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國 민족주의의 패러독스 이시우 2005/02/27 240
‘포린 폴리시’ 최신호 轉載 美國 민족주의의 패러독스
美 국민은 왜 성조기에 열광하고, 세계인은 왜 反美主義에 공감할까
외부기고자 밍신 페이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
9.11 테러 추모집회에 참석한 뉴욕 시민들.
9·11 테러가 발생한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국제 여론은 미국인과 미국에 대한 가슴 속 연민에서 이제는 노골적인 혐오 감정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변화를 가져오도록 만든 촉매는 미국의 강경한 이라크 정책과 그 뒤를 이은 이라크전쟁이다. 그러나 현재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미주의는 미국의 단호한 행동에 겁을 먹어 나오는 반응도 아니고, 미국의 패권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미국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커지고 있는 것은 오히려 미국의 외교정책을 만들고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은 미국 민족주의 정신에 대한 전 세계의 강력한 반발이나 역풍으로 봐야 한다.
반미주의의 근원을 살펴보려면 우선 미국 민족주의에 대한 자성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국가 특성상 이런 작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더구나 요즘 부쩍 늘어난 미국에 대한 증오는 미국 민족주의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패러독스 때문에 지식층에서도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하나는 미국이 고도의 민족주의를 구가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는 전혀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미국 사회의 민족주의 수준이 상당히 높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은 다른 사회의 강력한 민족주의를 낮게 평가하고 조심스럽거나 민감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의 가치에는 눈을 감는 미국
미국에서 민족주의라는 말은 더러운 단어를 연상시킨다. 구 시대의 파벌주의와 상상 속의 패권을 연상시키는 경멸스러운 단어가 민족주의라는 말이다. 그러나 민족주의라는 개념을 별로 내켜 하지 않는 사람들조차 일반적으로는 미국인이 극도로 애국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자세가 되어 있는 듯 보인다. 애국주의(patriotism)와 민족주의의 차이를 설명해보라고 다그치면 마지못해 이 두 말이 구별이 될지는 모르나 사실상 차이는 없다고 물러설지도 모른다.
정치학자들은 애국주의란 한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말하는 것이고, 민족주의란 인종에 따른 민족적 우월성의 감정이라고 정의내리면서 둘 사이의 차이점을 입증해 보이려고 무진장 애를 써왔다. 그러나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심리적으로 그리고 행동양태에 따라 규정하는 것은, 정책에 그런 감정이 영향을 미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사실은 구분되지 않는다.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 결과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 가운데에서도 미국인이 가장 높은 민족적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시카고 대학 조사팀의 보고에 따르면 2001년 9·11 테러 이전에 조사에 응한 미국인 응답자의 90%가 ‘나는 다른 나라 사람이 아니라 미국 시민이고자 한다’는 진술에 동의했다. 38%의 응답자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좀더 미국인처럼 행동한다면 이 세계는 보다 나아졌을 것’이라는 진술을 지지했다(테러 공격이 있고 난 후에는 이 두 가지 진술에 대해 각각 97%와 49%가 동의했다).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s Survey)의 보고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를 보여 준다. 조사 응답자의 70% 이상이 미국인이 된 것이 ‘아주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와 아주 대조적으로 똑같은 조사에서 프랑스·이탈리아·덴마크·영국·네덜란드 등을 포함한 다른 서구 민주주의 국가 시민 중 자신의 국적이 ‘아주 자랑스럽다’고 답한 사람은 절반이 채 안 된다.
미국인들은 그들의 가치에 대해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가치가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여긴다. 퓨(Pew Global Attitudes) 조사에 따르면 79%의 미국인이 ‘미국의 사고와 관습이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답했고, 70%의 미국인이 ‘미국의 민주주의 이념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또 하나의 보루인 서구유럽에서조차 이런 식의 생각은 널리 퍼져 있지 않다. 서구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한 퓨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사고와 관습이 세계로 확산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본 사람은 응답자의 40%에도 못 미치며, 민주주의에 대한 미국식 이념을 좋아하는 사람도 50% 미만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정치적 가치와 제도의 우월성에 대한 이러한 확고한 신념은 미국의 사회·문화·정치 관행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미국의 공립 학교에서는 매일 ‘충성맹세’(Pledge of Allegiance, 한국의 국기에 대한 맹세: 역주)를 하고, 운동 경기장에서는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국가를 부르며, 어디를 가든 성조기가 나부낀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민족주의 정서가 정치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선거에 나온 입후보자들이 상대방 후보를 비애국적이라고 공격하려 할 때는 성조기 불태우기라든가 국가 안보에 대한 위해 같은 민감한 문제를 들고나오고는 한다.
