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7일까지의 기록

펌]무거운현실 경험했기에, 피해갈 수는 없다-프레시안 김은옥 2007/11/12 1562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71109145418

“무거운 현실 경험했기에, 피해갈 수는 없다”
[범국민행동의날 릴레이 기고ㆍ끝] 평화 사진작가’ 이시우를 만나다

2007-11-10 김진일/2007 범국민행동의날조직위원회 홍보위원

“아직도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가는 사람이 있어요?”

지난 5일부터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 3보 1배’를 진행하는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회원들을 보며 시민들은 의아한 말투로 묻는다.

당장 지난달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남북정상선언을 발표했고, 현대가 북한과 합의해 내년 5월부터 서울~백두산 직항로를 이용해 백두산 천지를 관광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북과의 만남이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요즘,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살아 숨 쉰다는 사실은 너무나 이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4월 19일 국가보안법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이시우 씨 역시 평범한 사진작가다. 수감 중 47일 동안 단식을 벌이며 국가보안법에 항거할 정도로 ‘신념이 투철한 투사’일 것 같지만, 그는 단지 분단의 아픔을 알리기 위해 비무장지대와 유엔사 등에 관한 사진을 찍었을 뿐이었다.

아픔 없는 아름다움은 없다

1992년 대선 이후 많은 활동가들이 현장을 떠났고, 이시우 씨가 활동하던 전국노동자문화운동단체협의회도 해체됐다. 그는 혼자 사무실을 지키는 외로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전망이 불투명하던 그 때 이 씨의 친구가 “여행이나 같이 가자”고 해서 머리도 식힐 겸 따라간 곳이 철원평야. 그곳 눈 내린 평야에 철새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이 씨는 희망을 다질 수 있었다.

이 씨는 그 때 “철새들이 하늘에 길이 있어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날아가면서 길을 만들어가듯이, 희망도 조건이 생길 때가 아니라 사소한 것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비록 전공이 사진이기는 했으나 이 씨가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였다. 철새들을 보며 처음으로 ‘내마음속 풍경과 바깥 풍경이 하나 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순간 함께 간 친구의 사진기를 빼앗아 사진을 찍은 것이다.

‘수년간 통일운동을 해왔지만, 길바닥에서만 통일운동을 하지는 않았는가.’

이시우 씨는 분단의 아픔을 지니고 있는 곳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민통선 사진을 찍기 시작하며, 그곳에 머물고 있는 대인지뢰, 고엽제 피해자 등 민통선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알게 됐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하면 풀 수 있을까.’ 오랜 고민 끝에 그가 내린 답은 ‘유엔사’였다.

결국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분단의 아픔을 확인하고 사진을 통해 그 아픔을 해결하고자 했던 이 씨의 사진들이 자신의 구속을 불러온 셈이다.

“시대착오적 망령이 아직도 우리를 뒤덮고 있다”

이시우 씨가 3보 1배를 진행하던 11월 8일, 소위 ‘반공 할아버지’들이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등을 외치며 그의 앞 길을 가로막았다. 그날을 기억하며 이 씨는 “그 할아버지들 역시 국가보안법에 의한 피해자인 셈이니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학 석좌교수는 자신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해방 직후 한국 사회에 대해 “걸어 다니는 거대한 시대 착오증”이라고 비웃었다. 이 씨는 “6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시대착오적 망령’이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직접적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마구잡이로 국가보안법의 칼날을 휘두르는 수구 보수 세력들도 피해자라는 것이 이시우 씨의 지론이다.

체포당시 이시우 씨는 국가보안법이 가져온 수많은 아픔들을 어떻게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풀리지 않는 문제들에 슬픔을 주체하지 못해 말하지 않다보니 먹지도 않게 되었다. 이 씨의 단식은 47일이 넘도록 이어졌다.

“무거운 현실 경험했기에, 피해갈수는 없다”

7년 만에 남북의 정상이 다시 만났다. 국가보안법 폐지에는 이보다 좋은 조건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조용하기만 하다. 이 씨는 “분위기가 뜨지 않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위축돼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당장 자신의 주변 사람들도 “국가보안법 폐지가 절박한 과제이긴 하지만 그 싸움을 또 하냐”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라는 것이다. 지난 2004년 1000여 명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였다. 하지만 폐지도, 재개정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 겨울 칼바람 속에서의 수많은 사람들의 단식도 없애지 못한 국가보안법이라는 걸림돌을 무엇으로 제거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머뭇거리는 것은 그런 패배감 때문이라는 것이 이 씨의 비판이었다.

“조건이 만들어지길 바라기 보다는 조건을 만들어 가야합니다.”

이 씨는 다시금 신발 끈을 동여매고, 국가보안법과의 싸움에 뛰어들었다.

9월 14일 보석으로 출소하면서 이 씨는 찬 겨울을 철창 안에서 보내야 할, 남아있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단다. 그는 최근 감옥 안에서 집필하던 책을 마무리했다. 이 씨는 “책도 끝났으니 이제 국가보안법과의 싸움도 마무리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가 또 다시 국회 앞으로 향하는 이유다.

이 땅 모든 이들을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이라는 굴레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마음 깊숙이 그를 짓누르는 슬픔을 없애기 위해….

