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계획-제성호 이시우 2005/04/15 396

북한 붕괴·대규모 탈북 등 최악의 시나리오 대비해야

북한 급변(急變)사태에 대한 비상대비계획(contingency plan)의 수립은 독일통일이 동독 정권의 붕괴와 서독의 흡수방식으로 이루어진 직후 한반도 위기관리 및 평화적 통일 준비 차원에서 그 필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후 김일성의 급작스런 사망, 북한의 계속되는 식량난과 경제붕괴 상황이 겹치면서, 정부는 전면전 상황에서 군사작전을 지원하는 충무계획과 별도로 범정부적인 ‘급변통합대비계획’(종전 안기부의 ‘평화계획’을 흡수)을 마련하였다.

북한 급변 사태는 북한 정권(김정일 체제)이 붕괴함으로써 더 이상 국가로 존재하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이는 내부 요인에 의한 자체 붕괴(implosion)와 전쟁 등 외부 요인에 의한 붕괴(explosion)로 대별된다. 전자의 예로는 ▲쿠데타(김정일 실각)나 민중봉기 등으로 무정부상태에 빠지거나 ▲내전이 발발해 집권세력과 내전세력 간에 무장 대치상태가 장기화되는 경우 ▲대량 탈북ㆍ난민 사태로 변경 지역 관리가 와해되고 치안질서가 극도의 혼란에 빠지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후자의 예로는 ▲북한의 대남 무력도발시 한ㆍ미 연합군으로부터 대규모 반격을 당해 괴멸(전면전에 의한 북한체제 붕괴)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최근 국회의 국정감사장에서 공개된 국가기밀사항인 ‘충무 3300’은 대량 탈북ㆍ난민 사태 대비계획이고, ‘충무 9000’은 전면전에 의한 북한 체제 붕괴시 비상통치계획을 가리킨다. 이들은 유엔사ㆍ연합사 작전계획(작계) 5029 및 5027과 각각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현재 정부는 ‘을지연습’(매년 8월에 실시) 때 도상훈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상기 사항은 비밀로 묶여 있어 그 자세한 내용을 알 길이 없다. 여기서는 필자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조치를 단계별 구분 없이 적시하기로 한다.

대량 탈북·난민 사태 발생시 (충무 3300 발동)

북한에서 쿠데타나 민중봉기 혹은 내전이 발발할 경우 우리는 한반도 평화관리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 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 제2조에 입각, 급변 사태를 북한의 내부문제로 인식하여 개입할 의사가 없음을 밝힘으로써 북한 정권을 안심시켜야 한다. 그리고 개성공단 건설, 금강산 관광 등으로 북한에 체류하는 우리 국민의 안전한 귀환을 추진해야 한다. 더불어 식량ㆍ생필품 등 대북 인도적 지원의 용의가 있음을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북 경협은 기 합의된 일정대로 계속 추진토록 해야 한다.

다만 우리 정부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북한에서 쿠데타, 민중봉기 또는 내란을 일으킨 주도세력의 실체를 확인하는 한편, 이들과의 접촉통로를 확보해야 한다. 중ㆍ장기적으로는 북한 내의 민주화 진전상황에 맞춰 개혁세력과의 연대·협력을 강구해야 한다. 민주화 세력의 조직화 및 지원은 북한의 체제 개혁 및 자유총선을 통한 민주정부 수립의 선결조건이며, 궁극적으로 남북 정치통합의 기반이 된다.

대외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주변국(특히 중국)의 개입을 차단하고, 우리의 입장이 존중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주변 4국과의 외무장관 회담 및 특사 파견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강력한 대북 안보태세 유지를 위해 한ㆍ미 간 연합작전 능력을 강화하고, AWACS(공중조기경보통제기) 등 미국의 정보체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쿠데타나 민중봉기 혹은 내전이 발생하면 곧바로 통일로 연결되지 않고 북한 내에 신 공산정권이 수립될 수 있다. 따라서 신 정권이 개혁ㆍ개방 및 남북화해ㆍ협력 정책을 지속하도록 유도,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음으로 대량 탈북ㆍ난민 사태가 발생할 경우 탈북 난민자들의 주 루트가 어디냐가 중요한 문제다. 이 때 ▲중국ㆍ러시아 등 인접국가로 탈출하는 경우와 ▲해안이나 휴전선을 넘어 직접 남한으로 오는 경우를 구별하여 대처해야 한다.

