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정보둘러싼 CIA,국무부 갈등 이시우 2005/02/27 277
http://monthly2.joins.com/monthly/article/mj_article_view/0,5459,aid%252D212409%252Dservcode%252D9200200,00.html
北核 평가 둘러싼 미 CIA-국무부 10년전쟁
부시의 北核 강경론, 北원폭 보유 확실 판단한 CIA가 주도
외부기고자 최원기 중앙일보 국제부 기자(brent1@joongang.co.kr)
2001년 10월 어느날 유럽 주재 미 중앙정보국(CIA) 지부장은 북한의 핵 개발 정보를 담은 비밀 전문 한 통을 CIA 본부가 있는 랭글리로 보냈다.
비밀 전문을 읽은 CIA의 동아시아 담당 데스크는 이 정보가 9·11 이후 대량살상무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대통령이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정보라고 판단했다.
그 결과 문제의 북핵 정보는 CIA가 매일 A4 사이즈 20여 장으로 생산하는 ‘대통령일일정보’(PDB)에 ‘주요 정보’로 분류돼 그 다음날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이 정보는 CIA가 지난 10년간 견지해 왔던 북한의 핵 개발에 관한 평가를 송두리째 바꿔 놓는 핵심 정보였다. 그러나 워싱턴으로부터 1만1,000km 떨어진 한국의 국가정보원과 청와대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CIA유럽지부장이 보내온 정보는 수출 송장(送狀: Shipping Document) 사본이었다. 이 문서에 따르면 북한은 플루토늄 핵폭탄 개발에 필요한 특수 부품과 함께 수백 개의 초강력 알루미늄 파이프를 확보한 상태였다. 문제의 부품을 수출한 특수 부품 제조업체 사장은 부품과 알루미늄 파이프의 수입처가 중국이라고 주장했으나 CIA는 이 알루미늄 파이프의 최종 목적지가 북한이라고 결론내렸다.
워싱턴에서 만난 케네스 퀴노네스 전 국무부 북한 데스크는 기자에게 유럽에서 보내온 문제의 정보가 CIA와 국무부간 ‘북핵 10년전쟁’을 재연(再燃)시켰다고 말했다. 1차 북핵 위기를 앞두고 있던 1992년 8월 CIA와 국무부는 북한의 핵 능력을 놓고 일대 격론을 벌였다.
당시 CIA측은 북한이 이미 원폭 제조를 완료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무부의 정보조사국(INR)은 북한이 기껏해야 7~21kg 정도의 플루토늄만을 추출했을 뿐 아직 원폭을 확보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주로 국가정보원이나 그 전신인 안기부라는 프리즘을 통해 미국의 CIA를 이해하는 한국인의 상식으로는 CIA와 국무부의 일개 정보조사국이 맞붙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2만여 명의 정보요원과 연간 30억달러(약 3조6,000억원)의 예산을 사용하는 CIA와 기껏해야 100명 수준인 INR의 갈등은 가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싱턴의 정보 전문가들은 미국의 정보공동체 문화와 풍토에서는 이 같은 싸움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경쟁적 분석(Competitive Analysis)개념’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쟁적 분석이란 한 가지 이슈에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릴 때 일종의 ‘정보재판’을 하는 것이다. 미국의 정보공동체는 이를 위해 독특한 제도를 마련해 놓고 있다. 바로 국가정보위(NIC: National Intelligence Council)제도다.
중립과 객관성이 INR의 덕목
1973년에 설립된 정보위의 가장 큰 임무는 1년에 수차례 ‘국가정보평가’(NIE; National Intellige nce Estimate)를 발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 핵 문제가 제기됐을 때 정보위에서는 연방정부 산하의 13개 정보기관에서 올라오는 모든 북핵 정보를 취합해 종합적인 정보 보고서를 만들어 대통령과 미 의회에 제출한다. 이 과정에서 정보기관 간에 이견이 있을 경우 이를 조정하는 것도 위원회의 임무다.
