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테러리즘의 뿌리-아프간 이시우 2005/02/27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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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요약] 프랑스 르 데바誌 2003년 가을호 기고문
세계화된 현대 테러리즘의 뿌리

이라크 경찰들이 지난 10월27일 폭발 테러가 발생한 바그다드 국제적십자사 본부 건물에서 부상자를 후송하

소련 침공에 맞섰던 아프간의 이슬람 戰士들이 주축

점점 더 많은 세계인이 테러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어느새 한두 명의
희생자를 낸 테러는 뉴스 가치도 없을 만큼 테러는 현대인의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테러리즘은 전쟁이나 일상의 폭력과 어떻게 다른가. 테러리즘의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테러리즘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계승되고 발전해 왔는지 그 뿌리를 추적했다.

오늘날 세계 각국은 점점 더 빈번하게 테러리즘에 직면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점점 더 테러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사실 테러리즘은 오랫동안 부차적 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68년에서 72년 사이, 종전에 볼 수 없었던 테러들이 자행되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뮌헨올림픽의 검은9월단 테러, 이스라엘 로드 공항 테러, 팔레스타인 조직의 여객기 연쇄 납치 사건 등이 이 기간 집중적으로 발생했던 것이다.

그때 이후 테러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폭력성은 날이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9·11 사태의 폭력성은 이전까지 자행되었던 테러를 한 차원 뛰어넘는 이례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1993년의 뉴욕 테러나 95년의 오클라호마시티 테러 등 이전에 발생한 테러를 통해 우리는 머지않아 초대형 테러가 발생할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었다.

어느새 테러리즘은 현대사회에서 일상적인 요소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테러리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으로 테러리즘이 다른 형태의 폭력들과 어떻게 구별되는지, 이 현상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계승되고 단절되고 변화되어 왔는지 알아내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글은 현대 테러리즘의 계보학을 세우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해 보려는 필자의 바람에서 출발한다.

서로를 이용하는 미디어와 테러리스트

테러리즘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테러리즘을 물질적 측면에서 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다시 말해 테러 행위의 배경, 행위자, 테러 행위를 이끄는 수단이나 공시된 목적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관심을 갖는 부분을 어느 정도 무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테러라고 규정되는 모든 행위를 주도하는 ‘논리적 구조’에만 초점을 맞출 수 있다.

테러리즘을 형식적으로 정의하면 테러리즘의 목적은 ‘다른 방법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고 간주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며, 테러리즘은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해 ‘테러리스트가 실행하는 다양한 강도, 다량의 폭력을 실행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정의는 테러리즘이 갖는 여러 가지 성격을 모두 포괄한다. 이 정의는 테러리즘이 전략상으로는 합리적이라는 것과, 목표로 삼는 대상과 희생자가 구분됨을 보여 준다. 또한 테러리즘은 협상을 위한 의사소통 수단이라는 것과 나름대로 희생자를 선택하는 논리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대개의 경우 이들의 논리는 비논리적일 경우가 많다.

흔히 테러리즘을 언급할 때 ‘폭력’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마련이다. 이 두 개념이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때로는 두 개념을 혼동하는 실수가 따르기도 한다. 비록 모든 테러 행위가 폭력적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폭력 행위가 테러리즘은 아니다. 테러리즘에서 폭력이 하나의 수단이라면, 폭력에서 테러, 즉 공포는 하나의 결과다.

테러리즘이 갖는 폭력성은 사전의 계산에 의해 결정되며, 일정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그에 대한 효과를 노려 결정된다. 이 목적의 내용이 합리적이든 아니든 테러리즘을 통해 추구하는 목적이 달성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반적인 폭력이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두 개인이나 단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테러리즘은 언제나 셋 이상의 행위주체 사이에서 일어난다. 이는 테러를 행하는 테러리스트, 공격당하는 희생자 그리고 최종 목표 대상이라는 삼각축을 말한다. 테러리즘의 전략은 일정한 대상의 행동능력이나 저항능력을 마비시킴으로써 그 대상을 공포에 떨게 하고 이를 통해 억압 또는 복종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용되는 수단은 고통이나 죽음 자체라기보다 고통이나 죽음을 유발하는 광경이다. 이 전략의 합리성은 세번째 주체가 존재한다는 점, 즉 희생자와 목표 대상이 다르다는 점에 근거한다.

