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명상17일째-유엔사해체와 미군전략의 약한 고리32004/07/21 975

워싱턴 항공 우주센타에 전시되어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유엔사해체와 미군전략의 약한 고리3-핵전략
이시우

소주병

마개도 따지 않은 소주병이 비닐봉지에 담긴채 바닥에 깨져 있다. 무슨일이 있었으리라. 술은 흙이 다 마셨으리라. 술병의 주인은 결국 술도 못마시고 하루를 아주 공쳤으리라. 문득 생각나는 노래가 있었다.
‘기성회비 조르던 놈 큰소리로 야단치고 돌려보낸 학교길
서산마루 해지면 시멘트 가루 털어내며 터덜 터덜 오던 길
깡소주나 한잔 목에 걸치고 갈비굽는 포장마차 지나
미루나무 둥지 찾는 까치 따라 가던길’
제목이 까치길이었던가 싶다. 문명은 사람관계의 이해요구에 의해 사람이 만들어 내는 사회적 재화이다. 따라서 문명에는 사람관계가 숨어 있으며 학문과 예술은 그 관계를 보여주므로서 사람에게 가치있는 지식을 줄 수 있다. 깨어진 소주병에서 서럽던 시대의 추억을 연상하는 것은 그 순간 내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모든 것에서 사물에 담겨진 사람관계의 궤적을 찾아 내기란 쉽지 않다. 그것이 무기일 때는 더욱 그렇다. 배에서 이순신을, 말에서 칭기스칸을, 포에서 나폴레옹을 연상은 하지만 그것이 우리 생활을 변화시킨 해양문화임을, 기마문화임을, 기동성임을 연상하는 것은 어렵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있을 때 군수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며 자신들이 생산하던 재료들을 개조하여 전경들과 대치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상품의 기본인 사람에의 유용성이 아닌 유해성을 위해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저버리고 시키는 대로 일만하던 그 공장의 노동자들이 사람관계를 변화시킴으로써 전쟁을 위한 무기를 파업을 위한 무기로 전변시켰던 것이다. 전쟁의 역사와 같은 궤도를 달려온 철도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을때도 그 파업이 곧 평화운동이 될 수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그 외의 다른것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겠다. 특히 핵무기가 그 대상이 되면 난감해진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핵무기를 둘러싼 틈이다. 나에게 익숙치 않은 만큼 상대에게 익숙치 않다면 상대가 설령 그것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은 오히려 자신을 해할 수 있다. 불은 나무에서 생기지만 도리어 나무를 태운다.火從木出 還燒木(直旨)

핵전략

재래식 전쟁이 원칙과 지식의 어떤 부분이 적용되지 않는 두가지 특별한 경우가 있다. 혁명적인 내부분란(Insergent)과 핵전쟁은 유럽식 모델인 재래식 전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전략은 어떻게 만들어지나?Making Strategy.p127데니스드류,도널드스노우.연경문화사)

핵전쟁은 전략가들에게 여전히 특수한 경우로 남아 있다 핵전쟁은 국가목표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전략이 전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주로 군사력 사용을 피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유일한 우발상황이다. 군사전략가에게 있어 핵전략은 지금까지도 혼란의 영역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 혼란속에 빠져 있느니 아예 포기해 버리자는 생각이 걸프전에서 생겨났다. ‘아스타리타 그룹’-1973년 아브람스장군이 베트남전 후의 전략적 환경을 조사하기 위해 만든 두뇌집단으로서 주월 군의 철수를 위한 활로를 찾는데 보트역할을 했던 에드워드 아스타리타(Edward Astarita)대령의 이름을 본떠 부른 위원회의 명칭-은 핵전략, 분란억제전략 따위의 환상대신에 상식적인 재래전 전략에 초첨을 맞추었다.

