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키운것은 키신저와 럼즈펠드 이시우 2005/02/27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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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화] 미 정부 기밀서류로 본 미국후세인 유착
“후세인을 키운 것은 키신저와 럼즈펠드였다”
외부기고자 해설·김재명 분쟁지역전문기자(kimsphoto@yahoo.com)
최근 비밀해제돼 공개된 이라크 관련 기밀 서류 가운데 하나인 <키신저 국무와 하마디 이라크 외무의 대화
■ “후세인은 냉혹하지만 지적이고 실용적 인물”
■ 키신저, “이스라엘은 나를 장관 자리에서 내치려고 한다”
■ 키신저, 이라크 외무차관에게 “미국의 이라크정책 걱정 말라”
■ 후세인과 아지즈 외무, 둘 다 권총 차고 럼즈펠드 만나
■ 후세인, 레이건 친서 받고 희희낙락
■ 이라크 송유관 건설 노린 벡텔 그룹의 로비
■ 럼즈펠드에게 보낸 슐츠의 지침 “미국의 이라크 지지 강조하라”
2003년 3·20 이라크 침공으로 미국은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지난 1970년대와 80년대 미국은 이라크와 관계정상화에 노력했고, 이 과정에서 후세인의 권력 강화를 도왔다. 특히 호메이니 혁명으로 1979년 이란의 친미 왕조가 무너진 뒤 미국은 이라크를 일종의 완충지대로 삼아 이란 이슬람 혁명이 미국의 중동 이해관계(석유 공급선의 안정과 이스라엘 안보)에 끼치는 위협을 막으려고 했다.
미국은 이란·이라크전쟁(1980~88) 초기에는 대외적으로 중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라크가 이란에 밀리기 시작하자 페르시아만 일대의 미국 석유이권을 보호하고 이란을 견제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레이건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1983년 11월26일 ‘국가안보 결정지침’(NSDD, National Security Decision Directive) 114문건으로 이란·이라크전쟁과 관련한 미국의 중동정책을 새로 다듬었다.
그 주요 내용은 ▷미국의 이권이 걸린 중동 석유지대를 지키기 위한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고 ▷페르시아만에서의 미군 작전 능력을 높이는 조치를 취하며 ▷미 국무와 국방 그리고 합참의장이 함께 걸프만 일대의 긴장이 높아가는 데 맞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1970년대 포드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도널드 럼즈펠드(당시 다국적 제약회사 Searle 회장, 현 미 국방장관)가 레이건 대통령의 특사로 이라크에 파견돼 사담 후세인과 회담을 한 것도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이권을 지키기 위한 포석이었다.
1983년 12월20일 럼즈펠드는 이라크 바그다드 대통령궁에서 후세인을 만나 악수를 했다. 두 사람은 90분 동안에 걸쳐 우호적 분위기 속에 밀담을 나누었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럼즈펠드에게 ‘미국은 이란의 승리를 막기 위해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점을 후세인에게 분명히 밝히라는 지침을 내리고 있었다. 후세인을 만났을 때 럼즈펠드는 이라크가 이란군에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데 대해 전혀 비난하지 않았다.
럼즈펠드의 이라크 2차 방문은 3개월 뒤인 다음해 3월에 이뤄졌고, 이 때 이라크 외무장관 타리크 아지즈를 만났다. 바그다드로 향하는 럼즈펠드에게 당시 국무장관 슐츠는 비밀 전문을 보내 ‘미국의 이라크 지지를 강조하라’는 지침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위와 같은 사실들은 미 조지워싱턴대 부설 기구인 국가안보기록보존소가 최근 비밀해제된 미국 정부의 문서들을 내놓음으로써 밝혀졌다. 이 기밀문서들은 1970년대 포드 행정부 시절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재임 1973~77년)가 그의 고위 보좌관들과 나눈 대화록, 키신저 국무와 이라크 외무차관의 회담 기록, 런던 주재 미 대사관이 국무부에 보낸 비밀 전문, 레이건 특사 럼즈펠드에게 보낸 슐츠 미 국무의 훈령 등이다. 이들 문건은 19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중반에 걸쳐 사담 후세인과 유착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비롯한 미·이라크 양국 관계의 비화들을 전하고 있다.