테러리즘의 또 다른 특징은 그 자체가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라는 사실이다. 테러리즘에서 폭력은 언제나 고정된 대상을 겨냥한 메시지다. 설사 희생자를 비롯한 대중의 일부가 그 내용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메시지는 항상 존재한다.

한편, 테러리즘의 역사와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역사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세기말 이래 테러리즘의 역사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해 왔다. 먼저 기술의 발전은 신문을 보다 넓은 지역에 빨리 보급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으며, 이어 삽화나 사진 싣는 것이 가능해짐으로써 테러 행위가 야기하는 파급을 확대했다.

TV의 발명과 뒤이어 1970년대 초부터 시작된 생방송 취재 그리고 지구촌을 잇는 네트워크의 등장은 테러리즘의 파급을 더욱 더 확대했다. 테러리스트나 미디어나 모두 각자 상호 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를 이용했다. 테러리스트에게 미디어는 자신들의 행위를 널리 알리는 최상의 수단이었으며, 미디어에 테러리즘의 보도는 시청률과 구독률을 끌어올리는 최상의 수단이었다. 양쪽의 논리는 모두 가능한한 최대한의 효과를 이끌어내는 데 초점이 모아졌다.

정보의 보편성과 신속성은 9·11 사태를 구성한 요소들이다. 2001년 9월11일 발생한 사건들은 실시간으로 중계되었기에 그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왜냐하면 10명의 암살이 비극으로 간주되는 것에 비해 3,000명이 일거에 사망하는 것은 오히려 추상적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세계화한 정보통신사회의 출현은 오늘날 테러리즘의 폭력이 과격화하는 현상을 주도했다. 이러한 사회는 테러리스트들에게 목표 대상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중계장치’들을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회는 테러리스트들이 야기하는 피해를 더욱 심화시킨다. 미디어를 통한 중계는 개인의 비극을 집단의 비극으로 승화시키며, 이를 통해 테러리즘에 효율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점에서 최소한 이해관계의 결합을 통한 미디어와 테러리스트간 공모(共謀)의 측면을 지적하는 것은 합당하다.

전쟁과 테러리즘의 차이

그렇지만 테러리즘의 논리적 구조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테러리즘이 폭력을 통한 위협 전략일 뿐이라면 이는 전쟁과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테러리즘은 무력을 맹목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사회에 전반적인 공포를 조장한다. 이러한 폭력은 뚜렷한 동기나 근거도 없이 자행됨으로써 모두를 끊임없이 위협한다.

모든 사람이 잠재적 희생자가 될 때 테러리즘을 통한 독단이 지배하게 된다. 테러리즘은 폭력의 대상으로 지목된 집단이 불안한 분위기에 놓여야만 효과적이라는 논리에 따라 맹목적인 방법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또한 공포감을 조성하는 데 필요한 불안정과 불확신을 퍼뜨리기 위해 폭력을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이렇게 조장된 공포는 결국 인간의 의지를 마비시키고 주도능력을 꺾어버림으로써 희생자로 지목된 사회의 분열을 도모한다. 이성과 의지가 마비된 개개인은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사회의 결속력은 떨어지며, 그 사회는 하나의 유순한 집단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는 폭력의 자의성에 기반한다.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시종일관 위협을 느끼기 위해서는 위험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야 하고 이치를 벗어난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희생자를 무차별하게 골라 무고한 인명을 살해하는 것은 테러리즘의 중심 지표가 된다.

정치적으로 상대가 약점이 있을때 효과 극대화

우리는 흔히 테러리즘이 실질적으로 잘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이는 진실일 수 있으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테러리즘의 효율성은 국가 간의 전쟁 모델에 근접했을 때 최대에 달한다.

