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O는 분열하는가 이시우 2005/02/27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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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량의 월드워치] NATO는 분열하는가
‘글로보캅’바라는 미국, 역할 확대 반대하는 獨·佛
정우량 월간중앙 기획위원(chuwr@joongang.co.kr)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파견된 NATO군.

지난번 이라크전쟁을 앞두고 유럽에서 반전·반미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일부 회원국들이 미국의 행동을 비난하고 나서자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그들을 가리켜 ‘낡은 유럽’이라고 불렀다.

특히 프랑스와 독일을 ‘족제비의 축(軸)’이라고 부르면서 경멸했다. 럼즈펠드는 미국이 앞으로 유럽의 안보 문제를 다루는 데 ‘새 유럽’을 협력자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럼즈펠드가 말한 ‘새 유럽’이란 폴란드·체코·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 등 동유럽 국가들이다. NATO의 ‘동방 확대’ 계획에 따라 최근 NATO에 가입했거나, 가입할 예정인 나라들이다. 미국이 NATO를 운영하는 데 지난 반세기 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오랜 맹방인 서유럽 국가들을 멀리 하고 과거 소련의 위성국가였던 나라들을 자기 편이라고 주장하게 됐음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유럽군사령부’ 설치 둘러싼 美―유럽의 갈등

최근 NATO에서는 미국과 ‘낡은 유럽’이 다시 한번 팽팽히 맞섰다. 지난 10월20일 NATO 19개 회원국 대사회의가 긴급 소집됐다. 니컬러스 번스 미국 대사의 요구로 열린 이날 회의는 유럽연합(EU)이 NATO군과 별개로 ‘유럽군사령부’를 설치하려는 계획에 대해 토의했다.

번스는 유럽군사령부 설치가 “미국-유럽 관계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NATO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가 이라크전쟁을 놓고 미국과 유럽이 대립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전한다.

유럽군사령부 설치는 지난 4월 프랑스·독일·벨기에·룩셈부르크가 합의한 것이다. 처음에 미국은 ‘초컬릿 국가들’의 병정놀음이라고 평가절하했지만, 지난 9월과 10월 EU 정상들이 유럽의 독자 방위체제 구축을 위한 ‘구조적 협력’에 합의하자 사정이 급박해졌다. 특히 둘도 없는 우방이라고 믿어온 영국이 그들과 함께한 데 대해 미국은 당혹감과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NATO 대사회의는 “모든 회원국들은 NATO의 존재에 해를 끼치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유럽군사령부 설치는 유보하고 다른 방안을 모색하기로 함으로써 일단 급한 불은 껐다. 그렇지만 이는 문제의 해결이라기보다 일시적 봉합에 불과하다. NATO의 장래를 둘러싸고 미국과 유럽 사이에는 극복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견해차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NATO는 여러 차례 내부 갈등을 빚은 적이 있지만 이번처럼 존립을 위협할 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1966년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이 NATO에서 우월적 지위를 누리고 있으며, ‘통합’이라는 명목으로 회원국을 전쟁에 자동 개입시키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NATO의 통합군 지휘 구조로부터 프랑스군을 철수시켰다. 이 때문에 당시 파리에 있던 NATO군 사령부는 벨기에 수도 브뤼셀로 이전해야 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그후 계속 NATO 회원국으로 남았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는 ‘논쟁의 여지가 없을 만큼 명백한 침략행위’에는 NATO 회원국으로서 NATO조약을 준수해 군사작전에 적극 참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프랑스는 NATO 군사고문단과 깊은 유대관계를 유지했으며, NATO 회원국 자격으로 서독에 프랑스 지상군을 주둔시켰다.

또 다른 문제는 영토분쟁과 NATO의 비용분담 문제였다. 지중해 키프로스 섬 영유권을 둘러싼 그리스와 터키 사이의 해묵은 대립을 1974년 NATO가 개입해 중재하는 데 성공했다. 이 밖에 회원국들끼리 무기 생산과 판매 그리고 NATO의 비용분담을 둘러싸고 문제를 일으켰으며, 미국의 군사비 지출 증액 요구를 유럽 국가들이 거부함으로써 갈등을 빚기도 했다.

현재 NATO가 당면한 문제는 과거의 문제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중요하다. NATO의 존재 이유를 놓고 근본적인 검토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냉전 종식 후 NATO는 1990년 7월 런던선언을 계기로 과감한 개혁에 착수했다. 10년 가까운 노력의 결과 1999년 4월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열린 NATO 창설 50주년 기념식에서 ‘동맹의 전략 개념’을 발표하고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다.

