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하구수역 문제 해결의 전망-김창수 이시우 2005/03/10 330
남북 정상회담과 한강 하구수역 문제 해결의 전망
김창수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정책실장)
1. 정상회담과 평화정착
2. 정전협정의 불안정성과 서해사태
3.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 전환
4.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접근법
5. 맺음말
1. 정상회담과 평화정착
남북 정상회담에서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하였다. 불과 1년전 6월 15일 서해에서 남북 정규군대의 충돌로 위기가 고조되었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615 남북공동선언의 극적인 효과는 배가된다도 할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은 일부에서 예상한 것과는 달리 경제회담이 아니라 통일회담이었다. 정상회담에 북한이 적극적으로 임한 것은 몇가지 이유가 있어보인다.
첫째로 한반도 문제가 국제화되는 시점에서 민족내적으로 통일을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다. 통일문제의 국제화는 북한의 활발한 외교에서 비롯한다. 1999년 백남순 외상이 유엔총회에 참가한 이후 북한의 외교는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북한의 활발한 외교로 한반도 문제가 국제화되기 시작하면서 북한은 민족내부적으로도 관계를 진전시필 필요에 직면했다.
둘째, 북미관계와 북일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개선이 필요하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99년 10월에 발표된 페리보고서로 미국의 대북정책의 골격이 잡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이 보고서를 이행하기 위한 환경을 만들 필요에 부딪혔다. 남북정상회담이 그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한편 북한 경제의 회복을 위해서는 남한과 관계 개선을 통한 남북 경제협력이 북한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셋째, 오는 10월 10일 노동당 창당 55주년을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맞이하기 위해서는 통일문제의 진전이 필요하다. 북한이 노동당 창당 55주년을 계기로 해서 20년만에 노동당 당대회를 개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이 7차 노동당 당대회를 개최한다면 그동안 정비된 북한의 군(軍), 정(政)과 함께 당(党)도 정상적인 기능을 하게됨으로써 북한 체제는 위기국면을 벗어나서 정상화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김정일 시대의 통일정책이 제기될 수도 있다.
넷째, 남북 정상회담은 노동당 창당 55주년 기념일부터 2002년 김정일 총비서의 60회 생일까지 통일문제에 대한 전환적인 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한 배경으로 작용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은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베일에 가려있던 김정일 총비서를 통일과 평화를 추구하는 지도자로 부각시킬 것이다.
북한은 이러한 시각에서 정상회담을 통일회담으로 준비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남북공동선언에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의 문제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공동선언 전문에는 평화에 대해서 두 번 언급하고 있지만 본문에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두 정상은 주한미군 문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서 충분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쉽게 합의하기 어려운 사안이며, 나아가 주변국가들과 관계속에서 풀어야할 사안이므로 공동선언에 명기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정상이 평화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였기 때문에 앞으로 이와 관련해서 중대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정전협정에 1조 5항에 따라서 남북 민간선박의 자유로운 항행이 인정되는 한강하구수역은 실제로는 민간선박의 자유로운 이용이 허락되지 않았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의 군사적 대치를 해결하기 위한 평화문제에 진전이 생긴다면 한강하구수역을 민간선박이 자유롭게 롭게 이용하지 못하는 문제도 해결의 전망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99년의 서해교전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한강하구에서 서해5도 일대의 수역은 한반도 정전체제의 가장 약한 고리이다. 따라서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 전환과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남북의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강하구수역에서 민간선박의 자유로운 이용도 가능해질 것이다.
2. 정전협정의 불안정성과 서해사태
정전협정 2조 13항 b목은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등 서해 5도를 유엔군 관할로 명기하고 있지만 해상경계선을 설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서해일대의 해상경계선을 둘러싸고 남북한은 근본적인 갈등의 씨앗을 안고 있다. 그래서 서해 5도 일대는 한반도의 화약고인 것이다.
정전협정에서 서해의 해상분계선을 명확하게 하지 못한 것은 지상에서와는 달리 한국전쟁 종결 당시 제해권을 유엔군이 장악하고 있어서 서해와 동해 일대의 섬들이 유엔군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상에서는 전투가 발생한 군사접촉선을 중심으로 군사분계선을 설정할 수 있었지만 해상에서 군사접촉선을 중심으로 분계선을 설정할 경우 서해와 동해의 대부분의 섬들이 유엔군에 소속되기 때문에 협상과정에서 서해 5도만 유엔군 소속으로 명기한 것이다.
