 일부만이 배치될 수도 있다.
-은제탄환이라는 암호명을 가진, 16기의 헬기1개부대.
-수중작전 혹은 해안상륙을 위하여 SEAL팀 6으로부터 차출된 소부대 다수
-작전관들을 후원하기 위한 특별정보팀 다수, 예컨대 ‘개똥지빠귀의 집’이라는 암호명을 가진 3명의 무전청취자가 한 조를 이루어 전선을 끊지 않고서도 전화통신을 저지할 수도 있고 도청장치 없이도 원거리에서 대화를 엿들을 수 있는 정밀장비를 갖추어 동행한다.
-의료진, 통신부대 각각 하나, 지휘 및 통제 참모진 각각 하나.
다음의 30분 동안 럭은 모델로 감옥으로부터 뮤즈를 빼내는데 사용될 수 있는 ‘악바리선수’ 불시대비계획을 보고했다. (사령관들 p140-141 봅우드워드 중앙출판사)
인질구출작전에 소요되는 최근의 병력규모와 방법을 뮤즈구출작전은 대략 가늠케 한다. 파나마는 미군이 군사연습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북은 전혀 다른 상황이란 점에서 파나마보다는 훨씬 많은 병력과 정교한 작전이 필요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된다. 국제법에 의하여 간첩은 체포국의 국내법에 의해 처벌받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인질구출 작전이주권국가의 합법적 조치를 무시하고 무력을 사용하여 주권국가를 침입하는 것이 분명하므로 이는 명백한 내정간섭이다. 이러한 국제법적 혐의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유엔사이다. 유엔사 산하에 특수부대를 편성하려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선택으로 보인다.
5. 인도주의적 지원작전
5029작전계획에 의하면 북에서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한 군사작전을 펼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 초기 소련이 8월 복귀하기 전인 50년 7월 31일 유엔안보리에서는 한국전에 관한 마지막 결의가 통과되는데 그 내용은 통합군사령부가 구호와 민간인 지원물자를 종합적으로 관리 통제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결국 유엔이라는 기구를 이용하지만 미국이 주도적으로 전쟁을 수행해 나감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이다.(유엔과 한국전쟁,p108,강성학 lee book) 그러나 인도주의적 구호활동은 전시가 아니라도 당사국과 합의가 된 상태가 아니거나 합의가 되었어도 정통정부에 반기를 든 반란세력이 있다면 안전할 수 없다. 소말리아의 경우를 살펴보자. 미국은 소말리아 구호활동을 명분으로 유엔사무총장을 협박하다시피하여 유엔평화유지군을 끌어들였다.
무장한 소말리아 군인들은 구호단체에서 원조한 구호품을 강탈해 판매하고 있었다. 국제구호단체는 활동에서 안전을 확보하지 못했다. 재선에 실패한 후 부시대통령은 소말리아에 군대를 보내 구호물자의 안전한 수송을 도왔다. 브렌트 스코크로프트는 내게 이 작전의 조정관 역할을 부탁했다. 그리고 1993년 1월 그는 자신의 후계자인 토니레이크에게 이 문제를 브리핑하라고 요청했다…유엔사무총장 부트로스 갈리는 마지못해 UN의 역할을 수용했지만 UN평화유지군은 더디게 소말리아에 도착했다. 그는(레이크) 미국이 군대를 파병해 평화유지군을 주도하고 UN군과 미군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작전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이크는 스코크로프트의 참모인 조너선 하우(JonathanHowe)제독을 설득해 이 임무를 맡겼다.(모든적들에 맞서,p142리차드클라크,HUMAN&BOOK)
미국의 대부분의 특수전은 특수부대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었으며 특별한 팀을 꾸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하자 바로 소말리아작전의 조정권은 백악관에서 국무부로 이관했고 국무부아프리카국이 이문제를 전담했다. 하우는 곧 소말리아 군벌들, 특히 파라아이디드(FarahAideed)의 저항에 직면했다. 아이디드의 부하들은 UN지휘아래 작전을 펼치던 파키스탄군인 24명을 살해했다. 하우의 대처는 단호했다.. 아이디드를 체포하고 그의 민병대를 소탕할 필요가 있었다. 4성장군으로 얼마전 퇴역한 하우는 미군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추가병력을 충원하고 특수부대인 델타포스를 투입해 아이디드를 체포하여 AC-130폭격기를 출격시켜 민병대기지를 파괴할 자세한 계획을 수립했다.(모든적들에 맞서,p144,리차드클라크,HUMAN&BOOK)
하우의 요구는 이전의 특수전 역사로부터 자연스럽게 발생한 요구였다. 특수전은 충분한 화력의 보장 없이는 실패해 온 것이다. 따라서 구호작전에 투입될 특수부대의 규모 또한 단순한 편제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고 커질 가능성이 많다.
