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기무사령관 송영근 이시우 2005/02/27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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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국군기무사령관 송영근의 特命 機務司를 혁파하라!!
“조용히 꾸준히 확실히 軍 개혁은 우리부터 한다”
권태동(taedong@joongang.co.kr)

서울 종로구 ○○동 △△번지. 기자는 굳게 닫힌 철문 앞에 서 있다. 열리는 일 별로 없는 침묵의, 그러나 저절로 쿵 소리가 울려날 듯 둔중한 철문이다. 그 문의 안쪽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겉으로 봐서는 종잡을 길이 없다. 간판도, 명패도 달려 있지 않다.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분명히 그 안에는 무엇인가 있다.
존재하지 않는 듯 존재하는 이곳, 바로 모두가 그 존재를 암묵(暗默)적으로 동의하는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다. 대한민국 군부대 안팎의 크고 작은 움직임들이 살아 있는 첩보가 되고 정보가 되어 집결되는 보이지 않는 사령부. 민간인마저도 사찰대상으로 삼았던 ‘대형’(Big Brother). 그리하여 한때 그 정보력과 위력으로 대권까지 장악했던 그곳이다.

방첩대·보안대·보안사 그리고 기무사. 세월 따라 그 이름은 바뀌어도 그 이름과 역할이 주는 위압감이 크게 달라진 적은 없다. 군을 넘어 민간인까지 섬뜩해 하던 보이지 않는 권력의 산실이요, 공포의 밀실이다.
그곳에 끌려갔다 온 숱한 사람들은 그들이 당했던 ‘무서운 일들’을 시간이 지난 뒤 또렷한 기억으로 증언했다. 사회는 그들의 공통된 증언을 통해 기무사의 ‘저 음산하고 공포스러운 안쪽’을 상상해 왔다. 권력이 모의되고 음모가 횡행하고 인권이 유린되는 음지의 밀실. 그것이 기무사의 이미지였다. 그 밀실을 고발하는 ‘폭로’와 ‘증언’이 이어지고 문민10년이 흘렀어도 그런 과거의 그늘은 짙게 드리워져 왔다.
그런 기무사에서 ‘우두둑’ 땅껍질이 깨지고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민간인까지 섬뜩해 하던 예의 그 ‘위력’과 ‘위압적인 분위기’를 혁파하겠다는 지각변동이다. 국민의 뇌리에 드리워진 어두운 이미지를 걷어내겠다는 ‘정중동’(靜中動)이다. 놀랍게도 진앙지는 저 멀리 바깥이 아닌 기무사의 깊숙한 곳, 심장부다. 제35대 신임 사령관 송영근(宋泳勤) 장군의 방에서부터다.

56세, 육사 27기 소장. 기무쪽과는 눈곱만큼의 인연도 없던 그가 이 자리에 앉게 된 것부터가, 기무사쪽에서 보면 이미 대대적인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누구도 송장군이 기무사령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사령관 자신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임명되기 하루 전인 4월17일자 신문을 보고서야 내가 기무사령관에 내정됐음을 알게 됐다”고 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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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도 놀란 意外의 발탁

그는 4월18일 기무사령관 임명 전까지 한미연합사 부참모장이었다. 군에서 이 보직은 ‘이제 전역을 준비해야 하는’자리로 인식돼 왔다. 송사령관 개인적으로도 올 11월이 소장 계급정년(5년)이다. 더욱이 그는 1971년 소위 임관 이후 지금까지 30여 년 군 생활 동안 기무쪽 보직에 ‘접근’조차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기무쪽의 ‘과도한 권한’에 대해 달갑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던 사람”이라고 군 관계자들은 전한다. 그런 그가 전격 기무사령관 보직을 맡은 것이다.
그가 이렇듯 보직을 연장(?)받은 것은 순전히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 의지 덕분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사실 참여정부의 국방부 장관 및 각군 총장 인사가 이뤄진 뒤 군에서 대통령에게 추천한 기무사령관 후보는 그가 아니었다. 그쪽 계통에 밝은 호남 출신 K장군이었다. 그런데 노대통령이 다른 보직 인사에 대해서는 척척 재가했으면서도 기무사령관 추천자에 대해서는 낙점(落點)을 내리지 않았다.