이시우작가 국회앞에서 `3보 1배` …., [1] 김은옥 2007/11/17 1639

이작가가 ‘국가보안법,헌법3조에 대한 명상’ 3보1배를 무기한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침 국민은행앞에서 ‘강사노조’ 가 천막농성을 하고있어, 잠자리는 그곳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격려 바랍니다.

김은옥 [2007/12/14] :: 국회앞을 떠나 파주 임진각으로 삼보일배를 향하고 있는 이작가를 대신하여 국회앞에서 계속 `삼보일배`를 하고 계시는 오철근 선생님께도 많은분들의 격려와 지지를 바랍니다.

펌]경기도미술관 기획전 ‘경기, 1번국도’ – 한겨레 [1] 김은옥 2007/11/17 1521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250430.html

이시우,김은옥 선생님께 [4] 인천평통사 2007/11/19 2248

추운날씨에도 강화기행 해설을 해주신 이시우 선생님과 함께하신 김은옥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진이 너무 이쁘게 나와 올렸습니다.

그동안 강화를 여러번 다녀 왔지만 별로 기억에 남지 않았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듯이, 이시우선생님의 깊이있는 설명과 함께 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이 보였습니다. 특히, 부근리 기울어진 고인돌에서의 통일미학은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추운 날씨 만큼이나 신선한 기행이었습니다.

벨기에 세계 50개국 평화회의에서…….. 김은옥 2007/11/27 1652

3년마다 열리는 팍스 크리스티(Pax Christi International) 평화회의에서 한국의 평화운동가 이시우작가와 그의 작품이 소개되었습니다.

이번 회의는 벨기에 토르(Torhout)에서 10월 29일-11월 4일, 50개국 120여명의 평화운동가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는데, 한국에서는 변 연식 평통사 공동 대표가 참석하였습니다.

팍스 크리스티는 전세계에 약 50개국 6만여명의 회원을 가진 평화 군축 운동 단체이며,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가 있습니다

펌]’인기협 창립5주년, 이시우 특별상 수상 -오마이뉴스 김은옥 2007/11/23 2873

“인터넷언론, 다시 국민 속으로”
인터넷기자협회 창립5주년, 후원의 밤 열어

이철우 (cyberedu)

▲ 인기협은 19일, 한국언론회관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창립 5주년, 인터넷언론 후원의 밤 : “인터넷언론이 세상을 바꾼다”>를 열었다.
ⓒ 이철우 인터넷기자협회

“취재선진화 논란에서 보듯 지금 국민은 언론을 신뢰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의 마음을 읽고 국민의 피 속으로 심장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반성과 혁신, 참여와 소통으로 국민이 진정 원하는 바를 담아내는 언론의 책무를 다할 것입니다.” – 이준희 인기협 회장

한국인터넷기자협회(2002년 9월 28일 창립, 인기협, 회장 이준희)는 ‘창립 5주년, 인터넷언론 후원의 밤 : 인터넷언론이 세상을 바꾼다’를 19일 한국언론회관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열었다.

인기협은 이날 조대기(1대)·윤원석(2~4대) 전 회장에 공로패를 전했으며, 이시우 통일뉴스 전문기자(유엔사 문제등 미군문제·국가보안법 폐지 노력), 윤창빈 언론재단 신사업추진단장(남북통일언론인대회 성사), 이주노동자방송국(이주노동자 권익향상·인권보도 등)에 특별상을 주었다.

이시우 기자는 “아직도 재판이 진행 중인데 재판부는 내가 기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며 “오늘 기자로서 상을 받아 고맙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윤창빈 단장은 “6·15언론본부에 상을 준 것으로 알겠다며 앞으로도 인기협과 함께 통일언론운동에 주력할 것”이라 강조했다.

박현주 이주노동자방송국 대표는 “오는 12월 7일 네팔·태국·중국·러시아어 등 7개 국어로 운영하는 사이트를 오픈한다”며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사회 내에서 올바른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 말했다.

각계 인사들의 축하와 격려도 이어졌다. 아세안 3개국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축사를 보내(이순용 청와대 홍보수석 대독) “인터넷은 참여 민주주의 새 장을 열고 있으며, 그 변화의 중심에 인터넷 기자가 있다”며 인터넷언론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어 ‘취재선진화 방안’을 거론, “갈등도 있고 정부도 힘이 들지만 미래를 위해 곡 필요한 과정이라 확신한다”며 “언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 미래는 달라질 것이며,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 책임 있는 대안 제시로 경제·사회 모든 분야가 한층 성숙해질 것”이라 밝혔다.

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는 “대선정국에서 보수신문들은 정파성에 매몰되어 진실을 외면하고 후보 정책검증은 뒷전”이라며 “언론 본연의 기능인 바른 정보 전달로 국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여론형성에 주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소수 독점신문이 힘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며 “언론개혁 운동의 새로운 동력을 찾아야 할 지금, 인기협이 새로운 기관차로서 힘차게 이끌어 달라”고 당부했다.

오연호 인터넷신문협회장은 “지난 8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렸다면, 이제 지속가능한 모델을 생각해야할 때”라며 “수익모델 뿐 아니라 사회에 대안을 제시하는 일을 인기협과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대선후보로는 유일하게 사회당 금민 후보가 참석, 담론의 “다양성 보장에 인터넷언론의 기여를 기대한다”며 축하인사를 전했으며, 정동영 통합민주신당 후보도 축전을 보내왔다.