NSC가 압력을 가했지만 펜타곤은 특수부대 파견과 하우의 요구사항 대부분을 거절했고, 아이디드의 민병대기지가 파괴되기 이전에 AC-130폭격기의 공습을 중단시켰다. 아이디드는 6월에 약간의 경호원을 대동한 채 모가디슈로 이동하고 있었다. 델타포스는 큰 어려움 없이 아이디드를 체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AC-130가 그의 무기고를 공격한 이후 그는 지하로 숨어들었고 미군을 포함한 평화유지군에 공격을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그 이후 펜타곤은 특수부대의 파견만을 동의했다. 델타포스가 소속된 합동특수작전사령부(JSOC)는 은밀한 야간작전에 능숙했다. 하지만 모가디슈에서 그들은 도시상공에서 요란스러운 소음을 내는 헬기 10여대를 동원한 대낮 작전을 벌였다… 1993년 10월3일 소말리아 민병대와 JSOC간의 전투중 두 대의 헬기가 민병대의 로켓포 공격으로 추락했고 영화로 만들어져 유명해진 ‘블랙호크다운’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18명의 미군과 대략 2천명의 소말리아인이 사망했다…클린턴은 전임행정부에서 골치 아픈 문제를 떠맡았고, 군대 때문에 그의 인기는 떨어졌다. 클린턴은 6월에 하우가 아닌 펜타곤의 조언을 따랐지만 펜타곤의 판단은 옳지 않았다… 마침내 군부가 JSOC를 모가디슈에 파병하고도 마치 적대적인 세력이 없는 양 기본적인 전술도 무시한 채 대낮에 작전을 벌여 재앙을 자초했다.
(모든적들에 맞서,p145,리차드클라크,HUMAN&BOOK)
저항세력이나 반란단체등이 존재하는 나라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작전은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미군조차 블랙호크다운 사건처럼 전쟁과 실패의 수렁에 빠지게 할 것이다. 더구나 군사작전이 국제법적 기준을 결여하고 있을 때는 불법을 자행한 비난까지 감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유엔사와는 다르지만 유엔평화유지군이란 유엔의 형식을 내세운 것도 그래서 당연한 것이다. 때문에 한반도의 경우 인도주의적 지원작전은 유엔사의 이름아래 수행될 것은 자명한 듯이 보인다.
북의 붕괴를 가정한 5029작전계획의 다섯가지 내용 즉, 내전, 대량살상무기, 난민, 인질구출, 인도적 지원과 관련된 작전계획은 하나같이 그 자체로는 국제법적 조건을 결여한 위법과 불법의 요소를 안고 있다. 이러한 국제법적인 미비점을 충족하기 위해 미군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전제는 유엔사이다. 유엔사를 통하지 않고 작계가 실행되기 위한 단한가지 방법은 힘에 의한 불법이다. 5029작전계획이 유엔사의 작전계획으로 발전될 가능성은 그래서 이미 예견되는 것이다.
위기관리체계와 5029작전계획
미군이 북의 붕괴에 대해 데프콘을 상향조정하면 전시작전권이 미군의 손에 넘어가므로 이것이 5029작전계획을 중단시킨 이유로 설명되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해 알아보자.