2차에 걸친 럼즈펠드의 바榴姆?방문이 이뤄졌을 무렵, 이라크는 국토 면적에서나 인구에서 대국인 이란군의 공세에 밀려 마즈눈 유전 지대를 빼앗기는 등 고전하고 있었다. 미국은 군사 정보와 물자를 비롯해 물심양면으로 후세인 정권을 지원했다. 미 백악관과 국무부는 수출입은행을 비롯한 국제금융기관들에 압력을 가해 이라크의 전쟁 비용을 대주도록 했다.
1982년 미 국무부는 국제 테러리즘 지원 국가 명단에서 이라크를 뺐다. 럼즈펠드 방문이 있은 지 1년도 못 돼 미·이라크는 닫혔던 외교관계를 텄다.(1984년11월) 당시 이라크는 이란·이라크전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함으로써 국제법을 잇따라 어기고 있었다.
미국은 형식적인 비난 성명을 발표했을 뿐, 이라크 지도자들에게는 후세인 정권 지지를 분명히 거듭 밝혔다. 이는 2003년 3·20 이라크 침공 때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를 침공 명분의 하나로 삼았던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1970년대 포드 행정부, 80년대 레이건 행정부로 이어온 미 공화당 정권의 대이라크 유화정책은 시니어 부시 행정부(1988~92)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미국의 대중동정책에 비판적 시각에서 본다면, 미국의 이라크 유화정책이 아랍권의 맹주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사담 후세인의 야심을 키워 주었고, 급기야 후세인으로 하여금 ‘설마 미국이 군사개입하랴’며 1991년 쿠웨이트를 침공하는 오판을 낳도록 만들었다는 비판이 가능해진다. 문제의 기밀 서류들이 지닌 주요 내용을 살펴본다.
[기밀서류1] 국무부 고위 간부 회의록 (1975년 4월28일)
“후세인은 냉혹하지만 지적이고 실용적인 인물”
img2R포드 행정부 시절인 1975년 헨리 키신저 국무, 중근동 남아시아 담당 차관 앨프리드 애서톤을 비롯한 국무부 고위 관리들이 국제정세를 둘러싼 부내 회의를 열었다. 그들은 당시 이라크의 권력 2인자였던 사담 후세인(이라크혁명지휘위원회 부의장)에 대한 견해를 주고받았다.
애서톤 차관은 후세인의 성격이 냉혹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키신저 장관도 그 같은 평가에 묵시적으로 동의했다. 아울러 이들은 당시 긴장 속에 있던 이라크·시리아 양국 관계가 이스라엘에 미칠 영향에 대해 논의했다. 다음은 키신저 국무와 애서톤 차관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
- 애서톤 차관 이제 이라크의 최근 상황을 돌아보면, 후세인은 내일 이란 국왕 샤(팔레비)를 만나러 간다. 그 두 사람은 중근동 지역의 국경분쟁을 비롯한 여러 현안들을 사우디아라비아 당국과 함께 논의할 것이다. 이라크는 이집트·요르단과도 가까이 지내려고 하고, 최근 들어 부쩍 아랍 세계의 중심 역할을 하는 정치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풍기려고 든다.
한 가지 걱정스러운 점은 이라크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여전히 미련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여기서 언급되는 아사드는 하페즈 알 아사드 대통령을 가리킨다. 2000년 그가 사망하자 아들인 바샤르 아사드가 권력을 이어받았다역자 주).
키신저 국무 후세인이 언제 테헤란에 간다고?
