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게 작통권보다 중요한 것은 위기관리권2007/10/30 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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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미국에게 작통권보다 중요한 것은 위기관리권-이시우

2007년 04월 17일 (화) 11:33:22 이시우(사진가) www.siwoo.pe.kr

작통권 환수과정마다 튀어나온 ‘위기관리권’

2006년 벨 사령관은 작통권 환수에 대비한 유엔사강화론을 펼치면서 한국군에 대한 ‘위기관리권’을 주장했다. 위기에서 전쟁으로의 이행에 지휘의 통일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군에 대한 접근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벨 사령관은 유엔사겸 연합사겸 주한미군사령관이지만 여기에 또 하나의 직책이 있다. ‘위기조치관리관’이다. 유엔사ㆍ연합사령관이 겸직하고 있는 위기조치관리관이란 직책은 세간엔 잘 알려지지 않은 무척 낯선 직책이다. 이는 1994년 래피드썬더 연습당시 게리 럭 연합사령관 본인에 의해 확인됨으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황의청, 한미동맹의 수평적 관계모색, 국방대 석사논문 2004, 61면 참조)

위기절차를 다룬 미국 합참문서에도 지역을 책임지는 총사령관이 위기발생시 교전수칙에 의한 즉각 대응조치를 취하고, 워싱턴 국가군사지휘본부에 상황에 대한 평가서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이 평가는 위기절차 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초기의 전문적 평가이기 때문에 총사령관의 임무가 막중하다는 점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Joint Staff Officers Guide AFSC Pub 1-1997 Chapter7 참조)

유엔사ㆍ연합사령관이 위기관리관이란 직책까지 겸직하고 있음이 알려짐으로서 위기조치절차의 관리에 대한 사령관의 역할이 고유한 것임이 거듭 확인된 셈이다. 럭 사령관은 정전시(평시) 작전통제권 환수 준비과정에서 자신이 위기조치관리관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연합위임권한(CODA:Combined Delegation Authority) 목록에 정전위기관리권을 추가시키도록 지시했다.

1994년 정전시작통권 환수의 연합위임권에 대한 실무작업을 해왔던 미군과 한국군의 작전담당 참모들도 위기관리권은 전혀 예상치 못한 개념이었던 듯하다. 연합사령관이 직접 나서서 한국 합참의장에게 공문을 보내고, 실무진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만나 연합사령관의 지시를 반영하기로 합의하였고, 결국 정전시작통권 환수 서명 직전에 정전위기관리권이 연합사령관의 연합위임권한의 첫 번째 항목으로 추가되었다.

1995년 위기관리에 대한 시행세칙이 합의됐지만 현재와 같은 한미연합위기관리체계가 구체화 된 것은 1998년, 작전계획5027-98과 개념계획5029를 만든 존 틸럴리 사령관 당시이다. 이때 개념계획5029가 북의 붕괴를 가정한 위기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위기관리체계가 새롭게 보강된 배경을 추측해 볼 수 있다. 한국군도 1998년판 국방백서에서야 비로소 이전에 한번도 목차에 등장한 적이 없던 ‘위기관리체계’란 항목이 새로이 추가되었다.

1994년도엔 비공개된 문제제기였으나, 2006년엔 공개리에 유엔사령관이 위기관리권을 언급했다. 두 번의 경우 모두 사령관이 직접 나서서 위기관리권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위기관리권은 왜 이리도 중요한 것일까?

위기절차는 전쟁절차의 상위개념

지휘체계는 구조이다. 위기관리권이나 작통권은 기능이다. 기능은 하나의 구조가 다른 구조에 미치는 역할과 능력이다. 때문에 기능은 구조보다 체계의 특성을 더욱 본질적으로 표현한다. 고래는 구조상 쥐에 가까운 포유류지만 기능은 물고기와 더 가깝다. 고래의 특성은 구조보다 기능에서 더 잘 표현된다.

