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획득체계 이시우 2003/12/28 255
한국적획득체계
http://www.dema.mil.kr/jour/jour01.html
전력증강 분야에 근무하는 3년 동안 이곳이 최전방이라는 생각을 잠시도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총성은 없지만, 실무자의 잘못된 판단으로 예산낭비, 불필요한 성능포함, 전력화 차질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입 초기에 그저 주변에서 하는 말을 뜻도 모르면서 왔다갔다 하다 보니, 이제는 내 나름대로 주관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주관적인 입장에서 획득과 관련된 잘못된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2002년 7~12월 동안 미국 획득대학에서 미국의 획득정책을 간접체험하면서 한국의 획득제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한 가지 느낀 점은 한국의 획득체계는 미국과 획득환경이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절차를 밟고 있다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한국적 획득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음의 내용들은 실무자의 입장에서 미국제도의 장점 중에서 한국의 획득환경에 접목할 내용을 종합한 한국 획득체계 발전방안이다.
첫째, 획득 전문가 양성
업무처리시 경험요소와 학습요소가 필요하며, 이 두 가지가 적절히 조화되어야만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경험요소는 차치하더라도 해당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다면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고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실수 때문에 획득단가와 기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기존의 업무와 전혀 다른 성격의 획득분야만큼은 전문성과 경험이 조화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며, 지금의 전문형 제도의 보완과 병행하여 일반형 장교의 전문성 배양을 위한 이론이 아닌 실제 사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교육체제가 필요하다.
둘째, P3I 및 PIP 활성화
성능개량 또는 차기체계로 전환할 때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결국 소요제기시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되며, 그에 따라 기술력 부족, ROC수정, 획득기간 연장, 단가상승으로 이어지게 되고, 전력화시 진부화된 체계가 되고 만다. 따라서 소요에서 전력화까지 기간을 짧게 하되 P3I와 PIP에 의한 지속적인 성능개량을 병행한다면 현재처럼 무리한 소요요구가 줄어들고, 연구라인의 지속적인 연구활동 보장, 신기술을 체계에 바로 접목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리라 본다.
셋째, 현실을 직시한 현실적 획득업무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에 애착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주장한다면 임진왜란 당시 자기주장만을 내세웠던 선조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현 한국의 안보상황에서 제한된 전력비로 대북한 우위전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각 군·병과 이기주의를 버려야 한다.
한 가정의 예를 들면, 과시용으로 대형차를 구매할 수 있지만, 운용유지비 및 감가상각을 고려하여 수준에 적합한 소형차를 구매하는 것처럼, 군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의 안보를 위해 주한미군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사람은 사대주의에 사로잡힌 사람이고, 조국의 미래를 위해 해양과 우주로 뻗어나가야 한다는 사람은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인 사람이라는 논리는 맞지 않다고 본다.
첨단무기를 사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장비를 폐기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소요되는 운영유지비가 획득비의 몇 배가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국민의 한사람으로 우리 나라에 0000과 000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장비를 운영,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재원이 지속적으로 투자된다면 정작 다른 중요한 전력을 그만큼 획득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넷째, 효율적인 조직운용
분산과 집중의 효율성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획득 관련 인원과 자원이 부족한 현 상황에서 획득업무의 효율성을 증대하기 위해 일관성 있고 단순화된 획득업무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PPBEE를 하나의 기관으로 통합하여 업무효율성을 증대하고 사업의 일관성, 연속성 및 신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조직의 통합은 권한위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만약 권한위임이 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비능률적인 조직이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기능조직을 근간으로 매트릭스 조직과 프로젝트 조직을 업무에 따라 운용하고, 권한을 대폭 하향 조정한다면 그 조직은 능률적인 조직이 될 것이다. 육군의 경우 참모 2차장을 신설하여 육군 획득업무를 총괄하여 분산된 조직의 업무를 조정 통제한다면 보다 효율적인 획득업무 수행이 가능하리라 본다.
다섯째, 효율적인 소요제기
P3I와 PIP가 활성화된다면 현재처럼 “한번 만들 때 할 수 있는 것 다해 보자”는 식의 소요제기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현재처럼 “처음에는 호랑이였다가 나중에 고양이”가 되고 마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효율적인 소요제기를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전투실험이다. 비록 처음에는 많은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겠지만, 사전분석을 통해 검증된 소요제기는 시행착오 최소화로 결국 예산을 절감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능요구시 세계 최고의 성능보다는 주적/운용환경을 고려해, 최적의 성능만을 선별하여 요구하되, 통일 후를 대비한 P3I는 반영되어야 한다.