애서톤 내일 간다. 후세인은 매우 뛰어난 인물이다. 우리는 그의 정치적 성장 배경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이라크혁명지휘위원회 부의장인 그는 38세로, 이라크 정부 내에서 아무런 직함이 없다. 그러나 이라크의 실력자로 꼽힌다. 그는 매우 냉혹한(ruthless) 인물로 알려졌는데, 이 즈음 들어서는 실용적이고 지적인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내 판단으로는(그런 후세인의 능력에 비춰볼 때) 이라크가 중근동 지역에서 예전보다 큰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키신저 만약 이라크가 쿠르드족과 분쟁 문제를 푼다면 그렇게 되겠지. 그리고 이라크가 시리아에 대한 역할을 하려고 든다면(아사드 정권 전복을 위해 시리아내 친이라크 세력을 지원하려고 든다면), 시리아는 이스라엘을 더욱 조심하게 될 것이고….
애서톤 그럴 것이다. 시리아 안에는 아사드를 몰아내려고 기회를 엿보는 친이라크 집단에 동조하는 자들이 많다.
키신저 그것은 분명해 아사드 정권이 전복되고 더욱 과격한 정권이 다마스쿠스에 들어선다면, 이스라엘쪽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고….
애서톤 시리아 집권자 아사드도 물론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사드가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을 만난 것도 바그다드의 위협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고 판단한다. -
[기밀서류2] 키신저 국무와 하마디 이라크 외무의 대화록(1975년 12월17일)
“미국은 쿠르드족 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말라”
1975년말 양국 외무장관(헨리 키신저 미 국무사둔 하마디 이라크 외무)이 프랑스 파리 주재 이라크대사관저에서 만났다. 두 사람의 회동이 있기 전까지 양국 외무장관급 대화는 여러 해 동안 이뤄지지 刻年?
1967년 6일전쟁 뒤, 특히 73년 중동전쟁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을 적극 밀어 전쟁의 승패에 영향을 끼쳤다. 이로 인해 이라크는 다른 이슬람권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관계를 닫고 있었다. 키신저 국무는 미국의 이슬람권 관계정상화 노력의 일환으로 이라크 외무장관과 면담을 요청했다.
키신저는 하마디에게 “미·이라크 관계에서 기본적으로 국가이익이 서로 충돌한다고 보지 않는다”며 양국 관계 증진을 주문했다. 유대인 출신인 키신저는 오히려 이스라엘쪽에서 자신의 중동정책을 싫어해 국무장관 자리에서 몰아내려고 한다고 ‘엄살’을 부렸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라크 지도부가 민감하게 여기던 쿠르드족 문제에 대해 미국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키신저 장관의 약속이다. 다음은 미 국무부 배석자가 기록한 대화 요지.
- ▶ 키신저 미 국무 최근 몇 년 동안 양국은 접촉이 없었다. 우리의 만남을 앞으로 양국간 더 빈번한 교류의 기회로 삼자. 국가이익 측면에서 미·이라크 관계를 가로막는 기본적 걸림돌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당신의 견해는 다르겠지만….
하마디 이라크 외무 물론 다르다. 양국 사이에 접촉이 드물었던 까닭을 우리는 서로 잘 알고 있다. 이라크는 아랍의 일원이다. 우리는 미국이 오늘의 이스라엘이 있도록 만든 주역이라고 믿는다. 1948년 독립국가를 이룬 이래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날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이라크의 안보를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키신저 이스라엘이 어떻게 이라크를 위협하는가.
하마디 군사력으로 이라크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더욱 정교한(sophisticated) 무기들을 이스라엘에 대줬다. 이는 아랍 세계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처사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중동 지역에서 군사강국으로 만들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금 핵무기를 지닌 군사강국이면서도 아랍 세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만 하면 그것이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은 현재의 국경선에 만족하지 않고 기회다 싶으면 늘 분쟁을 일으켜 바깥으로 팽창하려고 든다. 경험적 사실들이 이를 말해 준다.
