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성호 증인 퇴정하세요!2007/10/30 1146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5173

제성호 증인 퇴정하세요!

이시우(사진작가)

지난 4월 19일 국가보안법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수감된 이시우 사진작가가 9월 14일 보석으로 석방돼 재판을 계속 받고 있다. 지난 10월 25일 11차 법정에선 검찰측 증인으로 나선 제성호 중앙대 교수가 변호인측의 심문을 회피하는 특별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피고인인 이시우 작가가 통일뉴스에 글을 보내왔다.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주

“국가보안법상 자진지원 및 금품수수 관련 이승구(이시우) 피고인 재판을 시작합니다.”
“검찰측 증인 제성호씨 나오세요.”

10월 25일 나의 재판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날의 재판은 내가 작성한 유엔사해체, 주한미군의 핵과 화학무기, 열화우라늄탄 등에 대한 보고서, 한강하구에 대한 저술 등 거의 모든 자료에 대해 감정서를 작성한 뉴라이트 상임대표이자 중앙대 교수인 제성호씨를 심문하는 재판이었다.

감정서란 과거 악명 높던 공안연구소에서 써대던 것인데, 공안연구소가 해체된 후에는 보수우익 인사 중에서도 제성호씨가 가장 많은 감정서를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의 보석에 불만을 품고 검사가 제출한 120쪽이 넘는 보석항고장에서 검사가 나에게 사형까지 구형할 계획임을 밝혔고, 압수해간 나의 사진작품의 절반 이상인 수천 점을 몰수, 폐기처분하겠다는 노골적인 의도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검사가 이런 판단의 증거자료로 채택하고 싶어 하는 것이 제성호씨의 감정서였다. 그러니까 제성호씨의 감정서가 이번 재판을 통해 신빙성 있는 증거로 채택되면 나는 사형까지 이를 수 있는 중형을 받고 다시 구속될 상황인 것이었다.

그러나 제성호씨의 감정서를 보면서 나는 과연 이것이 학자가 쓴 것일까?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한두 장에 큰 글씨로 요약한 감정문이나, 무기체계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 그가 그의 전공분야를 넘어서 핵, 화학무기, 열화우라늄탄 등에 대해 거침없이 감정서를 썼다는 것이 더욱 그랬다. 나의 판단으로는 여러 사람이 방대한 자료를 나누어서 읽고 작성한 것을 대충 훑어보고 제성호씨가 서명한 정도일 것 같았다. 왜냐하면 감정서에는 도저히 상식 밖인 내용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보기를 들면, 나는 ‘통일뉴스’에 기고한 한강하구 연재글에서 한강하구의 성격을 비유하면서 정전협정상 민간에게 자유항행이 개방된 이곳을 ‘분단의 해방구’라고 비유한 적이 있는데 감정서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시우는) 한강하구를 민간에게 부여된 ‘분단의 해방구’로 규정하고 있다. ‘해방구’라는 개념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혁명 혹은 빨치산투쟁의 주요거점, 곧 기존질서 전복, 타파를 위한 전진기지를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한강하구에 대해 해방구 운운하는 것은 북한의 남조선 해방전략 내지 민족해방전략에 근거한 ‘해방구’ 개념을 여과없이 그대로 수용, 지지, 동조하여, 상기 지역에 적용, 실천함으로서 유엔사의 관할권을 무력화 시키려는 것이다.”