따라서 ‘중립성과 객관성’이 이 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이 위원회에 소속된 16명의 국가정보담당관들은 2년 임기제로 임명되는데 주로 민간인 학자, 은퇴한 정보전문가, 군 장성 등이 맡는 것이 관례다.
참고로 최근까지 북한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문제가 포함된 동아시아 문제를 다룬 정보담당관은 로버트 셔터(조지타운 대학) 교수, 리처드 부시 (부르킹스연구소) 연구원이었다. 과거에는 ‘재팬 애즈 넘버 원’(Japan as Number One)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에즈라 보겔(하버드 대학) 교수 등도 정보담당관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핵 평가를 둘러싸고 1차 CIA-국무부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국무부 소속의 한 곱슬머리 연구원이었다. ‘미국내 최고의 주체사상 전문가’로 알려진 봅 칼린은 힘겨운 싸움을 벌인 끝에 CIA에 승리를 거두었다.
그 결과는 두 가지로 나타났다. 미국은 지난 10년간 북한 핵 문제에 대해 ‘북한이 플루토늄을 7~21kg을 추출했을 가능성은 있으나 아직 원폭을 보유한 것은 아니다’라는 정보 평가를 견지했다. 또 이 같은 정보평가에 기초해 클린턴 행정부는 1994년 북·미제네바합의를 비롯한 일련의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img2R11년 뒤에 재연된 CIA-국무부 2차 대결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워싱턴 소식통에 따르면 CIA의 동아시아국과 핵확산방지국 요원들은 이 자리에서 유럽의 CIA 지부장이 보내온 문제의 수출 송장을 흔들어 보였다. “자, 이제 북한은 원폭 제조에 필요한 부품을 손에 넣었다.
이것이 그 증거”라며…. 봅 칼린이 이 자리에서 어떤 주장을 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싸움을 지켜본 국가정보담당관이 CIA의 손을 들어준 것만은 분명하다.
이 대결을 계기로 지난 10년간 ‘북한=핵물질만 보유’ 입장을 견지하던 미국은 ‘북한=핵 보유’로 선회했다.
또 이 같은 새로운 정보평가는 부시 행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으로 이어졌다. 또 CIA와의 싸움에 패배한 봅 칼린은 사임했다. 문제는 CIA에 국무부가 KO패한 것이 아니라 판정패했다는 것이다. 국무부의 패배는 북한의 핵 능력을 둘러싼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워싱턴의 북한 전문가 그룹 내부에서는 북핵 정보 평가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1993~95년 CIA 국장을 역임한 제임스 울시는 ‘월간중앙’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원폭을 제조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은 제조 자체보다 특수 부품 확보”라며 “북한은 원폭을 보유하고 있다. CIA의 판단이 정확하다”고 말했다.<인터뷰 참조>
그러나 워싱턴에서 600마일 떨어진 로드아일랜드 뉴포트의 해군대학 조너선 폴락 교수는 울시와 견해를 달리한다. 소탈한 성격의 폴락 교수는 지난 9월8일 기자와 만나 “2001년까지 1∼2개의 원폭을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했다고 평가해온 CIA가 2001년 12월 구체적 이유나 근거를 설명하지 않은 채 ‘북한이 1990년대 중반부터 1∼2개의 원폭을 제조한 것으로 평가해 왔다’고 말을 바꿨다”고 지적했다.
기자가 “새로운 첩보가 입수되면 정보 평가도 바꿀 수 있지 않느냐”고 묻지 폴락 교수는 “그렇다고 해도 정보 평가의 시점을 뒤집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폴락 교수는 또 CIA의 우라늄 농축 정보도 “이상하다”고 말했다.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지난 3월13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이 수개월 내에 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폴락 교수는 그 같은 정보 평가가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폴락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국방당국은 지난 1999년 미국에 ‘북한이 우라늄 농축 방식으로 핵 개발을 하려고 한다’는 정보를 미측에 제공했다. 그러나 당시 CIA를 비롯한 미 정보당국은 기술적 어려움 등을 감안해 북한이 원폭 제조에 충분한 우라늄을 확보하려면 최소 3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CIA의 우라늄 농축 정보 이상하다”
img3L실제로 CIA는 지난 2002년 11월 미 의회에 대해 “원심분리기를 사용한 우라늄 농축 시설 건설이 최근까지 시작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미국은 불과 넉 달 만에 그 같은 보고를 스스로 뒤바꾼 것이다.
