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빈 前 美 재무장관의 回顧-한국의 IMF 이시우 2005/02/27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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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시대 경제 부흥의 주역 ‘로버트 E.루빈’ 前 美 재무장관의 回顧
“한국이 IMF에 오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이종천 원간중앙(jclee17@hotmail.com)
‘세계를 구한 위원회’.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아시아 금융 위기를 진화한 앨런 그린스펀(가운데)·로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갑작스레 닥쳐온 한국의 금융위기. 워싱턴에서는 주요 맹방인 한국에서 벌어진 이 초유의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클린턴의 경제 참모였던 루빈 전 재무장관의 회고를 통해 본 위기 극복의 순간과 그 裏面들.
로버트 E. 루빈과 조지프 E. 스티글리츠, 이 두 사람은 클린턴 행정부에 들어가 부흥의 1990년대를 이끈 인물들이다. 루빈이 월스트리트에서 잔뼈가 굵은 금융시장 전문가라면 스티글리츠는 상아탑에서 훈련받은 경제학자다.
두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맞수라고도 할 수 있었다. 루빈이 시장에 대한 자신의 직관에 따라 재정적자 축소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주장을 편 반면 스티글리츠는 적자 축소도 좋지만 그만큼 연구와 개발, 기술, 인프라, 교육 부문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클린턴에게 조언했다.
이 싸움에서는 루빈이 이겼다. 시장을 이해하는 데 루빈에게 의지했던 클린턴은 그의 말대로 부자들에 대한 세금을 올리고 정부의 씀씀이를 줄여 재정적자를 흑자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시장은 정부를 신뢰하고 투자가 활기를 띠면서 우리는 유례 없는 부흥의 시대를 목격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스티글리츠는 그 때 자신이 말한 부문에 좀 더 신경썼다면 미국의 성장 잠재력이 더 강해져 뒤이은 경기침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그 때를 되돌아보는 책을 펴내, 서로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다시 한번 맞섰다. 루빈의 ‘불확실성의 세계에서’(In an Uncertain World)와 스티글리츠의 ‘광란의 90년대’(The Roaring Nineties). 흥미 있는 것은 이 두 책이 모두 한국의 자본시장 자유화와 환란에 대해 상당부분 언급했는데, 여기서도 그 시각이 엇갈린다는 점이다. 특히 루빈은 당시 재무장관으로 IMF 프로그램 집행의 핵심 인물이었다. IMF 환란 일곱 돌에 즈음해 이들의 주장을 겹쳐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한국의 금융시장이 파국으로 치달을 때, 지구의 반대편 워싱턴의 한 호텔 레스토랑 식탁에서 한국의 운명이 ‘요리’되고 있었다. 1997년 12월8일, 이 날은 한국에서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날이기도 했다. 이 저녁식사 자리에는 루빈 미 재무장관을 비롯해 재무부와 연방준비은행의 고위 관리들이 마주앉아 한국의 심상치 않은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
IMF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지원 패키지를 발표했음에도 외국 투자자들의 신뢰는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한국 정부와 은행이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 상환금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이 파장은 아시아·동유럽·라틴아메리카의 다른 신흥시장으로 급속히 번져나갈 것이 분명했다.
식탁에 둘러앉은 참석자들은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위기와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에 미칠 파장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이 중 몇몇은 대공황이 있었던 ‘1930년대의 시나리오’가 되풀이되는 것 아닌가 우려하며 한국의 위기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한국이 처음 IMF에 손을 벌렸을 때 루빈 장관도 경악했다.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 국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1996년 개도국 클럽을 졸업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세계 11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였다.