1981년 3월, 후에 합참의장이 된 존 베시 장군은 “아스타리타 보고서는……베트남전 후의 군에 하나의 전환점을 마련하였다.”육군은-그리고 다른군도 마찬가지로-실로 첫 출발점으로 복귀했다. 전쟁교리면에서 그것은 특히 진리였다. (미국의 걸프전 전략 On Stratege 2 A CRITICAL ANALYSIS OF THE GULF WAR p88~92 해리섬머스 자작아카데미)
1945년이래 전쟁수행교리와 전략은 원자시대에는 과거의 모든 군사이론과 철학들, 모든 지나간 군사이론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모든 지난 전쟁에서의 경험들이 전적을 무용지물이라고 주장하는 다양한 민간 핵전략가들의 현란한 개념들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장군들과 제독들이 아닌 오로지 이 핵전략가들만이 미래의 전쟁에 필요한 것을 알고 있었다. 이는 군사전략가들에게 무기력증을 가져오게 했다.

군사사가인 러셀위글리(Russel F.Wigley)가 언급했다. “거의 모든 군사력의 사용에 있어서 국가의 군사정책과 전략이 대량 핵본부에 의존하는 것은 육군에게 자신의 정책전략상의 위치인식을 곤란하게 하였고, 민간인에게 육군 자체의 존재필요성을 애매모호하게 하였으며, 또 육군의 전 장래를 불확실하게 하였다.” 그결과 군사적 사고에 있어 한세대에 걸쳐 무기력증에 가까운 현상이 일어났다.
(미국의 걸프전 전략 On Stratege 2 A CRITICAL ANALYSIS OF THE GULF WAR p81 해리섬머스 자작아카데미)

더욱이 결정적이었던 것은 핵은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란 확신이 일부 군전략가들에게 베트남전을 통하면서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쟁이 종결될 무렵 북베트남군으로 나와 비슷한 지위에 있던 한 사람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핵무기를 써서 북베트남을 지도에서 몇 번이라도 없앨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는 말하였다. ” 우리는 그것을 잘알고 있다. 하지만 우린 또한 당신들이 결코 그것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일고 있다.” 핵전쟁 이외의 어떤 전쟁에서도 우리가 자랑했던 핵무기의 억제능력은 치명적인 결함을 나타내었고 그것은 억제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미국의 걸프전 전략 On Stratege 2 A CRITICAL ANALYSIS OF THE GULF WAR p83 해리섬머스 자작아카데미)

재래전으로의 복귀를 선언한 걸프전은 그 뒤 10년간 핵전략에 대해 언급하기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핵전략의 공백상태였다. 그러나 핵무기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95년 12월29일,
해군해양시스템사령부, SEA0260은 지상공격용핵장착토마호크를 위해 휴대용발사시스템의 개발과 생산을 위한 생산요구문서 N00024-96-R-6221를 지정했다. 이 휴대용발사시스템은 LA급공격형잠수함(SSN688,688I)과 버지니아급 신형공격형잠수함(NSSN/SSN774)에 장착될 것이다. 이 조달사업은 충분하고 열린 경쟁을 통해 시행될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해군참모총장과 해군해상체계사령부, 잠수함전투체계프로그램국에 의해 지원되었다.
(http://www.fbodaily.com/cbd/archive/1995/12(December)/29-Dec-1995/12sol001.htm)

(97년)11월 말, 공격형잠수함(SSN) 보스턴은 버지니아의 요크타운 해군무기저장소에서 핵탄두용토마호크순항미사일을 성공적으로 다시 탑재했다. 그러고 나서 모든 핵통제에 사용되는 미사일발사기를 잭슨빌의 발사지역으로 옮겼다. 미해군은 전술용함정으로부터 핵무기를 제거하라는 전 부시대통령의 결정을 빨리 그리고 쉽게 파기할 수 있도록 공격형잠수함을 위한 휴대용발사시스템을 구입하고 있다.
(http://www.thebulletin.org/issues/1997/nd97/nd96arkin.html)

더구나 정보자유법에 따른 기밀해제 문서에 의하면 98년 미국 서부의 세이모어존슨 공군기지에서 4전투비행단에 의해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에 입각한 핵공격훈련이 이루어 졌다. 그리고 부시정부 들어 지하시설 파괴용 소형핵폭탄 개발에 관한 법안이 의회를 통과함으로써 핵정책은 완전히 부활했음을 알렸다.