특히 우리는 회교도와 기독교도들의 충돌로 내전 상태인 레바논 사태를 핑계로 이스라엘이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은 3년 뒤인 1978년에 일어났다역자 주).
키신저 당신의 말뜻을 이해한다. 미국은 군사개입은 안 된다고 이스라엘에 강력히 경고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사태 개입은 또 다른 10만명의 아랍인들을 이스라엘 지배 아래 몰아넣을 뿐 중동평화를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이 아랍세계에 언제까지나 위협이 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어떻게 인구 300만명의 국가가 위협이 될 수 있겠나? 내 생각에는 10년이나 15년 뒤 이스라엘은 레바논처럼 아랍세계에 이렇다 할 영향력도 없이 생존에 급급한 작은 나라로 머무를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담 후세인을 비롯한) 이라크 지도자들을 친소 정책을 펴는 사다트(이집트 대통령)보다 더 좋아한다. 우리 미국도 이라크와 관계 개선을 바라고 있다. 나아가 미국은 아랍의 다른 국가들과도 관계 증진을 바란다. (지난 1969년 27세의 나이로 권좌에 오른) 카다피 대령이 다스리는 리비아만 빼고….
하마디 그렇지만 이라크와 미국에는 (이스라엘이라는) 벽이 가로놓여 있다.
키신저 미국은 이스라엘의 생존을 바랄 뿐, 중동 지역을 이스라엘이 지배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이스라엘은 나를 국무장관 자리에서 몰아내고 싶어한다. 이스라엘이 아랍 세계에 강공책을 펴려는 것을 내가 거듭 눌러앉힌 탓이다. 내년(1976년)에 이스라엘은 레바논과 시리아를 공격하기를 바라고 있다. 전쟁을 한다면 이스라엘이 이길 수 있고, 아랍 세계에 더 큰 혼란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유일한 우방국으로 남기를 바라지만, 우리 미국은 다른 우방국들이 생겨나는 것을 바란다. 이라크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하마디 언론 보도를 보면 미국이 이라크 북부의 친이란계 쿠르드(Kurd)족에게 무기를 대줬다고 한다. 쿠르드족 문제는 어떻게 보는가.
키신저 지난날 이라크가 소련의 위성국가라고 여길 때는 이란이 쿠르드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을 미국은 반대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란·이라크가 쿠르드족 문제를 놓고 타협을 봤으므로 미국이 개입할 이유가 없다. 내가 약속하지만, 미국은 이라크의 현 국경선에 영향을 미칠 어떤 형태의 개입도 하지 않을 것이다(쿠르드족 분리독립 문제에 관한 한 미국은 이라크 정부를 지지하겠다는 약속이다역자 주).
하마디 그렇다면 이라크도 미·이라크 두 나라 관계 개선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두 나라는 서로의 국내문제에는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이라크에 들어와 활동하는 몇몇 미국 기업들은 아주 공평한 대접을 받고 있다. 끝으로 쿠르드족 문제는 우리 이라크로서는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키신저 미국의 대이라크 정책이 냉담한(unsymp -athetic) 것은 아니다. 걱정하지 말고 지켜봐 달라. -
[기밀서류3] 럼즈펠드의 후세인 면담 보고서 (1983년 12월21일)
‘후세인, 레이건 대통령 친서 받고 크게 만족’
img3L영국 런던 주재 미 대사관이 미 국무부로 보낸 럼즈펠드의 임무; 1983년 12월20일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과의 면담’이라는 제목의 비밀 전문. 레이건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이라크를 방문한 럼즈펠드는 바드다드 대통령궁에서 사담 후세인을 만나 레이건의 친서를 전달했다.