태국에서 시작된 아시아 금융위기가 인도네시아까지 번졌을 때도 루빈은 불길을 잡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에서까지 그 불길이 솟자 상황이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이 태국이나 인도네시아처럼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시장의 압력이 가중된다고 해도 한국이 IMF에까지 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루빈도 알지 못한 한국 외환 보유고의 실태
img2R그러나 루빈이 알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한국의 외환 보유고가 이미 위험 수준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 해 11월말 한국 정부는 놀라운 사실을 발표했다. 장부상에 나와 있는 외환 보유액 300억달러가 거의 바닥났다고 고백한 것이다. 시중 은행에 수십억 달러가 예치돼 있었지만 그마저 곧 사라질 처지에 있었다. 이 발표로 세계경제는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위기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미국으로서는 한국의 위기 신호가 지정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다. 한국은 미국의 중요한 군사 동맹국이다. 더욱이 미군 3만7,000명이 북한과 인접한 휴전선 부군에 주둔하고 있었다. 두려운 일은 그런 불안정이 북한에 호전적 행동을 취할 기회를 주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러나 루빈을 가장 곤혹스럽게 한 것은 세계 금융 시스템을 뒤흔들 수 있는 파괴력이었다. 한국은 태국이나 인도네시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 경제와 깊숙이 연결돼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은행들은 외국 은행에서 단기자금을 빌려와 국내 재벌 기업들에 장기로 빌려 주는 관행을 가지고 있었다. 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지면서 외국 은행들은 만기 연장을 거절해 한국 은행들의 생존을 위태롭게 했다. 자본은 급속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원화를 방어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수십억 달러를 투입했지만 폭락을 막을 수 없었다. 신용을 재구축해 한국을 빠져나가는 자본의 썰물을 막는 것이 급한 일이었다.
많은 채권자와 투자자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한국이 ‘디폴트’를 선언한다면 다른 신흥 국가에 빌려준 돈과 투자는 안전할까. 시절이 좋을 때 위험에 대해 많이 생각해 놓지 않은 미국·유럽·일본의 은행과 뮤추얼펀드·헤지펀드는 이미 앞뒤 가리지 않고 개도국에서 돈을 빼내고 있었다. 라틴아메리카·동유럽·러시아도 위험했다. 개도국 전체로 위기가 번진다면 선진국도 영향받을 것이 분명했다.
미국 재무부와 국무부의 외교정책팀은 그 이슈를 보는 관점이 달랐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외교정책 자문위원은 아주 중요한 군사 동맹국과의 관계를 걱정하고 있었다. 미국의 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한국의 불안정이 북한의 도발을 촉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루빈과 같은 경제통들이 지정학적 문제에 등한할 수 있다고 우려한 그들은 ‘방어의 제2선’을 지키기 위해 재무부가 인도네시아에 했던 것처럼 즉시 IMF를 통해 한국에 대한 지원의사를 보여 주기를 원했다.
루빈은 한국의 경제 안정이 재구축되지 않는다면 미국의 지정학적 목표 역시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개혁에 대한 적절한 조치 없이 한국에 금융지원을 약속한다면 한국이 다시 제 궤도로 복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강력한 조건 없이 돈을 제공하면 그 나라에 프로그램을 따르도록 할 수 있는 자신들의 ‘강제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에 루빈은 개혁에 대한 한국 정부의 확약이 필요했다.
개혁 프로그램은 시장의 신뢰를 회복시킬 것이다. 루빈은 금리나 환율 같은 매크로 경제문제는 물론 한국경제 시스템의 핵심을 이루는 일련의 구조적 부분까지 수술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문제가 많은 관행 중 하나가 ‘관치금융’(directed lending)이었다.
소위 말하는 정실자본주의의 전형이다. 또 한국은 해외 투자나 경쟁을 제한하고 있었다. 그 결과 온실 속에서 보호받던 은행들은 이런 풍파에 단련돼 있지 않았다. 루빈이 보기에 한국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와 부닥쳐야 했다. 그러나 IMF 스태프와 재무부 직원의 협상에서 한국 재경원 관리들은 핵심 이슈에 대해 부적절한 제안을 했다.
지원 패키지의 집행을 유보하자 한국 정부는 IMF가 제시한 조건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외국 투자자들이 원화 표시 자산을 보유하려는 의욕을 회복시킬 수 있을 정도로 금리는 충분한 수준까지 올린다. 관치금융은 폐지한다, 실패한 금융기관은 문을 닫거나 구조조정한 후 매각한다, 금융분야는 개방한다…. 이런 용인을 받아내자 IMF는 12월3일 550억달러의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이것은 IMF로서는 제일 규모가 큰 것이었다.
