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주임원사 -웰치 이시우 2004/06/25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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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좋아 한국근무 지원한 주한미군 주임원사
2003년 07월 31일 17:53 [목록보기] [메일보내기] [프린트] [이전] [다음]
- 유엔사/연합사/주한미군사/미8군의 부사관을 대표하는 주임원사
- ’85년 이후 ’89까지 팀스프리트 훈련에 5회 참가한 것이 인연
-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한국군과 협조, 최선을 다해 근무할 것을 다짐
미육군 원사 웰치 트로이(Troy James Welch, 43세)의 어깨는 대단히 무겁다.
유엔사/연합사/주한미군사령부 및 미8군의 모든 미군사병 및 부사관을 대표하는 주임원사라는 4
가지 직책을 동시에 맡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8월 대구에 위치해있는 제19전구지원사령부 주임원사 임무수행을 위해 한국에 최초로
부임한 이후, 2003년 5월 유엔사/연합사/주한미군사/미8군의 주임원사가 되기까지 웰치원
사는 한국에 대해 좋은 기억만을 갖고있다고 말한다.
웰치 원사의 한국과의 인연은 ’85년 팀스프리트 훈련에 참가하면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후 ’8
9년을 마지막으로 훈련에 참가하기까지 ‘가장 먼저 자원해서 가장 늦게 한국을 떠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특히, 1985년 당시 한국에 대한 첫 인상에 대해 웰치 원사는 3년 뒤에 개최될 서울 올림
픽 게임을 위해 미리부터 열심히 준비하던 한국인들의 열정과 미군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따뜻한
환대에 크게 감명받았다고 한다.
한국에 대해 이처럼 좋은 인상을 갖고 있던 중 1999년 당시 대구의 제19 전구지원사령부(
The 19th Theater Support Command)의 주임원사로 근무하던 터너(Tu
rner) 원사의 권유를 받았을 때 주저하지 않고 한국근무를 자원했으며, 2000년 8월,
그의 후임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유엔사/연합사/주한미군사/미8군의 모든 미군장병과 부사관을 대표하는 주임원사로서 웰치원사가
맡고 있는 역할과 책임은 마치 어머니와 같은 것인데 주요 지휘관과 부사관의 중간에서 다리역할
을 하며 부사관과 관련된 정책결정이 올바르게 될 수 있도록 이를 조정하는 한편 부사관들이 ‘
제대로’ 일하고 훈련받을 수 있도록 관리감독하고 환경을 조성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또한 그의 역할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韓·美연합군사령부 미측 주임원사인 만큼 한측 주임원
사와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양국군 병사들의 우애를 증진하고 한미동맹강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웰치원사는 이를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즉 그는 틈만 나면 전국의 각 미군기지를
직접 방문하여 특별한 문제점은 없는지 점검하고 확인하는데 이는 ‘직접 보고 확인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라는 본인의 평소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근무하면서 접하고 있는 반미시위, 또는 용산기지 앞에서의 데모에 대해 그는 “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불법적인 폭력이 수반되지 않는 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다만 “일부의 그러한 행동은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온 것
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
라고 덧붙였다.
“지난 시간 한국에 근무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질문에 웰치원
사는 “2001년 9·11테러당시 한국민들이 미국에 보여주었던 관심과 지원에 대해 정말 고맙
게 생각하고 또한 대구의 19지원사와 켐프 험프리, 그리고 현재의 서울 연합사에 근무하기까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는 항상 자신의 일처럼 성심성의껏 도움을 주는 한국인들이 언제
, 어디서든 있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1960년 켈리포니아주 아이다호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1977년 17세의 나이로 美육군에
입대해 지금까지 26년 간 군과 국가를 위해 봉사해온 웰치원사는 “이곳 한국에서 한국인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한반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한국군 동료들과
성심껏 협조하여 무슨 일이든 해낼 것”이라고 앞으로의 각오를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