노대통령의 그 같은 심중에 대해 군 안팎에서는 두 가지 해석이 나왔다. 하나는 국민의정부 이후 호남 출신이 기무사령관 자리를 줄곧 차지해 왔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국민의정부에서 이남신 사령관과 김필수 사령관, 문두식 사령관이 호남 출신이었다. 여기에 현 조영길 국방부 장관이 전남 신안 출신인데 기무사령관까지 동향(K장군도 신안)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기무사 개혁을 위해서는 속된 말로 기무사에 대해 ‘맨땅’인 인사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국정원에 고영구와 서동만을 투입’한 것처럼 노대통령이 기무쪽과 인연이 없는 인사를 생각했으리라는 것이다. 국방부측은 즉각 경기 용인 출신으로 야전에서 잔뼈가 굵은 송소장을 추천했고, 대통령은 즉각 이를 재가했다. 그렇게 임명된 송사령관인만큼 기무사 개혁 의지나 강도가 남다를 것이라고 예고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 사령관 아니라 더한 자리의 인사를 교체한다고 해도 사람 하나 바꾼다고 해서 특정 조직의 오랜 타성이나 관행이 생각처럼 딱딱 고쳐지는 경우는 드물다. 또 해당 조직과 무관한 외부 인사가 자리를 맡았다고 해서 개혁이 더 효과적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그간 송사령관이 아니더라도 기무사 개혁론은 줄곧 있었다. 그러나 그 성과가 어떤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크게 달라진 것 없다”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이미 1993년 YS의 문민정부와 DJ의 국민의정부를 거치는 동안 기무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 대상으로 꼽혔다. 또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사찰 폭로’ 등 기회 있을 때마다 기무사 개혁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도 높았다. 그 결과 기무사가 적어도 대(對)민간인 사찰은 하지 않는다, 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자리잡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군 내부의 목소리는 다르다. “기무사가 그동안 수차례 ‘힘을 빼겠다’ ‘월권하지 않겠다’ ‘개혁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바뀐 것은 없어 보이고, 군에서 기무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여전히 부정적”이라는 것이 군 내부의 엄연한 목소리요, 정서다.

기무사 출신이 아닌 ‘외부인사’라고 해도 크게 기대할 것 없다는 분위기도 퍼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35명의 기무사령관 가운데 내부 승진은 3명에 불과했다. YS 시절의 김도윤·임재문 사령관 그리고 DJ 시절의 문두식 사령관이 전부다. 그외 32명이 모두 기무쪽 아닌 야전 출신이었다. ‘외부인사가 개혁에 유효하다면 기무사가 왜 여태까지 완전개혁이 안 됐겠느냐’고 반문하는 근거가 여기 있다.
‘그야말로 기무사 개혁을 이끌 적임자’ ‘그 사람이라고 뭐 용뿔날 수 있겠느냐’는 두 가지 시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송사령관은 취임했고, 지체없이 두 가지 임무를 시작했다. 하나는 군 동향을 파악하는 기무사 고유 임무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기무사 개혁이었다. 이 기사는 7월 말로 취임 100일을 맞는 송사령관이 과연 어떻게 기무사 개혁을 진행하고 있는가,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를 짚어보려는 것이다.
우선 지난 6월말 송사령관은 기자가 요청한 공식인터뷰를 사양했다. 인터뷰 요청을 사절한 것과 관련, 한 관계자는 이런 얘기를 들려 주었다.