방어준비태세(데프콘)의 상향조정을 결정하는 것은 한미연합사령관이지만 그에 대한 상황판단과 보고서를 사령관에게 제출하는 것은 연합사 내의 위기조치반이다. 이들은 합참공문 Joint Pub 5-03.1의 ‘위기조치계획에 관한 절차’(Crisis Action Planning (CAP) procedures)에 따라 임무를 수행한다. 78년 연합사 창설이후부터는 이에 의거하여 연합사에서 작성한 ‘위기조치예규(UNC/CFC/USFK CASOP)’에 따라 연합군사령관은 양국의 합참에 위기평가및 조치사항, 방책계획및 건의사항을 보고하여 양국의 국가통수및 군사지휘기구의 지침을 받아 작전을 시행하는 과정을 수행한다.(김인상”한미연합위기관리능력개선에 관한 연구[군사평론]제286호 부록(육군대학1990)p26 ;배영준,“한국의 위기관리능력 향상에 관한 연구”[정책연구보고서]/국방대학원1991p27,52)
유엔사/연합사 작전참모부장은 모든 위기관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 사소한 위기상황은 ‘초기대응반’이 구성되어 지속적 감청, 관련 작전및 우발계획, 정보자료수집, 광범위한 방책과 상황, 위기전개등에 대응할 수 있는 한,미군 전력현황 검토등과 관련한 기능을 수행한다. 초기대응반은 작전참모부장의 책임하에 작전참모부의 작전처장및 계획처장, 정보참모부 대표자, 위기조치반장 보좌관등 제한된 참모로 구성된다. 초기대응반이 감당할 상황을 넘어서게 되면 위기조치팀(CAT)이 구성되어 상황을 인계 받는다. 위기조치팀은 작전참모부장이 위기조치팀장이 되고 위기조치반 요원은 유엔사/연합사/주한미군사의 인사,정보,작전,군수,기획,통신등 각 참모부의 실무장교, 지상군,해군,공군구성군연락장교, 한국합참연락장교(대령급),유엔사군정위장교, 미대사관장교등으로 구성된다.
위기조치팀장의 임무는 1.위기조치제도에 필요한 지휘통제시설및 필수통신을 작전요구로 설정 2.한국합참에 방어준비태세 변경 구두통보 3.위기조치현황유지 4.최신현황브리핑 5.데프콘 증가에 따른 건의 고려 6.사령관준비서 준비,검토,전파 7.방책발전을 위한 전투력 현황첩보확인 8.사령관 판단,작전계획,행동방책작성및 발전을 위한 요원및 참모지원등이다.
위기조치계획반의 임무는 1.데프콘 항목선정및 계획수립이 용이하도록 데프콘 변경건의 2.사령관 지침준비및 제출 3.방책발전 4.사령관 판단서 준비및 제출 5.방책결심브리핑준비 6.작계,작명 보완 발전 7.지상군이동,전개및 운용에 관련된 건의서 작성등이다.
(유엔사연합사및 주한미군사“위기조치예규 나갑수(1989)부록 p471-473, 476-477)
결국 이 과정에서 문제는 데프콘의 상향조정 시점이다. 경계태세의 상향조정과 함께 위기조치팀장은 가능한 대응책을 수립시행 할 수 있으며 이런 연후에 한국합참의장에게 구두통보한다. 구두통보는 실제로는 직접 대면하고 ‘눈으로만 보시오’라는 보안 등급에 따라 구두가 아닌 필담으로 통보되는 형식일 것이다. 이는 한미간에 통신코드는 일치되어 있을지 몰라도 암호제작, 암호해독 같은 보안코드는 일치되어 있지 않음을 암시한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한국군과 정부는 데프콘이 상향 조정되고 난 뒤에나 연합사 위기조치반장으로부터 통보받을 수 있게 된다. 전시작전통제권은 군정권보다 군령권에 좌우되는 것은 상식이다. 결국 전쟁 시점을 결정할 수 있는 군령권을 장악하고 있는 쪽이 실질적인 작전통제권을 갖는 것이다.
