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트인터뷰 이시우 2006/05/07 687

[월요인터뷰] 미 텍사스 자택서 만난 러포트 전 한미연합사령관

[중앙일보 강찬호] “내가 올해 2월 한국에서 이임하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은 괜히 한 말이 아닙니다. 그때 나는 ‘앞으로 한.미 동맹은 시련을 겪을 것이다. 동맹을 사랑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했지요. 이 말은 이제 동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침묵을 깨지 않으면 안 되는 중차대한 시점이 왔다는 뜻입니다.”

만 3년9개월, 햇수로는 4년간 주한미군 및 유엔사와 연합사 사령관을 지내고 올해 2월 3일 이임한 리언 러포트(59) 장군. 그가 지난달 31일 텍사스주 포트 베닝 기지에서 전역식을 하고 만 38년간의 군생활을 마감했다. 전역식에 앞서 그의 샌안토니오 자택에서 단독 인터뷰를 했다.

-이임식 발언의 의미를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

“동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공개석상에 나와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 개진하는 것은 물론, 다음 대선 후보자들도 동맹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정확히 밝히도록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한.미 동맹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소수인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펴는 데 너무너무 적극적(Extremely active)이어서 영향력이 아주 큰 것처럼 보인다. 반면 동맹 지지자들은 다수지만 침묵하고 있어 존재감이 없다.”

-한국의 다음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강화하려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한국의 다음 대선에서는 한.미 동맹이 핵심 이슈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년 말 대선까지 2년간은 동맹에 결정적인(critical) 시점이 될 것이다.”

-사령관 재직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2002년 6월 여중생 사망사건 때였다. 그날 밤 한숨도 못 잤더니 다음날 아침에 눈이 시뻘겋게 부어올랐다. 나와 장병은 유족들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사건은 대선 직전에 터졌고 정치적으로 이용됐다. 그것이 가장 힘들었다.”

-그때 어떤 대응조치를 취했나.

“즉각 전군 지휘관을 소집해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한국민과의 관계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또 그 뒤로 3개월마다 한국 지도급 인사 15명과 회의를 열고 아이디어를 구했다. 내 집사람도 한.미 친선기금을 모으는 데 힘써 지금까지 30만 달러를 확보했다. 재임기간에 한국 민간인 3명, 미군 11명, 한국군 86명이 군 관련 사고로 숨졌다. 그러나 꾸준한 노력으로 지난해에는 사고율이 역대 최하를 기록했다.”

-그 밖에 어려웠던 기억은.

“한국 정부나 관련 인사들이 한.미 동맹 협상 현안을 여러 차례 언론에 흘린 것이다. 작전계획5029 협상, 주한미군 재배치 협상 등 세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그 결과 워싱턴에서 ‘도대체 한국에 신의가 있느냐’며 우려(concern)하는 상황까지 갔다. ‘한국이 그렇게 미국을 싫어하는데 많은 돈을 들여 미국 젊은이들을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언론 보도에 과잉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의회와 군부를 말려 일단락되긴 했다. 그러나 한국의 잦은 언론플레이는 동맹을 손상(hurt)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전시작전권 이양 문제를 올해 안에 매듭짓겠다고 했다.

“(안경을 고쳐쓰며) 작전권 이양은 하루아침에 안 된다. 주한미군이 한반도 방위에 필수적인 C4I(지휘통제 자동화체계)를 현 수준으로 갖추는 데 20년 넘게 걸렸다. 한국이 이런 수준의 C4I를 확보하려면 2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래 걸릴 것이다. 또 작전권 이양은 유엔사와 연합사, 정전협정 체제까지 바꾸는 민감한 문제다. 이런 어려움은 한국 정부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일단은 작전권 이양의 로드맵부터 만들고 이양은 천천히 추진하자는 공감대가 한.미 간에 이미 형성돼 있다. 이 로드맵은 올해 10월 한.미 연례 국방장관회의(SCM)에서 발표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쪽에서 주한미군 추가 감축 가능성이 자꾸만 흘러나오는데.

“추가 감축은 한국 정부에 달렸다. 작전권 협상에서 한국이 어떤 제안을 하느냐에 따라 미국이 추가 감군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추가 감군은 전혀 결정된 게 없다.”

-주한미군 사령관의 별 숫자가 줄어들 가능성도 제기된다.

“후임자인 버웰 벨 대장이 최소한 2년에서 4년은 근무할 것이므로 적어도 그때까지는 4성장군을 유지할 것이다.”