“사령관이 최근 부대원들을 상대로 두시간 넘게 강연을 했다. 거기서 ‘언론과의 인터뷰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심경을 털어놨다. 자기 생각 같아서는 언론과 적극적으로 만나면서 기무사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 또 실제로 어떻게 바꿔나가고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도 언론과 만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내가 무슨 인기나 중장 진급을 염두에 두고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오해되는 것이 싫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는 진급이니 인기니 하는 것들에 관심 없다. 군 생활 30년 동안 누릴 만큼 누렸다. 아쉬운 것도 바라는 것도 없다. 군복을 입고 있는 동안 임무를 맡았기 때문에 그것만 생각한다. 어쨌든 언론에 대고 개혁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개혁은 조용히, 꾸준히, 확실히 해 나갈 것이다. 여러분도 진급 같은 것은 생각하지 말고 임무에 전력투구하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는 대신 기자가 기무사 공식 창구를 통해 서면으로 낸 질문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소상히 답변해 주었다. 그는 지난 6월 기무사 개혁안을 발표할 때 기자들에게 “앞으로 물어볼 것이 있으면 사적 루트가 아닌 공식 루트를 통해 질문해 달라”고 주문하면서 “기무사령관으로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공식적인 답변을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인터뷰는 사양하되 기무사와 관련된 업무 내용이라면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겠다는 얘기였다. 이 기사에서 송사령관과의 ‘직접 발언’형식으로 된 부분은 이 같은 절차에 따라 그에게서 얻은 답변이다.
취임을 전후한 지난 100일 동안 송사령관은 두 차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하나는 앞서 본 것처럼 보직 임명을 받았을 때다. 다른 하나는 지난 6월18일 국방부에서 기무사 개혁과 관련된 기자회견을 가진 것이었다. 그가 취임한 지 꼭 두 달 만에 내놓은 ‘기무사 발전 방안’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런 것이었다(그는 ‘개혁’보다 ‘발전’이라는 용어를 쓴다. 그러나 이 기사에서는 곳에 따라 두 가지를 섞어 쓴다 – 편집자).

먼저 줄이고 없애는 것들이 적지 않다. ▷조직 경량화(輕量化)를 목표로 기무사 편제의 장군 2명, 대령 6명, 중령 15명 등을 2007년까지 단계적으로 줄여 부대 정원의 13% 정도를 감축한다. ▷사단급에만 파견반을 두고 연대급 이하에 설치된 파견반은 철수한다. ▷그 동안 기무사가 보안감사를 해온 방산업체 수를 기존 148개에서 선별해 69개 업체로 줄인다. ▷군납업체 안전진단 등 기무사가 갖고 있던 인허가 관련 사무를 포함. 9개 업무를 관계부서로 이관한다. ▷해외 출국 장병 보고제도를 폐지해 장병들이 소속 부대장 승인만으로 해외여행을 할 수 있게 한다. ▷과도하게 분류된 군사기밀을 정비하고 정보통신(IT) 분야의 보안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정보원과 협의해 군사 보안 업무 시행규칙을 개정한다.
거꾸로 대폭 강화하기로 한 부문들도 있다. 먼저 사이버 보안이다. 컴퓨터 바이러스와 해킹 증가에 따라 사이버 보안 인력과 수사 인력을 대폭 증원한다는 방침이다. 9·11 테러 이후 국경을 초월해 급증하는 테러에 대비해 대 테러 전담부서를 신설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암호·전산·무기체계 등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는 국내외 전문 교육기관에 위탁교육을 의뢰해 전문 요원을 양성하고 필요할 경우 민간 아웃소싱도 시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부연 설명을 통해 기무사측은 “이에 따라 인원이 선진국 군 정보수사기관 수준인 군 정원의 0.6% 안팎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준장급 부대장이 맡아온 육·해·공 기무부대장을 이미 지난 6월3일부터 통합해 일원화된 계룡대 기무부대장을 운용중”이라고 공개했다.
특히 사이버 테러와 해킹 등 위협에 대한 보강책으로 “그 동안 군사보안을 담당하던 2처(1처는 군사정보 담당)와 정보통신기획실을 통합해 정보통신보안처를 신설하고 그 밑에 대(對)정보전을 전담하는 정보보호과와 사이버수사팀을 구성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사령관 직속의 방산(防産)보안실을 신설해 방산과 관련된 비리 및 부조리를 발굴하고 방산 기밀 유출 사건에 대한 수사 기능도 강화한다고 밝혔다. 기존 방산업체에 대한 보안성 검토 등 이권 개입 여지가 있거나 오해를 받아온 업무는 기무사 외의 다른 부서로 이관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개혁 의지를 사령관이 공개 천명