또한 몇 개의 체계에 관계하는 기능보다 몇 백 개의 체계에 관계하는 기능이, 낮은 수준의 체계보다 높은 수준의 체계에 관계하는 기능이 체계의 특성을 잘 표현한다.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생물과 원숭이 같은 고등생물의 기능이 다른 것과 같다. 또한 같은 사람이라도 단순한 관계 속에서만 살아가는 사람과 고도의 체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역할과 기능이 서로 다른 것과 같다. 단순한 기능은 부분적인 속성만을 나타내지만 포괄적인 기능은 본질적인 속성과 더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

전쟁은 지휘구조가 군사영역과 관계하는 기능이다. 위기는 지휘구조가 정치, 군사, 경제, 보건 등 국가운영의 본질적인 영역들 전체와 관계하는 기능이다. 하나의 체계가 가진 기능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단순한 관계에서의 기능보다는 넓고, 고도한 체계와 관계하는 기능에 우선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

전쟁절차라고 이해될 수 있는 ‘숙고된 절차’에서는 위기조치를 지역총사령관이 결정하지만, 위기절차에서는 위기조치를 대통령이 직접 결정한다. 이것은 전쟁절차와 위기절차의 비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Joint Staff Officers Guide AFSC Pub 1-1997 Chapter7 참조)

한편 나토협의지휘통제국(NC3A:NATO Consultation, Command and Control Agency)에서는 위기관리영역에서의 기준에 따라 일하는 것을 중요목표로 삼는데, 협의는 정치적인 것으로 지휘ㆍ통제는 군사적인 것으로 성격을 구분한다. 즉 정치적 협의와 군사적 지휘ㆍ통제를 양대 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위기관리의 정치-군사 통합적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GRIDtoday. January 6. 2003: VOL.2 NO.1)

한미연합위기관리구조에 의하면 연합사령관이 데프콘3을 먼저 선포하고, 나중에 한국군의 승인을 받아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구조상으로는 한국군과의 협의 절차를 그런대로 공평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능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매우 불평등한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이 데프콘 상향을 결정한 시점이면 이미 미국 대통령까지 위기회의체계에 들어와 초기조치를 실행한 상태이고, 절차대로라면 전군에 경계명령이 발효되어 경계태세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한국군은 바로 그 시점에서 합참의장에게 통고되고, 합참의장이 대통령에게 그때서야 보고하게 된다. 이미 미군에 총 경계태세가 내려진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이를 거절 하는 일이 용이할까? 구조의 관점과 기능의 관점은 상황을 전혀 다르게 파악케 한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구조보다 기능에 의해 상황이 주도된다는 것이다.

기능은 또한 구조간의 관계만이 아니라 그 시간의 관계인 역사에 의해서도 규정받는다. 역사는 구조가 발생하고 발전해온 과정이다. 변화하는 구조간의 관계에 따라 기능 역시 변화된다. 따라서 구조만으로 현재 존재하는 체계의 본질을 규정하려는 것은 형식논리가 되기 쉽다. 역사 속에서 발전되어 온 구조간의 관계와 역할을 중심으로 파악할 때만 체계의 본질에 더 접근할 가능성을 갖는다. 과거 전쟁절차와 위기절차, 작전통제권(Operational Control Authority)과 위기관리권(Crisis Management Authority)이 실제 어떻게 운용되고, 적용되어 왔는지를 아는 것은 현재 지휘체계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있어 중요하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의 99%가 위기절차로 시작되었다. 전쟁선포를 법적 기준으로 한다면 걸프전만이 전쟁절차를 따랐다. 1973년 대통령의 전쟁권을 합법화시켜주는 동시에, 의회에 의한 통제를 목적으로 제정된 ‘전쟁권 결의(War Powers Resolution)’의 초점도 전쟁절차가 아닌 위기절차이다. 전쟁절차는 의회가 전쟁선포를 하도록 미국헌법이 정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전쟁권은 의회에 의해 제약된다.