정전협정 체결 직후 유엔군은 1954년 8월 서해에 북방한계선(NLL)과 동해에 북방경계선(NBL)을 설정하였다. 유엔군이 서해에 북방한계선을 설정한 것은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을 막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유엔군은 북방한계선을 북한에 통보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북방한계선의 법적 효력이 아직까지 논란이 되는 것이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진행된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남북 불가침선에 대해 협상할 때 북측은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을 서쪽으로 연장한 선을 불가침선으로 하자는 주장을 하기도하였다. 남북 협상 결과 ‘남북 불가침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에서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합의한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리고 북한은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계속 논의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북합의서의 약속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리고, 남북 군사공동위원회도 가동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서해 5도 일대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확정되지 않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북합의서에서 불가침 경계선을 ‘쌍방 관할 구역’이라고 명시한 것을 근거로 북방한계선의 실효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쌍방관할구역의 기준에 대해서 남북이 각각 달리 생각하고 있음로 남북기본합의서의 조항도 모호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즉 서해 5도 일대의 해상분계선은 남북이 합의하여 새로운 결론을 내리기 전까지는 끊임없는 논쟁거리가 된다.
서해 5도 일대에서 남북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북한이 73년 12월 1일 군사정전위에서 “서해5도 도서 주변수역은 북한의 관할 수역이며, 이들 도서 자체가 정전협정에 명기된 대로 유엔군 통제하에 있음을 인정하나, 그 주변수역을 통제하는 북한의 사전승인을 받아서 통항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부터이다. 그리고 북한은 북방한계선을 월선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를 ‘서해사태’라고 한다. 북한은 1973년 서해사태 이후 매년 연평균 40차례씩 북방한계선을 월선하였다고 한다.
특히 1996년 4월부터 7월까지 북한이 북방한계선을 월선한 것을 계기로 국회에서 북방한계선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북한이 서해상의 북방한계선을 월선한 것은 문제삼지 않고 4.11 총선 직전의 북한군이 판문점 일대의 군사시위를 과장한 것은 선거를 겨냥한 것이라는 비판에 이양호 국방장관은 1996년 7월 16일에 “북한함정이 북방한계선을 월선하여도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다”고 밝혔다. 다음날 국방부는 “북방한계선이 정전협정상 법적 효력이 없다는 사실을 적시한 것일 뿐 북한 함정이 이를 월선하여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며 이양호 장관의 말을 해명하였다. 국방부의 이와같은 논리에 비춰 보더라도 정전협정에서 북방한계선의 성격은 대단히 모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유엔군사령부는 1989년에 “북한함정들이 도발적 행위를 자행하지 않는 한 그들 북한함정들이 북방한계선을 월선하는 것은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와같은 정전협정의 불안정성에서 비롯되는 서해 해상분계선 설정 문제를 해결할 경우에 한강하구수역의 자유로운 이용도 한층 수월해질 것이다.
3.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 전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은 정전체제가 반세기 가량 지속되었다는 특수성 때문에 매우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다. 국제적인 관례로 보더라도 정전협정이 40년이 넘게 지속된 경우가 없다. 이 때문에 한반도 정전상태에 대한 국제법적인 시각 역시 다양해서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평화협정 체결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협정 체결 당사자 문제와 주한미군 문제로 모아진다.
당사자 문제와 관련하여 북한은 1974년부터 북한과 미국이 체결 당사자라고 주장하고 있고, 남한 정부는 남과 북이 실질적인 당사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양측의 주장은 모두 설득력이 떨어진다. 북한은 한국정부도 협정 체결의 당사자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남한은 6.25 직후 열린 정전협정 제60조에 명시된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한 ‘한급 높은 정치회담’에 미국과 함께 참여한 경험이 있다. 또한 북한은 1974년 이전에 남한을 평화협정의 당사자로 인정하고 남북 평화협정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한편 남한은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의 중요한 당사자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은 한국전쟁의 참전국가이며, 정전협정 체결과 정전체제 유지의 당사자이다. 또한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통하여 주한미군을 주둔시키면서부터 이미 한반도 군사적 분쟁에 개입해왔고, 첨단무기를 배치하는 등 한반도에서 군사력 증강을 계속하고 있으며, 한국군과 함께 정기적으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고, 아직도 한국군의 전시 작전통제권을 장악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실질적인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평화협정의 책임 있는 당사자로 참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당사자 문제가 논란이 되는 것은 평화협정 체결 당사자에 의해 평화협정의 성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한국이 협정 체결의 당사자라는 점을 인정하고, 한미양국은 미국이 당사자로 참여하는 것을 인정하는 3자회담이 평화협정 체결을 둘러싼 당사자 문제를 풀 수 있는 길이다.