나의 글에 해방구를 혁명과 빨치산투쟁의 거점이나 기존질서를 전복 타파하는 것이라고 읽혀질 만한 설명이 포함된 바가 없고, 문맥 어디에도 그렇게 오해될 의도를 이 비유가 담고 있다고 생각되진 않는데 ‘해방구’란 단어 하나로 글 전체에 엄청난 붉은색을 칠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보기에 이르면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통일뉴스에 연재한 ‘한강하구의 군사사’란 글에서 한국군대의 건군부터 노정된 지나친 미국의존성이 전쟁을 거치며 더욱 심화 발전된 과정을 비판하는 글의 말미에 “그것은 마치 종자가 어떤 조건을 만나 개화하고 결실하는 것과 같이 수미일관된 생성, 구조, 기능의 일치를 보여준다”고 썼다. 이에 대해 제성호씨는 감정서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시우는) 냉전체제와 건군과정 그리고 인천상륙작전을 기술하면서 종자와 배양조건, 결실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김정일이 창시한 문예이론이라고 선전하는 ‘종자론’의 골자를 수용, 지지, 동조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내가 쓴 글은 군사문제였고 종자론은 감정서가 지적하듯 문예이론이다. 전혀 다른 문맥임이 분명한데도 그는 같은 단어를 썼으니 북의 종자론을 수용, 지지했다는 것이다. 내가 만일 종자대신 씨앗이란 말을 썼으면 어떻게 해석했을까? 인터넷 댓글 수준도 안 되는 이런 글이 학자의 전문적인 감정서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것이 제성호씨 본인이 쓴 것인지를 확인하는 게 우선되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일은 친절하게도 검사가 미리 준비해간 심문에 제성호 증인이 너무 쉽게 시인함으로써 몇 분만에 허탈하게 확인되었다. 모두 자신이 쓴 감정서가 맞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학자적 양심과 전문성에 근거하여 작성한 것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전에도 검사가 재판에서 이 감정서에 기초하여 비슷한 질문을 했을 때 나는 그만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검사님의 품격을 모독하는 꼴이 될 것 같아 답을 피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라고 답한 적이 있었다. 검사가 그 정도 이성과 품격도 없는 사람이라곤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사는 더욱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고 검사의 수준에 맞춰 다음과 같이 답변 드렸다.

“이문세의 ‘휘파람’은 북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요였던 ‘휘파람’과 제목이 같고, 조용필의 ‘서울서울서울’에 나오는 베고니아꽃은 북에서 추앙하는 김정일화인데 그렇다면 이문세와 조용필도 국가보안법 위반이 되는 것인가”하고 반문한 것이다.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서해갑문 서명록에 쓴 ‘인민은 위대하다’를 보고 이런 분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지고 두려워졌다. 나는 보수, 우익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의 어록을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주체사상에서 쓰는 것으로 알려진 용어와 개념이 여과 없이 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몇 개의 보기를 든다.

“모든 일은 모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어 이루어지고, 그결과 역시 사람에게로 귀결된다. 무슨일이거나 사람의 머리와 사람의 손으로 출발되어 흥하는 것도 망하는 것도 결국 사람의 생각과 사람의 행동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이다.” (혁명과업완수를 위한 국민의 길, 국가재건최고회의 1961; 박정희대통령선집3:운명을 넘어, 신범식, 지문각,1969, p102)

“지도자와 피지도자의 관계는 결국 인간이 인간을 다루는 관계입니다. 인간인 피지도자로 하여금 지도자에게 기꺼이 따르게 하는 가장 긴요한 요소는 지도자의 인간성 그것입니다… 솔선수범, 희생의 정신, 그리고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또 협조할 줄 알아야 하며, 아울러 성품이 고상하고 덕망이 뛰어나고, 언행이 일치하고 국가와 국민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충성해야만 합니다.” (혁명과업완수를 위한 지도자의 길, p58)

“민족이란 별것이 아니오, 하나의 커다란 가족…집안…인 것이다…혁명정부와 국민이 흉허물 없는 한 덩어리, 한 몸이 되어서 저마다 맡은 일을 다해 나가는 민족 단결이야말로 혁명과업을 보람있게 이룩하는데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혁명과업완수를 위한 국민의 길, p77-78)

“이렇다할만한 힘이 없는 우리민족에게는 무엇보다도 우리끼리 우리자신의 힘과 열성을 합해서 (자력)갱생의 길을 향하여 다 같은 뜻으로 뭉쳐야 한다.” (혁명과업완수를 위한 국민의 길, p82)

위 글들은 1969년 지문각에서 출간된 박정희대통령선집3에 나온 박정희 대통령의 어록이다. 이 정도면 해방구나 종자보다 훨씬 심각하게 국가보안법 위반을 검토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사실 나는 이전에도 제성호씨의 논문을 열심히 읽은 애독자 중의 하나였고, 그의 학문적 제안의 영향을 받았었기 때문에 그의 감정서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몇 가지 보기를 들자.

