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 사태의 이면 석유패권 이시우 2005/02/27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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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량의 월드워치] 그루지야 사태의 이면 석유패권 둘러싼 美·러 에너지 전쟁

정우량 월간중앙(chuwr@joongang.co.kr)

그루지야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반정부 지지자들이 지난해 11월23일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의 사임을 반기면서

지난 1월4일 실시된 그루지야 대통령 선거에서 예상대로 미하일 사카슈빌리가 당선했다. 36세의 청년 사카슈빌리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뉴욕의 한 법률회사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경력을 가진 친미 성향의 정치인이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그루지야 ‘장미혁명’의 주역으로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섰다. 2000년 셰바르드나제가 법무장관으로 발탁했으나, 미국 생활에서 얻은 서구적 사고방식과 강력한 개혁 마인드로 정부 각료들의 부정부패를 잇따라 폭로해 셰바르드나제와 사이가 벌어지자 2002년 장관직에서 물러나 ‘국민행동당’을 창당했다.

셰바르드나제는 지난해 11월2일 실시된 총선의 부정 시비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시위대가 국회의사당에까지 쳐들어오자 한때 무력 진압을 고려했다. 그러나 그는 11월23일 전격 사임이라는 결단을 내림으로써 사태를 평화롭게 수습했다. 군의 협조를 얻는 데 실패한 데다 강경진압을 시도할 경우 유혈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그의 결단은 조국을 위한 마지막 봉사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셰바르드나제는 독일 정부가 과거 독일 통일에 기여한 그의 공로를 잊지 않고 망명처 제공 의사를 밝혔지만 이를 거절하고 결코 그루지야를 떠나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마지막으로 거물 정치가다운 면모를 보여 줬다.

옛소련 외무장관으로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추진한 ‘신사고 외교’의 실무를 맡아 동서 냉전을 종식시키는 데 역사적 공로를 세운 셰바르드나제는 소련이 해체된 후 1992년 고국 그루지야로 돌아와 최고회의 의장에 취임해 내전 직전 상황에까지 이르렀던 민족 분규를 수습함으로써 국민 영웅이 됐다.

셰바르드나제는 이같은 국민적 신망을 바탕으로 1995년 대통령에 당선했다. 1995, 98년 두 번의 암살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자신의 국제적 명성을 이용해 미국과 유럽연합(EU)으로부터 자본을 유치하는 데 성공하고, 내정 개혁을 과감히 추진해 ‘개혁 전도사’로서 이름을 날렸다.

그후 셰바르드나제는 독재자의 길을 갔다. 2000년 대선 때는 경쟁 후보를 사퇴시키기까지 했다. 또 조카와 사위 등 친인척과 측근들에게 각종 이권과 특혜를 제공해 대통령궁은 ‘부패의 온상’이 됐다. 그 결과 인구 550만명의 소국이지만 과거 ‘소련의 과일 바구니’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경제적으로 안정됐던 그루지야는 옛소련 국가들로 구성된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들 가운데 가장 낙후한 국가로 전락했다.

현재 그루지야의 국내총생산(GDP)은 1990년의 3분의 2 수준이다. 정치 불안도 잇따라 2001년 5월에는 수도 트빌리시를 방어하는 병사 1,000여 명이 낮은 임금에 불만을 품고 내무부 청사를 점거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미국에 의해 兎死拘烹당한 셰바르드나제

이번에 셰바르드나제의 몰락에 결정적 역할을 한 나라는 미국이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셰바르드나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당신의 시대는 끝났다”면서 노골적으로 퇴진을 요구했다고 한다. 셰바르드나제로서는 미국의 이 같은 태도가 청천벽력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셰바르드나제는 취임 이후 일관되게 친미 노선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카스피해에서 생산되는 석유를 수송하는 새로운 파이프라인이 그루지야를 통과하도록 허용했을 뿐 아니라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기지를 제공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의사까지 밝혔다. ?대가로 미국은 그 동안 10억달러 상당의 경제 원조를 그루지야에 제공했다.