남북한과 미국이 참여하는 3자회담은 99년 8월 열린 6차 회담 이후 진행되고 있지 않은 4자회담의 틀 속에서 추진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1단계로 남북회담과 북미회담으로 4자회담 운영을 이원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미대화는 4자회담 틀 밖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데 이를 4자회담 안으로 끌어들이면 북미회담은 가능하다. 남북회담에서는 남북기본합의서 5조에서 명시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와 남북기본합의서 제2장에서 약속한 불가침문제 등 남북 사이에 군사적인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방안을 협의한다. 2단계에서는 이와같은 이원적 접근의 성과를 바탕으로 해서 남북한과 미국 3자 사이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중국이 보증하는 방식으로 4자회담을 진행하면 당사자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
평화협정 체결의 또다른 난관은 주한미군 문제이다. 북한은 주한미군문제를 4자회담에서 의제로 다룰 것을 희망했다. 그러나 4자회담에서 북미대화의 틀이 마련된다면 4자회담 개최의 전제조건으로 주한미군 문제를 다룰 필요는 없게 된다. 북한과 미국이 대화하고 나아가 관계 정상화를 모색한다면 북한에 대한 억지력으로서 주한미군의 의미와 역할은 현저하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4자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에 대한 방안을 현실화하면서 주한미군의 지위와 역할을 변경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또 4자회담의 운영과정에서 북미관계의 진전을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로 북한으로부터 주한미군문제를 전제조건으로 하지 않을 것을 양해받을 수 있다. 아울러 남한은 미국으로부터 전시 작전통제권을 반환받고, 한미 불평등 협정을 개정하는 등 군사주권과 외교주권을 찾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한다.
4.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접근법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은 남북의 긴장완화라는 정치적 의미 이외에도 경제적 문화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이 일대에 평화적 차원에서 청정산업공단, 생태계 보전지역지정, 민족 생태공원, 물자교류센터, 세계평화를 위한 상징적 건물을 신축하자는 의견과 함께 야외음악 공연장 등을 조성하자는 여론과 제안이 잇따르고 있다.
비무장지대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수난 속의 축복’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비무장지대가 민족 분단이라는 수난의 산물이지만, 비무장지대를 전화위복으로 삼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과 지혜에 의해서 비무장지대는 민족의 축복이 될 것이다.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란 ‘군병력과 시설을 유지하지 아니할 의무를 지니는 지역’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남북 사이에는 정전협정에 따라서 동서로 약 250km의 군사분계선이 설치되어 있다. 이 군사분계선에서 남과 북으로 각 2km 떨어진 선이 비무장지대의 남방한계선이며 북방한계선이다.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에 있는 지역이 바로 한반도의 비무장지대이다. 이 비무장지대는 한반도 전체의 약 0.5%에 해당한다. 실제로는 남방한계선은 북쪽으로 이동하였고, 북방한계선은 남쪽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비무장지대의 폭은 4km가 되지 못하고 면적도 더 줄었다. 비무장지대의 전 지역에서 남북의 직선거리 4km가 유지되는 곳은 거의 없고 가장 가까운 곳은 700-800m에 불과하다.
비무장지대는 남북 사이의 군사적 대치의 현주소이고 남북이 최신예무기를 동원하고 있다. 비무장지대가 아니라 중무장지대(Heavily Militarized Zone)가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 되었다. 또한 백만개가 넘는 대인지뢰가 매설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름에 홍수가 나면 대인지뢰가 떠내려와서 민간인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경우를 해마다 보아왔다. 비무장지대의 대인지뢰는 비무장지대가 결코 평화지대가 아님을 알려주는 상징물이다.