그러나 위기절차는 대통령이 임의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고, 60일에서 많게는 90일까지 연장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 의회에 보고의무가 가장 잘 지켜졌다고 하는 1975년 마야구에즈호 위기조차 협의가 아닌 통고로 그쳐 전쟁권 결의를 위반했으며, 그 뒤에 이어진 파나마, 이란, 아이티, 엘살바도르위기 등은 어느 것 하나 ‘전쟁권 결의’를 위반하지 않은 것이 없다. (Richerd F. Grimmett, CRS Report for Congress. RL32267-The War Power Resolution: After Thirty Years March 11, 2004 참조)

한국군에 대한 미군의 작통권 행사와 위기관리권 행사가 절묘하게 발휘된 예는 이승만 제거작전으로 알려진 에버레디계획(Plan Everready)이었다. 이를 시발로 한국역사의 고비마다 위기관리권의 위력적인 사례들이 등장했다. 미국은 위기조치절차를 통해 작전권을 부여한 당사자인 군통수권자마저 제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개념상으로는 작전지휘권보다 하위개념일 뿐인 작전통제권에 주권마저 좌지우지된다는 인상을 깊이 각인시켜 주었다. 에버레디계획의 학습효과는 국방부에서 한미간에 작통권이 공평하게 행사되고 있다고 도표를 그려서 설명해줘도 믿지 않을 만큼 무의식화 되었다. 그러한 관념은 일반인이 쉽게 설명을 못할 뿐이지, 정확한 것이다. 하찮다는 작통권이 어떻게 지휘권보다 강하고 주권까지 흔들 수 있는지를 미군의 위기관리권은 보여주었다.

한국에선 ‘위기관리’란 말이 근자에나 회자되는 낯선 용어이지만 미국은 우리가 ‘한국전쟁(Korea War)’이라고 부르던 당시에도 ‘코리아위기(Korea Crisis)’란 용어를 문서마다 사용하고 있었다. 또한 한국전 관련 회의문서의 중요한 대책들에는 ‘위기조치절차(Course of Action)’란 단어로 기록되어 있다.

이승만은 한국군에 대한 작통권을 언제든지 돌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일방적으로 작통권을 행사한 경우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미국은 위기조치절차를 통해 그 같은 의도를 여지없이 좌절시켰고, 만약 그같은 조치가 실패할 때는 유엔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이승만을 제거하고, 군정을 실시한다는 계획들을 준비했다.

1980년 광주항쟁을 통해 미군의 한국군에 대한 작통권이 널리 화두가 되었다. 작통권을 통해 미국정책의 속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미군의 한국군에 대한 작통권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작통권과 미국의 정책 사이를 넘나들며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형성해온 또 하나의 창인 위기관리권을 발견하게 된다.

위기절차야말로 미국의 장단기정책과 목표가 순식간에 폭로되는 분출구 역할을 했다. 평상시엔 단비로만 내리다가 한순간에 게릴라성 홍수가 되는 빗물처럼 위기는 그 속에 내재된 본성을 미리 파악하고 있어야 만이 대응이 가능하다.

이러한 미국의 위기관리권 행사에 의해 한국의 작통권에 대한 인식은 다른 나라에 없는 매우 독특한 것이 되었고, 이에 대해서는 지휘관계를 다룬 미국합참의 교범에서까지 언급하고 있다.

단어들의 미묘한 차이, 특히 작전통제는, 다국적 작전의 오랜 역사를 가진 동맹 가운데에서조차 혼동의 원인이 된다. 비록 정치적 고려사항이 민감하지만, 명백한 지점은 정치적 구조가 끝나고 군사적 구조가 시작되는 곳에 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국적 군사령관은 정치지도자와 군사구조 사이에서 완충기로서 역할하는 전투사령관이나 합동군사령관에게 보고해야 한다. 이것은 합동임무군사령관으로서 지정된 미군사령관이 정치-군사적 완충기이자, 합동지상구성군사령관으로서 군사작전을 통제하는 임무군사령관이란 것을 의미한다. 전투사령관은 특별한 관계를 결정한다. (FM 100-8 Chptr1 Fundamentals, Chapter 2 Command, Control, Coordination, and Liaison)

한국에서의 작통권 논쟁을 염두에 둔 듯한 이 문장은 ‘작전통제’의 의미가 정치판단이나 결정이 아닌, 군사의 관점에서만 찾아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일견 명확한 정의이다. 그러나 왜 작전지휘권도 아닌 작전통제권이 한국에서는 수많은 정치적 오해에 둘러싸이게 되었을까?