이처럼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가 왜 스스로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미국의 민족주의를 계속 유지시켜 주는 바로 그 힘이 이런 역설을 가능하게 만든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 세계 최대의 군사력과 경제력, 전 세계에서 맞설 상대가 없는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 등이 이 같은 강력한 민족적 자긍심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민족주의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미국 민족주의만이 갖고 있는 특징을 우리는 미국인들의 일상생활의 여러 측면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 민족주의의 동력 – 시민봉사
미국 민족주의의 특징이 가장 강력하게 뿜어져 나오는 것 가운데 하나가 시민자원봉사(civic voluntarism)다. 평범한 시민 개개인이 혼자 나서거나 시민단체를 통해 공공의 선을 위해 자발적으로 공헌하는 것이 미국의 시민자원봉사다. 19세기 초 프랑스의 사상가인 토크빌을 필두로 바깥에서 미국을 지켜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시민자원봉사라는 미국의 원동력에 감탄한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를 정부가 아니라 미국 시민 자신들이라고 평가한 바 있는 토크빌은 “미국인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어떤 삶을 살고 있든, 어떤 성향의 사람이든 모두가 끊임없이 연합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유사하게, 미국인의 사회 생활에 숨을 불어넣는 풀뿌리 행동주의 또한 미국의 민족주의를 생기발랄하고 매혹적인 것으로 만든다. 미국 민족주의를 유지시키는 대부분의 제도와 관습이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시민의 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학교에서의 ‘충성 맹세’나 운동 경기장에서의 국가 합창 같은 모든 의식은 강요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며, 시민 개개인에게 심어진 가치 또한 자발적으로 습득된 것이지 인위적으로 주입된 것은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든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데는 나라가 불가피한 역할을 담당한다. 대개의 경우 엘리트 그룹이 나서서 정치 조작을 통해 민족주의를 만들어 내며, 결과적으로는 특정한 형태로 제조된 민족주의가 된다.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정치인 개개인들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활용하려고 드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지만 미국의 민족주의에서는 국가의 역할이 빠져 있다는 것을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미 연방법에는 공립 학교에서 충성맹세 암기를 의무화한 조항이 없으며, 운동 경기에 앞서 국가를 부르도록 규정하지도 않았고, 개인 건물에 성조기를 달도록 강요하지도 않았다.
공립 학교에서 어떻게 충성맹세 암기를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보면 미국 민족주의의 독특한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1892년 충성맹세문 원문을 처음 작성한 사람은 침레교 목사인 사회주의자 프랜시스 벨라미(Francis Bellamy)이고, 미국의 3대 시민단체인 미 교육연합회(National Education Association)·미 재향군인회(American Legion)·미 애국여성회(Daughters of the American Revolution, 미 독립전쟁 참전자들의 자손이 회원 자격을 가짐: 역주))가 나서서 충성맹세문을 제도화하고 암기 의식을 확산시켰다.
img2R연방 정부는 이 과정에서 뒤늦게 끼어들었다. 의회는 1942년 이전까지는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54년 종교단체 콜럼버스기사회(Knights of Columbus)의 압력을 받아 충성맹세문에 ‘신(神) 아래(under God)’라는 문구를 넣는 안을 통과하기 전까지만 해도 맹세문의 문구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았다.