두 사람은 90분 동안에 걸쳐 레바논·팔레스타인 문제, 그리고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가 열세에 몰린 상황을 둘러싼 미·이라크 공동 관심사와 미국의 대(對)이란 무기 유입 차단 노력을 둘러싼 대화를 나누었다. 럼즈펠드는 그 자리에서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이란·이라크전쟁에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럼즈펠드는 이란군의 공세로 페르시아만 석유 수출길이 위협받고, 시리아(이란의 동맹국)로 통하는 송유관이 막힌 상황에 내몰린 후세인에게 송유관 건설을 제안했다. 요르단 남부 홍해 지역의 아카바 항구로 통하는 송유관 건설 아이디어였다.
후세인은 “이스라엘의 위협에서 송유관의 안전을 미국이 보장해 준다면…”하며 긍정적으로 검토할 뜻을 비쳤다. 이란·이라크전쟁에서 고전하던 후세인 지원 방안 협의와 더불어, 이라크 유전 지대와 요르단 남부 항구 아카바를 잇는 송유관 건설은 럼즈펠드의 바그다드 방문 목적 가운데 중요한 안건이었다. 여기에는 조지 슐츠 미 국무와 관련이 깊은 미 건설회사 벡텔 그룹의 로비가 숨어 있다(슐츠 국무는 벡텔그룹 회장 출신).
미 국무부는 럼즈펠드-후세인 회담을 가리켜 미·이라크 관계 증진을 위한 이정표(milestone)를 세웠다는 평가를 내렸다. 다음은 영국 런던 주재 미 대사관이 기록한 대화 요지.
- 럼즈펠드를 접견하면서 사담 후세인은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를 건네받은 데 이어 럼즈펠드에게 “미·이라크 양국 관계를 회복하는 데 걸림돌이 무엇이든 모두 제거됐다”는 말을 듣자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면담은 이라크 외무장관 타리크 아지즈와 통역자가 배석한 가운데 90분 동안 이어졌다. 우리 내부의 판단으로는 이번 럼즈펠드·후세인 만남은 미·이라크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는 획기적 사건이며 중근동 지역에서 미국의 입장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날 면담에서 사담 후세인과 타리크 아지즈는 모두 군복 차림에 허리에는 권총을 차고 있었다. 두 사람은 활기차고 자신감에 넘치는 표정이었다. 후세인은 럼즈펠드에게 세 가지 측면에서 기쁘다고 말했다. “첫째, (럼즈펠드와) 진지하고 솔직한 정치적 논의를 하게 돼 기쁘다. 둘째, 이란·이라크전쟁의 의미와 (이란이 승리할 경우의) 위험성을 지적한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를 받아 기쁘다. 셋째, 미국이 이라크와 관계 증진을 바란다는 점을 확인해 기쁘다”고 말했다.
후세인은 하루 전날 저녁 럼즈펠드가 타리크 아지즈 외무장관을 만났을 때 한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기도 했다.
“이라크 국민과 미국인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않은 채 한 세대를 지내는 것은 거부돼야 할 현실이며, 뜻하지 않은 혼란을 낳을 수 있다.”
나아가 사담 후세인은 이렇게 말했다.
“미친 놈들이 서로 할퀴도록 놔둬라”
“이라크는 독립국가이고 비동맹국가다. 따라서 이라크가 소련과 외교관계를 맺고 미국과는 외교 관계가 없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균형이 맞지 않는 일이다. 이라크는 서방 국가들과도 외교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특히 프랑스는 우리 이라크의 입장을 잘 이해해 주는 나라다. 미국도 이라크를 더 잘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대화 주제를 아랍 국가들쪽으로 바꿔, 후세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랍세계에는 매우 부자인 나라들과 매우 가난한 나라들이 섞여 있다. 그런데 서방 국가들은 아랍 국가들이 소련의 영향력 아래 머물러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 아랍 국가들도 동서 양 진영 슈퍼파워 어느쪽 그늘에도 머무르기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 이라크가 이해하기로는, 미국은 아랍 국가들을 미국 진영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아랍권을 소련의 영향력으로부터 떼어놓음으로써 무역을 비롯한 여러 부문을 정상화하려고 하고 있다. 아랍권의 일부인 중동 국가들은 서방 국가들의 경험을 배워 국가 발전을 이루고자 노력해 왔다.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은 중동의 가난한 국가들이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그들을 재정적으로 도와야 할 것이다.”