이날 기자회견은 군 안팎에서 “예상보다 조직 및 업무의 정비 범위가 넓다”는 반응을 얻었다. ‘윤석양 이병 폭로’때 전체 7,000여 명의 인원 중 2,000여 명을 감축한 이후 대규모의 재정비다. 당시는 사회여론의 압박에 ‘밀려’ 인원을 감축하고 조직을 정비했던 것이고, 이번에는 ‘자진해서’ 조정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다. 조직의 ‘덩치’라는 측면에서 보면 발전이 아니라 쪼그라드는 것 아니냐 싶을 정도다.
이날 회견 내용 못지않게 눈길을 끈 것은 브리핑 형식이었다. 과거 기무사 공보관실에서 브리핑을 맡았던 것과 달리 이날 회견에는 송사령관이 직접 발표자로 나선 것이었다. 그는 “상견례를 겸해 나왔다”고 했지만 확실히 그것만으로도 파격적이었다. 자연스럽게 그는 많은 카메라 앞에 노출됐다. 그러나 송사령관은 그 또한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파격들이 모두 화제가 됐다. 이날의 회견 안팎 사정에 대해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 지난번 ‘기무사 발전 방안’ 발표 때 어떻게 사령관이 직접 나섰나?
“일종의 다짐 의식이었다. 과거 윤석양 사건 때 기무사는 대대적인 개혁을 했다. 인원과 조직도 사실 상당수 감축했다.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무사가 개혁 대상이 됐고, 어쨌든 크든 적든 그런 움직임은 있어 왔다. 그러나 국민이나 군의 시각은 어떤가. 내가 취임한 뒤 만나본 군 안팎의 여러 사람들의 입장이 ‘기무사가 썩 개혁한 것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왜 그런 인식이 박혀 있을까. 그래서 내가 더 이상 기무사에 대해서는 개혁이 덜 됐다, 개혁을 더 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게 해 보자는 의무감을 갖게 됐다. 기무사를 제대로 개혁해 보겠다, 그런 의지를 기무사령관인 내가 직접 앞에 나가 국민과 군에 약속하자, 다짐을 보이자는 취지였다.”

― 기관장들이 개혁이다 하면 으레 인원 문제부터 손대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가.“인원 문제에 손을 댄 것이 아니다. 기무사내 유사 기능을 통폐합하고 불필요한 기능을 없애는 반면 필요한 기능을 늘리고 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결과다. 무슨 13%를 줄인다, 몇 명을 감축한다 해서 언론에서는 거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은데 뭔가 좀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10%면 10%, 20%면 20%이지 왜 13%이겠는가. 조직을 정비하고 업무를 조정하고 보니 2007년까지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의 인력구조가 그쯤 될 것 같다는 얘기다. 미리 13%를 정해 놓고 거기에 맞춰 인원을 감축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인원에서 흔히 사회에서 말하는 명예퇴직이나 조기퇴직 같은 것은 전혀 없다. 필요한 부분은 사람이 늘어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사람을 더 이상 선발하지 않아 자연증가, 자연감축으로 가는 것이다.”

― 사회에서는 국가보안법의 개폐 논란이 지속돼 왔다. 기무사에서 군 보안 규칙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을 하겠다고 했는데, 그것은 사회로 치면 국가보안법을 고치는 것과 같다. 시기상조 아니냐는 지적들도 있다.
“보안이라고 해서 너무 현실성 없는 규정들이 많다는 것이 문제다. 그것으로 인해, 지킬 수도 없고 실효성도 없는 규정들로 인해 범법자가 너무 많이 생긴다. 가령 전 같으면 우리 기무사령부 건물만 찍어도 걸린다. 그것이 어떻게 군사기밀인가.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다들 알고 있는데 사진은 찍지 말라고 하는 것은 우습다. 기무사 건물까지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과거에는 국방부 청사도 사진을 못 찍게 했다. 우리 기무사가 그렇게 통제했다. 그렇지만 과연 그것이 중차대한 군사기밀인가. 그래서 내가 기무사든 국방부든 전경을 찍게 하라, 오히려 군과 국민이 가까워질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렇게 지시했다. 보안 규칙이 너무 방대하고 현실성 없는 규정이 많다. 그것을 현실성 있는 규정으로 바꿔 나간다는 얘기다. 연말까지 규정을 선별해 개정 초안을 만들 것이다.”