폴락 교수는 핵무기 전문가인 리처드 가윈 박사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우라늄 농축 방식으로 원폭을 제조하려면 600대 이상의 고성능 원심분리기를 최소 3년간 가동해야 한다”며 “미국 정보당국이 이 같은 기술적 난점을 무시한 채 북한의 핵 개발 능력을 부풀린 것 같다”고 말했다.
폴락 교수는 남북화해 정책을 추진하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한편 2000년 9월 이뤄진 김정일(金正日)·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 간의 정상회담으로 시작된 북·일 관계개선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북핵 정보가 왜곡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워싱턴과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북·일정상회담을 발표하자 부시 행정부는 경악을 금치 못했고, 워싱턴은 남한에 이어 일본마저 북한과 관계를 개선할 경우 동북아에서 미국의 전략적 입지가 좁아질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결국 부시 대통령은 9월12일 유엔 참석차 방미한 고이즈미 총리에게 ‘모종’의 북핵 정보를 직접 브리핑했다고 한다. 폴락 교수는 일본의 분석가를 인용해 “미국이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연기를 요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 문제를 거론해줄 것을 요청한 것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2000년 10월 이뤄진 켈리 차관보의 방북도 북핵 정보에 기초한 부시 행정부의 강경한 자세로 인해 ‘손발이 묶인’회담이 되고 말았다고 폴락 교수는 지적했다. 켈리는 방북에 앞서 고위 당국자로부터 대단히 구체적인 발언 내용을 지시받았다고 한다.
그 훈령 중에는 “미국은 북한이 농축 우라늄 핵 개발 계획을 먼저 폐기하기 전에는 어떠한 대북 포용정책도 펴지 않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폴락 교수는 “이 훈령 때문에 켈리는 평양에서 운신의 폭이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14년이나 된 일제 고물 혼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폴락 교수는 “정보기관은 대통령에게 자신들이 ‘아는 것’을 알려주는 것 못지않게 자신들이 ‘모르는 것’을 주지시켜 주는 것도 중요한 법인데 CIA는 자신들이 ‘아는 것’만 알려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CIA의 고참 직원들은 자신들이 가장 금기시하는 것을 ‘Cook the Book’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정보 조작’에 대한 경고다. 한 마디로 정보의 최종 소비자인 대통령에게 객관적 정보를 제공해야지 정책 결정론자의 입맛에 맞추려고 정보를 부풀리거나 윤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9·11 이후 CIA의 이 같은 금기는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정보 조작의 엄청난 결과
정보 조작의 결과는 엄청나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 1월28일 국정연설에서 인용한 정보는 ‘영국 정부는 최근 사담 후세인이 상당량의 우라늄을 아프리카에서 사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딱 13단어에 불과했지만, 이 조작된 정보는 사담 후세인의 축출과 1만명 가량의 이라크인 살상과 200억달러 이상의 전비 그리고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포함한 국제질서의 지각변동으로 이어졌다.
취재 도중 불길하게 느꼈던 것은 북핵 능력에 대한 평가 문제를 포함해 한·미 간에 정보 협조는 물론 커뮤니케이션도 난조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과 미국은 과거 체결한 정보협정에 따라 상호 긴밀한 정보협조를 하게끔 돼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 다르다. 북한의 핵 능력을 둘러싸고 양국 정보기관의 평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앞서 지적했듯 CIA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국가정보원은 북핵과 관련해 “핵무기 1~2개를 제조할 수 있는 핵물질만 추출했을 공산이 있다”고 다소 한가한 정보 평가를 견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로버트 셔터 교수는 “양국 정보기관이 북핵에 대해 다른 평가를 갖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고영구 국정원장이 취임 후 CIA 랭글리 본부를 방문했을 당시 미국측과 영어로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됐다는 소문도 있다.
