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모든 유물론(Materialism)의 주된 결함은 사물, 현실, 물질성을 대상 또는 관조의 형식으로만 생각했을 뿐 인간적인 물질적 활동이나 실천으로,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능동적 측면은 유물론과 대비되어 관념론에 의해 발전되었지만, 관념론(Idealism)은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활동 자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발전은 단지 추상적일 뿐이었다.
마르크스는 철학사에 일종의 이율배반(antinomy)을 도입한다. 유물론이 가진 수동성과 관념론이 가진 능동성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인간을, 그의 실천을 수동적이면서 동시에 능동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주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해석적 지평이 아니라 서사 또는 해석의 다양성을 설명하고 심지어 창조할 수 있게 해주는 모태(matrix)이다. 제대로 된 변증법적 형식 개념은 이런 자유주의적인 ‘형식’개념의 불가능성을 알려준다. ‘형식’은 오히려 실재하는 적대관계를 나타낸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계급투쟁은 ‘사회적인 것’의 ‘형식’이다. 모든 사회현상은 계급투쟁에 의해 중층 결정되며(overdetermined), 따라서 계급투쟁에 대해서는 중립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상품물신주의 분석에서 상품-형식의 신비는 이 형식 자체에 있는 것이지 그 밑에 감추어진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1) 자본론 1장에서 상품-형식의 전개는 “서사”가 아니라 상품 세계의 내적구조의 전개가 되는 것이다. 헤겔의 정신현상학(Phenomenology of Spirit) 역시 주체성의 탄생과 전개의 거대서사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의 형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는 헤겔적이다.
1) 마르크스가 프랑스 내전(The Civil War in France)에서 파리코뮌을 “마침내 발견된 계급투쟁을 그 끝까지 추구할 수 있는 형식”이라고 칭찬했을 때, 이 ‘형식’이란 표현에도 모든 헤겔변증법적 무게가 부여되어야 한다. (Karl Marx, Selected Writings, David McLellan 편,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77), p.599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