후세인은 미국의 대중동 정책을 비판했다.
“미국은 시리아의 레바논 침공(레바논의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이 내전을 벌이자 1976년 시리아가 군사개입한 것을 가리킴역자 주)이나 걸프전쟁(이란·이라크전쟁을 뜻함역자 주)에 처음부터 강 건너 불 구경하듯 관심이 없었다. 마치 ‘이 미친 놈(lunatics)들이 서로 할퀴도록 내버려 두라’는 투였다. 시오니스트(이스라엘)들도 그 불이 오히려 더 커지기를 바랐다. 이라크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그 불을 끄겠나?
만약 시리아와 (1978년 레바논을 침공한)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나눠 먹는 것을 미국이 막지 않는다면 독립국가로서의 레바논은 사라질 것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해 레바논에서 철수하도록 만들고, 우리 아랍 국가들도 마찬가지로 시리아에 철수 압력을 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국가든 약소국을 침략해 차지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 아랍인들은 시리아와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철수하기를 바라며 (요르단에서 시리아로 추방당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요르단이 원만한 관계를 맺기를 바라고 있다. 요르단이 팔레스타인 문제로 국가 안보에 신경을 쓴다는 점을 이해하지만, 우리 이라크는 요르단이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힘쓸 것이다.
이어 후세인은 현재 진행중인 이라크·이란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라크·이란전쟁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던 지난 4년 동안 우리 이라크는 군사적으로 어려운 고비를 맞이했으나 이제 극복하는 단계다. 지금은 언제 전쟁이 끝날 것인가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라크는 전쟁이 오래 끄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이에 대한 럼즈펠드의 발언.
“이라크 대통령과 더불어 서로의 생각을 나눌 기회를 만들어 줘 감사드린다.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어떤 책임을 맡아야 하지 않느냐는 후세인 대통령의 지적은 나의 이라크 방문이 지닌 중요성을 깨닫게 해 준다. 레이건 대통령이나 슐츠 국무장관도 나의 방문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미국은 레바논이 이스라엘이나 시리아를 비롯한 외세의 군사적 개입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라크와 견해를 같이한다.”
럼즈펠드의 송유관 건설 제안 뒤에는?
럼즈펠드는 이란·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이 이란으로 무기가 선적되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미국은 이라크·이란전쟁으로 중동 지역이 더욱 큰 불안정 속에 빠져드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더구나 이라크가 전쟁으로 약해지거나 이란이 이익을 챙기고 야망을 키우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미국은 이라크의 주권이 지켜지고 이란의 세력이 커지지 않는 선에서 전쟁이 평화적으로 매듭지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란과 시리아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점에서 미국과 이라크는 공통의 이해관계에 있다. 미국은 다른 국가들이 이란으로 무기를 수출하지 말라고 촉구해 왔고, 미국의 통제(control) 아래 있는 제3국들의 대이란 무기 송출을 성공적으로 막아왔다.”
후세인은 이란군의 공세와 시리아의 적대적 행위로 석유 수출이 어렵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라크·이란전쟁이 날로 커져가고 있는 점과 관련해 이란이 이라크의 인내심을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전쟁중에도 이란은 계속 석유를 수출하지만, 이라크는 페르시아만으로나 시리아쪽으로 이어지는 송유관이 폐쇄되는 바람에 석유 수출길이 막혀 버렸다. 교전국 쌍방이 페르시아만 지역에서 군사적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그럼으로써 이란은 물론 이라크도 페르시아만 지역으로 석유를 수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후세인의 희망 사항이었다역자 주)
후세인의 이 말을 받아 럼즈펠드는 “이라크 석유가 안정적으로 수출돼야 한다는 후세인 대통령의 견해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지즈 외무장관과 어제 저녁 요르단 남부 아카바로 통하는 새로운 송유관 건설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어진 후세인의 발언.
