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명상 45일째-후텐마기지와 밀림2004/08/09 1250
8월 3일 –
슈와브나 한센처럼 동쪽을 향해 출근해야하는 미군들은 저 강렬한 오끼나와 햇빛의 폭격에 속수무책으로 널 부러진다. 사고의 위험도 귀찮은 듯. 그들은 오끼나와에 항상 그렇게 포위되어 있었다.
아무리 이것저것 힘들어도 걷는 것만은 편하다. 나에게 가장 익숙해져 있는 것은 역시 걷기다. 후텐마기지가 있는 기노완의 赤道란 곳을 지날 때 번개와 함께 소낙비가 내렸다.
유키치 의원은 도미야마의 말 마따나 시의원중에 인기가 있게 생겼다. 헤노코의 집회에서 처음 본 바에 의하면 그 미모와 지성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그러나 한편 부정적이기도 하다. 고결한 고상함을 얻기엔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억척스러움으로 가기엔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키치 의원은 오끼나와에 ‘미군대신 평화유지군을’이란 구호를 내걸고 나왔다고 했다. 타이라 목사님은 유엔사 문제에 대한 격정적인 토론 끝에 그녀의 방침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유엔사 문제의 해결 없이 유엔평화유지군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후텐마기지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다가가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온통 밀림이다. 나는 직감했다. 이 근처에 탄약고가 있구나 하고…
군사부분은 빈 공간을 필요로 한다. 군사자체가 빈공간, 즉 불확실성에 기초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탄약의 폭발이 가져올 위기로부터 안전을 보장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하며 효과적인 방법이 곧 거리이고 그들에겐 무의미한 거리로 인해 만들어진 공간이 다른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세상이다. 그것을 관리하고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없을 때 그 자체가 또 다른 재앙과 위협을 불러올 불확실성이 될 것이다.
저녁 한국어를 배우는 모임에 초대 되었다. 참석자들은 오끼나와에 도착하던 날 인터뷰한 신문기사를 오려서 스크랩을 하고 질문을 빼곡히 정리 놓고 있었다. 이야기중에 오끼나와에는 북부지역의 미군훈련장 때문에 그나마 자연이 보존될 수 있다는 논리가 있는데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이 있었다. 그래서 그것은 미군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있는 논리 같다고 했다. 유엔사가 관할하는 비무장지대는 분단이 지킨 자연, 또는 군인들이 지킨 생태의 보고 같은 이미지가 만들어져 있는데 이는 모두 거짓이라고 나는 말했다. 비무장지대야말로 매년 군인들의 화공작전 의해 철저히 태워지고 파괴된 곳이며 유엔사는 67년부터 고엽제를 살포하여 생화학적 오염의 범죄자가 된 상태인 것이다.
캠프한센의 훈련장 또한 바다 건너편에서 보면 드넓은 밀림 중에 유일하게 황토빛을 드러낸채 파괴된 곳임을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유엔사 후방기지 중의 하나인 캠프 화이트비치 또한 원자력잠수함의 핵냉각수에 의한 해양오염이 의심된다.
저녁 그 동안 오끼나와에서 극진한 환대를 해주신 타이라 목사님 내외와 통역을 도와준 구와에 히로유키와 마지막 만찬을 했다. 타이라 목사님은 동경 국회 앞에서 홀로 헤노코기지 이전 반대농성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미 이번 일로 타이라목사는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평화운동가가 되어 있었다. 나는 가끔 접한 언론매체를 통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간 내가 본 사실들을 전해드려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카데나탄약고의 표식 없는 탄약콘테이너가 핵일 수 있다는 사실, 캠프 화이트비치의 부두에 핵잠수함의 기항에 필요한 발전시설이 없다는 점이 갖는 의미, 캠프 후텐마의 오염물 처리시설에 대해 상세히 나의 견해를 설명해 드렸다. 타이라 목사는 하나하나의 사실에 놀라워 하셨다. 후텐마문제는 기노완 시장에게 직접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오끼나와의 감시활동도 좀더 전문적이 되어야 하는데 한국의 이런 전문적 감시운동은 좋은 충격이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내가 미군기지에 대한 평화감시의 영감을 얻은 것은 2년전 타이라 목사의 안내로 감시운동을 하는 시민들의 꼼꼼함과 치열함을 본 뒤였다. 이제 그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그저 난처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