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명상12일째-고엽제살포작전은 유엔사가 지휘.2004/07/04 1170

고엽제 살포작전이 실시됐던 양구 해안면지역

고엽제살포작전은 유엔사가 지휘했다.

이시우

간첩

해산령을 넘는데 차 번호 [강원 개 6460]에는 전화기를 든 군인이 타고 있다. 내가 쉬기 위해 잠시 배낭을내려 놓자 차는 모퉁이를 돌다가 다시 후진하여 숨는다. 뒤 따라 오던 차가 경적을 울리고 잠시 실강이를 벌이는 눈치다. 차는 다시 모퉁이로 나오다가 나를 보고는 어찌할 줄 모르고 오래 동안 멈춰있더니 결국 고개 너머로 사라졌다. 나를 감시하는게 분명한 초보자의 행동에 그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뒤 두대의 차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섰다. 한대에선 군인이 내렸다. 7사단 조성일이란 이름의 명찰이 붙어있고 계급장은 없다. 계급장이 없는 걸보니 정보쪽이다. “저 죄송합니다. 뭣 좀 심문할게 있어서 그러는데 협조해 주십시오.” “제가 군인한테 심문을 받을 일은 없는데요” ” 아 그래서 제가 아니고 저기…” 앞에 섰던 [50 가 2591]에서 한 남자가 나오며 “화천경찰서 정보과입니다. 주민신고가 들어와서 잠시 좀 조사에 응해주셔야 겠습니다.” 이런 일을 꽤 경험해 본 나로서는 사건을 만들려면 어떻게해야 하는지 빨리 끝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잘안다. 긴장을 하고 조사하기 시작한 그들에게 상황이 싱겁게 되어 갈 때 조성일 왈 “아래 전원상회에서 어디로 무슨 통화를 하신 겁니까?” “아 전원상회 할머니가 신고하셨나보죠.” “아니오 그런건 아니구. 신고자는 보안이라 말씀 드릴수가 없습니다.” 화천경찰서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여지껏 검문소를 많이 통과 하셨을텐데 괜챦으셨습니까?” “화천만 이랬습니다.” “일본까지 걸어가시려면 불편한게 한두가지가 아닐텐데 어휴 대단하시군요. 고생하십시요”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일어날줄은 몰랐다. 결국 나는 아직도 민통선 접경지역을 잘 모르는 것이다. 스쳐가는 눈빛에서 나는 ‘유엔사 해체’ 란 글씨에 가장 관심을 많이 보이는 것이 군인들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가게 할머니는 의외였다. 해산령을 오르기 전 이틀정도는 전화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미리 한 기자에게 기사거리에 대한 제보를 해주려고 공중전화가 있는 가게에 들어갔다. 군사관련 된 내용이었으니 할머니에게 그 전화는 간첩이나 하는 통화 정도로 들렸을지 모른다. 옆에서 듣고 있을 할머니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것이다. 할머니 입장에선 분명히 ‘간첩신고’ 했는데 순사나리들께서 보상금 가로채 갔다고 생각할지도 모를일이다. 나는 이런 일이 우스개 일로 끝날 만큼 사회가 성장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키로 했다. 10여년전 민통선을 따라 돌아다닐 때는 ‘통일’ 정도만 얘기해도 오늘 같은 일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몇 년동안 이길을 따라 100여명씩 평화 통일 대행진을하면서 통일이란 말과 분위기에 의심을 보내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아직도 통일이란 주제에 국가보안법, 북괴 같은 이미지가 채 사라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금강산 관광과 남북정상의 악수 같은 이미지를 더 많이 떠올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미지에서 승리했다. 심리전에서는 이미지에서 승리하면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유엔사 해체는 아직까지 정치적 주제이다. 정치적 주제는 일단 스트레스를 준다. 놀고 즐길 만한 주제가 되기엔 아직 요원한 것이다. 풍악만 울린다고 즐거워 지는 것은 아니다. 앎과 가치와 즐거움이 통일되어야 진짜다. 그 결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 걷기 명상의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아직 즐기기는커녕 설명하는 것도 이렇게 벅차니.
“지식을 얻는 것은 좋은 것이다. 가치를 얻는 것은 더 좋은 것이다. 즐거움을 얻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이다.”

