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 전을 열며

주체사상 전을 열며

주체의 이중성-주체는 영어 Subject의 번역어이다. Subject는 아래에(sub) 던진다(ject)는 뜻이다. 그래서 근대 이전 이 단어는 피조물, 하인 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영국국민은 a British Subject 라고 하며, 미국국민은 People of the United States라고 한다. 영국은 왕이 있는 나라로서 왕 밑에 종속된 백성이라는 것이고, 미국은 왕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People이다. 밑으로 자기 몸을 던져 넓적 엎드린 사람, 왕 밑에 엎드린 백성, 신하를 뜻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어가 주인이라는 말쯤으로 알고 있지만 영어는 동사에 의해 종속된 신하와 같은 말이지 주가 되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주어가 무엇이 오든 간에 동사가 하라는 대로 하기 때문에 항상 동사에 의해 종속되어 지배받고 복종한다고 해서 Subject이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주체라는 말의 어원(subjectum)은 ‘나’가 아니라 모든 것의 밑에 있으며 그 바탕을 이루는 것을 가리킨다.

1) 백기완은 주체를 ‘알기’라는 말로 쓸 것을 권한다. 김지하는 율려사상에서 황종음을 중심음이라고 했으나 바탕음이라는 해석이 더 타당할 것이다. 어떤 단어이든 주체는 중심의 뜻보다는 바탕의 뜻으로 함이 더 정확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주체는 주인과 하인이란 뜻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이 같은 주체의 이중성에 대한 사색은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황량한 레테들판을 거쳐 너무 목마른 나머지 강물을 마시는 순간 모든 것을 망각한다는 비유로 표현된다.2)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망각의 독배를 마시는 것이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스스로를 지배하는 인간은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돈이나 명예를 취하는 순간 지배당하는 존재로 전락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3권에서 정치의 주체인 시민은 ‘지배함과 지배당함에 참여하는 자’라고 했다. 스피노자는 작용함과 작용당함이라는 표현을 썼다. 지배함은 작용함에, 지배받음은 작용당함에 연관된다3) 헤겔은 주인과 노예4)로 이를 설명했으며, 마르크스는 관념론을 능동에, 낡은 유물론을 수동에 비유하면서 반대편에 던져진 것(object)에 대한 저항과 대상적 활동(objective activity)을 이야기 한다. 랑시에르 ‘셈하지 않는 자의 셈’ 이란 개념을 통해 몫 없는 자로 배제되고, 분할된 주체의 몫 찾기를 강조한다.

버려진 주체-현존하는 경제적차별질서와 사회적차별질서는 민주주의를 최소민주주의적인 절차로 한정하고 그 절차를 보장하면서 현존 경제적사회적 차별질서와 공존 유지하도록 만든다.5) 벤하비브에 따르면 “모든 국가는 자신의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타자를 갖고 있다.”6) 이를 민주주의의 ‘구성적 외부’라고 할 수 있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구성적 외부는 ‘프롤레타리아’라고 해도 무방하다. “프롤레타리아는 아무나의 이름, 내쫒긴 자의 이름으로서, 노동자에게 어울리는 고유한 이름이었다.”7) ‘현실민주주의는 다양한 억압적 관계 및 불평등관계를 은폐하는 기제’라고 하는 마르크스의 비판은 설득력이 있다. 아감벤에 따르면 “구성적 외부는 ‘벌거벗은 생명(호모 사케르)’이라고 할 수 있으며 여전히 예외형태로, 즉 배제를 통해서만 포함되는 어떤 것으로서 정치에 포섭되어 있는 존재”8)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버려진 주체는 우리사회에서 배제된 소수자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버리는 주체조차도 버려진 주체이다. 이런 주체의 이중성을 통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성-
헤겔이 말하는 주체는 반성에 의해서 매개된 실체이다. 실체로서의 정신은 주체인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으나 반성을 매개하는 것에 의해 처음으로 주체가(실체)가 정신임을 자각하게 된다는 것이다.9) 헤겔이 말하는 주체란 우리가 말하는 주관․주체․인간등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반성10)된 실체를 말하거니와 이는 주관․객관의 대립을 지양하여 얻은 재통일체로서의 정신이다. 이런 의미에서 헤겔에게 절대자는 주체이고 더 나아가 절대적 주체이다.11) 자기반성을 통한 새로운 개념 틀의 창조 및 발견이 도둑맞은 주체, 버려진 주체를 회복하는 방법이다. 결국 주체는 반성의 내용뿐 아니라 반성의 형식을 통해서 완성된다. 역사적으로 프랑스 혁명에서의 인민주권, 러시아혁명에서의 소비에트권력, 3.1운동과 독립운동과정에서 민족, 이승만의 빨갱이, 히틀러의 인종주의등이 주체의 형식이었다. 한시대의 주도세력은 이와 같은 형식을 창안하고 그에 대한 패권을 장악함으로써 한 시대의 주체를 구성한다.
주체사상전은 유라시아차원에서 주체의 개념을 새로이 구성할 것을 권고한다. 담론과 서사로서의 유라시아가 아닌 체계와 형식으로서의 유라시아를 고민함으로써 새로운 주체의 가능성을 시도해본다.