여섯째, 창의성과 융통성이 결합된 능동적인 획득업무
기업의 목표는 이윤추구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회사는 규정과는 상반되더라도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면 이윤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군의 경직화는 실무자에게 실패시 부여될 불이익을 생각하게 하며, 결국 모험이나 융통성보다는 규정에 의한 업무처리를 강요한다. 따라서 획득업무만큼은 일반 기업처럼 이윤(예산절감)의 논리가 우선되어야 하며, 감사대비용 업무보다는 실무자의 융통성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과 최선을 다한 실패에 대해서는 포용할 수 있는 아량이 필요하다. 가끔 그 해당 체계를 보면 그 당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일곱째, 획득 관련기관간 신뢰구축 및 방산업체 활로 개척
획득 관련기관과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하고, 방산물자 수출에 군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수요자의 입장에서는 같은 말이라도 판매자의 말보다는 사용자인 군의 말을 더 신뢰하기 때문이다. 또한 개발단계부터 잠재 대상 국가를 선정하여, 수입국가의 명분을 살리면서, 그 나라의 요구가 반영된 장비를 개발한다면 효과가 크리라고 본다. 현재 개발중인 차기전차, 차기장갑차와 이미 개발된 비호, 천마 등에 대해 군이 주도적인 홍보를 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이를 통해 군은 양산단가를 하락시키고, 방위산업체는 지속적인 라인유지, 국가적으로 외화를 끌어들이고, 군의 협력을 민간외교로 승화시킬 수 있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생산라인을 고려한 장기적인 소요를 창출하고 적절한 이윤을 보장하되 신뢰를 깨뜨린 업체에게는 그에 따른 벌칙을 수반해야 한다. 또한 사업 초기부터 관련조직의 전문성을 갖춘 실무자들로 구성된 IPT(제기능통합팀)을 운용하여 해당사업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스템 구축과 일단 시작한 사업에 대해서는 실무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미국의 대표적 획득실패 사례인 브래들리의 경우 개발비 17조 5천억, 기간 17년이 소요되었는데, 개발 기간 중 최고 결정권자들이 빈번하게 설계변경을 요구한 데 원인이 있었다. 따라서 개발 중인 장비보다는 개발준비(탐색개발) 때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여덟째, high-low의 적절한 조화 및 현존 전력 극대화
많은 사람들은 한국의 미래전력을 걸프전이나 이라크전의 화려한 첨단전력 위주의 무기체계를 구상하지만 그 기본은 현존 전력이 제대로 발휘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1992년 중대장시절 CAL 50, CAL 30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보직기간 동안 이것 하나만큼은 해놓고 말겠다고 노력했지만, 부품이 없다는 말에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이것이 빙산의 일각이기만을 바란다. 현존 전력 없이는 첨단전력도 없다. 한국에서의 장차전은 텔레비전에서 보는 화려한 전투로만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모두 알고 있다. 따라서 야전부대에서 제 성능 발휘가 제한되는 장비가 있다면 과감한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아홉째, 방위산업체 전문화 계열화 현실적 재검토
방산이라는 특수성이 있겠지만 어느 정도 경쟁의 논리를 반영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일정 금액 이상의 사업과 경쟁이 가능한 품목에 대해서는 과감히 전문화 계열화를 재검토하여, 사용자가 생산자에 끌려다니는 불합리는 없어야겠다. 전문기술을 가지고 국산화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미루는 업체가 있다면 이에 상응한 과감한 조처가 있어야 한다.
열째, 시뮬레이터에 의한 교육훈련
대부분의 전투원이 격년 단위로 급격히 바뀌는 현실에서 전력유지를 위해 실전감 조성, 훈련비용 절약, 교육효과 증대, 무엇보다도 동기유발을 시킬 수 있는 시뮬레이터에 의한 훈련이 실시되어야 한다. 유가가 불안하면 유류절약 대책, 도비탄이 발생하면 그에 대한 방지대책을 하달하기보다는 평상시에 시뮬레이터에 의한 훈련체계를 구축하여 전천후 훈련을 할 수 있어야 하겠다. 지루한 책은 몇 시간 이상 읽기 어렵지만 재미있는 게임은 밤을 지새울 수 있는 것처럼, 무의식 속에 전투력을 배양할 수 있는 시스템이 시뮬레이터에 의한 훈련이다. 시뮬레이터에 의한 훈련은 실장비 훈련의 47% 정도로 효과가 있고, 한국은 IT강국이며, 시뮬레이터의 뿌리는 IT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다.
열한째, 검증된 소요제기
획득의 시작은 소요요구(병과학교→교육사)일 것이다. 잘못된 소요는 개발간 연구개발비, 운용비 등에 영향을 끼치게 되므로 소요요구는 어느 분야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소요요구는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며, 이러한 검증은 경험적 요소가 아닌 과학적 기법을 적용하여 시행착오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투실험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현재의 전투실험은 형식에 치우친 듯 하다. 전투실험은 바로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지만 먼 장래의 시행착오 최소화와 미래전과 야전의 요구를 반영하는 시발점이라는 측면에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한 예로 연구 개발중인 00000은 최초부터 한국적 지형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소요요구로 탐색개발간 많은 논란을 야기시키고 있고, 결국 불필요한 인력 및 예산을 낭비하게 되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그 국가에 적합한 획득모델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여 적용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중요성을 인식하지만 대처에서는 능동적이지 못한 것 같다. 특히 한국은 견제에 치우진 나머지 획득 관련 각 기관을 분산 운용함으로써 그나마 부족한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정작 중요한 것들을 형식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위에서 제시한 내용은 주관적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실무자들은 공감할 수 있으리라 본다. 문제 해결은 문제점을 파악하는 데서 시작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획득 선진국의 장점 가운데 한국에 적용 가능한 것만을 취사선택하여 한국화한다면 지금보다는 좀더 효율적인 획득체계 구축이 가능하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