셰바르드나제 축출 작전의 주모자로 그루지야 주재 미국 대사 리처드 마일즈가 지목받고 있다. 카프카스 지역과 중앙아시아 전문가인 마일즈는 2002년 그루지야 주재 대사로 부임하기 전 아제르바이잔 주재 대사, 유고 주재 공사로 근무했다. 유고 주재 시절 코소보 사태가 발생하자 NATO의 유고 공습 계획을 입안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이 권좌에서 축출당할 때 마일즈는 유고에 있었다. 당시 상황이 이번 셰바르드나제의 축출 상황과 매우 흡사해 마일즈가 이번에도 실력을 발휘했을 것으로 짐작하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그루지야는 동서로 발칸 반도에서 중앙아시아, 남으로 러시아에서 중동으로 가는 십자로에 위치한다. 미국의 유라시아 패권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나라다. 그루지야를 확보하면 북으로 러시아, 남으로 이란과 인도를 견제할 수 있다.

더욱이 중동·서부 시베리아에 이어 세계 3위의 석유 생산지역으로 등장한 카스피해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그루지야가 필요하다. 미국은 민심이 이미 떠난 셰바르드나제 정권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다. 더욱 신뢰할 수 있는 친미 정권을 세우는 한편 친러시아 세력이 집권할 가능성을 제거한 것이다. 다시 말해 셰바르드나제는 미국에 의해 토사구팽(兎死狗烹)당한 것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셰바르드나제 사임 직후 임시 대통령을 맡은 니노 부르자나제에게 전화로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 백악관으로 전화하라. 우리는 즉각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도 카프카스 지역과 중앙아시아 순방 길에 당초 예정에 없던 그루지야를 방문해 새 정부 지도자들과 만났다.

럼즈펠드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에서 그루지야가 기여한 공로를 치하하면서 “그루지야는 미국의 굳건한 친구”라고 치켜세웠다. 럼즈펠드는 러시아에 대해 1999년 이스탄불 협정에서 약속한 대로 그루지야에서 러시아군을 즉각 철수하라고 촉구함으로써 미국의 깊은 속내를 드러내 보였다.

그러나 러시아가 그루지야 사태를 좌시할 리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고르 이바노프 외무장관을 보내 사태를 중재하도록 했다. 푸틴 입장에서 셰바르드나제의 몰락은 희소식이다. 그 이유는 셰바르드나제가 그 동안 친미 노선을 취했을 뿐 아니라 러시아의 가장 골치 아픈 존재인 체첸 반군을 비호해 왔기 때문이다.

체첸 반군은 그루지야 판키시 계곡에 기지를 만들고 러시아를 집요하게 괴롭히고 있다. 러시아군은 체첸 반군을 추적하기 위해 판키시 계곡에 대한 군사작전을 원했지만 셰바르드나제는 협조하지 않았다. 또 9·11 테러 후 미국과 군사 협력 관계를 맺고, NATO 가입을 추진한 것도 러시아의 비위를 건드렸다.

그루지야 새 정부가 미국에 기울면 기울수록 러시아는 압력을 강화할 것이다. 그루지야는 인구의 3할이 비(非)그루지야인이다. 흑해 연안의 아브하지아는 1992년 그루지야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하고 아브하지아 공화국을 세웠으며, 이미 두 차례나 무력 충돌을 겪었다. 북부 지역의 남(南)오세티아 역시 1989년 자치주에서 자치공화국으로 승격을 요구하면서 정부군과 충돌했으며, 92년 이래 사실상 그루지야와 분리된 상태다.

러시아는 아브하지아와 남오세티아를 공공연하게 지지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루지야가 러시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할 수도 있다.

그루지야 아자리아 주(州)에 주둔중인 러시아군 3,000명도 철수하지 않을 방침이다. 아슬란 아바시제 아자리아 주지사는 셰바르드나제의 사임을 무효라고 선언하고, 새 정부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아자리아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아자리아 주민들의 러시아 방문 비자에 대한 규제를 크게 완화했다. 그루지야는 경제적으로 러시아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루지야인들은 러시아를 방문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아자리아 주민들은 러시아에 도착하는 즉시 공항에서 비자를 내주는 데 반해 다른 그루지야인들은 수도 트빌리시 주재 러시아 대사관에서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겨우 비자를 얻을 수 있다.

“그루지야에서 신(新)냉전이 시작됐다”

img2R지난해 12월4일자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아는 ‘그루지야에서 신(新)냉전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그루지야 사태의 본질이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싸움임을 정확히 지적한 것이다. 19세기에는 이 지역에서 영국과 러시아가 인도양으로 나가는 길을 놓고 충돌했다.