또한 상대방이 군사적으로는 강하다고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약점이 있을 때 효과적이다. 어찌됐든 적이 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라도 테러리즘을 물리치겠다는 의지가 없어야 한다.

상대방이 지닌 물질적 수단의 강도가 어떻든 확고한 태도를 보일수록 테러리즘 전략은 효율성을 잃는다. 반면 과감한 태도를 보이기는 하지만 구성원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상대와 부닥쳤을 때, 정치적 효율의 측면에서 테러리즘의 불합리성은 절대적인 것이 된다.

1970~80년대에 서구에서 행해졌던 극좌파 또는 극우파의 테러리즘이나 68년을 전후해 정부 전복을 기도했던 테러리즘 등은 이제 멀게 느껴진다. 이런 류의 테러리즘은 이제 아예 사라졌거나 순전히 형법상의 폭력 정도로 퇴화했다.

‘기술혁명’통한 하이퍼 테러리즘 시대

img2R오늘날 테러리즘은 테러 행위의 폭력성과 외형의 측면에서 큰 상승곡선을 긋고 있다. 1993년 2월 폼페이 테러에서부터 2002년 10월의 발리 테러에 이르기까지, 희생자의 수가 일반적으로 100명을 상회하면서 일종의 대량파괴 경쟁의 성격을 보인다.

물론 9·11 테러는 이 점에서 아직 예외로 남아 있다. 과연 언제까지 그럴 것인지는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과거에 발생한 테러 중에도 지난 10년 간의 테러에 필적할 만한 사건들이 종종 있었다. 1925년 4월의 소피아 대성당 폭탄 테러에서는 150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88년 12월의 팬암 여객기 테러와 이듬해 8월의 UTA 여객기 테러 때는 각각 270명과 171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과거의 이러한 대량학살은 대부분 항공기의 공중 폭파에 의한 것이었는 데 반해 오늘날에는 지상 테러에서도 대량학살이 관행이 되어 가는 형편이다.

최근에는 테러 시도가 실패했을 경우에나 희생자가 소수에 그친다. 6명의 사망자와 1,000여 명의 부상자를 낸 1993년 2월의 뉴욕국제무역센터 테러에서는 건물 폭파라는 목적이 폭탄차량이라는 수단에 비해 무모한 것이었다. 12명의 사망자와 4,000명의 부상자를 기록한 도쿄(東京) 지하철의 옴교(敎) 테러에서는 사린 가스라는 무기를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망자가 그 정도에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는 ‘하이퍼 테러리즘’이라는 말을 쓸 정도가 되었다. 가능한 한 최대의 파괴를 야기하려는 의지는 일종의 ‘기술혁명’을 동반한다. 항공기를 미사일로 둔갑시키는가 하면 화학무기·세균무기·방사선무기 등 대량파괴무기를 개발하고, 자살테러단을 이용해 살상 능력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또한 테러 행위는 엄준한 계획과 조정을 요구하며, 항상 더욱 복잡한 시나리오의 치밀한 구상을 수반한다.

그러나 이러한 하이퍼 테러리즘의 효율성이 반드시 고도의 조직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알 카에다를 ‘스펙트럼’과 같은 범죄 조직의 이미지로 소개한다. 사실상 적군은 덜 조직화되어 있을수록 더 추적하기 어렵고 더 큰 효율을 갖는다. 국제 테러 조직 알 카에다는 느슨하게 연결된 여러 개의 소수집단으로 구성되며, 중앙 지도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전적으로 인터넷의 산물이며, 일종의 미세 집단간 비공식 연합체다. 휴대전화와 이메일, 인터넷 사이트 등은 이들에게 놀랄 만한 동원력을 부여했다.

냉전 종식 이후 테러리즘의 사유화

오늘날의 폭력의 상승 국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테러리즘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무한대의 폭력성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전쟁 상황에서는 폭력이 일정 수준에 머무르게 마련이다.

