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 3일전인 9월12일 죽음을 예감한 결전을 앞두고 인민군 한응수는 자강도 만포의 부인 신선옥에게 편지를 쓴다.
그간 편지를 못 받아 봐서 많은 근심을 하였을 부인을 위로하고 자신은 조국과 인민을 위해서 정치학습과 훈련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안심시킨 뒤 혼자서 인천의 전선까지 찾아왔다고 말한다. 이어서 쓰기를 그간 편지연락이 없었으니 이제부터 연락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공손히 처에게 존대하던 그는 전쟁의 와중에 다시는 편지를 받을 수 없는 몸이 된 듯하다. 그는 친구에 5백원을 꾼 것이 못내 걱정이 되어 죽음이 예감되는 상륙전의 대결전을 앞두고 부인에게 이 돈을 어떻게 해서든지 갚아달라고 부탁하고 있다.1) 플라톤의 ‘파이돈’에 의하면 소크라테스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웃에게 닭 한마리를 빚진 적이 있는데 이를 갚아달라는 것이었다.2) 한응수 역시 그랬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편지는 부인에게 부쳐지지 못했고 미군의 손에 노획되어 미국의 전리품으로 되고 말았다. 부인에 대한 애절함과 사랑도 적이 된 상대방에 의해 전리품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강도에 살던 한 주민이 어떻게 적이 된 것일까? 클라우제비치는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라고 했다. 칼 슈미트는 ‘정치란 적과 동지를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렌트는 말한다. 폭력과 전쟁은 정치가 실패한 결과일 뿐이다.
1) 처에게 들이는 편지. 그간 편지를 못바다바서 마는 금심하신지. 나는 몸건강하여 조국가 인민을 위해서 정치학습과 훌년를 심둑하고 이스이. 하라버지와 몸 건강하오이까 어머님도 몸건강합니까. 나는 혼자서 경기도 인천시를 왓슴니다. 그세간 편지열악 엿서스니 이제부턴 열락해주시기를 바라나이다. 나는 근심하는 것슨 강치수동무에게 금전을 五百원 꿔서 가지고 왓슴니다. 신선옥동무는 이금전을 어덧컷선지 갚아주시오. 신선옥동무는 나는 통일리대면 만나볼수가 잇슴니다. 경기도 인천시 내무성 三00부대 二대대 二중대 日소대 一분대(National Archive 노획북한문서군; 박명림, 한국1950 전쟁과 평화, (서울: 나남출판, 2003), p.425재인용)
2) “크리톤, 내가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마리 빚진 것이 있네. 기억해 두었다가 갚아주겠는가?” 플라톤/지경자 역, 「파이돈」, 소크라테스의 변명, (서울: 홍신문화사, 1997), p.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