결국 북에 정변이 발생하면 우리 정부가 아니라 미국 정부와 미군이 상황을 장악하고 군사적 조처의 전권을 쥐게 된다. 때문에 정부가 5029작전계획의 발전을 거부한 것은 미국의 5029작전계획이 한미 위기관리체계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발견되었던지, 위기관리체계와는 다른 문제에 의한 것일 수 있다.
첫 번째 5029작전계획이 그동안 합의되어 온 한미위기관리체계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발견된 경우이다. 한미평시작전통제권이 94년 12월 한국합참에 이양되었으나 연합관리위임사항(CODA)에 의해 6가지는 예외가 되었다. 1.전쟁억제,방어및 정전협정준수를 위한 한미연합위기관리 권한 2.전시작전계획 수립 3.한미연합3군합동교리개발 4.한미연합3군 합동훈련및 연습의 계획과 실시 5.조기경보를 위한 한미연합정보관리 6.C4I상호운용성등 전시업무 수행을 위해 연합사가 평시에 준비해야할 사항에 대해 연합사령관은 권한을 여전히 행사하게 되었다. 유엔사겸,연합사령관이 데프콘 3를 발령한 순간부터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와관련 장영수 국참대 총장은 “전쟁억제 방어 및 정전협정 준수를 위한 연합위기관리에 대한 위기상황의 시점 판단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그 시점에 따라 작전지휘권이 전환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국회사무처[1987년도국정감사국방위원회회의록]피감기관함참본부/1987.10.4/p15 참고).
이는 조기경보기능과 정보자산운용을 위한 정보관리가 연합사령관에 위임되어 있는 것과도 연관된다. 미국의 정보자산이 주도하는 한 미국이 한국과의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96년 9월 강릉잠수함사건 당시 미국은 사전에 알고 있었으나 남측에 통보하지 않았다. 결국 위기 상황에서는 군정보다 군령이 앞선다는 상식이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민감한 절차에 대해 한국과 미국은 한미연합위기관리와 관련하여 94년에 관련약정을, 95년 5월에는 세부시행합의각서를, 98년 4월에는 이를 구체적으로 발전시켜 연합위기관리 합의각서를 각각 체결하였다. “여기에는 한국합참과 연합사간 첩보교환으로부터 실무협의, 장성급협의, 지휘관과의 협의등에 관한 절차를 규정하여 위기상황 발생시 한미연합에 의한 체계적인 조치를 보장하고 있다.”(국방부[국방백서1999]p63계획) 이처럼 한미간에는 위기관리절차에 대해 94년 이후 몇차례에 걸쳐 합의각서를 체결해 왔다. 때문에 위기관리절차를 이유로 남측정부가 5029작전계획을 거부했을 가능성은 많지 않다. 이는 NSC의 5029작전계획 중단조치 발표에서도 증명된다. “검토 결과 이 안이 한.미 군 당국간에 추진되기에 적절치 않은 내용을 다루고 있고 여러 사항들이 대한민국의 주권행사에 중대한 제약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중단 이유를 밝혔다. 군 당군간에 추진되기에 부적절한 내용이므로 그것은 한미간 위기관리절차 같은 군사적인 것은 아니다.
두 번째, 한미 위기관리체계와는 다른 문제로 인하여 5029작전계획을 중단시킨 경우이다. 이와 관련 NSC는 5029작전계획의 주권침해 요소를 들어 중단시켰다는 발표를 했다. 주권과 관련된 문제는 한미연합사의 한미위기관리절차 같은 군사적인 문제가 아닌 역시 통치 차원의 문제로 봐야할 것이다. 이는 결국 앞서 설명한 유엔사의 문제와 만난다.
통치문제와 작전계획
5029작계의 전제상황은 북의 붕괴이지만 목표에 대한 전제는 북에 대한 통치이다. 이라크 전쟁에서 보여준 미국의 통치정책을 살펴보면 국무부가 아닌 국방부를 중심으로 했던 2차대전시의 전통이 재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라크전후계획은)이전과는 실제 다른 방식이었다. 계획입안자들이 이를 동시에 실행하고, 국무부가 국방부 직속으로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국무부는 거의 1년간 ‘이라크의 미래’ 프로젝트를 짜고 있었는데 이라크 행정, 석유, 경찰, 농업 전문가들로부터 받아낸 추천사항 및 보고서를 수록한 것만 수천쪽에 달했다.