한국의 운명을 좌우한 ‘레스토랑 모임’
img3L루빈은 사인하는 것으로 한국의 문제가 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 정부가 종이에 한 약속을 실제로 이행하느냐였다. 그리고 시장이 응답하느냐였다. 일단 금융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원화가 다소 상승하고 한국 증시도 크게 뛰어올랐다. 그러나 상황은 이틀간 좋아지다 다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루빈의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첫째 문제는 한국 정부가 실제로 투자자나 채권자를 유인하는 데 필요한 수준까지 금리를 올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점이었다. 한국 정부도 딜레마였다. 고금리는 과도한 부채에 짓눌려 있던 재벌들을 더욱 어렵게 하고 한국의 은행들을 더 약화시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러에 대한 원화 가치가 더 떨어지면 기업과 은행은 마찬가지로 타격받을 수 있다. 달러 표시 부채의 원화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저금리가 유지된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외국 은행들은 돈을 빼내가기 위해 더 필사적이 되었다. 그들 중 아무도 한국에서 달러가 바닥날 때까지 남아 있는 마지막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루빈과 재무부 아시아팀은 한국의 상황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한국 중앙은행이 보유 달러를 시중은행에 예치시켜 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미 외국은행에 빚을 갚는 데 다 써버려 돌려받을 길이 없었다. 12월초 IMF에서 55억달러를 끌어왔지만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90억달러까지 떨어졌다. 하루에 10억달러 꼴로 돈이 빠져나갔다.
두번째 문제는 태국에서처럼 실상이 너무 늦게 드러난 것이었다. 한국의 대외부채 규모에 대한 루머가 횡행했다. 다음해 만기가 되는 부채가 총 1,160억달러라는 추정도 있었다. 그것은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IMF의 프로그램도 한국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월스트리트의 명망 있는 한 애널리스트는 한국의 외한보유고가 이 달 말이면 종 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문제는 한국의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 국가의 정치적 리더십이 유동적이었다. 시장은 새 대통령이 IMF의 프로그램을 용인할 것인가에 대해 냉소적이었다. 비록 IMF가 대선 주자 3인의 사인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김영삼 대통령이 동의한 개혁 방법에 열광하지 않았다. 대선의 선두 주자는 김대중 씨였다. 그는 IMF 프로그램에 호응하지만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당선하면 IMF와 상환 기간에 대해 재협상을 원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상황이 복잡하게 꼬여 가고 있을 때 위의 ‘레스토랑 모임’이 이뤄진 것이었다. 루빈 장관은 자신의 회고록 ‘불확실성의 세계에서’에 한국에서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이 날의 모임이 한국의 운명을 좌우할 가장 결정적 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식사 시간 내내 백악관에서 여러 차례 전화가 걸려 왔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보낼 축하 전화 메시지 때문이었다. 루빈은 클린턴 대통령이 이렇게 전해 주기를 바랐다.
‘지금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이 지금까지 해온 비즈니스 관행을 바꿀 진짜 기회를 맞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결과는 매우 우울한 것이 될 것이다.’
그날 저녁 토론의 대부분은 최후 옵션에 관한 것이었다. 그 중 하나는 한국에는 너무 끔찍한 처방이었다. ‘한국은 그대로 가게 한다’(let South Korea go)는 것이었다.
즉, 한국은 포기하고 불길의 확산을 막기 위해 그 주위에 방화대(firebreak)를 구축하자는 것이었다. 불은 한국에서 끝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것은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데로 생각이 모아졌다. 그러면 어떤 방법이 남아 있었는가.
훗날 루빈의 뒤를 이어 클린턴 집권 후반기 재무장관을 맡은 래리 서머스의 견해는 이랬다. ‘베트남 상황’과 같은 일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IMF의 돈을 공격적으로 투입해야 한다고…. 즉, 점진적으로 늘려 나가는 것은 효력이 없다. 왜냐하면 한국의 상황은 신뢰가 문제이기 때문에 그는 멕시코 위기 때 미국이 지원한 방식처럼 집중적으로 투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더 강력한 개혁을 지원함과 함께 IMF의 지원금 투입을 가속화하고 더 강력한 국제 지원 패키지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날 저녁 식사는 그렇게 끝났다. 그러나 참석자들이 고려한 좀 더 견고한 지원 패키지는 그 자체로 신뢰를 회복시키기에는 불충분해 보였다. 어떤 길을 가야 할지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을 수렁에서 구할 조건들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
저녁 늦게 참석자 중 한 사람의 페이저에 김대중 당선에 대한 우려로 원화가 더 떨어졌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도 최선이 될 수 있었다. 다음 며칠 동안 재무부와 연방준비은행 관리는 사태를 관망하면서 또 다른 아이디어에 몰두하고 있었다. IMF 내에서 수주 전에 제기됐으나 실현 가능성이 적다고 폐기된 아이디어였다. 채권 은행들의 자발적 버전이다.
