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명상 44일째-류큐은행 추녀에서2004/08/09 1311
8월 2일 – 류큐은행 추녀에서
계속 탄약고주변 걷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카데나 탄약고 주변의 수수밭 사이길. 사람이 누군가 다니긴 다닐 것 같은 길이지만 영원히 아무도 저 모퉁이에서 나타날 것 같지 않다.
미군 숙소를 보며 수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이곳보다 겨우 한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우리집이 그립다. 류큐은행앞. 점자책에 타공을 하듯 소낙비가 내리 꽂혀 터진다. 그러던 비는 더는 어쩌질 못하고 마침내 흐른다. 땅위의 모든 더위와 땀을 씻어 내리듯 하염없이 흘러간다.
류큐은행 추녀에서 함께 비를 피하던 여인이 결심한 듯 수건을 꺼내 쓰고 달려 나선다. 잠시뒤 차를 가져와 내 옆에 대고는 ‘무슨말을 하며 손짓을 한다. 그러더니 은행 앞으로 차를 댄다. 이런 나를 태워주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둥 뒤에서 망설이고 있는 사이, 그녀는 차를 후진하여 원 자리로 와서는 다시 내 의향을 묻는 것이다. ‘다이조부데쓰 괜챦아요 괞챦다는 말이죠’. ‘하이 예’ 그렇게 해서 그녀는 비속으로 사라졌다. 무엇을 자세히 설명할 상황에서 언어의 단조로움은 그의 호의만 냉정하게 무시한 꼴이 되었다.
하늘엔 볕이 드는데 비는 계속 내린다. 비는 결국 그치리라. 비는 결국 그치고 말리라. 그 비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었던 일도 그 비의 그침과 함께 모두 그치리라. 한편의 기억은 또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리라.
비에는 언제나 그리움이 묻어있다. 가랑비에 젖어 쉬 마르지 않은 채 텐트안까지 따라들어오기 마련인 저 비는 언제나 그리움도 망설임도 함께 데리고 온다.
다 알지만 또한 다 알지 못하는 비의 사연에 한번쯤 귀기울이자. 언젠가 수많은 그리움이 필요하거든 우산 없이 비속을 걸어 그 많은 그리움을 적시어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