핵전략의 모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전략에는 항상 모순이 따른다.
핵무기에 관한 견해의 변화에 대하여 세가지 사항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 실제로 핵에 관한 모든 생각이 핵억제로 기술되었기 때문에, 핵무기에 의한 전쟁의 목적에 대한 의문과 거부가 제기되어 왔다. 핵논쟁의 분야에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과연 핵전쟁은 제한될 수 있는가이다.
둘째로, 핵무기 운용의 결과에 대한 판단은 이 분야의 전략이 매우 특이하다는데 일반적인 합의를 이루어냈다. 결국 이전의 전술이나 교리와는 아주 다르거나 미미하게만 관련되는 억제라는 핵전략이 개발되었다.
셋째, 억제를 이론화하는 영역은 대부분은 민간의 몫이라는 점이다. 공중폭격 형태로 사용되는 핵무기 관련 전략은 거의 전적으로 전문군사영역의 밖에서 개발되어 왔다. 핵전략 분야는 매우 복잡한 개념과 견해들로 이루어져 있어 비핵(재래식)전략에 관한 상세한 지식을 갖춘 사람들에게도 처음 접했을 때는 거부감과 이질감이 든다.
개량탄두 설계와 결합한 수소폭탄에 의해 생겨난, 수소폭탄의 강력한 폭발력과 감소된 무게는 다른 운반수단 사용의 가능성을 높였으며, 그 운반수단의 후보자는 제2차세계대전 기간중 독일에 의해 최초로 사용된 전략로켓들이었다. 탄도미사일 등장 이전에는,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격해오는 적을 충분히 요격하는 방어전략 수립이 가능했다. 핵공격을 받는 국가는 대단한 피해를 받게 되었지만, 여전히 생존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탄도미사일은 이러한 기대를 완전히 바꿔놓았고, 점차 미국인들은 유인항공기에 의한 폭격과 탄도미사일에 의한 폭격의 근본적인 차이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근본변화는 탄도미사일에 의한 방어가 불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0년 선거유세중 탄도미사일에 대한 방어란 “하나의 총알로 다른 하나의 총알을 맞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미국이 핵전쟁으로 인한 파괴를 피할 수 없다면, 유일한 해결책은 핵전쟁이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었다. 핵억제가 핵무기 보유의 1차적(혹은 유일한) 목적이 되었다. 전통적인 군사이론에 의하면, 군사력의 억제목표는 다음의 두가지 위협중 어느 한가지 혹은 두가지 모두에 기초하였다. 하나는 군사력으로 적국의 공격 의도를 무력화 시킬 수 있으며, 적국의 공격을 위한 노력을 쓸모 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믿을만하게 위협함으로써 잠재적 적국을 억제할 수 있었다.(거부위협) 다른하나, 얻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응징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을만하게 위협함으로써 공격하려는 적국을 단념시킬 수 있었다.(응징위협) 이 가운데 거부위협은 매우 효율적인 방어수단이나, 적의 무기에 대한 대응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비현실적인 위협이 된다. 응징위협은 파괴 보복능력에 기초한다. 두가지 모두, 아무도 대응할 수 없는 파괴적 무기보유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억제위협은 응징위협이었다. 이른바 ‘공포의 균형’이 제기된 것이다. 1970년대 관성유도기술의 커다란 발전과 결합하여 MIRV(다탄두핵미사일)는 상대측의 핵무기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였다. 많은 분석가들은 적의 보복 능력을 파괴하기 위하여 핵무기로 적을 공격할 수 있다는 기대가 가능했기 때문에 이것을 핵시대에 있어서 가장 불안정한 사건으로 본다.
핵 억제력은, 잠재적인 적국이 자신의 공격이 가공할 보복을 불러와 결국은 자살을 하게 되는 셈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는 개념에 근거하였다. 이 딜레마는 “자국에 대한 핵공격을 억제하는 핵무기는, 핵억제가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자국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위 문장에는 분리되고 반드시 양립하지는 않는 두 개념이 담겨 있으며 이 때문에 딜레마로 불리게 된다. 이 안보딜레마의 양면중 어떤 측면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그 국가의 억제전략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예를들어 핵무기의 억제력에 1차적인 강조점을 두고, 양국이 서로에게 취약한 조건이 핵억제에 기여한다고 가정한다면, 현재의 균형에 의해 핵억제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반면, 핵억제가 실패할 수 있는 가능성에 1차적인 주안점이 주어진다면, 그와 같은 핵전쟁이 발발시 검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주력하게 될 것이다. SDI와 MD가 이와 같은 관점에서 제기되는 보호책의 대표적인 예이다.