신동엽 시인은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제 밤은’이라는 시에서 “그 반도의 허리 개성에서/ 금강산 이르는 중심부엔 폭 십리의/ 완충지대, 이른바 북쪽 권력도/ 남쪽권력도 아니 미친다는/ 평화로운 논밭”이라고 비무장지대를 노래했다. 그러나 현실의 비무장지대는 이미 ‘평화로운 논밭’이 아니다. 기관총, 박격포, 대인지뢰 등으로 중무장한 지역이 되어 버린 지 오래이다. “대포가 쌓이면 터진다”는 서양속담과 같이 완충지역에서조차 중무장한 채 남북이 대치하고 있다면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비무장지대는 ‘전쟁을 중단하기 위한 존재’이면서도 ‘전쟁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는 지역’이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에서는 비무장지대에서 군사역량을 철거할 것을 규정했다. 뿐만 아니라 모든 폭발물, 지뢰 등도 제거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정전협정을 체결할 때에는 비무장지대의 실질적인 비무장화를 계획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과 북이 그 동안 정전협정 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한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자괴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에 대해서 말의 성찬으로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한 민족적인 사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전협정을 지키지 못하고도 이에 대한 반성조차 부족한 우리의 현실을 보다 냉철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비무장지대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것에 대해서는 남측이 보다 적극적으로 주장하였다. 북측 역시 비무장지대에서 모든 군사인원과 장비를 철수하고 군사시설물을 해체해서 민간인들에게 개방할 것을 주장해왔다. 사실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은 남과 북의 공동 관심사이다. 이 일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은 사실 북한에게는 매력적인 일이 아닐 것이다. 비무장지대를 통한 남북 교류와 협력의 증대보다는 비무장지대라는 긴장지역의 존재가 위기관리에는 보다 효율성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북기본합의서 제 12조에서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문제를 협의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도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을 언제까지 외면하지는 않는 것이다.
물론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서는 남북의 정치 군사적인 환경이 중요하다. 비무장지대는 적대 쌍방간에 우발적 혹은 의도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군사적 충돌을 막고 긴장을 완화하기 위하여 설치된 완충지대이다.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을 말하기에 앞서서 비무장지대를 설치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여전히 남북사이의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완충지대가 필요하다면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가 평화적 이용보다 앞서는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당시보다도 오히려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병력과 무기가 크게 증대하여 한반도의 비무장지대가 세계적인 군사력 밀집지역이 되어버린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비무장지대라는 강력한 무력대치로 정치 군사적인 격리기능, 완충기능을 담당해 오고 있는 것을 접촉과 교류의 기능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만큼 남북관계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의미를 지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편 시각을 달리해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은 군사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보다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군사적 대결이라는 현실 상황논리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군사적 대결과 불신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민간차원에서는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활용이라는 접근법이 군사대결을 완화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현실을 타개하는 적극적인 접근법이 될 수 있다.
비무장지대를 평화적으로 개발해서 국제적인 평화지대가 된다면 그 자체로서 매우 훌륭한 완충지대가 되는 것이다. 비무장지대가 국제적인 평화지대가 된다면 남측으로서는 북한의 기습공격의 가능성을 막게 될 것이다. 북측으로서도 남으로부터 군사적 위협을 덜게 된다. 즉 평화적 이용은 비무장지대의 설치 목적인 완충지대로서의 역할을 매우 효과적으로 수행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비무장지대의 설치 목적도 달성하고 또 평화적으로 이용하는데서 오는 여러 가지 기대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므로 일거양득(一擧兩得)의 효과를 거두게 된다. 이미 75년에 미국의 부르킹스 연구소는 비무장지대를 국제적 감시 하에 두게 될 경우 북한의 기습적인 공격의 가능성을 폐쇄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남북의 정부 당국도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이 지니는 군사전략적 가치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전향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5. 맺음말
정전협정에 따라서 민간선박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한강하구수역에서 실제로 민간선박들이 자유롭게 항행을 한다면 우리는 작은 통일을 이루게 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되어서 화해와 통일의 기운이 높아가고 있기 때문에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이 모두 정전협정의 준수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정전협정 1조 5항에서 “한강하구수역으로서 그 한쪽 강안이 다른 일방의 통제하에 있는 곳은 쌍방 민간선박의 항해에 이를 개방한다”고 명백히 규정한 항목을 이행해야 한다.
그러나 수십년간 지속된 분단과 대결의 현실은 정전협정에서 보장하고 있는 평화을 위한 안전핀 마저도 제거해버린 지 오래이다. ‘외국으로부터 신무기 반입금지’조항이나 ‘한급 높은 정치회담을 소집’해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조항들이 사문화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평화의 배띄우기 행사는 정전협정에서 약속한 것 마저도 실천하지 못하는 분단체제의 비합성과 야만성을 드러내서 우리에게 반성적 성찰이 필요함을 요구하고 있다. 평화의 배띄우기 행사로 한강하구수역에서라도 작은 통일을 이루기 위한 남북의 노력이 모아진다면 정전체제는 평화체제로 성큼 다가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