이날 행사에는 김서중 민언련 대표, 장영훈 실발위 위원장, 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 정일용 한국기자협회장,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 오연호 인터넷신문협회장, 이장희 외대 대외부총장을 비롯한 70여명이 참석했다.

이시우 선생님 이런 부탁^^: [4] 인천겨레하 2007/11/28 2227
몇일간 계속 통화가 되지 않아서 많이 바쁘신가 했는데, 출소하자마자 또 이런 고행을 하고 계실 줄이야! 무한한 존경을 표합니다.
이런 부탁을 해도 되는지 모르지만 염치 불구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인천대 학생 70명이 12월 21일(금) – 23일(일) 금강산 기행을 갑니다. 그래서 12월 20일(목) ‘금강산에 얽힌 역사’에 대해 강의를 부탁드릴려고 합니다. 인천대 저녁 7-8시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이시우 [2007/12/09] :: 그렇게 노력을 해주신다니 고맙습니다. 시간을 맞추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인천겨레하 [2007/12/03] :: 선생님 요즘 많이 춥습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20일 일정과 관련해서는 이시우 선생님을 꼭 모시고 싶고 학생들 일정상 8시 이후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단 8시에 하는 것으로 하고 늦어질 것을 대비해 미리 대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모색해 보는 것이 어떨지요?

인천겨레하 [2007/11/30] :: 예, 논의해 본 이후 다시 올리겠습니다.

이시우 [2007/11/29] :: 20일은 재판이 있는데 예정대로만 끝나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예정대로 안되면 제가 약속을 지킬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른날을 잡거나, 20일 9시정도로 시간을 잡는 것이 가능할지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1] 다큐연합 2007/12/03 1601
이시우 선생님 안녕하세요.
대학생다큐멘터리사진연합입니다.

국가보안법의 마지막 희생자가 되겠다던 선생님의 말씀.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투쟁하시는 모습앞에 학생으로서
함께 자리하지 못하는것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또한 선생님이 사진가라는 것에 왠지모를 자부심도 생깁니다.

저희는 요즘..
겨울 방학을 맞이하여 제 3회 대학생사진캠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미리 찾아뵙지 못하고 이렇게 부탁을 드려 면목없습니다.

강사제안서는 첨부드립니다.
조만간 직접 찾아뵙겠습니다.
건강하십시요.
이시우 [2007/12/09] :: 초청감사합니다. 지난여름 여러분들의 지지와 격려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2008 겨울 대학생 사진캠프 강사 제안서>

발신 : 대학생다큐멘터리사진연합
수신 : 이시우 선생님

안녕하세요. 대학생다큐멘터리사진연합입니다. 지난 겨울과 여름방학에 이어 이번 겨울방학 때 제 3회 대학생사진캠프를 개최하고자합니다.

* 단체 소개
– 대학생다큐멘터리사진연합(club.cyworld.com/association7)
과학의 발달이 이루어낸 사진대중화는 좋은 장비와 예쁘고 보기 좋은 사진의 대중화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사진대중화는 사진으로 시대를 이야기하고, 사람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사진대중화입니다.
대학생다큐멘터리사진연합(약칭:다큐연합, 대표:김영식)은 각 학교별로 침체되어있는 다큐멘터리사진에 대한 관심을 환기키고, 사진을 공부하는 대학생들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창조적 이미지 창출과 진보적 가치실현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대학생다큐멘터리사진연합은 2007년 11월 4일 경기·충청지역(경민, 신구, 상명, 중앙)의 사진전공생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되었습니다. 한국 사진역사상 최초로 사진전공학생들이 연합해 사진가 초청강연(성남훈)을 개최하면서 준비위원회를 발족하였습니다. 서울에서 개최된 강연에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였으며, 자발적으로 많은 사진가분들이 함께하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성남훈 사진가를 시작으로, 조승래, 강재훈, 이상엽, 한금선, 이재갑, 정주하, Area. Park(박진영), 전문수 사진가 분들이 현재까지 다큐연합이 개최한 자리에서 강연을 해주셨으며, 그 외에 많은 사진가분들께서 응원해주시고 있습니다.

* 2008 겨울 대학생 사진캠프(3회)
– 일시 : 2008년 1월 31일~2월 4일(4박5일)
– 장소 :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 주최 : 대학생다큐멘터리사진연합, 한국대학생문화연대
– 참가예상인원 : 30명
– 기획방향
: 다큐멘터리사진에 대한 관심환기와 이해증진을 위해 강연과 촬영실기가 어우러지면서 실제 강연을 통해 배 운점을 촬영을 통해 습득하도록 기획.
– 현재 섭외된 강사 : 최민식(사진가), 이상일(사진가), 조승래(경민대 사진과 교수)

* 이시우 선생님께 제안드리는 부분
– 2008년 1월 31일 ~ 2월 4일까지 경기도 안성 중앙대에서 진행되는 대학생사진캠프에 강연을 부탁드립니다.
– 강연주제는 작가초청강연 형식으로 진행하면서 선생님께서 가지고 계신 사진작업 및 철학, 대학생들에게 해 주고픈 이야기 등으로 진행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국가보안법의 부당성을 사진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이해하 기 쉽도록 말씀해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타 해주고 싶으신 강연주제가 있으시다면 적극 반영하겠 습니다. 참가자들은 사진을 전공하거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대중입니다.
– 강연일자는 아래 “일정표”의 “강좌 2”를 맡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 통상 강사분들게 드리는 강연비는 10만원입니다. 너무 적은 액수라, 공식적인 강연비라기 보다 이동경비라고 해야 맞을듯합니다. 학생들의 자발적 행사인만큼 강연비가 많이 약소하지만, 강연을 부탁드립니다.