국가가 민족주의를 제도화시키기 위해 국가 권력을 사용하려는 시도가 있었을 때는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을 받고는 했다. 정부가 시민 개인의 자유를 잠식할 수 있다는 대중적 의구심 때문이었다. 1930년대 일부 공립 학교 이사회가 충성맹세문 암기를 의무화하려고 했을 때 여호와의 증인들이 나서서 의무적인 맹세문 암기는 아이들한테 우상 숭배를 강요하는 것이라며 법적 대응을 한 적이 있다. 성조기 방화 금지 수정법안도 지난 8년 사이에 두 번이나 미 의회에 상정되었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미국 민족주의는 사적인 영역
미국에서는 민족주의 고취가 사적인 일에 속한다. 다른 사회, 특히 권위주의 체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국가가 관영 언론에서부터 경찰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애국적 가치’를 선전한다. 그런 나라의 국경일 행사를 보라. 병력과 최신예 무기를 동원해 군사 퍼레이드를 하는 등 정부가 주도하는 대규모 행사를 연출한다(중국의 경우 1999년 베이징에서 거행된 신중국 탄생 50주년 기념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에는 수백만 달러가 들었다고 한다).
미국은 가공할 만한 최신예 병기란 병기는 모두 가지고 있는 나라이지만 독립기념일에 민족주의를 고취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떠들썩한 잔치를 벌이지는 않는다. 물론 미국인들도 7월4일 독립기념일에 퍼레이드를 하고 불꽃놀이를 한다. 그러나 그런 행사들은 시민단체들이 모여 대규모로 주최하는 것이고, 행사 자금의 일부는 각 지역의 사업체들이 부담한다.
바로 여기에 미국 민족주의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과 지속력의 비밀이 있다. 정부가 나서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봉사주의가 주도하기 때문에 미국 민족주의는 민족적 감정을 보다 순수하고 매혹적인 것으로 만들며 대중에게도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또 이러한 특성 때문에 미국 민족주의는 아주 일상적인 것이 되어 실제로는 감지되지 않고 외부인들과는 상관 없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민족주의는 언뜻 보기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미국인이 그것을 봤더라도 그들은 자기들이 본 것이 민족주의인지 아닌지 깨닫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민족주의는 다른 나라의 민족주의와는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 민족주의는 독특한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미국 민족주의는 문화나 인종적 우월성이 아닌 정치적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미국 스스로 자국 사회를 문화적, 인종적 도가니로 간주하는 것만 봐도 이런 개념이 맞아떨어진다. 지난해 7월4일 독립기념일 기념사에서 부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 인종이라는 것은 없다. 미국 신조(Amer-ican creed)라는 것만 있을 뿐이다.”
미국인의 눈에 이 미국 신조의 우월성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자명한 것이다. 미국의 정치 제도와 이념은 정치 관행과 더불어 그들의 가치관이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확신을 미국인들에게 심어 주고 있다. 이와 반대로, 미국인이 위협을 당했을 때 그들은 그 위협을 자신들의 가치관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미국의 엘리트들과 대중이 9·11 테러를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생각해 보라. 그들은 9·11 테러를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와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는 개념으로 구체화시켜 받아들였다.
미국 민족주의는 승리의 민족주의
둘째, 미국의 민족주의는 고민하거나 고통받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의기양양한 승리의 민족주의다. 대부분 사회의 민족주의는 외부 세력에 의해 야기된 과거의 비통한 경험에서 비롯된다. 인도·이집트같이 식민 지배를 당한 경험을 가진 나라들은 가장 강력한 민족주의를 형성한 사회다.
그러나 미국의 민족주의는 그 같은 고통의 산물로서의 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반대편 극단에서 형성된다. 건국 이래 미국 민족주의는 전쟁과 평화에서 쟁취한 승리의 개념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다. 승리의 민족주의자는 긍정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며, 민족적 굴욕감과 패배감을 이어받아 한탄스러워 하는 민족주의자의 비통함에는 거의 공감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다른 나라들의 거의 모든 민족주의가 과거지향적인 것에 반해 미국의 민족주의는 미래지향적이다. 미국의 가치와 제도의 우월성을 확신하는 사람들은 지난 과거의 역사적 영광에 안주하지 않는다(비록 과거의 영광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미국인들은 자신들 앞에 놓인, 좀더 나은 미래의 시간을 바라본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렇다. 이런 역동주의가 미국의 민족주의에 선교사의 정신을 듬뿍 스며들게 만든다. 외부인들과 생각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을 외부에 퍼뜨리는 것이다. 이런 미래지향적 사고와 보편적 시각은 결국 다른 나라의 과거 지향적이고 특히 인종 민족주의적 시각과 충돌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중동을 보자. 십자군 원정 이래 서구의 군사적 침공이라는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그들은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킨다’(liberate)는 미국의 계획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중국의 경우에도 미국의 대만 지원은 중·미 양자 관계에서 가장 논쟁거리가 되는 현안이다. 중국 정부와 중국 국민은 대만을 분리된 자국 영토로 보기 때문이다. 1895년 일본에 의한 것이든 1949년의 국민당에 의한 것이든 중국은 대만을 잃었고, 대만은 약해진 중국의 국력과 굴욕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미국 민족주의 내부의 모순
미국 민족주의의 독특한 성격을 보면 가장 민족적인 나라 가운데 하나인 미국이 왜 다른 나라의 민족주의와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지를 알 수 있다. 미국 민족주의의 이 두번째 패러독스에 대한 가장 대표적 사례가 베트남전이다.