안보딜레마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딜레마의 어느 한측면을 강조하게 되면, 다른 한측면이 희생당한다는 사실이다. 양국의 핵균형이 핵억제가 실패할 경우의 결과에 대한 양국의 공포를 조장함으로써 핵억제에 기여해 왔다면, 그러한 결과로부터 보호하려는 활동이 핵억제를 약화시킬지도 모르며 결국 핵전쟁의 가능성을 더 높아지게 한다.

핵전쟁이 없었기 때문에, 믿을만하고 과학적인 측면에서 어느 누구도 양개질문(어떻게 핵전쟁은 시작되는가와, 핵전쟁은 제한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이 무엇인지에 관한 확실한 생각이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핵전쟁이 어떻게 시작되고 또 어떻게 수행되는지를 관찰할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모든 목표가 핵전쟁을 피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략과 정책의 커다란 실패를 통해서 우리는 믿을 만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전략은 어떻게 만들어지나?Making Strategy.p159데니스드류,도널드스노우.연경문화사)

핵전쟁은 제한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혹은 최소한 계획한다면 제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믿는 사람들은 케네디정부의 통제된 대응, 닉슨과 포드정부의 제한된 핵선택, 카터정부의 상쇄전략, 그리고 레이건정부의 유연반응등의 다양하게 알려진 핵전략을 선호한다. 용어와 수식어가 약간씩 다를 뿐 각 전략의 핵심은 동일하다. 핵전쟁을 제한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의 가장 기본적인 가정은 제한적인 핵전쟁이 전면적인 핵전쟁보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한적인 핵전쟁이 역점을 두고 다루어야할 실질적인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핵전쟁은 제한될 수 없다는 믿음은 존슨행정부의 ‘확증파괴’전략과 밀접하게 관련되며, 닉슨재임초기의 전략적 충분성과도 은연중에 연관된다. 핵전쟁의 특성에 관한 그들의 첫 번째 가정을 근거로, 이 전략의 주창자들은 핵억제가 최대의 관심사이며 모든 전략은 핵 억제라는 목표에 전적으로 집중되어야한다고 결론짓는다. 핵전쟁에서의 승리 같은 그러한 목표는 불가능한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해서, 이러한 전략적인 방침에 따라, 억제력을 고양시키는 어떤 것이라도 선이 되며, 억제력을 약화시키는 여하한 것이라도 악이 된다. 확증파괴유형의 전략은 안보딜레마의 첫 번째 관심을 강조하며, 핵 억제 실패의 결과를 가능한 한 무서운 것으로 보이게 함으로써 핵억제를 도모한다. 작전상 , 그들은 토마스 C. 쉘링이 ‘인질효과’라고 명명한 것을 특히 강조한다. 이것은 확실한 보복전력을 유지하고 있는 양측이 상호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을 때, 각국은 본질적으로 상대국의 국민을 인질로 잡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후에도 상대방에게 보복공격을 가하여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인질을 잡고 있는 셈이다. 억제위협은 적의 방어망을 돌파할 수 있는 보복전력(적의 선제공격에서 살아남과, 정확한 보복을 위해 적의 방어망을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 전략의 지지자들은 급속한 기술발전을 반대한다. 