* 일정표(가안)

1.31(목)
2.1(금)
2.2(토)
2.3(일)
2.4(월)
07:00

기상, 세면, 운동
기상, 세면, 운동
기상, 세면, 운동
해산
08:00
아침식사
아침식사
아침식사

09:00
강좌 2강
안성지역 촬영2
전체특강

10:00
11:00
12:00
점심식사
점심식사

13:00
안성지역 촬영
졸업식 및 발표회

14:00
입학식
15:00
숙소배정
16:00
반별 프로그램
17:00
단합대회
18:00
저녁식사
저녁식사
저녁식사
대동놀이

19:00
강좌 1강
강좌 3강
강좌 4강
20:00
전체뒷풀이

21:00
22:00
반별 프로그램
23:00
반별 프로그램
반별 프로그램
24:00
취침
취침
취침

* 지난 캠프 소개
>> 1회 대학생 사진캠프(2007/1)는 안성지역 6개 테마(농촌, 대안학교, 의료생협, 하천, 역돔양식장, 사회복지 시설)를 가지고 캠프 참가자들이 직접 촬영하고, 촬영한 사진리뷰 및 사진가 초청강연으로 3박 4일의 일정 으로 진행하였습니다.
강사 : 강재훈(한겨레 신문사 선임사진기자), 조승래(경민대 교수), 이상엽(이미지프레스 편집장)

>> 2회 대학생 사진캠프(2007/7)는 촬영실기 없이 강연으로만 2박 3일동안 경기도 용인에서 진행하였습니다.
강사 : 강재훈(한겨레 신문사 선임사진기자), 정주하(백제예대 교수), 한금선(다큐멘터리사진가), 전문수(민중 의 소리 사진기자)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캠프에서 꼭 뵙길 희망합니다.
꾸뻑!

문의 : 김영식 010-9808-1894

2007. 12. 3

대학생다큐멘터리사진연합

민주노총부산지역본부 입니다. [2] 윤택근 2007/12/03 2890
이시우 작가님.
민주노총 부산본부 통일위원장 윤택근 입니다.
연일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투쟁의 강행군에 경의를 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12월 26일 저녁 7시경에 국가보안법철폐에 관한 강의를 부탁할/까 합니다.
지역통일 일꾼들과 역사기행 참가자들 그리고 전교조 통일학교 국가보안법 재판중인 모든 동지들을 모시고 투쟁의 말씀을 듣고 싶어 연락드립니다.
제 연락처은 016-9663-9774 입니다.

이시우 [2007/12/09] :: 삼보일배명상 일정 때문에 망설였습니다만, 부산지역에서 그간 도와주신 분들을 꼭 만나뵙고 인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강의보다는 인사드리러 간다 생각하고 가겠습니다. 25일 전날쯤에 자세한 사항은 전화드리겠습니다.

펌] 알림}제21차 테마사랑방 – 유엔사, 왜 서울평통사 2007/12/08 1691

13차 재판 방문 후기 [1] 생명평화연 2007/12/07 1970
어제 13차 재판을 방청했습니다.

이시우 선생님은 재판이라 부담이 많이 되실 텐데도 손님들을 맞이하실 때는 무거움을 벗어 던진 웃음과 미소로 환영하셨습니다.

재판 중 증인으로 오가시는 분들을 챙기고, 방청객들을 맞이하고, 재판 진행 하나하나에 신경쓰신 김은옥 선생님.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증인에게 “북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지금 사상검증하는 것이냐”며 핏대를 세우면서 저지하신 변호사님 등 수고하신 여러 변호사님들.

몇십년 전에 아무런 심리없이 반국가단체로 낙인찍혔던 한민통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와서 감회가 새롭다던 송형근 한통련 부의장님.

그리고, 미군부대에서 일하다가 지뢰로 한쪽 다리를 잃고 평생을 살아오신 이덕준 님.

이 사건과 만남을 잘 기억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잘 나누어야겠습니다.

선생님 파이팅입니다~~ 파이팅

펌]이시우 공판에, 한통련 간부 한국 법정 첫 출석 [3] 김은옥 2007/12/07 2240

한통련 ‘반국가단체’ 反證 나와
이시우 공판에 증거제출, 한통련 간부 한국법정 첫 출석

2007년 12월 06일 (목) 18:35:05 정명진 기자 mjjung@tongilnews.com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의장 김정부)이 ‘반국가단체’라는 판결의 부당성을 입증할만한 증거물이 법원에 제출됐다.