1) 하이데거는 주체의 어원을 추적한 후 근대의 주체성 철학이 몰고 온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근대는 분명 인간해방의 결과로서 주관주의와 개인주의를 동반했다.… 결정적인 것은 인간이 지금까지의 구속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주체가 됨으로써 인간의 본질 자체가 변했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서 주체(subjekt)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히포케이메논(hypokeimenon)을 번역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단어는 근거로서 모든 것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이미 갈려 있는 것(vor-liegrnde)을 일컫는다. 이런 주체개념의 형이상학적 의미는 인간과 관련되는 것은 아니며 자아와는 더더욱 관련이 없다. 하지만 인간이 최우선적인 본래 주체가 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인간은 모든 존재자가 자기 존재 및 자기 진리의 방식에 있어서 근거로 삼는 바로 그 존재자가 된다. 인간은 존재자 그 자체의 관계의 중심이 된다.” M. Heidegger, 전집41, p.89; 이종관,사이버문화와 예술의 유혹, (서울: 문예출판사, 2003), p.250
2) 플라톤, 최현 역, 플라톤의 국가론 (서울; 집문당, 1997), p.442
3) 스피노자, 강영계역, 에티카, (서울: 서광사, 1990) p.131
4) Hegel, Phaenomenologie des Geistes, GW9, (hrsg v. Wolfgang Bonspien und Reinhard Heede, Felix Meiner Verlag, 1980), pp.109-116; 이병창, 헤겔정신현상학강의2, 불행한 의식을 넘어, (서울: 먼빛으로, 2012), pp.198-227. 아리스토텔레스는 칼 마르크스가 인정했듯이 ‘사유의 거장’이었지만 어디까지나 노예소유주의 이데올로그였다. 그는 ‘폴리테이아’의 도입부에서 노예는 타고나는 것이라는 논리를 전개한다. 희랍의 노예는 포로 출신이다. 용감한 자는 싸우다 죽든지 싸워서 이기든지 하기 때문에 포로가 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소심하고 비겁한 자는 목숨을 걸지 않기 때문에 포로로 잡혀와 결국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헤겔은 노예소유주의 이해관계를 대변한 아리스텔레스의 이 이데올로기적 논리를 슬그머니 빌려와‘정신현상학’의 “인정투쟁” 절에서 호전적(好戰的), 타나토스적 인간관의 모델을 수립하였다.
5) 조희연, 「한국적 ‘급진민주주의론’의 개념적․이론적 재구축을 위한 일 연구」, 데모스No.1, (서울: 데모스, 2011), p.61
6) 세일라 벤하비브, 이상훈 역, 타자의 권리: 외국인, 거류민, 그리고 시민, (서울: 철학과 현실사, 2008), p.41
7) 카크 랑시에르, 양창렬 역,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서울: 도서풀판 길, 2008) pp.140-141
8) 조르지오 아감벤, 호모 사케르: 주권권력과 벌거벗은 생명, (서울: 새물결, 2008), p.50
9) 황세연, 헤겔 정신현상학과 논리학 강의, (서울: 중원문화, 1984), p.30
10) 반성(Reflexion). 여기서의 반성이란 술어는 독일어 원뜻에서 “반사하다”, 즉 “반사된 것”이라는 뜻이다. 주체는 실체에 의해서 자기가 주체임을 안다. 다시 말해서 주체가 사람이고 실체가 책상이라 한다면 책상을 가리켜 사람이 아니라고 할 때 실체에 의해서 주체가 사람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즉 주체는 실체로부터 반사되어 나오는 것이다. 11)황세연, 헤겔 정신현상학과 논리학 강의, (서울: 중원문화, 1984),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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