“지난날 이라크는 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송유관 건설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방해와 위협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 정부와 미국 기업들이 아카바 송유관 건설에 관심을 둔다면 우리는 이를 다시 검토해 보겠다. 이라크와 미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면 미국이 (이스라엘의 위협에서) 송유관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지 않겠는가.”
(이란·이라크전쟁에서 고전하던 후세인 지원 방안 협의와 더불어 이라크 유전 지대와 요르단 남부 항구 아카바를 잇는 송유관 건설은 럼즈펠드의 바그다드 방문 목적 가운데 중요한 안건이었다. 사담 후세인이 “미국 기업이 관심을 갖고 있다면…” 하고 언급한 미국 기업은 바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뒤 대형 건설 수주를 독차지하고 있는 건설회사 벡텔 그룹이다. 1984년 당시 벡텔 그룹은 아카바 송유관 건설 사업에 큰 관심을 갖고 로비를 벌이고 있었다. 럼즈펠드를 바드다드로 파견한 조지 슐츠 미 국무는 1974년부터 무려 8년 동안 건설회사 벡텔 그룹의 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여기서 이른바 정실자본주의의 한 단면을 보게 된다역자 주) –
[기밀서류3] 조지 슐츠 미 국무가 럼즈펠드에게 보낸 비밀 훈령(1984년 3월24일)
‘미국이 이라크 지지한다는 것을 확신시켜라’
img4R미 국무장관 조지 슐츠는 1984년 3월 바그다드 2차 방문길에 나선 럼즈펠드 앞으로 비밀 전문을 보냈다. 럼즈펠드가 바그다드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담은 일종의 훈령이었다.
럼즈펠드의 이라크 방문 직전 미국은 이란·이라크전쟁에서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사용했던 점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해 이라크의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그런 앙금과 긴장은 럼펠드의 이라크 방문 당시까지도 이어졌다.
슐츠 국무는 비밀 전문에서 이라크의 권력 1인자인 사담 후세인이나 타리크 아지즈 외무장관을 면담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들을 만났을 때 ‘미국이 미·이라크 양국관계 증진을 바란다는 점을 확신시키라’는 훈령을 내렸다. 그 이틀 뒤 럼즈펠드는 6시간 동안의 짧은 이라크 방문 일정 속에서 아지즈 외무장관을 만났다. 아래는 국무부 비밀 전문 요약.
- 지난해 12월 럼즈펠드 당신이 이라크를 방문한 뒤로부터 3개월 동안 두 가지 사건이 바그다드 분위기를 악화시켰다. 첫째, 이라크는 이란의 대공세를 제대로 물리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마즈눈 유전 지대를 이란에 빼앗겼고, 많은 사상자를 냈다. 둘째, 지난 3월5일 미국이 이라크군이 이란군을 향해 화학무기를 썼던 사실을 비난하는 성명을 내자 미·이라크 양국 사이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이 같은 두 측면을 감안할 때 이라크 지도자들과 면담에서 그들은 아랍·이스라엘 분쟁이나 레바논 사태 등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전황(戰況)이 더욱 나빠지면서 그들은 살아남느냐의 문제에 매달려 있다. 이런 긴급상황에서도 사담 후세인이나 타리크 아지즈가 당신을 접견한다면, 그것은 이라크 정부가 미·이라크 관계 증진에 관심을 갖고 있고, 미국이 이란·이라크전쟁에서 이라크를 얼마나 도울 것인가에 관심이 있다는 점을 뜻한다.
지난 3월15일 워싱턴에서 나(슐츠 국무)와 이글버거 국무차관이 이라크 외무차관 이스메트 키타니를 만났다. 우리 두 사람은 미국이 낸 화학무기 비난 성명은 생화학무기 사용을 엄격히 반대하는 미국의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키타니에게 설명했다.