유엔사해체에 대한 1975년 유엔총회 결의에서 정전협정의 대체합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이 결의의 효력없음을 주장하나 제성호씨는 그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생각컨대 일방서명자인 유엔사가 해체될 경우 정전협정의 존속도 역시 종료된다는 견해는 타당하다고 할 수 없다.” (평화체제 전환에 따른 법적 문제, 제성호, 중앙대 법학논문집 제24집 제2호, 2000, p93)

즉 유엔사해체와 정전협정은 직접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또 2004년 발간된 서울국제법연구 11권 2호의 ‘헌법상 통일관련 조항의 주요 쟁점과 개정문제’란 논문에서 헌법3조의 영토조항과 통일조항이 충돌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논하고 결론에서 말하길 “앞으로 무게중심이 영토조항에서 더욱 통일조항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영토조항 개정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나의 ‘유엔사문제에 대하여’에 대한 감정서에서 ‘영토조항의 효력(특히 대한민국정부의 정통성과 북한지역에 대한 헌법의 장소적 효력을 주장하는 헌법적 타당성)을 부인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헌법규정과 정신을 부정 모독하는 반헌법적, 반국가적 태도의 시현이라고 할 것이다’라고 감정했다.

한편, 2004년 국방정책연구 겨울호에 ‘북방한계선의 법적 고찰’이란 논문에서 그는 NLL을 둘러싼 논쟁을 각각 고찰하고 결론에서 말하길 “NLL유지를 촉구하되 장기적으로 NLL을 새로운 해상경계선으로 대체하는 방안도 강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의 ‘유엔사해체에 대한 걷기 명상’에 대한 감정서에서 “(이시우는) 북방한계선은 유엔사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것 운운하며, NLL의 적법성을 부정하고 있다. NLL은 남북한이 지난 50여년 동안 준수, 묵시적으로 합의한 경계선으로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그 유효성과 존중의무를 명시하고 있음에도 이를 부정하는 것은 NLL을 시비하며 북방한계선 철폐를 요구(새로운 서해해상군사분계선 설정을 주장)하는 북한의 주장을 수용, 지지, 동조하는 것이다”라고 감정했다.

꽤 장문인 나의 ‘한강하구에 대한 연재글’의 핵심은 한강하구에 대한 유엔사의 관할권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또한 유엔사가 비무장지대 내 경의선과 동해선의 ‘남북관리구역’에 대해서 주장하는 관할권도 남북관리구역에 대한 유엔사와 인민군 간의 합의문에 비추어 일방적이고 무리한 것이므로 이를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이와 관련 제성호씨는 2000년 11월 17일 조선일보 기사에서 유엔사의 관할권이 아닌 관리권 이양 주장을 접하고 그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관할권과 관리권은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인가? 생각건대 유엔사가 말하는 관할권은 DMZ내에서의 입법, 행정, 사법의 권한, 즉 ‘대성동 민사협정’과 같은 법령제정의 권한, 법령을 행정적으로 집행하는 권한, 그리고 민형사 재판관할권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에 비해 관리권이라 함은 경의선 철도의 보수, 신호체계수립, 운용, 필요한 시설물의 설치, 유지, 사후관리 및 감독 등 행정적 관할권(administrative or executive jurisdiction) 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제성호, 경의선철도 연결에 따른 법적 문제와 대책-법정책론적 분석을 중심으로-, p22-23)

