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함덕의 서우봉 생이봉오지에서 48년 12월 26일 26명의 주민이 군인들에 의해 학살되었다. 대부분은 20대의 젊은 여성들이었다. 생이봉오지 벼랑에는 학살 후에도 오랫동안 시신과 옷이 걸려 있어 해녀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강간과 살육으로 이어진 이 학살을 합리화하기 위해 함덕대대본부 군인들은 이덕구무장대사령관의 부인을 찾기 위해 비슷한 나이의 여성들을 학살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빨갱이’만 내세우면 어떤 학살도 합리화되었던 것이다. 빨갱이 자체 뿐 만아니라 빨갱이를 찾기 위해서도 학살은 합리화되었다. 빨갱이는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 버려진 생명인 것이다. 학살의 배후에는 이승만이 있었고, 이승만의 뒤에는 미군이 있었다. 빨갱이사냥(Red hunter)은 미군정의 교범에 따른 규범적 조치였다. 이는 오키나와에서 군정교범이 완성된 이래 제주에서 가장 잔혹하게 실행되었고 최근까지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장에서 되풀이되었다. 미국의 군사정책으로서의 점령과 점령지에서의 군정은 폭력만으로 수행되지 않는다. 자신들이 원하는 주체를 만들기 위해 죽여도 좋은 ‘배제된 타자’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할 때만 합리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