은행들은 어쩔 수 없이 만기일을 늘려 주고 단기자금을 장기로 전환해 주리라는 것이다. 지금 은행들은 한국의 디폴트 가능성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돈을 모두 떼일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현상유지라도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스스로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폭제가 필요했다.
그들 대다수가 동일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계획은 실패한다. 루빈은 전화를 걸어 설득하는 방법 외에는 그들의 협력을 촉구할 실제적인 지렛대가 없었다. 은행 CEO들에게 전체의 이익을 생각해 달라고 부탁했다.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곳에는 파국의 결과에 대해 세계는 누가 책임이 있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은근히 겁을 주었다.
그러는 가운데 재무부 특사가 다시 서울로 향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개혁 의지를 타진하기 위해서였다. 국무부는 의전적 방문이 있기 전에 재무부 특사가 먼저 대통령 당선자를 만나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새로 부임한 보스워스 주미 대사가 의전을 따질 시간이 없다면서 그 반대를 물리쳤다. 전 필리핀 대사였던 보스워스는 경제적 이슈에 대해 탁월한 이해력을 가진 경륜과 능력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그는 가능하면 빨리 재무부 특사가 당선자를 만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빈은 휴가지에서 전화를 받았다. 재무부 특사는 당선자와 만남이 상당히 고무적이었다고 말했다. 당선자는 한국 사람들이 IMF와 미국을 계속 비난한다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의 지지층을 생각할 때 이 발언은 루빈에게는 놀라운 것이었다.
더욱이 재벌은 구조개혁을 하고 노조는 해고와 임금 삭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 점이었다. 노조 부분은 그의 배경에 비춰볼 때 파격적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회의 마지막에 김대중 씨는 철학적이 됐다고 특사는 전했다.
“30년 동안 그들은 나를 체포하고 망명시켰으며 심지어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돌아와 대통령에 당선했다. 바로 조국이 붕괴에 직면한 이 때 말이다.”
당선자가 개혁을 약속한 것은 IMF가 구제금융을 집행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 은행들이 채권 회수를 유보해 주면 된다. 한국은 미국은 물론 일본과 독일, 그밖의 많은 나라의 은행들에 빚을 지고 있었다. 이 옵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G-7과 다른 주요 국가의 동참이 필수적이었다. 게다가 IMF 구제금융의 신속한 집행을 위해 그들의 지원이 필요했다. 그날은 휴일이었다. 전 세계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관계자들의 단잠을 깨웠다. 전화로 12개 국의 동참 약속을 받아내 크리스마스 이브에 채권은행들의 자발적인 대출 연장과 함께 IMF는 신속히 자금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할 수 있었다.
한국의 환란과 ‘크리스마스 선물’
은행이 행동통일을 하도록 ‘단속’한 것은 주로 재무부와 뉴욕 연방준비은행을 통해 이뤄졌다. 상황이 더 어려웠던 것은 소집할 필요가 있는 은행 관련자들이 크리스마스 휴가로 모두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루빈은 래리의 사무실에서 미국의 은행에 전화를 걸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인 윌리엄 맥도너는 해외의 상대역에 전화를 해 유럽과 일본의 은행들에 전화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이들 전화에도 전략이 필요했다. 정부 관리로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었다. 맥도너의 경우 그 균형잡기가 더욱 어려웠다. 연방준비은행은 국가 최고의 금융감독 기관이다. 회의를 소집해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만약 그런 압력이 도의적 권고의 선을 넘어선다면 감독기관으로서의 권한을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또 은행을 더 압박하면 역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상업은행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맥도너는 그 이슈를 어떻게 포장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주요 미국 은행의 대표들이 그의 사무실에 모였을 때 그는 이렇게 제안했다.