미국의 보편적 정치적 가치관(이 경우에는 반공산주의), 미 국력에 대한 승리주의자의 확신, 다른 나라에 대한 인식 부족 등이 베트남의 민족주의와 충돌을 빚어 파괴적인 정책을 만들어낸 것이 베트남전이다. 외부 세력(중국과 프랑스)의 지배에 저항하는 민족적 경험을 가지고 있던 베트남인의 최우선적인 목표는 독립과 통일이었지, 동남아에 공산주의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었다.
img3L미국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다른 나라들을 상대할 때도 상대 국가들의 체제를 합법화하고 유지시키는 그 나라 민족주의의 역할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런 나라들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필리핀과 멕시코의 경우처럼) 강력한 민족주의 감정을 무시해 버리거나 (중국과 쿠바의 경우처럼) 상대방 정부가 옹호하는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적대감을 과장하기 위해 미국 민족주의가 가지고 있는 자유시장과 민주주의 이념만 적용시키려 들었다.
전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가 취한 피식민 이후의 아랍민족주의는 미국이 주도하는 서구 민주주의나 소련이 주도하는 사회주의와의 전략적 동맹 관계를 거부했고, 결국 워싱턴 관리들과 마찰을 빚게 되었다. 당시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골몰하던 워싱턴으로서는 중립적 위치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지금도 미국의 이런 사고방식은 그대로 남아 있다. 대테러전의 최후 통첩에서 “우리 편에 서든지 아니면 적의 편을 들든지”라는 표현이 바로 그런 것이다.
다른 나라 민족주의를 배척하는 이런 경향은 결국 세 가지 결과를 낳고 말았다. 첫째는 그다지 심각한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다른 나라 정부와 국민들의 미국에 대한 강도 높은 분노를 불렀다. 미국의 무감각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둘째는 그런 무감각한 정책이 미국에 역풍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첫번째 결과보다 훨씬 심각한 현상이다. 민족주의라는 것도 결국 민주적 자유주의와 경쟁하는 미숙한 이데올로기의 하나일 뿐이다.
예를 들어 지금 전개되고 있는 한반도의 핵 드라마를 보자. 남한의 젊은 세대는 말썽꾸러기 이웃 북한을 괴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친척으로 본다. 이들 사이에서 점증하는 민족주의는 평양의 벼랑끝 전술을 우려하는 워싱턴의 생각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이런 사례는 다른 유사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정책이 동맹국 국민들을 소원하게 만들고, 그 국민들로 하여금 미국의 정책이 겨냥하는 바로 그 체제를 지지하도록 만드는 역효과를 가져온 대표적 사례다.
끝으로 미국의 민족주의가 미국의 정책에 숨을 불어넣는 것이기는 하지만 해외에서 보는 미국인의 행동은 위선적으로 비친다는 것이다. 이 위선은 특히 미국이 자국의 주권 보호라는 이름으로 국제 제도를 침해할 때 화려한 불꽃을 피워 올린다. 교토(京都) 국제기후조약, 국제사법재판,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 등을 보라.
이런 다자간 합의를 거부하면 국내에서는 점수를 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로서는 미국인이 신봉하는 보편적 수사나 이념과 미국 정부가 해외에서 취하는 편협한 국익 추구 사이의 조화를 이루기가 난감해지게 마련이다. 결국 미국의 그런 행동은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갖는 신뢰와 합법성을 잠식할 뿐이다.