― 조직 정비 중 고위직, 특히 장성 보직을 2개나 줄인다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구성원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조직이든 인원이 많아 나쁠 것은 없다. 인력을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다. 그런 취지로 그 동안 별다른 저항감 없이 육·해·공군별 기무책임자를 두어 왔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효율적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하다 보니 자군(自軍)을 보호하고 감싸려는 자군이기주의의 폐단도 생겨났다. 업무의 효율성을 따져 사령관 아래 계룡대 기무책임자는 장성 1명으로도 충분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 그럴 경우 우리 군의 성격과 구조상 육군쪽으로 팔이 굽지는 않겠는가.
“군 내부적으로 실제로 그런 우려도 제기됐다. 그렇지만 우선 사령관인 내가 육군 편향의 기무행정은 없을 것이라고 공정성을 보장했다. 제도적으로도 인사 시즌에 맞춰 육·해·공군에서 돌아가면서 자리를 맡기자고 했다. 내부적으로 다들 납득했다. 당장 내가 취임한 이후 계룡대 기무부대장을 해군쪽에 시켰다.”

― IT·사이버 분야를 강조하고 있다. 그 동안 이 부분에 대해 기무쪽에서도 상당히 준비를 해 왔을 텐데 새삼스럽게 보강해야 할 부분이 있는가.
“솔직히 준비해 왔다고 해도 대단히 미약했다. 그런 현실을 직시하고 그런 사정에 대해 군 안팎의 공감을 얻어 보강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단히 전문적인 분야이고 다른 나라 군의 정보화 속도도 대단히 빠르다. 그런 추세에 뒤처지지 않도록 우리 기무의 IT·사이버 분야도 전면적인 리모델링과 지속적인 보강이 필요하다.”
송사령관은 ‘발전방안’발표에 앞서 취임 한달 만인 5월16일 일반인을 상대로 한 세미나를 개최해 이미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었다. 주제는 ‘21세기 정보환경 변화와 국방 정보보호 발전’으로 시대 변화에 따른 기무사의 기능과 역할을 모색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주제를 떠나 기무사가 창설된 이래 이같은 공개 세미나는 처음 열린 것이라는 점에서 세미나는 눈길을 끌었다. 물론 이 자리에도 송사령관이 직접 참석해 주제발표를 맡았다.

“조용히, 꾸준히, 확실히”

따라서 ‘기무사 발전방안’을 밝힌 기자회견은 송사령관으로서는 두번째 ‘공개석상’인 셈이었다. 이날 ‘발전방안’의 내용은 대외적으로 기무사의 제도와 조직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 곧 개혁의 ‘외연’을 밝힌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송사령관 자신은 이런 제도와 조직 정비에 대해서는 “개혁의 극히 적은 일부분”이라고 한다. 지난 석달 동안 송사령관 체제를 겪은 한 기무사 관계자의 얘기.
“송사령관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제도나 조직 정비는 개혁의 5%도 안 된다’고 한다. 진정한 개혁은 의식, 마인드를 바꾸는 것이라는 점을 내세운다. 제도나 조직을 바꿔도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결코 개혁이 이뤄질 수 없다, 사람의 의식이 바뀌면 제도나 조직은 거기에 맞춰 자연적으로 따라 개혁된다, 그런 얘기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복 강조한다.”

의식, 마인드를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것일까. 그것은 송사령관이 취임 직후 손으로 써서 복사해 일선 부대에 보낸 ‘지휘서신 제1호’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그는 이 지휘서신에서 ‘시대가 변하고 있고 우리에게도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변화는 시대적 당위다. 개혁이 없으면 우리의 존재 근거는 없다’고 전제한 뒤 부대원들에게 3가지 지침을 내렸다.
▷스스로를 낮춰라. 아직도 일선 작전부대는 기무사를 강자로 인식한다. 강자가 겸허하면 더욱 아름답다. 우리가 진정으로 높임을 받으려면 우리부터 낮춰야 한다. 우리는 군과 국가 모두에게 정보서비스를 하는, 도와주는 위치에 있다.
▷이제 우리 자신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 삶의 질은 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 자리에서 정당하게 일하고 그것을 통해 일선 작전부대와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을 때 비로소 삶의 질이 올라간다.