“한국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당신들의 은행과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함께 행동하자.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이 갖고 있는 한국에 대한 부채는 휴지조각이 될 것이다.”
몇몇 은행 관계자가 불평했지만 거의 모두 참여에 동의했다. 이런 회의는 뉴욕에서만 열린 것이 아니었다. 전 세계의 금융 수도에서 이 같은 회의가 열렸다. 잉글랜드은행 총재인 에디 조지가 휴가중이던 주요 은행 관계자들을 소집한 것은 법정 공휴일인 26일 ‘크리스마스 선물의 날’이었다.
김대중 당선자의 경제개혁에 대한 공식 선언과 국제 커뮤니티의 금융 지원이 합쳐져 한국의 통화와 주식시장은 안정됐다. 결국 은행들은 그 때의 동참으로 원금은 물론 높은 이자를 더해 돌려받았다. 루빈은 그의 책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그의 동료들이 환란 극복의 영웅들이라고 평가한다. 건전하고 용기 있는 정치 리더들이 경제적 속박을 극복하는데 커다란 차이를사실 가장 중요한 차이를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유사한 개혁을 하는 나라들이 그 결과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건전한 정책을 채택한 듯 보이는 많은 나라들이 똑같이 진보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루빈은 자신있게 이야기한다. 글로벌 통합을 추구하지 않고는 국가의 성장을 지속시켜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성장의 관건은 세계화와 시장경제라는 것이 루빈의 믿음이다. 그 예로 한국을 들었다. 한국의 성장은 세계화 요소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는 것이다(뒤에서 보게 되겠지만 스티글리츠의 생각은 다르다).
루빈이 대일본 무역 협상을 놓고 클린턴 대통령과 토론을 벌일 때였다. 그는 대통령에게 일본의 무역장벽 중 철폐를 먼저 요구해야 할 분야가 생선이라고 말했다. 클린턴은 일본에서 한 가난한 어부가 바위에서 낚싯줄을 던지는 광경을 목격했던 그 때를 떠올리고 단호하게 불쌍한 그들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난한 어부들을 돕는 것은 일본 전국의 다른 가난한 사람들이 생선을 더 싸게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막는 것입니다.”
루빈이 추종하는 자유화가 이 대화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무역자유화가 그 어부에게 미칠 손해는 바로 눈에 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가난한 사람과 소비자들, 즉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정치가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수입 개방은 미국 소비자나 생산자가 지불할 비용을 줄여 줌으로써 국가 자원을 글로벌 경제에서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지역에 할당함으로써 미국 경제에 크게 기여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 기업이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이 되도록 자극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것이 1980년대말 미국의 경쟁력을 회복시키는 주요 요소가 되었던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럽과 일본의 제한적 무역체제가 산업에 보호막을 침으로써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렸다고 주장한다.
루빈의 이런 소신은 청문회에서 공화당 의원들에게 처음으로 수입을 옹호한 관리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얻었다. 그는 무역 자유화에 따른 모든 변화는 그것이 대단한 이익을 낸다고 해도 불가피하게 누군가는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에 교역으로 일자리를 잃는 근로자들을 도와 줄 수 있는 효과적 프로그램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임국가의 잘 훈련된 근로자들의 거대한 물결에 직면해 보호주의는 상당히 유혹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교역을 제한하는 정책은 결과적으로 경제와 소비자, 근로자, 그리고 비즈니스 모두에 해를 입히리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러나 스티글리츠는 그의 책 ‘광란의 90년대’에서 세계화는 올바른 방법으로 행사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미국에 좋은 것이 다른 나라에는 좋은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미국이 추진한 정책들은 1997~98년 세계 금융위기가 일어나는 데 기여했다고 그는 말한다. 미국은 자유시장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했다. 그것은 미국 회사들의 진출을 용이하게 했다. 미국의 정책이 개도국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단지 미국 내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만 생각했다.