“DMZ의 평화적 이용 확대라는 관점에서 볼 경우, 특히 DMZ내에 평화구역(Peace Zone)에서부터 시작하여 통일평화시(Unified Peace City) 건설을 내다본다면 단지 유엔사로부터 관리권만 이양받는 구조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우리로서는 유엔사가 DMZ의 평화적 이용지원 차원에서 향후 북한군과의 합의하에 추가적으로 DMZ 일부 구역을 개방할 경우에는 단지 관리권이 아닌 관할권을 한국에 반환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한국에 대한 관할권 반환구역을 DMZ 내에서 점차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은 곧 DMZ 관할권의 한국화 실현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같은 현상의 확대는 자주적인 남북교류의 지평과 공간을 넓히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가급적 빠른 시기에 우리 정부는 ‘경의선 및 동해선 철도, 도로 연결구간’에 대해서 관리권이 아닌 관할권 전반을 한국에 이양하도록 군사적 외교적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제성호, DMZ의 평화적 이용에 따른 법적문제, 법조, 2006.11, Vol 602, p155)

그가 유엔사의 관할권 주장 논리에 대한 유엔사의 1차 자료를 확인해 볼 위치에 있지 않았던 것은 나와 같았다. 그래서 그는 조선일보 기사라는 2차 자료에 근거하여 관할권에 대한 주관적 해석을 가하였다. 내가 보기에 제성호씨가 해석하는 유엔사의 관할권에 대한 이해는 유엔사가 비무장지대를 점령한 점령군으로서 군정을 수립하고, 군사법원을 설치했을 때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다. 그 같은 권한은 정전협정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보이며 만일 그 같은 관할권이 인정된다면 주권과의 충돌문제를 당연히 고민해야 할 것이다. 내가 유엔사의 관할권 주장 자체를 문제삼는 데 비해 제씨는 유엔사의 주장을 일단 인정하고 외교적 노력으로 관할권을 이양받아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약간의 입장 차이가 있지만 나 역시 제성호씨가 주장하듯 남북관리구역에 대해 관리권이든 관할권이든 실질적으로 남한이 온전한 권한을 이양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선 동일하다.

그러나 유엔사의 주장이라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주체적인 비판과 검토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유엔사의 주장이면 무조건 수긍하고 기정사실화 하거나, 의문을 품는 것조차 금기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주체적으로 재조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지 제씨가 말하는 외교적 노력도 구걸이 아닌 협상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논문과는 달리 그가 작성한 감정서는 다음과 같다.

“한강하구에 대해 유엔사는 항행규칙 제정 및 선박등록의 권한만을 가질 뿐이라면서, 민간이 평화운동 차원에서 열기구비행, 100톤 이상의 바지선 운항, 남북한을 연결하는 다리의 건설 등을 제안하는 한편 민통선 설정이 불법이라고 강변하면서 민통선해체운동을 전개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입장은 군사시설보호법의 목적과 정신을 무시 외면한 것으로, 안보적 관점, 특히 북한 핵무기개발 및 보유와 같은 현 단계의 남북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지나치게 감상적인 주장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유엔사의 관할권을 부정함으로써 주한미군주둔의 근거를 약화시키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그의 논문들에 서술된 제안과 주장들이 내게 보기엔 너무 상반된 것처럼 보여서 나는 감정서가 그의 손으로 쓰여졌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의 감정서대로라면 그의 논문에서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닌 듯하다. 감정서를 그가 쓴 것이 사실이라면 그가 국가보안법의 가면 뒤에 숨어서 학자로서의 양심과 일관성을 버린 사람이든지, 내가 국어실력이 없어서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 못한 것이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다시 재판으로 돌아가 보자. 10월 3일 제성호씨는 법원의 소환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가 재판 하루 전날 검사의 권유로 출석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제씨는 자신이 재판정에 서기까지 결단을 하고 나왔다고 했다. 제성호씨가 증인선서를 하고 앉았다. 변호사들이 감정서의 내용 하나하나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기 시작하자 제씨는 자기는 단지 감정서를 자기가 썼다는 것을 확인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학술적인 토론을 할 생각은 없다며 진술을 거부하겠다고 했다.

