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개천이 흐르는 광삼리 벌판 금강산철로 터엔
유람객대신 구름과 봄볕이 뒹굴며 놀고 있었습니다.
일제가 창도의 철광을 수탈하기 위해 만들었던 금강산철길은, 민간인들에 의해 금강산여행철도로 태어납니다. 금강산노선은 조선시대에 정착된 금강산여행노정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금강산이 민족의 명산으로 합의된 것은 풍광의 아름다움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의 침략에 맞서 조선의 정신과 미학을 완성하려던 소망으로 금강산미학을 창조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