한·미 정보당국뿐만 아니라 정부 간에도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취재 도중 만난 미국의 한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는 “한국의 NSC(나종일·이종석)로부터 지난 5개월간 아무런 연락도 못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지난 7월28일 미국 정부 특사 자격으로 청와대를 예방했던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청와대에서 한국의 NSC가 준비한 안보현황 브리핑을 받은 후 백악관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위험한 대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는 얘기도 있다.
더더욱 코미디는 노무현 정부 내부에서도 제대로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점이다. 지난달 외교안보를 담당하는 한 고위급 인사가 워싱턴을 방문했는데 이 사실이 워싱턴의 한국대사관에 사전 통고가 안 돼 미국측으로부터 빈축을 샀다는 뒷얘기도 있다.
노무현 정권이 가장 즐겨 쓰는 단어는 ‘컨셉’이다. 평양·워싱턴과 ‘등거리’를 유지하겠다는 노무현 외교안보팀의 ‘등거리 컨셉’은 벌써부터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스콧 매클래런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8일 부시 대통령이 10월17~21일 아시아를 순방한다고 밝혔다. 백악관에 따르면 아시아 순방에 나선 부시 대통령은 첫번째 기착지인 일본(17∼18일)을 방문한 데 이어 필리핀(18일)을 거쳐 태국(20∼21일)에 들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이어 부시 대통령은 싱가포르(21∼22일)·인도네시아(22일)·호주(22∼23일)를 차례로 방문할 예정이다. 한국은 부시 대통령의 순방국에서 배제됐다. 한국이 전 세계 200여 국가 중 유일한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 대통령의 아태지역 순방국에서 배제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노무현 정권의 재신임 현상은 국내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미 간에도 일어나고 있다. 아무래도 대한민국은 한·미동맹이라는 최고의 외교안보 자산을 야금야금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과연 노무현 대통령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 인터뷰 / 제임스 울시 전 CIA 국장
img4R“미국이 선제공격해도 김정일 남침 어려울 것”
파란 와이셔츠에 붉은 넥타이를 맨 제임스 울시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얼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눈매였다.
1993∼95년 클린턴 행정부 시절 CIA 국장을 역임한 울시는 마치 독수리를 연상케 하는 매서운 눈매와 면도날 같은 기억력 그리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북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거침없이 털어놨다.
울시는 ‘월간중앙’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북한은 이미 원폭을 보유하고 있다”며 한국과 미국은 김정일 정권교체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울시와의 인터뷰는 지난 9월5일 워싱턴DC에서 30분 떨어진 버지니아 맥닐에 소재한 컨설팅 기업인 부즈 앨런 해밀턴사의 부회장실에서 이뤄졌다.
― 왜 김정일 정권을 교체해야 합니까.
“핵 확산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죠. 핵무기를 확보한 북한은 테러리스트들에게 핵을 수출할 것입니다. 지금 일각에서 말하는 영변 핵 시설 폭격은 별 의미가 없어요. 설사 영변을 파괴하더라도 북한이 제2의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을 숨겨 놓았을 공산이 커요. 별도의 우라늄 농축 시설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한국과 미국이 김정일 정권교체를 준비해야 해요.”