▷모든 것을 바르게 해야 한다. 우리가 바르지 않은데 어떻게 다른 쪽에 바르게 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 부대원들 모두의 가슴에 바를 정(正)자를 새기고 새롭게 출발하자. 나부터 바르게 하는 거기에서 우리는 새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휘서신과 관련, 위의 기무사 관계자는 “인쇄한 것도 아니고 사령관의 친필이 직접 전달돼 그것부터 안에서는 화제가 됐다”면서 “내용도 예전 같으면 ‘기강을 분명히 하고 업무를 공정히 하고’ 하는 식으로 그야말로 군대풍의 딱딱한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다분히 철학적이고 정서적인 측면이 강한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고 전한다. 영관급 다른 관계자는 “과거에는 기무사의 힘이라는 것이 ‘음지’‘뒷거래’‘비공식’적인 일처리에서 나왔지만 사실 정말 무서운 힘은 모든 일을 ‘FM대로’(원칙대로) 처리하는 데서 나오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그런 점에서 이번 사령관의 지휘철학은 앞으로 기무사가 진정한 힘을 갖게 하는 방향타로 작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평했다. 그렇다면 송사령관은 개혁에 대해 실제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어디든 새로 기관장 인사가 있을 때마다 개혁을 내세운다. ‘개혁만능시대’라는 얘기도 있다. ‘개혁’이라면 무조건 다 되는 줄 안다. 사령관께서는 기무사 개혁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가.
“물론이다. 밖에서도 그런 생각을 했지만 와서 보니 실제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더더욱 절감하게 됐다.”
― 개혁피로증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개혁만 하다 평생 간다는 소리도 있다. 기무사 개혁의 끝은 어디인가.
“제대로 개혁되면 개혁이라는 말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개혁이 안 됐기 때문에 피로하다 싶을 만큼 개혁에 관한 얘기가 이어져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개혁의 끝이 여기까지다,라고 못박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국민이나 군 내부에서 더 이상 기무사의 개혁을 요구하는 소리가 없어질 때까지, 그렇게 끝을 볼 작정이다. 이번에는 결코 도마뱀 꼬리 자르기식 변화나 개혁이 아닐 것이다. 두고 보라.”

― 송사령관께서 취임 이후 기무사가 ‘혁명적 개혁’에 돌입했다고들 한다. 그런가.
“개혁은 앞에서 이뤄놓은 것, 앞에 있던 것들을 인정하면서 문제점을 고쳐 나가는 것이다. 혁명은 앞의 것들을 모두 부정하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굳이 규정한다면 혁명이라는 말은 지금 기무사에 전혀 맞지 않다. 개혁이라는 말도 나는 좀 부적절하다고 본다.”

― 개혁이 아니면 무엇인가.
“좋지 않은 것을 좋게 고치고 바로 잡아 나간다는 의미에서 개혁 자체는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표현에서는 좀더 전향적이고 창조적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취임 이래 부대원들에게나 바깥에 대해 개혁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발전’이라고 표현해 왔다. ‘개혁’이라는 표현보다 그것이 좀더 미래지향적이라고 본다. 개혁, 개혁 하는데 너무 모든 것에 개혁이라고 갖다 붙이는 것은 언어인플레이션이 아닌가 싶다.”

― 특히 기무사의 어떤 부분에 대한 개혁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가.
“우선과 나중이 없다. 문제가 있으면 그것이 뭐가 됐든 전방위적으로 바로잡을 것이다. 물론 개혁이라고 해서 문제점만 들춰내고 그것을 부수고 고치고 하는 것이 아니다. 순기능은 더더욱 살려 나가고 역기능은 극력 없애 나간다는 방침이다. 기무사가 무슨 국가의 문제아 같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분명히 국가적인 중차대한 순기능을 갖고 있고 그 임무를 해내고 있다. 군의 동태를 파악해 대통령, 나아가 국가를 보위한다. 국방이나 방위산업과 관련된 기밀이 적과 외부로 새나가는 것을 막는 것도 기무사다. 그 같은 순기능을 최대한 활성화할 것이다. 반면 그런 일을 하는 과정에 과거 인사개입이나 월권, 부정 비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같은 역기능은 극력 줄이고 없애나갈 것이다.”“기무사령관 되리라고는 꿈조차 꾸지 않았다”