큰 바위

화천 곡운구곡엔 오랜 물결에 아름답게 다듬어진 바위의 결들이 향연을 벌이듯 펼쳐져 있다. 그래서 인지 멋진 돌들이 동네 입구에 입석으로, 어떤 경우엔 가게입구의 표지석으로 모셔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수석 수집가들이 눈독을 들일만한 계곡이다. ‘구곡’이란 이름은 유교문화의 산물이다. 책장을 넘어서지 못하던 신유학의 이념은 주돈이가 무이구곡가를 지으면서 자연으로 뛰어 나오게 된다. 조선에서는 소쇄원등을 시작으로 강촌의 구곡폭포, 화양구곡등 구곡문화가 펼쳐지니 불교의 산천만다라사상이나 풍수지리사상에 비하면 아직 초보 수준이지만 조선식유학의 눈으로 바라보는 산천사상인 진경문화가 싹트기까지 과도기역할을 한 것이 바로 ‘구곡’문화이다. 곡운구곡의 수석들은 그 아름다움을 완상하기 전에 누군가 밑둥을 싹둑 잘라 포크레인으로 실어가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먼저 드니, 이것도 병이다. 그런데 계곡에 넓게 깔려 너무나 곱게 물결에 다듬어진 너럭바위가 있었다. 아무리 대담한 자라도 저 것을 파내 가지는 않으리라 안심이 되는 그런 바위였다. 그 바위는 제자리에서 천수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문득 장자이야기 하나가 생각났다. 큰 나무가 있었다. 다른 나무들은 재목감이 되면 이내 베어졌지만 이 나무는 제자리에서 천수를 누리고 있었다. 장자는 말하길 이 나무가 천수를 누리고 있는 것은 쓸모없기 때문이다. 온통 옹이 투성이여서 재목으로 쓸 수 없기에 아무도 그 나무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용無用이 곧 무위無爲임을 비유하기 위한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곡운구곡의 저 너럭바위는 너무나 아름다운 미석이면서도 거대하게 대지에 뿌리박고 있다. 유용하고 걸출해도 대중속에 넓고 깊게 뿌리박고 있다면 누구도 손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소영웅은 수석원에 팔려가지만 대중속에 뿌리박은 걸출한 영웅은 제자리에서 천수를 다한다. 장자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고 하면 장자모독인가?

고엽제

비무장지대의 생태가 가지고 있던 걸출함도 유엔사란 이름아래에선 일순 무색해지고 말았다. 양구 해안면에서 슈퍼를 운영하던 전 군의원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남방 철책으로 그저 한 20~30미터 될까 그 약을 뿌리고서는 나무고 풀이고 아무것도 안나서 황토 흙만 드러난 띠가 생기게 됐던 거야” 주한미군 생활을 하다 귀국한 한 병사가 자신을 괴롭히던 고엽제 후유증을 증명하기 위해 기밀해제 시한을 기다렸다가 열람하게 된 문서에서 그는 68년과 69년 한반도의 비무장지대에 살포한 가루가 베트남에서 사용한 것과 같은 고엽제였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문서 덕분에 당시 살포 된 것이 고엽제였다는 사실이 판명됐다. 68년 4월15일-5월30일 1차 살포시 연인원 2만6639명의 군장병이 투입돼 총 1만8150에이커의 지역에 에이전트 오렌지 2만1천갤런, 에이전트 블루 3만4375갤런, 모뉴론 7800파운드가 살포됐으며, 69년 5월19일-7월31일2차 살포시에는 총 2644 에이커에 에이전트 블루 3905갤런과 모뉴론 1377파운드가 살포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논란은 미군이 요청해서 뿌렸다와 한국정부가 요청해서 뿌렸다로 좁혀졌다. 책임전가하기였다. 그러나 이는 하등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당시 고엽제 살포는 작전이었고, 전시든 평시든 군사작전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하던 책임자는 유엔군사령부였다. 작전통제권도 아닌 지휘권을 행사하던 시절의 유엔사이기에 이는 어떤 변명으로도 빠져나갈 길이 없다.