-북한의 전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북한은 이미 3개에서 최대 6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다. 1994년 제네바협상 이전에 제조된 것이다. 지금은 더 늘었을 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120만 명의 병력에 일본까지 날아가는 미사일을 소유하고 있다. 한국 내 일부에서 말하는 북한 위협 소멸론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한.미 동맹은 대북 방위를 위해 절대 필요하다.”

-한.미 동맹의 현주소를 어떻게 보나.

“동맹의 인프라는 튼튼하다. 한국군과 미군의 관계는 아주 좋다. 형제 같은 사이다. 나는 4년 전 부임 직후 당신 같은 나이의 한국 공군 조종사들이 모는 KF-16기를 타고 한국 상공을 돌았다. 그때 나는 두 나라의 군인들이 하나임을 온몸으로 느꼈다.”

-군끼리는 괜찮다는 얘긴데, 정부 차원에서는 어떤가. 노 대통령은 동맹에 어떤 입장을 취해 왔다고 보나.

“노 대통령은 동맹에 협조적(supportive)이었다. 이라크 파병과 용산기지 이전 협상 등 한국으로는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에서 특히 그랬다.”

-하지만 한국은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 직전 이라크 감군 방침을 발표해 물의를 빚었는데.

“한국의 감군 결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영국 등 다른 나라들도 감군하는 추세지 않나. 미국은 이라크를 한국처럼 민주화되고 발전된 나라로 만드는 게 목표다.”

-재직 중 가장 기뻤던 순간은.

“금강산과 개성을 가로막아온 차단벽을 한국군과 함께 헐었던 일이다. 그리고 ‘나보태’란 한국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남북 교류에 기여한 것이 가장 기쁘다니 약간 뜻밖이다.

“미국은 남북한 교류 확대와 한국 중심의 통일을 절대 지지하는 입장이다. 말이 난 김에 백악관과 국방부가 얼마나 한국을 챙기는지 얘기하자.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 직전 의정부에서 한국 여인이 미군 차량에 숨진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즉각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에게 ‘국가 차원에서 유감을 표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자 다음날 백악관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노 대통령과 회담한 뒤 기자회견을 시작하자마자 ‘한국민에게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미국이 한.미 동맹을 챙기는 순위는 어느 정도인가.

“이라크 이상 가는, 한마디로 최우선 대상이다. 럼즈펠드 장관은 매일 한국과 관련된 보고를 받는다. 동맹국 중 미군이 4성장군을 보낸 곳은 한국뿐이다.”

-미국은 한국군이 지역 내에서의 역할을 확대하길 원하나.

“한국군은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에 걸맞게 역할을 확대할 시점이 됐다고 생각한다. 우선 한국이 국내 소비량의 거의 전부를 의존하는 중동산 석유의 주 수송로인 말라카 해협 등지에서 해적이나 테러리스트를 차단하는 다국적 작전에 참여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이 작전엔 중국.일본 등 이해를 같이하는 이웃 국가들도 참여시켜 동북아 협력구도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최근 미국은 올 여름 몽골에서 펼쳐질 다국적 평화유지군 훈련인 ‘칸퀘스트’에 한국군의 참여를 요청했다.

“칸퀘스트는 전 세계 평화 유지에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한국이 편안해하는 수준에서 이 훈련에 참여하도록 권할 생각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놓고 말이 많다. 한국은 중국의 심기를 거스를까 우려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한국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미국이 병력을 빼내기 전에 한국과의 사전협의를 제도화한 만큼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주한미군 전투병력 중 마지막 남은 2사단 2여단은 어떻게 됐나.

“미국 밖에서 스트라이커 여단으로 재편된 유일한 여단이다. 지금 100% 새로운 조직으로 탈바꿈했다. 더 가볍고, 더 강력해졌다. 이 여단을 만드는 데 수십억 달러가 들었다. 한국의 방어를 위한 개편이었지만 한국과 비용분담 협상을 하지는 않았다. 다른 미군 여단들도 2여단 모델을 따를 것이다.”

-한국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이 미국과 의견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차이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협상으로 해결하면 된다. 그러나 협상 현안을 언론에 흘리는 건 한.미 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언론 보도를 해명하느라 동맹 발전에 쓸 역량을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국내 정치적 목적에 동맹을 이용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가장 존경하는 한국인은.

“백선엽 장군이다. 그는 평생을 한국의 안보에 헌신했다. 85세인 지금도 나라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나의 영웅이다.”

stoncold@joongang.co.kr