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부산지부강연2003/06/06 1194
『생각을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
2003년 전교조 부산지부 제2회 초청 강연회
이 땅의 평화문화와 평화감시
-평화는 힘이 세다, 평화는 아름답다-
강사: 이시우 (사진작가, 반전평화운동가)
– www.siwoo.pe.kr-
날짜 : 2003년 6월 5일(목) 오후 6시 30분
장소 : 부산광역시 교육정보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산지부
강 사 약 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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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 충남예산 출생
88년 신구전문대 사진과 제적
88년 한국문화운동연구소 사진강사
89년 노동자민족문화운동연합 창작단장
90년 전국노동자문화운동단체협의회 풍물분과장
91년 전국노동자문화운동협의회 창작단장
91~95년 8.15 범민족대회 문예기획단
91~94년 전태일열사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예술기획단
93년 노동자민족문화운동연합 의장대행
93년 [사람과 사진]전 -서울 중구문화관
95년 민족문예일궈가는 신바람 창립 초대의장
95년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구성 혐의로 구속
97년 이시우 5회 연속 사진이론발표회
- 서울 신바람소극장
98년 통일맞이 늦봄문익환목사기념사업 문예부장
98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조디윌리암스 환영 만찬
초청 슬라이드 쇼 – 서울 힐튼호텔
98년 인천영상미술제 초대작가
99년 남북기본합의서실천개막행사 슬라이드쇼 -세종문화회관
99년 사진전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 – 예술의전당
99년 사진집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 – 인간사랑 출판
99년 사진전 [끝나지 않은 전쟁 대인지뢰] -서울 중구문화관
99년 사진집 [끝나지 않은 전쟁 대인지뢰] –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출판
99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초대사진전 [한국의 대인지뢰 피해자들]
-네덜란드 헤이그 콩그레스 센타
99년 독일 한인회 초청 사진전 [비무장지대와 대인지뢰] -독일 루루대학
99년 기독교방송 사이버인간띠잇기초대 사진전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
99년 문학예술청년공동체(준) 부위원장
99년 DMZ 2000 참여작가
2000년 평화예술인국제연대 사무처장
2000년 한강에서 서해로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 사무국장
Ⅰ. 평화문화
집을 나서 지방에 갈 때면 숙소잡기가 항상 고민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여관보다는 목욕탕을 더 잘 이용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찜질방을 이용하게 되었다. 찜질방에서 나는 일본의 핀란드부대사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녀는 핀란드 사우나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핀란드와 소련전쟁 당시 핀란드는 다른 나라의 군대와 달리 군위안부를 쓰지 않고 장병들에게 일인용 천막을 나눠주고 그 곳에서 달궈진 돌에 물을 끼얹어 그 증기를 쐬는 핀란드식 사우나를 즐기게 했다는 것이다. 핀란드의 전통 사우나는 우리에게 지금 보급된 사우나와는 약간 개념이 달랐는데 찜질방이 오히려 그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만약 군대의 야전훈련이나 등산이나 레저를 즐길 때 천막에 찜질방 문화를 적용할 수 있다면 새로운 평화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은 그 광포한 긴장과 비이성의 출구로 성폭력의 구조를 양산해 왔다. 전쟁에서 이러한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문화가 평화시에 만들어진다면 우리는 전쟁의 와중에서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필요악으로 여겼던 폭력문화 하나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앨빈 토플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전쟁을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은 우리를 고민한다.’ 이제 우리는 평화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전쟁조차 평화를 고민하도록 해야 한다. 고대 희랍이래 서구의 평화사상은 다음의 한마디가 지배해 왔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그러나 전쟁을 준비하면 전쟁이 찾아오지 평화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천년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마이클 르네는 이에 정식으로 반발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평화를 원하거든 평화를 준비하라’ 정전협정 50주년을 맞는 2003년의 오늘은 어느 때보다 가공할 전쟁의 위협이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전쟁을 막을 수 있는 힘은 평화시기에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를 만끽하는데 만 도취해 있는 데에서 나아가 평화를 사상으로 정착시키고 생활 속의 문화로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Ⅱ. 한반도 전쟁을 막기 위한 4가지에 대한 평화감시
평화감시는 전쟁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사상으로부터 전략과 구체적인 행동까지를 감시하는 것을 말한다. 평화감시를 통해 우리는 전쟁이 준비되는 과정을 발견하고 그것이 작은 싹에 불과 할 때 평화문화를 통해 전쟁의 발전을 예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쟁력과 평화력은 서로 상극이므로 전쟁력을 압도할 수 있는 평화력이 만들어질 때만이 우리는 전쟁의 싹을 자를 수 있다.
1. 3차 서해교전에 대한 평화감시
99년 서해교전 직후부터 2000년 6월8일까지 북은 모든 방송과 언론을 통해 남측도발의 책임을 물으며 날마다 각계 각층에서 500여 회에 달하는 경고와 응징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6월8일 박지원 특사가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발표하고서야 북의 성명전은 중단 됐다. 서해교전의 연속선상에서 보면 남북정상회담 같은 최고위급의 정치적 결단 외에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충돌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서해 5도 지역에서의 영해문제나 북이 제안한 조선서해해상군사분계선에 대한 논의는 단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부의 낡은 논리가 득세하게 된 것이다. 국방부는 자신들의 주장에 침묵하고 있으면 인정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적 대세 속에서도 국방부는 서해교전 이후의 대결적 논리를 포기하기는커녕 계속 정교화해 놓고 있었다. 이것이 다시 2차 서해교전을 불러일으킨 원인이다.