▲일본 중의회 외무위원회 회의록을 보도한 1980년 11월 14일자 사회신보. [자료제공-한통련]

6 일 오전 10시 30분 서울형사지법 417호에서 열린 사진작가 이시우 13차 공판에서 변호인단은 ‘일본 중의회 외무위원회 회의록’ 등 증거자료를 재판부(27형사부, 재판장 한양석)에 제출했다.

이는 이 작가가 일본에서 ‘반국가단체’로 규정되어 있는 한통련 간부와 접촉해, 국가보안법 8조(회합.통신)를 위반 했다는 기소 내용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다.

이날 변호인단이 제출한 주요 증거자료는 ’1980년 11월 5일자 일본 중의회 외무위원회 회의록 및 관련 보도 기사’, ’1970년 4월 10일자 민단 도쿄본부 지방위원회 회의록’, ‘안상종 씨 증언서’ 등이다.

이 자료는 ’1970년 4월 당시 한통련 핵심간부인 곽동의 상임고문(전 의장)을 대동해 북에 가서 교육을 받게 했다’는 ‘자수간첩 윤효동’의 법정 증언에 대한 곽 상임고문의 알리바이를 제공하고 있다.

윤효동은 ’1978년 재일 한국일인 유학생 김정사 간첩사건’ 재판에서 이같이 증언했으며, 이 재판의 대법원 판결문에서 한통련은 처음으로 ‘반국가단체’로 규정됐다.

그러나 지난 11월 ‘국방부 과거사위’는 ‘김정사 간첩사건’과 관련 ‘간첩행위는 조작된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한통련 손형근(일본명 손마행) 부의장은 “(김정사 간첩사건) 대법원에서 (윤효동의) 증언 외에는 관련 증거 제출되지 못했다”이라며 이 증언이 한통련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거의 유일한 증거라고 말했다.

한통련을 ‘반국가단체’로 보는 또 하나의 증거로 주일 한국대사관의 ‘영사증명’이 있지만, 이 역시 윤효동의 일방적인 진술을 담고 있다.

▲1970년 4월 10일자 민단 도쿄본부 지방위원회 회의록. ‘곽동의’ 상임고문의 발언이 나온다(빨간줄). [자료제공-한통련]

3 건의 증거자료는 곽 상임고문이 1970년 4월 일본에 있으면서 활동 중이었으며, 이 기간 동안 일본 출국 사실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민단 도쿄본부 지방위원회 회의록에는 1970년 4월 10일 곽 상임고문이 회의에 참석해 발언한 내용이 적혀 있으며, ‘안상종 씨 증언서’는 곽 고문이 4월 20일 교통사고를 당한 안상종 씨를 문병한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특히, ’1980년 11월 5일자 일본 중의회 외무위원회 회의록 및 11월 14일자 사회신보 보도내용’에 따르면, 당시 외무위원회에서 도이다카코 중의원이 출입관리국 관계자에게 ’1970년 1월 1일부터 1970년 12월 31일까지 곽동의 고문의 출국 기록이 있느냐’고 질문했고, 이 관계자는 ‘출입국 기록이 없다’고 대답한 사실이 확인됐다.

한편, 이날 한통련 간부가 한국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한통련의 ‘반국가단체’에 대한 심리가 이뤄진 것은 처음이다.

한통련 손 부의장은 이날 증언에서 “30년 전 대법원에서 우리가 아무 관계없이 반국가단체로 규정됐다. 그 때는 독재시대였고, 심리도 충분히 못했다”며 “기회가 없었는데 이제야 여기서 증거도 제출하고 심리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한국법정에 선 소회를 밝혔다.

13차 재판 다녀왔습니다^^ 김은옥 2007/12/10 2534

추워진 날씨속에서 파주 임진각으로 ‘국가보안법, 헌법3조에 대한 명상’ 3보1배를 하고 있던, 이시우작가의 13차 재판이 있었습니다.

이날 재판은 변호인측 증인심문이 예정되어 있었고, 오전 10시30분 일본에서 오신 손현근(재일동포) 한통련 부의장, 조재국(연세대교수)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KCBL) 대표, 이덕준(대인지뢰피해자, 파주 금파리)증인등의 순으로 진행 되었습니다.

먼저, 30년전 박정희군부독재시절 대법원에서 한통련을 ‘반국가단체’로 규정되어 지금까지 잘 못된 심리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손부의장은 ‘이시우’작가를 계기로 내조국한국법정에 처음 나오게 되었다며, 그간 한통련에서도 군부독재시절 잘못처리된 일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현재 일본에 살면서 20대초반부터 평생을 한통련관련 실무를 맡고 있지만 대한민국 남쪽에 고향을 두고 있는 손부의장은 이날 재판에서 ‘이시우선생님분과 같은 평화활동가분들이 칭찬은 못 받을 망정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하는 ‘대한민국 국가보안법’은 이해할 수 없다며, 검사측 반대심문에 강하게 따져 물으셨습니다.