전자의 경우 탈북난민들의 국내 입국을 최소화하고, 현지국과의 긴밀한 협조하에 난민 정착촌이나 임시 보호처를 설치해 식량ㆍ의약품 등 신속한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 난민 수가 대규모화할 경우 우리 혼자 책임을 지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대량 탈북 사태의 현지화가 절실하다. 한국은 유관국과의 공조하에 중국을 설득해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과 같은 국제난민구호기관의 개입을 모색하는 한편, 국제적 고통분담체제 구축을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탈북난민 원조를 위한 다자협의체 구성이나 국제회의(1979년 베트남 탈출난민 구호를 위해 UNHCR 주관하에 열린 ‘제1차 인도차이나 국제난민회의’ 참고) 개최를 검토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 국무총리실 주관하에 범정부 차원의 대량 탈북자 수용체제를 수립, 기민하게 대처해야 한다. 탈북자 수용시설인 ‘하나원’을 증축하되, 시설의 절대부족을 감안해서 군대 휴양소, 체육관, 폐교 시설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보트 피플의 경우 서해의 외딴섬에 일시적으로 격리 수용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와 대한적십자사는 대량 탈북 사태에 대비해 천막, 급식차량, 취사ㆍ식기세트, 구호물자를 미리 비축해 두어야 한다.

현재 운용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법’은 일시에 수만 명이 떠밀려 오는 대량 탈북에 대하여는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따라서 가칭 ‘대량탈북자긴급수용법’을 제정해 대처하되, 지방자치단체의 역할 강화 및 국내 민간단체의 협조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 경우 국내 정착금과 주거지원비 제공은 임시 중단하고, 심리적 안정 지원, 사회적응훈련, 직업교육 및 취업 알선 위주로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

‘충무 3300’에 의하면, 군 당국은 대규모 탈북 사태에 대비해 휴전선 인접 군부대(8개 육·해군 부대)에 모두 10개 임시수용소를 설치해 놓고 있다. 육군은 휴전선을 넘어 남하하는 대량 탈북자를 한시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전방 6개 군단별로 200명 수용 규모의 시설을 1개씩 설립했고, 해군도 강원 동해 소재 1함대사령부와 경기 평택의 2함대사령부 영내에 수용시설 2개씩 갖춰놓고 있다. 아울러 군은 장병들이 탈북 주민과 접촉할 경우 안전한 귀순 유도 및 탈북주민 호송절차를 마련해 놓고 있다.

북한 체제 붕괴시 (충무 9000 발동)

마지막으로 전면전에 의한 북한체제 붕괴시 정부는 먼저 북한에서 비상통치를 담당할 가칭 ‘북한자유화행정본부’를 설치해야 한다. 이 기구는 주로 한국 정부와 유사한 행정조직체계를 갖추겠지만(통일부 장관이 총독 역할을 담당한다는 보도가 있었음), 사실상 군정(軍政)의 형태를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구 공산세력이 저항세력으로 바뀌어 장기간 빨치산 활동을 전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응전자유화(應戰自由化)’ 이후 북한에 군정이 실시될 경우, 한ㆍ미 간에 주도권 문제와 관련해서 현재 논란이 일고 있다.

어쨌든 ‘북한자유화행정본부’는 조선로동당을 즉각 해체하고, 이른 시일 안에 민주정당 및 실용주의적 개혁세력을 육성함으로써 체제 전환을 위한 정치프로그램(자유총선을 통한 민주정부 수립 포함)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북한 주민들이 처한 인도적 위기상황을 고려해 식량ㆍ의료 등의 긴급 구호를 실시해야 한다. 이와 관련, 유엔 및 국제 NGO들에 대북 지원을 적극 호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단 과도기 동안에는 북한 경제를 분리해 관리토록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가칭 ‘북한지역재건지원단’을 구성ㆍ운영해 조기에 북한에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는 한편, 북한 주민의 일자리를 창출해 이들의 대량 남한 이주를 억제해야 한다. 더불어 북한 지역에서 자행된 반민주적 공산 잔재의 청산을 추진함으로써 북한 주민의 친남한화를 유도하는 한편, 본격적인 남북 정치통합을 준비해야 한다.

급변통합계획은 북한에 급변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이러한 위기를 관리하고 평화적 통일로 연결하기 위한 비상대비계획이다. 하지만 다분히 로드맵(이정표)의 성격을 가질 뿐이다. 얼마든지 돌발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보다 구체적인 상황을 상정해 입체적이고 전방위적인 세부대응계획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비상대비계획이 그야말로 비상적 위기상황에 통할 수 있고,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기여할 수 있도록 내실화를 도모해야 한다.

주간조선 2004-11-03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