전략상의 계산을 통해서나 교전국의 정책을 통해 또는 당사국들이 국제사회에 속해 있다는 점이나 그들이 전쟁의 폭력을 규제하기 위해 정한 규정에 의해 제한된다. 그러나 테러리스트들은 이 중 어떤 규칙도 존중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국가 간의 전쟁에서와 달리 테러리스트들과 그들의 적 사이에는 어떠한 사회적 관계도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테러리즘은 보통 극단의 논리를 지닌다. 전부가 아니면 전무, ‘우리’와 ‘그들’이라는 두 가지 극단 논리는 모든 타협을 사전에 배제한다. 이 논리는 또한 민간인과 전투원의 구별 그리고 수단을 선택할 때의 신중함을 배제한다. 그러나 과거 오랫동안 실제 전쟁이 전쟁의 개념과 달랐다면, 마찬가지로 테러리즘의 실제는 테러리즘의 개념과 달랐다.

1950년대에서 70년대까지의 테러리즘의 역사는 크게 보아 냉전의 역사의 한 장(章)에 지나지 않았다. 전멸의 위협을 무릅쓰고 대적할 수밖에 없었던 두 초강대국은 주변 무대에서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었다. 옛소련은 미국이라는 적을 직접적인 보복에 노출되지 않은 채 공격하기 위해 테러리즘이라는 무기를 이용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옛소련은 정치적, 전략적으로 쇠약해지기 시작했으나 이러한 시스템에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단지 그때까지 소련의 정치적 속국이었던 시리아·리비아·이란 등의 나라는 해방을 맞으면서 이번에는 테러리즘의 후원국이 되었다.

1989년, 냉전의 종말은 테러리즘에 결정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의 세계가 두 개의 블록으로 명료하게 나뉘었던 반면 이 때부터는 무질서의 상태가 도래했다. 테러리즘은 국가 단위의 모든 감독에서 벗어나면서 일종의 ‘사유화’의 길을 걸었다. 알 카에다가 증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폭력의 과격화는 무엇보다도 테러리즘의 주도권이 개인의 손에 넘어간 결과다. 왜냐하면 후원의 중단은 동시에 국가 전략을 특징짓는 합리성의 종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상승 요인은 20세기 대부분의 테러리즘에 영향을 미쳤던 세속적 이데올로기가 붕괴된 것에 기인한다. 이후 빈 자리는 종교주의를 가장한 여러 이데올로기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이념들은 이전에 레닌주의에 뿌리를 두던 이성적 기반이 없어진 이데올로기들이다.

종교를 방패로 내세우는 이들에게 폭력은 도덕과 정치적 합리성이 강요하는 금기들에 대한 존중을 뛰어넘는 신성한 계시다. ‘세속적인’ 테러리스트와 달리 ‘종교적’ 테러리스트는 설득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자신 외에는 협상 상대자가 없고, 자신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사람들은 모두 변절자나 이교도이며, 따라서 잠재적 표적으로 간주한다.

오늘날 우리는 이슬람 테러리즘과 대치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정치의 기초가 되는 종교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규율에 따르는 정치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 테러리즘이 이슬람이라는 종교와 전적으로 독립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슬람의 폭력성과 이슬람이라는 종교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이슬람 테러리즘에서 폭력을 낳는 주요 요인은 종교적이기보다 역사적 측면이 강하다. 이슬람은 종교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역사다. 그것도 장기간에 걸쳐 실패의 낙인이 찍힌 불행한 역사다. 아랍 문명의 화려함은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해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18세기말 이미 좋지 않은 상황을 맞았던 오스만 제국은 19세기에 걸쳐 점차 소멸해 가다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최후의 일격을 받았다. 이후 2차 세계대전까지는 식민주의 시대였으나, 1945년 종전 이후 독립국가들의 출현도 르네상스의 신호는 아니었다.