― 지난 6월30일 노대통령과 독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주문을 받았는지 공개할 수 있는가.
“어떤 특별한 얘기가 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임명권자에게 인사를 드리는 자리였다. 동시에 ‘앞으로 더 이상 기무사쪽에서는 개혁 소리가 나오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을 드리기도 했다. 대통령께서도 그런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앞으로 독대를 한다, 안 한다 하는 쪽에 초점을 맞춰 보는 것은 본질이 아니다.”
― 기무사 출신이 아닌 사령관이 개혁을 주도하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지 않겠는가.
“군 생활 동안 기무부대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내가 기무사령관이 되리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신문에 내정 사실이 처음 났을 때 나도 깜짝 놀랐다. 취임 후 부대원들과 편안하게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때도 ‘내가 절대로 여기 올 수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오게 됐다’고 농담한다. 내가 일선부대 지휘관 시절 음식 불평을 하는 병사를 취사병으로 보냈다. 취사병으로 가 보면 음식 사정을 잘 알게 되고 그래서 불만이 쏙 들어간다. 그런 차원에서 내가 기무사를 맡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부를 먼저 알고 이해해야 발전책을 찾는 일도 가능하다고 본다. 기무사 출신이 아닌 장단점 가운데 가급적 장점을 살리는 쪽으로 일하다 보면 결과가 좋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취임 후 송사령관은 현역 부대원들과 군무원 등 내부 상견례를 겸해 의견을 주고받기 위해 적당한 단위별로 회식을 해 왔다고 한다. 주로 전군 전투체육의 날로 정해져 있는 수요일이다. 오후에 북한산 등반을 하고 저녁 무렵 시내 막걸리집에서 탁배기를 나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래방 기계가 있는 술집에서 한잔 걸치면 부하들 등쌀에 마이크를 잡고 ‘노래 일발 장전’하게 마련이다. 그럴 때 그가 철커덕 ‘장전’하는 ‘일발’이 이미자의 ‘울어라 열풍아’라고 주변에서는 전한다. ‘앵콜송’도 정해져 있다. ‘천둥산 박달재를∼’ 하고 시작되는 ‘울고 넘는 박달재’다. 왜 이 두 노래인가 하는 것은 본인 얘기를 듣지 못해 알 바 없으나 좌우지간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그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가 ‘울음’과 관련된 노래들을 1, 2탄으로 삼는 이유를, 우스개 삼아 그의 ‘진급 속도’에 갖다 붙이는 이들도 있다. 진급 인사가 있을 때마다 척척 한 번에 오르지 못하고 노상 끝 차수인 3차 진급하는 해왔기 때문이다. 중령-대령-준장까지 진급할 동안 그는 동기생들보다 늘 늦었다. 그렇다고 그가 무능하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의 ‘늦은 진급’을 말하는 이들은 그것을 통해 그가 어떤 군인인가를 알 수 있다고들 덧붙인다.

한 마디로 그는 30여 년 군생활 동안 단 한 차례도 인사와 관련해 줄을 잡으려고 하거나 어떤 보직 신청을 한 적이 없는 사람으로 소문나 있다. 하나회가 군을 주름잡던 시절, 하나회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취했으니 진급이 착착 이뤄졌을 리 없다. 그와 오랫 동안 일선 부대에 있었던 한 육사 후배는 “좌우지간 줄서기나 보직을 따지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다 싶을 만큼 무심한 사람”이라면서 “후배들에게도 늘 ‘너희가 줄을 잘 잡아서 육사 들어왔느냐. 어느 자리에 있든, 진급이 되든 안 되든 군인 된 자세를 충실하게 유지하다 웃으면서 좋은 얼굴로 옷을 벗으라’고 호언한다”고 전한다.
그래서일까. 송사령관은 종교적으로도 하나에만 치우치지 않고 두루두루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의 종교는 불교이지만 중대장에서 사단장까지, 일선 부대 지휘관으로 있는 동안 관내 사찰·교회·성당을 매주 차례차례 돌아가며 다녔다는 것이다. 남들이 그것을 화제삼으면 “두루두루 다니면서 남들보다 복도 3배나 받고 또 그렇게 해야 휘하 장병들이 ‘우리 지휘관은 공평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 아니냐”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온 집안이 군 출신?