후세인 이후 계획 및 집행권을 국방부에 부여하자는 구상이 안보장관들에게 전달됐을 때 파월은 논리적 제안이라고 생각했다….전문가를 몇 명 보유하고 있긴 하지만, 국무부에는 기본적으로 그런 정도의 여력이 없었다. 국방부와 군은 해방군이자 정복군, 또한 점령군이 될 것이다. 대규모의 미군이 전쟁터에서 활약하는 동안에는 그 일이 국방부로 가는 것 이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고 여겼다. 평범한 사람으로부터 나온 생각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던 것이, 2차대전 당시 독일 및 일본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공격시나리오 p363)
이라크에서 펜타곤이 주도하는 정책의 구체적 기구는 미국의 국내법과 국제법을 위반하기에 비밀명령을 통해 추진된다. 이라크 전후계획의 담당처인 ‘재건및 인도주의적지원처’는 5029작전계획과 거의 유사한 내용을 가진 기구이다.
국가안보에 대한 대통령령 24호는 은밀하게 발령됐다. 이를 근거로 탄생한 것이 국방부내의 “재건 및 인도주의적 지원처(ORHA)‘이다. 1월20일 부시가 사인한 비밀문건에는 “미군이 주도하는 연합군이 이라크를 해방시키는데 필요하다면 새로운 부서가 전후 이라크를 통치하는 과정에서 직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분야의 문제를 기획하고 실행하게 될 것” 이라고 명시돼 있다. 인도적 지원, 대량살상무기의 해체, 테러리스트에 대한 첩보입수 및 그들에 대한 소탕, 천연자원 및 국가기간산업보호, 경제재건은 물론 생필품과 전기 및 보건분야등에 대한 주요행정서비스 재건이 주 업무다…(과도정부)와 관련된 국무부 및 다른부서들 간의 업무는 ORHA를 거쳐야한다. 적대적 사건이 벌어지는 경우 ORHA는 이라크로 파견되어 행정기구의 핵심부를 구성하고 전쟁 후 제한된 기간동안 이라크 통치에 조력하게 된다.(공격시나리오 p364)
국방부내에 전후계획을 담당하는 기구를 만들려는 전통이 작용할 것이란 점은 한반도의 경우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주한미대사관이 아닌 주한미군은 이미 연합사 산하에 민사사령부를 구성하고 있으며 심리전 사령부를 두고 있다. 전후 통치기구는 민사사령부와 심리전 사령부를 개편 증편하든가 국제법차원의 모순을 야기하지 않는 새로운 기구의 창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킬 주체로서는 유엔사가 유일하다. 일반 국제법상 일 국가가 내란상태 또는 일시적 무정부상태에 타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국제법상 위법이다. 한국전쟁의 법적성격을 국제연합에 의한 제재로 파악하면 이는 미국과 북측과의 법적 상태를 ‘전시’로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1953년8월28일의 유엔총회 결의는 정치회담의 남측 당사자로 통합군사령부의 군대를 파견한 국가를 지정했으며 이에 미국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북미관계는 법적으로 전시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휴전협정이 일방을 유엔으로 하여 체결된 것과 같이 평화협정도 일방을 유엔으로 하여 체결하면 북미관계는 법적 전시상태가 아닌 것이 된다. 북이 불완전 붕괴되는 경우 북미관계는 법적 전시상태이므로 미국은 북한의 반도단체 교전단체를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한국전의 남측 주체를 유엔으로 볼 경우 북미관계는 법적전시상태가 아니라고 볼 수 있으며 이 경우 미국이 합법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근거는 ‘자위를 위한 간섭’ ‘정통정부의 요청에 의한 간섭’ ‘유엔제재를 위한 간섭’의 경우이다. ‘자위를 위한 간섭’은 주한미군사령부만으로 가능하며 ‘남측정부의 요청에 의한 간섭’은 한미연합사로서 가능하며 ‘유엔제재를 위한 간섭’은 유엔사를 통해 가능하다.