뒤이은 조재국교수님의 증언은 검찰이 기소한 내용중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와 함께 대인지뢰실태조사보고서를 만들당시 실태조사팀장으로의 이작가의 역할과 임무의 정당성에 대해 증언해 주셨습니다. 또한, 조재국교수는 ‘KCBL’에서 ‘DMZ 주변지역 지뢰매설실태조사’를 하는 과정에 있을때도 한국정부의 외교통상부와 당시 미국 클린턴 전대통령이 “한국에 민통선주변 지뢰 피해자는 단 한명도 없다”는 발언에 대해 “좀 더 정확하고 자세한 실태조사를 해야 했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이시우작가의 민통선주변 지뢰사진과 지뢰피해자들의 증언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으나, 실무 사진담당 및 실태조사팀을 이끄는 총책임자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큰 역할을 한 당사자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재국교수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세번째 증인의 ‘이덕준’선생님은 현재 파주 금파리에서 40여년을 사신 80이 넘으신 할아버지입니다.
당시 나이 49세때 ‘프라스틱 지뢰’에 의해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시게 되었습니다. 1979년 8월 14일 사고당시 이북에서 피난 내려와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동네 야산에서 마초를 캐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는데, 사고 당일도 마초를 캐러 올라갔다가 사고를 당하였다. (참고서적;끝나지 않은 전쟁 ‘대인지뢰’ 110~111쪽 / 한국교회여성연합회;발행, 사진;이시우)

또한, 이덕준선생님은 미군들이 지뢰를 매설한 사실을 알고 계셨는데, 미군기지내에서 식당을 하던 때가 있었는데, 당시 미군들에 의해 지뢰 매설작업을 할때 작업하는 미군병사들의 식사를 제공하면서 그 사실을 듣고, 보게 되었다고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전 재판은 모두 마무리 되었고, 오후에는 이준희, 이미화, 정명진, 김재규씨의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오후 재판 첫 증인인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이준희회장은 이시우작가가 ‘인기협’에 소속되어 있는 통일뉴스 정식 기자였으며, 함께 취재를 다녔던 미군기지내 사진촬영에 대한 합법성과 정당성에 대한 부분들과 지난 11월 19일 ‘인기협’창립5주년 기념행사때 ‘노무현 대통령’의 축하메시지를 받는등, 공신력있는 언론매체임을 재 확인하여 주셨습니다,

‘비폭력 평화물결’ 이미화 사무처장님은 2005. 7.27 ‘한강하구의 평화의 배 띄우기’행사와 관련한 증언을,

통일뉴스 정명진 기자님은 지난 2006년 3월 30일 충남 태안군 소원면 소재 만리포해수욕장에서 진행된 한미연합전시증원연습 및 독수리연습(RSOI&FE) 취재에 관한 증언을,

당시 ‘민화협 대외협력업무’와 현재 통일맞이 사무차장을 맡고 있는 김재규씨는 이시우작가가 열화우라늄탄 문제와 관련 주일미군기지방문을 위해 일본을 갔을 때, 박재화 민족학교 교장선생님을 소개받은 과정의 부분들 증언을 해 주셨습니다.

이날 오전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하기 위해 불편한 다리에도 불구하고, 80평생 처음으로 이런곳에 와 보신다고 하시던 이덕준(지뢰피해자)선생님과 멀리 일본에서 이날의 재판을 위해 하루전날 입국하신 한통련 손부의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그리고, 바쁜 와중에도 재판시간을 맞추어 함께 하여주신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오전부터 오후까지 올바른 법집행을 위해 애써 주시는 한양석판사님을 비롯한 재판부와,

이작가의 변론을 위해 애써 주시고 계시는 최병모변호사님을 비롯한 변호인단에게도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오전부터 오후 늦게까지 재판을 함께 방청하여 주신 문정현 신부님외 모든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럼 14차 재판때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펌]“반국가단체가 아님을 증명하겠다” – 통일뉴스 [2] 김은옥 2007/12/07 2796

“반국가단체가 아님을 증명하겠다”
<인터뷰>‘한통련’ 간부로 한국 법정에 선 손형근 부의장

2007년 12월 07일 (금) 16:55:36 정명진 기자 mjjung@tongilnews.com

▲’한통련’ 손형근 부의장. [사진-통일뉴스 정명진 기자]

‘반국가단체’로 규정되어 있는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의 한 간부가 한국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국가보안법은 ‘반국가단체의 간부나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자는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엄포하고 있다. 판례에 따르면, 북한도 국가보안법 상 ‘반국가단체’다.

이런 무시무시한 죄명은 한 ‘자수간첩’의 증언 한마디로, 제대로 된 심리조차 없이, 대법원 판결에서 결정됐다. 1978년 박정희 정권 말기 때 일이다.

‘한통련’ 손형근 부의장은 한통련 간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한국법정에 서서 ‘한통련의 반국가단체 규정의 부당성’을 항변했다. 검찰의 ’70년대식’ 증인신문에도 일본어 억양이 섞인 한국말로 또박또박 차분하게 반박해 나갔다.

그동안 모아놓았던 증거자료도 20년 만에 한국 법정에 제출했다. 바로 ‘자수간첩’ 윤효동의 ’70년 4월 한통련 핵심 인물은 곽동의를 대동 방북시켜 북한에서 교육을 시켰다’는 증언을 뒤엎을 증거다.

손 부의장이 이번에 한국법정에 제출한 주요 증거 자료는 ’1980년 11월 5일자 일본 중의회 외무위원회 회의록 제6호 및 관련 보도 기사’, ’1970년 4월 10일자 민단 도쿄본부 지방위원회 회의록’, ‘안상종 씨 증언서’ 등 3가지다.