미국 사람들은 자본시장 자유화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지만 글로벌 불안정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데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즉, 클린턴 행정부는 의도적으로 미국에 유리하도록 글로벌 교역 시스템을 바꾸는 데 앞장섰다고 비판한다.
한국의 위기 극복은 IMF 프로그램 때문이었나
img4R스티글리츠가 믿는, 한국이 환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루빈의 생각과 다르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한국이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IMF 프로그램 때문이 아니다. 사실 그 프로그램이 시행됐을 때 원화의 추락을 막지 못했다. IMF의 지적처럼 한국의 문제들이 뿌리 깊은 것이라면 그런 단기 처방으로는 치료될 수 없다. IMF의 말을 따라야 할 때와 따르지 말아야 할 때를 결정하는 데서 한국인들은 현명했다. 한국은 IMF와 미국 재무부의 전략이 인도네시아에서 실패하는 것을 목격했다. IMF는 인도네시아 16개 은행을 폐쇄하고 예금주들의 예금은 일부만 보호된다고 발표했으나 이로 인해 오히려 인도네시아의 금융 시스템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반면 한국은 금융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국유화하면서 적어도 금융의 흐름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또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경제 하강의 배경에 컴퓨터 칩시장의 주기적 침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과잉 생산 시설을 폐쇄하라는 IMF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컴퓨터 칩시장이 회복되자 그들은 그 혜택을 누릴 준비가 돼 있었다. 이것이 한국의 회복에 결정적이었다.’
스티글리츠는 또 1993년 경제자문위원회의 의장으로 있을 때 한국의 자본시장을 급속히 자유화시키려는 재무부의 계획에 반대했다. 한국은 점진적인 자유화 계획을 내놓았다. 왜 재무부는 그렇게 한국을 몰아붙였을까. 한국의 계획보다 더 일찍 자본시장을 자유화시킴으로써 미국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일까.
거기에는 월스트리트의 요구가 반영다는 것이 스티글리츠의 주장이다. 한국 자본시장 자유화로 미국 근로자가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안달이 난 것은 월스트리트의 회사들이다. 한국 정부가 제시한 점진적 자유화는 다른 나라의 회사들에도 마찬가지의 기회를 줄 것이며 한국 회사들에 경쟁 체제를 갖출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지금 당장 레이스를 시작하면 이길 수 있는 확실한 위치에 있다고 미국 회사들은 자신하고 있었다. 경제자문위원회의 의견보다 재무부의 의견이 우세했다. 한국에 자본시장을 더 빨리 열도록 압력이 가해졌다. 4년후 자문위원회의 우려가 환란으로 현실화되면서 한국은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잘못된 정책의 결과를 알기까지 보통 10년이 걸리지만 자본시장 자유화의 실수를 알기까지 한국에서는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스티글리츠는 1997년 한국의 금융위기는 미국 재무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두 책을 비교해 보면 우리의 입에는 스티글리츠의 주장이 더 달콤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자의든 타의든 우리는 지금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또 자의든 타의든 자본시장도 이미 열려 있다.
이제 와서 스티글리츠도 반대한 것처럼 왜 우리 정부가 좀 더 현명하게 딜을 해 자본시장을 우리 속도대로 열지 못했느냐고 질책하는 것은 또 다시 과거에 얽매이는 일이다. 또 환란은 남 탓만 할 일이 아니다. 경제에 어두운 지도자와 정치에 휘둘린 경제팀이 합작으로 빚어낸 작품 아닌가.
세계화가 ‘좋다’ ‘나쁘다’를 논의할 시기는 지난 것 같다.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둘러싸고 지난번 국회에서 벌어졌던 쇼는 우리의 힘이 구심점을 잃고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낭비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해 보인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경쟁력을 쌓을 것인가. 스티글리츠의 주장처럼 미국이 자기 입맛대로 세계화를 주물럭거리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에 현명하게 대처할 것인가.
이미 열린 자본시장에서 첨단 기법으로 무장한 선진 금융회사들과 어떻게 대등하게 경쟁할 것인가. 우리의 논의와 힘은 여기에 모아져야 할 것이다. 루빈과 스티글리츠의 책은 앞으로 우리의 선택을 가늠하는 자료로 가치가 있어 보인다.
2004년 04월호 | 입력날짜 2004.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