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명상 9일째-유엔사교전수칙2004/07/04 1410


전방초소에는 두개의 깃발이 걸린다. 한국기와 유엔기이다. 비무장지대 남측구역이 유엔사 관할구역임을 증명한다.

유엔사교전수칙의 위험성

이시우

백골부대

삼부연폭포에서 잠을 자고 산을 넘어 포천이동으로 가고 있었다. 용화저수지 길에서 완전 군장을 하고 행군하고 있는 백골부대원들을 만났다. 나는 가고 있었고 그들은 오고 있었다. 나는 혼자 였고, 그들은 부대였다. 새벽 행군길에 처음 만난 민간인이어서 그들은 관심있게 지나치고 있었다. 이미 구도가 나에게 시선이 집중되도록 되어 있는 구도였다. 내가 입은 옷엔 ‘유엔사 해체’가 써져 있었다. 일등병들은 졸린눈에 정신이 없었고 병장 이상 장교급들의 눈빛엔 긴장이 서렸다. 지금까지 이 문구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사람들은 군인들이었다. 달리는 군용차량 안에서도 뒤를 돌아보며 나를 바라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륵사상에서 꿈꾸는 세계인 용화세계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용화동에서 산길을 넘어 이동으로 간후 화천 사창리에 도착하는 것이 오늘의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산은 피탄지이다. 철원에서 포를 쏘면 포탄이 이곳에 와서 떨어진다는 것이다. 산중턱에 군인들 몇이 트럭위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연양갱이 눈에 띄었다. 빈곤한 직업군인의 수수한 모습과 비리장성들이 머리속에서 겹쳐졌다. 나를 막아세웠다. 지금 조금 있으면 여기로 폭탄 떨어진다. 어딜 가려는거냐. 왠만하면 보내드리고 싶은데 통제명령 받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나는 지금 화천을 가야하는데 이길이 아니면 하루는 더 걸려야 사창리에 도착할 것 같다…제가 어떡해 해야겟습니까? 잠시만요 상부에 연락해보겠습니다.예 지금 한사람이 여길 통과하려고 하는데 말입니다. 안되지 않습니까까’ 해보나 마나 한 전화였다.그러나 그런 성의를 보여준 그가 고마웠다.“안되겠습니다. 통제하랍니다.” “에 수고들하십시요” 나는 할수없이 문혜리로 돌아 서면 신술리를 거쳐 두개의 산과 터널을 지나서 사창리에 닿을 수 있었다. 피곤했다. 백골부대 덕분에 오늘은 백골이 진토 될 뻔했다. 하루종일 녹초가 되도록 걷고 이렇게 글을 쓰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유엔사교전수칙

비무장지대 중부전선을 담당하는 백골부대는 97년 7월 16일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먹실리 중동부전선에서 군사분계선을 70m까지 침범한 북한군 14명과 치열한 교전끝에 인민군 3명을 사살하고 나머지 병력을 퇴각시켰다. 그런 경력으로 전방초소장 具慈學소위(23)에게 인헌무공훈장이, 金仁夏상병(21)과 李相一상병(21)에게 각각 무공포장이 수여되는 등 작전에 참가했던 1백7명에 대해 표창과 부상이 주어졌다.언젠가 그들이 같은 손목시계를 차고 있는 것을 본일이 있는데 이대 부상으로 받은 손목시계였다. ‘살아서도 백골 죽어서도 백골‘부대의 신화를 만든 또 하나의 사례가 되었다. 교전수칙이란 것이 있다. 무력충돌시 쓸데없는 공격등으로 인한 분쟁의 확대를 막기 위한 규칙이다. 미군에서는, 조그마한 ROE(Rule of Ingagement교전수칙)카드라는 것을 각 병사들마다 소지하게 하는데 대략 자기 방어, 국민 방어, 부대 방어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만약 교전이 발생한다면 미군 병사들은 ROE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어길시에는 벌을 받게 된다. 그 내용은 한국군의 교전 수칙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 비무장지대에 적용되는 교전수칙은 유엔사 교전수칙이다. 이에 대한 개정권한도 최종적으로는 유엔사에 있다. 2003년 교동도에 머물던 바지선이 조류에 밀려 한강하구의 북측지역으로 쓸려간 일이 있었다.이를 발견한 해병대에서 박격포를 허공에 발사한 일이 있다. 이에대해 해당 사령관에게 직접 묻자 그것은 교전수칙과 관계없이 이루어진 일이라고 했다. 교전수칙에 의거 하는가 안하는가는 군에서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일 교전수칙과 관계없이 벌어진 일이라면 박격포 발포에 대한 명령권자는 그것이 공포용이었다 해도 처벌받아 마땅하다. 이 질문에 갑자기 긴장이 발생하던 분위기가 생생하다.
교전수칙이 유엔사의 권한이란 사실은 서해교전의 경우를 돌이켜 보면 아찔하다.

