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모스크바 레닌동상

주체-모스크바 레닌동상

1914년 가을 유럽의 모든 사회민주주의정당들이 “애국주의 노선”을 채택했을 때 레닌은 큰 충격을 받는다. 레닌은 심지어 독일사회민주주의자들이 제국의회에서 군사예산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보도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일간신문 「포어베르츠」가 러시아노동자들을 속이려는 러시아비밀경찰의 위조품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유럽대륙을 둘로 쪼갠 이 군사적 갈등의 시대에 어느 한편을 들어야 한다는 관념을 거부하는 것, 자기나라의 “애국적 열정”과 대항하여 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외롭게 ‘아니오’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절망의 순간을 거치면서 헤겔의 논리학을 정독한 결과 혁명의 독특한 기회를 발견할 능력을 갖춘 레닌이 태어났다.1) 레닌이 “4월테제”(1917)에서 혁명의 독특한 기회를 간파했을 때, 레닌의 당의 동료들은 물론 그의 부인까지 그에 반대했다. 그러나 그는 성공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레닌은 단지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적절하게 정치적 실천으로 번역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레닌은 당을 역사적 개입의 정치적 형식으로 규정함으로써 마르크스를 “형식화”했다. 사도 바울로가 그리스도를 “형식화”하고 라캉이 프로이트를 “형식화”한 것과 마찬가지다.2)

1) 이 대목은 지젝이 Sebastian Budgen, Eustache Kouvélakis와 나눈 대화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Slavoj Žižek, Revolution at the Gate: Žižek, on Lenin, the 1917 Writings, (London: Verso, 2002)/정영목 역, 지젝이 만난 레닌: 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서울: 교양인, 2008), p.9
2) Slavoj Žižek, Revolution at the Gate: Žižek, on Lenin, the 1917 Writings, (London: Verso, 2002)/정영목 역 지젝이 만난 레닌: 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서울: 교양인, 2008),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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