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궁 맞은 편 다이이치빌딩은 맥아더 극동군사령부이자 유엔군사령부였다. 1950년 7월 7일 유엔안보리결의는 유엔군사령부창설을 결의한 적이 없다. 미국이 주도하는 통합군사령부창설을 결의했을 뿐이다. 그러나 맥아더는 7월25일 통합군사령부를 창설하면서 그 이름을 ‘유엔군사령부’라고 붙였다. 그 이름 때문에 유엔사는 마치 유엔의 조직인 것처럼 인식되는데 성공했다. 기표(언어)가 기의(의미)를 규정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유엔사무총장도 유엔사는 유엔의 조직이 아님을 공식확인했으며, 1975년 유엔총회는 유엔사해체를 결정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유엔사는 존속하고 있으며 한국으로의 전시작전권반환에 대응하여 오히려 강화시키려 하고 있다. 진주만, 통킹만, 만주사변에 대한 그리핀교수의 말을 적용하면 유엔사깃발은 ‘위장깃발’이다. 미국의 패권이 유엔을 어떻게 유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유엔군사령부이다. 미국패권체계가 유엔을 주도할 수 있는 것은 유엔자체가 미국패권이 창조해낸 의제이며, 형식이기 때문이다. 세계패권정치로부터 버림받은 주체가 배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그 내용뿐만이 아니라 형식자체를 극복함으로써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