육·해·공 기무부대장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돌아가며 맡도록 한 일이나 예불·예배·미사에 돌아가며 참석하는 일 그리고 자기 인사와 관련해 단 한번도 남에게 얘기해 본 적 없다는 사실들은 일맥상통으로 그가 어떤 스타일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를 “순수한 열정을 가진 군인”이라고 못박듯 말한다. 지금도 그와 절친한 한 육사 동기생은 “송사령관은 고등학교 3학년 때 3군 사관학교 체육대회에 참가하러 가는 생도들의 모습에 반해 육사에 들어온 사람”이라면서 “그 집안이 어찌 보면 진짜 군인 가족”이라며 웃는다.
웃는 사연인즉, 부친(宋佑鍾, 작고)과 장남인 송사령관을 비롯해 4남2녀 중 아들들이 모두 군 출신이라는 얘기다. 부친은 카투사 1기, 4형제 중 송사령관은 장교, 다른 3형제는 병장 출신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송사령관의 두 아들도 병장 출신이어서 “병역 문제만 따져 대통령을 뽑으면 첫째 후보감”이라며 앞의 동기생은 다시 웃는다. 용인 출신으로 서울 동성중 , 성동고를 나왔다. 야구 해설가 하일성 씨와 동기다.

개혁 사령관, 송소장을 바라보는 기무사 안팎의 시각은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거나해진 사령관과 어깨를 겯고 ‘울고 넘는 박달재’를 불렀다는 한 부대원의 얘기.
“우선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무슨 상관이 부하를 대하는 그런 딱딱함이 없어서 인간적으로 친밀감을 느낀다. 술잔을 돌리면서 직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우리가 정말 바르게, 멋지게 잘 해 보자’는 당부를 하는 모습이나, 공식적인 회의나 언론에 나타나는 전반적인 분위기, 그런 것들을 모두 감안하면 이번 송사령관이 추진하는 개혁은 실제로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일단 무엇인가 바뀔 것이라는, 바뀌고 있다는 분위기가 기무사 안에 확산되고 있다.”
바깥에서 송사령관을 보는 시각은 어떨까. 몇몇 영관급 장교들의 지난 석 달 ‘관전평’을 모아 보면 이렇게 정리된다.

“일선 부대에 있던 기무사 파견반이 철수하면서 무엇보다 실질적으로 기무부대원들의 활동이 대폭 줄어들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기무부대원 개개인이 어떤 의식, 어떤 자세로 바뀌는가 하는 것을 살피기에는 시기상조이지만 주변에서 기무사 얘기가 나올 때면 ‘뭘 좀 하는 것 같다’며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송사령관 개인에 대한 평가도 나쁘지 않다. 물론 일부는 ‘제 버릇 어디 가겠느냐’며 긴가민가 하는 시각들도 있다. 그런 시각에 대해 송사령관이 보란 듯이, 정말 더 이상 개혁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기무사를 바꿔 나갔으면 하는 바람들이 많다.”
누군가 개혁은 손에 쥔 새(鳥)를 다루듯 해야 한다고 했다. 느슨하면 날아가고 꽉 조이면 새가 죽는다. 강도가 약하면 개혁이 이뤄지지 못하고, 강도가 너무 강하면 조직이 기(氣)를 잃게 된다는 얘기일 것이다. 송사령관은 신임인사차 기관을 찾아다니거나 사석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군인은 임무에 죽고 임무에 사는데 나라에서 임무를 준 만큼 그것을 수행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얘기를 빼놓지 않는다고 한다. 과연 그가 기무사를 어디까지, 어떻게 바꿔 나갈 수 있을 것인지 주시하는 눈들이 많아지고 있다. ‘새’는 과연 비상할 것인가, 추락할 것인가.

2003년 07월호 | 입력날짜 2003.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