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메유리는 오키나와여자사범학교 교지인 ‘오토히메’와 오키나와현립제1고등여학교의 교지인 ‘유리카이’에서 따온 것이다. 두 학교가 통합되면서 히메유리라는 이름으로 합쳐진 것이다. 미군상륙으로 밀리게 된 일본군은 주민들을 하에바루방공호에서 몰아내고 군인 방공호로 사용한다. 학도병으로 징발된 여학생들은 간호임무를 맡았으나 미군공격이 거세지자 해산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동굴에 남은 학생들은 일본군의 선전을 믿고 미군은 무조건 나쁘고 귀신이나 짐승같은 놈들이라 잡히느니 죽는게 낳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군은 부상당한 학생들을 치료해주었고 일본군의 선전이 거짓이었음을 알았다. 일본군의 해산명령 전까지는 20명이 죽었는데 해산명령후에는 200명 이상이 죽었다. 적대의식으로 세뇌된 학생들이 선택한 집단자결은 일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다름아니었다고 하에바루문화센타 요시코관장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