만약 미국 사회가 지리적으로 다른 나라들과 덜 고립되어 있다면 민족주의에 대한 이런 충돌적 시각은 그리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탓에 자기들의 정치 신념에 대한 미국인의 확신이 위축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미국은 (미국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원칙에 따라 건국된 나라다. 이런 정서는 ‘4가지 자유’에 바탕을 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세계관에서부터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인간 존엄성에 대한 양보할 수 없는 요구’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거치면서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나 미국의 상대적인 고립과 다른 나라에 대한 부정확한 사실 인식 때문에 미국인과 다른 사회 사이에 거대한 소통의 장벽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최근의 퓨 조사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미국인 가운데 22%만이 다른 나라를 여행해 본 경험이 있다. 캐다나인 66%, 영국인 73%, 프랑스인 60%, 독일인 77%와 비교해 보라. 정보혁명의 시대이기는 하지만 해외 다른 사회와의 직접 접촉은 필요하다.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나기 이전 몇 년 동안 미국인의 30%만이 ‘다른 나라 소식’에 ‘관심이 아주 많다’고 답했을 뿐이다.
세계 소식에 관심이 없는 미국민
9·11 테러 이후에도 평균적인 미국인은 역시 국제적인 일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2002년 초에 실시된 퓨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의 26%만이 국제 뉴스를 ‘아주 많이’ 들여다보며, 45%의 미국인은 국제 문제가 자신들에게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정치적 이상주의와 민족적 자긍심, 상대적 고립감 등이 서로 혼합되어 있는 미국의 민족주의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뒤섞인 인상을 준다. 미국의 이상주의와 보편주의, 낙관주의를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의 불가피성과 평화와 번영을 위한 미국의 리더십 등도 인정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고압적이고 독선적이며 난폭한 힘자랑만으로 표현되는 미국의 민족주의는 거부한다.
국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이런 양면적인 정서는 평상시 같으면 그저 단순한 수닷거리에 불과하겠지만, 미국의 민족주의가 외교 정책에 적용될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반미주의에 불을 붙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 민족주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모순을 무시할 수 없게 되며,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가지고 있는 합법성에 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2000년 이후 크게 떨어진 미국에 대한 선호도
다음은 퓨 세계여론(Pew Global Attitudes) 조사가 지난해 말(12월4일) 발표한 ‘2002년 세계 여론조사’(What the World Thinks in 2002) 가운데 반미주의 관련 부분을 도표와 함께 발췌 요약한 것이다. 퓨 세계여론 조사는 전 세계 44개국의 3만8,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현지에서 1대 1 직접면접을 통해 실시되며, 직접 인터뷰에는 63개국 언어로 번역된 설문지를 사용한다.
2000년 이후 여론 변화 지수 측정이 가능한 27개국 가운데 19개국에서 미국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졌다. 미국에 대한 비판이 한편에서 점증하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에 대해 호감을 표시하는 경향은 과거와 변함이 없다. 퓨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국 42개국 가운데 35개국 국민의 대다수가 여전히 미국과 미국 시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미국을 ‘정말 싫어하는’ 나라들은 분쟁 지역인 중동과 중앙 아시아 지역의 이슬람권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복잡하고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 미국을 포용하면서도 자국 사회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비난하는 경향이 짙다. 조사에 응한 대부분의 나라가 미국의 일방주의를 질타한 것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다. 그러나 현재 미 외교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대테러전에 대해서는 이슬람권 바깥에서 전 세계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중동 분쟁 지역이 미국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한편, 미국식 민주주의 및 사업 관행 같은 미국의 정책과 이념에 대한 비판도 전통적인 동맹국 대중 사이에 역시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캐나다·독일·프랑스 같은 나라의 미국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서보다 훨씬 더 높게 나타났다.
다음 도표는 미국의 이미지에 대한 세계 주요 국가의 선호도를 나타낸 것이며, 도표에 나타난 % 수치는 미국에 대한 조사국의 호감 정도를 표시한 것이다(1999년과 2000년의 조사 결과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만 표시했으며, 호감도 변화 지수는 미 국무부 조사국 자료가 제공한 것임).
월간중앙 2003년 06월호 | 입력날짜 2003.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