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 쯤, 짙은 해무가 밀려온 다음날 건평리 집마당에 서면 햇살이 미처 닿기 전에 나뭇가지마다 걸려 있던 혼무魂霧들이 서서히 자리를 뜨는 것을 보곤 했다. 햇살이 그 안개를 걷어내고야 나무는 다시 나무가 되었다. 그 뒤로 가지에선 잎이 나고 꽃이 벌어져 온 동네는 비릿한 향에 몇일간을 젖어 지내야 했다. 그 향에 취한 남정네들은 여인에게 아이를 갖게 했고 그렇게 해서 명년 봄에 아이들이 태어난다고 했다. 밤나무 많은 건평리는 아마 지금쯤 짙은 해무에 잠겨 먼산은 더 멀어지고 파도소리에 실려온 혼무들. 성금성금 가지마다 매달려 있으리라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