이로써 NATO는 종래의 집단방위(NATO조약 제5조) 외에 유럽·대서양 지역의 위기 관리라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를 가리켜 ‘비(非) 5조 위기 대응 작전’이라고 부른다. ‘동맹의 전략 개념’에 따라 NATO는 발칸반도의 코소보 사태에 개입해 1999년 3월 유고를 공습했으며, 9·11 테러 후에는 아프가니스탄에 NATO군을 파견했다.

이와 함께 NATO는 동방 확대를 적극 추진해 동유럽 국가들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999년 3월 폴란드·헝가리·체코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인 데(1차 확대) 이어 2002년 11월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열린 NATO 정상회의에서 9개국을 한꺼번에 받아들이는 이른바 ‘빅 뱅 어프로치’를 결의함으로써 머지않아 최대 28개국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또 NATO의 동방 확대를 우려하는 러시아를 달래기 위해 1997년 발족한 NATO-러시아 상설 합동위원회(PJC)를 확대 개편하기로 결정, 2002년 5월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서 열린 NATO-러시아 특별 정상회의에서 NATO-러시아 이사회(RNAC)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러시아는 대(對)테러 작전 등 ‘공통의 이익’에 해당하는 9개 분야에서 NATO 회원국과 동등한 발언권을 가짐으로써 사실상 NATO 준(準)회원국 대우를 받고 있다.

脫 냉전시대 NATO의 역할

▲ NATO 회원국 지도, NATO는 동방확대를 추진, 1999년 3월 폴란드·헝가리·체코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인 데(1차 확대) 이어 2002년 11월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열린 NATO 정상회의에서 9개국을 한꺼번에 받아들여 머지않아 최대 28개국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이 같은 화려한 변신에도 불구하고 NATO가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금처럼 미국과 유럽의 관계가 전례 없이 악화된 상태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란 매우 어렵다. 이라크전쟁과 전후 처리 문제를 놓고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유럽이 벌인 외교적 대립이 NATO의 장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최근 유럽에서 실시된 한 여론조사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EU의 정부에 해당하는 집행위원회가 여론조사회사 테일러 넬슨 소프레스와 EOS 갤럽에 의뢰해 지난 10월8∼16일 EU 회원국 국민 7,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나라’로 1위 이스라엘(59%)에 이어 미국이 이란·북한과 함께 공동 2위(53%)를 차지했다. 현재 유럽인들이 미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반감이 어느 정도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외교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일원인 칼럼니스트 로버트 케이건은 ‘파라다이스와 파워: 신세계 질서에서 미국과 유럽’이라는 책에서 대부분 유럽 지식인들은 이제 유럽과 미국이 더 이상 공통의 ‘전략문화’를 갖고 있지 않다고 믿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유럽과 미국이 서로 세계관이 같다거나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는 식으로 가장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이상 ‘서방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냉전 종식 후 유럽은 파란 많은 과거를 청산하고,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이마누엘 칸트가 말한 영구 평화의 파라다이스에 들어섰다. 반면 미국은 아직도 역사 속에 매몰된 채 힘을 통한 세계질서 유지를 신봉하는 토머스 홉스의 무질서한 세계에서 물리적 파워를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중요한 국제문제에서 마치 미국은 화성에서 온 사람, 유럽은 금성에서 온 사람인 것처럼 큰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고 케이건은 지적한다.

NATO의 역할에 대해서 미국과 유럽은 다른 입장에 서 있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군사동맹인 NATO를 미국의 외교정책 수행에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하기를 원한다. NATO가 비단 유럽과 대서양뿐 아니라 중동·중앙아시아·서남아시아·동남아시아 심지어 동북아시아에까지 활동 범위를 넓혀 ‘글로보캅’(지구 경찰)으로 활동하기를 바란다. 이에 반해 유럽 국가들, 그 중에서도 프랑스와 독일은 NATO가 처음 출발 때처럼 유럽과 대서양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시각차를 배경으로 등장한 것이 EU가 추진중인 유럽안보방위정책(ESDP)이다. ESDP는 한 마디로 유럽의 독자 방위 구상이다. 1992년 2월 조인된 EU조약(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명시된 공통 외교안보정책(CFSP)에 ESDP에 관한 내용이 이미 포함돼 있다. 처음에 미국은 ESDP가 NATO를 보완하는 기능을 해 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2000년 12월 EU가 ESDP를 상설 정치·군사기구로 전환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했다.

