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명상세째날-한강하구와 유엔사2004/06/23 992
한점 대지위에 외발로선 꽃들은 좌절 대신 아름다움을 택했다. 향기로움을 택했다. 그리고 그마저 다 내어줄 헌신을 택했다.그리고 세상을 점령했다
한강하구와 유엔사
이시우
강화대교
우울한 전설같은 회색빛 안개가 새벽녘 동에서 서로 이동해 오고 있었다.
강화대교를 건너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다급하게 큰 소리로 부른다. 돌아보니 경찰이다. 멀어서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데 돌아오라는 손짓을 보내는 것 같았다. 용무가 있는건 그쪽이니 내가 기다리고 그가 왔다.
“못 건너 갑니다. 표지판 못 봤어요”
“어떤…”
“여기는 도보금지예요”
“왜죠”
“군사지역이라서요. 저기가 북이거든요”
“여기 사람다니라고 인도까지 있는데…”
“그래도 하여튼 못가니까 절 따라오세요. 지금 사방에서 다 지켜보고 있어요. 저아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타고 건너가세요. 아 그러지 말고 내가 차 잡아 드릴테니까 이리와요”
나는 하는 수 없이 걷기 명상 사흘만에 걷기를 포기하고 차에 태워졌다. 강화와 김포사이로 흐르는 이 바다를 바다같은 강물이란 뜻으로 ‘염하’ 라 부른다. 그러나 철책선에 이어 다리마저 봉쇄되어 있으니 자연으로서의 물은 흐르되, 문명의 눈으로 보자면 호수나 마찬가지다. ‘염하’가 아닌 ‘염호’인 것이다.
들꽃
무거운 짐을 감당해야하는 발바닥은 제 고통을 물집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한곳에 반창고를 붙여 물집의 진행을 막으면 다른 곳에 여지없이 물집이 생겨났다. 어느 부위에서건 이 무게를 감당해야만 되는 것이다. 그래야 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논두렁을 맨발로 걸어본다. 땅의 결이 차암 좋다. 생명과 역사를 키워온 흙. 열로 부어있던 발도 식혀지고 있었다. 많이 피곤했다. 짐이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사흘이 지났는데 아직도 짐은 익숙해지지 않고 투정하듯 겉돌고 있었다. 이틀동안 길가에서 자다보니 자동차 소음에 숙면을 이룰 수 없었던가 보다. 논길 가운데로 난 풀밭에 자리를 깔고 풀잎처럼 누웠다. 바람이 좋다. 몸이 지쳐 격식을 버리고서야 바람과 만날 수 있었다. 허공에 충만하나 보이지 않는 것이 바람이다. 바람을 알고서야 소녀는 여인이 된다. 허공의 비밀을 깨닫고서야 소년은 청년이 된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교육 받았던 세상에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충만함이 허공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바람을 발견함으로서 나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내게 와서 닿을 때만 바람은 비로소 바람결이 된다. 결은 ‘지금’, ‘여기’에서만 존재한다. 나와 세상의 관계에서만 존재한다. 그 결에 취해 스르르 깜박잠에 빠져든다.
잠시인 듯 한 시간이 흐르고 개운해지는 몸을 느끼며 눈을 뜬다. 만개한 꽃 한송이가 내 옆에 기대어 있었음을 그제야 알았다. 언제나 저를 챙기고서야 세상이 보여지는 것이다. 꽃은 한점 대지에 외발로 서있다. 자신의 존재를 위해 돌아다닐 수도 없고, 생존을 위해 피할 수도 없다. 주어진 시간과 조건에 태어나고 성장하며 씨를 낳아 분가시켜야 한다. 그 조건과 한계가 답답할 법도 한데, 좌절하는 대신 꽃은 아름다움을 택했다. 향기로움을 택했다. 그 아름다움과 향기에 취한 벌과 나비가 꽃술에 얼굴을 묻고 온몸에 꽃가루를 묻히도록 제 자신을 모두 내어주는 길을 택했다. 난봉꾼처럼 이꽃 저꽃 옮겨다닐 뿐인 벌과 나비가 신경 쓰지 않는 사이에도 다른 꽃들과 통하여 제 종족을 번식시킬 수 있도록, 모든 가능성을 다 고려하여 내어주고 또 내어주는 길을 택한 것이다. 아름다움과 향기로움의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그마저도 다 내어줄 수 있는 헌신이 있었기에 꽃은 한점 대지에 외로이 선채로 세상을 점령했다.