고도로 정확한 대응공격능력은 마찬가지로 자국 보복전략의 생존성을 저하시키고, 도시의 미사일 방어능력도 마찬가지로 상대국의 인질을 자유롭게 해줄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 동시에 이 전략의 지지자들은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대량살상에까지 이를 정도의 전력투입을 제안한다. 더욱이 최초 공격후에도 적국이 전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전략 또한 자살 행위이다. 보복 공격에 대한 보복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확증파괴 전략은 비도덕적이며 (일반국민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자살행위라는 점에서) 비난받았다. 확증파괴 전략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반면에 그들도 핵전쟁이 제한될 수 없다면, 사실상 핵전쟁의 결과는 양측의 파괴 일 것이라고 지적한다. 양측이 수립하는 어떠한 계획과도 무관한 바로 이 가능성 때문에 핵억제가 최우선 순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군에게 있어서 ‘군사분야의 혁명’은… 대칭적 전쟁(재래전)에서 항상 미군에게 결정적 우세를 안겨주는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확산 대응분야의 혁명’에는 비대칭적 전쟁에 여하히 대처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뒤따르게 되며, 이러한 혁명은 이제 걸음마 단계에 있을 뿐이다. 이렇게 지연된 이유중 하나는 지역적 분쟁에서 적의 대량파괴무기의 사용을 억지하기 위하여 위험스럽게도 비전략적 핵무기에 무의식적으로 의존하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그런 종류의 억지를 신뢰할 수도 없고 신뢰해서도 안된다.
(예방적방위전략Preventive Defense p201~202윌리엄페리.애시튼카터.프레스21)

페리가 우려했던 대로 ‘확산 대응분야의 혁명’은 걸음마단게에서 뒷걸음쳐 요람으로 들어갔고, ‘비전략적 핵무기 즉 전술핵무기에 무의식적으로 의존하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2003년 1월 미 의회는 소형 핵폭탄 개발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핵은 아직도 미군에게 있어 가장 취약한 전략 영역이다. 이라크와 같은 비핵국가에 대해 무자비한 재래전쟁을 일으키는 미국이 인도나 파키스탄 또 북에 대해 위협은 할지언정 재래전쟁 방식으로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엔사와 핵전략
페리는 미국을 위협하는 방위의 수준을 세가지로 분류한바 있다. C케이스의 경우는 르완다와 보스니아처럼 미국안보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미국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위협을 가하지 않는 경우이고 B케이스의 경우는 이라크와 북한처럼 미국의 생존에 직접 영향을 미치진 않지만 미국의 이익에는 직접적 위협이 되는 경우이고 A케이스의 경우는 미국의 생존에 직접적 위협이 되는 경우이다.
A케이스의 위협은 다시 5가지로 나누어지는데 1.러시아의 과거 소련화 2.거대중국의 출현3.핵무기의 통제 불가능상태 4.대량살상무기의 확산 5.재앙적 대테러

5가지의 위협이 발생했다면 예방적 방위전략은 포기되고 응징적 전략으로 이행한다고 했다. 이중 북과 관련해서는 B케이스 위협에 있던 이라크와는 달리 A케이스 위협으로 전화 되었다. 핵무기가 확산되었으며 대량살상무기도 보유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결국 북에 대한 응징전략문제와 그 주체가 될 유엔사와의 관계는, 유엔사의 이름으로 핵응징전략을 수행할 것인가? 핵응징전략을 포기하며 유엔사를 해체할 것인가?로 귀결된다. 미국은 과연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