서해 교전이 일어나기 전에, 정부의 고위당국자는 기자에게 “우리는 자제력을 발휘하고 있다. 상황에 맞게 대응하고 불필요하게 확대되는 것을 막는 게 교전규칙의 기본정신이다. 예를 들어 소총을 쏘는 데 여기서 1백55mm 포를 쏠 수는 없지 않는가”라고 말했지만, ‘완충수역’에서는 충돌공격에 맞서 소총으로 응사한 북측 경비정을 향해서 미리 조준하고 있었던 76mm 함포를 발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의 입장과는 달리 현장에서의 상황에 대해 현재까지도 청와대는 사후보고 받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문민통제론자들은 교전수칙까지 행정부가 장악 통제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이라크 파병은 문민통제원칙이 어떻게 왜곡되는가를 보여준다. ㅈ어부는 비전투병 파병이란 원칙만 정하고 세부사항은 국방부에 위임햇다. 그러자 전투부대가 되어 나타났다. 재건부대가 과연 애초부터 가능한 것이었나에 대한 의문이있지만 더 심각한 것은 청와대에서 병력규모와 교전수칙까지 직접 개입해서 짜지 않는한 문민통제는 왜곡된다는 것이다.

한편 서해 교전이 일어났을 때, 클린턴 행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긴급하게 소집하지 않았다. 국가안보회의 대변인 크롤리는 “국가안보회의는 일상적으로 열리고 있다. 이 사건으로 특별히 소집된 적은 없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 대변인 제임스 폴리는 공식논평에서 “우리는 모든 당사자들이 대결을 피하고 긴장완화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어느 한 쪽이 아니라 모두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백악관-국무부가 국방부-군부와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백악관의 견해와 달리 이미 유엔사령관이 작전을 지휘한 후라면 상황은 돌이킬 수 없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문민통제를 기본으로 하는 미국에서는 교전수칙까지 백악관이 정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90년대 이후 군부에서는 교전수칙은 군부의 일이라는 설문조사가 발표되어 논란이 인적이 있다. 다음은 코언의 글이다.

베트남전쟁과 걸프전쟁을 겪으면서 민군‘정상’이론은 더욱 강화되었고 미국에서 군에 대한 민간의 통제력은 더욱 약화되었으며, 고위 장성과 정치인간의 불신은 더욱 깊어져 가고 있다. 더욱 나쁜 현상은 군부가 정치화되는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1999년 트라이앵글안보연구소(Triangle Institute for Security Studies)소속의 사회과학자들은 수많은 군인들을 대상으로 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정치지도자들에게 자문을 제공하고 지지를 해야되는지 아니면 무력사용의 핵심요소에 대한 통제권을 ‘주장’해야하는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에 따르면 군인들은 군사작전상의 일부요소에 대해서는 자문이나 지지보다는 통제권을 요구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라고 믿고 있음이 밝혀졌다. 또한 그들중 50%는 군이 ‘교전수칙을 정해야’ 하고, 52%는 ‘출구전략’을 수립해야 하며, 63%는 모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어떤 종류의 군부대가 투입되어야 할지 결정해야한다’고 말했다.

야전에서의 상황에 의한 교전수칙 적용의 어려움과 미국군부의 암묵적 합의를 반영한 영화가 있다.
2000년에 미국에서 개봉되어 2주간이나 박스오피스1위를 기록한 영화 Rule of Ingagement(교전수칙)가 그것이다. 우리와 같은 분단국가였던 예맨에서 미해병대가 미대사관을 향해 항의시위를 하는 시민들에게 발포한 사건을 놓고 벌어지는 미국 군부와 백악관의 법정공방을 다룬 영화이다. 영화 주인공은 월남전을 참전한 흑인이고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캠프레준에서 근무한다. 미국물정을 잘 아는 사람은 그가 군부의 입장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전형적 인물 콜린파월을 상징하고 있음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이 영화는 테러인지 시위인지를 구별하기 힘든 상황에서 현장의 군인이 독자적으로 판단하여 총격을 명령한 사건을 놓고 미국이 세계여론의 뜨거운 질타를 받아 몰리게 된다. 이에 교전수칙을 어겼다는 백악관과, 교전수칙이 적용되지 않는 야전 상황에서 시위가 아닌 테러나 교전으로 대응한 군부가 옳다는 판단의 대립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유엔군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 자격으로는 태평양사령부의 지휘를 받지만 유엔군사령관 자격으로는 미국 합참의장의 직접적인 지휘를 받는다. 흔치 않은 일이지만 99년 유고전에 대해 미군부가 언론을 통해 노골적으로 클린턴 대통령에 우회적인 항명을 하던 분위기가 직접 전달될 수 있는 구조가 유엔사이다.

유엔사 교전수칙은 한국군에게 주로 적용이 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일본주둔 미군까지 적용되는 수칙이다. <한국해군은 유엔사교전수칙의 하위개념인 합참 차원의 작전지침 (Operation Guidence)을 개정하여 전부대에 하달했다. 그리고 유엔사와 교전수칙개정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에따라 주한 유엔군사령부에서는 북측에서 공격 징후를 보이기만 해도 미군과 남측에서 선제공격을 하는 방향으로 교전수칙의 개정이 검토되었다. 2차 서해교전이후 개정된 교전수칙이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기위한 장성급 회담을 열어 여러가지 완화조치를 취한 것은 너무나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궁극적인 해결책중의 하나는 유엔사 교전수칙을 우리가 자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상황과 유엔사의 해체이다.

수정 2004.7.4 <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