제 나름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발견하고 좌절대신 헌신을 택한 역사적 존재가 시민이다. 민중이다. 외발로 선 불안한 존재인 민중과 시민이 세상을 점령할 수 있을 것인가?
한강하구
강화북부수역으로부터 김포 하성면에 이르는 강을 조선시대엔 조강이라고 했다.한강과 임진강이 합수하고 나서 서해에 이르기 직전까지가 조강인 셈이다. 그러나 조강이란 이름은 사라졌다. 정전협정문서에 이곳은 ‘한강하구’로 명명 합의되었다. 군인들에게 한강과 조강의 세밀한 역사문화적 차이를 구분할 안목까지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그나마 휴전선과 비무장지대가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비무장지대는 육지에만 있다. 임진강으로부터 조장까지에는 어떤 개념의 군사적 ‘선’도 ‘지대’도 존재하지 않는다. 53년 10월이나 되어서 합의된 한강하구에 대한 부속합의서의 골자는 이곳이 남북민간공용수역이란 것이다. 정전협정을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도 우리는 조강을 항해 할 수 있다. 해병2사단 청룡부대가 지키는 이 구역의 관할권은 유엔사에 있다. 91년 유엔사 고문이었던 이문항씨의 제안으로 한진해운 소속 바지선이 통과한 이래 아직까지 단 한척의 배도 통과한 적이 없다. 이번 총선에 나온 강화지역의 후보들은 하나 같이 개성과 강화와 영종도를 연결하는 신개발계획의 성사를 공약했다. 넌센스다. 유엔사에 대한 고려가 없는 이상 이들 계획서는 모두 휴지통행이다. 흐르는 강, 문화가 머무는 다리를 내세우며 건설되고 있는 청계천도 한강이 정치적 호수로 갇혀 있는 상황에선 결코 세계화 될 수 없다. 청계천과 한강이 살아나기 위해서도 한강하구는 조선시대까지 최대 교역로로서의 역할을 복원해야 한다. 서울은 항구도시로서의 모습으로 바뀌어야한다. 강화 교동도과 연백염전 사이에는 진도처럼 바다가 갈라지는 때가 있다. 그때는 남과 북이 바지를 걷고 갯벌을 지나 가운데서 만날 수도 있다. 유엔사에게 보슬비를 내려야겠다. 억지 축제 같은 것보다 누구라도 그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유엔사를 설득하여 한강하구를 열리게 해야 한다. 이런 것도 생각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모든 강의 하도를 관리하는 곳이 해양연구소이다. 이곳에 유일하게 없는 하도가 한강하구이다. 남아 있는 하도는 일제때 일본인들이 측정한 투박한 해도가 전부이다. 해양연구소에서 한강하구의 하도를 작성하기 위한 남북 합의를 하고 공동으로 탐사작업을 하는 것도 그자체가 훌륭한 캠페인이 되리라. 한편 김포에는 동수참 마을이란 곳이 있다. 수참이란 배들이 오갈 수 있도록 강바닥을 일정 깊이 이상 파서 관리하는 제도이다. 양수리를 기점으로 상류는 서수참, 하류는 동수참에서 관리했다. 탐측이 끝나면 한강하구를 관리하기 위한 수참, 즉 준설작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간에 형성된 한강하구의 생태계 조사도 이루어져 종합적인 한강하구 관리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일들로 한강하구에 자꾸 배들이 오가도록 해야 한다. 시민의 손길과 민중의 발길이 한강하구에 더 많이 미칠수록 한강하구에서 유엔사의 역할은 줄어들 것이다. 보슬비를 내려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