북한이 불완전 붕괴될 경우 미군이 유엔사의 이름으로 북한에 진입하여 통치하게 되는 근거는 1907년 지상전규칙(Regulations Respecting the Law and Customs of War on Land)제42조와 56조와 “민간인 보호에 관한 제네바협약(Four Geneva 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War Victims of August 12.1949) 제27조, 제34조, 제47조, 제78조의 군사점령에 대한 규정이다.
여기서 미국이 유엔의 이름으로 북에 진입하여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을 점령(military occupation)으로 볼 것인지 “자유화(Liberation)로 볼 것인가에 따라 상황은 심대하게 달라진다. 점령(military occupation)은 일방교전당사자가 타방 당사자의 영토에 ‘침입’하여 타방 당사자의 통치권을 배제하고 일방 교전 당사자가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을 뜻한다.(Morris Greenspan the Modern Law of Land Warfare(berkely:califonia University press 1959.p212) 이에 반해 자유화(Liberation)란 적의 점령을 배제하고 자기 또는 동맹국의 영토를 ‘회복’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자유화지역은 적에 의해 점령된 자기 또는 동맹국의 지역을 적의 점령으로부터 회복한 지역을 말한다.
(US Department of Army. the Law of Land Warfare(Washington. D.C:US.Government Printig Office 1956) para 12;육군본부 지상전법 해설(서울 육군본부1983)제12항;Michael Both “Belligerent Occupation” in Rudolf Bernhardt.. Encyclopedia of Public International Law Vol.4(Amsterdam:North-Holland 1982. p66)
미국의 지상전법(Law of Land Warfare)은 국가로부터의 자유화지역에 어떤 법이 적용되느냐에 관해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한국의 육전법 해설도 이에 관해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영국의 육전법(The Manual of Military Law: The Law of War on Land)도 마찬가지이다.
자유화지역에 적용되는 법은 그 자유화 지역이 일방 교전 당사자인 ‘반도단체’에 의해 점령되었던 지역인가. 교전단체에 의해 점령되었던 지역인가 ‘국가’에 의해 점령되었던 지역인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첫째 빨치산이나 유격대의 경우처럼, 일방의 지역을 점령한 타방 교전당사자가 반도단체일 경우, 그 점령지역이 자유화될 때, 반도단체와 국가와의 상태는 내란이지 전쟁이 아니다. 교전단체는 전쟁의 주체이나 반도단체는 전쟁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둘 사이에는 국내법이 적용되며 여기에 전쟁법이 적용되지 않는다.(US. department of army supra note 57. para 12)
반도단체에 의한 점령지역과 그 점령지역에 대한 자유화지역에는 점령을 당했던 국가의 국내법 특히 계엄법이 적용되며 국제법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Gerhard von Glahn. Law Among Nations 3rd ed(New york: Macmillan. 1970. p666)
둘째로 (아프간처럼) 점령을 한 일방 ‘교전단체’와 타방 국가사이에는 점령당한 국가의 국내법이 아니라 전쟁법인 국제법이 적용된다.(US. department of army supra note 57. para 12)
북이 붕괴되었을 때 남측이 북측의 영역에 대해 통치권을 행사하기 위해 남측의 국가기관으로서 들어가도록 하는 것은 남측의 국내법상으로는 허용이 되나 국제법상으로는 특히 국제연합헌장상으로는 다른 국가의 영토보존과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는 것으로 되어 이는 유엔헌장상 2조4항의 규정에 따라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미국이 붕괴된 북측지역에 진입하는 것도 남측과 마찬가지로 유엔헌장상 금지 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미국이 유엔의 이름으로 개입하여 북측에 진입하는 것은 국제법상 합법적인 것으로 허용되는 근거가 있다. 유엔사를 통한 개입인 것이다. 참고로 이에 대해서는 유엔사를 통한 미국의 개입을 배제해야한다는 생각이 보수적인 국제법 학자들 사이에서조차 존재하고 있다.