그것은 실제 4.19, 5.18 등 한국 정치의 한복판에 미군의 작전통제를 받은 한국군인들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결정들은 예외 없이 전쟁절차가 아닌 위기절차에 의한 것이었다. 정치-군사적 완충기로서의 역할은 위기관리에서 특히 두드러지고, 작전사령관으로서의 역할은 전쟁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전쟁은 정치, 경제, 외교적 고려가 끝난 상태에서 작전이 실행되지만, 위기는 정치, 경제, 외교적 고려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작전이 실행된다.

결론을 말하면 미군에 있어 전쟁보다 넓고 고도한 기능은 위기이다. 전쟁은 위기를 포함하지 못하지만 위기는 전쟁을 포함한다.

솔직히 필자 역시 ‘위기’란 단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푸에블로위기와 마야구에즈위기, 판문점 미루나무위기 등을 연구하고 나서야 ‘위기’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의 필자의 ‘전쟁과 위기의 관계’에 대한 이해는 (전쟁⊃위기), 이거나 (전쟁≒위기)였다. 즉 위기는 전쟁에 포함된 것이거나 위기와 전쟁은 별 차이가 없는 비슷한 것이라는 것이다. 위기가 전쟁에 포함된 하위개념이란 생각은 위기는 평시, 전쟁은 전시라는 도식을 받아들인 때문이었다. 위기와 전쟁이 비슷한 것이란 생각은 미국이 위기를 빌미로 전쟁을 일으켜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위기관리의 역사와 구조, 기능을 연구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위기가 상위 개념이고 위기에 전쟁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전쟁⊂위기)이다.

1994년 위기관리권이 처음으로 유엔사ㆍ연합사령관의 입을 통해 공식 언급된 이래 전략지시2호에 의해 정전시작통권 환수합의서에 한국이 서명함으로서 이를 공식화시켜주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위기관리권은 이승만 대통령이 작전지휘권을 이양할 때조차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미국이 작통권을 통해 위기관리권을 행사해 왔을 뿐이다.

위기절차와 작통권이 행사되는 절차가 때로 중복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작통권이 정치-군사영역을 다루는 위기관리권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군사영역에서 위기관리권의 범위와 한계를 명확하게 제한한다 해도 위기 자체의 성격상 그것은 무의미하다. 위기는 본질적으로 정치-군사영역에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위기를 다루는 주체와 작통권을 행사하는 주체가 같을 때 즉 한 주권국가의 한 통수권자에 의해 행사될 때는 그나마 융통성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국익을 서로 달리하는 두 개의 주권국가가 위기관리권을 공유한다는 것은 예측가능하지 않고, 신속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위기 상황아래에서는 힘이 있는 국가의 패권에 경도되는 것을 의미한다. 국력이 비슷하면 마찰을 일으키다가 위기에 신속히 대처할 수 없을 것이고, 국력이 차이나면 강대국의 결정을 신속히 따라가게 할 것이다.

이는 향후 작통권 환수 전뿐 아니라 후에도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위기절차를 시작할지 말지가 이미 국익을 어떻게 보는가에 의해 달라진다. 또한 위기절차에 돌입해서도 위기대응 방법론 역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작통권 환수의 대원칙은 국가위기에 대해 우리 국익의 관점에서 우리의 방법론으로 대응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천명에 다름 아니다. 효율성이나 기술적 우위 등을 내세워 적당히 물타기 되는 것을 좌시해선 안 될 것이다.

연합사해체 이전이라도 연합사령관에게 부여된 정전위기관리권을 조기 환수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편 전시작통권 환수과정에서 유엔사령관이 들고 나온 위기관리권에 대한 주장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조용히 진압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작통권 환수 뒤에 구상하고 있는 군사협조본부 등에서도 위기관리권만은 흐지부지 섞여 들어가게 해선 안 될 것이다.

1994년 정전시작통권 환수 때와 같이 유엔사에게 한국군에 대한 위기관리권을 인정하게 된다면 그 순간 작통권 환수는 도루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