판사님은 증인에게 친절하게 진술거부권이 있음을 확인시켜주었고 변호인 측에 논쟁하듯 심문하는 것을 삼가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변호사의 심문에 제씨는 답변을 하기 시작했고, 묻지도 않은 내용에 대해서까지 귀찮으니 한꺼번에 몰아서 답변하겠다는 듯 답변을 이어갔다. 피고와 같은 비학자들은 사실성, 객관성, 균형성, 비판성 등 학문저술로서 갖춰야 할 요건을 갖추지 않고 있으며, 그런 글들을 한두 번 썼다면 봐줄 수도 있겠지만 피고의 글은 의도적이고 반복적으로 북을 이롭게 하는 선전선동성 글로서, 자신의 학문적 양심에 비추어, 북을 이롭게 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글이라고 판단하였다는 요지의 답변이었다. 제성호 증인에 의하면 나의 글들은 선전찌라시 수준이 되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는 정말 이런 식으로 재판이 진행될 줄은 몰랐으며, 나의 회원들이나 여러 입장을 고려했을 때 나는 모든 진술을 거부하며, 재판장이 허락해주신다면 퇴정하고 싶다고 했다. 재판장님께서는 증인에겐 불편한 자리일 수 있지만 피고에겐 너무나 중요한 사안이고 형량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므로 성의 있는 답변을 하라고 주문했다.

제씨는 다시 답하길 자신에게 물어볼게 있으면 재판부에서 서면으로 질문을 제출하면 답변을 고려해 보겠다는 당황스런 제안을 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30분이면 끝난다고 해서 왔는데 이후 일정 때문에 더 이상 자리에 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재판장님께서는 “누가 30분 안에 끝난다고 했나요. 검사가 그렇게 말했나요. 분명히 지난 재판에서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란 것을 확인했쟎습니까?”하며 검사를 추궁했다.

그리고 다시 증인을 향해 “증인! 증인에겐 진술거부권이 있지만 피고와 변호인 측에서도 반대심문권이 있으므로 증인은 성실히 답변해 달라”고 다시 주문했다. 그러나 증인은 “결국 이런 식으로 하면 누가 감정서를 써주겠나. 지난번에 재판부가 요청해서 감정서를 써준 적도 있는데… 어쨌든 나는 감정서를 내가 직접 썼다는 것만을 확인하고 나머지는 재판부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퇴정을 허락해 달라”며 증인은 이러저런 핑계를 대며 계속 퇴정을 요청했고, 재판장님은 마침내 “좋다. 지금까지 증인이 한말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으로 정리하겠다. 제성호 증인! 퇴정하세요”하며 손사래를 쳤다.

제성호 증인은 방청석에서 “감정서를 왜 쓴 거야, 처음부터 쓰질 말지”하는 비난을 들으며, 국민운동행동본부 서정갑씨와 옥인동 대공분실 공안경찰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재판장님과 변호사는 물론이고 심지어 증인을 나오게 했던 검사까지도 망연자실한 채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한 법학과 교수에 의해 재판정은 심한 모독을 당한 기분이었다. 결국 나는 제성호씨와 단 한마디도 해보지 못한 채 재판을 끝마쳐야 했다. 제성호씨가 국가보안법에 대한 수호의지뿐 아니라 높은 엘리트의식도 함께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가 학자 제성호씨가 아니었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것은 누구보다 재판정의 질서를 잘 알고 있을 법학과 교수의 처신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학자의 양심까지 논하던 재판정의 제성호 증인이 쓴 감정서는 악성 댓글보다 못한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야 그렇다 치고 누구보다도 학문을 사랑할 것만 같은 그의 진술에서 서로 다른 주장이 처벌과 제재가 아닌 토론을 통해 발전할 수 있다는 단서 하나 발견치 못한 것은 그와 초면인 나로서는 큰 불행이었다. 내가 익히 보아왔던 그의 논문과 주장은 나의 주장과도 충분히 토론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기에 그런 충격은 더 컸다. 그의 처신은 학문을 사랑하는 자의 처신이 아니라 학문을 말살하는 자의 처신으로 읽혀졌다. 무엇이 그의 이성을 앗아가고 그 자리를 이념적 열정으로만 충만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그리하여 나는 아직도 재판정의 그가 학자 제성호가 아니었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