― 한국은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제2의 한국전이 발발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감히 남침하지 못할 것입니다. 전쟁을 하려면 공군력이 필수적인데 북한은 공군이 아주 빈약해요. 현대전을 치를 만한 공군력이 없어요. 기껏해야 수십 년 된 고물 미그기가 전부예요. 반면 미국의 공군력과 한국의 공군력은 막강해요. 우리는 하루 4,000회의 전투·전폭기의 출격이 가능해요. 이라크전 당시 미군이 하루 800회 출격한 것을 감안하면 그 다섯 배의 공군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지요. 1만1,000문에 달하는 북한의 야포도 미 공군의 스텔스 전폭기와 스마트탄으로 쉽사리 무력화시킬 수 있어요.”
― 미국의 안전 보장과 북한의 핵 카드를 맞바꾸는 방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김정일이 핵을 끝내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봐요. 핵 문제를 놓고 정치적 흥정을 한다는 발상 자체가 한낱 희망사항에 불과해요. 중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막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베이징(北京)의 노력이 실패할 경우 미국이 나설 수밖에 없어요.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테러국가에 판매하는 상황을 수수방관할 수 없어요.”
― CIA가 북한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읽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정일은 거짓말에 이골이 난 사람이에요. 1991년 북한은 남한과 남북불가침조약을 맺으면서 핵 개발 포기와 한반도 비핵화를 약속했어요. 그런데 이를 어겼어요. 1994년 북한은 미국과 제네바합의를 체결하면서 핵 개발 포기를 약속했어요. 그런데 북한은 비밀리에 우라늄을 농축하고 이제는 풀루토늄까지 추출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어요. 김정일 정권의 본질은 거짓말 그 자체예요.”
― 북한의 핵 능력을 둘러싸고 한국의 국정원과 미국의 CIA가 서로 다른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CIA가 정확하다고 봅니다. 원자폭탄을 제조할 때 가장 힘든 부분은 필요한 물질과 부품을 확보하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원폭 재료인 플루토늄과 특수 부품 등은 각국이 엄격하게 통제하기 때문에 구입하기가 아주 어려워요. 그러나 일단 물품과 부품을 확보하면 원폭 제조는 비교적 용이해요. 북한은 원폭을 확보했다고 봅니다.”
― 소련 붕괴 후 CIA가 자체 구조조정에 실패한 결과 미국이 9·11 같은 대참사를 맞은 것 아닙니까.
“내 생각은 달라요. CIA는 1990년대 초부터 알 카에다를 비롯한 테러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어요. 조지 테넷 현 국장도 CIA에 테러전담센터를 설치하는 등 나름대로 대처해 왔다고 봐요. 빈 라덴만 하더라도 CIA가 1998년부터 감청해 왔어요. 이라크전에서 맹활약한 프레데터(무인정찰기)도 CIA가 자체 개발한 것이고요. 굳이 문제라면 ‘언어’문제를 꼽고 싶어요. CIA가 예산부족 등으로 아랍어 등 제3세계의 문화·언어 전문가를 확보하지 못한 것은 실수라고 생각해요.”
― 9·11을 계기로 미국이 ‘21세기의 제국’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어이가 없다는 듯) 말도 안 돼요. 미국을 제국이라고 칩시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황제라는 말인데…. 클린턴 전 대통령을 보세요. 세상에 어느 황제가 자신의 사생활(르윈스키 스캔들)이 문제가 되어 탄핵 위기까지 몰리는 경우가 있습니까. 또 이라크전도 보세요. 당초 우리는 터키를 통해 미군을 이라크에 투입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전쟁 직전 터키 국회가 미군의 영공 통과를 허용하지 않는 바람에 작전에 막대한 차질이 생겼어요. 미국이 진짜 제국이라면 아마 터키에 명령해서 군대를 배치했을 것입니다. 미국이 제국이라니…. 근거 없는 억측이에요.”
― 9·11로 빚어진 이 사태가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나는 미국과 소련이 벌인 냉전은 3차 세계대전이었다고 생각해요. 9·11은 ‘4차대전’인 셈이죠. 4차대전은 1차나 2차 세계대전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면.
“‘쿠바로 망명이나 떠나라’라고 말하고 싶어요.”
2003년 11월호 | 입력날짜 2003.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