유고전을 정점으로 미국군부와 백악관의 갈등이 증폭되는 시점에서 발생한 서해교전은 다른 해에 일상적으로 처리되던 수준을 넘어 특수한 수준으로 발전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이 틸럴리 사령관으로 하여금 ‘북방한계선’의 진실을 의도적으로 왜곡시키게 했고, 상황은 전쟁의 수준으로 급진전 된 것이다. 서해교전은 유고전 수행방식에 불만을 품은 군부가 중심이 되었고 틸럴리 사령관이 기획한 전쟁으로 판단된다.
서해교전을 기화로 틸럴리와 미군부는 동아시아 전역미사일방어체계(TMD)의 추진을 현실화했으며, 2001년에 와서 부시가 당선됐고 9.11사태로 국방예산은 레이건 시절보다 더 많은 최고액수인 3,800억 달러를 돌파했다. 그리고 다시 2002년 서해교전을 맞이했다. 당시에는 일부군인이 주도했다면 지금의 상황은 테러전쟁을 선포한 미정부가 주도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이 마련되어 있다. 한미연합군은 이미 기밀사항이었던 유엔사 교전수칙의 발포권 관련 항목을 공식적으로 수정했다. 2001년 6월의 북상선 영해침범 운운했던 사건 때에도 교전수칙개정의 문제가 제기 되었다. 그때는 교전수칙이 지나친 과잉대응을 하는 것이 문제가 되어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2001년에는 미군이 교전수칙 개정에 응하지 않았는데 2002년에는 즉각 응해서 교전수칙이 바뀌었다. 전쟁할 태세를 모두 갖춘 상태에서 북방한계선의 진실이 제대로 보일 리 만무하다. 서해교전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북방한계선을 설정한 미국이며, 실행자는 99년 이후 자기최면을 걸고 원래의 설정의도조차 왜곡하며 ‘북방한계선’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려는 미국군부와 한국군부이다. 그런데도 미국정부와 군부는 전쟁의 원인을 없애기보다는 전쟁을 준비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4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맥락은 변했지만 99년 서해교전 자체의 구조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때의 본질이 오늘에도 그대로 본질인 것이다. 전쟁이 발발 하면 전쟁의 원인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적인 서해상의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민족적 관점에서 공동 이용하는 문제는 서해교전을 막을 수 있는 중요한 담보이다.
통일뉴스의 기사에 의하면 군용수송헬기인 치누크가 서울 용산기지를 떠나 백령도로 향할 때 북방한계선의 항로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 북이 2000년 3월 공표한 ‘서해5도 통항질서’상의 제1수로를 따라 비행했음을 알 수 있다. 현실적인 군사적 대치 상태에서 제1수로와 제2수로가 현실적인 통항로임을 남측에서도 묵인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서해상의 군사분계선과 통항질서, 공동어로수역의 설정문제는 통일 전까지 현실적인 군사적 긴장상태를 반영하되 민족공동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도록 민간이 나서야만 한다. 서해교전과 관련된 평화감시를 통해 서해교전의 진실을 밝히고 대안을 마련함으로서 우리는 3차 서해교전을 막을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 할 수 있을 것이다.
2. 동해 괴선박 또는 잠수함사건의 예방을 위한 평화감시
강릉 안인진에는 강릉잠수함 전시관이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동해의 군사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 해군이 96년 11월 강릉잠수함사건 발생 2개월이 안되어서 작성한 보고서 <세계로 확대되는 잠수함의 도전>에는 북을 포함한 러시아, 중국 등의 잠수함 운용상황과 함께 북의 한국해역 침투루트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을 비롯한 미군당국이 이런 침투루트를 중심으로 군사위성 등을 통해 북한 잠수함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며 이 사건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
강릉잠수함사건을 통해 우리는 미국이 동해를 손바닥 보듯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략 미국의 동해 정보망은 일본에 있는 자위대 기지와 미군기지를 통해 짜여진다.
훗카이도에는 87년 KAL기 격추시 소련군의 음성을 녹음한 왓카나이 통신분견대가 있다. 일본본토 북쪽 미사와 기지에는 코끼리우리라는 거대한 안테나군이 있어 북의 모든 전기전자신호를 도청한다. 우리나라의 대구정도와 같은 위도에 있는 돗토리현 요나코시에는 자위대 통합막료감부정보본부 출장소가 있는데 이곳에도 코끼리우리가 있어 요도호 납치사건을 잡아냈다. 후쿠오카현아사쿠라군에 다치아라이통신소, 오끼나와의 요나손의 미군통신소 코끼리우리등 수많은 통신시설이 동해와 북내륙의 흐름을 감시하고 있다. 이들 정보는 동경의 카미세야 미해군 통신기지로 수집되고 최종적으로 요코스카미 해군기지 안의 극동미해군기지 정보센타로 집중된다. 99년 노토 반도의 북 괴선박사건, 2001년 카고시마의 괴선박사건, 2002년 다시 노토반도의 괴선박사건 등은 자위대를 통해 발표됐지만 미군과 자위대의 통합체계상 미군의 협조 없이는 파악 불가능한 사건들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내각회의에서 최종적인 판단을 하기까지의 정보집중 경로에서 미군의 정보체계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강릉잠수함사건처럼 알면서도 모른 척 할 수도 있고 괴선박 사건처럼 노골적으로 아는 척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일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