소설 ‘정글 북’의 저자로 열렬한 제국주의자였던 영국인 작가 러드야드 키플링은 양자의 충돌을 가리켜 ‘그레이트 게임’이라고 표현했다. 유라시아 한복판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벌이는 세력芼昰?학자들은 키플링의 표현을 빌려 21세기 ‘뉴 그레이트 게임’이라고 부른다. 뉴 그레이트 게임은 유라시아 패권, 특히 석유·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 쟁탈전이다.

미국의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거대한 체스 판’이라는 책에서 유라시아를 미국이 ‘세계 1등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투쟁이 벌어지는 거대한 체스 판에 비유하면서, 미국이 세계 1등적 지위를 얼마나 오래, 얼마나 효과적으로 유지하느냐 여부는 유라시아에서 그 같은 지위를 얼마나 오래, 얼마나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단언했다.

세계 인구의 4분의 3이 살고, 세계 총생산의 60%가 이뤄지며, 세계 에너지 자원의 75%가 존재하는 유라시아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地政學的) 목표라고 브레진스키는 지적했다.

1991년 소련 해체로 유라시아 한복판에 거대한 블랙 홀이 형성됐다. 브레진스키는 이를 ‘유라시아의 발칸’이라고 부른다. 러시아 국경은 19세기로 후퇴했다. 러시아에 카프카스 지역의 상실은 새롭게 부상하는 터키의 영향력에 대한 공포, 중앙아시아의 상실은 이슬람 세력의 잠재적 위협에 대한 우려를 안겨 줬다.

특히 카스피해와 그 연안 지역 대부분을 잃은 것은 러시아로서는 석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지하자원에서 엄청난 손실을 의미한다. 러시아는 과거 자신의 영토였던 이 지역에 복귀하기 위해 필사적이다. 한편 미국은 소련 해체로 비로소 접근이 가능해진 이 지역에 터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라시아의 발칸은 세계 불안정의 핵심 지역이다. 아르메니아·그루지야·아제르바이잔의 카프카스 남부 3개국과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아프가니스탄의 중앙아시아 6개국이 복잡한 ‘인종의 모자이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인종적·종교적으로 강한 정체성을 내세우고 있어 언제든 서로 충돌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처럼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면 언제든 주변 강대국들­러시아·이란·터키·인도·중국 등 주변국들과 새롭게 뛰어든 유일 초강대국 미국까지-이 달려들어 그들의 제국주의적 야심을 채울 위험성이 크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바로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접근의 문제’다. 미국 에너지부는 1993∼2015년 세계 에너지 수요가 5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따라서 새로운 에너지 자원의 탐사·개발이 절대 필요하다.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에는 엄청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

미국 에너지부가 발표한 공식 자료에 따르면 확인 매장량(90% 가능성) 170억∼330억배럴, 가능 매장량(50% 가능성) 2,330억배럴의 석유가 묻혀 있다. 또 천연가스 매장량은 6조6,000억㎥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문제는 누가 먼저 접근해, 탐사·개발을 주도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1973년 제1차 석유 위기 이후 유럽 국가들은 대체에너지 개발 등 노력으로 석유 소비를 20% 가량 줄였다. 반면 세계 1위의 석유 수입국인 미국의 석유 소비는 오히려 급속도로 증가했다.

미국의 수입 석유 의존도는 1980년 37%에서 현재 55%로 높아졌고, 2025년 68%까지 이를 전망이다. 이를 충족시키자면 사우디아라비아의 1일 생산량에 해당하는 하루 900만배럴의 석유가 추가로 필요하다. 천연 가스 소비량도 최근 10년 동안 35%나 늘어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는 형편이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카스피해와 그 주변 지역을 확보해야 한다.

“지구상 어떤 지역도 카스피해만큼 미국에 중요한 곳은 없다”고 평소 말해온 리처드 체니 미국 부통령은 자신의 책임 하에 작성한 2001년 5월 ‘국가 에너지 정책 보고서’에서 미국은 콜롬비아·베네수엘라·이라크와 함께 카스피해의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접근·통제권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2000년 6월 미국 육군대학 전략연구소가 펴낸 ‘남부 카프카스와 중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군사 개입’이라는 보고서도 카스피해를 잠재적으로 불안정한 걸프 지역과 아라비아 반도를 대신해 미국이 앞으로 필요로 하는 에너지 자원을 조달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지역으로 꼽았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송하려면 파이프라인이 필요하다. 현재 카스피해 일대에 존재하는 파이프라인은 북(北) 루트와 서(西) 루트 2개 루트다. 2001년 카자흐스탄의 텡기즈 유전에서 CPC 파이프라인이 완성돼 북 루트에 접속됐다. 건설중이거나 계획중인 파이프라인은 남서 루트(BTC 루트 또는 터키 루트라고 부른다), 동 루트, 남 루트, 트랜스 카스피안 라인, 블루 스트림 라인, 아프가니스탄 루트 등이다.