그는 법정을 나와 “우리가 오랫동안 반국가 단체로 규정되고 있어서 고생을 많이 했다”면서 “이번에 이시우 씨 재판을 통해서 우리의 주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할 기회가 되어서 감개무량하다”며 미소를 보였다.

6 일 오후 1시, 사진작가 이시우 씨 13차 오전 공판을 마치고 법무법인 ‘정평’ 사무실에서 손 부의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이시우 구원하는 것과 동시에 반국가 단체가 아님을 증명하려고 결단”

▲증거자료를 설명하고 있는 손 부의장. [사진-통일뉴스 정명진 기자]

□ 통일뉴스 : 한통련 간부로는 처음으로 한국법정에 섰다. 소감은?

■ 손형근 부의장 : 우리가 오랫동안 ‘반국가단체’로 규정되어 있어서 많이 고생을 했다. 그리고 좋은 기회가 있으면 우리의 누명을 벗겨야 한다고 생각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런 과정에서 이번에 이시우 씨 재판을 통해서 우리의 주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할 기회가 되어서 감개무량하다.

□ 검찰 신문에 대한 느낌은?

■ 이제까지 우리를 아무런 근거도, 증거도 없이 용공단체, 반국가 단체로 몰아왔다. 그런 논리에 대해서 다시한번 들은 기회가 됐다. 들으면 들을수록 논리 모순이고, 그리고 아무런 근거도 없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그런 논리는 독재 시대에서나 통하는 것이지, 6.15공동선언이 발표되고 올해는 10.4 공동선언이 발표된 그런 시대에서 전혀 통하지 않는 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 이시우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게 된 계기는?

■ 올해 지난 5월쯤 다른 일로 서울로 와 있었다. 그때 최병모 변호사를 만나게 됐다. ‘최근 평화 운동가이자 사진가인 이시우 씨가 체포당했다. 기소문을 보니, 이시우 씨가 한통련 간부와 만났다. 그것이 기소이유 중 하나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최 변호사가 이번 이시우 재판에 한통련 간부가 나와서, 이런 기회에서 한통련의 결백을 법정에서 증명하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그래서 일본에 돌아가서 여러 회의를 통해서 대법원 판시에 대한 재심 기회가 없는 가운데, 이번 이시우 재판이 우리의 결백을 증명하는 굉장히 좋은 기회 아니겠느냐라고 해서, 많은 토론 결과 증인으로 참가하자고 결정했다. 이 재판을 통해서 이시우 씨를 구원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가 ‘반국가단체’가 아님을 증명하려고 결단했다.

□ 최근 한국에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됐다. 현재 반국가단체 규정으로 인한 활동의 제약은 어느 정도인가?

■ 한국에서 활동하기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내 경험에도 감시나 미행도 없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우리가 지금 6.15 시대를 맞이해서 무엇보다 재일 동포 화합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고, 동포화합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가 ‘반국가단체’이기 때문에 곤란에 부닥치고 있다.

어떤 것인가 하면, 민단에서는 한통련을 ‘반국가 단체’를 이유로 민단에 대한 ‘적성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그것을 가지고 한통련의 모든 접촉이나 제안을 거부하고 있다. 그것이 문제가 되어서 동포화합이 굉장히 어려운 사항에 놓여 있다.

“곽동의, 출입국 기록 없다”

▲ 1970년 4월 10일자 민단 도쿄본부 지방위원회 회의록. ‘곽동의’ 상임고문의 발언이 나온다(빨간줄). [자료제공-한통련]

□ 이번에 한국재판에 제출한 증거에 대해 설명해 달라.

■ 우리가 반국가 단체로 규정된 판결은 1978년 ‘재일한국인유학생 김정사 간첩사건’이 발생했는데, 거기 대법원 판결에서 한통련이 ‘반국가단체’라는 판시가 나왔다. 그 판결 안에서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단, 한통련은 ‘반국가 단체’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재판과정을 나중에 알게 됐지만, 윤효동이라는 재일동포가 자기가 간첩이라고 중앙정보부에 자수했다가 법정에 나왔단다. 김정사 재판에 나와서 자기가 ‘곽동의를 대동 방북시켜 북한에서 교육을 시켰다’ 이렇게 증언을 했다. 그 증언이 유일한 증거로 우리가 ‘반국가단체’로 규정됐다.

우리가 ‘반국가단체’가 아님을 증명하려면, 윤효동 증언의 모순 지적해야 한다. 윤효동이 ’70년 4월경 곽동의 선생을 데리고 평양에 갔다’고 증언했으니까, 그 기간에 곽동의 씨가 해외에 가지 않고 일본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찾았다.

마침, 1970년 4월 10일 민단 도쿄본부 지방위원회라는 회의가 있었는데 그 회의록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회의록 속에 곽동의 씨가 내리마지부 민단 간부로 출석해 발언을 했다는 문장이 있다.

또 하나는 민단 내리마지부의 직원으로 근무하던 안상종 씨가 그 당시 교통사고를 당해서 문병하러 온 곽동의 씨에게 사고 처리를 위한 교섭대리를 부탁했다. 그것이 확실한 사실이고, 안상종 씨가 증언서까지 써서 도장도 찍었다.