아울러 미국은 이란·이라크전쟁에서 이란이 승리하는 것을 바라지 않고, 미·이라크 관계를 증진시키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또한 미 부통령이 타리크 아지즈 외무장관을 워싱턴으로 초청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나 키타니는 미국의 화학무기 비난 성명을 납득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당신의 이라크 방문 길에도 그 비난 성명에 대한 이라크쪽의 거센 항의가 다시 이어질 것이다.
이란의 호메이니를 겨냥한 미국의 적대적 정책 그리고 이와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요르단·이집트에 대한 우호 정책을 지켜보면서 이라크 관리들은 미국의 중동 정책에 혼란을 느끼는 듯하다. 미국이 이라크의 화학무기 사용을 비난한 것을 두고 이라크 당국은 합리적 분석보다 미국이 기본적으로 반(反)아랍 성향이고, 이스라엘의 공격적 대외정책에 미국이 볼모(hostage)로 잡혀 있다는 성급한 판단을 내리려고 한다.
‘이스라엘의 무기 수출 못 하도록 막았다’
요르단 후세인 국왕은 미·이라크 관계 개선을 위해 힘써왔다. 그는 개인적으로 이라크가 아부 니달 테러조직원들에게 피신처를 제공하지 말라고 사담 후세인을 설득했다(아부 니달은 지난 1974년에 조직된 팔레스타인의 반이스라엘 투쟁 단체.
1985년 로마와 빈 공항 테러 공격, 86년 팬암 항공기 납치 등을 저질러 미 국무부의 외국 테러 조직 명단에 올랐다. 그 동안 이라크·시리아·리비아 등의 지원을 받았으나 현재는 거의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역자 주). 후세인 국왕은 이란·이라크전쟁에서 이라크를 지지함으로써 요르단·이라크의 유대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
이라크의 지도자 사담 후세인이 당신에게 미·요르단 관계가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 물어보는 것은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당신이 이라크 지도부를 만난다면 다음과 같은 요지의 발언을 해 주기 바란다.
▷우리 미국은 (대이스라엘 정책에서) 요르단 후세인 국왕과 많은 점에서 견해 차이가 있지만, 아랍권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가 느끼는 좌절감을 충분히 이해한다(1967년 6일전쟁에서 요르단은 그전까지 통치권을 행사하던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를 이스라엘에 빼앗겼다역자 주).
▷우리 미국은 ‘중동평화회담이 다시 열리기 어렵고, 미국의 중동정책이 이스라엘에 놀아난다’는 후세인 국왕의 판단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요르단에 외교적 목표가 있듯, 미국도 (중동평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나름의 외교적 목표를 갖고 있다. 13년에 걸친 미·요르단 우호 관계와 미국의 대요르단 안보 공약은 최근 중동에서의 긴장으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우리 미국은 문서(paper)보다 정상적 채널을 통해 외교 관계가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 미국과 이라크는 우호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양국 사이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오해를 막을 수 있다.
이글버거 차관은 미 우방국들의 무기들이 이란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들을 이라크 키타니 외무차관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미국의 한결같은 이라크 지지 정책을 확신시키려는 뜻에서였다. 이라크 지도부는 이런 사실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이라크는 아랍의 친이라크 국가들과 더불어 이란으로의 무기 수출을 막으려고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이라크가 소련이나 그 동맹국들로 하여금 대이란 무기 수출을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는지는 잘 알 수 없다.
이라크는 이스라엘이 이란에 계속 무기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미국이 제동을 걸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당신은 이라크 지도자들을 만난다면 “미국은 이스라엘 당국에 이란으로의 무기 수출이 지닌 문제점을 다시 한번 지적했다”고 강조하기를 바란다. -
2004년 03월호 | 입력날짜 2004.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