5029작전계획의 법적 뿌리 한국전쟁
북에 대한 진입과 점령이 현실화 됐던 적이 있다. 바로 한국전쟁이다. 1950년 9월 미 국무성은 ‘한국전 종전계획’을 작성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대북 진주와 점령은 현실로 다가왔다. 이에 많은 점령과 진주의 경험을 갖고 있는 워싱턴의 정책담당자들은 북한지역에 군정을 실시할 계획을 점차 가다듬어 갔다. 9월22일 국무성의 한국담당관 에머슨(John K. Emmerson)은 <한국전 종전계획>(Program for Bringing Korean Hostilies to an End)을 작성하였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군이 북한의 주요지역을 점령하여 북한군을 무장해제 한다” “38선 이북 점령지역에 대한 남한 관할의 시기와 방법은 유엔군사령관이 한국정부와 협의하여 결정한다” “(그 이전에는) 38선 이북지역의 법과 질서 유지의 책임은 유엔군의 감독하에 북한민정당국이 진다” “유엔한국위원회의 주관하에 적절한 시기에 지금까지 남한정부의 실질적 관할과 통치가 미치지 못한 지역에서 선거를 실시한다” “미국은 (통일된)한국의 유엔가입을 추진한다” (FRUS,1950. Vol. Ⅶ; Korea, pp. 756~759;1950한국 전쟁과 평화,박명림,p563-565나남출판)
이 계획에서는 이라크 전쟁과 비교한다면 유엔사라는 명확한 통치주체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50여년이 지난 현재에도 유효하다. 한편 에머슨의 ‘종전계획’은 북의 기존의 통치권한을 명백히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 주목되는 것은 콘돌리자 라이스국무장관의 ‘북은 주권국가’라는 발언이다. 북핵문제와 6자회담의 교착상태에서 흘러나온 이 발언은 그간 깡패국가 불량국가라는 단어에서 표현됐던 정통성이 결여된 정부의 이미지를 부정하고 정통정부의 이미지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외교상 긍정적 신호로 해석될 수도 있으나 남측정부에 대해선 북이 반란단체가 아닌 정통정부이므로 전쟁이 발발하여 미국이 북측지역에 진입할 경우, 북측 지역은 대한민국의 미수복지구가 아닌 미국정부의 점령지구가 됨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는 강화도조약1조에 표현된 ‘조선은 자주국’임을 천명했던 논리를 연상시킨다. 이에 대해 한미간에 명확한 관점의 차이는 이미 한국전쟁시에 발생했다. 똑같은 유엔결의에 의해 대한민국은 한반도 유일합법정부라는 근거가 통째로 부정된 것이다.
남측의 헌법과 “한국전종전계획”이 보여주는 차이점은 사실 문제의 핵심이었다. 유엔결의에 의해 과연 남한은 북한에 대한 관할권을 인정받았는가? 1950년 현재 남한은 전한반도에 걸쳐 통치권을 행사하는 유일한 합법정부였는가? 남한은 1947년 11월 14일과 1948년 12월 12일의 유엔결의에 근거하여 늘 이렇게 주장하였다. 역설적이게도 미국과 유엔 역시 바로 이 결의를 근거로 남한의 북한통치권을 부인하였다. 그러나 기실 유엔의 결정에 근거해 사실대로 정확히 말하자면 남한은 다만 “유엔임시한국위원단이 감시 및 협의 가능했던 지역에 대해 유효한 통치와 관할권을 갖는 합법정부로 수립되었음”을 선포 받은 상태였다.
(Declares that there as been established a lawful government (the Government of Republic of Korea) having effective control and jurisdiction over that part of Korea where the Temporary Commission was able to observe and consult and…; / Y.H.Chyung,ed., The United Nations and The Korean Question(Seoul:The U.N.Association of Korea, 1961), p.8 : Se-Jin Kim, ed., Korean Unification: Source Materials with an Introduction)Seoul: Reserch Cener for Peace and Unification. 1976), p.109.)
남측이 그토록 강조하여 주장하였던 북에 대한 남의 통치권은 유엔에 의해 보장된 적이 없었던 것이다. 1950년 9월26일 애치슨은 국방장관서리에게 보내는 극비전문에서 맥아더에게 보내는 합참의 지시초안에 다음의 내용을 추가할 것을 요구하였다.