ESDP가 활기를 띠게 된 것은 영국 때문이다. 처음에 영국은 ESDP에 소극적이었으나 코소보 사태를 계기로 유럽의 독자적 방위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영국의 입장이 중요한 이유는 현재 유럽 국가들 가운데 영국의 군사력이 가장 강력하기 때문이다.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외무장관은 “유럽 방위 없이 유럽 없고, 영국 없이 유럽 방위 없다”고 영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1998년 생 말로 회의에서 영국은 ESDP를 지지하기로 프랑스와 약속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유럽의 독자 방위 체제가 미국의 국익과 NATO의 장래를 해치지 않을 것이며, 영국이 유럽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맡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영국이 최근 유럽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유로화(貨)에 불참한 영국이 유럽의 독자 방위 체제에서까지 배제되면 EU의 영원한 아웃사이더로 남을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ESDP는 올해 말까지 6만명 병력 규모의 유럽신속대응군(ERRF) 편성을 완료한다. 이에 앞서 시범 케이스로 올해초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 프랑스군 주도의 1,500명 병력을 파견한 데 이어 3월에 발칸반도 마케도니아에 소규모 병력을 파견했다. 앞으로 유럽의 정치적 통합이 완성돼 유럽헌법이 제정되면 ESDP는 유럽통합군으로 발전하기로 예정돼 있다.

미국은 벌써부터 ERRF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꺼내든 카드는 지난 10월15일 발족한 NATO대응군(NRF)이다. NATO 전체 회원국에서 선발한 최정예 병사 2만1,000명으로 구성될 NRF는 세계 어느 분쟁지역이든 사태가 발생하면 5∼30일 안에 배치할 수 있다.

자체 전함과 항공기를 보유하고, 독자적인 정보와 병참 능력을 보유한다. NATO 사령관 제임스 존스 장군은 NRF가 21세기 새로운 안보 개념과 정확히 일치하는 ‘지구군’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NRF가 ‘분쟁 발생시 신속한 배치를 위해’ 회원국들 전원 일치의 찬성을 필요로 하는 NATO의 의사결정 원칙에서 예외 적용을 받게 되리라는 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미국은 프랑스와 독일 등이 반대하더라도 이를 무시하고 NRF를 파병할 수 있다. 앞으로 NRF 운영 문제를 놓고 NATO 회원국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안보 우산에서 벗어나려는 유럽

9·11 테러가 발생하자 유럽은 미국과 연대를 선언하고 미국이 추진하는 테러와의 전쟁을 전폭적으로 후원하는 의미에서 NATO에 대해 변함 없는 지지를 표시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틈이 벌어기기 시작했다.

특히 이라크전쟁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은 서로 결정적으로 어긋났다. 반전·반미 시위가 유럽 전역을 휩쓸었다. 그 동안 미국을 비판하고 견제해 왔던 프랑스는 당연하다고 하더라도 미국 편에 서 왔던 독일과 영국에서까지 미국에 대한 반감이 폭발하고 있다.

프랑스 정치학자 이마뉘엘 토드는 ‘제국의 몰락’이라는 책에서 최근 상황을 보면 미국과 유럽 사이에 접근하는 힘과 멀어지는 힘이 동시에 증가하는 가운데 멀어지는 힘이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하고, 이 같은 종류의 긴장은 부부간 이혼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유럽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압박을 가해 왔으나, 이제 유럽은 미국의 보호와 압박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토드는 이를 ‘유럽의 해방’이라고 표현했다.

유럽의 해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군사 수송용 에어버스 수송기를 제작하기로 한 사실, 미국이 개발한 전지구위치측정시스팀(GPS)의 독점을 깨기 위해 인공위성 30여 개를 쏘아올리는 새로운 인공위성 추적 시스팀 갈릴레오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한 사실, 2002년 6월 유럽 철강 제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한 미국에 대해 영국과 독일이 협력해 미국에 보복 조치를 취한 사실 그리고 NATO와 별도로 유럽의 독자 방위 체제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들 수 있다.

지난 50년 동안 유럽은 미국이 제공한 안보 우산 아래서 경제 발전을 이뤄 왔다. 그렇지만 이제 EU가 25개국, 4억5,000만명의 인구, 9조달러 경제 규모의 거대한 몸집으로 불어나는 마당에 미국에 무한정으로 안보를 의존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유럽인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2002년 1월1일 막강한 달러에 맞서 유로화를 출범시켰던 것처럼 독자 방위 체제도 유럽으로서는 반드시 이뤄야 할 역사적 과업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유럽이 독자 방위 체제 구축에 나선다고 해도 그것이 당장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유럽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NATO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유럽인들 자신도 인정한다. 현재 유럽의 군사력만으로는 보스니아 사태나 코소보 사태 정도 분쟁에도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같은 이유에서 유럽은 지금 독자 방위 체제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나도록 안보를 미국에 맡기고 있다는 것은 유럽으로서는 수치다.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몰라도 유럽의 탈(脫)NATO는 피할 수 없는 대세다. NATO는 지금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2003년 12월호 | 입력날짜 2003.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