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대체할 ‘대역폭’-텔레코즘 이시우 2005/02/27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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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리뷰] 컴퓨터 대체할 ‘대역폭’의 힘

외부기고자 공병호 공병호경제연구소장

‘마이크로코즘에서 텔레코즘(telecosm)까지.’ 무려 460쪽이나 되는 조지 길더의 ‘텔레코즘’을 압축하면 이렇게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라면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선뜻 구입할 것이다.

다만 이 불륨감 있는 책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지적 에너지를 투입할 각오를 해야 한다. 중간 부분은 마이크로코즘의 종언과 텔레코즘의 출현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기술 그리고 인물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현명한 글 읽기는 우선 처음의 몇 장과 마지막 한두 장 정도를 읽고 난 다음에 중간 부분을 공략하는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조지 길더는 ‘컴퓨터시대는 끝났다. 이제 그 자리에 텔레코즘의 세상이 있다’고 단언한다.

‘지난 30년 동안 세계적인 흐름을 형성했던 PC혁명은 이제 생명력을 잃고 말았다. 이 실리콘 물결은 사람들이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에 너무도 빨리 지나갔기 때문에, 전문가들마저 그 흐름의 상당 부분을 놓쳤고, 게다가 이미 망령이 든 실리콘 물결을 여전히 역동적인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독자 여러분 역시 그러할지 모른다. PC혁명이 너무 빨리 끝나버린 탓에 러슈무어 산에나 새겨져야 할 PC 시대의 거인들이 여전히 우리 주위를 배회하며 중얼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왜, 컴퓨터와 마이크로칩이 주도하는 마이크로코즘이 종말을 맞게 되었을까. 그것은 컴퓨터시대가 그 역할을 다했기 때문이 아니라, 마이크로코즘 자체가 새로운 시대를 잉태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는 마이크로코즘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에서 가져온 변화보다 휠씬 근본적이고 철저한 변화를 가져올 기술을 낳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텔레코즘’이다.

텔레코즘은 새로운 통신 기술이 만들어 내는 세계다. 이 세계는 저렴한 가격과 엄청난 성능을 가진 컴퓨터에 의해 뒷받침된다. 컴퓨터가 생활화하면서 우리는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러나 컴퓨터의 성능이 좋아지고, 성능 대비 가격이 현저하게 떨어짐과 동시에 우리는 인터넷 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은 이제 우리에게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저자는 그것이 우리 앞에 펼쳐질 세상의 맛보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인간은 점점 최소한의 비용으로 거의 무한대 용량의 정보를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흔히 업계에서 통신 능력을 이야기할 때 많이 사용하는 용어가 ‘대역폭’(帶域幅, bandwidth)이다. 조지 길더는 텔레코즘의 세계에서는 이것이 기술 진보의 동력으로서 컴퓨터의 힘을 대체할 것으로 내다본다.

‘무어의 법칙이 컴퓨터 처리 능력의 진보를 예측하는 데 적용되었듯이, 텔레코즘은 파동에 실린 대역폭이 거의 무한히 개발될 것을 전망함으로써 통신 영역에서 같은 구실을 한다. 곧, 기술 진보를 예측하고 성장 방향을 설정하며, 수익을 얻기 위해 추진할 사업을 결정하는 지침이 된다.’

유·무선으로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정보가 소통되는 시대를 그려 보라. 높은 용량의 동화상조차 싼 가격에 재빠르게 소통되는 시대를 생각해 보라. 레이저 기술은 빛 한 가닥에 가용 주파수 수천 개를 담을 수 있다. 때문에 레이저 기술을 이용하면 구리선의 수천 분의 1밖에 안 되는 지름의 거미줄 같은 광섬유로 구리선이 실어 나를 수 있는 것보다 수백만 배 이상의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레이저 기술, 상위 스펙트럼 통신 기술 그리고 무선통신망 기술들이 한데 어우러져 텔레코즘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한 시대가 열리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마이크로코즘 시대에 풍부한 자원은 트랜지스터·전력 그리고 실리콘이었다. 그런데 텔레코즘 시대가 열리면 풍부한 자원은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대역폭이 될 것이다.

반면 마이크로코즘 시대에 풍부했던 자원들은 상대적으로 부족해진다. 상대적 부족 현상은 상대가격의 변화를 낳을 것이다. 상대가격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자원 배분에서 큰 변화가 올 것이다. 여기에 엄청난 비즈니스 기회와 위기가 몰아닥칠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로버트 러키라는 인물은 “한계가 없는 섬유광학의 대역폭 덕분에 이제 사정은 변했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단순한 처리 기능조차 거치지 않기 위해 신호를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 전송하게 될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것은 광섬유가 교환기와 대기(air), 마이크로파 그리고 컴퓨터 화면과 정지궤도 통신위성조차 대체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을 뜻한다. 조지 길더의 전망을 확장하면, 이런 변화가 몰고 올 파급효과가 비즈니스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새 천년 들어 마이크로코즘 시대의 대표적 풍요 자원들은 모두 상대적으로 부족해지고 더욱 비싼 자원이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정보 경제의 전체 구조를 전면적으로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모든 전자 시스템과 기반 구조는 새로이 풍족해진 자원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거듭나야 한다. 인터넷 정보 소통량이 늘어나는 속도를 측정해 보면 대역폭의 가격은 하락하고, 대역폭의 가용 용량은 무어의 법칙보다 몇 배나 더 높은 비율로 커지고 있다. 대역폭의 용량은 마이크로코즘의 18개월 주기보다 적어도 네 배는 높은 비율로 증가한다.’

우리를 서로 연결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지금보다 최소한 약 100만배 이상 커지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어떤 일들이 벌어지겠는가. 높은 영상 정보의 소통량과 고해상도 화상회의가 주도하는 ‘범세계적 시각경제’(golbal foveal economy)가 대두할 것이다. 그것이 지식근로자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조지 길더의 미래 전망이 결코 먼 나라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가시화하기 시작한 세상을 한 발 앞서 체계화해 들려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이야기처럼 ‘가내기업’들이 여기 저기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세상을 생각해 보라. 시간과 재능을 낭비하는 계층 구조에서 풀려난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더욱 효과적으로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것이 사회의 또 다른 흐름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저자의 안목과 통찰력이 실현되느냐 여부는 결국 시간 문제이지, 실현 가능성의 문제는 아니다.

2004년 03월호 | 입력날짜 2004.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