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 이우근은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청결한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수의를 생각해냈는지 모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머님과 형제들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그의 편지는 1950년 8월 11일 포항여자중학교 앞 벌판에서 주검을 수습하던 동료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는 왜 북한 인민군의 적으로 사살되었을까? 마키아벨리는 그의 저서에서 도시국가의 용병들이 전쟁으로 죽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돈만 받으면 되는 용병들이 치열하게 싸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1871년 프러시아와 프랑스간의 쎄당 전투까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1차대전에서 전쟁의 풍경이 바뀐 것은 근대국가가 징병제란 군사제도와 애국심을 정점으로 하는 심리동원제도를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국가주의가 강화될수록 적대의 구별선은 뚜렷해지고, 징병과 동원은 용이해졌다. 이 제도에 저항하는 자는 내부의 적으로 낙인찍혀 공동체에서 배제, 격리된다. 적대와 배제를 통한 국가지배의 틀을 벗겨보면 거기엔 부쳐지지 않은 편지의 주인공처럼 소박하고 평범한 시민이 있다. 시민의 자기지배를 뜻하는 정치가 실패할 때 시민은 누군가의 적으로 전선에 동원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