대구 비산2동에 사는 강모씨(54)는 “강원 양구군의 육군 모부대 화기소대 분대장으로 근무하던 지난 68년 7월께 미군사고문관의 지시에 따라 노란약물을 철모에 받아 이틀간에 걸쳐 맨손으로 살포작업을 벌였다”고 설명했다. 강씨는”제대후 현재까지 등과 허벅지 등에 붉은 반점과 가려움증이 자주 발생, 고통을 겪고 있으며 3명의 딸도 비슷한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호소했다.(경향신문 1999-11-19)

미군사고문관은 유엔사 직원이다. 결국 철모에 담아 뿌리게 했다는 것은 초보적인 안전조치 조차 무시된 잘못된 작전을 펼친 셈이다.
황색고엽제의 문제는 베트남참전군인들과 관련하여 1980년대 초반에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농약에 의한 수은중독이 있느니 없느니 설왕설래하는 상황이었다.
베트남전쟁터의 “달표면화”(lunarization)작전 실시를 위한 무기로 개발된 고엽제용의 화학무기들은 모두 네가지였다. 이 화학무기의 제조는 다우케미컬이 독점적으로 담당하였다.
이 제초제들의 기본성분은 약칭으로 2,4-D(2, 4-dichloroghenoxyacetic acid)와 2,4,5-T(2,4,5-trichlorophenoxyacetic acid)이다. 황색고엽제는 2,4-D와 2,4,5-T의 합성이고 자색고엽제(Agent Purple)는 황색고엽제와 유사하나 생산가가 비싸고, 백색고엽제는(Agent White)는 2,4-D와 피클로람(picloram)의 합성이며, 청색고엽제(Agent Blue)는 카코딜산(cacodylic acid)의 합성제품이다. 이 네 가지 제초제 중에서 베트남 전에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이 황색고엽제이다. 한반도의 비무장지대에서도 골고루 다 써본 셈이다.
고엽제는 숲의 풀과 나무들의 녹색부분을 모두 초토화시켰을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순환에 개입된다. 수로를 타고 물고기들을 멸종시키고, 숲의 동물들에게 흡수되고, 지역사람들의 체내에 축적되는 등 고엽제로부터 발생된 다이옥신은 생태계를 교란시켰다. 10년이 지난 뒤에 서서히 나타난 기형현상이 이를 증명한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제초제가 살아 있는 환경의 모든 영양수준에 장기간 동안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Lewallen 1971:59).

철원과 양구에서 고엽제 문제에 발벗고 나서서 일을 하던 한 국회의원은 지역주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아야 했다. 철원 오대쌀이 전국 제일미로 상까지 받는 마당에 고엽제가 잔류하고 있다 뭐하다 하면 우린 어떡하란 말이냐하는 것이었다. 이 국회의원은 고엽제문제에서 손을 뗐다. 쉽지 않다. 왜 미래를 담보로 과거는 외면당해야 하는가?

또 비가 내린다. 보슬비가 신발과, 우비를 서서히 적셔온다. 나는 서서히 위축되고 있었다. 발을 아예 물에 빠뜨렸다. 신발이 완전히 젖고 나자 차라리 마음이 가볍다. 이젠 젖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어떻게 말릴지는 지금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만이 중요한 시간엔 미래를 버려야 한다. 어떤 경우에 미래란 과거로부터 축적된 소유의식일 뿐이다.

어제는 인터넷은 물론이고 전화도 사람조차도 만나기 힘든 곳에 있었던 관계로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어제의 여정
화천-간동리-딴산- 호음동-평촌-전연동-해산터널-평화의댐-천미리-오천터널

*오늘의 여정
양구 오미리-금악리-현리-송현리-고방산리-도사리-한원전리-양구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