민족주의·범아랍주의·사회주의 등이 도입되기는 했으나 모두 정착에 실패했다. 이러한 경험이 이슬람 신도들의 눈에는 서구에서 차용, 도입되고 그들에 의해 강요된 모델들로 인해 신의 신망을 잃고 있는 증거로 보였다. 1967년과 73년에 걸쳐 이스라엘에 당한 두 차례의 치욕적 패배 역시 같은 증거로 간주되었다. 원리주의는 최소한 두 세기 이상의 전례 없는 역사적 패배에 대한 이슬람의 자각을 자양분으로 삼아 성장했다.

20여 년 전부터 이슬람사회의 모습을 바꾸어 놓은 ‘이슬람 회귀운동’은 근대화 과정에서 야기된 단절과 불균형에 대한 응답이다. 이는 이슬람 전통에 대한 집단적 재적응을 통해 이루어지나, 사실 이 전통은 상당부분 새로이 고안된 것이다. 이 운동은 이슬람 세계 전체로 파급되었으나 그 결과는 지역마다 상이했고, 지속성은 보장되지 않았다. 이 운동의 필연적인 쇠퇴를 알리는 여러 가지 징조가 나타났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슬람 세계의 일치성에 대해 흔히 과대평가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상은 이슬람 문화 내의 국가들 사이에 연대감이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 지역의 국민들 사이에도 공동 신앙의 이름 하에 더 강한 연대감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1990년 걸프전 당시 쿠웨이트 국민들은 이라크인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또한 테러리스트들이 기대한 ‘문명의 전쟁’은 9·11 사태 이후에도, 이어진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침공과 이라크 공격 이후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슬람 국가들이 총체적인 문제에 부닥쳤다면, 이 문제는 상황의 다양성에 따라 나라마다 별도의 형태로 감싸여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문제는 정치와 종교와의 상관관계에 기인한다. 그런데 모순은 정치적 근대성이 정치와 종교 간의 밀접한 결합과는 반대 되는 모델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서구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근대성이 정치와 종교의 분리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서구의 정치 모델은 공격받고 저항받을지언정 그에 맞서는 라이벌을 만나지 못했다. 이슬람 원리주의는 언젠가 소멸할 것이며, 7세기 이슬람으로의 회귀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1979년 아프칸스탄의 경험 공유

오늘날의 테러는 구체적인 기원을 가졌다. 그 곳은 바로 1979년 이후 소련의 침략에 맞서 싸우기 위해 수천 명의 이슬람 교도가 몰려든 아프카니스탄이다. 이후 많은 이들은 본토로 돌아갔으나, 그렇지 않은 이들은 알 카에다에 속하게 되거나 아프카니스탄 또는 파키스탄에 망명하거나 세계 각처에서 다시 행동을 개시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출발점에서 공통된 종교를 발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행동의 경험과 희생이나 자살까지 전적으로 맹세했던 경험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의 테러리즘은 그 주동자나 동기의 측면에서 모두 현대적으로 보인다. 최근의 테러 행위들은 상당한 규모의 작전을 위해서는 폭력의 취향이나 증오심 같은 감정들이 이런저런 추상적 요구들에 비해 훨씬 강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9·11 테러에서 테러리스트들의 인내심, 잔혹함, 비행기와 시간을 선별한 세심함 등은 분명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한편 현대의 테러리스트들의 행동 속에서는 혁명적 성격을 찾을 수 있다. ‘행동을 위한 행동’이라는 극단적 투신은 혁명 정신에서 존재하는 주관적 행동과 동인(動因) 간의 관계와 동일한 관계를 드러내 보인다. 여기서 더 나아가 테러리스트들은 자기 희생을 통해 ‘순교’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폭력을 신앙의 행위로 승화시키는 이러한 종교적 근거는 결국 과거 혁명의 지지자들을 죽음으로 몰았던 영웅주의와 같은 성격을 띤다.

이 점은 현재의 이슬람 테러리즘이 과거 서구사회에서의 혁명 정신을 이슬람 세계에서 답습한다는 것이라는 점을 증명한다. 이는 마찬가지로 근대성이 세계 도처에 배어 들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2003년 12월호 | 입력날짜 2003.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