앞으로 중국으로 가는 파이프라인까지 건설되면 최대 13개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중국은 현재 국가적 대사업으로 추진중인 서부 대개발을 위해 카스피해의 석유가 반壤?있어야 한다.

미국은 기존 파이프라인과 별도로 새로 2개를 건설 또는 계획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인 BTC 루트는 바쿠(아제르바이잔)-트빌리시(그루지야)-제이한(터키)을 연결하며, 세계 최장인 길이 1,760㎞다. BTC 루트는 1999년 11월 계약을 체결해 2005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총공사비로 미화 37억달러가 투입되며, 완공되면 하루 100만배럴의 원유를 카스피해에서 지중해까지 수송할 수 있다. BTC 루트가 완공되면 아제르바이잔은 앞으로 20년간 290억달러의 석유 판매 수익을 올리며, 그루지야와 터키는 통과료 수입으로 각각 5억달러와 15억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전망된다.

21세기 뉴 그레이트 게임의 시작

또 하나는 아프가니스탄 루트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천연가스를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양으로 실어 나르는 길이 1,400㎞의 파이프라인이다. 2002년 12월 투르크메니스탄·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3국이 정식으로 합의했으며, 2004년 9월 건설에 착수한다. 총공사비로 미화 25억달러가 투입될 예정이다.

아프가니스탄 루트는 원래 1997년 미국 석유회사 유노칼이 계획한 것으로, 98년 아프리카 케냐·탄자니아 미국 대사관 폭파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미사일 공격함으로써 중단됐다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고 친미 정권을 세운 뒤 구체성을 띠기 시작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새로 건설될 2개 루트가 러시아와 이란을 거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는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를 통과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정치적 고려에서 나온 것이다. 러시아는 새 파이프라인이 건설되면 자신이 보유한 기존의 파이프라인 사용이 크게 줄어들 것을 우려한다.

러시아는 그 동안 BTC 루트 건설에 반대해 왔으나, 9·11 테러 후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과 협조하면서 BTC 루트를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 전환했다. 러시아 최대 석유 회사인 루크 오일은 BTC 루트에 자본 참여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카프카스와 중앙아시아를 여전히 자신의 영향권으로 생각하며, 이 지역 국가들을 ‘인접 외국’(near abroad)으로 인식한다. 미국이 중남미를 자신의 뒷마당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러시아 입장에서 자신의 뒷마당에 미국이 들어와 활개치는 모습이 곱게 보일 리 없다. 그러나 소련이 해체되고 옛소련 공화국들이 독립국가로 탈바꿈한 마당에 과거와 같은 강압적 방법으로는 더 이상 그들을 붙잡아둘 수 없다. 그들을 러시아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더욱 세련된 이데올로기와 대의명분이 필요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보리스 옐친 정권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냈고 현재 국영 전력회사인 통합에너지시스템(UES) 사장인 아나톨리 추바이스가 지난해 9월 러시아 일간 네자비시마야 가제타에 기고한 글을 통해 흥미 있는 제안을 했다. 추바이스는 러시아가 앞으로 ‘리버럴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리버럴 제국’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바이스는 또 러시아가 CIS의 ‘자연스러운 리더’이며, CIS를 ‘유라시아연합’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유라시아연합은 제정 러시아 말기 니콜라이 트루베츠코이 대공(大公)이 주창한 ‘범(汎)유라시아 민족주의’와 유사한 것으로, 러시아 민족주의 색채가 강하다.

러시아의 리버럴 제국은 미국의 유라시아 패권과 필연적으로 부닥칠 것이다. 러시아는 범유라시아 민족주의를 외치면서 카프카스와 중앙아시아 복귀를 노린다. 미국은 세계 1등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유라시아가 필요하다.

유라시아를 지배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어떤 단일국가 또는 국가 연합이 유라시아에서 미국을 축출하거나 미국의 역할을 심각하게 축소시키는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21세기 뉴 그레이트 게임은 시작됐다. 그루지야 정변(政變)은 그 서막(序幕)으로 보면 될 것이다.

▼카스피해 주변 파이프 라인

2004년 02월호 | 입력날짜 2004.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