비록(소련권을 제외하고는) 대한민국의 정부는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일반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나, 그렇다고 38선 이북지역에 대한 대한민국의 주권(sovereignty)은 일반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과 그 군대는 유엔군의 일원으로서 38선 이북지역에서 군사작전과 군사점령에 참여할 수 있으나, (대한민국의) 주권의 북한지역에 대한 공식적 확장과 같은 정치적 문제는 한반도의 통일을 완성하기 위한 유엔의 조치를 기다려야 한다.
…군사작전과 정치적 주권의 문제를 분리하여 유엔을 통하여 점령정책을 펴려는 명백한 의사의 표현이었다. (FRUS,1950, Vol.Ⅶ; Korea, p.785.)
이러한 50년전의 규정은 여전히 유효하여 만에 하나 북과의 전쟁이 다시 일어나거나 북이 붕괴될 때 미국은 유엔사의 이름으로 북에 대한 통치권을 다시 행사하게 된다. 한국전쟁은 5029 작전계획의 역사적, 법적 뿌리가 된다. 이에 더하여 참고할 것은 미국이 북에 대한 점령통치권을 마지막까지 포기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사회에 흐르는 다음과 같은 분위기이다.
지금 미국에는 사회의 제1선에서 일하고 있는 당시 장병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전우들이 한국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 사실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공격하여 붕괴시킨 후 한국에 병합시키는 것은 정치적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부시 정권의 한 수뇌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북한 정부를 붕괴시킨 다음, 북한을 한국에 병합시키는 일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군이 북한을 군사 점령해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될지 모른다.”
북한을 미군이 점령하게 되면 해병대 1개 사단과 육군 2개 사단 등 모두 10만명의 전투부대가 북한 각지에 주둔할 것으로 생각된다. 미군의 장갑차라든가 전차가 북한 각지를 돌아다니고, 미군의 항공 부대가 북한의 공군기지에 주둔할 것이다.(월간중앙2003년 9월호)
이 모든 것의 근원에 유엔사가 있다. 유엔사가 없다면 위와 같은 미국의 여론은 비이성적인 침략주의로서 국제적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유엔사가 있어 그들의 여망은 실현될 수 있으며 남측의 보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세력들에겐 다시 한국전쟁당시 북측지역에 진입했을 때 벌어졌던 치욕적인 주권침해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할 것이다.
맺으며
5029작전계획은 국제법적 위반 요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다. 이는 남측의 주권을 침해하는 내용이어서 정부의 반발을 일으켰다. 5029작전계획의 수립주체인 유엔사와 한미연합사 중 한미연합사가 남측정부의 반발로 작전계획입안자로서의 지위를 계속하기 어려워지면 이는 유엔사가 전담하는 작전계획이 될 가능성이 많다. 수많은 유엔헌장 상의 위반요소에도 불구하고 이미 한국전 당시 유엔안보리의 결의에 의해 유엔사는 북에 대한 전쟁권을 언제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사에 부여되어 있는 무소불위의 권한으로부터 북의 붕괴를 상정한 5029작전계획이 나올 수 있었다. 5027-98작전계획이 한미연합사와 유엔사 공동의 작전계획이라면 5029작전계획은 전적으로 유엔사의 작전계획이 되거나, 그것이 어렵다해도 유엔사를 중심으로 하는 작전계획이 될 것이 자명해졌다. 점령도 아닌 붕괴를 상정한 시나리오가 완성되어 간다는 것은 정세라는 변수와 관계없이 또하나의 상수가 확정되어 감을 의미한다. 5029계획의 불안한 국제법적 토대와 이를 해결할 대안으로 존재하는 유엔사문제를 공통으로 바라봐야 한다. 5029개념계획은 작전계획으로 발전되어 있는 상태였고 국제법문제를 쾌도난마와 같이 해결할 무소불위의 군사기구인 유엔사를 미국은 이미 지휘하고 있다. 5029계획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