내리마지부 회의록에는 70년 4월 20일 안상종 씨가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했다고 기술돼 있다. 그러니까 4월 10일은 도쿄본부 지방위원회 회의에 곽동의 씨가 참석한 자료가 있고, 또 하나는 4월 20일에 안상종 씨가 교통사고 당해 문병 갔다 온 사실이 드러났다. 그것이 확실한 알리바이가 된다고 해서 증거로 가져왔다.

▲일본 중의회 외무위원회 회의록을 보도한 1980년 11월 14일자 사회신보. [자료제공-한통련]

□ 1980년 11월 5일자 ‘일본 중의회 외무위원회회의록 제6호’도 설명해 달라.

■ 1980 년에 김대중 씨가 사형판결을 받아서 생명위기에 직면해 있을 때다. 그때 김대중 씨를 구출하기 위해 일본 사회당이 활발히 활동했다. 그 중에 도이다카코 중의원이 외무위원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질문을 했다.

어떤 내용이냐면, 출입관리국 간부들에게 ‘곽동의 씨가 1970년 1월 1일부터 1970년 12월 31일까지 해외에 나간 기록이 있느냐’라고 물었더니, 그 간부가 ‘출입국 기록이 없다’ 이렇게 발언했다.

또 하나는 윤효동에 대해서도 도이다카코 의원이 질문했다. ‘윤효동이라는 사람이 4번 출국했다고 발언하고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더니, 간부는 ‘3번만 나갔다’ 이렇게 대답을 했다. 그래서 윤효동 발언은 신빙성이 없다. 이런 것이 증명됐다.

□ 이런 자료는 언제 수집된 것인가?

■ 사건 직후에 수집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반국가단체’라고 규정되어서, 그 이후 알아보니 ‘윤효동 사건’이 나와서 그 사람 증언이 ‘반국가단체’의 근거가 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증명하려고 했는데 그 당시 독재정권 하에서 발표하기는 어려웠다.

한통련 대책위원회가 민변 중심으로 2000년에 결성됐었다. 거기서 이런 자료를 분석해서 뭔가 법적으로 우리가 ‘반국가단체’ 아님을 증명하자고 연구했다. 그러나 지금 단계로서는 대법원 판시를 부정하는 수단으로는 어려운 것 같다는 그런 결론이었다. 그래서 이런 자료가 있다는 것을 발표할 기회가 없었다.

대법원 판결이 부당하다고 해서 쉽사리 재심 공판이 열리게 되면, 좋겠지만 법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사실상 우리가 ‘반국가단체’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유 왕래, 여권 발급을 이뤄내자고 해서 우선적으로 자유왕래 권리를 획득하기로 했다.

그 노력이 있어서 2003년 맨 처음으로 한국에 가게 됐다. 그 후에도 우리가 아무래도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법정에서 그것을 부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까지 그 기회 없었지만 오늘 맞이하게 됐다.

□ 다른 자료도 있나?

■ 이번에 그동안 수집한 자료는 다 가지고 온 것이다.

“이시우 판결, 전면적으로 협력할 생각”

□ 이후 이시우 공판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

■ 이시우 씨가 이번 기소되어서 우리가 공판에 나오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이시우 씨가 평화를 위해서 통일을 위해서 무엇을 해왔는지, 자세히 알게 됐다. 알면 알수록 굉장히 우수한 활동가라고 평가할 수 있고, 그리고 평화를 위해서 많은 공헌을 해 왔다고 보고 있다.

우리는 이시우 씨가 무죄 판결을 얻어내기 위해서 많이 협력해야 한다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도 무엇이든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전면적으로 협력할 생각이다.

□ 한국법정이 다시 출석을 요구해도 응할 것인가?

■ 물론이다.

□ 이시우 씨 재판에 대한 기대는?

■ 굉장히 중요한 재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 한반도를 둘러싸고 평화문제가 많이 제기되고 있고, 우리가 통일하기 위해서도 평화를 이루어야 되는데, 먼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시우 씨가 사진이나 문장을 통해서 지금 한반도의 군사문제에 대해서 상세히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은 가치가 크고, 그런 일이 법적으로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재판에서 이시우 씨가 해온 일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앞으로 이시우 씨가 자유로운 입장으로 이제까지 해온 것처럼 계속 활동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도 군사문제 대해서 부담 없이 연구나 활동을 할 수 있게끔 될 수 있다.

동시에 한통련의 합법성과 정당성이 인정되고 한통련이 더더욱 광범위하게 널리 활동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 두 사건 모두 국가보안법이 문제인데, 이에 대한 대응은?

■ 한통련이 제일 먼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다. 그래서 35년 한통련 역사가 있는데, 내내 국가보안법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제 남북화해협력시대를 맞이해서 우리 주장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이것은 없애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해서는 각계각층 여러 분야에서 발언이나 행동이 있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철폐해야 한다. 철폐될 조건이 굉장히 갖춰져 있다고 보고 있는데, 그 조건을 살리면서 이번에는 반드시 철폐해야 한다. 그런 결심을 갖고 있다.

이시우 씨의 용기 있는 행동을 보고 우리도 많이 배웠고, 같이 해야 한다, 이번에야 말로 국내 인사하고 단결해서 철폐될 때까지 더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